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하고 싶었던 말
조회 : 722 추천 : 1 글자수 : 4,210 자 2022-08-23
마가토 알그레임 원수.
그는 지난 혁명군에서 군사와 관련된 임무를 일임해 맡았던 현 정부의 살아있는 권력이었다.
핸섬도 소위로 임관을 받은 뒤, 간소한 훈련을 하며 몇 번이나 그의 얼굴을 본적이 있었다.
비록 술에 취해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크흠! 그, 그나저나 마가토 원수님께서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시고 계셨던 겁니까?”
아무리 세상 불만 가득한 핸섬이라고 할지라도 급이 너무 다른 존재에게까지 객기를 부릴 정도로 인사불성이 된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말투는 꽤 정중해져 있었다.
이에 마가토 원수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좀 전에 카페에서 봤던 패기 넘치는 젊은이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군. 편하게 말하게. 지금은 나도 그러고 싶은 기분이니까 말이네.”
그의 말은 정확하게 핸섬의 폐부를 찔렀지만, 이제와서 태도를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펜델 중위는 저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전우나 다름없는 분이었기에 술에 취했다는 이유를 들어 편하게 말을 놓을 수 있었지만, 원수님께 그런 추태를 부릴 수야 없지요.”
“하하! 그러니까 난 친하지 않아서 말을 놓을 수 없다?”
“그, 그게 아니라······. 음!”
하지만 아무리 핸섬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싶어도 이미 와인을 몇 병이나 들이킨 그의 상태로는 겨우 횡설수설하는 자신의 입을 간수하는 게 최선이었다.
짝!
핸섬은 헛소리를 해대는 자신의 입구녕을 거칠게 때려 진정시킨 뒤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럴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이 썩어빠진 혁명 군부 안에서 그가 인정하는 유일한 사람이 그인 탓이었다.
“자네가 쓴 보고서를 보았네.”
“예? 아, 아니 잘 못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핸섬은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실수를 남발하며 그에게 대답했다.
“아, 보고서······.”
하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에 뒤늦게 그가 한 말을 이해한 핸섬이 말을 흐렸다.
자신이 올린 보고서라고 하면, 한 가지 밖에 없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하나만 올린 건 아니었다.
못해도 수십 건은 올렸다.
단지, 그 수십 건의 보고서가 전부 같은 말을 하려고 올린 다른 종류의 보고서였을 뿐.
“‘현시점에서 아군의 전쟁 수행이 불가능한 이유에 관하여.’······. 상당히 잘 만들어진 보고서더군.”
“아, 넵. 감사합니다.”
“아군의 현재 상황을 다각도에서 분석하여 세 대국과 비교해 승산이 얼마나 있을지, 또 진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한 부분이 특히 흥미롭더군.”
“······가, 감사합니다.”
설마 그에게 이런 찬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던 핸섬이 어안이 벙벙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마가토 원수의 말을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하지만 역시 가장 감탄스러웠던 부분은 그 모든 자료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분석했다는 부분이었네.”
핸섬은 잠시 그가 말을 끝내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현시점에서 아군이 실시간으로 생산 가능한 포탄의 개수와 훈련된 병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사격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한 번의 전투 이후에 얼마만큼의 손해가 생기고,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힐 수 있을지 등등······. 정말, 흥미로운 분석 투성이었네.”
“과찬이십니다.”
“자네, 혹시 전에 수학을 공부한 적 있는가?”
“어, 없습니다.”
“정말인가?”
핸섬은 마가토 원수의 두 번째 물음에도 고개를 흔들어 부정했다.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는 수학을 공부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가 적은 보고서는 사실 그렇게 수학적으로 완벽한 계산을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걸 공부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전문적인 보고서를 작성하겠는가.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사실 그가 보고서에 적은 것은 그가 술에 취해 친구들과 진행했었던 ‘워 게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다.
즉, TRPG.
롤 플레잉 게임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보고서를 두고서 저런 칭찬을 받았으니,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실, 그가 말한 포탄의 개수나, 훈련된 병사가 얼마나 빠르게 포탄을 발사할 수 있을지 등등도 주사위를 굴려 나온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물론, 그 결과물이 현실과 비슷하도록 조절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핸섬은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 건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것은 그런건가?”
뭐가 그렇다는 것인지 채 생각할 틈도 없이 마가토 원수가 멋대로 납득하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됐다는, 뭐, 천재라는 얘기겠군.”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전 단지······.”
“단지?”
핸섬은 차마 보고서에 적은 내용이 게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정하기 어려운 모양이지?”
“······.”
