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2부] 썩 내키지 않는 오라버니와의 재회
조회 : 429 추천 : 0 글자수 : 4,466 자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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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이한 이후, 아카데미는 밖으로도 안으로도 아주 한적했다.
그런데도 릴리스 티와는 학생들이 붐비지 않은 아주 협소한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무도 쓰지 않은 채 오래 방치된 낡디 낡은 아주 작은 창고 안.
몇 차례씩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하며 쭈뼛거렸다.
끼기 이익.
“읏”
그 순간이었다.
놀랍다기보다는 귀를 자동반사적으로 틀어막게 만드는 괴로운 소리가 그녀를 움찔거리게 했다.
열다 만 녹슨 창고 문이 비명에 가까운 마찰음을 일으키며 마저 열리는 소리였다.
저벅.
저벅.
발자국은 점점 릴리스티아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누군가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티아.”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릴리스티아를 아주 친근하게 애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움찔.
릴리스티아 자신을 부르는 남다른 애칭과 그 익숙한 듯한 목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하지만 그것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율. 너 지금 저 인간 여자한테 무시당하는 거야? 」
“무시?”
「 딱 보아도 아니냐…? 」
“딱 보아도…. 무시라.
너한테 그런 식으로 보인다면 뭐 그렇게 정의할 수도 있겠지.”
율리어스는 오른손을 턱에 괸 채로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웬일인지 몰라도 율리어스는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있었다.
「 뭐, 뭐야? 」
그러자 오히려 익숙지 못한 그의 모습에 순간, 사가스가 당황스러움에 번진 말투를 내뱉고 말았다.
사가스가 봐도 지금의 율리어스는 평상시에도 보기 힘든 반응에 가까웠다.
인정해야 할 부분은 절대 인정하지 못 하는 고지식한 인간.
자신에게 불리하든 불리하지 않든 상황에 놓일지언정, 유유자적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늘 아무렇지 않게 모든 게 무마되었다.
항상 그 자리에 알맞은 인재가 아니더라도 마치 적재적처처럼 벌어진 상황이 크든 작든 간에
알맞은 자리에 쓴 것, 마냥 자기 자기 중심으로 해결이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가스가 보는 율리어스라는 인간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가 아닌 오롯이 그 몫을 그 주위가 감당해야 하는 전제의 조건화로 어느샌가 그렇게 돌아가 버린다.
그런 식의 일들을 사가는 율리어스의 성좌가 되면서 겪어보아왔지만, 눈앞에 인간 소녀를 앞둔 지금은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서로의 처지에서는 당연히 반갑지 않은 만남이 이루어진 상황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오게 만든 건 이번엔 율리어스가 직접 만든 설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가스가 그 설계란 걸 미리 귀띔해 준들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율리어스는 평소와 달리 릴리스티아에 대한 것을 공유하지 않았다.
‘아주 피곤한 녀석.’
사가스는 인간을 좀처럼 믿고 의지하지 않지만, 계약자인 율리우스에게 한해서만 달랐다.
그게 성좌와 계약자 사이의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개연성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율리어스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일쑤였다.
‘팔불출.’
사가스가 이런 율리어스의 생각을 모르는 게 약이었다.
「 이럴 때 보면 율한테 대단한 설명을 바란 내가 꼭 바보 같단 말이야…? 」
“너 바보 맞는데.”
사가스는 한 대 얻어맞은 느낌으로 바로 대꾸하지 않았지만, 율리어스가 공유하는 감각으로 성좌의 기분은 몹시 불만이 가득했다.
「 ………. 」
눈앞에 인간 여자와 율의 관계에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만큼 쌓여 있는 질문들은 많았지만 지금, 이 기분으로는 율과 대화하는 게 썩 내켜지 않아 보였다.
사가스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율리어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아쉬울 건 없었다.
율리어스의 성격상 어느 정도는 진심에 가까웠기에 사과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을 뿐더러, 사과와 굴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가스와 시간 낭비와 다를 바 없는 대화가 끊기자, 율리어스는 다시 릴리스티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비친 릴리스티아는 뭐랄까….
하여튼, 매우 불안 해 보였다.
“7년 만인가….”
율리어스는 약간 오래된 기억을 되뇌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의 기억에는 어렴풋이 릴리스티아의 어릴 적의 앳된 모습이 흐려져 지금 눈앞에 훌쩍 큰 그녀를 상대로 덧씌워지어 나갔다.
