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2)
조회 : 381 추천 : 0 글자수 : 4,646 자 2024-03-19
두 번째 거점을 탈환할 때까지도 프라덴은 겁 먹은 채 거점 근처에서 얌전히 대기했다.
하지만 세 번째 거점을 탈환하러 갈 때는 거점 가장자리에서 구경을 했고, 네 번째 거점 탈환 때는 아예 켈렌 뒤에서 응원을 하기까지 했다.
"마법사 님! 끝내줬습니다! 그 마족 놈들이 토막나는 건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들도 존중 받아야 할 생명이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본인은 그런 생명을 고문해댔으면서?
프라덴은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원래 괴팍하니까!
"다음은 어딥니까? 팔라하다? 모르코텐?"
"여기가 오늘 탈환할 마지막 거점이다만."
"예? 어째섭니까? 적들은 당황했고 마법사 님은 압도적으로 강하신데 왜 진군을 멈추시는 겁니까?"
병사의 주장은 타당했다.
승기를 잡았을 때 머뭇거리면 전세가 역전되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과유불급,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했던가.
켈렌은 이 다음 거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가만히 느꼈다.
마족들이 죽어가면서까지 동료들에게 경고를 보낸 게 분명했다.
몹시 강대한 대비책이 준비되어 있으리라.
"다음 거점은 병사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
"에이, 여태 혼자서도 마구 돌파해내셨으면서..."
"피곤하고 배고프니까. 식량 좀 찾아오지?"
"...예."
프라덴은 입을 꾹 다물고는 거점 창고로 향했다.
본래 자신들이 사용하던 거점인지라 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식량도 거의 보존되어 있었다.
마족 병사들은 바로 습격 당하리란 생각을 전혀 안 했던 게 분명했다.
"콩 수프 통조림, 복숭아 통조림, 돼지고기 칠리 통조림, 건빵과 별사탕 정도가 있습니다."
"물과 건빵."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법은 대단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드시는 게..."
"그럼 물 대신 우유로. 우유와 건빵 한 주먹."
프라덴은 머뭇거리며 우유 한 통과 건빵 한 상자를 건넸다.
제국 빈곤층의 아침 식사로나 적합한 음식을 먹는 모습에, 프라덴은 새삼 자신을 돌아보았다.
콩 수프 통조림이 맛 없다고 걷어차고는 정작 전투가 일어나면 기력이 없어 싸우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
그에 비해 눈앞의 대단한 마법사는 건빵과 우유로 식사를 때우지 않는가.
사실 켈렌은 프라덴의 반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콩 수프는 비리고, 복숭아는 흐물거리고, 돼지고기 칠리는 고기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별사탕은 설탕 가루 수준이 아니던가.
그나마 먹기 좋은 것이라고는 건빵과 우유 정도였으니...
"아. 그러고 보니..."
"예? 말씀하십시오."
감동에 겨운 눈물을 흘리기 직전의 프라덴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켈렌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중요한 게 아니니 금방 넘어갔다.
"부대로 돌아가서 은밀한 침투가 특기인 병사 넷을 모아오도록."
"침투와 잠입... 같은 것입니까?"
"다음 거점은 사전 준비가 필요할 테니."
"알겠습니다! 지금 출발할까요?"
"그래주면 고맙겠군."
"옛!"
프라덴이 쏜살같이 사라지자, 켈렌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징징대다가 마법 몇 번 보여주고 거점 좀 빼앗으니까 조잘조잘 시끄러워지는 게 참 불편했던 것이다.
"다음부턴 말 없는 병사를 붙여달라고 해야겠군."
그리고 켈렌은 곧장 바루펠에게로 통하는 원거리음성전달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여어! 잘 들리나?"
"무, 무슨! 거길 혼자 쳐들어간 건가!"
*****
"...미친놈."
"내일은 모르코텐을 탈환할 생각이야."
"거긴 오늘만큼 쉽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병사 넷을 붙여달라고 했지."
"그 [스노우볼]을 시전할 생각인가?"
"뭐지? 심리 계열 마법이라도 익혔나? 어떻게 안 거지?"
"20분 동안 그거 하나만 자랑했으면서 기억 안 나나?"
켈렌과 바루펠은 밤 늦게까지 전략을 검토하고 계획을 세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 탓에 프라덴이 병사들과 돌아와 켈렌을 깨울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침투에 능하다며 데려온 병사들은 여전히 죽상이었다.
켈렌이 속임수를 써서 거점을 탈환했을 뿐, 도로 빼앗길 거라는 생각에 절망하고 있던 것이다.
"너희들이 못 봐서 그런 거라니까!"
프라덴이 열성적으로 켈렌을 변호했지만, 그들은 시큰둥했다.