그렇게 멋대로 자신을 수학 천재로 낙인찍는 마가토를 보며, 핸섬은······.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래, 애초에 그 게임도 친구들한테 지금의 포스탈리카가 얼마나 나약한 국가인지 알려주려고 만들었던 게임이었으니까. 아예 거짓말은 아닌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그는 머리를 회전시킬 여유가 없었다. 괜히 여기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가 더 안 좋은 상황이 되는 것보다야 칭찬을 받는 게 차라리 나으리라.
핸섬은 그렇게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가토 원수의 말은 감히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나도 자네와 똑같이 생각하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핸섬은 그 말에 등뿌리가 삐쭉 서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뭐? 나랑 똑같이 생각한다고?
설마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고 있는데, 마가토 원수의 말이 이어졌다.
“현시점에서 아국은 전쟁 수행이 불가능하네.”
하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는 분명 ‘전쟁은 불가하다.’고 못을 박았다.
“하물며 세 대국을 상대로 동시에 전쟁을 치르는 일은 가히 자살 행위에 가깝지.”
마가토 원수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마치 자신이 내뱉는 말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흐흐흐. 솔직히 말해서 저 오펜슈타인 공국을 상대로도 이길 수 없을지도 몰라.”
“구태여 멀리까지 가실 필요도 없습니다.”
“음?”
그의 그러한 말에 핸섬은 어쩐지 흥분에 휩싸여 말을 토해냈다.
“오펜슈타인은 아국과 육지로 접해있긴 하지만 국경을 접한 나라는 아니지요. 그보다는 남쪽에 조금이라도 국경을 접하는 에게타와 비교하는 게 옳을 겁니다.”
“에게타와? 하지만 에게타는 오펜슈타인과 달리 엄연히 왕국이 아닌가. 국토도 오펜슈타인의 세 배는 될 거네.”
“그렇긴 합니다만, 군사력 수준만 떼놓고 비교한다면 에게타는 오펜슈타인의 발끝에도 미치는 소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에게타는 현재 사용 중인 병기의 대부분을 타국에서 구매해 사용해야 할 정도로 공업력이 뒤떨어지는 나라이지만, 에펜슈타인은 적어도 자국에서 사용 중인 병기는 스스로 만들어낼 줄은 아는 나라입니다.”
기어코 입을 연 핸섬은 마치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얘기를 한 번에 털어놓듯이 자신의 의견을 노도와 같이 쏟아냈다.
흥분에 휩싸인 그의 모습에는 이제까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 없이 생활해온 자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그래도 당장 전투에서 오펜슈타인이 에게타에 비빌 정도는 아닐 듯한데? 에게타가 타국에서 병기를 수입하는 나라라고는 해도 그 대부분은 더 남쪽에 있는 나라들에서 가져오는 것이잖나. 수입 루트만 지킬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지 않겠나?”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촤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여건에 따라 스스로 병기 생산이 가능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그 둘을 비교한다면, 전자가 언제나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군.”
이에 핸섬의 적극적인 주장에 감화된 것인지 마가토 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나라는 지금 그 펜슈타인보다 약한 에게타조차 이길 수 없다는 말이로군.”
“······.”
핸섬은 그의 말에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취기에 힘 입어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그에게 전달했다.
“그렇습니다.”
“그러한가······.”
그렇게 한동안 열변을 토한 핸섬은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마가토 원수도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달빛을 받으며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
“······.”
그리고 천천히 숨을 가다듬는 핸섬의 눈에 그제야 마가토 원수의 주머니에 꽂힌 위스키병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다리 위에 취한 사람이 그만은 아닌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차오른 달이 기울어가는 시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마가토 원수였다.
“으으으음!”
그가 돌연 기지개를 켜더니, 핸섬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만나서 즐거웠네, 핸섬 소위.”
핸섬은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저,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손을 맞잡는 핸섬의 마음속에는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가는 건가? 무언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서 당장이라도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핸섬은 차마 그걸 물을 수는 없었다.
‘뭐라고 하게?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그 말이 가지는 무거움을 핸섬은 결코 모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포스탈리카에서 가장 강성한 전쟁론자라고 하면, 그의 아버지, 포어드 중장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막아야 한다고 하면, 해야 할 일은 뻔하지 않은가. 핸섬은 차마 먼저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떠나가는 마가토 원수가 돌연 뒤돌아서더니, 그에게 마지막으로 기묘한 말을 했다.
“아, 이걸 말하는 걸 잊었구먼.”
핸섬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막연히 쳐다보았다.
“자네 아버지에게 안부 전해주게.”
하지만 그는 끝내 핸섬이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나갔다. 핸섬은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체 뭐였던 거지?”
