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그럼에도
조회 : 1,098 추천 : 1 글자수 : 4,623 자 2023-01-07
#54-5
잠시 후.
준비된 음식이 나왔다.
“어떻게 알았어요? 나 생선 대가리에 공포증 있는 거?”
숟가락에 붙어 있던 밥풀 하나를 야무지게 떼어 먹으며 윤이 물었다.
“네 녀석이 싸온 대가리 없는 멸치볶음… 그걸 보니 오래전 내가 알던 녀석이 생각나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을 내려다 보며 곤이 무심히 말했다.
윤은 곤의 무심함이, 무심함으로 가장한 그리움임을 안다.
“…그럼, 스마일도 생선 대가리에 공포증이 있었단 말이에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윤의 모습에 곤이 피식 미소 지었다.
“멸치도 생선이냐?”
곤의 조소어린 물음에 샐쭉이는 윤의 입술이 통통하다.
“우리가 함께 있던 그곳에선,ㅑ 멸치 볶음이 일년에 한 두번 구경할까말까 할 만큼 귀한 음식이었어. 생선 대가리라면 기겁을 하는 녀석 때문에 나도 덩달아 먹진 못했지만.....”
“함께 있었던 곳이라면......”
곤의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윤이 제법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물어올 때였다.
“오. 아저씨한테서 물감이 나와요.”
그림을 그리고 있던 사내아이가 방에서 나와 곤을 가리키며 쫑알거렸다.
“그게 무슨......”
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쾅!
의자가 뒤로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곤의 발치로 붉은피가 방울방울 천천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옷 열어봐요.”
작고 예쁜 얼굴로 균열이 일었다.
자못 아쉬운 곤이다.
서로 마주보며 밥을 먹는 그 평범함이 윤과 함께라서 간지러웠다.
“밥 마저 먹고.”
간지러움의 연장을 위해 묵묵히 김치찌개를 퍼먹던 곤은 분노로 가득찬 윤의 아우라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쳐들며 소리쳤다.
“밥 먹을땐 개도 안 건드린다면서!”
“당신 개야.”
“네.”
개가 된 곤이 재킷을 열었다.
옆구리의 자상이 벌어져 피가 새고 있다.
“안되겠어요. 당장 병원가요.”
작고 예쁘던 얼굴이 구겨졌다.
못났다.
많이 속상한 곤이다.
“이 폭우에 병원엘 어떻게 가니?”
곤의 말에 주방에 있는 여자에게 윤이 큰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병원이 있나요?”
“아니요. 차 타고 한 시간 정도 나가야 돼요.”
“그럼 동물병원은요?”
“동물병원은 더 찾기 힘들 거예요.”
윤은 양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 내렸다.
천사의 구겨진 얼굴을 더는 좌시할 수 없는 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늘이랑 실이 있을까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여자에게 곤이 물었다.
“아뇨.”
눈으로 식당 내부를 쓱 둘러보던 곤은 방안 귀퉁이로 영수증 묶음과 함께 놓여있는 스테이플러를 발견한다.
그것을 손에 쥐고 냉장고에서 소주 한병을 꺼내어 왔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윤.
곤은 이빨로 소주병 뚜껑을 땄다.
그리고 목구멍으로 소주를 들이켰다.
“당장 병원에 가도 시원찮을 판에,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요?”
“그럼, 그런 얼굴 하질 말든지.”
“무슨, 우리가 지금 연애해요?!”
“어. 나는 너랑 연애중이야.”
순간 말문이 막힌 윤이 곤의 눈을 내려다 보았다.
윤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곤의 반항적인 눈초리가 윤을 압도한다.
그 시선에 숨이 턱 막혔다.
빗소리보다 더 빨리 뛰는 윤의 심장.
방금 윤의 심장에서 사랑하는 연인 재혁의 눈썹 하나가 지워졌다.
씨발. 헐린다.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윤은 애써 시선을 돌려버린다.
“…애인 있다구요…… 자꾸 이럼……”
“자꾸 이럼 뭐? 안 보이니?”
털컥. 털컥.
곤이 자신의 터진 옆구리로 스테이플러를 박기 시작한다.
이에 아연실색하는 윤.
털컥. 털컥. 털컥.
“날 찾고, 베고, 깁고, 버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찾고, 베고, 깁고, 버리고……”
스테이플러의 심이 박힌 살갗으로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곤은 남은 소주를 봉합된 상처로 들이부었다.
