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빙다리 핫바지 같은 새끼야!
조회 : 1,593 추천 : 0 글자수 : 5,428 자 2022-08-13
대학 생활은 무척이나 평범하다.
축제라던가, 저녁마다 이루어지는 술 파티라던가, 그런 꿈같은 환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여성과의 연애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과제와 시험의 지옥은 대학생들의 빈 머릿속을 사정없이 두들기고, 비싼 등록금은 척추가 부러질 정도로 무겁다.
“에휴…….”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대학로를 걷는 경철도 다르지 않았다.
복학생이라는 딱지를 아직도 떼지 못한 경철에게는 대학교란 이미 신세계가 아니었다.
맛없는 식당 밥.
차고 넘치는 과제들.
이미 졸업반이라 얼굴 볼 새 없는 동기 여학생들.
반겨 주지 않은 새내기들은 둘째 치더라도, 여학생들은 그를 아재라고 부르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도 연애하고 싶은데…….’
솔직히 수업이나 학점보단 그쪽이 더 신경 쓰인다. 오죽했으면, 애인 만들고 싶어서 예쁜 여학생들이 자주 오간다는 디자인학과를 전공했을까.
경철은 삐죽삐죽 솟아나기 시작한 밤톨 같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옷매무새를 정리해보았다.
디자인학과에 다니는 학생답게 경철의 패션은 말끔해 보이면서도 센스가 무척 돋보였다.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패션스타일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썼는지 잘 알게 해주었다.
다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했던가?
경철의 그 모습이 막 사회로 갓 나온 듯한 밤톨 머리의 복학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여자친구는커녕 여자 사람 친구도 생길지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얼굴이 다가 아니랬어.’
군대 가기 전 학과에서 인기 좋던 자신의 친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기의 반은 능력이고, 나머지 반은 입담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우의 얼굴이 떠오르자 우울했던 마음이 그나마 가셨다.
마침 그때,
누군가가 경철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그의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다.
“아, 죄송합니다.”
중성적인 느낌이 나는 맑은 목소리. 경철의 시선이 자신을 앞서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저 절로 쫓았다.
검은색 숏컷 머리에 호리호리한 뒷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스키니진을 입어 다리의 각선미를 그대로 드러낸 체 바삐 걷는 한 학생. 그 모습이 굉장히 귀엽고 섹시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그 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좀 더 앞에 가서 볼까?’
문득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경철은 자기도 모르게 홀린 듯, 자신의 앞을 앞서 나가는 여학생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경철은 앞서 나가는 그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키는 작았다.
어깨는 좁고 왜소해 보여, 조금만 방심하면 감싸 안아주고 싶어질 정도로 귀여웠다.
펑퍼짐한 청재킷을 입고 있어 몸매는 잘 보이진 않지만, 드러난 그녀의 각선미를 보아하니 제법 몸매도 예쁠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이 더욱더 궁금해졌다.
걸음이 아까보다 더 빨라졌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녀 앞에 서서 진로를 방해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괜스레 나쁜 인상만 심어줄 수도 있었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경철은 촛불 심지만큼 남은 용기를 모두 끌어다 모아 있는 힘껏 그녀를 불렀다.
“저, 저기요.”
긴장 때문인지 괜스레 입술이 바르르 떨리며 목소리가 뒤집어진다. 경철은 애꿎은 자신의 입을 탓하며, 긴장에서 풀려나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두근대는 가슴이 조금이나마 멈추는 것 같았다.
이런 경철의 마음과는 반대로 앞서가던 숏컷 머리의 여성이 자리에서 멈췄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연신 정신없이 움직이던 그녀의 머리가 경철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무슨 일이시죠?”
여성치고는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
하지만 경철은 그것마저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여성의 얼굴을 확인했다.
‘헉!’
순간적으로 헛바람을 삼켰다.
양쪽 눈 끝이 살포시 위로 올라간 커다란 눈망울이 제일 먼저 시야에 다가온다. 도도함과 자존심이 동시에 존재하는 고고한 눈이었다.
그 밑으로 존재하는 오똑한 콧날은 그녀가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지 잘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도톰한 입술.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살짝 어그러져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경철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정도로 고혹적이다.
전체적으로 고양이 상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고양이.
“저, 저기 그러니까…….”
혓바닥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심장의 간헐적인 떨림이 방해되어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아무말이나 지껄일것 같았다.
여성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그 모습이 마치, ‘불러놓고 어쩌라는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 경철의 마음에 조급함이 커진다.
경철은 애써 날뛰는 심장을 다 잡으며,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한 후, 나직이 입을 열었다.
“…혹시 대학교는 처음인가요?”
여성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든다.
“…아 네. 그런데 어떻게 아셨죠?”
