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2부] 처음엔 뭐가 뭔지 몰라도 두근두근거려.
조회 : 457 추천 : 0 글자수 : 4,406 자 2024-03-30
머릿속이 복잡해질 정도로 오만가지의 생각이 다 들었다.
릴리스티아는 막상 큰 변화를 앞두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티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허우적거릴 때, 들린 건 가냘프게 떨리지만 아주 상냥한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괜찮단다. 티아야.”
최근 미소를 되찾으신 어머니는 만감이 교차하는 릴리스티아를 보며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아아.
냔 정말 갠탄은 거 맏꾸나.’
그때 서야 릴리스티아는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서 벗어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
“……….”
“……아.”
“……………?”
“…티아야.”
“…어, 엄마?”
릴리스티아는 어머니가 계속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녀는 당연히 어머니 목소리를 안 들린다는 듯이 무시한 것도 아니었다.
약간 멍해 보이는 릴리스티아의 얼굴빛에 오히려 어머니가 낯빛이 어두워져선 릴리스티아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아아…. 이러며는 안 데는데….
아픈 건 엄마잖아.
이럴 때니뚜록 릴리, 내가 힘을 내야 하는 거랟떠. 흐읍!’
어머니가 아프고 나서부터 릴리스티아는 자주 하고 있던 생각이었다.
짝.
【 철썩! 】
그런 어머니를 걱정시킨 게 너무 미안했던 릴리스티아는 정신을 차릴 겸, 자신의 뺨을 살짝 친다는 게 그만 찰싹거리는 소리가 공작님의 저택의 홀에서 메아리처럼 울릴 정도로 퍼져 나가 버렸다.
“티아…!?”
“저,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난데없는 릴리스티아의 행동에 되려 놀란 건 어머니와 저택의 안까지 안내를 한 집사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너무 눈에 띄는 돌발행동을 취했다는 건 이미 저지르고 난 뒤였다.
릴리스티아는 순식간에 얼굴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아…. 아 아무 걷뚜 아니에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릴리스티아는 빠르게 수습해 나갔다.
급하게 지은 미소라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뻔했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면 다행이구나.”
다행히 어머니도 걱정스러운 표정도 안심을 하며 사라져갔다.
“흠흠.”
집사 아저씨는 무안한지 헛기침 소리를 내며 두 모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주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었다.
‘으…힉,’
물론 릴리스티아도 이 상황 자체가 아주 불편했지만,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 제공자는 자신임이 맞았다.
아버지…. 공작님의 저택의 홀에까지 들어오기 전 릴리스티아는 저택의 겉모습이 으리으리하고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함에 그만 압도되어 버렸다.
저택은 무려 3층의 이룬 높은 건물이었고 평민의 눈에는 개인 저택을 바로 눈앞에서 볼일이 없었기에 그 놀라움은 한층 더 릴리스티아의 눈을 반짝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개와 눈을 조금만 돌려서 릴리스티아의 시선을 사로잡는 또 다른 장소가 있었다.
아름답게 핀 꽃들이 화사하게 어울려 쌓인 정원이 릴리스티아의 눈을 매료시켰다.
아직 따스한 봄이 찾아온 것 아닌 계절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이름 모를 꽃들이 공작님의 하얀 저택의 정취를 살리는 것에 한몫 더 해주고 있음은 분명했다.
자칫 한참이나 그 꽃밭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뻔한 건 사실이었다.
‘오늘 가뜬 나렌 호..호늘 빼는 건 아...안대. 닐리! (오늘 같은 날엔 혼을 빼는 건 안대.릴리)’
하지만 이것 또한 예고편에 불과했었다.
마치 도취한 듯 정신이 홀려버렸던 릴리스티아는 긴장감도 잊어버린 채, 힘이 풀려버린 다리가 그녀의 다리가 아닌 것처럼 도착한 곳이 지금의 저택 안의 홀이었었다.
백색과 은색의 티 없이 빛나고 아름다워 청아함으로 도배된 듯한 웅장한 홀이 눈앞에 바로 펼쳐졌었다.
높디높은 천장에 달린 금색을 두른 샹들리에의 불빛들은 마치 밤하늘의 작은 별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릴리스티아에 눈에 뜨인 건 바로 중앙 홀에서 몇 걸음도 채 안 되어 바로 이어지는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계단이 보였다.
높은 층까지 이어지는 대리석같이 빛나는 계단들은 밟기도 전에…. 아니, 감히 밟기라도 하면 그 빛남을 잃어버릴지 봐 쳐다보기에만 연연했었다.
릴리스티아의 혼을 빼앗기는 건 오늘 수십 차례 일어나고도 남았다.
‘이거느은 너므 시마자나! (이거는 너무 심하잖아.)’
홀로 입이 몰래 삐죽이게 되어버렸다.
정신을 차리자는 자신의 결심이 몇 번이나 무너지자 그만큼 실망이 컸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반짝이는 세계에 빠진 환상적인 경험은 언제까지고 오래 있을 순 없었다.
