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동부의 왕자
조회 : 798 추천 : 0 글자수 : 3,807 자 2022-09-08
세상을 지켜보는 신이 있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지만 명분 없이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즉 인간이 멸망할 정도의 사건이 일어나야 개입할 수 있다.
그래서 신은 존재감 없이 있다가 대홍수, 대지진, 화산 폭발과 같이 멸망 직전일 때는 모습을 드러내 인간을 구했다.
마지막으로 신이 나타난 건 몬스터 웨이브 때였다.
1,000년전 제국은 현재 위치인 이시리아 반도가 아니라 대륙의 중앙에 있었다.
당시에는 열 개의 부족이 서로 도우며 살고 있었다. 대륙 중앙은 몬스터 영역과 인간 영역이 인접해 있어 둘의 대립이 불가피했다.
신은 인간이 몬스터보다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동쪽 산맥 입구에 결계를 만들어 몬스터를 인간과 분리 시켰다.
결계만 있으면 인간은 몬스터에게서 안전했다.
신은 평화로운 세상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인간에게 할일이 없었기에 장시간 수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신은 인간의 호기심을 간과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해 나갔다.
수많은 지식은 인간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는데, 특이하게도 한 부족에서는 마법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마법 부족으로 불린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마법 부족은 빠르게 삶이 윤택해졌다. 신이 걱정했던 몬스터도 이길 만큼 강해지기도 했다.
마법 부족의 발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마법은 점점 한계를 넘어 신의 권능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바로 창조의 권능이었다. 마법 부족은 동물로 마법 실험을 했고 결국에는 새로운 종(種)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마법 부족은 새로운 호기심을 느꼈다. ‘인간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매우 위험한 호기심을.
마법 부족은 인간 실험체를 구하기 위해 다른 부족을 침략했다. 인간의 평화로운 시대는 막을 내리고 부족끼리의 전쟁이 시작됐다.
마법 부족은 다른 부족들을 쉽게 제압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다른 부족들은 빠르게 연합해 수로 밀어붙였다.
수적 열세에 마법 부족은 도망자 신세가 돼 버렸다. 그들은 동쪽으로 도망치다 신이 만든 결계에 도착했다.
마법 부족은 생사를 걸고 마지막 주문을 만들었다. 바로 신이 만든 결계를 부수는 주문을.
마법 부족의 최후의 선택은 공멸이었던 것이다. 깨져버린 결계로 몬스터는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인간의 영역을 처참히 짓밟았다.
인간은 몬스터의 침입에 무력하게 서쪽으로 도망쳤다. 다행히 인간이 멸망하기 직전 신이 잠에서 깼다.
신은 혼란스러웠다. 동쪽 산맥 결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시간을 돌리면서 찾았다.
신은 인간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신의 권능까지 넘보려 한 행태에 진노했다.
신은 남은 인간의 족장에게 이시리아 반도로 이주하라고 명령했다.
신은 반도 입구에 결계를 다시 만들었다. 과거의 결계보다 더 굳건히. 그리고 금지 조항도 만들었다.
첫째, 생명을 만들지 말 것.
둘째, 시간과 공간에 간섭하지 말 것.
셋째, 죽음을 만들지 말 것.
부족장은 신에게 감사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000년간 마법은 발전해도 신이 만든 조항을 어기지 않았다.
신의 심판일로부터 1,000년 제국력 1,200년.
누군가 금지 조항을 어겼다. 신이 금지시킨 두번째 조항. 시간과 공간을 비트는 마법주문이 발현되고 있었다.
신은 인간의 도전에 혀를 끌끌차면서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주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마법이 생성된 곳, 마법을 발현한 사람을 보자 호기심이 생겼다.
'마법을 만든 사람과 마법을 실행하는 자가 왜 다른가?'
'마법이란 본디 주문자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신은 인간이 만든 마법 주문을 살펴봤다.
'호. 감히.'
신은 마법 주문을 보고 감탄했다. 주문이 제대로 실행이 됐다면 절대 몰랐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문을 만든 자와 실행한 자를 동시에 과거로 보낼 수 있었다.
주문을 만든 사람은 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허주문과 진주문을 결합시켰다.
시전자에게는 주문을 시전할 수 있는 만큼의 마력을 심어뒀다. 다만 주문을 실행할 때 조건이 완벽하지 못했다.
실패한 주문은 이렇게 되리라 예측한듯 자신에게 빌고 있었다.
'그 동안 너무 괴로웠으니 한번만 도와주세요.’
신은 주문을 만든 사람의 과거를 살펴봤다. 어릴때 마법의 자질의 뛰어난 소녀였다.
넘쳐나는 마력을 제어하지 못해서 어른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누군가의 조작으로 마력이 폭발하면서, 자신을 지키던 주변 사람들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소녀의 성도 무너졌다. 그때부터 소녀는 지하 독방에 감금되었다.
소녀는 마법 실험체가 되었다. 10년간 마법 실험체였던 소녀는 마력이 바닥나면서 다른 나라 신부로 팔렸다.
