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 신한은행 VVIP
조회 : 1,477 추천 : 0 글자수 : 5,494 자 2022-10-04
신한은행 노원역 지점 VIP 라운지.
3번 창구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VIP라운지로 들어선 신평은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50대 초반의 남자가 불쑥 악수를 청하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지점장 김용성입니다."
"예?아..신평입니다."
악수를 하면서 그의 손가락에 밴드가 감겨 있는 것을 본 지점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이쿠, 손을 다치셨군요. 괜찮으십니까?"
"아, 예? 아...괜찮습니다."
"어휴, 어쩌시다가 이렇게...많이 불편하시겠습니다."
갈매기한테 새우깡을 주다가 물렸다고 말할 수 없어 잠시 망설이던 신평은 그가 창가 쪽 테이블로 자신을 안내하자 그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한번 빙 둘어봤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직원들 외모까지 창구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다.
지점장이 둥근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의 자리를 권하자 그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러자 여직원이 한 명 다가오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를 건냈다.
자신을 안내했던 3번 창구 직원만큼이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외모다.
"차 한잔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커피를..."
"아, 커피로."
"여기 커피 두 잔만 좀 부탁할게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그녀의 하이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엄청난 높이의 하이힐이지만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 굽 소리도 나지 않는다.
"제가 진작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예? 아니, 무슨 인사까지..."
신평은 이곳 지점장이 도대체 무슨 일로 자신을 만나려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어 이마에 붙은 반창고를 슬슬 문질렀다.
"이제부터 창구에서 기다리지 마시고 이쪽으로 오시면 바로 업무 처리 도와드리겠습니다."
"예?"
"제가 직원들한테 미리 말 해 놓겠습니다."
밖에서 대기표를 뽑지 말고 이곳으로 바로 오라는 소리인데 이제 이틀만 지나면 이 은행에 올 일은 없다.
"아, 예. 고맙습니다."
지점장이 말을 빙빙 돌리다 VIP 우대 서비스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금융 상품을 한참 소개하자 그는 하품이 나오는 것을 몇 번이나 참으며 커피만 홀짝거렸다.
"아, 그런데 혹시 댁에 자제분들은 계신지..."
"저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아, 그러신가요? 이거 죄송합니다. 바쁘셔서 겨를이 없으시죠?"
"아니, 뭐 그냥..."
"저희가 VVIP 고객님들께 만남도 주선해 드리고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시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고객들 중에도 아직 미혼이신 젊은 여성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
"그리고 나중에 결혼하실 때에도 저희한테 말씀해 주시면 원하시는 날짜로 항공권과 숙박권을 예약해 드립니다."
"아, 예."
그는 항공기 비즈니스석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잠시 상상하다가 조금전 그 여직원이 양 손에 무언가를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이거 받으시죠."
그녀가 커다란 쇼핑백 두 개를 자신의 옆에다 내려놓자 그는 고개를 들어 지점장을 쳐다봤다.
"이..이게 뭡니까?"
"와인이랑 건강식품입니다. 이제 곧 추석이라..."
"아니, 뭐 이런 걸..."
"저희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하, 이거 참."
"저도 사실 개인적으로 고객님께서 하시는 자선활동과...그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순간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가 말하는 소탈함은 곧 찌질함이다.
"암튼, 뭐...감사합니다."
어색하게 웃어 보인 그는 쇼핑백 두 개를 집어 들고 얼른 소파에서 일어났다.
----------------------------------------------------
그날 오후 6시. 노원역 근처 곱창집.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아니."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
이경은 퇴근할 때쯤 카톡으로 오늘 곱창에 소주가 먹고 싶다며 그를 이곳으로 불러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점점 몰려들어 지금은 이 가게에서 빈자리를 찾을 수 없다.
그녀가 곱창이 나오기도 전에 소주를 자신의 잔에 따르자 신평은 은행에서 보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거기 가니까 완전 딴 세상 같더라. 지점장이 갑자기 오더니..."
"그래서 좋았어?"
"응?"
"나 놔두고 거기 가니까 좋았어?"
"......"
"하긴 그쪽 직원들이 다 한 미모들 하지."
