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오지 마!!
조회 : 636 추천 : 1 글자수 : 4,133 자 2022-08-23
핸섬은 루크의 얘기에 어안이 벙벙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뭘 하고 있다고?"
"아우가 어릴 때부터 그리던 그림 있잖은가."
"있지. 있는데···.. 있긴 한데···."
"그 그림들을 지금 별장에서 구경 중이네."
"그러니까 그걸 대체 왜!?"
아버지가 자신의 그림을 별장까지 옮겨서 보고 있다고? 왜? 무슨 이유로?
어째서 그런 무의미하고, 쓸데없이 창피한 짓을 하냐고!?
핸섬은 자신의 과거를 저주했다.
이세계로 환생 했을 때부터 그에게 한 가지 취미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물론, 음악이나 책을 읽는 등의 일도 즐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음악은 작곡을 할 정도의 실력이 아니었기에 문서로 남길만한 것이 없었다.
그냥 피아노를 치면 치는 거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책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이 시대의 책들은 대부분 전문 서적이나 백과사전. 혹은 성경과 같은 부류가 대부분이라 읽는 데 그리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문을 하자니, 이 시대에 핸섬과 같은 현대인의 생각에 공감해 줄 인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글을 써도 아무도 그 말이 무슨 말인 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무슨 재미로 글을 쓰겠는가.
특히, 깐깐한 가습을 지닌 핸섬 가의 가족들이라서 그런지 그의 글은 더더욱 이해받지 못했다.
어머니인 아스나 핸섬은 물론, 아들 바보라고 불릴 정도로 어릴 적에는 핸섬에게 잘해주었던 포어드 핸섬도 그가 쓴 글에는 난색을 표했다. 오펠리아나 루크는 말 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그림 만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인간은 시각이 가장 발달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그림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기 가장 편한 물건 중 하나였다.
실제로 그가 현대에서 배운 그림 기법으로 다채로운 색감과 역동적인 구도로 그림을 그릴 때면 그걸 보고 있는 가족들의 눈에는 경이로운 감탄이 자연스레 떠올랐으니까.
비록 그 다양한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만드는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게 문제였지만, 혁명 중에도 핸섬 가의 금력은 나름대로 옛 귀족 수준을 유지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문제는 핸섬의 취향적인 부분이 가장 컸다.
처음에는 시대상을 고려해 일부러 고전적인 그림을 그리던 핸섬이었지만, 점차 그림을 그리는 일에 재미가 붙으며 그는 자신의 취향을 그림에 반영하기 시작했고, 결국에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더 이상 남의 눈에 뜨이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난해한 그림일지라도 즐기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게 도를 넘어서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불쾌한 그림이 되어버리니까.
그리고 이 시대에서 그런 건 사탄 취급 받기 십상이었다. 혁명 중에 일부 종교쟁이들에게 이상한 소리를 듣기도 싫었고 말이다.
그래서 핸섬은 자신의 그림들을 완성하자마자 창고에 가두었다.
꽁꽁 묶어 자신만 볼 수 있도록 번호를 매기고 매장하듯 숨겨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쌓아온 그림들이 지금 별장에 있다니?
핸섬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다리에서 힘이 풀리려 했지만, 이내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는 루크의 어깨를 덮썩 부여잡고 그를 흔들며 말했다.
"서, 설마 누구 부른 건 아니지? 응? 그렇지? 혼자서 보시는 거지!?"
핸섬은 본인이 생각해도 포어드가 그럴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한 채 루크를 흔들었다.
"으어어어, 이거 놓아라, 아우으으으으야~"
"장난치지말고 대답해!!"
"이, 이이이, 걸 놓아아아아야 대답하지 않겠냐?"
핸섬은 곧바로 그에게서 손을 놓았다. 그러자 루크가 자신의 옷 매무새를 다듬으며 핸섬을 한 번 미치게 한 뒤,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 왜 있겠느냐?"
"......"
"당연히 다른 사람도 같이 있으니까 보초를 서는 거 아니겠니?"
"누, 누구? 아니, 몇 명이나?"
핸섬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제발 그래도 사람이라도 얼마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그 소망은 바로 다음 순간, 유리 잔처럼 간단하게 산산이 부숴져 사라져버렸다.
"글쎄···.."
루크가 자신의 손가락을 파라라락 소리가 나도록 빠르게 접었다 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한 300명?"
"으아아아아아악!!"
핸섬은 별장에 부려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말에 경악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대체 나 몰래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오늘도 아버지가 아우에게 몇 번이나 물어보러 갔었는데, 아우가 자고 있었던 걸 어쩌나?"
"적어도 그런 건 나한테 상담하고 해야지!!! 내 물건이야!!! 내 그림이라고!!!"