정말 그냥 잡담이나 나누려고 자신을 찾아왔던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핸섬은 그때 문득 그에게서 건네받은 자신의 휘장과 계급장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계급장 뒤쪽에서 본 적 없는 종이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지난 혁명군에서 군사와 관련된 임무를 일임해 맡았던 현 정부의 살아있는 권력이었다.
핸섬도 소위로 임관을 받은 뒤, 간소한 훈련을 하며 몇 번이나 그의 얼굴을 본적이 있었다.
비록 술에 취해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크흠! 그, 그나저나 마가토 원수님께서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시고 계셨던 겁니까?”
아무리 세상 불만 가득한 핸섬이라고 할지라도 급이 너무 다른 존재에게까지 객기를 부릴 정도로 인사불성이 된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말투는 꽤 정중해져 있었다.
이에 마가토 원수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좀 전에 카페에서 봤던 패기 넘치는 젊은이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군. 편하게 말하게. 지금은 나도 그러고 싶은 기분이니까 말이네.”
그의 말은 정확하게 핸섬의 폐부를 찔렀지만, 이제와서 태도를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펜델 중위는 저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전우나 다름없는 분이었기에 술에 취했다는 이유를 들어 편하게 말을 놓을 수 있었지만, 원수님께 그런 추태를 부릴 수야 없지요.”
“하하! 그러니까 난 친하지 않아서 말을 놓을 수 없다?”
“그, 그게 아니라······. 음!”
하지만 아무리 핸섬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싶어도 이미 와인을 몇 병이나 들이킨 그의 상태로는 겨우 횡설수설하는 자신의 입을 간수하는 게 최선이었다.
짝!
핸섬은 헛소리를 해대는 자신의 입구녕을 거칠게 때려 진정시킨 뒤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럴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이 썩어빠진 혁명 군부 안에서 그가 인정하는 유일한 사람이 그인 탓이었다.
“자네가 쓴 보고서를 보았네.”
“예? 아, 아니 잘 못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핸섬은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실수를 남발하며 그에게 대답했다.
“아, 보고서······.”
하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에 뒤늦게 그가 한 말을 이해한 핸섬이 말을 흐렸다.
자신이 올린 보고서라고 하면, 한 가지 밖에 없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하나만 올린 건 아니었다.
못해도 수십 건은 올렸다.
단지, 그 수십 건의 보고서가 전부 같은 말을 하려고 올린 다른 종류의 보고서였을 뿐.
“‘현시점에서 아군의 전쟁 수행이 불가능한 이유에 관하여.’······. 상당히 잘 만들어진 보고서더군.”
“아, 넵. 감사합니다.”
“아군의 현재 상황을 다각도에서 분석하여 세 대국과 비교해 승산이 얼마나 있을지, 또 진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한 부분이 특히 흥미롭더군.”
“······가, 감사합니다.”
설마 그에게 이런 찬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던 핸섬이 어안이 벙벙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마가토 원수의 말을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하지만 역시 가장 감탄스러웠던 부분은 그 모든 자료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분석했다는 부분이었네.”
핸섬은 잠시 그가 말을 끝내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현시점에서 아군이 실시간으로 생산 가능한 포탄의 개수와 훈련된 병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사격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한 번의 전투 이후에 얼마만큼의 손해가 생기고,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힐 수 있을지 등등······. 정말, 흥미로운 분석 투성이었네.”
“과찬이십니다.”
“자네, 혹시 전에 수학을 공부한 적 있는가?”
“어, 없습니다.”
“정말인가?”
핸섬은 마가토 원수의 두 번째 물음에도 고개를 흔들어 부정했다.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는 수학을 공부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가 적은 보고서는 사실 그렇게 수학적으로 완벽한 계산을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걸 공부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전문적인 보고서를 작성하겠는가.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사실 그가 보고서에 적은 것은 그가 술에 취해 친구들과 진행했었던 ‘워 게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다.
즉, TRPG.
롤 플레잉 게임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보고서를 두고서 저런 칭찬을 받았으니,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실, 그가 말한 포탄의 개수나, 훈련된 병사가 얼마나 빠르게 포탄을 발사할 수 있을지 등등도 주사위를 굴려 나온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물론, 그 결과물이 현실과 비슷하도록 조절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핸섬은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 건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것은 그런건가?”
뭐가 그렇다는 것인지 채 생각할 틈도 없이 마가토 원수가 멋대로 납득하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됐다는, 뭐, 천재라는 얘기겠군.”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전 단지······.”
“단지?”
핸섬은 차마 보고서에 적은 내용이 게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정하기 어려운 모양이지?”
“······.”
