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 0×2×2×2×...
조회 : 1,368 추천 : 0 글자수 : 4,283 자 2023-06-18
화요일 오전 9시.
알림
입금 12,000,000,000원 굿네이버스
잔액 12,057,650,520원
오전 9:00
잠에서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신평은 스마트폰을 침대에 내려놓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어제 들어오자마자 옷을 입은 채로 그냥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온몸이 땀에 쩔어 있다.
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면서 방금 보았던 숫자를 떠올려 보았다.
120억.
내일 이 시간이 되면 240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샤워기 아래에서 물을 맞으며 순간 허망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 숫자들의 길이가 사람들의 행복, 운명을 결정짓는다.
0을 하나 더 늘리기 위해서 몇 년, 수십 년 혹은 평생을 일해야 한다.
이제 난 더이상 돈에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게임, 여행, 유흥...
없을 때는 그리 하고 싶었던 것들이지만 막상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로또4등에 당첨되었을 때 느꼈던 그 희열,
스포츠토토를 사고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을 때의 그 짜릿함,
퀵서비스를 하고 돌아와 혼자 와인을 마시면서 티비를 볼 때의 행복,
돈을 아끼기 위해 길거리에서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어 헌팅이 성공했을 때의 그 성취감.
이제는 그 감정들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짜릿하고 행복한 일들이 생기겠지.
돈이 많은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쾌감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샤워를 마치고 알몸으로 방에 들어와 팬티를 입으며 이제 팬티도 비싼 명품으로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옷도 명품으로 차와 시계 구두도 모두 명품으로 바꿀 것이다.
그리고 이사도 가야 하는데 이 지긋지긋한 강북 끄트머리에서 벗어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으로 이사를 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일이면 현실이 된다.
냉장고에 생수가 떨어진 것을 확인한 그는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원룸을 나섰다.
이제 편의점도 안 갈 것이다.
적립카드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모든 생활용품을 배달시킬 것이다.
그는 편의점에 들어가자마자 냉장고쪽으로 걸어가 생수 2L짜리 한 병과 숙취 해소 음료를 하나 꺼냈다.
일어날 때부터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팠는데 어제 맥을 너무 마셔서 그런 건지 다친 이마가 아픈 건지 분간이 안 된다.
계산대 위에 생수와 숙취 해소 음료를 내려놓은 그는 처음 보는 여자 알바생에게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120억이 들어 있는 체크카드다.
"봉투 드릴까요?"
"아뇨. 됐어요."
그는 문득 며칠 전 남자 알바생과 봉투값 100원 때문에 싸웠던 일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비닐봉투 1억 장을 살 수가 있다.
----------------------------------------------------
잠시 후. 신한은행 노원역 지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창구 근처에 서 있던 신평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그녀가 귀신같이 4번 창구에 번호를 띄우는 것을 보고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와, 저 여자 참.'
그가 4번 창구로 다가가자 이경은 그를 보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는 신분증과 통장을 창구 안으로 넣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속 괜찮아?"
CCTV는 있지만 녹음이 되지 않아 대화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나 오늘 아침에 겨우 출근했어. 나도 어제 너무 마셨나 봐."
"그래, 힘들겠네. 어쩌지?"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나도 머리 아파 뒤지겠어."
입금전표의 액수란에 '백 이십 억'이라고 적은 그는 전표를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녀는 전표를 보며 이제 놀라지도 않고 키보드를 힘차게 두드렸다.
그녀가 과장에게 보고를 하지 않자 그는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려 3번 창구 여직원을 쳐다보았다.
마침 그녀도 그가 온 것을 알고 싱긋 웃으면서 눈인사를 해 주었는데 치명적인 매력이 그의 심장을 때렸다.
"자기야, 다 됐어."
"어..어? 그래. 오늘 퇴근하고 볼 거지?"
"응. 내가 카톡할게."
"그래. 근데 이건 뭐야?"
송금확인증과 함께 작은 ABC 초콜릿 하나가 창구 밖으로 나오자 그는 그녀를 쳐다봤다.
"아침에 피곤해서 한봉지 샀어. 자기도 하나 먹어."
"그래. 땡큐."
그는 송금확인증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은행밖으로 나왔다.
이제 더이상 이 은행에 올 일이 없다.
문득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뒤를 돌아본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떠오르자 만감이 교차했다.
처음 이경을 봤을 때 이렇게 연인 사이가 될 줄 상상도 못했다.
만약 3번 창구에서 자신의 대기번호가 깜박였다면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그녀와 연인이 되었을까?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느낀 그는 집 쪽으로 걷다가 다시 은행쪽으로 발길을 돌려 도로에 서 있는 빈 택시에 올라탔다.
"어서 오세요. 손님."
"아무 데나 가 주세다."
"예? 아무 데나요?"
"생각하기 좋은 곳으로."