"뭔 말이야? 아까 대기번호 뽑고 기다리는 거 봤잖아. 창구 직원이 거기로 가라 했어."
"그래서 내일도 거기로 갈거야?"
"그쪽으로 오라는데 어떡해?"
"......"
신평은 그녀가 다시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르자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보다 외모가 뛰어난 동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성격이다.
"알았어. 내일은 꼭 4번 창구로 갈게. 그런데 4번 창구에 안 걸려도 난 몰라? 그건 알지?"
"내가 타이밍 맞춰서 버튼 누르면 돼."
"그래? 알았어. 내일은 4번 창구에 꼭 갈게. 이제 됐지?"
그녀가 겨우 화가 풀어진 모습을 보이자 그는 내심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여자와 결혼하면 평생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다 빠질 것이다
"근데 아까 들고 간 건 뭐야? 뭐 받았어?"
"아, 지점장이 무슨 와인하고 황진단이가 공진단인가 한 세트 주던데..."
그렇지 않아도 그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황진단 세트부터 개봉하여 방금전 한 알 까 먹고 나오는 길이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온몸에 활력이 생기는 느낌이다.
"자기도 먹어볼래? 내일 은행에 몇 개 가져갈까?"
"그게 무슨 과자야? 아무한테나 막 주게?"
"아무나라니? 사랑하는 사람한테 주는 건데..."
"참, 말이나 못하면..."
그녀가 오늘 처음으로 웃어 보였고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푸짐한 한우 곱창이 나오자 신평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이건 술을 안 먹을 수 없겠는데?"
오랜만에 소곱창을 보니 입에서 군침이 돈다.
"여기 맥주도 한 병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가 맥주를 시키자 이경은 그에게 눈을 흘겼다.
"무슨 곱창에 맥주를 마시냐. 자기 오늘은 쏘맥 마셔. 벌주야."
"뭐? 벌주? 그래 오케이. 쏘맥 콜."
그는 내일 아침 120억이 들어오고 이제 한 번만 더 은행을 다녀오면 모든게 끝이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가 소맥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날 밤 12시.
혼자 휘청거리며 원룸 쪽으로 걸어오던 신평은 갑자기 벽을 잡고 오바이트를 했다.
"윽, 우웩."
"우웩!"
지나가던 사람들 중 몇몇이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아, 죽겠네."
저녁에 먹은 것들을 다 게워 낸 그는 머리가 핑도는 것을 느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길에서 오바이트를 하는 건 10년 만에 처음이다.
속이 다소 개운해진 것을 느낀 그는 벽에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달이 점점 차오르며 보름달이 되려고 한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내 인생도 저 달처럼 빛날 것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한참동안 연락처를 검색하더니 통화버튼을 눌렀다.
6년 만에 거는 전화다.
낮에 할 일이 없어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다가 우연히 카톡에서 소연의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남자친구가 없는지 프로필 사진에는 온통 혼자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 뿐이었다.
그래도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한참동안 통화 연결음만 들려 전화를 끊으려던 그는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폰을 다시 귀에 갖다 대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나야."
"누구세요?"
"그새 번호까지 지웠냐? 역시 너 답다."
"......"
"잘 지내?"
저쪽에선 이제서야 이쪽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웬 전화야?"
"응?"
"술 마셨어?"
"뭐, 안 마셨다고 할 수 없지. 꺼억."
"밤중에 뭐하는 짓이야?"
"넌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
"변호사 됐다면서?"
"......"
"난 뭐하면서 사는지 궁금하지 않어?"
"뭐하고 사는데?"
"크하하. 별 궁금하지 않나 보네."
"......"
"난 자선 사업가다. 얼마전에 신문에도 났었지."
"뭔 소리야?"
"하긴, 바쁘신 변호사님께서 신문 같은 걸 보겠어?"
"뭐?"
"그래, 나중에 혹시 내가 사고라도 치면 잘 좀 부탁한다. 형사사건은 수임료가 얼마지?"
"이만 끊어. 헛소리 말고."
"크하하, 알았어. 잘자고 나중에 법원에서 보자."
