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타투 스마일
조회 : 1,107 추천 : 1 글자수 : 6,104 자 2022-12-13
#53-3
“...내가 뭐냐고? 니 친구 애인이다. 새끼야……”
일 순간 하얗게 굳어 버리는 형준.
“형준이 쟤. 왜저래?”
정팔의 머리위로 물음표가 떠 있다.
주먹으로 가볍게 재혁의 어깨를 쳤다.
“또 뭐라고 겁박 했길래. 애가 고장이 다 났어?”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 무서워라~ 화난 얼굴이 꼭 바람난 애인 잡으러 온 수컷 같네~”
남고에선 좀 처럼 접할 수 없는 귀한 여학생의 지저귐이었다.
은혜로운 얼굴의 정팔과 도영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소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헉!
정팔과 도영의 입이 동시에 떡 벌어졌다.
어느덧 수십 명의 청춘고 일진들에게 둘러싸였기 때문이었다.
“어이, 구도영. 도장 깨기라도 하러 왔냐?”
제법 더러운 면상의 빡빡머리가 입을 열었다.
“최일두 어딨냐?”
재혁의 물음에 빡빡머리가 눈을 돌렸다.
“니네 통을 왜 여기서 찾고 지랄이야?”
“다시 묻겠다. 연합 모임일이 언제지?”
“건방진 새끼, 어디서 족보도 없는게 연합을 들먹이는 거야?!”
이에 씨익 쪼개며 복도로 침을 뱉는 재혁.
“안되겠다. 그냥 쉽게 가자.”
퍽!
제법 더러운 빡빡머리의 면상으로 선빵을 날렸다.
54-3
어두운 쪽빵.
노란장판 귀퉁이로 매트리스와 이불 한장이 전부다.
낡은 벽지에서 묻어 나는 케케묵은 냄새가 이 공간의 세월을 대신한다.
화려한 곤과 대조되는 공간.
수도승의 방보다 더 쓸쓸하다.
꼬르륵.
윤의 배꼽 시계가 울렸다.
“아, 맞다.”
윤은 곤이 내려놓은 책가방에서 수액과 약품 그리고 할머니가 싸준 찬합통을 꺼내었다.
“…책은 없니?”
곤의 물음에 뭐 그런 황당한 질문을 다 하냐는 듯한 윤의 얼굴이다.
“책을 왜 들고 다녀요 무겁게. 책은 학교에. 나는 집에.”
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리 와 봐요.”
걸레짝 같은 곤의 상처를 살피기 위해 윤이 손을 뻗자, 그가 녀석의 손목을 잡는다.
꼬르륵.
또 한번 윤의 배꼽 시계가 울렸다.
“배 부터 채우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만났고, 곤은 미소를 지었다.
화상을 입은 듯 했다.
화들짝 놀란 윤이 곤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황급히 찬합통을 열었다.
“…비빔밥인가......?”
뒤 범벅이 된 반찬들이 마치 험난 했던 조금전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했다.
민망함에 찬합 뚜껑을 닫으려 할 때다.
어느새 젓가락이 들어왔다.
“나… 도시락은 처음이야.”
숨이 턱 막혔다.
윤은 차마 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의 심장. 스마일에 시선을 고정했다.
애잔한 스마일.
“내 젖꼭지를 사랑하니?”
“...네?”
“아무리 빨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 밥을 먹어야 힘을 쓰지.”
그러자 눈을 부라리는 윤.
“입 닥쳐요. 밥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어요.”
“내 말이...”
윤은 득달같이 불고기를 덥석 베어 물었다.
“주인장이 술만 잘 빚는게 아니라, 음식 솜씨가 제법이네.”
간장 불고기, 잡채, 더덕무침, 동그랑땡, 소시지, 대가리가 날아간 멸치 볶음......
곤은 몸뚱이만 남은 멸치를 보자 그 누군가가 떠올라 잠시 씹는 법을 잊었다.
“...왜 하필 스마일이에요?”
윤의 눈길이 다시금 곤의 타투 스마일에 머물렀다.
“...잊고 싶지 않아서......”
공허함이 묻어나는 곤의 음성.
“..이 녀석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
“…스마일...... 만났어요?”
“...죽었더라고......”
