전쟁(1)
조회 : 356 추천 : 0 글자수 : 5,339 자 2024-03-15
"저깁니다. 엿새 전에 빼앗긴 거점 중 하납니다. 문제는 마법 대비책이 쫙 깔려 있다는 건데..."
"신났군. 입 좀 닫지?"
"앗. 죄송합니다."
켈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대에서 데려올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나불거리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질질 짜는 놈에 가까웠지.
*****
"정찰과 탐색에 능한 병사들을 모아주십시오."
"바루펠 님의 명령이니 따르겠습니다만, 혹시 이유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켈렌은 지휘관의 공손한 태도에 기분이 썩 좋아져, 조금 떠들었다.
"거점을 여섯 개나 빼앗겼다고 들었습니다."
"수치스러운 패배였습니다. 허나 다음엔 반드시..."
"아니. 다음번에도 질 겁니다. 이런 식으론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켈렌은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지휘관 주변의 부관들만 해도 얼굴이 죽상이었다.
사기가 이렇게 떨어졌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나.
심지어 지원군도 전혀 오지 않았으니 승리를 약속하는 것은 무모한 바보짓에 가까웠다.
"...하지만 저희는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싸우지도 않고 패배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뿐더러..."
"설령 패배할 전투라도 마지막까지 싸운다. 좋은 격언입니다."
"......"
부관은 눈앞의 마법사가 유명한 전쟁 격언을 뱉자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그래도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켈렌은 고개를 저었다.
승리한들 피해가 크다면 기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켈렌이었다.
패배할 전투라면 방법을 강구해야지 무식하게 싸우는 게 뭐가 좋단 말인가.
어쩔 수 없는 기사와 마법사의 견해 차이였다.
"하지만, 만약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것도 아니며, 윗분들의 명령을 어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그렇다면...?"
"말했잖습니까. 정찰과 탐색에 능한 병사 한 명만 내어달라고."
지휘관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무리 합리적인 이유라도 제가 납득하지 못하면 제 관할의 병사를 함부로 내어드릴 수 없습니다."
"빼앗긴 거점을 되찾으러 갈 생각인데, 이쪽은 초행길이라 지리를 모르니 안내역이 필요하오."
지휘관은 이번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켈렌을 바라보았다.
"수백 명의 병사들이 달려들어도 꿈쩍도 안 하던 거점을 둘이 가서 빼앗아 온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
"수백 명이 달려드니까 그런 겁니다. 그리고 둘이 아니라 하나. 안내역을 맡을 병사는 참가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어서 데려오십시오."
"말도 안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보십시오. 나는 기사이자 지휘관인 당신을 존중합니다. 병사들을 아끼는 것은 당연해요.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
지금 당장도 마족 병사들은 또 하나의 거점을 빼앗으려고 할 테고, 이쪽은 대비책조차 없다.
이래서야 또 피해가 발생할 것이며, 또 한 번의 전투에서 패배하기만 할 터.
"마법사 님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내가 최선이오."
"......"
지휘관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사실 마법사의 말이 맞다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
만약 마법사의 뜻 모를 말과 알 수 없는 전략이 성공한다면...
"프라덴을 불러와라."
설전에서 패배한 지휘관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관에게 나직이 명령했다.
부관은 재빨리 프라덴이란 병사를 데리고 왔고, 병사는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
대충 설명을 들은 프라덴은 지휘관의 면전에 고함을 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제지하지는 않았다.
얼핏 들으면 자살하라는 명령과 다를 바 없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명령일세. 자네는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을 들을 의무가 있지 않나."
"말도 안 됩니다! 이런 정체불명의 마법사와 죽으러 가란 명령이잖습니까!"
"이미 충분한 설명은 해주었네. 출발하게."
단호한 지휘관의 태도에 프라덴은 분을 삭이더니 이내 비관적으로 굴기 시작했다.
"마법사님은... 죽음을 직감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
"전 지금입니다... 그놈들로부터 어떻게 도망쳤는데..."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게. 자네는 정찰과 탐색으로 충분해. 절대 싸우게 하지 않을 테니 걱정은 버리게."
