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춘광
조회 : 3,237 추천 : 1 글자수 : 4,883 자 2022-08-25
#1
배고픔에 눈을 뜨니 초저녁이었다.
윤은 딸딸이를 질질 끌며 별채를 나섰다.
입이찢어져라 하품을 해대는 녀석의 얼굴로 마치 큰 구멍이 뚫려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구멍 속 혀가 달빛에 붉게 번들거린다.
정원을 따라 작은 샛길로 들어서자 제법 큰 규모의 한옥이 눈앞에 드러났다.
요정 춘광이다.
춘광의 처마밑으로 수백개의 달이 떠 올라있다.
스치는 바람에 달큰한 매화향과 함께 바깥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식의 기름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수 많은 방들 너머 뒤엉킨 음성과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
시끌벅적 잔치집과도 같은 춘광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할무이~ 나 배고파~~”
윤이 주방을 들여다 보며 앓는 소리를 내자, 할머니가 돌아 보았다.
“어이구~ 내 정신 좀 보래이~!! 내 새꾸~ 밥도 안메기고~!!! 이 할매가 노망이 났는 갑데이~!!!”
할머니는 술독에서 매화가 담긴 명주 주머니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저어 짝에~ 행님들 있는데로 가서, 니 좋아하는 전이랑 잡채 좀 먹고 있거래이~
할매가 정신 좀 챙기면 밥 채려 주꾸마~”
“형들?”
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조리실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과연 분주한 아주머니들 사이로 어리숙해 보이는 중닭 몇몇이 시야에 들어왔다.
“형~ 여기서 뭐하는 거야?”
열심히 전을 부치고 있는 재혁의 곁으로 윤이 쪼그려 앉았다.
어느덧 입안으로 전을 주섬주섬 그려넣고 있는 윤.
“하나씩,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한다.”
재혁의 말에 끄덕이는 고개와 달리 윤의 양볼은 이미 미어 터질듯 부풀어 오른다.
“호호호호호 윤아, 그렇게 맛있어?”
이를 곁에서 보고있던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윤은 신나게 고개를 끄덕인다.
“주말 저녁도 아닌데, 주방이 왜 이렇게 전쟁통인 거에요?”
“어휴~ 말도 마~ 이미 예약이 다 찼는데, 실수로 이중 예약을 받았다지 뭐니~”
겉절이를 무치던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도 재혁 학생이 도와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호호호호호”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그치지 않고 쏟아졌다.
“재혁 학생 같은 사위 있음 얼마나 좋아? 인물도 훤칠한데 손까지 야무져서 볼수록 탐난단 말이야~”
“사위는 무슨~! 솔직히 말해!! 본인이 시집가고 싶은거 아냐?!!!!”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왜들이래 정말!!!!!!!”
박장대소하는 아주머니들과는 무관하게 전투적으로 전부치기에 임하는 재혁의 이마위로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당장이라도 눈가로 흘러들어갈 모양새다.
윤이 느닷없이 얼굴을 들여다 보자 재혁의 눈동자로 미묘한 움직임이 일었다.
행주로 재혁의 땀을 닦아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기름 방울들이 윤의 맨 다리로 돌진한다.
“앗! 따가워!”
“괜찮아?!!!”
윤의 하얀 맨살이 울긋불긋 붉게 꽃 피우자, 재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는 아직 날도 찬데,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니고 그러냐?!”
재혁의 볼멘소리에,
“뭐래? 이미 매화꽃 폈어. 그리고 이 바지 형이 몇 달 전에 사준거야.”
윤 역시 뽀로통하다.
재혁의 시선이 윤의 하얀 허벅지로 고정된다.
처음 건넸을땐 분명 무릎 바로 위 기장이었는데,
그러고보니 녀석의 키가 더 자랐다.
“땀을 육수같이 흘리고 있으면서…….”
윤은 아몬드와도 같은 긴 눈을 흘기며 행주를 들어 재혁의 이마위로 솟은 땀을 닦아 냈다.
“아이고~ 우리 윤이 다리좀 봐~ 저게 무슨 사내 다리야~”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기름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공기의 무게를 더 한다.
