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3)
조회 : 289 추천 : 0 글자수 : 4,187 자 2024-03-31
쫑알거리는 다섯 명의 병사를 닥치게 만들고, 켈렌은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을 시켜 빼앗긴 거점 사방에 묻어둔 얼음 덩어리가 켈렌의 마력 감지망에 포착되었다.
"솟아라."
켈렌의 말 한 마디에 정확히 얼음이 묻힌 곳에서 거대한 얼음 기둥이 솟아났다.
병사들의 탄성이 귀를 어지럽혔지만, 켈렌은 마법에 집중했다.
"뻗어라."
얼음 기둥에서 수십 개의 가지가 돋아났다.
마족 병사들이 이변을 느끼고 거점 밖으로 나오자, 켈렌은 마지막 단계를 진행시켰다.
"빙해옥경氷海獄境."
얼음 기둥 안쪽의 지면이 바다처럼 일렁이더니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른바 '얼음 바다의 감옥'.
켈렌의 빙해옥경 내부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땅에는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마족 병사들은 물론이고 빼앗겼던 거점과 땅까지 전부 얼어붙기 시작했다.
추운 지역도 아니거니와, 눈이 쌓인 자연스러운 모습도 아닌 광경에 병사들은 모두 경악해선 입을 떡 벌렸다.
한참이 지나 마치 거대한 돔처럼 만들어진 빙해옥경은, 그 내부가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하게 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부터 푸른 냉기를 뿜어내는 가시 돋친 고슴도치 같은 모양새니 안쪽은 어떻겠는가.
병사들은 곁에 있는 대마법사가 아군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허나 켈렌이 병사들을 데리고 나온 건 단순히 심부름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거점을 빼앗았으니 최대한 빨리 재정비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부대로 돌아가도록. 모르코텐을 탈환했으니 와서 진지 건설을 다시 시작하라고 전해라."
"...옛!"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을 본 탓에 사고가 느려졌기 때문이리라.
켈렌이 여기서 아예 떠나버리면 모르코텐을 다시 빼앗기는 건 시간 문제일 터.
그 전에 보수를 마치고 설비를 갖춰야만 했다.
켈렌은 하늘로 솟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모르코텐이 주요 거점인 이유는 단지 마계와 가깝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형도 한 몫했다.
산과 계곡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탓에 적들이 침투하기 쉽고, 아군이 방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여길 지키도록."
켈렌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전사 셋을 모르코텐의 길목에 배치했다.
얼음 전사 하나가 마족 병사 열을 해치울 수 있으니, 공격을 받으면 켈렌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얼마나 밀려 내려온 건지..."
켈렌은 문득 앞으로 몇 군데의 거점을 빼앗아야 하는 건지 깨닫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초부터 불리한 싸움이었고, 그만큼 제국은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마족 병사 하나를 죽일 때 인간 병사가 적어도 셋, 많으면 다섯이 죽는다.
마물이나 공성 병기, 정예 병사를 상대로 하면 희생자 수는 훨씬 많아졌다.
켈렌이 마왕 토벌을 위해 마계로 떠났을 때 해치운 마족들을 빼고도 이 모양이니...
"그 병력까지 추가로 도달했으면 제국은 확실히 망했겠군. 거기까지 생각한 건가. 그럼에도 승산은 거의 없다시피 할 텐데."
켈렌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황궁의 흑막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결국은 그 점쟁이, 테와의 손에서 모두가 놀아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켈렌은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냈다.
지금도 제국 병사들이 각지에서 상처 입고 죽어나간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후. 다음은 어디지?"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보던 켈렌은, 문득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다.
마계의 병력은 계속해서 남하해오고 있으니, 그 허리를 끊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켈렌을 잡기 위해 남하했던 마계 병력이 다시 북상하면 그만큼 제국은 시간을 벌게 된다.
시간을 벌기 위해 적진 한가운데 뛰어든다는 것.
어떻게 보면 켈렌의 장엄한 희생이지만...
켈렌은 아예 위쪽으로 침투해 전부 쓸어버릴 계획이었다.
어차피 정예 병력들은 마왕 토벌 때 모두 쓸어버렸다.
이제는 마왕의 좌를 노리는 마계 귀족들이 따로 모은 군대만이 남아있을 터.
켈렌을 압도할 실력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국은 일주일 넘게 재정비가 가능해진다.
혹여 위험해지면 도로 제국으로 돌아오면 되니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켈렌은 바루펠에게 얼음 새를 날렸다.