당신이 하는 행동만 봐도 다 알 수 있습니다. 목구멍까지 치솟은 말을 집어넣고, 최대한 뇌내의 필터링을 거쳐 입밖으로 내보냈다.
“……어딘가 열심히 찾고 계신거 같아서요. 보통 새내기들이 학교 지리를 다 못익혀서 이렇게 해매는 걸 몇 번이나 본적이 있거든요.”
걱정했던 것보다 말이 잘나온다. 경철은 혓바닥이 생각보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버텨라 내 혓바닥아.’
“그렇군요…….”
여성은 납득했다는 얼굴로 경철을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경계하던 모습도 옅어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철은 괜스레 기분이 업되는 것을 느끼며 조그만 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안내해주어도 괜찮을까요?”
“…아, 그래도 괜찮을까요? 안 그래도 저 동아리 건물을 찾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보이지 않더라구요.”
뒷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 숏컷 머리의 여성. 외모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털털한 그 모습에 경철의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씰룩거리며 올라간다.
귀엽다.
“하하, 동아리 건물은 여기가 아니고, 저쪽 동에 있어요.”
“아, 그랬었군요. 제가 좀 머리가 나빠서 길을 외우는데 시간이 걸려서요.”
길을 외우는 데 시간이 걸린다? 경철에 머릿속에 작은 물음표가 하나 떠올랐다. 보통 처음 가보는 길을 저렇게 표현 하던가?
“가보신적이 있으셨던가요?”
경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여성은 그런 경철의 물음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운 입술을 열었다.
“네, 저 ‘오컬트 포토’에 새로 가입한 신입이라서요. 몇 번을 가봤는데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오컬트 포토.
그곳은 자신이 군대 가기전에 만든 사진을 찍는 동아리였다. 이런 신기한 우연이 있을 수가 있을까? 오늘 처음 본 가장 예쁜 새내기 여학생이 하필 자신이 만든 동아리에 가입한 새내기였다니…….
경철은 솟아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몇 번씩 ‘YES!!'를 외쳤다. 이런 굉장한 인연이라니, 이번 해는 뭔가 될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 제가 있는 곳이네요.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안 그래도 거기서 친구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여성을 보니 마음이 다 흐뭇해진다. 어쩌면 자신에게 호감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절로 씰룩씰룩 올라간다. 경철은 폭주하기 시작한 자신의 입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뱉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에스코트하는 제가 영광인걸요.”
순간 여학생의 몸이 우뚝 멈췄다.
“아가씨……?”
그녀가 가지고 있던 상냥했던 분위기가 굳어졌다. 하지만 눈치가 없었던 경철은 그 순간을 알아채지 못했다. 폭주하는 혓바닥을 정신없이 굴려댈 뿐이었다.
“네. 이렇게 예쁜 새내기가 우리 동아리방에 가입하셨다니, 안 그래도 칙칙한 놈들밖에 없었던지라 좀 아쉬웠었는데……. 하하.”
경철의 말이 하나 둘 올라올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져 간다.
“…제가 그렇게 계집애처럼 보이나요……”
딱딱한 그녀의 말투. 하지만 경철은 그녀의 분위기가 바뀐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제멋대로 입을 놀렸다.
“네, 두말하면 잔소리죠. 사실 이때까지 살면서 그쪽같이 예쁘고 귀여운…….”
-퍼억.
턱을 작렬하는 매운 손속에 경철의 굳건한 다리가 그대로 무너진다. 하지만 주먹을 쓴 사람은 경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쓰러지는 경철의 얼굴을 향해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왜……?’
경철은 거친 폭력에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쥐어터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그냥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었고, 그저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정신을 잃어야 할 정도로 맞아야 하는 것이었을까?
경철은 흐릿한 눈으로 자신을 때리고 있는 그 여학생을 보면서 눈으로 물어보았다.
나는 어째서 당신에게 맞고 있느냐고.
그러자 그녀의 고운 입술이 열리며 기함이 터져나왔다.
“내가 어딜봐서 여자로 보이냐! 이 빙다리 핫바지같은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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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빙다리 핫바지같은 새끼야! 지금 네가 뭐했는 지 알아?!”
째지는 소리가 복도를 뒤흔든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커다란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한다.
“왜 나한테만 그래. 그 자식이 먼저 나보고 욕했단 말이야…….”
검은 숏컷머리를 긁적이던 아현이 볼멘소리로 중얼거린다. 유나는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는지 머리를 한쪽 손으로 짚었다. 안 그래도 머릿결이 안좋아 곱슬처럼 구불구불해지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더욱더 엉망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유나는 이 모든 스트레스를 한 데 담아 아현에게 쏘아 붙였다.
