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 정벌(3)
조회 : 165 추천 : 0 글자수 : 4,709 자 2024-04-26
꿰뚫어보는 자, 인페네라토는 단념했다.
그의 의중을 떠보거나, 발밑에 엎드려도 목숨은 날아간다.
그러니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는 수밖에.
발악하는 자, 인푸르사니아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의 이명에 걸맞은 행동이란 목숨 구걸이 아닌, 최후의 발악이었으니.
"너희 둘은 무슨 재주를 보여주려나?"
켈렌이 마력을 모으자 손에 서리가 끼며, 서늘한 냉기가 두 귀족의 발목을 감쌌다.
"나의 힘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나니, 적을 섬멸하라."
인페네라토는 양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우더니, 모든 마력을 일시에 방출했다.
그 마력은 인페네라토의 손 앞에 모여 압축되었고, 하나의 마법으로 벼려지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마법에 담긴 마력치고는 막대한 양.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도 켈렌은 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그를 본 인푸르사니아는 묘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그를 죽인다는 통쾌함.
건방진 태도에 느껴지는 짜증.
저 무시무시한 공격을 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어째선지 저것조차 받아낼지도 모른다는 우려심.
"관통멸살상경광貫通滅殺狀景光."
인페네라토의 최후의 비기가 완성되어, 눈 깜짝할 사이 켈렌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켈렌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 순간 인페네라토와 인푸르사스는 보았다.
너무나도 맑고 투명하여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뭔가가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산혼환사散混換斜의 빙하방진경氷河防辰鏡"
흩트리고 섞어 바꾸고 빗겨나게 하여 공격을 막아내는 얼음과 물로 이루어진 용의 거울.
아무리 강대한 마계 귀족의 온 힘을 쏟은 공격이라 할지라도, 두 정령왕의 힘이 깃든 마법까지도 뚫을 수는 없었다.
인페네라토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빛'은 물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둥그런 거울에 마구 뒤섞이고 흔들려, 분산되어 사라졌다.
"말...같지도...않은...!"
"몹시 강한 빛은 거울을 깨부수고 뚫는다지만, 네 빛은 그 정돈 아니었나보군."
"커헉...!"
"물론 이쪽도 평범한 거울은 아니었지만."
마력을 몽땅 방출한 채 겨우 서 있던 인페네라토조차 얼음창에 찔려 쓰러지는 것을 보자, 인푸르사니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놈...!"
"이명에 어울리는 상황이네. 한 번 해봐."
"...!! 내 이명을... 우리의 이명을 알고 있었나?"
"당연히.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쓸만한 정보원은 너희만 데리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
인푸르사스는 입술을 짓씹었다.
눈앞의 적은 단순한 인간 마법사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자신들, 귀족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마계에 온 것인가...!
"전의를 잃은 건가?"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인푸르사스 또한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인푸르사스의 마력이 점차 짙어지더니, 곧이어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영역 개방과 비슷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마력으로 공간을 덮어버렸다.
거대한 마력의 압박에 상대는 완전히 위축되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으리라.
그러나 인푸르사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마계 귀족들을 몽땅 쓸어버린 괴물 마법사다.
움직임 봉쇄는커녕 마력 억압조차 불가능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니...
"죽어라!"
상대가 방심할 때 친다!
인푸르사스는 온몸에 흐르는 마력의 파동을 느끼며 켈렌을 향해 돌진했다.
온몸을 불사르며 적을 향해 내던지는 완전한 마력의 격류.
희생으로써 완성되는 마지막 발악!
켈렌은 급히 몇 겹의 방어마법을 더 준비했으나, 마계 귀족의 온 힘이 실린, 그것도 마법이 아닌 순수한 마력의 충돌은 예상 외의 위력을 냈다.
인페네라토의 '관통멸살상경광貫通滅殺狀景光'은 마법이었기에 그 구성과 구조를 파악하면 대처가 쉽다.