모든 걸 바쳐 지켜낸 아이였다.
비록 세상에 버려졌을 지라도, 지켜 줘야 하는 대상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고아원에서 녀석을 탈출시키고, 곤이 대신 해외 입양을 가게 되었다.
지옥 같은 세월 이었지만, 자신이 아이를 대신할 수 있음에 안도했다.
딱히 바라던게 있었던가.
그저 한번씩 녀석의 얼굴 보며 사는 것만으로도, 이 거지 같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살아보려 했다.
그래서 돌아왔다.
그러나 생명줄은 끊어졌다.
“…그게.. 사람들을 약으로 죽이려는 이유예요?”
윤의 물음에 곤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재밌으니까.”
“?”
악귀.
곤을 바라보는 윤의 까만 두 눈동자에 두려움이 서린다.
아아앙. 아앗!
흐.흐윽! 어.억!
그때 벽을 타고 교성이 들려왔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히고, 이내 윤이 곤을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등으로 난 아린 상처에 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곤의 두뺨으로 열기가 올랐다.
어깨로 닿는 윤의 지문이 꿈 처럼 부드럽다.
이어지는 쓰라림.
상처를 덮고있는 거즈를 떼어 내려는 윤의 손목을 곤의 큰 손이 덥썩 잡았다.
상체의 중심이 아래로 쏟아져 윤은 곤의 얼굴에 난 두개의 구멍을 가까이 마주한다.
토파즈와도 같은 두 눈동자를 홀린듯 쳐다보고 있자니 심장이 울렸다.
“넌, 내 눈이 무섭지 않니?”
무섭기는 커녕 이 망할 놈의 눈동자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분하게도…… 예뻐요……”
우물거리는 윤의 말에 곤이 눈꼬리를 살짝 내리며 반해버릴 것만 같은 미소를 지었다.
윤은 그 미소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한다.
탄탄한 팔 근육이 진공상태의 시간을 깨고 윤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아랫배가 뜨거워지면서 배꼽이 간지럽다.
곤의 입술이 윤의 입술에 닿는 순간 그 부드러움에 윤은 녹아 흐를 것만 같았다.
위험하다.
“아,아앗!”
윤이 상처를 압박했다.
아찔함에 곤이 고통을 토해냈다.
찌그러졌는데, 웃고있는 이상한 얼굴의 곤.
스마일을 지키느라 곤은 지금의 짝눈이 되었다.
괴물이 되었다며 모두가 멀리했지만, 오직 스마일 만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래서 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스마일이 없이는 더는 사람이 되지 못 할 꺼라 생각했다.
천사가 떨어지기 전까진……
곤은 사람들이 혐오해 마지 않는 자신의 짝눈을 예쁘다고 말해주는 윤을 뼈째 사랑했다.
홍당무가 되어 허둥지둥 책가방으로 들어 있는 약품들을 꺼내는 윤의 손끝으로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분명 흔들림이다.
곤은 아쉬움을 한숨으로 대신한다.
압박당한 곤의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또 곤의 육체에 손상을 가했다.
윤은 그런 자신이 못내 짜증스럽다.
“미,미안해요. 그러게 왜 매를 벌어요!”
“아냐. 이해해. 내가 좀 치명적이어야 말이지.”
“하아. 병이야 병. 염병.”
깊은 탄식의 윤이 곤의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멸균 코튼볼에 포비돈을 적셨다.
“그렇게 깔짝 거리다가 어느 세월에 칠하것냐. 그냥 부어라.”
“무슨 호러 영화 찍을 일 있어요? 부으면, 누가 치워요.”
쫑알쫑알.
쉬지 않고 움직이는 빨강 입술이 여전히 아쉬운 곤은 휘파람으로 욕망을 날려보낸다.
“쪼그만게 잔소리는.”
윤의 길고 하얀 손가락이 부산히 움직였다. 상처 소독 후 멸균 거즈를 덮고 반창고를 붙였다. 곤의 동공이 그 움직임을 따라가느라 분주하다.
“앞판 다 됐어요. 이제 뒤 돌아 누워요.”
곤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상체를 내려다 보았다.
뿌듯해하는 윤의 표정과는 달리 상판으로 누더기를 덕지덕지 기워넣은 것과 같은 모양새다.
