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회귀 (1)
조회 : 940 추천 : 0 글자수 : 4,326 자 2022-08-25
아델리아는 고개를 세차고 흔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신 차려, 부모님과 라이너부터 찾자.'
“부모님을 찾으러 가야겠어요.”
아델리아는 바닥을 짚고 힘차게 일어나 문 앞으로 갔다. 호위 기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표정한 눈으로 아델리아를 내려봤다.
“지금 나가시면 나디아님이 위험해지십니다. 절대 나가실 수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동생을 찾아야 해요, 비켜 주세요.”
아델리아는 호위 기사를 밀쳐 내려고 했지만, 기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디아는 아델리아의 손을 잡아 소파에 앉혔다.
나디아는 아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음조로 말했다.
“아델, 간단하게 설명할게요. 프레오 백작은 로잘리아 황후가 반란을 일으킬 거라고 알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아셨다고요?"
아델리아는 멍한 표정으로 나디아를 쳐다봤다. 아버지가 반란을 알고 계셨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무도회로 오는 마차 안에서도 내색조차 하지 않으셨다.
“지난 주 파르만이 로잘리아 황후 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말해줬어요.
그래서 저보고 황궁 내에서도 항시 기사를 대동하고, 남이 준 음식은 먹지 말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이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프레오 백작과 함께 황후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 좀 늦었네요."
허탈한 표정을 지은 나디아의 어깨가 축 쳐졌다.
"파르만 황자님은?"
파르만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나디아의 몸이 살짝 떨렸다.
'아.'
아델리아는 황후가 최우선으로 처리할 사람이 파르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프레오 백작이 무슨 일이 생기면 아델을 꼭 챙겨달라고 부탁했어요."
"왜 저를?"
"황후가 아델을 아이나르에게 준다고 했다네요."
나디아의 말에 놀란 아델리아는 엄지 손가락을 깨물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나디아가 시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시녀가 서랍에서 승마복을 꺼내 나디아에게 주었다.
나디아는 아델리아에게 협탁 옆 가림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그 드레스로는 얼마가지도 못하고 잡힐거예요."
아델리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림막 안으로 들어갔다. 아델리아는 나디아와 시녀의 도움을 받아 빨리 코르셋을 해체하고 승마복으로 환복했다.
끈을 조여 승마복을 몸에 맞춘 아델리아를 보며 나디아가 스크롤을 꺼냈다.
"나도 손놓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이 마법 스크롤에는 시간을 돌리는 주문이 새겨져 있어요. 정말 사용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하."
스크롤을 든 나디아의 손이 떨렸다. 곧 큰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아델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요. 여기서 비밀 통로로 밖에 나가면, 백작이 준비한 사람이 말과 함께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 분이 숲 속의 오두막까지 안내할 겁니다. 백작이 미리 집안에 마법진과 마정석을 준비해 뒀으니, 아델은 마법진 안에서 스크롤을 찢으면 돼요.”
아델리아는 나디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눈썹을 찡그렸다. 마법을 해본 적이 없어 불안해, 차라리 마법에 능한 나디아가 오두막에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저보다는 공주님이 스크롤을 찢는 게 낫지 않아요?”
나디아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마법은 스크롤을 찢은 사람을 과거로 보내주는데, 나는 쓸 수 없어요.
시간이 부족해서 나를 과거로 보내는 마법식은 완성하지 못했거든요. 그러니까 이 스크롤은 아델밖에 쓸 수 없다는 거예요.”
나디아는 벽난로 쪽으로 이동했다. 나디아가 양 손을 동그랗게 모으자 손 안에 흰 빛이 일렁거렸다.
벽난로 위에 등불 손잡이를 아래로 돌리자, 오른쪽 벽이 갈라지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어서 가세요. 만약에 오두막집까지 갈 수 없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 스크롤을 찢으세요. 그래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있어요. … 완벽하진 않겠지만.”
“나디아님은요?”
“아델, 내가 문제가 생기면 황후는 온드라국 마법사들을 포용할 수 없을거예요. 그러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아요.”
머리를 잠식해 아델리아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디아를 바라봤다.
“마법이 성공하면 나는 온드라국 내 칸타성 지하 감옥에 있을 거예요. 꼭 찾아주세요.”
아델리아는 나디아가 왜 지하 감옥을 말하는 지 이해되지 않았다.
"왜 감옥에."
나디아는 아무말 없이 해사한 표정으로 아델리아를 바라봤다. 아델리아는 이제는 가야할 시간이지 질문을 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디아님, 꼭 찾으러 가겠습니다.“
쾅쾅쾅! 쾅! 누군가가 휴게실 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나디아 공주님!!! 반역자를 수색 중입니다!! 문을 여십시오!!!!”
“아델, 얼른 가세요!”
아델리아는 시녀에게 등불을 받고 비밀 통로로 내려갔다. 그러자 드르르르륵 땅이 울리면서 통로 문이 닫혔다.
쾅! 황실 근위대가 난폭하게 휴게실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나디아의 호위 기사가 검을 들고 문을 부순 기사를 노려봤다.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나디아 공주님, 기사단장인 알폰스 레비 백작입니다. 무도회장에 침입한 반란자를 수색 중입니다.”
나디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기사단장을 노려보며 강한 음조로 말했다.
