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배꼽
조회 : 1,285 추천 : 1 글자수 : 5,468 자 2022-10-24
#51
늦은 밤. 정과장의 검은 세단이 재혁의 집을 향하고 있다.
“누굽니까?”
재혁의 물음에 정과장이 잠시 뜸을 들인다.
“뭐가?”
“윤이 보호자 말입니다.”
“나.”
그러자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코웃을 치는 재혁이다.
“그럼, 과장님이 사촌형입니까? 그것도 모델 같은?”
“뭐?”
재혁의 말에 정과장 역시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늘 조마조마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정과장의 음성이었다.
재혁은 그런 어른이 고맙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큭큭… 어릴 적부터 넌, 윤이에겐 전부를 주더구나……”
귀가 화끈거렸다.
어둠속에서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빨갛게 물든 재혁의 귀는 그렇게 한참을 사그라들지 못했다.
#52-1
감은 눈 안으로 눈과 눈이 마주했다.
마주한 오드아이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윤의 눈을 삼킬듯 간격을 좁혀온다.
헉!
두려움에 두 눈을 번쩍 떠올렸다.
낯익은 천장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어릴적 부터 함께 자라온 꿈.
그렇게 윤은 그 눈을, 거의 평생 알고 지내왔다.
어느덧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관자놀이는 타고 떨어져 내렸다.
최근들어 그 꿈이 현실을 잡아 먹을 정도로 더욱 생생해 졌다.
그 거지 같은 소동 이후 4일이 흘렀다.
아직... 약쟁이의 생사를 알지 못 했다.
매일 아침 조간 신문을 펼쳤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생사를 확인 할 수 없었다.
“윤아. 이거 챙겨가라.”
교복을 입고 방문을 나서자 할머니가 커다란 찬합통을 윤의 가슴팍으로 안겼다.
“할머니, 나 소풍가?”
“3일 만에 등교하는데, 친구들이랑 나눠 무라.”
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청마루를 지나 운동화로 발을 집어 넣을 때다.
“...혁이는 주지 말고......”
할머니의 말에 피식 웃는 윤이다.
“언제는 형한테 시집 갈 것 처럼 굴더니만.”
그러자 할머니가 버선발로 대청마루를 나르다시피 달려 나온다.
“이기, 지금 뭐라카노!!”
“아이고, 김영감님! 밤새 안녕하셨어요?”
느닷없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윤의 모습에,
목이 늘어난 하얀 반팔 난닝구와 꼬쟁이만 입고 있던 할머니는,
황급히 대청마루 기둥 뒤로 몸을 숨긴다.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윤의 웃음소리에 기둥 밖으로 눈을 빼꼼히 내밀어 보이는 할머니.
“..저게 진짜 미칫네......”
김영감은 온데 간데 없고,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손주에게 제대로 빡쳤다.
“강윤... 니 이리온나. 퍼뜩!!”
“할머님, 이제 손주 걱정은 그만 하시고, 더 늦기전에 시집가소서. 그래야 저도 맘 편히 뽀뽀라도 하겠나이다.”
“이 시키가 지금 이 할매를 멕이는 거가!! 그래 할매 치우고, 누구랑 뽀뽀 할낀데!! 설마 김재혁이?!!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노! 우째 수컷 둘이가 눈이 다 맞아가꼬!!! 무신 이런 해괴망측한!!! 야! 강윤!! 오데가노?! 퍼뜩 안 오나!!!!”
“학교 댕겨 오겠슴돠!”
등뒤로 날아드는 할머니의 고무신을 피해 윤은 꽁지빠지게 내달렸다.
버스 정류장으로 자신을 학교로 데려다 줄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번호만 봐도 그리운 이의 살갗이 떠올라 칼로 베이는 듯한 설렘이 일었다.
윤은 두 눈을 감았다.
잠시 정차한 버스가 떠나고 그 자리로 윤이 남았다.
감았던 눈꺼풀을 떠 올렸다.
이어 다른 번호의 버스가 정차하고 떠난 자리는 고르지 않은 흙 길만이 남겨져 있었다.
#53-1
“재혁아,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하냐?”
교문앞을 지키고 서 있는 재혁에게 막 도착한 덕구가 물었다.
“윤이, 아직이네.”
“또 늦잠자서 지각이겠지, 새삼스럽게.”
3일 만에 보는 연인이었다.
열에 들떠 뜬 눈으로 지새운 밤 들이었다.
“덕구야, 춘광에 전화 좀 넣어 봐라.”
“너는, 진짜.”
덕구는 재혁의 유난이 못 마땅 했지만, 막상 녀석의 상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쓰였다.