“반갑다…?
아. 딱히 그럴 분위기는 아니지.”
직접 그녀에게 들리게는 말하지 못하고 몇 번의 NG를 거치지 않고 오케이를 받고 싶은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 헐? 진짜 내가 아는 같은 율이 맞는 거야!?
고작 저런 인간 소녀가 어려워?
패기 문제가 아니라…. 혹시 율. 여자 인간에 한해서만 숫기가 없는 거였어?
음. 틀린 말은 아니겠네.
율이 여동생이라고 부르는 인간 여자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걸 보지 못…. 」
“닥쳐.”
아무래도 사가스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입을 잘못 놀린 듯싶었다.
오랜만에 릴리스티아를 가까이서 직접 본 율리어스는 여동생 아이린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깊은 상념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렇게 비치는 모습에 착각이라 생각하며 사가스가 율을 더 놀린 듯싶지만, 정색하는 그의 표정은 착각이 아니었었다.
“티아에 관해선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사가스.
그녀는 아무리 네가 내 성좌이라 한들 아무렇지 않게 험담할 수 없는 존재니까.”
숙연해진 분위기로 사가스는 다시 합죽이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 차갑게 대하는 것으로만 보호할 수밖에 없는 나의 또 다른 여동생.’
율리어스는 릴리스티아와의 재회로 인해 그동안 잊혀진 아련함이라는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큽. 하아…하아.
그녀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걸 간신히 밖으로 내뱉었다.
‘흐읍…. 하’
릴리스티아는 그가 무슨 생각하는지 그 오래전부터 알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에 숨이 가뿐히 내쉬어지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그로 인해 그녀는 내내 가시지 않는 긴장감에 지배되어 쉽게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저 차가운 오라버니가 날 불렀다는 게 진짜였다니….
아앗. 아니야. 오래전부터 저 사람은 내 오라버니가 아니야.’
아주 조금이지만 시간이 지나갈 수록 차츰 호흡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긴장감과 더불어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율리어스 M. P 티어 밀레니엄.
용(룡)성 밀레니엄 공작 가(家)의 장남이면서 차기 가주였다.
엔테리아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무려 링크5의 전생을 각성했던 그는 그해에 아주 뛰어난 걸인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릴리스티아는 그 해의 그보다 훨씬 전부터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와 알게 된 건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어린 시절의 기역은 잊기 힘들 정도도 생생했다.
‘그와의 첫 만남은….’
릴리스티아는 그다지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지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인상을 찡그렸다.
아주 우연이 거듭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날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뵐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머리에 가득 찼던 릴리스티아였다.
[ 콜록…. 콜록…!]
그녀의 어머니는 알 수 없는 병을 앓은 지가 릴리스티아를 낳고 4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런 핼쑥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뜨는 마음 한편에는 가슴이 욱신거렸다.
[ 엄마…마니 아파요?
아빠…. 아빠라면 엄마의 병을 금방 낫게 해주지 안으까. 응!? ]
릴리스티아의 어머니는 그런 릴리스티아를 보며 말없이 지그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고작 나이 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 릴리스티아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목숨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뜻밖에도 몸을 사라지 않고 그를 구한 생명의 은인이라는 관계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은인이었던 그녀와 함께 숨어지내며 생활하는 동안 둘은 애틋한 감정에 눈을 뜨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실을 맺고 얼마 안 가, 귀여운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머리카락 색은 마치 자수정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초롱초롱한 분홍색 눈동자는 귀엽게 땡글 땡글 거리며 굴러다녔다.
그 여자아이가 바로 릴리스티아였다.
새 생명을 낳고 그 행복은 오래 갈 거로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란 걸 아버지라는 사람이 떠나고 3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음에 어머니와 릴리스티아는 깨달았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은 평범한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는 진실에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하며 슬퍼했다.
어머니는 가난하게 과일 장사하면서 살아가는 평민일 뿐이었고 그런 약점과 다를 바 없는 부분으로 아버지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점점 나약해지시며 힘을 잃어가셨다.
급속도로 살이 많이 빠지시고 얼굴빛의 생기가 가셔버릴 정도로 초췌하게 변해 버리시는 건 금방이었다.
어머니는 그러는 사이 병을 얻으시고 말았다.