"말이야 쉽지요... 어차피 전 도움도 안 될 테니 금방 죽어버리겠습니다. 그럼 걸리적거리지 않고-"
"닥치고 길이나 찾아. 이대로면 둘 다 개죽음이다."
"......"
그렇게 켈렌은 징징거리는 병사 프라덴과 함께 첫 번째 거점에 도착했다.
"저깁니다."
"부르면 5분 내로 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에 숨어있도록."
"...그냥 여기 있겠습니다."
"보기보다 용감하군. 마법에 휘말리지만 않게 조심하라고."
켈렌은 프라덴의 등을 두드려주고는 거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병사 프라덴은 켈렌을 전혀 믿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마계의 정예 병사들이 빼앗은 거점을 단신으로 탈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켈렌이 '일반적인 뛰어난 마법사'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불신이었다.
"적습이닷!"
"거점 중앙이다!"
"적은 하나다! 단숨에 죽여버려라!"
마족 병사들이 고함을 치며 소란을 피울 때까지만 해도 프라덴은 부대로 돌아갈지 깊이 고민했다.
그때 프라덴의 고민과 마족 병사들을 동시에 박살내버린 건 거점 중앙에서 솟구친 거대한 얼음 기둥!
폭발하듯 짓쳐오른 얼음 기둥은 그 직후 산산조각 나면서 우박처럼 떨어져내렸다.
땅에 박힌 얼음 조각들은 식물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닌 마법이다! 겁 먹지 마라!"
얼음 씨앗은 급속도로 자라나 잎이 무성한 얼음 나무가 되었다.
"죽어라!"
검을 휘두르며 돌진한 마족 병사가, 별안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놈은 당황하며 자신의 발목을 바라보았고, 그제야 얼음 나무 뿌리가 온몸을 결박한 것을 알아챘다.
"어, 어느새...!"
"이것 풀어라 이놈!"
"비겁한 자식!"
켈렌에게 가까이 다가온 병사들은 모두 얼음 나무 뿌리에 묶여버리고 말았다.
몸을 조금만 비틀면 부서져버릴 약한 결박이었지만, 마족 병사들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온몸에 스며드는 한기보다도 더욱 오싹한 켈렌의 마력이, 도저히 약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은 것이다.
강자를 늦게 알아차린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두 가지.
심기를 건드려 고통스럽게 죽거나, 최대한 비굴하게 조아려 편안한 죽음을 맞거나.
나무 뿌리에 얽매인 마족 병사들은 후자를, 그렇지 않은 병사들은 전자를 선택했다.
"감히 우리 동료를...!"
냉기에 몸이 조금 굳었을 뿐, 비교적 자유로운 병사들이 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구속 당한 병사들이 그들을 말리려 했으나 켈렌이 한 발 빨랐다.
전장으로 오기 전에 들렀던 마을에서 산 지팡이를 땅에 내리치자, 나무들이 우수수 흔들렸다.
작고 날카로운 얼음 나뭇잎들이 돌풍에 휩쓸려 허공을 날았다.
얼핏 보면 아릉다운 광경이었으나, 공중을 빠르게 가르는 흰 나뭇잎들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이윽고 돌풍이 멎자, 나무 뿌리에 묶여 있던 병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곤죽이 되어 있었다.
"크윽...!"
마족 병사들은 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의 마법사를 얕본 것은 자신들이었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하나 질문하겠다."
그때, 잔악무도한 학살을 저지른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속이려 들지 마라...! 마법사! 비록 전투에 패했을지라도 우린 긍지 높은-"
켈렌은 자신의 말을 끊은 마족 병사를 용서하지 않았다.
땅 속에서 얼음 나무 뿌리가 송곳처럼 튀어나와 건방진 포로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끅... 끄으윽...!"
"내가 질문의 답을 들을 때까지 이놈은 살아있을 거다. 동료의 편안한 죽음을 바란다면 빨리 대답해야겠지."
그러나 켈렌은 바로 질문하지 않았다.