"아우가 군대에 들어간 뒤로 계속 아버지랑 싸우기만 해서 얘기를 못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비켜!!!"
핸섬은 다급하게 루크를 밀쳤다. 무슨 짓을 해서든 막아야 했다. 자신의 그림 창고에서 뭘 얼마나 꺼내갔는지는 몰라도 어차피 혼자 볼 거라고 안심하면서 그린 그림이 적어도 백 점 이상은 됐다.
그런데 그걸 별장에서, 그것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구경하고 있다고??? 이게 무슨 수치 플레이야!!?
핸섬은 자신의 그림을 미리 불태워버리지 않은 것을 심각하게 후회했다. 그리고 이미 손에 쥔 종이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흥분에 휩싸여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때, 루크가 핸섬의 앞을 막아 섰다.
"잠깐."
"또 뭐!?"
"아무리 아우가 아버지가 불러서 이곳에 왔다고 하더라도 절차는 지켜야지 않겠나."
이게 또 뭔 개소리지, 하고 핸섬이 루크를 쳐다보는데, 그가 돌연 자세를 바로잡았다.
척! 척!
그리고는 뜬금없이 핸섬에게 소리쳤다.
"암구호를 대라!"
"그건 시팔! 내가 아까 저기 왔었을 때 했어야지!!"
***
핸섬은 암구호를 대라며 자신을 붙잡는 루크를 단박에 밀치고 언덕을 올랐다.
핸섬 가의 별장은 여름에는 피서, 전쟁 시에는 농성을 위해 만들어진 터라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올라가는 데만 해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보통은 말이나 마차를 타거나, 최근에는 해외에서 들여온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핸섬은 구태여 도보를 택했다. 평소에 말을 타면 엉덩이가 아파서 그냥 걷는 게 좋다는 이유로 자주 걸어 다닌 게 습관이 된 탓이었다.
"헉! 헉!"
핸섬은 전력 질주 10분만에 탈진해 숨을 몰아쉬며 언젠가는 반드시 해외에서 자동차 공장을 사서 핸드 메이드 카를 손에 넣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제에에에길! 마차라도 끌고 올 걸!!"
그래, 그게 있었지, 참.
부우우우우우ㅜㅜㅜㅜ우웅···..
그런데 그때, 핸섬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배기음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응?"
그 배기음 소리는 언덕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는데, 언덕 중턱에서 아래를 쳐다보니, 루크가 길가에 차 한 대를 세워 놓고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현대의 자동차처럼 매끈하게 코팅 된 껍질은 없었지만, 그래도 뚜껑 덮인 사륜 구동 자동차를 보고 있으니, 핸섬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왜냐면 포스탈리카의 수도인 포스코에서도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마 손가락으로 셀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저 차의 모습은 그에게 아주 익숙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핸섬은 등 줄기로 식은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이어지는 순간, 루크의 경례를 받은 자동차가 이쪽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헉! 안 돼!"
그 모습을 보며 마치 악마를 마주한 사람처럼 안색이 파랗게 질린 핸섬이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 짜 다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우······
핸섬은 뒤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저속 배기음이 점차 자신과의 거리를 좁혀오는 걸 느끼면서도 애써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내달렸다.
"헉! 헉! 헉! 이런 제길!"
하지만 아무리 핸섬이 몸 건장한 남성일지라도 자동차를 따돌리는 일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건 단거리 달리기 선수에게도 불가능하리라.
부우우우우우웅!
다음 순간, 순식간에 바로 옆까지 다가온 검고 작은 경차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누군가 했더니, 이거 핸섬 경이 아닌가?"
"헉! 헉! 헉!"
남자의 이름은 체제르 푸엘.
포스탈리카의 몇 안 되는 부호 중 한 명으로 혁명군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핸섬 가와도 인연이 깊은 가문의 가장이었다. 당연히 핸섬과도 안면이 있었기에 체제르가 걱정하는 얼굴로 그를 불렀다.
"핸섬 경! 괜찮은가?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건가?"
결국 따라잡힌 핸섬이 그 자리에서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었다.
그리고는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헉! 아닙니다, 헉! 헉! 헉!"
"지금 자네 아버지의 초대를 받아서 별장에 가는 길인데 같이 가겠는가?"
"......."
체제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운전석에 있던 그의 집사가 곧바로 차에서 내리더니, 뒷좌석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
하지만 핸섬은 그러한 집사의 재빠른 친절이 별로 기껍지 않았다. 왜냐면 그가 문을 연 뒷좌석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으니까.
그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인 듯, 교복을 채 갈아입지도 않은 상태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핸섬."
그녀의 이름은 마야 푸엘.
"이런 곳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의 오랜 악연이었다.