아무래도 천사는 손재주가 없다.
“미술엔 영 젬병이구나.”
“처 맞기 전에 닥치고 돌아 눕기나 해요!”
곤은 뒤 돌기가 싫다.
윤이 완력으로라도 곤을 뒤집기 위해 그의 몸통 사이로 다리를 벌리고 우뚝 섰다.
“아이씨. 이거 왜이렇게 길어!”
“그대로 그냥 앉으면 되겠네.”
능글맞은 미소로 곤이 말했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표정에 윤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새 누가 와서 텐트를 치고 갔는지……
곤의 신체 중앙으로 텐트가 우뚝 솟았다.
“진정으로 처 맞고 싶다면야.”
윤의 발이 텐트를 무참히 밟았다.
이에 곤은 입밖으로 소리도 못 낼만큼의 고통으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한결 낫네.”
피로 물든 거즈를 떼어내자 봉합 부위가 일부 짓물러 있다.
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성껏 소독을 했다.
“그림 그리냐? 뭐가 그리 오래 걸려?”
곤의 볼멘 소리다.
“아파도 좀 참아요.”
“아프기는, 간지러워 그러지.”
“아무래도 물고기 한 마리는 장애를 입을 것 같아요. 최대한 흉 안지게 하려면 상처가 깨끗이 아물어야 할 것 아니에요.”
“뭐어?! 제발 그 아이를 살려줘! 타투 리스트가 얼마나 살벌한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까 그 입 닥치고 얌전히 좀 있어봐요!”
다비드 상처럼 아름다운 곤의 육신이 갉아 먹힌다.
속상한 자신과 달리 위기감이라고는 일도 찾아 볼 수 없는 곤의 투정이 어이없는 윤이다.
어떻게든 손상이 없던 처음으로 복구 시킬 것이다.
곤의 손바닥으로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쥐어 주었다.
약이 허공으로 날았다.
윤의 얼굴이 구겨졌다.
험상궂은 표정의 윤이 곤의 턱을 움켜쥐고 양볼을 밀었다.
턱이 벌어졌다.
벌어진 턱으로 혀가 드러났다.
혀 위로 약을 떨어뜨렸다.
윤은 물을 찾았다.
쪽방 그 어디에도 물은 보이지 않았다.
우드득, 우드득.
설마 하며 윤이 고개를 돌렸다.
윤의 두 눈이 커지고, 곤이 약을 씹어 삼켰다.
“왜......? 쓰지 않아요? 대체 왜......?”
“귀찮아.”
자해.
그는 평생 자해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일까?
윤은 평생 자신을 따라 다니던 결핍의 고통을 곤에게서 보았다.
슬픔에 갉아 먹힌 인간.
“의사가 수액이랑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했어요.”
나른한 표정이되어 바닥으로 머리를 비비며 고개를 뒤로 꺾듯 밀어 올리는 곤.
“굳이 왜?”
“나, 썩은 음식 안 먹어요.”
그러자 곤은 언제 뭉개고 있었냐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사천리로 수액을 세팅 후 자신의 혈관으로 바늘을 찔러 넣었다.
타투로 뒤덮인 거죽 아래 퍼렇게 뻗어있는 혈관이 꿈틀거리다 바늘에 낚인다.
똑.똑.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곤이 잠들어 버린 쪽방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해서 수액 떨어지는 소리가 다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백 하나, 백 둘......
곤의 곁에 누워 떨어지는 수액 방울을 세던 윤은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그마저도 포기한다.
빗물에 창문이 일그러졌다.
곤의 얼굴로 내려 앉는 일그러진 빛.
윤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뒤틀림 속에서도 그는 아름다웠다.
재혁이 아닌 그를 먼저 만났더라면......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나 사랑이란 그것만은 아닐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의 지문이다.
윤이 빼앗긴 시선을 거두려 할 때였다.
“...엄마......”
곤의 입술이 벌어지며 엄마가 쏟아졌다.
윤은 그 결핍을 안다.
엄마는 고통이다.
윤은 덩그러니 놓여진 곤의 손으로 자신의 손을 덮는다.
눈을 감는다.
“...내가 뭐냐고? 니 친구 애인이다. 새끼야……”
일 순간 하얗게 굳어 버리는 형준.