켈렌은 인페네라토의 체내 마력 회로를 분석해 미리 마법을 준비해뒀을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카운터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그러나 마력 충돌은 다르다.
마법은 잘 훈련 받은 기사의 검술이고, 마력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원시적인 움직임에 가깝다고 할까.
물론 때때로, 후자가 훨씬 위력적일 수도 있었다.
기사의 검법과 거인의 몽둥이질 중 무엇이 더욱 위협적이겠는가.
같은 기사 입장이라면 검술은 대처할 방법이 많다.
맞받아치거나 흘려보내거나,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있다.
그러나 거인이 나무를 뽑아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상황에 놓인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방패를 들어올리는 것밖에는 없다.
켈렌이 맞은 인푸르사스의 마력도 그와 마찬가지.
일반적인 마력이라면 맞부딪혀서 상쇄시키거나, 아예 흡수해버릴 수도 있을 터.
그러나 안타깝게도 켈렌이 맞게 된 건 질과 양 모두 일반적일 수 없는 마력 격류였다.
마계 귀족이 자신의 육신뿐만 아니라 생명력까지 마력으로 불태워버린, 온전한 인푸르사스의 전력.
"크...윽...!!"
켈렌은 방어 마법이 벌어준 단 몇 초 안에 강화한 마력을 온몸에 두르고, 신체와 마력 회로를 보강하고, 마력 분산 마법진을 수십 개나 연성했다.
그럼에도 격류 충돌은 엄청난 위력으로 켈렌을 덮쳐왔다.
마치 진짜 거인의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켈렌은 굉음과 함께 날아가 바위에 처박혔다.
그 바위도 끝나지 않은 마력 격류에 박살이 났고, 켈렌은 계속해서 지면에 부딪히며 멀리 밀려났다.
이윽고 켈렌을 거칠게 몰아붙이던 마력 폭풍이 멎고, 켈렌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일어섰다.
마력 회로도 절반이 망가지고 뒤틀린 데다가 정령화가 일어나고 있는 탓에 피해는 더 심각했다.
왼쪽 눈의 시야는 붉게 물들었고, 오른쪽 눈은 뿌옇게 흐려졌다.
왼쪽 팔은 분쇄골절, 오른쪽 다리는 아예 감각이 없었다.
어차피 얼음으로 재구성하면 된다지만, 마력 격류로부터 몸을 지키는 데에 마력을 몽땅 끌어다 쓴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예비 마력원을 마련해둬서 망정이지..."
켈렌은 폐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며 황무지 한 가운데에 드러누웠다.
몇 분 정도면 마력 회로는 고쳐질 것이다.
회로만 고쳐지면... 몸을 회복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고작해야... 1분 정도일까.
켈렌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잔뜩 박혀 반짝이는 밤하늘이 심신 안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길 바라며.
그러나 켈렌은 곧 그의 불운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기는 개뿔.
오히려 악화시키리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젠장...!"
별빛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저 반짝이는 것들이 별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별을 따르는 자, 콰사로스...!"
켈렌은 자신이 놓친 적을 떠올리고는 흠칫했다.
조용히 밤하늘에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인가.
멀리 떨어진 곳에 별빛 하나가 추락해 굉음을 냈다.
그 직후 폭발음이 한 번 더 들려왔다.
첫 번째 별빛보다 가까운 곳에 두 번째 별빛이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폭발음.
공기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켈렌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의 회복은커녕 마력 회로조차 회복을 마치지 못한 탓에, 켈렌은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얼음으로 구성된 신체가 녹고 부서진 탓이었다.
"......"
켈렌은 재빨리 빙설신룡을 소환했다.
정령계에서 켈렌의 연락만을 기다리던 프리나는 소환되자마자 켈렌을 꼭 껴안았다.
"왜 이렇게 늦었...!"
그러나 프리나는 위기를 깨닫고, 켈렌에게 마력을 양껏 불어넣어준 뒤, 방어막을 급조했다.
