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2부] 릴리스티아는 지난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1)
조회 : 363 추천 : 0 글자수 : 4,318 자 2024-03-23
어머니만 있다면 이런 가난한 생활쯤은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병마에게 이길 수 없을 뿐더러. 시간은 모녀를 기다려 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의 하루였다.
[ 밀레니엄 백작님께서 보내신 편지십니다. ]
………!
그것은 절망의 문턱에 다다른 일망의 실오라기와 같은 희망이었다.
이 누추한 집에 찾아온 사람은 어린 릴리스티아로선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뚝…. 뚝.
어머니는 그 편지를 펼쳐 읽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릴리스티아는 그런 어머니를 몰래 보면서도 왜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고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 바쁘셨다.
“티아야.”
어머니는 문 뒤에 숨어 쭈뼛쭈뼛하는 릴리스티아를 불렀다.
릴리스티아는 슬그머니 나와서는 어머니 앞에 다가와 섰다.
“이제 여길 떠날 때가 된 것 같구나.”
“네…?”
나는 무슨 말인지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릴리스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희미하지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앗. 웃었다?’
옅은 미소를 짓는 표정에 릴리스티아는 살짝 고개를 기웃거리며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사실 그런 어머니의 미소를 다시 보는데까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릴리스티아의 얼굴에도 자신도 모르게 덩달아 어머니의 미소를 따라 귀여운 미소가 그려졌다.
[ 아버지께서 내가 몹시 보고 싶다는구나. ]
릴리스티아는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뒤섞였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해부터는 분명 행복했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울타리 같은 존재,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제까지고 어린 릴리스티아를 지켜 줄 거란 생각은 얼마 가지도 못했다.
릴리스티아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그 짧았던 행복을 만끽한순간만큼은 따뜻했었더라는 기억만이 두루뭉술하게 남아 있을 뿐….
그리고 그 기억이 옹졸하다는 식으로 내몰리는 건 현재에 머무는 릴리스티아의 삐뚤어지기 시작하며 자리를 잡게 된 감정이었다.
릴리스티아의 입술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편지를 접하게 된 이후로 뾰로통스럽게 삐쭉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다…. 다. 다다 아버지 때무니야.’
이 삐죽삐죽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는 이유의 단서라고는 아버지라는 사람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이상해져떠.’
어머니도 저렇게까지 아프게 된 이유는 모두 아버지의 탓일 텐데…
어머니에게서는 그런 모습이나 감정을 찾아볼 수 없음에 그럴 수록 최근 얼굴을 알 수 없는 아버지가 더욱더 미워지기 시작했다.
사뭇 커져가는 그 미움이라는 감정은 어머니가 병에 걸렸을 때부터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돋아난 처라 이제 와서 그걸 잘라 내기엔 훨씬 크게 자라선 자리를 잡아버린 뒤였다.
그런데 요즘 어딘가 들뜬 듯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 어머니는 아버지를 미워하시기는커녕,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을 볼 수 있는 기쁨과 그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릴리스티아는 그런 어머니의 표정을 처음 접한 까닭일까….
미웠던 얼굴 없는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이 미웠던 감정만큼 같이 커져만 갔다.
‘이게 아닌데….’
그리고…….
。
。
。
시각은 또 금세 지나가 버렸다.
그 편지에 적혀 있던 시간의 날이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큼이나 가까워졌다.
나름 고대했던 그날이 릴리스티아의 앞에 다가옴의 그날이었다.
그녀들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마을의 외진 외곽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은 채, 몇 가지 짐이 다였다.
그리고 저 멀리서 말이 달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무언가가 흐리게 보였다.
‘우…. 와 아아.’
생전 처음 보는 아주 화려한 마차가 어머니를 따라 기다린 장소에 멈춰 섰다.
아직 어린 다섯 살인 소녀의 눈에는 동화에나 등장할 법한 백마가 끄는 화려한 마법 마차로 밖에 보이지 않음에 입이 자연스레 벌어지고 동공이 확장되었다.
‘머, 머싯떠!’
거기에다 아름다워 보이는 백마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릴리스티아의 땡글 땡글한 두 눈동자는 아직 제빛을 발휘하지 못한 보석처럼 아기자기한 빛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마부석에서 그럴싸하게 말끔한 복장을 갖춘 한 남자가 내려와 그녀들을 맞이했다.
“기다렸습니다. 타십시오.”
그 사람에게서는 무표정으로 담담한 기류가 흘렀다.