갑자기 전화가 뚝 끊기자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잘난 변호사가 평생을 일해도 만져볼 수 없는 돈이 생긴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그는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3번 창구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VIP라운지로 들어선 신평은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50대 초반의 남자가 불쑥 악수를 청하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지점장 김용성입니다."
"예?아..신평입니다."
악수를 하면서 그의 손가락에 밴드가 감겨 있는 것을 본 지점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이쿠, 손을 다치셨군요. 괜찮으십니까?"
"아, 예? 아...괜찮습니다."
"어휴, 어쩌시다가 이렇게...많이 불편하시겠습니다."
갈매기한테 새우깡을 주다가 물렸다고 말할 수 없어 잠시 망설이던 신평은 그가 창가 쪽 테이블로 자신을 안내하자 그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한번 빙 둘어봤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직원들 외모까지 창구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다.
지점장이 둥근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의 자리를 권하자 그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러자 여직원이 한 명 다가오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를 건냈다.
자신을 안내했던 3번 창구 직원만큼이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외모다.
"차 한잔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커피를..."
"아, 커피로."
"여기 커피 두 잔만 좀 부탁할게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그녀의 하이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엄청난 높이의 하이힐이지만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 굽 소리도 나지 않는다.
"제가 진작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예? 아니, 무슨 인사까지..."
신평은 이곳 지점장이 도대체 무슨 일로 자신을 만나려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어 이마에 붙은 반창고를 슬슬 문질렀다.
"이제부터 창구에서 기다리지 마시고 이쪽으로 오시면 바로 업무 처리 도와드리겠습니다."
"예?"
"제가 직원들한테 미리 말 해 놓겠습니다."
밖에서 대기표를 뽑지 말고 이곳으로 바로 오라는 소리인데 이제 이틀만 지나면 이 은행에 올 일은 없다.
"아, 예. 고맙습니다."
지점장이 말을 빙빙 돌리다 VIP 우대 서비스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금융 상품을 한참 소개하자 그는 하품이 나오는 것을 몇 번이나 참으며 커피만 홀짝거렸다.
"아, 그런데 혹시 댁에 자제분들은 계신지..."
"저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아, 그러신가요? 이거 죄송합니다. 바쁘셔서 겨를이 없으시죠?"
"아니, 뭐 그냥..."
"저희가 VVIP 고객님들께 만남도 주선해 드리고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시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고객들 중에도 아직 미혼이신 젊은 여성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
"그리고 나중에 결혼하실 때에도 저희한테 말씀해 주시면 원하시는 날짜로 항공권과 숙박권을 예약해 드립니다."
"아, 예."
그는 항공기 비즈니스석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잠시 상상하다가 조금전 그 여직원이 양 손에 무언가를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이거 받으시죠."
그녀가 커다란 쇼핑백 두 개를 자신의 옆에다 내려놓자 그는 고개를 들어 지점장을 쳐다봤다.
"이..이게 뭡니까?"
"와인이랑 건강식품입니다. 이제 곧 추석이라..."
"아니, 뭐 이런 걸..."
"저희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하, 이거 참."
"저도 사실 개인적으로 고객님께서 하시는 자선활동과...그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순간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가 말하는 소탈함은 곧 찌질함이다.
"암튼, 뭐...감사합니다."
어색하게 웃어 보인 그는 쇼핑백 두 개를 집어 들고 얼른 소파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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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6시. 노원역 근처 곱창집.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아니."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
이경은 퇴근할 때쯤 카톡으로 오늘 곱창에 소주가 먹고 싶다며 그를 이곳으로 불러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점점 몰려들어 지금은 이 가게에서 빈자리를 찾을 수 없다.
그녀가 곱창이 나오기도 전에 소주를 자신의 잔에 따르자 신평은 은행에서 보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거기 가니까 완전 딴 세상 같더라. 지점장이 갑자기 오더니..."
"그래서 좋았어?"
"응?"
"나 놔두고 거기 가니까 좋았어?"
"......"
"하긴 그쪽 직원들이 다 한 미모들 하지."
"뭔 말이야? 아까 대기번호 뽑고 기다리는 거 봤잖아. 창구 직원이 거기로 가라 했어."