몇 초의 정적.
방어막을 때리는 별빛, 그리고 폭발.
켈렌은 프리나의 걱정 어린 시선을 마주보고는 살짝 웃었다.
괜찮다는 표현이었지만, 아직 인간을 잘 모르는 어린 빙설신룡을 더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해쳤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존재가 있겠냐마는.
켈렌은 콰사로스의 기습을 눈치챘을 때보다 더 큰 위기감을 느꼈다.
"프...리나... 안돼...!"
인간계와 마계의 싸움이다.
정령계의 거대한 존재가 끼게 되면 피해는 더욱 커지고, 명분도 없을 뿐더러 법칙에 어긋난다.
게다가 만해태와룡, 물의 여제 또한 켈렌에게 신신당부한 사실이 있지 않은가.
빙설신룡은 정령왕이지만 아직 생각이 어려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켈렌을 돕는 것만으로도 개입이라 판단될 여지가 있었다.
심지어는 켈렌의 적을 공격한다니.
단순히 변덕으로 치부될 문제는 아니었다.
"왜? 저게 널 다치게 했잖아!"
"아냐... 넌... 개입하면 안돼..."
"......"
"내가... 해결할게..."
켈렌은 손을 뻗었고, 빙설신룡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그 손을 잡아주었다.
켈렌은 미안한 표정으로 프리나에게서 마력을 흡수해 가져갔고, 회로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
프리나는 마력을 빼앗기면서도 미소를 지은 채로 켈렌의 몸 곳곳에 치유 마법을 걸어주었다.
*****
이윽고 지상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자행한 콰사로스가 밤하늘 장막 아래로 내려왔다.
그의 시야에는 온통 난장판이 된 황무지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런.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렸나. 안타깝게 됐군. 카웨다르푸스에게 말했으면 좋은 병사로 만들었을 텐데."
"카웨다르푸스가 누구지?"
콰사로스는 뒷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살아있으리라고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존재의 얼음검이 닿았기 때문이다.
그의 의중을 떠보거나, 발밑에 엎드려도 목숨은 날아간다.
그러니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는 수밖에.
발악하는 자, 인푸르사니아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의 이명에 걸맞은 행동이란 목숨 구걸이 아닌, 최후의 발악이었으니.
"너희 둘은 무슨 재주를 보여주려나?"
켈렌이 마력을 모으자 손에 서리가 끼며, 서늘한 냉기가 두 귀족의 발목을 감쌌다.
"나의 힘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나니, 적을 섬멸하라."
인페네라토는 양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우더니, 모든 마력을 일시에 방출했다.
그 마력은 인페네라토의 손 앞에 모여 압축되었고, 하나의 마법으로 벼려지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마법에 담긴 마력치고는 막대한 양.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도 켈렌은 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그를 본 인푸르사니아는 묘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그를 죽인다는 통쾌함.
건방진 태도에 느껴지는 짜증.
저 무시무시한 공격을 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어째선지 저것조차 받아낼지도 모른다는 우려심.
"관통멸살상경광貫通滅殺狀景光."
인페네라토의 최후의 비기가 완성되어, 눈 깜짝할 사이 켈렌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켈렌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 순간 인페네라토와 인푸르사스는 보았다.
너무나도 맑고 투명하여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뭔가가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산혼환사散混換斜의 빙하방진경氷河防辰鏡"
흩트리고 섞어 바꾸고 빗겨나게 하여 공격을 막아내는 얼음과 물로 이루어진 용의 거울.
아무리 강대한 마계 귀족의 온 힘을 쏟은 공격이라 할지라도, 두 정령왕의 힘이 깃든 마법까지도 뚫을 수는 없었다.
인페네라토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빛'은 물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둥그런 거울에 마구 뒤섞이고 흔들려, 분산되어 사라졌다.
"말...같지도...않은...!"