건방진 마족 병사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까딱이며 서 있을 뿐.
"어서 질문해라! 끔찍한 인간 마법사!"
"......"
성질 급한 포로도 같은 벌을 받게 되었다.
나머지 포로들은 상황을 이해했는지 입을 굳게 다물고, 몸이 천천히 얼어가는 것을 힘겨워하며 버텼다.
이윽고 켈렌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 거점을 빼앗으면서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였나?"
"......"
"대답이 없군."
켈렌은 손가락을 하늘을 향해 까딱였다.
그러자 포로 하나가 또 꿰뚫렸다.
"잔인한 자식...!"
"네놈의 팔다리는 개들이 뜯어먹을 것이고 눈은 까마귀가, 내장은-"
"음."
남은 포로는 셋.
켈렌은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은 언제쯤 나오지?"
처음으로 머리통이 꿰뚫린 마족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명을 질렀다.
"...수백... 400마리 넘게..."
"흠. 많군. 다음 질문."
"......"
"왕좌는 주인이 생겼나?"
"아직이다. 마계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인간들의 침공으로 더욱 혼란스러워졌지."
"이 자식이 반말을."
남은 포로는 둘.
"인간 포로 중 중요한 인물이 있나?"
"...저흰 그저 전투 병력이라 잘 모릅니다만... 소문에는 황녀를 잡았다고..."
"그건 큰일이군. 마계의 총 병력은?"
"지금 제국에 들어와 있는 병력의 수십 배는... 더 됩니다. 정확한 수치는 병사들도 잘 모릅니다."
"친절하군."
켈렌은 손가락을 튕겨 성실히 대답해준 마족을 완전히 얼려버렸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으리라.
"마계의 주요 병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지?"
"흥. 마, 말할까 싶으냐. 나는 저, 절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다."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 그럼 고생 좀 하라고. 올 때까지."
켈렌은 그렇게 거점 하나를 완전히 탈환하고, 프라덴이 소속되어 있던 부대에 얼음 새를 보냈다.
첫 번째 목표였던 거점을 탈환했으니 이동하라고.
지휘관을 반 협박해 프라덴을 안내역으로 받은 지 1시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신났군. 입 좀 닫지?"
"앗. 죄송합니다."
켈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대에서 데려올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나불거리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질질 짜는 놈에 가까웠지.
*****
"정찰과 탐색에 능한 병사들을 모아주십시오."
"바루펠 님의 명령이니 따르겠습니다만, 혹시 이유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켈렌은 지휘관의 공손한 태도에 기분이 썩 좋아져, 조금 떠들었다.
"거점을 여섯 개나 빼앗겼다고 들었습니다."
"수치스러운 패배였습니다. 허나 다음엔 반드시..."
"아니. 다음번에도 질 겁니다. 이런 식으론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켈렌은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지휘관 주변의 부관들만 해도 얼굴이 죽상이었다.
사기가 이렇게 떨어졌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나.
심지어 지원군도 전혀 오지 않았으니 승리를 약속하는 것은 무모한 바보짓에 가까웠다.
"...하지만 저희는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싸우지도 않고 패배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뿐더러..."
"설령 패배할 전투라도 마지막까지 싸운다. 좋은 격언입니다."
"......"
부관은 눈앞의 마법사가 유명한 전쟁 격언을 뱉자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그래도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켈렌은 고개를 저었다.
승리한들 피해가 크다면 기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켈렌이었다.
패배할 전투라면 방법을 강구해야지 무식하게 싸우는 게 뭐가 좋단 말인가.
어쩔 수 없는 기사와 마법사의 견해 차이였다.
"하지만, 만약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것도 아니며, 윗분들의 명령을 어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그렇다면...?"
"말했잖습니까. 정찰과 탐색에 능한 병사 한 명만 내어달라고."
지휘관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무리 합리적인 이유라도 제가 납득하지 못하면 제 관할의 병사를 함부로 내어드릴 수 없습니다."
"빼앗긴 거점을 되찾으러 갈 생각인데, 이쪽은 초행길이라 지리를 모르니 안내역이 필요하오."