녀석이 메가눔 요새에 도착해 바루펠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순간에 켈렌은 이미 마계 정중앙에 들어가 있을 터.
켈렌은 사고 치기 직전의 악당 같은 표정으로, 얼음 마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근접 공격은 켈렌이 직접 방어한다고 쳐도, 화살과 마법이 집중될 테니 꽤 신경 써서 준비해야 했다.
"음... 여기가 모르코텐이니까..."
마차를 적당히 만들어낸 켈렌은 바루펠 대신 복사한 지도를 펼쳐들고 바라보았다.
제국 측의 주요 거점들이 세밀히 표시된 기밀 지도.
켈렌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지도에 선을 그으며 머리를 굴렸다.
어디로 가야 가장 효과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을까?
결론은 금방 나왔다.
모르코텐 북쪽의 슈르호칸 산맥을 넘으면 마계와 제국의 경계 지점이 나온다.
아마 그곳에서 첫 전투가 벌어지게 될 터.
어쩌면 슈르호칸 산맥에 마계 병사들이 매복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기가 최적의 경로겠군."
다른 곳은 전투가 서너 번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이 되었으니, 한 번이면 충분히 괜찮은 선택지였다.
"가자."
얼음 지도를 역소환 시킨 후, 켈렌은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미끄러지듯 빠르게 움직이며 슈르호칸으로 향했다.
*****
슈르호칸 산맥의 슈로칸 산 정상.
켈렌은 찬 공기를 쐬며 명상을 하고 있었다.
얼음 심장의 박동이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끼며, 켈렌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산맥 여기저기로 뿌려놓은 얼음 요정들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적들이 어디에 매복했는지, 이쪽으로 향해오는 자는 몇인지 등등.
그리고 켈렌은 산맥 전체에 마법을 준비중이었다.
빙설신룡, 프리나를 소환해 그녀의 보조를 통해 시전하는 대규모 빙결 마법.
"근데... 내가 막 전쟁 같은 거에 사사로이 힘 쓰면 안 되는데..."
"미안해. 앞으로 이런 일에는 안 부를게. 그냥... 보고 싶기도 해서..."
"힘낼게! 보고 싶으면 다음에도 또 불러! 엄마한텐 내가 둘러댈 테니까!"
켈렌은 약간의 죄책감과 약간의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켈렌이 바라보는 하늘에는 옅은 푸른색의 마법진이 서서히 그려지고 있었다.
적들이 그것을 발견한 순간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마법 시전까지 몇 초가 채 안 남은 시점이었으니.
"내려라. 설파雪播의 기."
켈렌의 나지막한 주문과 동시에, 하늘에선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은 점점 푸르게 변했고, 얼음 요정들은 적들의 행군 속도가 빨라졌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점차 가루눈에서 함박눈이 되고, 산들바람이 돌풍이 되었으며, 우박과 빗방울이 섞여 최악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보기 드물게 맑고 화창하던 날씨는 먹구름이 해를 가려 밤과 같이 되었고, 기온은 급강하했다.
구름 위에선 빙설신룡의 실루엣이 비쳐 보이고, 구름 아래에선 대마법사의 마력이 소용돌이 치니, 마족 병사들은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요주의 인물이 산맥을 넘는다길래 잡으려고 매복했으나, 요주의 인물인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혼자 산맥에 도전한다는 점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
켈렌이 손가락을 튕기자, 눈보라는 더욱 거세지다가 어느 시점에서 서서히 멎어들었다.
빙설신룡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하늘에서 내려왔고, 켈렌의 옆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팔을 촉수처럼 뻗어 켈렌의 머리를 노리려던 마족 병사들이 꽁꽁 얼어붙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
풀꽃이고 잡초고 전부 얼어버려 마치 설산처럼 보이는 슈로칸 산.
무엇 하나 켈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참 무서운 건 인간이란 말이지."
"어쩌겠어. 인간이란 이런 생물이지. 이기적이고, 서로 대립하고. 쓸모없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그래서 인간이 재밌다고 한 걸까."
"어쩌면."
켈렌이 자신의 지척까지 접근한 마족 병사의 팔을 톡 건드리자, 세심히 쌓은 돌탑이 무너지듯 부서져 버렸다.
산의 모든 것이 얼어버릴 정도의 대마법이었으니 살아남은 게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슈로칸 산은 통째로 얼어버렸고, 잠복하던 마족 병사들도 무력화되었으니 켈렌을 막을 존재는 없다.