그리고 다시금 윤을 올려다 보며 씨익 미소짓는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오싹하다.
그러나,
다시 곤에게 시선이 멈추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윤이다.
또 한 번 윤의 심장에서 재혁의 나머지 눈썹이 지워졌다.
“아저씨는 로보트에요?”
어느새 다가온 사내아이의 앙증맞은 손가락이 곤의 살에 박힌 스테이플러심을 더듬었다.
“나도 그럼 좋겠다.”
“아저씨 눈에서 레이저도 나와요?”
아이의 물음에 곤이 허리를 숙여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본다.
“궁금하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곤의 이마가 아이의 이마에 가닿는다.
“너도 내 눈깔이 갖고 싶니? 원하면 나처럼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아이의 눈이 커졌다.
당장이라도 쏟아질듯 눈 앞에 놓인 큰 로보트의 눈깔이 아이를 박제시킬때다.
삐이이———-
이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윤의 귀로 갑작스러운 이명이 일었다.
양손으로 귀를 틀어 막으며 두 눈을 질끈 감는 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안으로 꿈 속 몇 장면들이 붉게 물든 스냅사진처럼 어지러이 스쳐 지나간다.
“그, 그만 나가주세요!”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윤의 머릿속을 휘젓던 꿈의 파편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윤이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아이를 자신의 몸통으로 바싹 끌어안은 여자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는다.
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문을 열자 잊고 있던 폭우가 이어졌다.
그의 곁을 윤이 나란히 한다.
녀석의 작은 머리통으로 손을 얹는 곤.
“가자.”
폭우 속을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 뒤로, 마리화나의 순금케이스가 식탁위에 놓여있다.
#54-6
굽이진 골목 끝.
두 사람은 간판이 지워진 아주 낡은 여인숙에 방을 얻었다.
“집에 전화 좀 하고 들어갈게요.”
비를 피해 머리를 누일 수 있는 곳이 생겼다.
그제야 마음에 여유가 생긴 윤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장대비를 뚫고 여인숙 앞 공중전화를 향해 냅다 뛰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 여보세요.
“상처가 더 벌어졌어요. 거기서 피도 흐르고, 그러니까 스테이플러로 막 찍어버리고… 이미 상처가 짓물러 있었는데! 스테이플러로 막 찍어버렸어요! 진짜…!”
— 용케 살아 있구나.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제가 곤을 찾는 게 아니었어요.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곤이 썩어가요. 더는 감당을 못하겠어요. 선생님이 도와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세 배! 아니 돈을 다섯 배 쳐 드릴테니, 곤을 데리고 가주세요! 안전한 곳에서 치료 좀 해주세요!”
— 진정해 꼬맹아. 어차피 지금은 갈 수 없는 상황이잖니. 출혈량이 얼마나 됐지? 열은?”
“열은 아직 없는데, 출혈량은 정확히 모르겠어요. 바닥으로 쏟은 건 종이컵 반컵이 채 안된 것 같은데, 옷으로 스민것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지 모르겠어요.”
— 이미 수혈을 받은 상태니, 그 정도 출혈로는 당장 쇼크가 일어나진 않을 거다. 내가 갈때까지 네가 곁에서 잘 돌봐줘."
“…더는 적어주신 주소에 있지 않아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긴 한데.”
— 내일 다시 전화해, 그럼 내가 그리로 갈께. 물론 다섯 배, 잊지 말고.”
전화를 끊었다. 이어지는 다른 번호.
“할머니.”
— 아이고, 우리 똥깡아지! 니 대체 오데고?! 비가 이렇게 오는데 할매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나!!
“어, 지금 형준이 집이에요. 비가 너무 내려서 형준이 집에서 자고 갈께요.”
— 오야. 그리해라. 어른들 없다고 너무 늦게 자지 말고, 밥 잘 챙겨먹고.”
“응. 걱정마세요… 저기, 할머니… 재혁이 형, 집에 다녀갔어요?”
— 그 썩을 놈의 새끼! 말도 꺼내지 마라! 할매 손주사위 왔다고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 질러 쌌는지, 손님들도 있는데 망신스러워가꼬, 내 그 쌍놈의 시키를 문 밖으로 당장 끌어냈다 아이가!
머릿속에 그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져 윤의 입가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형 그길로 집에 간거 맞아요?”
그 바보가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다.
