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광산탐사 (1)
조회 : 811 추천 : 0 글자수 : 5,740 자 2022-10-25
로잘리아는 아침부터 찾아온 아우구스와 하랄드에 심기가 불편했다.
심지어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시녀들을 닥달하면서 막무가내로 들어왔다.
로잘리아는 일부러 시녀들의 머리 단장을 받으며 아우구스의 시선을 멀리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요?”
로잘리아는 이유가 짐작됐다. 귀족회의에서 발테리 상단에 유리하도록 여론을 만들어 달라는 거겠지.
더불어 황제 폐하의 지지까지. 황후의 아버지라는 것을 앞세운 아우구스는 늘 이럴 때만 로잘리아를 찾아왔다.
오라버니인 하랄드까지 왔다면 평소보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로잘리아의 심기가 불편함을 눈치챈 하랄드 소후작이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후 폐하, 별일 없으신지요?”
로잘리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별일 있어서 오셨겠죠. 바쁘니까 용건이나 말하세요.”
“하하하. 폐하도 참. 오랜만에 가족끼 담소를 나누고 싶기도…”
로잘리아는 아우구스의 말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담소라, 아버지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시네요.”
아우구스는 로잘리아의 냉대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하랄드에게 가져온 선물을 꺼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하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해온 보석함을 꺼내 로잘리아 앞 테이블에 올려놨다. 로잘리아는 냉담한 표정을 풀며 물었다.
“뭔가요?”
아우구스의 선물은 남부 왕국에서 수입한 화이트골드 다이아몬드 브로치였다.
중앙의 꽃망울은 5캐럿의 다이어몬드로 세공되었고, 외부에는 크고 작은 꽃잎이 이중으로 장식되었다.
“아름답군요.”
하랄드는 이때가 기회인 듯 브로치에 대한 자랑을 시작했다.
“남부 아사리아 제국에서 왕비를 위해 한정판으로 제작된 브로치라고 합니다.
경매장에서 장미꽃 문양을 보자 로잘리아 황후 폐하가 생각나서 준비했습니다.”
로잘리아는 하랄드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하랄드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진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서 준비했다는 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로잘리아가 시녀를 쳐다보자, 시녀는 보석함에서 브로치를 꺼내 로잘리아의 왼쪽 가슴에 달고 자리로 돌아갔다.
“흠.”
로잘리아는 거울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우아하게 반짝이는 브로치가 만족스러워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거라.”
하랄드는 로잘리아가 만족한 표정을 짓자 입꼬리를 올렸다.
“황후폐하 봄 무도회에 착용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뇌물을 받았으니 이제 부탁을 받을 시간이었다. 로잘리아는 어쩔 수 없이 나오는 한숨을 숨기지 않고 쉬었다.
“후. 그래요 이번엔 또 뭘 해드리면 되죠?”
로잘리아는 선물로 자신을 달래며 청탁을 하는 아우구스가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업이 잘되면 그녀도 얻는 게 많아 지금처럼 마지못해 들어주는 일이 잦았다.
이번 일도 잘 되면 티파티에서 값진 선물들이 쏟아질 테지. 그럴 때의 붕 뜨는 기분은 황제 보다 위에 선 것 같아 황홀할 지경이었다.
아우구스는 준비한 상단 보고서를 올렸다.
“북동부 키아리아 산맥에 마정석 광산이 발견되었습니다. 저희 발테리 상단에서 탐사를 진행했는데 매장량이 상당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정석을 캐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광산 개발이...”
“개발이 왜요?”
“황제 폐하는 파르만 황자에게 마정석 광산 개발 사업을 맡기실 모양입니다.”
파르만 이름이 나오자 로잘리아 황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짐짓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보고서와 아우구스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이해가 되질 않군요. 파르만은 광산개발 사업을 해 본적도 없을텐데.”
하랄드는 로잘리아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표면적으로는 파르만 황자지만 그의 곁에는 레오카디 프레오 백작이 있으니까요.
노련한 레오카디 백작이 지원하니 황제 폐하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시는 거지요.”
레오카디 프레오 백작 이름이 나오자 로잘리아 주변 기운이 싸늘해졌다.
또 레오카디 백작이라고. 로잘리아의 중얼거림에 하랄드는 부연설명했다.