"그래서 내일도 거기로 갈거야?"
"그쪽으로 오라는데 어떡해?"
"......"
신평은 그녀가 다시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르자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보다 외모가 뛰어난 동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성격이다.
"알았어. 내일은 꼭 4번 창구로 갈게. 그런데 4번 창구에 안 걸려도 난 몰라? 그건 알지?"
"내가 타이밍 맞춰서 버튼 누르면 돼."
"그래? 알았어. 내일은 4번 창구에 꼭 갈게. 이제 됐지?"
그녀가 겨우 화가 풀어진 모습을 보이자 그는 내심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여자와 결혼하면 평생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다 빠질 것이다
"근데 아까 들고 간 건 뭐야? 뭐 받았어?"
"아, 지점장이 무슨 와인하고 황진단이가 공진단인가 한 세트 주던데..."
그렇지 않아도 그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황진단 세트부터 개봉하여 방금전 한 알 까 먹고 나오는 길이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온몸에 활력이 생기는 느낌이다.
"자기도 먹어볼래? 내일 은행에 몇 개 가져갈까?"
"그게 무슨 과자야? 아무한테나 막 주게?"
"아무나라니? 사랑하는 사람한테 주는 건데..."
"참, 말이나 못하면..."
그녀가 오늘 처음으로 웃어 보였고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푸짐한 한우 곱창이 나오자 신평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이건 술을 안 먹을 수 없겠는데?"
오랜만에 소곱창을 보니 입에서 군침이 돈다.
"여기 맥주도 한 병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가 맥주를 시키자 이경은 그에게 눈을 흘겼다.
"무슨 곱창에 맥주를 마시냐. 자기 오늘은 쏘맥 마셔. 벌주야."
"뭐? 벌주? 그래 오케이. 쏘맥 콜."
그는 내일 아침 120억이 들어오고 이제 한 번만 더 은행을 다녀오면 모든게 끝이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가 소맥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날 밤 12시.
혼자 휘청거리며 원룸 쪽으로 걸어오던 신평은 갑자기 벽을 잡고 오바이트를 했다.
"윽, 우웩."
"우웩!"
지나가던 사람들 중 몇몇이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아, 죽겠네."
저녁에 먹은 것들을 다 게워 낸 그는 머리가 핑도는 것을 느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길에서 오바이트를 하는 건 10년 만에 처음이다.
속이 다소 개운해진 것을 느낀 그는 벽에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달이 점점 차오르며 보름달이 되려고 한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내 인생도 저 달처럼 빛날 것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한참동안 연락처를 검색하더니 통화버튼을 눌렀다.
6년 만에 거는 전화다.
낮에 할 일이 없어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다가 우연히 카톡에서 소연의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남자친구가 없는지 프로필 사진에는 온통 혼자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 뿐이었다.
그래도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한참동안 통화 연결음만 들려 전화를 끊으려던 그는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폰을 다시 귀에 갖다 대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나야."
"누구세요?"
"그새 번호까지 지웠냐? 역시 너 답다."
"......"
"잘 지내?"
저쪽에선 이제서야 이쪽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웬 전화야?"
"응?"
"술 마셨어?"
"뭐, 안 마셨다고 할 수 없지. 꺼억."
"밤중에 뭐하는 짓이야?"
"넌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
"변호사 됐다면서?"
"......"
"난 뭐하면서 사는지 궁금하지 않어?"
"뭐하고 사는데?"
"크하하. 별 궁금하지 않나 보네."
"......"
"난 자선 사업가다. 얼마전에 신문에도 났었지."
"뭔 소리야?"
"하긴, 바쁘신 변호사님께서 신문 같은 걸 보겠어?"
"뭐?"
"그래, 나중에 혹시 내가 사고라도 치면 잘 좀 부탁한다. 형사사건은 수임료가 얼마지?"
"이만 끊어. 헛소리 말고."
"크하하, 알았어. 잘자고 나중에 법원에서 보자."
갑자기 전화가 뚝 끊기자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잘난 변호사가 평생을 일해도 만져볼 수 없는 돈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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