“호호호호호호 그나저나, 사내녀석이 저렇게 예뻐서 어쩐데~”
“저게 다. 지 엄마 닮아서 그렇지~ 어디 경애가 보통 미인이었어? 왠만한 여배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잖아~”
“독한년, 저렇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새끼를 두고 어찌 눈을 감았는지……”
“쉿~! 입 조심들 좀 해~!! 그러다 윤이 듣겠다!”
다소 불편한 소리에 재혁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의 눈이 재빨리 윤의 안색을 훑는다.
우려와 달리 오물오물 전 주워먹기에 여념이 없는 윤이다.
…… 그런데 먹어도 너무 잘먹는다.
재혁은 불안한 눈빛으로 전이 담겨진 접시를 황급히 살폈다.
아…… 전 세트의 균형이 심상치 않다.
동그랑땡, 육전, 오색꼬치전, 깻잎전, 동태전…… 도,동태전이 짧아도 너무 짧다.
“인마!! 동태전 좀 그만 집어먹어~!!!”
재혁의 잔소리에 윤의 아몬드와도 같은 긴 눈이 다시금 그를 흘겨 볼 때다.
“늬들 지금 뭐햐냐?”
건조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빨간고무장갑을 끼고 방수 앞치마를 두른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덕구와 눈이 마주쳤다.
……아뿔싸!
미어질듯한 볼로 어색한 미소와 함께 윤이 손을 들어 인사를 대신하자,
“잔망 그만떨고 빨랑와라……”
건조하다 못해 메마른 덕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재혁 저 자식.. 우리랑 있음 단 세마디도 안하는 새끼가~”
“그만 궁시렁 대고 빨리 그릇이나 닦아 넘겨.”
태봉이 말했다.
태봉의 채근에 덕구가 온 힘을 실어 수세미로 밥그릇을 빡빡 문지른다.
그사이 윤이 등장하자,
“배 좀 채웠냐?”
수돗물에 그릇을 헹구던 태봉이 씨익 웃어보였다.
“정팔이 형은?”
“대문 앞 교통정리~”
“삼촌들은 다 어디가고, 정팔이 형이 거기 있데?”
“오늘 너네 아버지 총회란다~ 정과장님이 삼촌들 데리고 총회 참석하러 갔어.
……결론은 노안이야……”
“풉~! 뭐?”
“상상이되니?”
“꼭 해야해?”
“..신생아 시절의 배정팔……”
“아…… 나 소두인가봐…….. 창의력 제로야…….”
“정팔인,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저 상태이지 않았을까?”
“……”
“……”
아주 잠깐.
셋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그때였다.
열려있던 쪽 창으로 담배연기와 함께 여자의 욕설이 날아 들었다.
“개새끼들……!”
윤이 까지발을 하고 창밖을 내려다 보았다.
벽으로 기대어 앉아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들썩이는 여자의 노랑저고리가 낯익다.
“월희 누나…..?”
뒷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나가는 윤.
쪼그려 앉아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로 붉은 립스틱이 번져 있다.
“윤이 너, 공부 안하고 여기서 뭐해……?”
손가락 사이로 작은 떨림이 담배연기를 춤추게 한다.
분노와 슬픔은 쉽게 전염된다.
“어느 방이야?”
윤은 여자의 나머지 손에 들려있는 빈 술 주전자를 자신의 손으로 옮겨왔다.
“까불지마.”
“..공짜 아냐~ 서빙 한번에 500원이야.”
“학생이 거길 왜 들어가?”
“나도 떡볶이 값좀 벌어봅시다~!!”
“윤아!!!”
#2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으로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서빙을 하느라 수시로 문을 열고 드나드는 종업원 들로 인해 각 방안 사정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곤은 한옥이 꼭 개미집 같다.
그가 마리화나를 한모금 깊이 빨아 당길 때 였다.
짧은 반바지 차림의 소년이 주전자를 들고 걸어오고 있다.
조금전 까지 곤과 그 일행이 마셨던 매화주가 담긴 그 주전자다.
소년은 자신과 불과 십여미터 거리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어 주전자 주둥이에 입술을 대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양이 제법이다.
입술을 타고 술이 넘쳐 흐른다.