“응. 알았어요. 할머니.”
공중전화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덕구가 재혁을 쳐다보았다.
“등교 한다고 도시락 싸들고 나선지가 한참이라는데?”
덕구의 말에 재혁의 얼굴로 그 특유의 냉소적인 표정이 일었다.
“...이 새끼가......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하네……”
순간 덕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원래 싸가지 없는 놈이긴 하지만, 윤에게 저러는 재혁의 모습이 낯설다.
1학년 2반 교실 안.
“야, 받아.”
학생 하나가 교실 뒤로 놓여있는 급식 우유팩을 자신의 짝을 향해 던질 때였다.
때맞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재혁의 얼굴로 우유팩이 날아들었다.
퍽!
이를 손으로 잡아내는 재혁.
교실로 적막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재혁에게로 향했다.
들러붙은 눈들 사이로 재혁은 덩그러니 놓여진 윤의 책상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질투심이 배꼽에서 부터 타고 올라와 재혁을 집어삼킨다.
퍼억!!
윤의 책상으로 우유팩이 내리 꽂히며 우유가 터져나왔다.
책상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하얀 비.
재혁은 미처 억눌리지 못한 사나움을 연인의 빈자리에 남겨둔 채 교실을 나선다.
#52-2
“남친이 용케 참았구나, 걸어 다니는 잘 생긴 남근 같았는데 말이야.”
진료실에서 드레싱을 마친 윤이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자 의사가 말했다.
“실제 음경은 더 근사해요.”
윤의 말에 녀석을 빤히 쳐다보는 용팔이.
“운드도 깨끗하고, 오늘은 예약일도 아닌데.. 학교 수업을 째면서 까지 굳이 병원에 온 이유가 뭐냐?”
속을 꿰뚫는 듯한 의사의 물음에, 좀 전의 여유있는 모습은 사라지고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는 윤이다.
“..곤…. 잘 있는 거죠?”
“……”
“...저.. 피 말라요......”
“그 잘난 상판대기에는 손상이 없으니, 그걸로 된거지 뭐.”
의사의 말에 마치 잃었던 숨을 되찾은 것 마냥 윤은 배꼽에서 부터 깊은 날숨을 밀어낸다.
“어디에 있어요?”
용팔이의 빤한 시선은 계속 된다.
“...이쯤에서 그만 둬......”
“......”
“더 가면 안된다는 거.. 네가 더 잘 알 거다.”
“......어디에요?”
이내 의사는 깊은 한숨과 함께 펜을 들어 빈 메모지를 채워나간다.
“자, 여기 주소.”
의아한 표정의 윤.
의사가 잠시 진료실을 비웠다 돌아온다.
양손가득 가져온 약품들을 책상위로 올려 놓으며,
“칼 맞는 것도 기술이야. 칼 끝이 용케 장기를 피해서 염증만 잡으면 고비는 넘긴다. 오늘 맞을 수액이랑 항생제, 이건 경구약 그리고 이건 상처 소독할 소독제들.”
“주사를 제가 어떻게...”
“아마도, 하이바가 나보다 주사 놓는 스킬은 더 좋을걸?”
“......”
“..네가 만나러 가는 자가 그런 놈이야.”
“......”
“자세한 건 메모지에 적혀 있는 대로 하면 되니까. 잘 읽어보고, 그리고 상처부위로 고름이 심하거나, 항생제 투여 후에도 열이 안 떨어지면 그땐 지체 말고 병원으로 끌고 와야해.”
곤은 자신의 눈 앞에서 칼을 두 방이나 맞은 중증외상환자였다.
“왜, 강제로라도 입원 시키지 않으셨어요! 의사가 되서 어떻게 환자를 이런식으로 방치 할 수 있어요!!”
의사를 힐난하는 윤의 눈초리로 분노가 스쳤다.
“칼 맞고 들어온 자는 경찰에 신고하는게 병원의 의무야. 거기다 하이바는 마약사범이다. 그것도 국제적으로 노는.”
“......”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학교에 가서 남친이랑 도시락이나 까먹어. 그렇게 근사하다는 남친의 음경, 오래 쓰려면 밥도 잘 먹여야지.”
그러나 윤은 의사가 챙겨 놓은 약품들을 책가방으로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그렇게 등을 보이고 돌아서는 녀석을 잡아세우는 용팔이의 음성.
“...도대체, 왜그런거냐?”
“..그 눈이요… 그 눈 때문에 배꼽이 간지러워요......”
용팔이는 엷은 미소의 윤을 보며 그만 체념한다.
“거기 아주 후진 곳이야. 몸 조심해라.”