지휘관은 이번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켈렌을 바라보았다.
"수백 명의 병사들이 달려들어도 꿈쩍도 안 하던 거점을 둘이 가서 빼앗아 온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
"수백 명이 달려드니까 그런 겁니다. 그리고 둘이 아니라 하나. 안내역을 맡을 병사는 참가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어서 데려오십시오."
"말도 안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보십시오. 나는 기사이자 지휘관인 당신을 존중합니다. 병사들을 아끼는 것은 당연해요.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
지금 당장도 마족 병사들은 또 하나의 거점을 빼앗으려고 할 테고, 이쪽은 대비책조차 없다.
이래서야 또 피해가 발생할 것이며, 또 한 번의 전투에서 패배하기만 할 터.
"마법사 님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내가 최선이오."
"......"
지휘관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사실 마법사의 말이 맞다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
만약 마법사의 뜻 모를 말과 알 수 없는 전략이 성공한다면...
"프라덴을 불러와라."
설전에서 패배한 지휘관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관에게 나직이 명령했다.
부관은 재빨리 프라덴이란 병사를 데리고 왔고, 병사는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
대충 설명을 들은 프라덴은 지휘관의 면전에 고함을 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제지하지는 않았다.
얼핏 들으면 자살하라는 명령과 다를 바 없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명령일세. 자네는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을 들을 의무가 있지 않나."
"말도 안 됩니다! 이런 정체불명의 마법사와 죽으러 가란 명령이잖습니까!"
"이미 충분한 설명은 해주었네. 출발하게."
단호한 지휘관의 태도에 프라덴은 분을 삭이더니 이내 비관적으로 굴기 시작했다.
"마법사님은... 죽음을 직감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
"전 지금입니다... 그놈들로부터 어떻게 도망쳤는데..."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게. 자네는 정찰과 탐색으로 충분해. 절대 싸우게 하지 않을 테니 걱정은 버리게."
"말이야 쉽지요... 어차피 전 도움도 안 될 테니 금방 죽어버리겠습니다. 그럼 걸리적거리지 않고-"
"닥치고 길이나 찾아. 이대로면 둘 다 개죽음이다."
"......"
그렇게 켈렌은 징징거리는 병사 프라덴과 함께 첫 번째 거점에 도착했다.
"저깁니다."
"부르면 5분 내로 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에 숨어있도록."
"...그냥 여기 있겠습니다."
"보기보다 용감하군. 마법에 휘말리지만 않게 조심하라고."
켈렌은 프라덴의 등을 두드려주고는 거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병사 프라덴은 켈렌을 전혀 믿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마계의 정예 병사들이 빼앗은 거점을 단신으로 탈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켈렌이 '일반적인 뛰어난 마법사'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불신이었다.
"적습이닷!"
"거점 중앙이다!"
"적은 하나다! 단숨에 죽여버려라!"
마족 병사들이 고함을 치며 소란을 피울 때까지만 해도 프라덴은 부대로 돌아갈지 깊이 고민했다.
그때 프라덴의 고민과 마족 병사들을 동시에 박살내버린 건 거점 중앙에서 솟구친 거대한 얼음 기둥!
폭발하듯 짓쳐오른 얼음 기둥은 그 직후 산산조각 나면서 우박처럼 떨어져내렸다.
땅에 박힌 얼음 조각들은 식물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닌 마법이다! 겁 먹지 마라!"
얼음 씨앗은 급속도로 자라나 잎이 무성한 얼음 나무가 되었다.
"죽어라!"
검을 휘두르며 돌진한 마족 병사가, 별안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놈은 당황하며 자신의 발목을 바라보았고, 그제야 얼음 나무 뿌리가 온몸을 결박한 것을 알아챘다.
"어, 어느새...!"
"이것 풀어라 이놈!"
"비겁한 자식!"
켈렌에게 가까이 다가온 병사들은 모두 얼음 나무 뿌리에 묶여버리고 말았다.