이를 손등으로 훔쳐내던 소년은 주전자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단전 깊은 곳에서 부터 끌어모은 침을 주전자 안으로 뱉어댔다.
다시금 소년의 걸음이 이어진다.
소년은 곤을 지나쳐 문이 활짝열린 그의 일행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순간 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곤은 그 방이 꼭 개미지옥 같다.
#3
“매화주 입니다.”
방으로 들어서니 만원권 지폐가 난잡하게 널부러져 있다.
바닥으로 뒤엉켜 있는 남녀 아래로.
또는 누나들의 가슴골 사이로.
너댓명의 사내들은 자신보다 기껏해야 서너살 정도 많아보였다.
윤의 입술사이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돈이 무섭네……”
“어이~ 밤톨, 너 방금 뭐랬냐?”
술잔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던 사내 하나가, 주전자를 내려놓고 일어서려는 윤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그러자 윤이 사내의 코앞까지 얼굴을 냅다 들이 밀며 쪼갠다.
“돈 지랄 재밌냐?”
“이 좀만한 새끼가 진짜!!!”
사내가 윤의 목을 움켜 쥐며 소리쳤다.
“격 떨어지게 여기서 돈 지랄말고, 집에가서 딸이나 처라 새캬!!”
윤과 사내의 얼굴간격이 불과 몇 센티 떨어져 있지 않다.
겁을 먹기는 커녕 박치기라도 시도할 참인지 거리를 더욱 좁혀오는 소년이 사내는 맹랑하다.
“이야~ 이제보니, 요거 요상스런 물건이네~”
사내는 눈을 크게 뜨고 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사내새끼 얼굴이 왜이래?”
윤의 목을 움켜쥐고 일어서는 사내의 덩치가 제법 크다.
윤의 다리가 지면에서 들어올려지자, 저고리가 벗겨진 분홍치마의 여자가 사내의 등을 후려치며 달려들었다.
“개좆같은 새끼야!!! 지금 애한테 뭐하는 짓이야?!!!”
사내의 주먹이 분홍치마 여자의 얼굴을 갈겼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분홍치마의 여자가 술상위로 내동댕이 쳐졌다.
“누나!!!!!!! 이 개새끼가!!!!!!!!!!!”
윤의 무릎이 사내의 턱에 냅다 꽂혔다.
중심을 잃은 사내가 윤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를 틈타 윤이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사내의 큰손이 윤의 발목을 낚아챈다.
“어이구야~ 이 새끼 다리 매끈한것 좀 보소~!!!!!”
사내가 윤의 배위로 올라탔다.
발버둥 치며 주먹을 날리려는 윤의 양팔을 사내가 우악스럽게 눌러내린다.
“밤톨. 너 돈맛 한번 제대로 볼래?”
“씨바! 썩은네 나는 궁둥짝 당장 치워라..!”
사내는 바지 버클을 풀어내렸다.
“빨어……”
윤은 사내의 말을 해석 할 수 없다.
“왜? 여기서는 계집질이 안된다며? 그러니까 저년들 대신 니가 내 물건 빨라고!!!!”
그때 불현듯 사내의 머리로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재혁이었다.
손에 들린 큰 돌로 사내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찍는 재혁의 눈이 사백안이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바닥으로 꼬구라 졌음에도 재혁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통이 부서져라 내리치는 재혁의 얼굴로 사내의 피가 튀어, 지켜보는 이들의 공포심이 배가 된다.
여자들의 비명소리만 방안을 가득 메울뿐, 그 어느 누구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야!!! 재혁아!!!! 김재혁!!!!!!!”
덕구와 태봉이 뛰어들어왔다.
재혁의 팔을 한쪽씩 붙잡고 저지 시키려 했지만, 힘이 어찌나 장사인지 그만 나가 떨어지고야 만다.
“새꺄!!!! 그러다 사람 죽어!!!!!!!”
다시금 재혁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덕구와 태봉.
서로가 뒤엉키는 아수라장 속에서,
“..형…. 동태전 좀 남았어…..?”
뜬금없이 들려오는 윤의 음성.
“나, 배고프다……”
"어......"
거짓말 처럼 재혁의 폭주가 멈췄다.