#54
고속버스를 타고 한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미군부대와 아주 인접한 사창가였다.
메모지에 적힌 주소를 찾아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서자, 대낮임에도 헐벗은 여자들과 다양한 피부색의 남자들이 약과 술에 취해 육체를 흥정하느라 거리가 부산스럽다.
“저기, 사람을 찾아 왔는데요.”
그 골목에서도 가장 끝에 위치한 낡고 음침한 사창가 입구로 윤이 발을 들였다.
“아이고야. 우리 학생. 아무리 급해도 교복은 벗고 와야지!”
눈으로 윤을 핥던 늙은 여자는 윤을 복도로 밀어 넣으며 가방을 벗기려 노력한다.
“그,그런게 아니구요, 사람, 사람을 찾아 왔다구요.”
“그래, 이 아줌마가 싸게 해 줄께, 서비스도 넉넉히 해주고.”
“아니, 남자를 찾아 왔어요.”
가방을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윤이 말하자, 갑자기 늙은 여자의 눈이 싸늘하게 돌변했다.
“남자 장사는 안하니까. 딴데가서 알아봐!”
“남자 장사요?”
“누구 장사 말아먹게 할 일 있어?! 갖득이나 에이즈 역병으로 단속이 얼마나 심해졌는데, 어휴. 재수없게 시리! 당장 안 꺼지니!!”
윤은 순간 분노가 치솟았지만, 곤을 찾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문다.
“아줌마, 눈동자 색이 다른 젊은 남자를 찾아왔다구요.”
그러자 늙은 여자는 급돌변하며, 얼굴로 화색이 인다.
“진작 그렇게 이야기 하지 그랬어! 젤 꼭대기 5층으로 올라가면 좌측으로 보이는 가장 끝방이 울 잘생긴 총각 방이야.”
간단한 목례와 함께 계단을 오른 윤은 마침내 곤의 방앞에 다다른다.
똑똑.
윤이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응답이 없는 방.
“...저 왔어요......”
“......”
“강윤이에요.”
“...섹스파트너 아니면, 방에 사람 안 들여.”
“...애인 있어요.”
더는 들을 수 없는 곤의 음성.
윤이 방문으로 등을 기대어 앉을 때였다.
어디선가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윤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에 미처 반항할 틈도 없이 그대로 옆방으로 끌려 들어가는 윤이다.
늦은 밤. 정과장의 검은 세단이 재혁의 집을 향하고 있다.
“누굽니까?”
재혁의 물음에 정과장이 잠시 뜸을 들인다.
“뭐가?”
“윤이 보호자 말입니다.”
“나.”
그러자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코웃을 치는 재혁이다.
“그럼, 과장님이 사촌형입니까? 그것도 모델 같은?”
“뭐?”
재혁의 말에 정과장 역시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늘 조마조마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정과장의 음성이었다.
재혁은 그런 어른이 고맙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큭큭… 어릴 적부터 넌, 윤이에겐 전부를 주더구나……”
귀가 화끈거렸다.
어둠속에서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빨갛게 물든 재혁의 귀는 그렇게 한참을 사그라들지 못했다.
#52-1
감은 눈 안으로 눈과 눈이 마주했다.
마주한 오드아이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윤의 눈을 삼킬듯 간격을 좁혀온다.
헉!
두려움에 두 눈을 번쩍 떠올렸다.
낯익은 천장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어릴적 부터 함께 자라온 꿈.
그렇게 윤은 그 눈을, 거의 평생 알고 지내왔다.
어느덧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관자놀이는 타고 떨어져 내렸다.
최근들어 그 꿈이 현실을 잡아 먹을 정도로 더욱 생생해 졌다.
그 거지 같은 소동 이후 4일이 흘렀다.
아직... 약쟁이의 생사를 알지 못 했다.
매일 아침 조간 신문을 펼쳤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생사를 확인 할 수 없었다.
“윤아. 이거 챙겨가라.”
교복을 입고 방문을 나서자 할머니가 커다란 찬합통을 윤의 가슴팍으로 안겼다.
“할머니, 나 소풍가?”
“3일 만에 등교하는데, 친구들이랑 나눠 무라.”
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청마루를 지나 운동화로 발을 집어 넣을 때다.
“...혁이는 주지 말고......”
할머니의 말에 피식 웃는 윤이다.
“언제는 형한테 시집 갈 것 처럼 굴더니만.”
그러자 할머니가 버선발로 대청마루를 나르다시피 달려 나온다.
“이기, 지금 뭐라카노!!”
“아이고, 김영감님! 밤새 안녕하셨어요?”