마법사 하나가 마족 병사 수백 명을 홀로 무찌르고 거점을 탈환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상식 때문이었다.
"어휴. 너흰 보면 깜짝 놀란다 진짜로."
그리곤 프라덴은 기대돼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켈렌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무슨 마법을 보여줄지 못 기다리겠다는 듯.
"이걸 들고, 모르코텐으로 가지."
켈렌은 침투할 병사들에게 큰 얼음 덩어리를 건네주었다.
마력이 봉인된 얼음 덩어리는 켈렌의 마력 해방 없이는 차갑지도, 녹지도 않을 터.
"이걸 거점 동서남북으로 묻는다."
"...예?"
거점 가까이 다가가란 말에 병사들은 기겁했다.
켈렌이 여태 빼앗은 네 개의 거점과는 달리, 지금 탈환하려는 모르코텐은 마족 정예 병사들이 득시글거리는 주요 거점.
경비 병력도 수십 배에, 들켰다간 어찌 될지도 몰랐다.
포로나 노예 취급이면 다행이고, 최악의 경우엔 언데드가 되거나 마족들이 부리는 마물들의 먹이로 토막나서 버려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자네들을 불렀는데. 잠입에 정말 능하다고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요! 죽으란 말과 같지 않습니까!"
"저기 저 말 많은 친구도 똑같이 생각했지만 죽지 않았는데."
"아무튼 저희는 못 합니다! 모르코텐은 포기해야 합니다!"
켈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긴, 거점 여섯 개를 연달아 빼앗겼으니 패배감이 장난 아닐 테지.
하지만 켈렌에게도 방법은 있었다.
애초에 병사들이 켈렌의 말을 반쯤 오해해서 들었으니.
"누가 거점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나?"
"그게 아니면 뭡니까?"
"동서남북으로 두되, 그 안에 거점이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면적이 좁을수록 좋긴 하지만."
"그럼... 모르코텐에 가까이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면적이 좁을수록 좋긴 하지만."
병사들은 조금은 누그러진 표정으로 얼음 블럭을 바라보았다.
고작해야 작은 얼음 덩어리를 묻는 것만으로 거점을 탈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눈앞의 마법사는 하룻밤 사이에(사실은 그보다 빨리 끝냈다) 거점 네 개를 몽땅 탈환한 대단한 인물.
이 자를 믿지 않으면 믿을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이걸 사방에 묻는 걸로 저희 역할은 끝입니까?"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하는 거지? 아. 면적은 최대한 좁게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켈렌은 지금 당장 출발하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프라덴과 네 명의 병사들이 사라졌다.
*****
얼음 블럭을 들고 동쪽으로 향한 병사, 아슈톤은 궁시렁거렸다.
"그 마법사, 거점 몇 개 되찾았다고 너무 거만한 것 아닌가...?"
서쪽으로 향한 병사, 위블로도 중얼거렸다.
"하여간 괴팍하고 오만한 족속들이라니까."
남쪽으로 향한 병사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우릴 막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사지로 몰아넣다니."
프라덴과 함께 북쪽으로 향한 병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과연 어떤 대마법을 보여주실까."
"......"
"분명 엄청난 광경을 볼 수 있겠지."
"......"
켈렌은 자신의 마력을 한껏 담은 얼음 블럭들이 순조롭게 이동하는 것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았다.
넓게 펼친 마력망으로 그 모든 것을 감지하는 것에는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물론 만해태와룡의 물의 전당에서 수련한 켈렌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지만.
"음."
그래도 병사들은 켈렌을 존중했는지, 최대한 면적을 좁게 해서 얼음 블럭을 파묻었다.
문제는 그 후였다.
은밀한 작전 수행이 특기라던 이들이 마물을 달고 온 것이다.
"으아아악!"
"마법사 님! 마법사 님!!"
"살려주십시오!!"
다행히 모르코텐의 마족 경비병에게는 들키지 않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마물 하나가 쫓아온 것이었다.
거대한 늑대와 슬라임을 합쳐놓은 듯한 괴생명체는 꾸루룩거리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로 병사들을 쫓았다.
병사들은 재빨리 달려 켈렌을 지나치고, 거점 안쪽으로 후다닥 숨어들었다.
괴생명체는 놓친 병사들 대신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켈렌을 목표물로 삼았다.
"꾸루루룩! 꾸룩!"
위압적인 몸체로 깔아뭉개려는 마물을 향해, 켈렌이 차분히 손을 들어올렸다.
"얼어라."
켈렌의 말 한 마디에, 마물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진 변화에 병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경악했다.
슬라임 점액과 유기체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 마물이, 켈렌의 말 한 마디에 거대한 얼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저게... 마법사...?"
