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광산탐사 (2)
조회 : 784 추천 : 0 글자수 : 5,621 자 2022-11-02
레오카디 백작의 탐사대는 일주일간 이동 끝에 오카트로에 도착했다.
오카트로는 마정석이 발견된 광산까지 마차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소규모 마을이었다.
아델리아는 경호로 따라온 레아와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레아는 올리비아 백작부인의 호위 기사로 어릴 때부터 아델리아와 검술수련을 함께했었다.
올리비아는 이번 탐사를 허락하는 대신 아델리아에게 레아를 반드시 호위로 데려갈 것을 요구했다.
아델리아는 검술대회 준비도 해야 했기에 레아의 동행이 달가웠다.
이동기간 내내 아침과 저녁으로 레아와 검술 대련을 하면서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오늘도 아델리아와 레아는 짐 정리를 끝내자마자 검술대련을 하고 있었다.
탁. 탁. 턱.
아델리아의 연속 찌르기 공격을 쳐낸 레아가 말했다.
“아가씨, 출발 때보다 검이 많이 날카로워 지셨습니다.”
“그래? 난 아직 둔한 것 같은데.”
레아는 검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아델리아는 재빨리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어 피한 후 목 베기로 반격했지만, 레아의 검에 막혔다.
스으윽 탁.
레아는 검이 맞물리자 검을 비틀어 아델리아의 검을 힘으로 눌렀다.
아델리아는 한발 뒤로 빼면서 검을 물렸다.
아델리아와 레아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빈틈을 찾기 위해 노려봤다. 그 때 누군가 아델리아를 불렀다.
“아가씨, 백작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백작가의 기사단장인 케사르 옐런 남작으로 레오카디가 발굴한 인재였다.
어릴 때부터 검술에 재능이 있었던 케사르는 레오카디의 후원을 받아 수도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케사르는 일반 과목은 평범했지만, 무과 과목만큼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졸업했다.
졸업당시 황실 기사단장이 직접 찾아와서 입단 제의를 하기도 했었다.
케사르는 자신을 길러준 레오카디에게 보답하고자 프레오 백작가의 기사단을 지원했다.
“레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네.”
“수고하셨습니다. 아가씨.”
아델리아와 레아는 상대방에게 목례를 하면서 대련을 끝냈다.
아델리아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레아에게 말했다.
“레아도 고생했어. 같이 올라가서 쉬자.”
“저는 아가씨 몸단장만 도와드리고 내려오겠습니다. 저녁에 회의가 있어서요.”
“번거롭게 왔다갔다 할 필요 없다.
아가씨 몸단장은 다른 하녀가 하면 되니 너는 여기서 쉬다가 회의에 가거라. 아가씨를 경호하려면 컨디션 조절도 필요해.”
레아는 케사르에게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네, 그래도 광산 주변 위험지역만 확인하겠습니다.”
레아는 케사르에게 목례를 하고 아델리아에게 말했다.
“아가씨, 가시죠.”
“어.”
아델리아는 케사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레아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아델리아는 레아가 건네주는 물수건으로 간단히 얼굴과 손을 닦았다.
레아에게 간단한 머리 손질을 받으면서 간편한 활동용 드레스로 갈아입을까 고민했다. 지금 옷은 훈련복이라 영애가 입을 법한 옷은 아니었다.
레오카디는 아델리아의 검술훈련을 내내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북부에 따라오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아 했지만.
레오카디가 검술 훈련을 이미 알고 있기에 번거롭게 옷을 갈아입어가며 숨길 필요는 없었다.
결국 귀찮음이 승리해 아델리아는 옷 갈아입는 걸 생략했다.
“레아, 먼저 씻고 쉬고 있어. 갔다올게.”
“네, 아가씨.”
아델리아는 방을 나와 레오카디 방으로 갔다. 노크를 하자마자, 안 쪽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는 레오카디와 야노스가 테이블에 지도를 두고 이야기 중이었다. 아델리아는 빈 의자에 가서 앉았다.
“왔구나, 어디 불편한 곳은 없니?”
레오카디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델리아를 바라봤다.