"아, 알겠습니다. 손님. 분위기 좋은 근사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택시 기사는 이런 손님을 많이 경험해 본 듯 미터기를 누르더니 라디오 채널을 바꾸고 악셀을 밟았다.
----------------------------------------------------
잠시 후. 경기 양평 두물머리.
벤치에 앉아 강을 바라보던 신평은 전자담배의 전원이 깜박거리자 기기를 손바닥에 탁탁 내리쳤다.
벌써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담배도 없으니 이제 곧 카카오 택시를 불러 집으로 가야 한다.
택시가 서울을 완전 벗어나 인천 쪽으로 갈 줄 알았더니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양평으로 와 주었다.
양심있는 택시 기사이다.
혹시 자살을 할까 봐 물이 얕은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거의 두 시간 동안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는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앉아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두 시간 동안 그녀를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다.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통화 연결음이 두 번 울리더니 갑자기 안내 멘트가 나왔다.
-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다시 한번 통화 버튼을 눌렀다.
-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통화 연결음이 한 번 울리고 안내 멘트가 나왔다.
또다시 통화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같은 안내 멘트가 나오자 그는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 끝난다.
그녀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녀가 항상 충전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황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은행에서 구겨 넣었던 송금확인증을 꺼냈다.
신한은행 이체확인증
입금일시 : 2022.09.06 10:29:34
입금점 : 노원역 지점
보내는분 : 신평
출금계좌 : 신한/110-180-180413
받는분 : 이경
입금계좌 : 신한/110-020-286920
이체금액 : 12,000,000,000원
수수료 : 0
받는통장메모 : 이경
내통장메모 : 땡큐
위의 내용이 정상적으로 이체되었음을 확인합니다.
----------------------------------------------------
한 달 후.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 침대에 널브러진 채 초점 없는 눈으로 TV를 보던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일회용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달 10일 서울 노원구의 한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에 대한 최종 부검 결과가 '사인 불명'으로 나와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변사'로 내사 종결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명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10일 서울 노원구의 한 원룸에서 30대 여성이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최근 직장을 그만둔 딸이 계속 연락이 안 된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원룸 현관 바닥에 숨진 채 쓰러져 있는 이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고 시신에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유서도 없고 뚜렷한 자살 동기도 밝혀지지 않아 수사에 난항에 겪고 있던 중 경찰은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사건 발생 4일 전 은행 직원인 그녀의 계좌에 120억 원이 송금된 것.
이 거액을 이체한 사람은 그녀의 남자 친구로 경찰 조사에서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자신은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고 경찰은 국과수의 부검 결과만을 기다렸지만 오늘 나온 최종 부검 결과는 '사인 불명'.
경찰은 결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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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00
잠에서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신평은 스마트폰을 침대에 내려놓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어제 들어오자마자 옷을 입은 채로 그냥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온몸이 땀에 쩔어 있다.
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면서 방금 보았던 숫자를 떠올려 보았다.
120억.
내일 이 시간이 되면 240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샤워기 아래에서 물을 맞으며 순간 허망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 숫자들의 길이가 사람들의 행복, 운명을 결정짓는다.
0을 하나 더 늘리기 위해서 몇 년, 수십 년 혹은 평생을 일해야 한다.
이제 난 더이상 돈에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게임, 여행, 유흥...
없을 때는 그리 하고 싶었던 것들이지만 막상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로또4등에 당첨되었을 때 느꼈던 그 희열,
스포츠토토를 사고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을 때의 그 짜릿함,
퀵서비스를 하고 돌아와 혼자 와인을 마시면서 티비를 볼 때의 행복,
돈을 아끼기 위해 길거리에서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어 헌팅이 성공했을 때의 그 성취감.
이제는 그 감정들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짜릿하고 행복한 일들이 생기겠지.
돈이 많은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쾌감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샤워를 마치고 알몸으로 방에 들어와 팬티를 입으며 이제 팬티도 비싼 명품으로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옷도 명품으로 차와 시계 구두도 모두 명품으로 바꿀 것이다.
그리고 이사도 가야 하는데 이 지긋지긋한 강북 끄트머리에서 벗어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으로 이사를 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일이면 현실이 된다.
냉장고에 생수가 떨어진 것을 확인한 그는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원룸을 나섰다.
이제 편의점도 안 갈 것이다.
적립카드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모든 생활용품을 배달시킬 것이다.
그는 편의점에 들어가자마자 냉장고쪽으로 걸어가 생수 2L짜리 한 병과 숙취 해소 음료를 하나 꺼냈다.
일어날 때부터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팠는데 어제 맥을 너무 마셔서 그런 건지 다친 이마가 아픈 건지 분간이 안 된다.
계산대 위에 생수와 숙취 해소 음료를 내려놓은 그는 처음 보는 여자 알바생에게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120억이 들어 있는 체크카드다.
"봉투 드릴까요?"