— 하모,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집에 갔지! 니는 뭐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라노.
“…다음에는 국에 밥 한 사발 말아서 먹이고 보내요. 형, 할머니가 끓인 국 젤로 좋아하잖아.”
— …이것들이 지금 쌍으로 할매를…!
“할머니, 나 형 없음 죽어요… 정말이야…”
— 이기 지금 할매한테.. 그게 할소리가! 니, 집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다리 몽둥이를…!
뚜뚜뚜뚜뚜.
느닷없이 등 뒤에서 손 하나가 뻗어나와 수화기 걸이를 눌러내렸다.
언제 부터 였을까? 자신의 머리위로 비가 떨어져 내리지 않게 된 것이.
윤이 고개를 돌렸다.
우산을 들고 곤이 서 있다.
윤이 쏘아 보자 곤의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온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더는 숨쉴 기력도 없는 윤이 여관을 향해 힘없이 돌아섰다.
윤의 머리로 우산을 씌워주며 걸음을 맞춰 걷는 곤의 어깨로 여전히 비가 떨어져 내렸다.
“뭐해요. 더 안 붙고.”
윤의 말에 우산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서는 곤.
이내 두 사람의 팔이 맞닿았다.
순간 곤의 창백한 뺨으로 피가 돌아 마치 평범한 소년과도 같은 앳된 얼굴이 된다.
잠시 후.
준비된 음식이 나왔다.
“어떻게 알았어요? 나 생선 대가리에 공포증 있는 거?”
숟가락에 붙어 있던 밥풀 하나를 야무지게 떼어 먹으며 윤이 물었다.
“네 녀석이 싸온 대가리 없는 멸치볶음… 그걸 보니 오래전 내가 알던 녀석이 생각나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을 내려다 보며 곤이 무심히 말했다.
윤은 곤의 무심함이, 무심함으로 가장한 그리움임을 안다.
“…그럼, 스마일도 생선 대가리에 공포증이 있었단 말이에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윤의 모습에 곤이 피식 미소 지었다.
“멸치도 생선이냐?”
곤의 조소어린 물음에 샐쭉이는 윤의 입술이 통통하다.
“우리가 함께 있던 그곳에선,ㅑ 멸치 볶음이 일년에 한 두번 구경할까말까 할 만큼 귀한 음식이었어. 생선 대가리라면 기겁을 하는 녀석 때문에 나도 덩달아 먹진 못했지만.....”
“함께 있었던 곳이라면......”
곤의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윤이 제법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물어올 때였다.
“오. 아저씨한테서 물감이 나와요.”
그림을 그리고 있던 사내아이가 방에서 나와 곤을 가리키며 쫑알거렸다.
“그게 무슨......”
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쾅!
의자가 뒤로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곤의 발치로 붉은피가 방울방울 천천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옷 열어봐요.”
작고 예쁜 얼굴로 균열이 일었다.
자못 아쉬운 곤이다.
서로 마주보며 밥을 먹는 그 평범함이 윤과 함께라서 간지러웠다.
“밥 마저 먹고.”
간지러움의 연장을 위해 묵묵히 김치찌개를 퍼먹던 곤은 분노로 가득찬 윤의 아우라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쳐들며 소리쳤다.
“밥 먹을땐 개도 안 건드린다면서!”
“당신 개야.”
“네.”
개가 된 곤이 재킷을 열었다.
옆구리의 자상이 벌어져 피가 새고 있다.
“안되겠어요. 당장 병원가요.”
작고 예쁘던 얼굴이 구겨졌다.
못났다.
많이 속상한 곤이다.
“이 폭우에 병원엘 어떻게 가니?”
곤의 말에 주방에 있는 여자에게 윤이 큰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병원이 있나요?”
“아니요. 차 타고 한 시간 정도 나가야 돼요.”
“그럼 동물병원은요?”
“동물병원은 더 찾기 힘들 거예요.”
윤은 양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 내렸다.
천사의 구겨진 얼굴을 더는 좌시할 수 없는 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늘이랑 실이 있을까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여자에게 곤이 물었다.
“아뇨.”
눈으로 식당 내부를 쓱 둘러보던 곤은 방안 귀퉁이로 영수증 묶음과 함께 놓여있는 스테이플러를 발견한다.
그것을 손에 쥐고 냉장고에서 소주 한병을 꺼내어 왔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윤.
곤은 이빨로 소주병 뚜껑을 땄다.