자연스레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헤어 나오지 못할 뻔한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잠시 두 분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십시오.
가주님께 기별을 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집사 아저씨가 제법 높고 기다란 층층의 계단을 올라가 사라진 지 몇 분이 지난 것 같았다.
아마 그 몇 분은 실제로 진짜 꽤 지나간 버린 시간이 아니었다.
아직 이 상황이 채 현실이라고 실감하기 힘들었던 릴리스티아는 시간적인 감각을 상실해 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것도 그렇게 이런 으리으리한 저택까지 불리어져 오는 건 무슨 동화에 나올 법한 꿈같은 이야기로 이미 여기까지 오는데에도 릴리스티아는 수 없이 현실감을 잃었을 건 뻔했다.
언제까지고 낡고 오래된 집을 떠나기 전….
멀미를 했을 법도 했지만, 곤두선 긴장감에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던 흔들리는 마차 안…….
앞으로 어떤 환상적이며 거짓 같은 현실감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쉽게 발을 내딛어 나오기 힘들었던 마차 밖의 새로운 세상…….
‘히히힛,’
그 자체는 아직 어린 소녀의 가슴의 불을 지피며, 두근거림의 경계선을 넘어섰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제 바로 릴리스티아의 코 앞이 되어버렸다.
감각을 잃어버렸던 릴리스티아의 시간도 제자리에 돌아올 차례였다.
릴리스티아는 집사 아저씨를 기다린 그 시간이 마치 30분가량을 뛰어넘은 것 같았지만 현실의 시간에 눈을 뜨는 순간 그가 눈앞에 이미 와 있었다.
“가주님께서 들이라 하십니다,”
“네…. 콜록. 감사합니다. 레이콜드먼 집사님.”
어머니는 그 집사 아저씨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가 담긴 제스처를 취했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이게 저의 직무이며, 가주님께서 내리신 분부를 그대로 전해드린 것뿐입니다.”
릴리스티아는 약간 당황해하는 집사 아저씨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저 아저띤 진짜구나.’
그의 난처한 표정에서는 5살의 아이의 눈에 보기에도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서 들어가 보ㅅ………”
【 누가 함부로 들어가도 된다고 했지? 】
오소소….
뭔지 모를 꺼림칙한 소름이 확 돋았다.
아주 찬 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의 차디찬 목소리였다.
바로 뒤에서 엄청나게 무거우면서 차가운 어둠이 피부까지 스며드는 느낌이 엄습해 왔다.
“히끅…!”
너무 놀란 나머지 릴리스티아의 입에서 딸꾹질이 난데없이 육중한 분위기를 깨며 튀어나와 버렸다.
분위기를 파악하는 건 아직 릴리스티아의 어린 입장에서 힘들겠지만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나와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겨울의 쏟아지는 눈보라를 업고 난데없이 나타난 그 앞에서는 모든 행동이 불가항력적으로 느껴졌었다.
【 레이콜드먼 집사. 당신 직무태만이야. 】
흠칫…!
이 한없이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샹들리에 아래에서 어둠이 빛을 살라 먹으며 살기가 오직 그에게서 뻗쳐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그…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찌 제가 감히……ㅇ…유, 율리어스 도련ㄴ……….”
【 변명은 필요 없어. 】
가벼운 서늘한 냉기의 수준에 머물 말투와 어감이 절대적으로 아니었었다.
여름이었다면 더운 한여름에 서리가 내린다고 봐도 무방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직 봄도 채 되기 이른 겨울이었다.
릴리스티아는 지금 이런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 자체를 이해한다는 게 힘들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아이는 어린 릴리스티아의 눈대중으로 보아도 열 살 남짓 넘는 아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공포감이 압도했지만, 흘끔거리게 되는 눈을 어떻게 할 순 없었다.
‘띠아랑 또가테……?(티아랑 똑같애.)’
언 듯 자신과 비슷한 머릿결의 색깔.
그 고운 자줏빛의 머리칼이 결을 이루어 한 가닥으로 땋아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끼. 저 뉴은….(특히. 저 눈은)’
릴리스티아의 눈에는 너무 예뻐 보였다.
마치 표정이 한눈에 반한 것만 같이 반짝반짝거렸다.
물론 그녀의 눈동자도 땡글땡글한 한 귀여움이 박힌 진분홍빛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그건 그러고 이건 이거다는 느낌으로 선을 그었다.
그 아이의 눈동자는 옅은 분홍빛이 마치 하얀 진주가 분홍빛에 물든 채로 눈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무서운 감정만 앞선 첫 대면과 달리 뭐가 뭔지 몰라도 릴리스티아의 가슴은 조금씩 두근거렸다.
‘띠…띠아도 한짬 어리지만….’
왠지 그 아이를 곁눈질씩으로 계속 쳐다볼 때마다 드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율리어스 도련님이라도 불리는 그 아이가 계속 무거우면서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릴리스티아는 이 도련님을 몰래 흘겨볼때마다 피어오르는 감정을 쉽게 접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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