"아뇨. 됐어요."
그는 문득 며칠 전 남자 알바생과 봉투값 100원 때문에 싸웠던 일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비닐봉투 1억 장을 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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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신한은행 노원역 지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창구 근처에 서 있던 신평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그녀가 귀신같이 4번 창구에 번호를 띄우는 것을 보고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와, 저 여자 참.'
그가 4번 창구로 다가가자 이경은 그를 보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는 신분증과 통장을 창구 안으로 넣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속 괜찮아?"
CCTV는 있지만 녹음이 되지 않아 대화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나 오늘 아침에 겨우 출근했어. 나도 어제 너무 마셨나 봐."
"그래, 힘들겠네. 어쩌지?"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나도 머리 아파 뒤지겠어."
입금전표의 액수란에 '백 이십 억'이라고 적은 그는 전표를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녀는 전표를 보며 이제 놀라지도 않고 키보드를 힘차게 두드렸다.
그녀가 과장에게 보고를 하지 않자 그는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려 3번 창구 여직원을 쳐다보았다.
마침 그녀도 그가 온 것을 알고 싱긋 웃으면서 눈인사를 해 주었는데 치명적인 매력이 그의 심장을 때렸다.
"자기야, 다 됐어."
"어..어? 그래. 오늘 퇴근하고 볼 거지?"
"응. 내가 카톡할게."
"그래. 근데 이건 뭐야?"
송금확인증과 함께 작은 ABC 초콜릿 하나가 창구 밖으로 나오자 그는 그녀를 쳐다봤다.
"아침에 피곤해서 한봉지 샀어. 자기도 하나 먹어."
"그래. 땡큐."
그는 송금확인증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은행밖으로 나왔다.
이제 더이상 이 은행에 올 일이 없다.
문득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뒤를 돌아본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떠오르자 만감이 교차했다.
처음 이경을 봤을 때 이렇게 연인 사이가 될 줄 상상도 못했다.
만약 3번 창구에서 자신의 대기번호가 깜박였다면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그녀와 연인이 되었을까?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느낀 그는 집 쪽으로 걷다가 다시 은행쪽으로 발길을 돌려 도로에 서 있는 빈 택시에 올라탔다.
"어서 오세요. 손님."
"아무 데나 가 주세다."
"예? 아무 데나요?"
"생각하기 좋은 곳으로."
"아, 알겠습니다. 손님. 분위기 좋은 근사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택시 기사는 이런 손님을 많이 경험해 본 듯 미터기를 누르더니 라디오 채널을 바꾸고 악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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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경기 양평 두물머리.
벤치에 앉아 강을 바라보던 신평은 전자담배의 전원이 깜박거리자 기기를 손바닥에 탁탁 내리쳤다.
벌써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담배도 없으니 이제 곧 카카오 택시를 불러 집으로 가야 한다.
택시가 서울을 완전 벗어나 인천 쪽으로 갈 줄 알았더니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양평으로 와 주었다.
양심있는 택시 기사이다.
혹시 자살을 할까 봐 물이 얕은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거의 두 시간 동안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는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앉아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두 시간 동안 그녀를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다.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통화 연결음이 두 번 울리더니 갑자기 안내 멘트가 나왔다.
-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다시 한번 통화 버튼을 눌렀다.
-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통화 연결음이 한 번 울리고 안내 멘트가 나왔다.
또다시 통화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같은 안내 멘트가 나오자 그는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 끝난다.
그녀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녀가 항상 충전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황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은행에서 구겨 넣었던 송금확인증을 꺼냈다.
신한은행 이체확인증
입금일시 : 2022.09.06 10:29:34
입금점 : 노원역 지점
보내는분 : 신평
출금계좌 : 신한/110-180-180413
받는분 : 이경
입금계좌 : 신한/110-020-286920
이체금액 : 12,000,000,000원
수수료 : 0
받는통장메모 : 이경
내통장메모 : 땡큐
위의 내용이 정상적으로 이체되었음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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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 침대에 널브러진 채 초점 없는 눈으로 TV를 보던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일회용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달 10일 서울 노원구의 한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에 대한 최종 부검 결과가 '사인 불명'으로 나와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변사'로 내사 종결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명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10일 서울 노원구의 한 원룸에서 30대 여성이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최근 직장을 그만둔 딸이 계속 연락이 안 된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원룸 현관 바닥에 숨진 채 쓰러져 있는 이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고 시신에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유서도 없고 뚜렷한 자살 동기도 밝혀지지 않아 수사에 난항에 겪고 있던 중 경찰은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사건 발생 4일 전 은행 직원인 그녀의 계좌에 120억 원이 송금된 것.
이 거액을 이체한 사람은 그녀의 남자 친구로 경찰 조사에서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자신은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고 경찰은 국과수의 부검 결과만을 기다렸지만 오늘 나온 최종 부검 결과는 '사인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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