"몹시 강한 빛은 거울을 깨부수고 뚫는다지만, 네 빛은 그 정돈 아니었나보군."
"커헉...!"
"물론 이쪽도 평범한 거울은 아니었지만."
마력을 몽땅 방출한 채 겨우 서 있던 인페네라토조차 얼음창에 찔려 쓰러지는 것을 보자, 인푸르사니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놈...!"
"이명에 어울리는 상황이네. 한 번 해봐."
"...!! 내 이명을... 우리의 이명을 알고 있었나?"
"당연히.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쓸만한 정보원은 너희만 데리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
인푸르사스는 입술을 짓씹었다.
눈앞의 적은 단순한 인간 마법사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자신들, 귀족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마계에 온 것인가...!
"전의를 잃은 건가?"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인푸르사스 또한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인푸르사스의 마력이 점차 짙어지더니, 곧이어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영역 개방과 비슷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마력으로 공간을 덮어버렸다.
거대한 마력의 압박에 상대는 완전히 위축되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으리라.
그러나 인푸르사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마계 귀족들을 몽땅 쓸어버린 괴물 마법사다.
움직임 봉쇄는커녕 마력 억압조차 불가능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니...
"죽어라!"
상대가 방심할 때 친다!
인푸르사스는 온몸에 흐르는 마력의 파동을 느끼며 켈렌을 향해 돌진했다.
온몸을 불사르며 적을 향해 내던지는 완전한 마력의 격류.
희생으로써 완성되는 마지막 발악!
켈렌은 급히 몇 겹의 방어마법을 더 준비했으나, 마계 귀족의 온 힘이 실린, 그것도 마법이 아닌 순수한 마력의 충돌은 예상 외의 위력을 냈다.
인페네라토의 '관통멸살상경광貫通滅殺狀景光'은 마법이었기에 그 구성과 구조를 파악하면 대처가 쉽다.
켈렌은 인페네라토의 체내 마력 회로를 분석해 미리 마법을 준비해뒀을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카운터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그러나 마력 충돌은 다르다.
마법은 잘 훈련 받은 기사의 검술이고, 마력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원시적인 움직임에 가깝다고 할까.
물론 때때로, 후자가 훨씬 위력적일 수도 있었다.
기사의 검법과 거인의 몽둥이질 중 무엇이 더욱 위협적이겠는가.
같은 기사 입장이라면 검술은 대처할 방법이 많다.
맞받아치거나 흘려보내거나,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있다.
그러나 거인이 나무를 뽑아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상황에 놓인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방패를 들어올리는 것밖에는 없다.
켈렌이 맞은 인푸르사스의 마력도 그와 마찬가지.
일반적인 마력이라면 맞부딪혀서 상쇄시키거나, 아예 흡수해버릴 수도 있을 터.
그러나 안타깝게도 켈렌이 맞게 된 건 질과 양 모두 일반적일 수 없는 마력 격류였다.
마계 귀족이 자신의 육신뿐만 아니라 생명력까지 마력으로 불태워버린, 온전한 인푸르사스의 전력.
"크...윽...!!"
켈렌은 방어 마법이 벌어준 단 몇 초 안에 강화한 마력을 온몸에 두르고, 신체와 마력 회로를 보강하고, 마력 분산 마법진을 수십 개나 연성했다.
그럼에도 격류 충돌은 엄청난 위력으로 켈렌을 덮쳐왔다.
마치 진짜 거인의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켈렌은 굉음과 함께 날아가 바위에 처박혔다.
그 바위도 끝나지 않은 마력 격류에 박살이 났고, 켈렌은 계속해서 지면에 부딪히며 멀리 밀려났다.
이윽고 켈렌을 거칠게 몰아붙이던 마력 폭풍이 멎고, 켈렌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일어섰다.
마력 회로도 절반이 망가지고 뒤틀린 데다가 정령화가 일어나고 있는 탓에 피해는 더 심각했다.