말 자체에는 호의가 담겨 있었지만, 읽을 수 없는 표정에 진심을 가늠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다음으로 처음 받아 보는 호의에 살짝 흠칫거렸지만 이내, 그 남자가 내민 손바닥의 끝을 잡으며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그 사람은 릴리스티아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똑같이 손을 내밀었다.
‘이, 이게…. 그, 그 그 그 애쓰컫뜨라는……흐히히힉!’
어디서 주워 들었던 모양이었다.
릴리스티아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평민에 불과한 다섯 살 소녀가 그런 단어를 접하기도 그렇고 알기 어려운 게 맞겠지만, 릴리스티아는 어린 나이에 비해 유달리 똑똑한 아이였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부끄러웠다.
하필이면 이런 꾀죄죄한 옷차림새로 에스코트를 받으며 휘황찬란한 마차에 타는 건 마차를 모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차야…. 미, 미아내…….’
약간 죄(?)를 짓는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릴리스티아도 마차 안으로 착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이것은 옷에 단추를 채워나가기 시작하는 첫 단계의 시작일 뿐이었음을 어린 릴릴스티아가 알 리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두 모녀가 황금의 쌍용이 그려진 마차에 탄 날, 악연이든 인연이든 모든 연민의 굴레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서는 끊임없이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어머니도 몰랐기에 릴리스티아는 하염없이 동화 속의 마차에 긴 기다림을 기대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릴리스티아가 동화 같은 분위기에 빠진 듯. 그런 긴 기다림을 끝을 기다리는 그때였었다.
“워, 워.”
푸히히히힝. 푸르릉!
‘머싯는 백마가 울었어.’
조금은 놀란 듯했지만, 백마의 울부짖는 소리에 릴리스티아는 관심이 더 쏠렸다.
백마의 말소리와 함께 마차가 멈췄다.
‘여긴 대체 어디까…….
이제 우리 집은 저녀 보이지 안켓지?’
당연히 그걸 알 수 없었던 릴리스티아는 마차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설렘과 긴장감이 한꺼번에 오며 몸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
처음 타보는 마차의 흔들림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머리가 어지럽지 않은 것만으로도 사실상 다행일지도 몰랐다.
릴리스티아는 고개를 최대한 내밀어 창밖의 풍경을 보는가 싶더니. 이내 어머니를 힐끔 쳐다보았다.
‘마니 힘드실거야. 엄마는….’
어머니는 말이 멈출 때까지 마치 기절한 듯이 잠에 빠지신 것 같았다.
똑, 똑.
“악!”
이번엔 제대로 크게 깜짝 놀라버렸다.
누군가 마차의 문에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이 곤두섰던 릴리스티아는 놀란 입을 손으로 가리며 문을 주시했다.
지그시.
한참을 노려보았다.
“콜록, 콜록!”
그사이 어머니가 짧은 단잠에서 깨어나셨다.
“다 온 거 같구나. 어서 여기서 내리자꾸나. 티아야.”
‘아, 아. 다 온 거여써?’
릴리스티아는 그제야 백마와 함께 마차가 한 곳에 멈춰 움직일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끼익.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다, 다르네?’
릴리스티아는 약간 당황했다.
고개를 든 순간 보이는 건 처음 에스코트를 해줬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마차 밖에는 평범한 하인 옷을 입은 듯한 30대 중반의 남성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을 일관하고 있었다.
‘흐…힛.’
릴리스티아는 조금 무서웠지만 그들이 자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어린아이 마음에서도 느끼고 있었다.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싫어하는 티도 낼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람들.
시작부터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든 릴리스티아는 마차 밖으로 한 발짝 내리기부터 내심 무서워졌다.
‘어, 어쩌지….’
그 적막한 분위기부터 무거운 나머지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요동쳤다.
이곳에서 왠지 아무도 자신들을 반겨 주는 사람들이 없을 것만 같았다.
아버지란 사람도 보고 싶은 마음은 아직 있었지만, 막상 아버지 밑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릴리스티아의 마음은 점점 약해져만 갔다.
릴리스티아는 고작해야 다섯 살.
현실에 부딪치면 부딪힐 수록 어린아이의 마음에 스크래치라는 상처가 커져가는 것은 환상이 섞인 설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 그냥 도라가면 안 데까?
지금이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얼굴은 다음에 볼 수 읻찌 안으까?
아버지는 진짜 나를 보고 시퍼 하시는 게 마즈까?
어머니,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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