느닷없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윤의 모습에,
목이 늘어난 하얀 반팔 난닝구와 꼬쟁이만 입고 있던 할머니는,
황급히 대청마루 기둥 뒤로 몸을 숨긴다.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윤의 웃음소리에 기둥 밖으로 눈을 빼꼼히 내밀어 보이는 할머니.
“..저게 진짜 미칫네......”
김영감은 온데 간데 없고,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손주에게 제대로 빡쳤다.
“강윤... 니 이리온나. 퍼뜩!!”
“할머님, 이제 손주 걱정은 그만 하시고, 더 늦기전에 시집가소서. 그래야 저도 맘 편히 뽀뽀라도 하겠나이다.”
“이 시키가 지금 이 할매를 멕이는 거가!! 그래 할매 치우고, 누구랑 뽀뽀 할낀데!! 설마 김재혁이?!!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노! 우째 수컷 둘이가 눈이 다 맞아가꼬!!! 무신 이런 해괴망측한!!! 야! 강윤!! 오데가노?! 퍼뜩 안 오나!!!!”
“학교 댕겨 오겠슴돠!”
등뒤로 날아드는 할머니의 고무신을 피해 윤은 꽁지빠지게 내달렸다.
버스 정류장으로 자신을 학교로 데려다 줄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번호만 봐도 그리운 이의 살갗이 떠올라 칼로 베이는 듯한 설렘이 일었다.
윤은 두 눈을 감았다.
잠시 정차한 버스가 떠나고 그 자리로 윤이 남았다.
감았던 눈꺼풀을 떠 올렸다.
이어 다른 번호의 버스가 정차하고 떠난 자리는 고르지 않은 흙 길만이 남겨져 있었다.
#53-1
“재혁아,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하냐?”
교문앞을 지키고 서 있는 재혁에게 막 도착한 덕구가 물었다.
“윤이, 아직이네.”
“또 늦잠자서 지각이겠지, 새삼스럽게.”
3일 만에 보는 연인이었다.
열에 들떠 뜬 눈으로 지새운 밤 들이었다.
“덕구야, 춘광에 전화 좀 넣어 봐라.”
“너는, 진짜.”
덕구는 재혁의 유난이 못 마땅 했지만, 막상 녀석의 상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쓰였다.
“응. 알았어요. 할머니.”
공중전화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덕구가 재혁을 쳐다보았다.
“등교 한다고 도시락 싸들고 나선지가 한참이라는데?”
덕구의 말에 재혁의 얼굴로 그 특유의 냉소적인 표정이 일었다.
“...이 새끼가......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하네……”
순간 덕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원래 싸가지 없는 놈이긴 하지만, 윤에게 저러는 재혁의 모습이 낯설다.
1학년 2반 교실 안.
“야, 받아.”
학생 하나가 교실 뒤로 놓여있는 급식 우유팩을 자신의 짝을 향해 던질 때였다.
때맞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재혁의 얼굴로 우유팩이 날아들었다.
퍽!
이를 손으로 잡아내는 재혁.
교실로 적막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재혁에게로 향했다.
들러붙은 눈들 사이로 재혁은 덩그러니 놓여진 윤의 책상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질투심이 배꼽에서 부터 타고 올라와 재혁을 집어삼킨다.
퍼억!!
윤의 책상으로 우유팩이 내리 꽂히며 우유가 터져나왔다.
책상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하얀 비.
재혁은 미처 억눌리지 못한 사나움을 연인의 빈자리에 남겨둔 채 교실을 나선다.
#52-2
“남친이 용케 참았구나, 걸어 다니는 잘 생긴 남근 같았는데 말이야.”
진료실에서 드레싱을 마친 윤이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자 의사가 말했다.
“실제 음경은 더 근사해요.”
윤의 말에 녀석을 빤히 쳐다보는 용팔이.
“운드도 깨끗하고, 오늘은 예약일도 아닌데.. 학교 수업을 째면서 까지 굳이 병원에 온 이유가 뭐냐?”
속을 꿰뚫는 듯한 의사의 물음에, 좀 전의 여유있는 모습은 사라지고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는 윤이다.
“..곤…. 잘 있는 거죠?”
“……”
“...저.. 피 말라요......”
“그 잘난 상판대기에는 손상이 없으니, 그걸로 된거지 뭐.”
의사의 말에 마치 잃었던 숨을 되찾은 것 마냥 윤은 배꼽에서 부터 깊은 날숨을 밀어낸다.
“어디에 있어요?”
용팔이의 빤한 시선은 계속 된다.
“...이쯤에서 그만 둬......”
“......”