“형준이 쟤. 왜저래?”
정팔의 머리위로 물음표가 떠 있다.
주먹으로 가볍게 재혁의 어깨를 쳤다.
“또 뭐라고 겁박 했길래. 애가 고장이 다 났어?”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 무서워라~ 화난 얼굴이 꼭 바람난 애인 잡으러 온 수컷 같네~”
남고에선 좀 처럼 접할 수 없는 귀한 여학생의 지저귐이었다.
은혜로운 얼굴의 정팔과 도영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소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헉!
정팔과 도영의 입이 동시에 떡 벌어졌다.
어느덧 수십 명의 청춘고 일진들에게 둘러싸였기 때문이었다.
“어이, 구도영. 도장 깨기라도 하러 왔냐?”
제법 더러운 면상의 빡빡머리가 입을 열었다.
“최일두 어딨냐?”
재혁의 물음에 빡빡머리가 눈을 돌렸다.
“니네 통을 왜 여기서 찾고 지랄이야?”
“다시 묻겠다. 연합 모임일이 언제지?”
“건방진 새끼, 어디서 족보도 없는게 연합을 들먹이는 거야?!”
이에 씨익 쪼개며 복도로 침을 뱉는 재혁.
“안되겠다. 그냥 쉽게 가자.”
퍽!
제법 더러운 빡빡머리의 면상으로 선빵을 날렸다.
54-3
어두운 쪽빵.
노란장판 귀퉁이로 매트리스와 이불 한장이 전부다.
낡은 벽지에서 묻어 나는 케케묵은 냄새가 이 공간의 세월을 대신한다.
화려한 곤과 대조되는 공간.
수도승의 방보다 더 쓸쓸하다.
꼬르륵.
윤의 배꼽 시계가 울렸다.
“아, 맞다.”
윤은 곤이 내려놓은 책가방에서 수액과 약품 그리고 할머니가 싸준 찬합통을 꺼내었다.
“…책은 없니?”
곤의 물음에 뭐 그런 황당한 질문을 다 하냐는 듯한 윤의 얼굴이다.
“책을 왜 들고 다녀요 무겁게. 책은 학교에. 나는 집에.”
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리 와 봐요.”
걸레짝 같은 곤의 상처를 살피기 위해 윤이 손을 뻗자, 그가 녀석의 손목을 잡는다.
꼬르륵.
또 한번 윤의 배꼽 시계가 울렸다.
“배 부터 채우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만났고, 곤은 미소를 지었다.
화상을 입은 듯 했다.
화들짝 놀란 윤이 곤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황급히 찬합통을 열었다.
“…비빔밥인가......?”
뒤 범벅이 된 반찬들이 마치 험난 했던 조금전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했다.
민망함에 찬합 뚜껑을 닫으려 할 때다.
어느새 젓가락이 들어왔다.
“나… 도시락은 처음이야.”
숨이 턱 막혔다.
윤은 차마 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의 심장. 스마일에 시선을 고정했다.
애잔한 스마일.
“내 젖꼭지를 사랑하니?”
“...네?”
“아무리 빨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 밥을 먹어야 힘을 쓰지.”
그러자 눈을 부라리는 윤.
“입 닥쳐요. 밥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어요.”
“내 말이...”
윤은 득달같이 불고기를 덥석 베어 물었다.
“주인장이 술만 잘 빚는게 아니라, 음식 솜씨가 제법이네.”
간장 불고기, 잡채, 더덕무침, 동그랑땡, 소시지, 대가리가 날아간 멸치 볶음......
곤은 몸뚱이만 남은 멸치를 보자 그 누군가가 떠올라 잠시 씹는 법을 잊었다.
“...왜 하필 스마일이에요?”
윤의 눈길이 다시금 곤의 타투 스마일에 머물렀다.
“...잊고 싶지 않아서......”
공허함이 묻어나는 곤의 음성.
“..이 녀석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
“…스마일...... 만났어요?”
“...죽었더라고......”
모든 걸 바쳐 지켜낸 아이였다.
비록 세상에 버려졌을 지라도, 지켜 줘야 하는 대상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고아원에서 녀석을 탈출시키고, 곤이 대신 해외 입양을 가게 되었다.