“레오카디 백작은 광산 수익으로 황실 재정을 채우고 키아리아 산맥을 낀 북동부에 이익을 나누는 방안의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수익 절반은 황궁으로 나머지는 북동부에 준다는 것인데, 동부는 인력 지원을 한 대가로 북부는 경비를 한 대가로 수익을 배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거기다 광산 개발을 하면서 키아리아 산맥 주변에 도시를 만들어 광산과 수도를 잇는 직선 도로까지 만든다고 합니다.”
로잘리아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쳤다. 고개를 내려 발테리 상단의 보고서를 뚫어지게 봤다.
펼치지 않아도 레오카디 백작과 상반되는 내용의 보고서일 게 뻔했다.
로잘리아는 보고서를 보지 않고 하랄드를 쳐다봤다.
“레오카디 백작 다운 생각이네요. 개발에 참여한 모두에게 이익을 나누다니, 계획의 의도가 꽤 좋습니다.
거기다 실리도 챙겼어요. 이익 배분하는 조건으로 북부를 끌어들여 마물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받겠다는 거겠죠.
빈곤한 동부의 발달은 황제 폐하의 오랜 고민거리였으니 직선 도로로 그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것이고.
무엇 하나 빈틈이 없군요. 이렇게 멋진 계획에 맞설 발테리 상단 계획은 무엇입니까?”
하랄드는 흠칫 거리면서 로잘리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희는 마물 퇴치로 용병을 고용해 비용을 절감할 겁니다. 전체 수익에서 25%이나 북부에 주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마물을 퇴치하는 거지요.
직선 도로는 저희도 만들 거니까 동부의 발전을 돕는 것은 똑같습니다.
대신 동부의 인력 지원을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없애고, 저희 자체적으로 인력을 투자해 광산을 개발할 것입니다.
그러면 광산 수익이 레오카디 백작의 계획보다 200% 이상입니다.
저희가 훨씬 효율적으로 광산을 개발하는 것이죠. 많이 남긴 수익을 황궁과 나눌 것이고 황후 폐하께도 10%를 따로 드리겠습니다. “
로잘리아는 하랄드에게 낮은 음조로 물었다.
“혹시 발테리 상단은 이익의 절반을 가져가는 건가요?”
“…”
로잘리아는 긍정의 침묵을 확인하자 한숨을 쉬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우구스와 하랄드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구겼다.
“후작님, 능력이 모자르면 은퇴하시라고 했는데. 이렇게 뻔히 보이는 속내로 저에게 폐하를 설득하라고 하시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로잘리아는 구겨진 종이를 보란듯이 아우구스 앞에 던졌다. 아우구스의 얼굴이 완전히 구겨졌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 그것이.”
로잘리아는 한심하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 누르면서 말했다.
“배분부터 정확하게 제시하세요. 상단 배분을 줄이고 황궁 배분을 늘리세요. 황제 폐하 개인 금고로 최소 5%이상 넣어주세요.
폐하께서 계집놀음에 바쁘셔서 사비가 많이 필요하시다네요. 제가 아니면 누가 채워드리겠어요?”
“아…아직도.”
로잘리아의 제안에 아우구스와 하랄드는 눈치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직선도로로 도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해도 있어 보이는 번지르르한 계획을 만드세요.
남부 빈민가 인구를 신도시로 이주시키면 도시가 빠르게 활성화되겠네요.
레오카디 백작의 보고서를 베끼어서라도 있어 보이게 보고서를 다시 쓰세요.
이대로는 전혀 승산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던가, 이러다 또 뺏기겠어요.”
“그…”
아우구스는 로잘리아의 마지막 말에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삼켰다. 레오카디에게 뺏긴 사업권이 수두룩했다.
특히 남서 항구 도로 건설안은 치명적이었다.
레오카디는 수도에서 남서 항구를 연결하는 도로를 제안했고, 아우구스는 자기 영지인 마타와 남서 항구를 연결하는 도로를 제안했었다.
그때 사업권을 땄다면 마타를 통해 남부 아사리아 제국과 무역하기 수월했을 테고, 북부로 식량을 운송하기에도 편했을 터였다.
로잘리아는 레오카디 백작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싫었다.
레오카디 백작은 황제의 오른팔로 파르만 황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아들인 아이나르를 황태자로 만들려면 외가 세력이 레오카디 세력보다 커야 했다.