광산 지역이 위험하기도 했지만, 아델리아에게 이처럼 긴 여정이 처음이라고 생각한 탓도 있었다.
아델리아는 회귀 전 지방 사찰을 종종 다녔던 터라 이번 여정이 힘이 들진 않았다.
“저야 마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괜찮아요. 검술 대련도 했는걸요. 그보다 북부 경비대는 언제 만나요?”
아델리아는 리카드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음 마음에 속말이 나왔음을 깨닫고 아차했다.
레오카디가 무표정하게 자신을 쳐다보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레오카디를 쳐다봤다.
“낼 정오쯤 만나겠지. 여기서 한시간만 더 가면 오래 전 마물 토벌을 위해 북부에서 만들어둔 주둔지가 있단다."
아델리아는 레오카디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지도를 살펴보던 야노스가 레오카디에게 질문했다.
“마물이 공격하면 발테리 상단은 어떻게 할까요? 상단 인원이 너무 조촐합니다.
소후작과 호위기사 2명만 왔더군요. 설마했는데 더 따라오는 호위 기사들은 없었습니다.”
레오카디는 턱을 어루만지면서 생각했다. 발테리 상단이 잘못될 경우 황후가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곧 결론을 내렸다.
“그쪽은 신경 쓰지 마라. 황실에 보고없이 따라온 자들이다.”
레오카디는 발테리 상단이 자신을 따라온 이유가 짐작됐기에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레오카디는 북부에서 받은 지도를 보면서 회의를 계속했다. 마물 토벌 지도인지 곳곳에 마물 토벌과 관련된 표식이 있었다.
레오카디가 야노스에게 광산 주변 경비에 대한 세부 사항을 지시하고 대화를 끝냈다.
레오카디는 몸을 뒤로 제치고 아델리아를 쳐다봤다.
“아델, 내일은 북부 소공작하고 마물토벌 계획과 경비 문제만 논의하면 된다.”
레오카드는 미간을 좁히면서 지시봉으로 지도에서 한곳을 찍으며 말했다.
“내일은 여기에만 있거라. 북부 경비인원이 있어 가장 안전한 곳이다.”
아델리아는 레오카디가 가리키는 지역을 쳐다봤다. 북부에서 오래전 사용했다는 집결지였다.
“네, 아버지.”
“난 아직도 이 먼 곳까지 따라온 이유를 모르겠구나.”
아델리아는 리카드 소공자를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레오카디 앞이라 다른 핑계를 댔다.
“북부에 한 번은 오고 싶었어요. 그리고 마정석 광산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레오카디는 아델리아의 대답을 믿지 못하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야노스, 케사르에게 광산에 가면 아델리아 호위로 두 세명 더 붙이도록 해라.”
“네, 백작님.”
레오카디는 아델리아에게 경고를 하듯이 낮은 음조로 말했다.
“아델, 쓸데없는 행동은 삼가하고 늘 호위기사와 다니거라. 가급적 집결지 내에서만 있어라.”
아델리아는 리카드 주변에 있고 싶다고 말하려는 것을 꾹 참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
“피곤할 테니 그만 가서 쉬거라.”
회의를 끝내자마자 레오카디가 내린 축객령에 아델리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정오, 탐사대는 집결지에 도착했다. 아델리아는 레아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내렸다.
집결지는 이미 마물과 한바탕 했는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어디선가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필립 살아있는 마물이 더 있는지 주변을 수색해.”
아델리아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리카드가 검을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리카드, 보고 싶었어.’
아델리아는 당장이라도 리카드에게 달려가 가슴에 안기고 싶었다. 주변시선은 나중문제였다.
회귀 전 그날밤 자신을 감싸안으며 화살을 대신 맞고 쓰러졌던 리카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간을 되돌렸으니 리카드는 화살에 맞아 쓰러지지 않았다.
당연히 리카드는 아무 일도 없었고, 기억조차 없겠지.
그럼에도 직접 안위를 봐야 걱정이 내려앉을 것 같았는데 이제야 좀 안심이 됐다.
“아가씨. 백작님께서 부르십니다.”
아델리아는 레아의 말에 퍼뜩 상념이 깨졌다.