지옥 같은 세월 이었지만, 자신이 아이를 대신할 수 있음에 안도했다.
딱히 바라던게 있었던가.
그저 한번씩 녀석의 얼굴 보며 사는 것만으로도, 이 거지 같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살아보려 했다.
그래서 돌아왔다.
그러나 생명줄은 끊어졌다.
“…그게.. 사람들을 약으로 죽이려는 이유예요?”
윤의 물음에 곤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재밌으니까.”
“?”
악귀.
곤을 바라보는 윤의 까만 두 눈동자에 두려움이 서린다.
아아앙. 아앗!
흐.흐윽! 어.억!
그때 벽을 타고 교성이 들려왔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히고, 이내 윤이 곤을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등으로 난 아린 상처에 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곤의 두뺨으로 열기가 올랐다.
어깨로 닿는 윤의 지문이 꿈 처럼 부드럽다.
이어지는 쓰라림.
상처를 덮고있는 거즈를 떼어 내려는 윤의 손목을 곤의 큰 손이 덥썩 잡았다.
상체의 중심이 아래로 쏟아져 윤은 곤의 얼굴에 난 두개의 구멍을 가까이 마주한다.
토파즈와도 같은 두 눈동자를 홀린듯 쳐다보고 있자니 심장이 울렸다.
“넌, 내 눈이 무섭지 않니?”
무섭기는 커녕 이 망할 놈의 눈동자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분하게도…… 예뻐요……”
우물거리는 윤의 말에 곤이 눈꼬리를 살짝 내리며 반해버릴 것만 같은 미소를 지었다.
윤은 그 미소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한다.
탄탄한 팔 근육이 진공상태의 시간을 깨고 윤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아랫배가 뜨거워지면서 배꼽이 간지럽다.
곤의 입술이 윤의 입술에 닿는 순간 그 부드러움에 윤은 녹아 흐를 것만 같았다.
위험하다.
“아,아앗!”
윤이 상처를 압박했다.
아찔함에 곤이 고통을 토해냈다.
찌그러졌는데, 웃고있는 이상한 얼굴의 곤.
스마일을 지키느라 곤은 지금의 짝눈이 되었다.
괴물이 되었다며 모두가 멀리했지만, 오직 스마일 만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래서 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스마일이 없이는 더는 사람이 되지 못 할 꺼라 생각했다.
천사가 떨어지기 전까진……
곤은 사람들이 혐오해 마지 않는 자신의 짝눈을 예쁘다고 말해주는 윤을 뼈째 사랑했다.
홍당무가 되어 허둥지둥 책가방으로 들어 있는 약품들을 꺼내는 윤의 손끝으로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분명 흔들림이다.
곤은 아쉬움을 한숨으로 대신한다.
압박당한 곤의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또 곤의 육체에 손상을 가했다.
윤은 그런 자신이 못내 짜증스럽다.
“미,미안해요. 그러게 왜 매를 벌어요!”
“아냐. 이해해. 내가 좀 치명적이어야 말이지.”
“하아. 병이야 병. 염병.”
깊은 탄식의 윤이 곤의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멸균 코튼볼에 포비돈을 적셨다.
“그렇게 깔짝 거리다가 어느 세월에 칠하것냐. 그냥 부어라.”
“무슨 호러 영화 찍을 일 있어요? 부으면, 누가 치워요.”
쫑알쫑알.
쉬지 않고 움직이는 빨강 입술이 여전히 아쉬운 곤은 휘파람으로 욕망을 날려보낸다.
“쪼그만게 잔소리는.”
윤의 길고 하얀 손가락이 부산히 움직였다. 상처 소독 후 멸균 거즈를 덮고 반창고를 붙였다. 곤의 동공이 그 움직임을 따라가느라 분주하다.
“앞판 다 됐어요. 이제 뒤 돌아 누워요.”
곤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상체를 내려다 보았다.
뿌듯해하는 윤의 표정과는 달리 상판으로 누더기를 덕지덕지 기워넣은 것과 같은 모양새다.
아무래도 천사는 손재주가 없다.
“미술엔 영 젬병이구나.”
“처 맞기 전에 닥치고 돌아 눕기나 해요!”
곤은 뒤 돌기가 싫다.
