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파수꾼의 수수께끼
조회 : 806 추천 : 1 글자수 : 3,960 자 2022-08-23
핸섬은 오펠리아와 헤어진 뒤, 곧바로 저택을 나왔다.
'아버지가 별장에 계신다고? 평소엔 가지도 않는 곳을 왜···.?'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평상시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별장같은 곳에 갔는지 궁금했다. 그의 아버지, 포어드 중장은 요새 다른 장교들과 아국의 미래에 관해 토론하는 일에 몰두해 있는지라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손에 쥔 종이 한 장 때문이었다.
'원수 씩이나 되는 분이 날 괜히 부르지는 않았을 테고, 뭔가 내게 할 말이 있었던 게 분명해.'
마가토 원수가 어제 자신에게 하지 못한 말이 계속 신경 쓰여서 마음이 심란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는 몰라도 아마 밖에서는 하지 못 할 말이었던 거겠지.'
현 포스탈리카에서 전쟁론필수론을 주장하는 강경파의 수장, 포어드 중장. 그리고 반대로 전쟁불가론을 주장하는 아들.
다들 쉬쉬하는 일이긴 했지만, 알 사람은 다 아는 소문을 그가 몰랐을까?
'그럴리가 없어. 알고서 접근한 거야.'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목적도 없이 그냥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몰래 종이를 건네줄 리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심상치 않은 구린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이걸 모른 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모른 채하기는 커녕 그 목적이 쉬이 짐작이 가서 더 문제였다.
'.....만약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마가토 원수는 핸섬에게 확실하게 '자네와 생각이 같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뭘 더 생각할 게 있단 말인가.
'전쟁을 막기 위해 힘을 빌려달라는···. 그런 얘기를 꺼내고 싶었던 걸 거겠지.'
그리고 그걸 위해 핸섬에게 부탁할 일이라고 하면···.. 그것도 남들 모르게 몰래 부탁할 일이라면, 그가 생각하기에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나한테 아버지를···..'
하지만 핸섬은 차마 그 결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핸섬은 그도 모르게 고개를 저어 사념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들한테 그런 부탁을 할까? 그냥 간자 역할이나 부탁하려던 걸 수도 있잖아?'
그래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그거군.'
마가토 원수는 전쟁 여론을 잠재우고 싶다면, 그 수장인 포어드 중장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중요한 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최악의 경우엔 암살을 부탁받을지도 몰라.'
제아무리 핸섬이 전쟁을 막고 싶다고는 해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의 아버지랑은 그가 군인이 되기 전까지는 별 문제 없이 지냈었으니까.
밖에선 혁명도 하고 전쟁론도 부르짖는, 그런 상남자같은 사람이었지만, 집에서는 상냥한, 그런 아버지였다. 그렇기에 핸섬도 군인이 되어 군대의 현재 상태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만 않았다면, 앞으로도 친하게 지냈으리라.
'그 난장판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그러나 아버지의 부탁으로 군대에 입대한 뒤부터 그는 자신의 태도를 180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군대가 썩은 것도 모자라 이게 정말 군대인지 의심까지 되는 상황에서 전쟁같은 개소리를 짖거리는 아버지가 곱게 보일 턱이 없었다.
아니, 이건 곱게 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잘못해서 전쟁에서 지기라도 하면? 그러다 군부가 무너지면? 그럼 난? 아니, 가족들은? 다 같이 숙청 아니야?'
핸섬은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실망했다. 결말이 뻔히 보이는 전쟁에 병사들을 밀어넣는 군인은 군인이 아니다. 학살자지. 고의적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군부의 수장씩이나 되는 인간은 절대로 그따위로 무능한 짓을 일삼아서는 안 됐으니까.
'권력을 가진 인간에게 무능은 곧 죄야.'
기실, 10년 전에 황제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명분도 그가 무능하기때문이었지 않나?
그런데 자신이 끌어내린 황제와 똑같은 무능을 자랑하면 어쩌자는 건지······
'그러니까 어떻게든 막긴 막아야 하는데···..'
하지만 핸섬은 단 한 번도 그를 죽여서 문제를 해결하려 상상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두번째 부모라지만, 자신을 낳아준 부모다. 첫번째 부모만큼 애정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핸섬은 천륜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나?'