배고픔에 눈을 뜨니 초저녁이었다.
윤은 딸딸이를 질질 끌며 별채를 나섰다.
입이찢어져라 하품을 해대는 녀석의 얼굴로 마치 큰 구멍이 뚫려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구멍 속 혀가 달빛에 붉게 번들거린다.
정원을 따라 작은 샛길로 들어서자 제법 큰 규모의 한옥이 눈앞에 드러났다.
요정 춘광이다.
춘광의 처마밑으로 수백개의 달이 떠 올라있다.
스치는 바람에 달큰한 매화향과 함께 바깥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식의 기름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수 많은 방들 너머 뒤엉킨 음성과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
시끌벅적 잔치집과도 같은 춘광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할무이~ 나 배고파~~”
윤이 주방을 들여다 보며 앓는 소리를 내자, 할머니가 돌아 보았다.
“어이구~ 내 정신 좀 보래이~!! 내 새꾸~ 밥도 안메기고~!!! 이 할매가 노망이 났는 갑데이~!!!”
할머니는 술독에서 매화가 담긴 명주 주머니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저어 짝에~ 행님들 있는데로 가서, 니 좋아하는 전이랑 잡채 좀 먹고 있거래이~
할매가 정신 좀 챙기면 밥 채려 주꾸마~”
“형들?”
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조리실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과연 분주한 아주머니들 사이로 어리숙해 보이는 중닭 몇몇이 시야에 들어왔다.
“형~ 여기서 뭐하는 거야?”
열심히 전을 부치고 있는 재혁의 곁으로 윤이 쪼그려 앉았다.
어느덧 입안으로 전을 주섬주섬 그려넣고 있는 윤.
“하나씩,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한다.”
재혁의 말에 끄덕이는 고개와 달리 윤의 양볼은 이미 미어 터질듯 부풀어 오른다.
“호호호호호 윤아, 그렇게 맛있어?”
이를 곁에서 보고있던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윤은 신나게 고개를 끄덕인다.
“주말 저녁도 아닌데, 주방이 왜 이렇게 전쟁통인 거에요?”
“어휴~ 말도 마~ 이미 예약이 다 찼는데, 실수로 이중 예약을 받았다지 뭐니~”
겉절이를 무치던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도 재혁 학생이 도와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호호호호호”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그치지 않고 쏟아졌다.
“재혁 학생 같은 사위 있음 얼마나 좋아? 인물도 훤칠한데 손까지 야무져서 볼수록 탐난단 말이야~”
“사위는 무슨~! 솔직히 말해!! 본인이 시집가고 싶은거 아냐?!!!!”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왜들이래 정말!!!!!!!”
박장대소하는 아주머니들과는 무관하게 전투적으로 전부치기에 임하는 재혁의 이마위로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당장이라도 눈가로 흘러들어갈 모양새다.
윤이 느닷없이 얼굴을 들여다 보자 재혁의 눈동자로 미묘한 움직임이 일었다.
행주로 재혁의 땀을 닦아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기름 방울들이 윤의 맨 다리로 돌진한다.
“앗! 따가워!”
“괜찮아?!!!”
윤의 하얀 맨살이 울긋불긋 붉게 꽃 피우자, 재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는 아직 날도 찬데,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니고 그러냐?!”
재혁의 볼멘소리에,
“뭐래? 이미 매화꽃 폈어. 그리고 이 바지 형이 몇 달 전에 사준거야.”
윤 역시 뽀로통하다.
재혁의 시선이 윤의 하얀 허벅지로 고정된다.
처음 건넸을땐 분명 무릎 바로 위 기장이었는데,
그러고보니 녀석의 키가 더 자랐다.
“땀을 육수같이 흘리고 있으면서…….”
윤은 아몬드와도 같은 긴 눈을 흘기며 행주를 들어 재혁의 이마위로 솟은 땀을 닦아 냈다.
“아이고~ 우리 윤이 다리좀 봐~ 저게 무슨 사내 다리야~”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기름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공기의 무게를 더 한다.