평민의 소득으로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는 약재가 필요할 정도로 그 병은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릴리스티아는 그때 비소로야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미웠다.
방학을 맞이한 이후, 아카데미는 밖으로도 안으로도 아주 한적했다.
그런데도 릴리스 티와는 학생들이 붐비지 않은 아주 협소한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무도 쓰지 않은 채 오래 방치된 낡디 낡은 아주 작은 창고 안.
몇 차례씩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하며 쭈뼛거렸다.
끼기 이익.
“읏”
그 순간이었다.
놀랍다기보다는 귀를 자동반사적으로 틀어막게 만드는 괴로운 소리가 그녀를 움찔거리게 했다.
열다 만 녹슨 창고 문이 비명에 가까운 마찰음을 일으키며 마저 열리는 소리였다.
저벅.
저벅.
발자국은 점점 릴리스티아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누군가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티아.”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릴리스티아를 아주 친근하게 애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움찔.
릴리스티아 자신을 부르는 남다른 애칭과 그 익숙한 듯한 목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하지만 그것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율. 너 지금 저 인간 여자한테 무시당하는 거야? 」
“무시?”
「 딱 보아도 아니냐…? 」
“딱 보아도…. 무시라.
너한테 그런 식으로 보인다면 뭐 그렇게 정의할 수도 있겠지.”
율리어스는 오른손을 턱에 괸 채로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웬일인지 몰라도 율리어스는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있었다.
「 뭐, 뭐야? 」
그러자 오히려 익숙지 못한 그의 모습에 순간, 사가스가 당황스러움에 번진 말투를 내뱉고 말았다.
사가스가 봐도 지금의 율리어스는 평상시에도 보기 힘든 반응에 가까웠다.
인정해야 할 부분은 절대 인정하지 못 하는 고지식한 인간.
자신에게 불리하든 불리하지 않든 상황에 놓일지언정, 유유자적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늘 아무렇지 않게 모든 게 무마되었다.
항상 그 자리에 알맞은 인재가 아니더라도 마치 적재적처처럼 벌어진 상황이 크든 작든 간에
알맞은 자리에 쓴 것, 마냥 자기 자기 중심으로 해결이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가스가 보는 율리어스라는 인간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가 아닌 오롯이 그 몫을 그 주위가 감당해야 하는 전제의 조건화로 어느샌가 그렇게 돌아가 버린다.
그런 식의 일들을 사가는 율리어스의 성좌가 되면서 겪어보아왔지만, 눈앞에 인간 소녀를 앞둔 지금은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서로의 처지에서는 당연히 반갑지 않은 만남이 이루어진 상황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오게 만든 건 이번엔 율리어스가 직접 만든 설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가스가 그 설계란 걸 미리 귀띔해 준들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율리어스는 평소와 달리 릴리스티아에 대한 것을 공유하지 않았다.
‘아주 피곤한 녀석.’
사가스는 인간을 좀처럼 믿고 의지하지 않지만, 계약자인 율리우스에게 한해서만 달랐다.
그게 성좌와 계약자 사이의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개연성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율리어스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일쑤였다.
‘팔불출.’
사가스가 이런 율리어스의 생각을 모르는 게 약이었다.
「 이럴 때 보면 율한테 대단한 설명을 바란 내가 꼭 바보 같단 말이야…? 」
“너 바보 맞는데.”
사가스는 한 대 얻어맞은 느낌으로 바로 대꾸하지 않았지만, 율리어스가 공유하는 감각으로 성좌의 기분은 몹시 불만이 가득했다.
「 ………. 」
눈앞에 인간 여자와 율의 관계에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만큼 쌓여 있는 질문들은 많았지만 지금, 이 기분으로는 율과 대화하는 게 썩 내켜지 않아 보였다.
사가스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율리어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아쉬울 건 없었다.
율리어스의 성격상 어느 정도는 진심에 가까웠기에 사과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을 뿐더러, 사과와 굴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가스와 시간 낭비와 다를 바 없는 대화가 끊기자, 율리어스는 다시 릴리스티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비친 릴리스티아는 뭐랄까….
하여튼, 매우 불안 해 보였다.
“7년 만인가….”
율리어스는 약간 오래된 기억을 되뇌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의 기억에는 어렴풋이 릴리스티아의 어릴 적의 앳된 모습이 흐려져 지금 눈앞에 훌쩍 큰 그녀를 상대로 덧씌워지어 나갔다.