윤이 완력으로라도 곤을 뒤집기 위해 그의 몸통 사이로 다리를 벌리고 우뚝 섰다.
“아이씨. 이거 왜이렇게 길어!”
“그대로 그냥 앉으면 되겠네.”
능글맞은 미소로 곤이 말했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표정에 윤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새 누가 와서 텐트를 치고 갔는지……
곤의 신체 중앙으로 텐트가 우뚝 솟았다.
“진정으로 처 맞고 싶다면야.”
윤의 발이 텐트를 무참히 밟았다.
이에 곤은 입밖으로 소리도 못 낼만큼의 고통으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한결 낫네.”
피로 물든 거즈를 떼어내자 봉합 부위가 일부 짓물러 있다.
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성껏 소독을 했다.
“그림 그리냐? 뭐가 그리 오래 걸려?”
곤의 볼멘 소리다.
“아파도 좀 참아요.”
“아프기는, 간지러워 그러지.”
“아무래도 물고기 한 마리는 장애를 입을 것 같아요. 최대한 흉 안지게 하려면 상처가 깨끗이 아물어야 할 것 아니에요.”
“뭐어?! 제발 그 아이를 살려줘! 타투 리스트가 얼마나 살벌한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까 그 입 닥치고 얌전히 좀 있어봐요!”
다비드 상처럼 아름다운 곤의 육신이 갉아 먹힌다.
속상한 자신과 달리 위기감이라고는 일도 찾아 볼 수 없는 곤의 투정이 어이없는 윤이다.
어떻게든 손상이 없던 처음으로 복구 시킬 것이다.
곤의 손바닥으로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쥐어 주었다.
약이 허공으로 날았다.
윤의 얼굴이 구겨졌다.
험상궂은 표정의 윤이 곤의 턱을 움켜쥐고 양볼을 밀었다.
턱이 벌어졌다.
벌어진 턱으로 혀가 드러났다.
혀 위로 약을 떨어뜨렸다.
윤은 물을 찾았다.
쪽방 그 어디에도 물은 보이지 않았다.
우드득, 우드득.
설마 하며 윤이 고개를 돌렸다.
윤의 두 눈이 커지고, 곤이 약을 씹어 삼켰다.
“왜......? 쓰지 않아요? 대체 왜......?”
“귀찮아.”
자해.
그는 평생 자해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일까?
윤은 평생 자신을 따라 다니던 결핍의 고통을 곤에게서 보았다.
슬픔에 갉아 먹힌 인간.
“의사가 수액이랑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했어요.”
나른한 표정이되어 바닥으로 머리를 비비며 고개를 뒤로 꺾듯 밀어 올리는 곤.
“굳이 왜?”
“나, 썩은 음식 안 먹어요.”
그러자 곤은 언제 뭉개고 있었냐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사천리로 수액을 세팅 후 자신의 혈관으로 바늘을 찔러 넣었다.
타투로 뒤덮인 거죽 아래 퍼렇게 뻗어있는 혈관이 꿈틀거리다 바늘에 낚인다.
똑.똑.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곤이 잠들어 버린 쪽방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해서 수액 떨어지는 소리가 다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백 하나, 백 둘......
곤의 곁에 누워 떨어지는 수액 방울을 세던 윤은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그마저도 포기한다.
빗물에 창문이 일그러졌다.
곤의 얼굴로 내려 앉는 일그러진 빛.
윤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뒤틀림 속에서도 그는 아름다웠다.
재혁이 아닌 그를 먼저 만났더라면......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나 사랑이란 그것만은 아닐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의 지문이다.
윤이 빼앗긴 시선을 거두려 할 때였다.
“...엄마......”
곤의 입술이 벌어지며 엄마가 쏟아졌다.
윤은 그 결핍을 안다.
엄마는 고통이다.
윤은 덩그러니 놓여진 곤의 손으로 자신의 손을 덮는다.
눈을 감는다.
작가의 말
코로나 후유증으로 집안이 들썩이는 지난 몇 주였습니다. 거기다 댕댕이 까지 아파서ㅠ.ㅠ
사랑하는 울 님들 건강이 최고입니다. 절대 아프지 마소서!
24화 부터 이어지는 몇 화는 이글의 등뼈 와도 같습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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