“호호호호호호 그나저나, 사내녀석이 저렇게 예뻐서 어쩐데~”
“저게 다. 지 엄마 닮아서 그렇지~ 어디 경애가 보통 미인이었어? 왠만한 여배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잖아~”
“독한년, 저렇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새끼를 두고 어찌 눈을 감았는지……”
“쉿~! 입 조심들 좀 해~!! 그러다 윤이 듣겠다!”
다소 불편한 소리에 재혁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의 눈이 재빨리 윤의 안색을 훑는다.
우려와 달리 오물오물 전 주워먹기에 여념이 없는 윤이다.
…… 그런데 먹어도 너무 잘먹는다.
재혁은 불안한 눈빛으로 전이 담겨진 접시를 황급히 살폈다.
아…… 전 세트의 균형이 심상치 않다.
동그랑땡, 육전, 오색꼬치전, 깻잎전, 동태전…… 도,동태전이 짧아도 너무 짧다.
“인마!! 동태전 좀 그만 집어먹어~!!!”
재혁의 잔소리에 윤의 아몬드와도 같은 긴 눈이 다시금 그를 흘겨 볼 때다.
“늬들 지금 뭐햐냐?”
건조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빨간고무장갑을 끼고 방수 앞치마를 두른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덕구와 눈이 마주쳤다.
……아뿔싸!
미어질듯한 볼로 어색한 미소와 함께 윤이 손을 들어 인사를 대신하자,
“잔망 그만떨고 빨랑와라……”
건조하다 못해 메마른 덕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재혁 저 자식.. 우리랑 있음 단 세마디도 안하는 새끼가~”
“그만 궁시렁 대고 빨리 그릇이나 닦아 넘겨.”
태봉이 말했다.
태봉의 채근에 덕구가 온 힘을 실어 수세미로 밥그릇을 빡빡 문지른다.
그사이 윤이 등장하자,
“배 좀 채웠냐?”
수돗물에 그릇을 헹구던 태봉이 씨익 웃어보였다.
“정팔이 형은?”
“대문 앞 교통정리~”
“삼촌들은 다 어디가고, 정팔이 형이 거기 있데?”
“오늘 너네 아버지 총회란다~ 정과장님이 삼촌들 데리고 총회 참석하러 갔어.
……결론은 노안이야……”
“풉~! 뭐?”
“상상이되니?”
“꼭 해야해?”
“..신생아 시절의 배정팔……”
“아…… 나 소두인가봐…….. 창의력 제로야…….”
“정팔인,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저 상태이지 않았을까?”
“……”
“……”
아주 잠깐.
셋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그때였다.
열려있던 쪽 창으로 담배연기와 함께 여자의 욕설이 날아 들었다.
“개새끼들……!”
윤이 까지발을 하고 창밖을 내려다 보았다.
벽으로 기대어 앉아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들썩이는 여자의 노랑저고리가 낯익다.
“월희 누나…..?”
뒷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나가는 윤.
쪼그려 앉아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로 붉은 립스틱이 번져 있다.
“윤이 너, 공부 안하고 여기서 뭐해……?”
손가락 사이로 작은 떨림이 담배연기를 춤추게 한다.
분노와 슬픔은 쉽게 전염된다.
“어느 방이야?”
윤은 여자의 나머지 손에 들려있는 빈 술 주전자를 자신의 손으로 옮겨왔다.
“까불지마.”
“..공짜 아냐~ 서빙 한번에 500원이야.”
“학생이 거길 왜 들어가?”
“나도 떡볶이 값좀 벌어봅시다~!!”
“윤아!!!”
#2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으로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서빙을 하느라 수시로 문을 열고 드나드는 종업원 들로 인해 각 방안 사정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곤은 한옥이 꼭 개미집 같다.
그가 마리화나를 한모금 깊이 빨아 당길 때 였다.
짧은 반바지 차림의 소년이 주전자를 들고 걸어오고 있다.
조금전 까지 곤과 그 일행이 마셨던 매화주가 담긴 그 주전자다.
소년은 자신과 불과 십여미터 거리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어 주전자 주둥이에 입술을 대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양이 제법이다.
입술을 타고 술이 넘쳐 흐른다.
이를 손등으로 훔쳐내던 소년은 주전자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단전 깊은 곳에서 부터 끌어모은 침을 주전자 안으로 뱉어댔다.