신은 고민했다. 한번은 도와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소녀가 괘씸해서 심술을 부리기로 했다.
주문을 만든 소녀의 기억을 지웠다.
소녀를 증오했던 인간과, 소녀를 사랑했던 인간의 기억은 지우지 않은채 과거로 보냈다.
두 명이 소녀를 죽이고자, 지키고자 싸울 것이라.
주문을 실행한 자는 죄가 없었다. 그저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한 일이니.
기억을 지우지 않고 과거로 보냈다. 하지만 소녀가 사랑한 자의 기억은 지웠다. 단지 심술이었다.
신은 자신의 심술을 흐뭇하게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라 말하면서.
* * *
온드라국, 함푸스 엘리야트 왕자의 방. 아무도 깨지 않는 새벽이었다.
"헉헉, 허억."
함푸스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 잠에서 깼다. 몸을 일으켜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로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고개를 돌려 누웠던 자리를 보자 영역 표시라도 한 듯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등도 식은땀으로 차갑고 사늘했다. 양 손으로 목을 더듬었다. 목에 상처가 없자 안도감에 한숨을 쉬었다.
'하. 꿈이었나? 이렇게 감각이 생생했는데, 모두 꿈이라고?'
꿈에서 온드라국은 유스키움 제국과 전쟁 중이었다. 비등했던 전쟁은 칸타성 전투에서의 패배로 결과가 뻔해졌다.
패색을 읽은 함푸스는 이동 마법진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추격해온 제국군이 파훼해 버렸다.
최후의 발악으로 함푸스가 실드로 버티며 마탑주가 이동 마법진을 재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소드마스터 리카드가 실드를 쉽게 없애고는 함푸스의 목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함푸스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다 잠에서 깼다.
'이건 예지몽인가. 미래를 보는 마법은 한번도 연구한 적이 없었는데.'
함푸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협탁에 있는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소파로 걸어가 털썩 주저 앉은 후 머리를 뒤로 젖혔다.
꿈속에서 겪은 일들을 단순히 악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마치 앞으로의 일을 누가 알려준 것 같았다.
'신이 앞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려주는 건가.'
알 수 없는 찜찜함에 몸을 살피던 함푸스는 이상한 걸 감지했다.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마력 친화도가 어제와 달리 비약적으로 상승한 기분이 들었다.
잠들기 전만 해도 마력을 온전하게 모으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함푸스가 만드는 실드는 깨진 유리창문을 억지로 이은 것처럼 불안정했다.
실제로 어제 만든 실드는 만들자마자 금이 가며 깨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력이 안정적으로 응집되는 것 같았다.
함푸스는 양손으로 마력을 모으고 실드를 만들었다.
'아.'
함푸스는 자신이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완벽한 실드를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혹시 깨진 곳, 금이 간 곳이 없는지 고개를 돌려가며 세심히 살펴봤지만 빈틈없이 완벽한 실드였다.
오늘 당장 실드 강도 테스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실드를 지웠다.
함푸스가 마력을 거두자 머릿속에 실험하지 않았던 마법식들이 떠올랐다.
'내가 이런 마법식을 본 적이 있었나?'
함푸스는 새로운 이동 마법식, 몬스터 소환 마법식, 정신 마법식이 머릿 속에서 그려졌다.
절반만 그려진 마법식들도 있었다. 연구 중인 마법식이었나. 그 중 선명하게 떠오르는 마법식을 실험하고 싶었다.
'몬스터 소환 마법식? 만들어볼까?'
함푸스는 마력을 모으고 머릿속에 그려진 마법진을 바닥에 그렸다. 마법진이 완성되자 스켈리톤 무리가 검을 들고 나왔다.
'허. 이게 된다고?'
함푸스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때 스켈리톤이 하나, 둘 마법진을 나와 함푸스에게 살기를 뿜으며 다가갔다.
함푸스는 깜짝 놀라 마법진을 갈무리했다. 마법진 위에 있던 스켈리톤 무리는 사라졌지만, 마법진을 빠져나온 스켈리톤 두 마리는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함푸스는 뒷걸음치며 실드를 만들었다. 스켈리톤 두 마리가 실드가 있는 것도 모른채 함푸스에게 달려들었다.
스르르륵.
'헉. 실드가 다른건가.'
실드로 뛰어 든 스켈리톤이 실드 외벽에 닿자 녹아버렸다. 그 동안 알고 있던 실드와 전혀 달랐다.
보통의 실드마법은 상대를 고무공처럼 튕겨내는데 지금의 실드 마법은 상대방을 완전히 녹였다.
"큭큭. 크크크크."
함푸스는 주먹을 꽉 쥐고 큰소리로 웃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법 수준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마법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절반만 그려진 마법식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완성만 한다면 엄청난 마법일거라 생각 들었다.
강해진 자신을 느끼자 내면에서 꿈에서 느낀 제국에 대한 복수심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목을 벤 적기사 리카드에 대한 적개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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