“반갑다…?
아. 딱히 그럴 분위기는 아니지.”
직접 그녀에게 들리게는 말하지 못하고 몇 번의 NG를 거치지 않고 오케이를 받고 싶은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 헐? 진짜 내가 아는 같은 율이 맞는 거야!?
고작 저런 인간 소녀가 어려워?
패기 문제가 아니라…. 혹시 율. 여자 인간에 한해서만 숫기가 없는 거였어?
음. 틀린 말은 아니겠네.
율이 여동생이라고 부르는 인간 여자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걸 보지 못…. 」
“닥쳐.”
아무래도 사가스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입을 잘못 놀린 듯싶었다.
오랜만에 릴리스티아를 가까이서 직접 본 율리어스는 여동생 아이린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깊은 상념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렇게 비치는 모습에 착각이라 생각하며 사가스가 율을 더 놀린 듯싶지만, 정색하는 그의 표정은 착각이 아니었었다.
“티아에 관해선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사가스.
그녀는 아무리 네가 내 성좌이라 한들 아무렇지 않게 험담할 수 없는 존재니까.”
숙연해진 분위기로 사가스는 다시 합죽이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 차갑게 대하는 것으로만 보호할 수밖에 없는 나의 또 다른 여동생.’
율리어스는 릴리스티아와의 재회로 인해 그동안 잊혀진 아련함이라는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큽. 하아…하아.
그녀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걸 간신히 밖으로 내뱉었다.
‘흐읍…. 하’
릴리스티아는 그가 무슨 생각하는지 그 오래전부터 알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에 숨이 가뿐히 내쉬어지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그로 인해 그녀는 내내 가시지 않는 긴장감에 지배되어 쉽게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저 차가운 오라버니가 날 불렀다는 게 진짜였다니….
아앗. 아니야. 오래전부터 저 사람은 내 오라버니가 아니야.’
아주 조금이지만 시간이 지나갈 수록 차츰 호흡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긴장감과 더불어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율리어스 M. P 티어 밀레니엄.
용(룡)성 밀레니엄 공작 가(家)의 장남이면서 차기 가주였다.
엔테리아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무려 링크5의 전생을 각성했던 그는 그해에 아주 뛰어난 걸인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릴리스티아는 그 해의 그보다 훨씬 전부터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와 알게 된 건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어린 시절의 기역은 잊기 힘들 정도도 생생했다.
‘그와의 첫 만남은….’
릴리스티아는 그다지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지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인상을 찡그렸다.
아주 우연이 거듭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날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뵐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머리에 가득 찼던 릴리스티아였다.
[ 콜록…. 콜록…!]
그녀의 어머니는 알 수 없는 병을 앓은 지가 릴리스티아를 낳고 4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런 핼쑥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뜨는 마음 한편에는 가슴이 욱신거렸다.
[ 엄마…마니 아파요?
아빠…. 아빠라면 엄마의 병을 금방 낫게 해주지 안으까. 응!? ]
릴리스티아의 어머니는 그런 릴리스티아를 보며 말없이 지그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고작 나이 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 릴리스티아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목숨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뜻밖에도 몸을 사라지 않고 그를 구한 생명의 은인이라는 관계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은인이었던 그녀와 함께 숨어지내며 생활하는 동안 둘은 애틋한 감정에 눈을 뜨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실을 맺고 얼마 안 가, 귀여운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머리카락 색은 마치 자수정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초롱초롱한 분홍색 눈동자는 귀엽게 땡글 땡글 거리며 굴러다녔다.
그 여자아이가 바로 릴리스티아였다.
새 생명을 낳고 그 행복은 오래 갈 거로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란 걸 아버지라는 사람이 떠나고 3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음에 어머니와 릴리스티아는 깨달았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은 평범한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는 진실에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하며 슬퍼했다.
어머니는 가난하게 과일 장사하면서 살아가는 평민일 뿐이었고 그런 약점과 다를 바 없는 부분으로 아버지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점점 나약해지시며 힘을 잃어가셨다.
급속도로 살이 많이 빠지시고 얼굴빛의 생기가 가셔버릴 정도로 초췌하게 변해 버리시는 건 금방이었다.
어머니는 그러는 사이 병을 얻으시고 말았다.
평민의 소득으로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는 약재가 필요할 정도로 그 병은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릴리스티아는 그때 비소로야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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