때문에 핸섬은 마가토 원수가 전해준 이 종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만나러 가서 '진짜 용건' 관해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부터, 아니, 그 용건이 핸섬이 생각하는 그런 용건이라면, 그는 그의 아버지를 배신하는 무리에 끼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되면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가 없게 될 터였다.
'내가 거부해도 압박이 들어오겠지.'
비밀을 공유하는 자들끼리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끈이 생기게 된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사슬이 말이다. 그들은 핸섬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이용하려 들테니까.
"후우! 어렵네. 어려워···.."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느냐, 아우야."
"잉?"
그때, 별장으로 향하던 핸섬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별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누군가가 군복을 빼입은 채 경계를 서고 있었다.
있을 리 없는 파수꾼.
핸섬 가의 저택이 제아무리 넓어도 길목길목마다 파수꾼을 세울만큼의 위세는 이제 없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 서있는 남자는 당연히 파수꾼이 아니다.
"어, 형님."
남자는 다름 아닌 핸섬의 형제이자 가문의 장남, 루크 핸섬이었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보면 모르느냐, 경계 서는 중이다."
루크가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의 각을 잡았다.
척! 척! 척!
핸섬이 그런 형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냐면 핸섬의 눈에 그의 형제가 하는 꼴이 영 같잖았기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는······
"아니, 그게 아니라···.. 군인도 아니신 분이 군복 입고 뭐하는 거냐고요?"
바로 루크가 군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루크 핸섬.
그는 군면제자였다. 현 포스탈리카에서는 장남은 가문의 존속을 위해 군인이 될 수 없다는 법이 있었는데, 덕분에 루크는 앞으로도 군대에 끌려갈 일이 없는 인생이었다.
아, 여기서 말하는 군대라는 건, 한국에서처럼 일반 병사로 끌려갈 일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포스탈리카가 평등한 군대를 지향한다지만, 국가 유력 가문의 장남을 일반 병사로 끌고 갈리가 없지 않은가.
군대에 끌려가게 된다면 당연히 장교다.
'나처럼 말이지.'
그리고 그 대신 군대에 끌려간 것이 다름 없는 핸섬이었기에 그에게 루크의 저 군인 흉내가 퍽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군복도 제대로 차려입은 것도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식 군복에 자기 입맛대로 이것저것 치장을 해놓았다.
'선글라스에, 견장도 옛날 귀족 가문일 적에 쓰던 문양이고···.. 얼씨구? 총에는 금칠까지 했네? 누군 썩어빠진 군대에서 나날이 시체가 되가는데, 아주 신이 나셨구만.'
배알이 꼬인 핸섬이 혓바닥도 꼬았다.
"아버지가 분명 형님은 군대 갈 일 없으니 자기 인생 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새 까먹고 대비하는 중입니까?"
"하하하! 아우야. 네가 이 형님의 기억력을 아주 우습게 보는 모양이구나. 네가 군대에 끌려가고 아버지가 그 말씀을 꺼낸 게 아직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내가 벌써 그 말을 잊었을라고?"
"아, 그럼 까먹은 게 아니라 말을 이해하지 못하신 건가요?"
루크가 핸섬의 비아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하하하! 그것 참 재밌는 농이구나!"
농 아닌데···..
핸섬은 나이를 스물이나 처먹고도 정신 머리를 빼놓고 지내는 저 한량이 심히 부러우면서도 참아 봐줄 수가 없었다.
그런 핸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껏 농을 즐긴 루크가 그에게 묘한 말을 건넸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군대에 갈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국가 비상 사태가 선언된다면 언제 법이 바뀔지 모르는 일이지. 그때를 위한 대비이다."
"끔찍한 소리하지 마십쇼. 형님이 지금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면 그따위 헛소리 못 할 겁니다."
핸섬은 루크의 말에 치를 떨었다. 루크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러고 있는 건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탁?"
무슨 부탁?
"아버지가 별장에 허락받은 사람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 명하셨거든."
"....뭐라고요?"
아니, 이게 또 무슨 소리야? 별장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형님에게 경계를 서라고 했다고?
"아, 안에서 뭔 짓을 하는데요?"
핸섬이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루크에게 다급하게 묻자, 그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아우의 작품을 구경하는 중이지."
".....네?"
하지만 핸섬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제 작품이요?"
