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프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음식들을 먹을 기회가 흔치 않다. 남들에게는 이게 그렇게 가치있는 것인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치아는 뭔가를 씹어 본적도 흔치 않다. 점심이라는 개념 또한 나에겐 흐릿하다. 오늘 먹은 것 이라고는 단백질 및 무기질이든 파우더를 우유와 함께 먹은 것이 다다.
‘야 이건 뭐냐. 아 그거 신메뉴라는데? 넌 먹어봤어?. 맛있던데? 아니 나는별로더라. 뭐래 너는 먹지마라. 수연이 이모께서 차려 주신 것에 말이 많아’
열명은 안되는 여자아이들이 하나같이 식탁에 앉아있으면서 핸드폰으로 사진들을 찍으며 수다를 떨면서 기다리고있다. 서아는 그런 분위기속에 눈치를 살피며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다. 수연이가 수연이 엄마와 함께 들어온다.
“수연이 생일이라고 다들 와줘서 고맙다. 많이들 먹고 잘 놀다 가렴.”
“수연아 생일 축하해~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한쪽에는 많은 음식들과 다른 한쪽에는 선물들이 쌓여 있다. 나는 눈치를 살피고 조심스럽게 음식을 먹으려고 젓가락 든 손을 뻗었다.
“근데 너는 1학기 지나도록 반에서 말이 없었냐?”
-눈의 초점을 위로 옮기자 나의 반대편에서 눈동자와 마주치는 찰나에 귀걸이에서 반사된 빛이 보였다. 색은 부드럽지만 서투른 티가 나는 분홍 입술, 갸름하지만 위 아래 경계가 보이는 턱선, 눈망울은 크지만 위의 반짝이는 것들이 거슬린다. 눈동자는 렌즈를 써서 흰자가 작아보인다.
-조금의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면 먹는 것들을 잠시 멈춘 아이들이 보인다. 시선은 나보다는 나를 향해 있진 않아도 눈끝은 나를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폰을 끼면 발생하는 주변의 차단과 같은 정적이다. 머리카락을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일시적인 정적 속에 나는 생각보다 나에 대한 질문을 빨리 해준 것에 편하기도 했지만 조금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1학기 동안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은 활동을 몇 번을 했는데 아무 말 없다가 생일 파티에 초대한다고 하니 이건 오는 심보가 뭐냐는 것 같다.
“어... 내가 고등학교 들어오면서 집안에 일이 생겨서 조금 바빴어 미안…”
-거짓말이다. 일이 생긴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가 아니다. 이 세상의 공기를 직면했을 때,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나는 ‘일’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 일을 만든 것은 내가 아니지만 그것을 해결할 사람은 나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바쁘기도 하지만 입으로 꺼낼 만큼의 올바른 삶은 아니기에 상투적인 말로 답변을 때우는 것이다.
“아…미안. 앞으로 잘 지내면 되지. 학교에서 아는 척 쫌 할게.”
-나의 가벼운 답변과 함께 대화가 끝나고 노시은의 주위를 환기시키는 말들과 함께 일시의 침묵은 풀렸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상투적인 답변에 노시은은 별로 탐탁지 않은 듯하다. 밝은 어조로 말을 하지만 조금 신경 쓴 탓에 말에 힘이 들어가 있으며 나와의 교류가 끝나고 나서도 따가운 눈빛으로 묵언의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는듯 했다.
-아마 눈치 챘듯이 일이라는 것은 가난이다. 무작위적으로 이 땅에 서게 되는데 그 땅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든 사람이 땅에 던져 두기만 했다.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큰 짐을 주었다. 남들은 도움을 받으며 살지만 나는 도움보다는 페널티를 받으며 땅에서 산다. 남들이 부모들에게 기댈 때 나는 사회의 불완전성에 기대어 산다. 아니 기생을 하면서 산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수연이 집에서 식사가 끝나고 아이들은 노래방으로 장소를 옮기려 할 때 서아는 수연이와 수연 이모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고 다른 곳으로 향한다. 하늘은 조금 어두운 구름이 끼여 바람을 부르고 있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화장실에 들어간 서아는 손을 씻으며 거울을 바라본다.
-나의 부모들은 내 생일을 기억할까. 뭐 그런 감정들은 무뎌 졌는지 오래되었다. 가끔은 내가 소시오패스같다고 느낄 때가 있을 만큼 감정이 없어졌다
거울을 보면 서아의 입술은 분홍색이지만 냉기가 가득했고 애써 웃음을 지어도 입술의 끝에는 얼음이 언 것 같이 보인다. 하얀 피부색이 차가움을 더 부각시키며 반쯤 감긴 눈은 초점없이 거울을 관통하여 싸늘한 느낌을 주고있다. 진한 검정색의 머리카락과 무채색 뿐인 옷들은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밝은 화장실의 조명은 오히려 어두움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래 나는 얼음 같다. 빙상장 빙판의 미끄럽고 하얀 얼음이나 겨울의 깊은 산기슭에 고인 물의 투명한 얼음이 아닌 남극의 저 깊은 크레바스안에 감색 빛이 도는 얼음같다. 그런 얼음이 사회라는 거대한 나무사이에 서리처럼 끼여 기생하는듯 사는 것 같다.
서아는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면서 기스가 많이 나있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한 스마트폰을 꺼내어 박진수라는 사람에게 답장을 적는다.
-박진수: 니가 거기를 왜감?? 개 뜬금없네
-나: 오늘 노시은을 꼬실려고 갔지 ㅋㅋ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