"미친..."
그리고 그들은 곧, 프라덴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세 번째 거점을 탈환하러 갈 때는 거점 가장자리에서 구경을 했고, 네 번째 거점 탈환 때는 아예 켈렌 뒤에서 응원을 하기까지 했다.
"마법사 님! 끝내줬습니다! 그 마족 놈들이 토막나는 건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들도 존중 받아야 할 생명이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본인은 그런 생명을 고문해댔으면서?
프라덴은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원래 괴팍하니까!
"다음은 어딥니까? 팔라하다? 모르코텐?"
"여기가 오늘 탈환할 마지막 거점이다만."
"예? 어째섭니까? 적들은 당황했고 마법사 님은 압도적으로 강하신데 왜 진군을 멈추시는 겁니까?"
병사의 주장은 타당했다.
승기를 잡았을 때 머뭇거리면 전세가 역전되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과유불급,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했던가.
켈렌은 이 다음 거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가만히 느꼈다.
마족들이 죽어가면서까지 동료들에게 경고를 보낸 게 분명했다.
몹시 강대한 대비책이 준비되어 있으리라.
"다음 거점은 병사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
"에이, 여태 혼자서도 마구 돌파해내셨으면서..."
"피곤하고 배고프니까. 식량 좀 찾아오지?"
"...예."
프라덴은 입을 꾹 다물고는 거점 창고로 향했다.
본래 자신들이 사용하던 거점인지라 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식량도 거의 보존되어 있었다.
마족 병사들은 바로 습격 당하리란 생각을 전혀 안 했던 게 분명했다.
"콩 수프 통조림, 복숭아 통조림, 돼지고기 칠리 통조림, 건빵과 별사탕 정도가 있습니다."
"물과 건빵."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법은 대단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드시는 게..."
"그럼 물 대신 우유로. 우유와 건빵 한 주먹."
프라덴은 머뭇거리며 우유 한 통과 건빵 한 상자를 건넸다.
제국 빈곤층의 아침 식사로나 적합한 음식을 먹는 모습에, 프라덴은 새삼 자신을 돌아보았다.
콩 수프 통조림이 맛 없다고 걷어차고는 정작 전투가 일어나면 기력이 없어 싸우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
그에 비해 눈앞의 대단한 마법사는 건빵과 우유로 식사를 때우지 않는가.
사실 켈렌은 프라덴의 반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콩 수프는 비리고, 복숭아는 흐물거리고, 돼지고기 칠리는 고기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별사탕은 설탕 가루 수준이 아니던가.
그나마 먹기 좋은 것이라고는 건빵과 우유 정도였으니...
"아. 그러고 보니..."
"예? 말씀하십시오."
감동에 겨운 눈물을 흘리기 직전의 프라덴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켈렌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중요한 게 아니니 금방 넘어갔다.
"부대로 돌아가서 은밀한 침투가 특기인 병사 넷을 모아오도록."
"침투와 잠입... 같은 것입니까?"
"다음 거점은 사전 준비가 필요할 테니."
"알겠습니다! 지금 출발할까요?"
"그래주면 고맙겠군."
"옛!"
프라덴이 쏜살같이 사라지자, 켈렌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징징대다가 마법 몇 번 보여주고 거점 좀 빼앗으니까 조잘조잘 시끄러워지는 게 참 불편했던 것이다.
"다음부턴 말 없는 병사를 붙여달라고 해야겠군."
그리고 켈렌은 곧장 바루펠에게로 통하는 원거리음성전달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여어! 잘 들리나?"
"무, 무슨! 거길 혼자 쳐들어간 건가!"
*****
"...미친놈."
"내일은 모르코텐을 탈환할 생각이야."
"거긴 오늘만큼 쉽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병사 넷을 붙여달라고 했지."
"그 [스노우볼]을 시전할 생각인가?"
"뭐지? 심리 계열 마법이라도 익혔나? 어떻게 안 거지?"
"20분 동안 그거 하나만 자랑했으면서 기억 안 나나?"
켈렌과 바루펠은 밤 늦게까지 전략을 검토하고 계획을 세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 탓에 프라덴이 병사들과 돌아와 켈렌을 깨울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침투에 능하다며 데려온 병사들은 여전히 죽상이었다.
켈렌이 속임수를 써서 거점을 탈환했을 뿐, 도로 빼앗길 거라는 생각에 절망하고 있던 것이다.
"너희들이 못 봐서 그런 거라니까!"
프라덴이 열성적으로 켈렌을 변호했지만, 그들은 시큰둥했다.
마법사 하나가 마족 병사 수백 명을 홀로 무찌르고 거점을 탈환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상식 때문이었다.