"그렇다네."
다시 물어보고 또 대답이 돌아왔지만, 핸섬은 여전히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 음···. 네?"
'아버지가 별장에 계신다고? 평소엔 가지도 않는 곳을 왜···.?'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평상시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별장같은 곳에 갔는지 궁금했다. 그의 아버지, 포어드 중장은 요새 다른 장교들과 아국의 미래에 관해 토론하는 일에 몰두해 있는지라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손에 쥔 종이 한 장 때문이었다.
'원수 씩이나 되는 분이 날 괜히 부르지는 않았을 테고, 뭔가 내게 할 말이 있었던 게 분명해.'
마가토 원수가 어제 자신에게 하지 못한 말이 계속 신경 쓰여서 마음이 심란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는 몰라도 아마 밖에서는 하지 못 할 말이었던 거겠지.'
현 포스탈리카에서 전쟁론필수론을 주장하는 강경파의 수장, 포어드 중장. 그리고 반대로 전쟁불가론을 주장하는 아들.
다들 쉬쉬하는 일이긴 했지만, 알 사람은 다 아는 소문을 그가 몰랐을까?
'그럴리가 없어. 알고서 접근한 거야.'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목적도 없이 그냥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몰래 종이를 건네줄 리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심상치 않은 구린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이걸 모른 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모른 채하기는 커녕 그 목적이 쉬이 짐작이 가서 더 문제였다.
'.....만약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마가토 원수는 핸섬에게 확실하게 '자네와 생각이 같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뭘 더 생각할 게 있단 말인가.
'전쟁을 막기 위해 힘을 빌려달라는···. 그런 얘기를 꺼내고 싶었던 걸 거겠지.'
그리고 그걸 위해 핸섬에게 부탁할 일이라고 하면···.. 그것도 남들 모르게 몰래 부탁할 일이라면, 그가 생각하기에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나한테 아버지를···..'
하지만 핸섬은 차마 그 결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핸섬은 그도 모르게 고개를 저어 사념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들한테 그런 부탁을 할까? 그냥 간자 역할이나 부탁하려던 걸 수도 있잖아?'
그래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그거군.'
마가토 원수는 전쟁 여론을 잠재우고 싶다면, 그 수장인 포어드 중장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중요한 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최악의 경우엔 암살을 부탁받을지도 몰라.'
제아무리 핸섬이 전쟁을 막고 싶다고는 해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의 아버지랑은 그가 군인이 되기 전까지는 별 문제 없이 지냈었으니까.
밖에선 혁명도 하고 전쟁론도 부르짖는, 그런 상남자같은 사람이었지만, 집에서는 상냥한, 그런 아버지였다. 그렇기에 핸섬도 군인이 되어 군대의 현재 상태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만 않았다면, 앞으로도 친하게 지냈으리라.
'그 난장판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그러나 아버지의 부탁으로 군대에 입대한 뒤부터 그는 자신의 태도를 180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군대가 썩은 것도 모자라 이게 정말 군대인지 의심까지 되는 상황에서 전쟁같은 개소리를 짖거리는 아버지가 곱게 보일 턱이 없었다.
아니, 이건 곱게 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잘못해서 전쟁에서 지기라도 하면? 그러다 군부가 무너지면? 그럼 난? 아니, 가족들은? 다 같이 숙청 아니야?'
핸섬은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실망했다. 결말이 뻔히 보이는 전쟁에 병사들을 밀어넣는 군인은 군인이 아니다. 학살자지. 고의적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군부의 수장씩이나 되는 인간은 절대로 그따위로 무능한 짓을 일삼아서는 안 됐으니까.
'권력을 가진 인간에게 무능은 곧 죄야.'
기실, 10년 전에 황제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명분도 그가 무능하기때문이었지 않나?
그런데 자신이 끌어내린 황제와 똑같은 무능을 자랑하면 어쩌자는 건지······
'그러니까 어떻게든 막긴 막아야 하는데···..'
하지만 핸섬은 단 한 번도 그를 죽여서 문제를 해결하려 상상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두번째 부모라지만, 자신을 낳아준 부모다. 첫번째 부모만큼 애정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핸섬은 천륜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나?'