고개를 돌려 레오카디를 보자, 리카드와 대화중이었다. 아델리아는 리카드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쿵, 쿵, 쿵.
분명히 자신은 큰 소리를 내면서 걷는 것은 아닐테데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리카드는 고개를 돌려 아델리아를 쳐다봤다. 리카드와 눈이 마주치자 눈가가 떨렸다.
아델리아는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리카드 앞에 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소공자님, 아델리아 프레오입니다.”
아델리아는 아카데미 시절처럼 선배라고 부르면서 인사를 할까 했었다.
하지만 유난히 빤히 쳐다보는 레오카디를 보고 태도를 고쳐 예법에 맞춰 인사를 했다.
“리카드 에오시엔트입니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리카드는 아델리아와 인사를 간단히 끝내고 레오카디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마치 아델리아하고는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듯 몸을 돌렸다.
‘응, 이게 끝?’
아델리아는 리카드의 무뚝뚝한 표정에 입술을 깨물었다. 최소한 손등에 가벼 키스라도 해줄 거라고 기대했었다.
물론 귀족영식들에게는 친근함을 표시하는 방법이긴 했지만, 과거 리카드는 아무하고나 손등키스를 하지 않았다.
아델리아는 손을 내밀면 리카드를 잡을 수 있을만큼 가까운 거리인데 이상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순간 회귀 전에도 나에게 이리 무뚝뚝했었나 고민했었다.
그건 아니었다. 리카드는 북부로 떠나기전 손등 키스는 물론, 서신왕래도 꾸준했었고, 아델리아를 위해 전서구까지 훈련시켜 줬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마치 아델리아를 모르는 사람인듯,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말투였다.
“아델, 공자하고 주변을 둘러볼테니 여기서 기다리거라.”
리카드와 레오카디는 주변을 쳐다보면서 광산쪽으로 이동했다. 아델리아는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로 레오카디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를 모른척하는거야?’
아델리아는 실망스러움을 갖추지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회귀 전 일을 기억하고 있을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무심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다.
혹시 회귀하면서 리카드의 기억이 달라진 게 아닐까 추측도 해봤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회귀 전 기억 그대로였다.
아니겠지 하면서 혹시 아카데미 땐 나를 데리고 놀았던 건 아닐까하는 불안감도 생겼다.
아델리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분을 토해 버렸다. 성큼성큼 리카드의 뒤를 쫓아가 리카드의 손을 잡았다.
“리카드 선배.”
아델리아는 눈을 치켜뜨고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리카드를 노려봤다.
광산으로 가던 일행들이 일제히 그 자리에 멈추고 아델리아를 쳐다봤다. 레아는 아델리아의 행동에 깜짝 놀라 쫓아가 팔을 잡았다.
“아가씨.”
레오카디는 귀족 영애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아델리아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같은 아카데미 출신이라도 서로를 부를 땐 예법에 따라야 했다.
게다가 귀족 영애는 함부로 남자의 손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레오카디가 알고 있는 예법이었다.
리카드는 아델리아를 보며 눈만 깜빡거렸다. 리카드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선배라고? 내가 선배라고 불릴 사이였던가?’
아니다. 그깟 검술대련 한두번을 했다고 선후배라고 부르는 사이라면 얼마나 많은가.
리카드는 수없이 많은 대련을 했지만, 단한번도 선배라는 호칭을 허락한 적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단 필립이 얼굴을 찡그리고 리카드를 나무라는 듯 말했다.
“그러게 제가 편지 내용이라도 보라고 했잖습니까?”
리카드는 필립의 뒤통수를 칠듯한 말투로 말했다.
“시끄러워.”
리카드는 한손으로 얼굴을 쓸어올렸다.
“저기 영애, 일단 놓고 말씀하시죠.”
아델리아는 주변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였다.
리카드와 아카데미를 시절에도 리카드 손을 함부로 잡은 적은 없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리카드 태도에 화가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덥썩 손을 잡다니.
아델리아는 이미 사고친 것 더 뻔뻔해지자는 마음이 들었다.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리카드에게 물었다.
“리카드 선배, 왜 답장을 안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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