그렇게 멋대로 자신을 수학 천재로 낙인찍는 마가토를 보며, 핸섬은······.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래, 애초에 그 게임도 친구들한테 지금의 포스탈리카가 얼마나 나약한 국가인지 알려주려고 만들었던 게임이었으니까. 아예 거짓말은 아닌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그는 머리를 회전시킬 여유가 없었다. 괜히 여기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가 더 안 좋은 상황이 되는 것보다야 칭찬을 받는 게 차라리 나으리라.
핸섬은 그렇게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가토 원수의 말은 감히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나도 자네와 똑같이 생각하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핸섬은 그 말에 등뿌리가 삐쭉 서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뭐? 나랑 똑같이 생각한다고?
설마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고 있는데, 마가토 원수의 말이 이어졌다.
“현시점에서 아국은 전쟁 수행이 불가능하네.”
하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는 분명 ‘전쟁은 불가하다.’고 못을 박았다.
“하물며 세 대국을 상대로 동시에 전쟁을 치르는 일은 가히 자살 행위에 가깝지.”
마가토 원수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마치 자신이 내뱉는 말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흐흐흐. 솔직히 말해서 저 오펜슈타인 공국을 상대로도 이길 수 없을지도 몰라.”
“구태여 멀리까지 가실 필요도 없습니다.”
“음?”
그의 그러한 말에 핸섬은 어쩐지 흥분에 휩싸여 말을 토해냈다.
“오펜슈타인은 아국과 육지로 접해있긴 하지만 국경을 접한 나라는 아니지요. 그보다는 남쪽에 조금이라도 국경을 접하는 에게타와 비교하는 게 옳을 겁니다.”
“에게타와? 하지만 에게타는 오펜슈타인과 달리 엄연히 왕국이 아닌가. 국토도 오펜슈타인의 세 배는 될 거네.”
“그렇긴 합니다만, 군사력 수준만 떼놓고 비교한다면 에게타는 오펜슈타인의 발끝에도 미치는 소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에게타는 현재 사용 중인 병기의 대부분을 타국에서 구매해 사용해야 할 정도로 공업력이 뒤떨어지는 나라이지만, 에펜슈타인은 적어도 자국에서 사용 중인 병기는 스스로 만들어낼 줄은 아는 나라입니다.”
기어코 입을 연 핸섬은 마치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얘기를 한 번에 털어놓듯이 자신의 의견을 노도와 같이 쏟아냈다.
흥분에 휩싸인 그의 모습에는 이제까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 없이 생활해온 자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그래도 당장 전투에서 오펜슈타인이 에게타에 비빌 정도는 아닐 듯한데? 에게타가 타국에서 병기를 수입하는 나라라고는 해도 그 대부분은 더 남쪽에 있는 나라들에서 가져오는 것이잖나. 수입 루트만 지킬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지 않겠나?”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촤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여건에 따라 스스로 병기 생산이 가능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그 둘을 비교한다면, 전자가 언제나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군.”
이에 핸섬의 적극적인 주장에 감화된 것인지 마가토 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나라는 지금 그 펜슈타인보다 약한 에게타조차 이길 수 없다는 말이로군.”
“······.”
핸섬은 그의 말에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취기에 힘 입어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그에게 전달했다.
“그렇습니다.”
“그러한가······.”
그렇게 한동안 열변을 토한 핸섬은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마가토 원수도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달빛을 받으며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
“······.”
그리고 천천히 숨을 가다듬는 핸섬의 눈에 그제야 마가토 원수의 주머니에 꽂힌 위스키병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다리 위에 취한 사람이 그만은 아닌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차오른 달이 기울어가는 시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마가토 원수였다.
“으으으음!”
그가 돌연 기지개를 켜더니, 핸섬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만나서 즐거웠네, 핸섬 소위.”
핸섬은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저,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손을 맞잡는 핸섬의 마음속에는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가는 건가? 무언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서 당장이라도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핸섬은 차마 그걸 물을 수는 없었다.
‘뭐라고 하게?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그 말이 가지는 무거움을 핸섬은 결코 모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포스탈리카에서 가장 강성한 전쟁론자라고 하면, 그의 아버지, 포어드 중장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막아야 한다고 하면, 해야 할 일은 뻔하지 않은가. 핸섬은 차마 먼저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떠나가는 마가토 원수가 돌연 뒤돌아서더니, 그에게 마지막으로 기묘한 말을 했다.
“아, 이걸 말하는 걸 잊었구먼.”
핸섬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막연히 쳐다보았다.
“자네 아버지에게 안부 전해주게.”
하지만 그는 끝내 핸섬이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나갔다. 핸섬은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체 뭐였던 거지?”
정말 그냥 잡담이나 나누려고 자신을 찾아왔던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핸섬은 그때 문득 그에게서 건네받은 자신의 휘장과 계급장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계급장 뒤쪽에서 본 적 없는 종이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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