그렇게 켈렌은 마계로 전진했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병사들을 시켜 빼앗긴 거점 사방에 묻어둔 얼음 덩어리가 켈렌의 마력 감지망에 포착되었다.
"솟아라."
켈렌의 말 한 마디에 정확히 얼음이 묻힌 곳에서 거대한 얼음 기둥이 솟아났다.
병사들의 탄성이 귀를 어지럽혔지만, 켈렌은 마법에 집중했다.
"뻗어라."
얼음 기둥에서 수십 개의 가지가 돋아났다.
마족 병사들이 이변을 느끼고 거점 밖으로 나오자, 켈렌은 마지막 단계를 진행시켰다.
"빙해옥경氷海獄境."
얼음 기둥 안쪽의 지면이 바다처럼 일렁이더니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른바 '얼음 바다의 감옥'.
켈렌의 빙해옥경 내부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땅에는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마족 병사들은 물론이고 빼앗겼던 거점과 땅까지 전부 얼어붙기 시작했다.
추운 지역도 아니거니와, 눈이 쌓인 자연스러운 모습도 아닌 광경에 병사들은 모두 경악해선 입을 떡 벌렸다.
한참이 지나 마치 거대한 돔처럼 만들어진 빙해옥경은, 그 내부가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하게 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부터 푸른 냉기를 뿜어내는 가시 돋친 고슴도치 같은 모양새니 안쪽은 어떻겠는가.
병사들은 곁에 있는 대마법사가 아군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허나 켈렌이 병사들을 데리고 나온 건 단순히 심부름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거점을 빼앗았으니 최대한 빨리 재정비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부대로 돌아가도록. 모르코텐을 탈환했으니 와서 진지 건설을 다시 시작하라고 전해라."
"...옛!"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을 본 탓에 사고가 느려졌기 때문이리라.
켈렌이 여기서 아예 떠나버리면 모르코텐을 다시 빼앗기는 건 시간 문제일 터.
그 전에 보수를 마치고 설비를 갖춰야만 했다.
켈렌은 하늘로 솟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모르코텐이 주요 거점인 이유는 단지 마계와 가깝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형도 한 몫했다.
산과 계곡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탓에 적들이 침투하기 쉽고, 아군이 방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여길 지키도록."
켈렌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전사 셋을 모르코텐의 길목에 배치했다.
얼음 전사 하나가 마족 병사 열을 해치울 수 있으니, 공격을 받으면 켈렌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얼마나 밀려 내려온 건지..."
켈렌은 문득 앞으로 몇 군데의 거점을 빼앗아야 하는 건지 깨닫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초부터 불리한 싸움이었고, 그만큼 제국은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마족 병사 하나를 죽일 때 인간 병사가 적어도 셋, 많으면 다섯이 죽는다.
마물이나 공성 병기, 정예 병사를 상대로 하면 희생자 수는 훨씬 많아졌다.
켈렌이 마왕 토벌을 위해 마계로 떠났을 때 해치운 마족들을 빼고도 이 모양이니...
"그 병력까지 추가로 도달했으면 제국은 확실히 망했겠군. 거기까지 생각한 건가. 그럼에도 승산은 거의 없다시피 할 텐데."
켈렌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황궁의 흑막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결국은 그 점쟁이, 테와의 손에서 모두가 놀아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켈렌은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냈다.
지금도 제국 병사들이 각지에서 상처 입고 죽어나간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후. 다음은 어디지?"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보던 켈렌은, 문득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다.
마계의 병력은 계속해서 남하해오고 있으니, 그 허리를 끊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켈렌을 잡기 위해 남하했던 마계 병력이 다시 북상하면 그만큼 제국은 시간을 벌게 된다.
시간을 벌기 위해 적진 한가운데 뛰어든다는 것.
어떻게 보면 켈렌의 장엄한 희생이지만...
켈렌은 아예 위쪽으로 침투해 전부 쓸어버릴 계획이었다.
어차피 정예 병력들은 마왕 토벌 때 모두 쓸어버렸다.
이제는 마왕의 좌를 노리는 마계 귀족들이 따로 모은 군대만이 남아있을 터.
켈렌을 압도할 실력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국은 일주일 넘게 재정비가 가능해진다.
혹여 위험해지면 도로 제국으로 돌아오면 되니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켈렌은 바루펠에게 얼음 새를 날렸다.