“더 가면 안된다는 거.. 네가 더 잘 알 거다.”
“......어디에요?”
이내 의사는 깊은 한숨과 함께 펜을 들어 빈 메모지를 채워나간다.
“자, 여기 주소.”
의아한 표정의 윤.
의사가 잠시 진료실을 비웠다 돌아온다.
양손가득 가져온 약품들을 책상위로 올려 놓으며,
“칼 맞는 것도 기술이야. 칼 끝이 용케 장기를 피해서 염증만 잡으면 고비는 넘긴다. 오늘 맞을 수액이랑 항생제, 이건 경구약 그리고 이건 상처 소독할 소독제들.”
“주사를 제가 어떻게...”
“아마도, 하이바가 나보다 주사 놓는 스킬은 더 좋을걸?”
“......”
“..네가 만나러 가는 자가 그런 놈이야.”
“......”
“자세한 건 메모지에 적혀 있는 대로 하면 되니까. 잘 읽어보고, 그리고 상처부위로 고름이 심하거나, 항생제 투여 후에도 열이 안 떨어지면 그땐 지체 말고 병원으로 끌고 와야해.”
곤은 자신의 눈 앞에서 칼을 두 방이나 맞은 중증외상환자였다.
“왜, 강제로라도 입원 시키지 않으셨어요! 의사가 되서 어떻게 환자를 이런식으로 방치 할 수 있어요!!”
의사를 힐난하는 윤의 눈초리로 분노가 스쳤다.
“칼 맞고 들어온 자는 경찰에 신고하는게 병원의 의무야. 거기다 하이바는 마약사범이다. 그것도 국제적으로 노는.”
“......”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학교에 가서 남친이랑 도시락이나 까먹어. 그렇게 근사하다는 남친의 음경, 오래 쓰려면 밥도 잘 먹여야지.”
그러나 윤은 의사가 챙겨 놓은 약품들을 책가방으로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그렇게 등을 보이고 돌아서는 녀석을 잡아세우는 용팔이의 음성.
“...도대체, 왜그런거냐?”
“..그 눈이요… 그 눈 때문에 배꼽이 간지러워요......”
용팔이는 엷은 미소의 윤을 보며 그만 체념한다.
“거기 아주 후진 곳이야. 몸 조심해라.”
#54
고속버스를 타고 한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미군부대와 아주 인접한 사창가였다.
메모지에 적힌 주소를 찾아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서자, 대낮임에도 헐벗은 여자들과 다양한 피부색의 남자들이 약과 술에 취해 육체를 흥정하느라 거리가 부산스럽다.
“저기, 사람을 찾아 왔는데요.”
그 골목에서도 가장 끝에 위치한 낡고 음침한 사창가 입구로 윤이 발을 들였다.
“아이고야. 우리 학생. 아무리 급해도 교복은 벗고 와야지!”
눈으로 윤을 핥던 늙은 여자는 윤을 복도로 밀어 넣으며 가방을 벗기려 노력한다.
“그,그런게 아니구요, 사람, 사람을 찾아 왔다구요.”
“그래, 이 아줌마가 싸게 해 줄께, 서비스도 넉넉히 해주고.”
“아니, 남자를 찾아 왔어요.”
가방을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윤이 말하자, 갑자기 늙은 여자의 눈이 싸늘하게 돌변했다.
“남자 장사는 안하니까. 딴데가서 알아봐!”
“남자 장사요?”
“누구 장사 말아먹게 할 일 있어?! 갖득이나 에이즈 역병으로 단속이 얼마나 심해졌는데, 어휴. 재수없게 시리! 당장 안 꺼지니!!”
윤은 순간 분노가 치솟았지만, 곤을 찾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문다.
“아줌마, 눈동자 색이 다른 젊은 남자를 찾아왔다구요.”
그러자 늙은 여자는 급돌변하며, 얼굴로 화색이 인다.
“진작 그렇게 이야기 하지 그랬어! 젤 꼭대기 5층으로 올라가면 좌측으로 보이는 가장 끝방이 울 잘생긴 총각 방이야.”
간단한 목례와 함께 계단을 오른 윤은 마침내 곤의 방앞에 다다른다.
똑똑.
윤이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응답이 없는 방.
“...저 왔어요......”
“......”
“강윤이에요.”
“...섹스파트너 아니면, 방에 사람 안 들여.”
“...애인 있어요.”
더는 들을 수 없는 곤의 음성.
윤이 방문으로 등을 기대어 앉을 때였다.
어디선가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윤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에 미처 반항할 틈도 없이 그대로 옆방으로 끌려 들어가는 윤이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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