왼쪽 눈의 시야는 붉게 물들었고, 오른쪽 눈은 뿌옇게 흐려졌다.
왼쪽 팔은 분쇄골절, 오른쪽 다리는 아예 감각이 없었다.
어차피 얼음으로 재구성하면 된다지만, 마력 격류로부터 몸을 지키는 데에 마력을 몽땅 끌어다 쓴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예비 마력원을 마련해둬서 망정이지..."
켈렌은 폐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며 황무지 한 가운데에 드러누웠다.
몇 분 정도면 마력 회로는 고쳐질 것이다.
회로만 고쳐지면... 몸을 회복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고작해야... 1분 정도일까.
켈렌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잔뜩 박혀 반짝이는 밤하늘이 심신 안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길 바라며.
그러나 켈렌은 곧 그의 불운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기는 개뿔.
오히려 악화시키리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젠장...!"
별빛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저 반짝이는 것들이 별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별을 따르는 자, 콰사로스...!"
켈렌은 자신이 놓친 적을 떠올리고는 흠칫했다.
조용히 밤하늘에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인가.
멀리 떨어진 곳에 별빛 하나가 추락해 굉음을 냈다.
그 직후 폭발음이 한 번 더 들려왔다.
첫 번째 별빛보다 가까운 곳에 두 번째 별빛이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폭발음.
공기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켈렌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의 회복은커녕 마력 회로조차 회복을 마치지 못한 탓에, 켈렌은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얼음으로 구성된 신체가 녹고 부서진 탓이었다.
"......"
켈렌은 재빨리 빙설신룡을 소환했다.
정령계에서 켈렌의 연락만을 기다리던 프리나는 소환되자마자 켈렌을 꼭 껴안았다.
"왜 이렇게 늦었...!"
그러나 프리나는 위기를 깨닫고, 켈렌에게 마력을 양껏 불어넣어준 뒤, 방어막을 급조했다.
몇 초의 정적.
방어막을 때리는 별빛, 그리고 폭발.
켈렌은 프리나의 걱정 어린 시선을 마주보고는 살짝 웃었다.
괜찮다는 표현이었지만, 아직 인간을 잘 모르는 어린 빙설신룡을 더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해쳤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존재가 있겠냐마는.
켈렌은 콰사로스의 기습을 눈치챘을 때보다 더 큰 위기감을 느꼈다.
"프...리나... 안돼...!"
인간계와 마계의 싸움이다.
정령계의 거대한 존재가 끼게 되면 피해는 더욱 커지고, 명분도 없을 뿐더러 법칙에 어긋난다.
게다가 만해태와룡, 물의 여제 또한 켈렌에게 신신당부한 사실이 있지 않은가.
빙설신룡은 정령왕이지만 아직 생각이 어려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켈렌을 돕는 것만으로도 개입이라 판단될 여지가 있었다.
심지어는 켈렌의 적을 공격한다니.
단순히 변덕으로 치부될 문제는 아니었다.
"왜? 저게 널 다치게 했잖아!"
"아냐... 넌... 개입하면 안돼..."
"......"
"내가... 해결할게..."
켈렌은 손을 뻗었고, 빙설신룡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그 손을 잡아주었다.
켈렌은 미안한 표정으로 프리나에게서 마력을 흡수해 가져갔고, 회로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
프리나는 마력을 빼앗기면서도 미소를 지은 채로 켈렌의 몸 곳곳에 치유 마법을 걸어주었다.
*****
이윽고 지상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자행한 콰사로스가 밤하늘 장막 아래로 내려왔다.
그의 시야에는 온통 난장판이 된 황무지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런.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렸나. 안타깝게 됐군. 카웨다르푸스에게 말했으면 좋은 병사로 만들었을 텐데."
"카웨다르푸스가 누구지?"
콰사로스는 뒷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살아있으리라고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존재의 얼음검이 닿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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