때문에 핸섬은 마가토 원수가 전해준 이 종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만나러 가서 '진짜 용건' 관해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부터, 아니, 그 용건이 핸섬이 생각하는 그런 용건이라면, 그는 그의 아버지를 배신하는 무리에 끼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되면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가 없게 될 터였다.
'내가 거부해도 압박이 들어오겠지.'
비밀을 공유하는 자들끼리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끈이 생기게 된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사슬이 말이다. 그들은 핸섬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이용하려 들테니까.
"후우! 어렵네. 어려워···.."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느냐, 아우야."
"잉?"
그때, 별장으로 향하던 핸섬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별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누군가가 군복을 빼입은 채 경계를 서고 있었다.
있을 리 없는 파수꾼.
핸섬 가의 저택이 제아무리 넓어도 길목길목마다 파수꾼을 세울만큼의 위세는 이제 없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 서있는 남자는 당연히 파수꾼이 아니다.
"어, 형님."
남자는 다름 아닌 핸섬의 형제이자 가문의 장남, 루크 핸섬이었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보면 모르느냐, 경계 서는 중이다."
루크가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의 각을 잡았다.
척! 척! 척!
핸섬이 그런 형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냐면 핸섬의 눈에 그의 형제가 하는 꼴이 영 같잖았기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는······
"아니, 그게 아니라···.. 군인도 아니신 분이 군복 입고 뭐하는 거냐고요?"
바로 루크가 군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루크 핸섬.
그는 군면제자였다. 현 포스탈리카에서는 장남은 가문의 존속을 위해 군인이 될 수 없다는 법이 있었는데, 덕분에 루크는 앞으로도 군대에 끌려갈 일이 없는 인생이었다.
아, 여기서 말하는 군대라는 건, 한국에서처럼 일반 병사로 끌려갈 일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포스탈리카가 평등한 군대를 지향한다지만, 국가 유력 가문의 장남을 일반 병사로 끌고 갈리가 없지 않은가.
군대에 끌려가게 된다면 당연히 장교다.
'나처럼 말이지.'
그리고 그 대신 군대에 끌려간 것이 다름 없는 핸섬이었기에 그에게 루크의 저 군인 흉내가 퍽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군복도 제대로 차려입은 것도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식 군복에 자기 입맛대로 이것저것 치장을 해놓았다.
'선글라스에, 견장도 옛날 귀족 가문일 적에 쓰던 문양이고···.. 얼씨구? 총에는 금칠까지 했네? 누군 썩어빠진 군대에서 나날이 시체가 되가는데, 아주 신이 나셨구만.'
배알이 꼬인 핸섬이 혓바닥도 꼬았다.
"아버지가 분명 형님은 군대 갈 일 없으니 자기 인생 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새 까먹고 대비하는 중입니까?"
"하하하! 아우야. 네가 이 형님의 기억력을 아주 우습게 보는 모양이구나. 네가 군대에 끌려가고 아버지가 그 말씀을 꺼낸 게 아직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내가 벌써 그 말을 잊었을라고?"
"아, 그럼 까먹은 게 아니라 말을 이해하지 못하신 건가요?"
루크가 핸섬의 비아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하하하! 그것 참 재밌는 농이구나!"
농 아닌데···..
핸섬은 나이를 스물이나 처먹고도 정신 머리를 빼놓고 지내는 저 한량이 심히 부러우면서도 참아 봐줄 수가 없었다.
그런 핸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껏 농을 즐긴 루크가 그에게 묘한 말을 건넸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군대에 갈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국가 비상 사태가 선언된다면 언제 법이 바뀔지 모르는 일이지. 그때를 위한 대비이다."
"끔찍한 소리하지 마십쇼. 형님이 지금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면 그따위 헛소리 못 할 겁니다."
핸섬은 루크의 말에 치를 떨었다. 루크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러고 있는 건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탁?"
무슨 부탁?
"아버지가 별장에 허락받은 사람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 명하셨거든."
"....뭐라고요?"
아니, 이게 또 무슨 소리야? 별장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형님에게 경계를 서라고 했다고?
"아, 안에서 뭔 짓을 하는데요?"
핸섬이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루크에게 다급하게 묻자, 그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아우의 작품을 구경하는 중이지."
".....네?"
하지만 핸섬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제 작품이요?"
"그렇다네."
다시 물어보고 또 대답이 돌아왔지만, 핸섬은 여전히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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