녀석이 메가눔 요새에 도착해 바루펠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순간에 켈렌은 이미 마계 정중앙에 들어가 있을 터.
켈렌은 사고 치기 직전의 악당 같은 표정으로, 얼음 마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근접 공격은 켈렌이 직접 방어한다고 쳐도, 화살과 마법이 집중될 테니 꽤 신경 써서 준비해야 했다.
"음... 여기가 모르코텐이니까..."
마차를 적당히 만들어낸 켈렌은 바루펠 대신 복사한 지도를 펼쳐들고 바라보았다.
제국 측의 주요 거점들이 세밀히 표시된 기밀 지도.
켈렌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지도에 선을 그으며 머리를 굴렸다.
어디로 가야 가장 효과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을까?
결론은 금방 나왔다.
모르코텐 북쪽의 슈르호칸 산맥을 넘으면 마계와 제국의 경계 지점이 나온다.
아마 그곳에서 첫 전투가 벌어지게 될 터.
어쩌면 슈르호칸 산맥에 마계 병사들이 매복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기가 최적의 경로겠군."
다른 곳은 전투가 서너 번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이 되었으니, 한 번이면 충분히 괜찮은 선택지였다.
"가자."
얼음 지도를 역소환 시킨 후, 켈렌은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미끄러지듯 빠르게 움직이며 슈르호칸으로 향했다.
*****
슈르호칸 산맥의 슈로칸 산 정상.
켈렌은 찬 공기를 쐬며 명상을 하고 있었다.
얼음 심장의 박동이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끼며, 켈렌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산맥 여기저기로 뿌려놓은 얼음 요정들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적들이 어디에 매복했는지, 이쪽으로 향해오는 자는 몇인지 등등.
그리고 켈렌은 산맥 전체에 마법을 준비중이었다.
빙설신룡, 프리나를 소환해 그녀의 보조를 통해 시전하는 대규모 빙결 마법.
"근데... 내가 막 전쟁 같은 거에 사사로이 힘 쓰면 안 되는데..."
"미안해. 앞으로 이런 일에는 안 부를게. 그냥... 보고 싶기도 해서..."
"힘낼게! 보고 싶으면 다음에도 또 불러! 엄마한텐 내가 둘러댈 테니까!"
켈렌은 약간의 죄책감과 약간의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켈렌이 바라보는 하늘에는 옅은 푸른색의 마법진이 서서히 그려지고 있었다.
적들이 그것을 발견한 순간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마법 시전까지 몇 초가 채 안 남은 시점이었으니.
"내려라. 설파雪播의 기."
켈렌의 나지막한 주문과 동시에, 하늘에선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은 점점 푸르게 변했고, 얼음 요정들은 적들의 행군 속도가 빨라졌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점차 가루눈에서 함박눈이 되고, 산들바람이 돌풍이 되었으며, 우박과 빗방울이 섞여 최악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보기 드물게 맑고 화창하던 날씨는 먹구름이 해를 가려 밤과 같이 되었고, 기온은 급강하했다.
구름 위에선 빙설신룡의 실루엣이 비쳐 보이고, 구름 아래에선 대마법사의 마력이 소용돌이 치니, 마족 병사들은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요주의 인물이 산맥을 넘는다길래 잡으려고 매복했으나, 요주의 인물인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혼자 산맥에 도전한다는 점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
켈렌이 손가락을 튕기자, 눈보라는 더욱 거세지다가 어느 시점에서 서서히 멎어들었다.
빙설신룡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하늘에서 내려왔고, 켈렌의 옆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팔을 촉수처럼 뻗어 켈렌의 머리를 노리려던 마족 병사들이 꽁꽁 얼어붙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
풀꽃이고 잡초고 전부 얼어버려 마치 설산처럼 보이는 슈로칸 산.
무엇 하나 켈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참 무서운 건 인간이란 말이지."
"어쩌겠어. 인간이란 이런 생물이지. 이기적이고, 서로 대립하고. 쓸모없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그래서 인간이 재밌다고 한 걸까."
"어쩌면."
켈렌이 자신의 지척까지 접근한 마족 병사의 팔을 톡 건드리자, 세심히 쌓은 돌탑이 무너지듯 부서져 버렸다.
산의 모든 것이 얼어버릴 정도의 대마법이었으니 살아남은 게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슈로칸 산은 통째로 얼어버렸고, 잠복하던 마족 병사들도 무력화되었으니 켈렌을 막을 존재는 없다.
그렇게 켈렌은 마계로 전진했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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