로잘리아는 차가운 말투로 아우구스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레오카디 백작이 등용한 아카데미 출신 세력이 커지고 있어요. 두분 다 정신차리세요.”
하랄드는 아우구스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네.”
로잘리아는 보고서를 뒤적거렸다. 앞장에 추가 탐사 일정이 적혀 있었다. 바로 며칠 뒤가 추가 탐사 날이었다.
“5일 뒤에 레오카디 백작이 광산 탐사를 가는 군요. 그 때 발테리 상단 사람도 같이 가세요.
오라버니가 가는 것이 좋겠어요. 아버님은 광산 개발안부터 수정해오세요.”
탁!
로잘리아는 할 말이 더 이상 없는 듯 손바닥을 치며 자리에 일어났다.
“그리고 두분 다 앞으로는 연락없이 오지 마세요.”
로잘리아는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몸을 돌려 응접실을 나갔다. 문 밖에는 대기했던 시녀들이 로잘리아 뒤를 따랐다.
“정원으로 가자.”
* * *
포근해진 봄날, 아델리아는 광산 탐사대에 합류했다.
마차 안에는 레오카디 프레오와 부관인 야노스가 광산 탐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광산 탐사에 진심인 그들과 달리 아델리아는 리카드만 떠올리고 있었다.
그 동안 편지를 3번이나 보냈지만, 단 한통의 답장도 받지 못했다. 얌전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광산 탐사를 핑계로 리카드를 만날 작정이었다.
‘뭐야 북부로 가더니 맘이 변했어.’
이맘때쯤 레오카디가 북동부에 새로 발견된 광산 탐사를 갔던 사실을 떠올렸다.
회귀 전 내무부에서 했던 첫번째 업무가 광산 개발이어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발테리 상단과 크레앙 상단이 개발권을 두고 경쟁해 귀족 사회에서 큰 이슈였지만, 대체로 크레앙 상단이 이길 거라 예측했었다.
하지만 황제가 발테리 상단을 선택해 모두가 충격을 받았었다.
황제의 선택에 다들 로비가 있었다고 확신했지만 레오카디 백작만은 황제를 믿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과 달리 황제는 청렴한 인간이 아니었다.
발테리 상단은 황제에게 수익 일부를 상납하겠다고 약조했고, 그 사실을 머지않아 레오카디 백작도 알게 되었다.
레오카디 백작은 아델리아에게 황제가 변했다면서 잠시 국정에 손을 놓았었다. 그래봐야 백작저에서 하루였지만.
발테리 상단은 사업권을 따 희희낙락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광산의 마물을 완벽히 처리하는데 실패해 결국은 철수하게 된다.
광산 개발권은 다시 황실에 반납했지만, 위험성이 알려진 광산 개발에 뛰어드는 자는 없었다.
뒤늦게 황제가 북부대공에게 제안했으나, 마물토벌이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아델리아는 야노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는 레오카디를 보았다. 그의 얼굴엔 개발권이 이미 확보된 것처럼 확신이 서려 있었다.
‘황제나 좀 어떻게 해보시지.’
아델리아는 늘 정공법만 택하는 레오카디가 답답했다. 때론 옳은 일을 위해 아첨도 필요한 것인데.
막상 레오카디가 황제에게 아첨하는 걸 상상하니 설핏 웃음이 났다.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렸다.
레오카디는 아델리아의 웃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치켜 들었다.
“뭐 불편한 것이라도 있니?”
“아니에요. 광산이 궁금해서 듣고 있었어요.”
야노스는 해사하게 웃으며 자신이 보던 보고서를 아델리아에게 내밀었다.
“아가씨, 심심하면 이거 보세요. 탐사 일정과 1차로 조사한 내용입니다.”
아델리아는 살짝 웃으며 보고서를 받았다. 보고서 중간에 탐사대원 명단이 있었다.
북부 탐사대 경비지원 리카드 에오시엔트.
이름을 보자 보고 싶다는 마음과 괘씸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리카드, 왜 답장을 안 해주는 거야.’
아델리아는 눈썹을 찡그렸다. 얼마나 바쁘길래 짧은 답장도 안 하는 리카드가 야속할 뿐이었다.
야노스가 준 보고서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리카드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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