그리고 목구멍으로 소주를 들이켰다.
“당장 병원에 가도 시원찮을 판에,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요?”
“그럼, 그런 얼굴 하질 말든지.”
“무슨, 우리가 지금 연애해요?!”
“어. 나는 너랑 연애중이야.”
순간 말문이 막힌 윤이 곤의 눈을 내려다 보았다.
윤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곤의 반항적인 눈초리가 윤을 압도한다.
그 시선에 숨이 턱 막혔다.
빗소리보다 더 빨리 뛰는 윤의 심장.
방금 윤의 심장에서 사랑하는 연인 재혁의 눈썹 하나가 지워졌다.
씨발. 헐린다.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윤은 애써 시선을 돌려버린다.
“…애인 있다구요…… 자꾸 이럼……”
“자꾸 이럼 뭐? 안 보이니?”
털컥. 털컥.
곤이 자신의 터진 옆구리로 스테이플러를 박기 시작한다.
이에 아연실색하는 윤.
털컥. 털컥. 털컥.
“날 찾고, 베고, 깁고, 버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찾고, 베고, 깁고, 버리고……”
스테이플러의 심이 박힌 살갗으로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곤은 남은 소주를 봉합된 상처로 들이부었다.
그리고 다시금 윤을 올려다 보며 씨익 미소짓는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오싹하다.
그러나,
다시 곤에게 시선이 멈추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윤이다.
또 한 번 윤의 심장에서 재혁의 나머지 눈썹이 지워졌다.
“아저씨는 로보트에요?”
어느새 다가온 사내아이의 앙증맞은 손가락이 곤의 살에 박힌 스테이플러심을 더듬었다.
“나도 그럼 좋겠다.”
“아저씨 눈에서 레이저도 나와요?”
아이의 물음에 곤이 허리를 숙여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본다.
“궁금하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곤의 이마가 아이의 이마에 가닿는다.
“너도 내 눈깔이 갖고 싶니? 원하면 나처럼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아이의 눈이 커졌다.
당장이라도 쏟아질듯 눈 앞에 놓인 큰 로보트의 눈깔이 아이를 박제시킬때다.
삐이이———-
이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윤의 귀로 갑작스러운 이명이 일었다.
양손으로 귀를 틀어 막으며 두 눈을 질끈 감는 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안으로 꿈 속 몇 장면들이 붉게 물든 스냅사진처럼 어지러이 스쳐 지나간다.
“그, 그만 나가주세요!”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윤의 머릿속을 휘젓던 꿈의 파편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윤이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아이를 자신의 몸통으로 바싹 끌어안은 여자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는다.
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문을 열자 잊고 있던 폭우가 이어졌다.
그의 곁을 윤이 나란히 한다.
녀석의 작은 머리통으로 손을 얹는 곤.
“가자.”
폭우 속을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 뒤로, 마리화나의 순금케이스가 식탁위에 놓여있다.
#54-6
굽이진 골목 끝.
두 사람은 간판이 지워진 아주 낡은 여인숙에 방을 얻었다.
“집에 전화 좀 하고 들어갈게요.”
비를 피해 머리를 누일 수 있는 곳이 생겼다.
그제야 마음에 여유가 생긴 윤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장대비를 뚫고 여인숙 앞 공중전화를 향해 냅다 뛰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 여보세요.
“상처가 더 벌어졌어요. 거기서 피도 흐르고, 그러니까 스테이플러로 막 찍어버리고… 이미 상처가 짓물러 있었는데! 스테이플러로 막 찍어버렸어요! 진짜…!”
— 용케 살아 있구나.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제가 곤을 찾는 게 아니었어요.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곤이 썩어가요. 더는 감당을 못하겠어요. 선생님이 도와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세 배! 아니 돈을 다섯 배 쳐 드릴테니, 곤을 데리고 가주세요! 안전한 곳에서 치료 좀 해주세요!”
— 진정해 꼬맹아. 어차피 지금은 갈 수 없는 상황이잖니. 출혈량이 얼마나 됐지? 열은?”
“열은 아직 없는데, 출혈량은 정확히 모르겠어요. 바닥으로 쏟은 건 종이컵 반컵이 채 안된 것 같은데, 옷으로 스민것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지 모르겠어요.”
— 이미 수혈을 받은 상태니, 그 정도 출혈로는 당장 쇼크가 일어나진 않을 거다. 내가 갈때까지 네가 곁에서 잘 돌봐줘."