다시금 소년의 걸음이 이어진다.
소년은 곤을 지나쳐 문이 활짝열린 그의 일행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순간 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곤은 그 방이 꼭 개미지옥 같다.
#3
“매화주 입니다.”
방으로 들어서니 만원권 지폐가 난잡하게 널부러져 있다.
바닥으로 뒤엉켜 있는 남녀 아래로.
또는 누나들의 가슴골 사이로.
너댓명의 사내들은 자신보다 기껏해야 서너살 정도 많아보였다.
윤의 입술사이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돈이 무섭네……”
“어이~ 밤톨, 너 방금 뭐랬냐?”
술잔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던 사내 하나가, 주전자를 내려놓고 일어서려는 윤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그러자 윤이 사내의 코앞까지 얼굴을 냅다 들이 밀며 쪼갠다.
“돈 지랄 재밌냐?”
“이 좀만한 새끼가 진짜!!!”
사내가 윤의 목을 움켜 쥐며 소리쳤다.
“격 떨어지게 여기서 돈 지랄말고, 집에가서 딸이나 처라 새캬!!”
윤과 사내의 얼굴간격이 불과 몇 센티 떨어져 있지 않다.
겁을 먹기는 커녕 박치기라도 시도할 참인지 거리를 더욱 좁혀오는 소년이 사내는 맹랑하다.
“이야~ 이제보니, 요거 요상스런 물건이네~”
사내는 눈을 크게 뜨고 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사내새끼 얼굴이 왜이래?”
윤의 목을 움켜쥐고 일어서는 사내의 덩치가 제법 크다.
윤의 다리가 지면에서 들어올려지자, 저고리가 벗겨진 분홍치마의 여자가 사내의 등을 후려치며 달려들었다.
“개좆같은 새끼야!!! 지금 애한테 뭐하는 짓이야?!!!”
사내의 주먹이 분홍치마 여자의 얼굴을 갈겼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분홍치마의 여자가 술상위로 내동댕이 쳐졌다.
“누나!!!!!!! 이 개새끼가!!!!!!!!!!!”
윤의 무릎이 사내의 턱에 냅다 꽂혔다.
중심을 잃은 사내가 윤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를 틈타 윤이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사내의 큰손이 윤의 발목을 낚아챈다.
“어이구야~ 이 새끼 다리 매끈한것 좀 보소~!!!!!”
사내가 윤의 배위로 올라탔다.
발버둥 치며 주먹을 날리려는 윤의 양팔을 사내가 우악스럽게 눌러내린다.
“밤톨. 너 돈맛 한번 제대로 볼래?”
“씨바! 썩은네 나는 궁둥짝 당장 치워라..!”
사내는 바지 버클을 풀어내렸다.
“빨어……”
윤은 사내의 말을 해석 할 수 없다.
“왜? 여기서는 계집질이 안된다며? 그러니까 저년들 대신 니가 내 물건 빨라고!!!!”
그때 불현듯 사내의 머리로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재혁이었다.
손에 들린 큰 돌로 사내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찍는 재혁의 눈이 사백안이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바닥으로 꼬구라 졌음에도 재혁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통이 부서져라 내리치는 재혁의 얼굴로 사내의 피가 튀어, 지켜보는 이들의 공포심이 배가 된다.
여자들의 비명소리만 방안을 가득 메울뿐, 그 어느 누구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야!!! 재혁아!!!! 김재혁!!!!!!!”
덕구와 태봉이 뛰어들어왔다.
재혁의 팔을 한쪽씩 붙잡고 저지 시키려 했지만, 힘이 어찌나 장사인지 그만 나가 떨어지고야 만다.
“새꺄!!!! 그러다 사람 죽어!!!!!!!”
다시금 재혁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덕구와 태봉.
서로가 뒤엉키는 아수라장 속에서,
“..형…. 동태전 좀 남았어…..?”
뜬금없이 들려오는 윤의 음성.
“나, 배고프다……”
"어......"
거짓말 처럼 재혁의 폭주가 멈췄다.
작가의 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관심, 추천 좀 눌러주고 가소서~!
그리고 마음 주신 분들 끝까지 책임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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