“황실 기사단장이라면서 예의를 전혀 모르는 군. 우선 나는 공주가 아니라 이나라 황태자비야, 말투부터 고쳐.
황족이 있는 휴게실 문을 부수다니, 황제 폐하께 보고하겠어.”
알폰스 백작은 나디아의 경고에도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 방 내부를 둘러봤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외부로 연결되는 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알폰스 백작은 휴게실에 비밀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귀족 휴게실에는 없는 가림막, 그 옆에 널브러진 영애의 구두는 누군가 비밀통로로 나갔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알폰스는 손을 가슴에 올리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디아 황.태.자.비.님. 여기 계시면 안전하실 겁니다. 자, 돌아간다.”
기사단장은 부하들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 나디아는 가슴을 내리 쓸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휴."
* * *
타다닥. 아델리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숨가쁘게 뛰었다. 머지않아 출구가 보였다. 어떤 남자가 아델리아를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델리아 아가씨? 오셨군요.”
프레오 백작의 부관이었던 야노스였다. 야노스는 말 두 필과 함께 아델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노스를 확인한 아델리아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버지께서 시키셨군요.”
야노스를 보고 나서야 나디아의 말이 사실로 다가왔다.
시녀로 일하며 나디아와 친분을 쌓았지만 갑작스러운 사태에 머리가 혼란스러워 그녀의 말을 선뜻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쥔 스크롤이 과거로 보내준다는 것도 말이다. 이제야 이 스크롤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반드시 주문을 성공시켜야 해.'
아델리아는 입을 꽉 물고 힘차게 일어나 야노스에게 갔다.
“백작님께서 오두막까지 아가씨를 호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네, 어서가요."
아델리아는 야노스의 도움을 받아 안장에 올라탔다. 야노스는 뒤에 말에 타려고 이동했다.
쉬이익! 푹, 히이이잉,철퍼덕.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말이 울부짖으면서 쓰러져 아델리아도 땅바닥에 처박혔다.
급히 야노스를 확인했지만 그는 등에 화살이 꽂힌 채로 죽어 있었다.
“아델리아 영애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군.”
터벅터벅. 화살이 날아왔던 숲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말을 탄 아이나르가 기사단을 이끌고 나타났다.
아이나르가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자, 뒤에 있던 기사단이 아델리아의 앞을 막아섰다.
아델리아는 말에 달린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고 일어났다. 그 모습을 아이나르가 가는 눈으로 바라봤다. 입술을 실룩거리며 그가 말했다.
“내 옆에 있어야지. 뭐 하는 거야?”
아이나르의 비웃는 말투에 아델리아는 가슴이 울컥했다. 아델리아는 독기를 가득 품은 눈으로 아이나르를 노려봤다.
“닥쳐! 내가 왜 네 옆에 있어?”
“워워 진정해. 너는 살려주잖아.”
“그, 그… "
아델리아는 입 안에서 욕설이 헛돌았다. 아이나르의 말이 아버지도, 어머지도 심지어 동생인 라이너까지도 죽였지만, 자신은 특별히 살려준다는 의미 같았다.
황후가 자신을 아이나르에게 준다고 했으니 죽이진 않겠지. 아델리아의 양볼이 차가워지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가서 영애를 잡아 와.”
“네. 황자님.”
기사 두명이 밧줄을 들고 아델리아에게 다가갔다. 아델리아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검 날을 세워 전투 준비를 했다.
“다가 오지마! 더 가까이 오면 베어 버리겠다.”
밧줄을 든 기사가 콧방귀를 뀌며 아델리아에게 다가섰다.
칼은 들었지만 몸을 떨고 있어 귀족 영애가 어설프게 위협하고 있다고 여겼다. 사실 아델리아가 몸을 떠는 것은 다른 이유였다.
아델리아는 검술에 능했지만 진검으로 사람을 상대한 적이 없었다. 사냥대회에서 작은 몬스터를 죽여본 게 다였다.
그런 아델리아에게 사람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이 절로 떨렸다.
하지만 떨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바싹 다가온 기사를 보자, 아델리아는 양손에 힘을 꽉 쥐었다.
촤아악!
무방비하게 다가온 기사의 목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을 베어 버렸다. 리카드와 대련으로 배운 대로 적의 목을 노린 거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기사가 깜짝 놀라 검을 바로 쥐었다. 기사가 재빨리 아델리아의 허벅지를 향해 검을 깊게 찔렀다.
아델리아는 오른쪽으로 몸을 피한 후 기사의 검을 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철퍼덕!
“억.”
기사는 검과 같이 당겨져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았다. 아델리아는 쓰러진 기사에게 다가가 목을 세게 찔렀다.
"헉헉."
양손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이 느꼈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면서 호흡이 힘들어졌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아델리아는 시선을 들어 자신이 죽인 기사들의 시체를 애써 외면했다.
“저런, 황태자비가 될 분인데. 백성을 사랑해야지, 쯧쯧.”
아이나르는 혀를 끌끌 차면서 노골적으로 아델리아를 비꼬았다.
아이나르가 고개를 돌려 기사단에게 눈짓하자, 3명의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 기사의 죽음을 눈 앞에 본 기사들은 살의를 가득 뿜으며 아델리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휘이이이익, 퍽, 퍽, 퍽!
그 때 아델리아가 빠져나온 비밀 통로에서 단검이 날아와 3명의 기사에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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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백작 영애의 장미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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