핸섬이 마야에게 대답했다.
"헉! 헉! 오질 마, 그럼."
"뭐, 뭘 하고 있다고?"
"아우가 어릴 때부터 그리던 그림 있잖은가."
"있지. 있는데···.. 있긴 한데···."
"그 그림들을 지금 별장에서 구경 중이네."
"그러니까 그걸 대체 왜!?"
아버지가 자신의 그림을 별장까지 옮겨서 보고 있다고? 왜? 무슨 이유로?
어째서 그런 무의미하고, 쓸데없이 창피한 짓을 하냐고!?
핸섬은 자신의 과거를 저주했다.
이세계로 환생 했을 때부터 그에게 한 가지 취미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물론, 음악이나 책을 읽는 등의 일도 즐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음악은 작곡을 할 정도의 실력이 아니었기에 문서로 남길만한 것이 없었다.
그냥 피아노를 치면 치는 거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책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이 시대의 책들은 대부분 전문 서적이나 백과사전. 혹은 성경과 같은 부류가 대부분이라 읽는 데 그리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문을 하자니, 이 시대에 핸섬과 같은 현대인의 생각에 공감해 줄 인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글을 써도 아무도 그 말이 무슨 말인 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무슨 재미로 글을 쓰겠는가.
특히, 깐깐한 가습을 지닌 핸섬 가의 가족들이라서 그런지 그의 글은 더더욱 이해받지 못했다.
어머니인 아스나 핸섬은 물론, 아들 바보라고 불릴 정도로 어릴 적에는 핸섬에게 잘해주었던 포어드 핸섬도 그가 쓴 글에는 난색을 표했다. 오펠리아나 루크는 말 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그림 만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인간은 시각이 가장 발달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그림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기 가장 편한 물건 중 하나였다.
실제로 그가 현대에서 배운 그림 기법으로 다채로운 색감과 역동적인 구도로 그림을 그릴 때면 그걸 보고 있는 가족들의 눈에는 경이로운 감탄이 자연스레 떠올랐으니까.
비록 그 다양한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만드는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게 문제였지만, 혁명 중에도 핸섬 가의 금력은 나름대로 옛 귀족 수준을 유지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문제는 핸섬의 취향적인 부분이 가장 컸다.
처음에는 시대상을 고려해 일부러 고전적인 그림을 그리던 핸섬이었지만, 점차 그림을 그리는 일에 재미가 붙으며 그는 자신의 취향을 그림에 반영하기 시작했고, 결국에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더 이상 남의 눈에 뜨이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난해한 그림일지라도 즐기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게 도를 넘어서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불쾌한 그림이 되어버리니까.
그리고 이 시대에서 그런 건 사탄 취급 받기 십상이었다. 혁명 중에 일부 종교쟁이들에게 이상한 소리를 듣기도 싫었고 말이다.
그래서 핸섬은 자신의 그림들을 완성하자마자 창고에 가두었다.
꽁꽁 묶어 자신만 볼 수 있도록 번호를 매기고 매장하듯 숨겨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쌓아온 그림들이 지금 별장에 있다니?
핸섬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다리에서 힘이 풀리려 했지만, 이내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는 루크의 어깨를 덮썩 부여잡고 그를 흔들며 말했다.
"서, 설마 누구 부른 건 아니지? 응? 그렇지? 혼자서 보시는 거지!?"
핸섬은 본인이 생각해도 포어드가 그럴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한 채 루크를 흔들었다.
"으어어어, 이거 놓아라, 아우으으으으야~"
"장난치지말고 대답해!!"
"이, 이이이, 걸 놓아아아아야 대답하지 않겠냐?"
핸섬은 곧바로 그에게서 손을 놓았다. 그러자 루크가 자신의 옷 매무새를 다듬으며 핸섬을 한 번 미치게 한 뒤,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 왜 있겠느냐?"
"......"
"당연히 다른 사람도 같이 있으니까 보초를 서는 거 아니겠니?"
"누, 누구? 아니, 몇 명이나?"
핸섬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제발 그래도 사람이라도 얼마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그 소망은 바로 다음 순간, 유리 잔처럼 간단하게 산산이 부숴져 사라져버렸다.
"글쎄···.."
루크가 자신의 손가락을 파라라락 소리가 나도록 빠르게 접었다 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한 300명?"
"으아아아아아악!!"
핸섬은 별장에 부려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말에 경악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대체 나 몰래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오늘도 아버지가 아우에게 몇 번이나 물어보러 갔었는데, 아우가 자고 있었던 걸 어쩌나?"
"적어도 그런 건 나한테 상담하고 해야지!!! 내 물건이야!!! 내 그림이라고!!!"