몸을 조금만 비틀면 부서져버릴 약한 결박이었지만, 마족 병사들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온몸에 스며드는 한기보다도 더욱 오싹한 켈렌의 마력이, 도저히 약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은 것이다.
강자를 늦게 알아차린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두 가지.
심기를 건드려 고통스럽게 죽거나, 최대한 비굴하게 조아려 편안한 죽음을 맞거나.
나무 뿌리에 얽매인 마족 병사들은 후자를, 그렇지 않은 병사들은 전자를 선택했다.
"감히 우리 동료를...!"
냉기에 몸이 조금 굳었을 뿐, 비교적 자유로운 병사들이 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구속 당한 병사들이 그들을 말리려 했으나 켈렌이 한 발 빨랐다.
전장으로 오기 전에 들렀던 마을에서 산 지팡이를 땅에 내리치자, 나무들이 우수수 흔들렸다.
작고 날카로운 얼음 나뭇잎들이 돌풍에 휩쓸려 허공을 날았다.
얼핏 보면 아릉다운 광경이었으나, 공중을 빠르게 가르는 흰 나뭇잎들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이윽고 돌풍이 멎자, 나무 뿌리에 묶여 있던 병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곤죽이 되어 있었다.
"크윽...!"
마족 병사들은 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의 마법사를 얕본 것은 자신들이었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하나 질문하겠다."
그때, 잔악무도한 학살을 저지른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속이려 들지 마라...! 마법사! 비록 전투에 패했을지라도 우린 긍지 높은-"
켈렌은 자신의 말을 끊은 마족 병사를 용서하지 않았다.
땅 속에서 얼음 나무 뿌리가 송곳처럼 튀어나와 건방진 포로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끅... 끄으윽...!"
"내가 질문의 답을 들을 때까지 이놈은 살아있을 거다. 동료의 편안한 죽음을 바란다면 빨리 대답해야겠지."
그러나 켈렌은 바로 질문하지 않았다.
건방진 마족 병사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까딱이며 서 있을 뿐.
"어서 질문해라! 끔찍한 인간 마법사!"
"......"
성질 급한 포로도 같은 벌을 받게 되었다.
나머지 포로들은 상황을 이해했는지 입을 굳게 다물고, 몸이 천천히 얼어가는 것을 힘겨워하며 버텼다.
이윽고 켈렌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 거점을 빼앗으면서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였나?"
"......"
"대답이 없군."
켈렌은 손가락을 하늘을 향해 까딱였다.
그러자 포로 하나가 또 꿰뚫렸다.
"잔인한 자식...!"
"네놈의 팔다리는 개들이 뜯어먹을 것이고 눈은 까마귀가, 내장은-"
"음."
남은 포로는 셋.
켈렌은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은 언제쯤 나오지?"
처음으로 머리통이 꿰뚫린 마족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명을 질렀다.
"...수백... 400마리 넘게..."
"흠. 많군. 다음 질문."
"......"
"왕좌는 주인이 생겼나?"
"아직이다. 마계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인간들의 침공으로 더욱 혼란스러워졌지."
"이 자식이 반말을."
남은 포로는 둘.
"인간 포로 중 중요한 인물이 있나?"
"...저흰 그저 전투 병력이라 잘 모릅니다만... 소문에는 황녀를 잡았다고..."
"그건 큰일이군. 마계의 총 병력은?"
"지금 제국에 들어와 있는 병력의 수십 배는... 더 됩니다. 정확한 수치는 병사들도 잘 모릅니다."
"친절하군."
켈렌은 손가락을 튕겨 성실히 대답해준 마족을 완전히 얼려버렸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으리라.
"마계의 주요 병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지?"
"흥. 마, 말할까 싶으냐. 나는 저, 절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다."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 그럼 고생 좀 하라고. 올 때까지."
켈렌은 그렇게 거점 하나를 완전히 탈환하고, 프라덴이 소속되어 있던 부대에 얼음 새를 보냈다.
첫 번째 목표였던 거점을 탈환했으니 이동하라고.
지휘관을 반 협박해 프라덴을 안내역으로 받은 지 1시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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