“야! 넌 그게 욕으로 들리디?! 그냥 작은 오해잖아. 그깟 오해가지고 선배를 패면 어떡하냐! 그리고!”
유나의 손가락이 그의 바지를 가리킨다.
“옷을 그따위로 입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너보고 자꾸 여자같다고 시선을 주는 거잖아!”
꽉 졸라 입은 그의 스키니진. 그것도 사이즈가 여자용이다. 선도 무척이나 여리하고 크게 굴곡진 데도 없어서 누가봐도 여성의 다리라고 오해할 만큼 각선미가 돋보인다.
“다른 남자들도 이렇게 입거든?! 이게 요즘 유행하는 남자들만의 와일드한 패션이라고!”
“패션은 개뿔. 그러면 왜 남자용 스키니진을 입지. 왜 여성용을 입냐! 패션에 대해 공부는 하고 있는 거 맞아?!”
“매장에 가니까 직원이 이거 추천해주던데?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너 바보냐! 네 외모를 직시해 이 멍청아!!”
유나의 손가락이 아현의 옷차림을 하나 하나 지적하며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아현은 그녀의 지적질이 짜증났지만, 팩트 폭력의 선구주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 콧김만 세게 불어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현의 옷차림은 대학교 다니는 남학생들의 옷차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키니진을 입고 자신의 우람한 각선미를 뽐내는 남학생들도 꽤나 있었고, 패션 센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들과 아현의 사이에는 다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현의 외모.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아현의 외모는 남자라고 하기엔 무서울 정도로 예뻤다.
그것은 아현이 그 어떤 옷을 입는다하더라도, 여성스럽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유나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1학년 과대라는 직책이 존재했다. 1학년들을 대표하고, 또 윗 학년의 과대선배와 협상해야하는 얼굴.
그렇기에 학생 한 사람의 사정 때문에 고학년 선배와 얼굴 붉히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유나는 문득 떠오른얼굴에 더 분이 참아지지 않는 듯, 계속해서 아현을 쏘아붙였다.
“여튼 너 이일 어떻게 해결할거야. 안 그래도 그 선배 3학년 과선배와 친한 형 동생하는 사이라 우리 1학년 전체 비난을 받을 거 같은데, 어떻게 해결할래!”
아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 선배가 그런 친분이 두터운 사람일 줄은 누가 알았겠나. 알았으면 그냥 침 한 번만 퉤하고 뱉어줬을 것이다.
“과대야~”
나긋한 목소리. 유나의 야차 같은 얼굴이 뒤로 돌아가기도 전에 누군가가 유나의 양어깨에 팔을 올린다.
“오늘 너무 무서운데? 조금만 어깨에 힘 좀 풀면 안될까?”
“임나영……?”
유나가 자신을 뒤에서 감싸 안는 여성의 이름을 신음처럼 흘린다.
아현의 시선이 닿자 유나의 뒤를 껴안고 있던 나영이 ‘야호’하며 손을 흔들었다.
“너 여긴 왜 왔어?”
불퉁한 목소리에 나영의 얼굴이 히죽웃는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웃는 그 얼굴에, 아현의 얼굴이 불편해진다.
“뭐야.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도와주러온 부랄친구를 그렇게 홀대 해도 되는거야?”
부랄친구……?
안겨 있던 유나의 얼굴이 금세 새빨개진다. 여대생의 입에서 함부로 튀어나올 말이 아니었다. 아현은 그런 나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부탁이니까. 그런 말은 딴데가서 하라고, 과대가 지금 어쩔줄 몰라 하잖아.”
“뭐 어때, 틀린말 한 것도 아닌데, 우리 그정도로 오래된 사이 맞잖아.”
‘아무것도 몰라요. 같은 순진한 얼굴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다 이 부랄친구야.‘
아현은 머릿속에서 떠오른 대사들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괜한 화는 자초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 이번엔 너라도 어쩔 수 없어. 이번 건은 그냥 안넘어갈테니까.”
빨개진 얼굴로 말까지 더듬는 유나의 모습에 나영이 고양이 같은 얼굴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는다.
“유나야아. 우리 유나, 화가 많이 났어? 그렇게 화가 날 일도 아니잖아.”
“야! 너 또 부, 아니 소꿉친구라고 편들어주는 거야? 저런 폭력적인 애는 한 번 크게 혼이 나야한다는 거 알아? 몰라?”
아현의 입이 삐죽인다. 불만스러웠지만 틀린말은 아니었기에 아현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대신 입을 연 것은 나영이었다.
“당연히 알지. 그래서 이 몸이 진짜 좋은 아이디어 하나 들고 왔어!”
“…아이디어?”
유나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그에 비해 아현의 고운 아미가 찡그러진다.
그러던가 말던가 나영은 만개한 꽃처럼 활짝 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 했다.
“여장”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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