"아우가 군대에 들어간 뒤로 계속 아버지랑 싸우기만 해서 얘기를 못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비켜!!!"
핸섬은 다급하게 루크를 밀쳤다. 무슨 짓을 해서든 막아야 했다. 자신의 그림 창고에서 뭘 얼마나 꺼내갔는지는 몰라도 어차피 혼자 볼 거라고 안심하면서 그린 그림이 적어도 백 점 이상은 됐다.
그런데 그걸 별장에서, 그것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구경하고 있다고??? 이게 무슨 수치 플레이야!!?
핸섬은 자신의 그림을 미리 불태워버리지 않은 것을 심각하게 후회했다. 그리고 이미 손에 쥔 종이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흥분에 휩싸여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때, 루크가 핸섬의 앞을 막아 섰다.
"잠깐."
"또 뭐!?"
"아무리 아우가 아버지가 불러서 이곳에 왔다고 하더라도 절차는 지켜야지 않겠나."
이게 또 뭔 개소리지, 하고 핸섬이 루크를 쳐다보는데, 그가 돌연 자세를 바로잡았다.
척! 척!
그리고는 뜬금없이 핸섬에게 소리쳤다.
"암구호를 대라!"
"그건 시팔! 내가 아까 저기 왔었을 때 했어야지!!"
***
핸섬은 암구호를 대라며 자신을 붙잡는 루크를 단박에 밀치고 언덕을 올랐다.
핸섬 가의 별장은 여름에는 피서, 전쟁 시에는 농성을 위해 만들어진 터라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올라가는 데만 해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보통은 말이나 마차를 타거나, 최근에는 해외에서 들여온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핸섬은 구태여 도보를 택했다. 평소에 말을 타면 엉덩이가 아파서 그냥 걷는 게 좋다는 이유로 자주 걸어 다닌 게 습관이 된 탓이었다.
"헉! 헉!"
핸섬은 전력 질주 10분만에 탈진해 숨을 몰아쉬며 언젠가는 반드시 해외에서 자동차 공장을 사서 핸드 메이드 카를 손에 넣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제에에에길! 마차라도 끌고 올 걸!!"
그래, 그게 있었지, 참.
부우우우우우ㅜㅜㅜㅜ우웅···..
그런데 그때, 핸섬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배기음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응?"
그 배기음 소리는 언덕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는데, 언덕 중턱에서 아래를 쳐다보니, 루크가 길가에 차 한 대를 세워 놓고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현대의 자동차처럼 매끈하게 코팅 된 껍질은 없었지만, 그래도 뚜껑 덮인 사륜 구동 자동차를 보고 있으니, 핸섬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왜냐면 포스탈리카의 수도인 포스코에서도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마 손가락으로 셀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저 차의 모습은 그에게 아주 익숙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핸섬은 등 줄기로 식은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이어지는 순간, 루크의 경례를 받은 자동차가 이쪽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헉! 안 돼!"
그 모습을 보며 마치 악마를 마주한 사람처럼 안색이 파랗게 질린 핸섬이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 짜 다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우······
핸섬은 뒤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저속 배기음이 점차 자신과의 거리를 좁혀오는 걸 느끼면서도 애써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내달렸다.
"헉! 헉! 헉! 이런 제길!"
하지만 아무리 핸섬이 몸 건장한 남성일지라도 자동차를 따돌리는 일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건 단거리 달리기 선수에게도 불가능하리라.
부우우우우우웅!
다음 순간, 순식간에 바로 옆까지 다가온 검고 작은 경차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누군가 했더니, 이거 핸섬 경이 아닌가?"
"헉! 헉! 헉!"
남자의 이름은 체제르 푸엘.
포스탈리카의 몇 안 되는 부호 중 한 명으로 혁명군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핸섬 가와도 인연이 깊은 가문의 가장이었다. 당연히 핸섬과도 안면이 있었기에 체제르가 걱정하는 얼굴로 그를 불렀다.
"핸섬 경! 괜찮은가?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건가?"
결국 따라잡힌 핸섬이 그 자리에서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었다.
그리고는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헉! 아닙니다, 헉! 헉! 헉!"
"지금 자네 아버지의 초대를 받아서 별장에 가는 길인데 같이 가겠는가?"
"......."
체제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운전석에 있던 그의 집사가 곧바로 차에서 내리더니, 뒷좌석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
하지만 핸섬은 그러한 집사의 재빠른 친절이 별로 기껍지 않았다. 왜냐면 그가 문을 연 뒷좌석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으니까.
그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인 듯, 교복을 채 갈아입지도 않은 상태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핸섬."
그녀의 이름은 마야 푸엘.
"이런 곳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의 오랜 악연이었다.
핸섬이 마야에게 대답했다.
"헉! 헉! 오질 마,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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