“…더는 적어주신 주소에 있지 않아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긴 한데.”
— 내일 다시 전화해, 그럼 내가 그리로 갈께. 물론 다섯 배, 잊지 말고.”
전화를 끊었다. 이어지는 다른 번호.
“할머니.”
— 아이고, 우리 똥깡아지! 니 대체 오데고?! 비가 이렇게 오는데 할매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나!!
“어, 지금 형준이 집이에요. 비가 너무 내려서 형준이 집에서 자고 갈께요.”
— 오야. 그리해라. 어른들 없다고 너무 늦게 자지 말고, 밥 잘 챙겨먹고.”
“응. 걱정마세요… 저기, 할머니… 재혁이 형, 집에 다녀갔어요?”
— 그 썩을 놈의 새끼! 말도 꺼내지 마라! 할매 손주사위 왔다고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 질러 쌌는지, 손님들도 있는데 망신스러워가꼬, 내 그 쌍놈의 시키를 문 밖으로 당장 끌어냈다 아이가!
머릿속에 그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져 윤의 입가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형 그길로 집에 간거 맞아요?”
그 바보가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다.
— 하모,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집에 갔지! 니는 뭐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라노.
“…다음에는 국에 밥 한 사발 말아서 먹이고 보내요. 형, 할머니가 끓인 국 젤로 좋아하잖아.”
— …이것들이 지금 쌍으로 할매를…!
“할머니, 나 형 없음 죽어요… 정말이야…”
— 이기 지금 할매한테.. 그게 할소리가! 니, 집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다리 몽둥이를…!
뚜뚜뚜뚜뚜.
느닷없이 등 뒤에서 손 하나가 뻗어나와 수화기 걸이를 눌러내렸다.
언제 부터 였을까? 자신의 머리위로 비가 떨어져 내리지 않게 된 것이.
윤이 고개를 돌렸다.
우산을 들고 곤이 서 있다.
윤이 쏘아 보자 곤의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온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더는 숨쉴 기력도 없는 윤이 여관을 향해 힘없이 돌아섰다.
윤의 머리로 우산을 씌워주며 걸음을 맞춰 걷는 곤의 어깨로 여전히 비가 떨어져 내렸다.
“뭐해요. 더 안 붙고.”
윤의 말에 우산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서는 곤.
이내 두 사람의 팔이 맞닿았다.
순간 곤의 창백한 뺨으로 피가 돌아 마치 평범한 소년과도 같은 앳된 얼굴이 된다.
작가의 말
연재 텀 줄이도록 더욱 노력하것습니다.
잠 줄여가며 쓰는게 지금 이모양이네요.
문장에 힘을 빼도록 노력하것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사랑합니다.
닫기모든 것은 혀끝으로부터 BL
28.28화 핸드잡조회 : 1,83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2,631 27.27화 손주사위조회 : 1,174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451 26.26화 그럼에도조회 : 1,108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623 25.25화 너의 의미조회 : 1,208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695 24.24화 타투 스마일조회 : 1,107 추천 : 1 댓글 : 0 글자 : 6,104 23.23화 청춘 고교입니다만조회 : 1,21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404 22.22화 심장을 바치다.조회 : 1,484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46 21.21화 배꼽조회 : 1,28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468 20.20화 선지국밥조회 : 531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334 19.19화 곤조회 : 524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87 18.18화 미치고 싶을 때조회 : 763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933 17.17화 삼각관계 - START조회 : 836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461 16.16화 열상조회 : 531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819 15.15화 첫사랑조회 : 603 추천 : 1 댓글 : 3 글자 : 4,086 14.14화 별빛이 내린다.조회 : 67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801 13.13화 에이스조회 : 727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270 12.12화 너만이 내 세상조회 : 499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058 11.11화 제 살 깎기조회 : 768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697 10.10화 벚꽃 내리다.조회 : 759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399 9.9화 BOOM!!조회 : 647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993 8.8화 경계선조회 : 54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261 7.7화 춘식이 - 108배의 서막조회 : 66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754 6.6화 재혁 - 순애보조회 : 51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810 5.5화 그들의 천사조회 : 638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166 4.4화 곤- 길위에서조회 : 74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555 3.3화 질투조회 : 86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848 2.2화 혀 끝에서 부터조회 : 734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879 1.1화 춘광조회 : 3,237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