"어휴. 너흰 보면 깜짝 놀란다 진짜로."
그리곤 프라덴은 기대돼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켈렌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무슨 마법을 보여줄지 못 기다리겠다는 듯.
"이걸 들고, 모르코텐으로 가지."
켈렌은 침투할 병사들에게 큰 얼음 덩어리를 건네주었다.
마력이 봉인된 얼음 덩어리는 켈렌의 마력 해방 없이는 차갑지도, 녹지도 않을 터.
"이걸 거점 동서남북으로 묻는다."
"...예?"
거점 가까이 다가가란 말에 병사들은 기겁했다.
켈렌이 여태 빼앗은 네 개의 거점과는 달리, 지금 탈환하려는 모르코텐은 마족 정예 병사들이 득시글거리는 주요 거점.
경비 병력도 수십 배에, 들켰다간 어찌 될지도 몰랐다.
포로나 노예 취급이면 다행이고, 최악의 경우엔 언데드가 되거나 마족들이 부리는 마물들의 먹이로 토막나서 버려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자네들을 불렀는데. 잠입에 정말 능하다고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요! 죽으란 말과 같지 않습니까!"
"저기 저 말 많은 친구도 똑같이 생각했지만 죽지 않았는데."
"아무튼 저희는 못 합니다! 모르코텐은 포기해야 합니다!"
켈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긴, 거점 여섯 개를 연달아 빼앗겼으니 패배감이 장난 아닐 테지.
하지만 켈렌에게도 방법은 있었다.
애초에 병사들이 켈렌의 말을 반쯤 오해해서 들었으니.
"누가 거점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나?"
"그게 아니면 뭡니까?"
"동서남북으로 두되, 그 안에 거점이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면적이 좁을수록 좋긴 하지만."
"그럼... 모르코텐에 가까이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면적이 좁을수록 좋긴 하지만."
병사들은 조금은 누그러진 표정으로 얼음 블럭을 바라보았다.
고작해야 작은 얼음 덩어리를 묻는 것만으로 거점을 탈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눈앞의 마법사는 하룻밤 사이에(사실은 그보다 빨리 끝냈다) 거점 네 개를 몽땅 탈환한 대단한 인물.
이 자를 믿지 않으면 믿을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이걸 사방에 묻는 걸로 저희 역할은 끝입니까?"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하는 거지? 아. 면적은 최대한 좁게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켈렌은 지금 당장 출발하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프라덴과 네 명의 병사들이 사라졌다.
*****
얼음 블럭을 들고 동쪽으로 향한 병사, 아슈톤은 궁시렁거렸다.
"그 마법사, 거점 몇 개 되찾았다고 너무 거만한 것 아닌가...?"
서쪽으로 향한 병사, 위블로도 중얼거렸다.
"하여간 괴팍하고 오만한 족속들이라니까."
남쪽으로 향한 병사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우릴 막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사지로 몰아넣다니."
프라덴과 함께 북쪽으로 향한 병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과연 어떤 대마법을 보여주실까."
"......"
"분명 엄청난 광경을 볼 수 있겠지."
"......"
켈렌은 자신의 마력을 한껏 담은 얼음 블럭들이 순조롭게 이동하는 것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았다.
넓게 펼친 마력망으로 그 모든 것을 감지하는 것에는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물론 만해태와룡의 물의 전당에서 수련한 켈렌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지만.
"음."
그래도 병사들은 켈렌을 존중했는지, 최대한 면적을 좁게 해서 얼음 블럭을 파묻었다.
문제는 그 후였다.
은밀한 작전 수행이 특기라던 이들이 마물을 달고 온 것이다.
"으아아악!"
"마법사 님! 마법사 님!!"
"살려주십시오!!"
다행히 모르코텐의 마족 경비병에게는 들키지 않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마물 하나가 쫓아온 것이었다.
거대한 늑대와 슬라임을 합쳐놓은 듯한 괴생명체는 꾸루룩거리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로 병사들을 쫓았다.
병사들은 재빨리 달려 켈렌을 지나치고, 거점 안쪽으로 후다닥 숨어들었다.
괴생명체는 놓친 병사들 대신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켈렌을 목표물로 삼았다.
"꾸루루룩! 꾸룩!"
위압적인 몸체로 깔아뭉개려는 마물을 향해, 켈렌이 차분히 손을 들어올렸다.
"얼어라."
켈렌의 말 한 마디에, 마물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진 변화에 병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경악했다.
슬라임 점액과 유기체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 마물이, 켈렌의 말 한 마디에 거대한 얼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저게... 마법사...?"
"미친..."
그리고 그들은 곧, 프라덴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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