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의 소란이 지나간지 한시간 남짓 되었을때쯤이다. 어디서 술을 마시고 왔는지 붉게 달아오른 볼에 살짝 풀린 초점 없는 눈동자를 하고 건우가 병실 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 온다. 비틀 거리며 단아의 손을 어렵게 부여 잡고는 얼굴을 파묻는다. 한참을 그렇게 말 없이 미동도 없이 굳어 버린 석고상처럼 저러고 있다.
"건우야 왜 그래 무슨일 있었어"
"......"
"건우야, 건우야"
빈병실마냥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얇게 눈물을 삼키는 흐느낌 뒤에 낮게 들썩이는 어깨가 눈가를 시리게 한다.
선화가 오늘 병실에 와 연락이 안된다고 하더니 그 상황이 설명이 되고 있다.
혼자 마시건지 아니면 오랜만에 친구라도 만나 오랜만에 회포라도 풀고 온건지 알수 없지만 술에 잔뜩 취해 폰도 볼 생각조차 안한 모양이다.
선화가 건우의 안부를 걱정했고 전화를 부탁했는지만 난 처음부터 전달할 마음조차 없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건우오빠는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오늘은 술 힘을 빌어 저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다.
"건우 오빠 만히 힘들지. 나도 답답하고 많이 힘들어 나 대신 병실에 누워 있는 할머니도 걱정되고 눈앞에 오빠를 두고도 온전한 내가 아니라 오빠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오빠 오빠 내 말 들려 나 단아야 흑흐흑"
단아는 건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걱정어린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한참을 그렇게 그를 바라보다가 깜박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부스럭 대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다고 하더니 할머니 몸에 완전 적응한 나는 뼈속까지 할머니가 된 모양이다. 작은소리에도 눈이 번쩍 떠지더니 몸이 누워 있지 못하고 저절로 벌떡 일어나진다.등에 가시라도 박혀 답답해서 참을수 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자동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지니 말이다.
예전에 나라면 알람이 수십번 울리고 나서도 겨우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난 후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겨우 일어나 진한 블랙커피 한잔으로 뇌를 깨웠지. 그러고도 한참을 겨울에 시동을 걸어 예열 시키는 자동차처럼 그렇게도 더딘 몸놀림이었는데.... 이런 작은 것에도 겁이 나기 시작한다. 평생 이 몸에 처녀귀신이라도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원한 가득으로 성불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민폐가 되는 잡귀가 되는건 아닐까? 언젠가 원한이 가득한 성불하지 못한 귀신들은 미련이 남는 곳에 머물러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마저도 이성을 잃고 귀찮게 하거나 괴롭힌다고 들었다. 죽어서까지 찌질하게 미련두며 살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내가 추구하는 삶이란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당당하고 깔끔함 그게 내 하나 남은 자존심 같은 것인데..... 지금 그것마저도 지키지 못할거라는 불안감에 정신이 번쩍 있던 잠도 달아나는 상황이긴하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소리가 나는 쪽을 둘러 보니 건우가 수건에 물을 적셔 단아의 몸을 닦고 있었다.
"단아야 어제 내가 너무 술이 과했지 미얀 술냄새 많이 나는것 싫어했는데 어제는 영호가 결혼한다고 여자 친구랑 인사를 왔더라구 둘이 손 꼬옥 잡고 그 모습보니 나도 모르게 니 생각도 나고.... 그래서 한잔만 한잔만 하다가 그만"
건우가 어제 있었더 일에 대해 넑두리를 하며 아무렇지도 단아의 몸을 구석구석 닦고 있는 것이다.
"건우야" 일단 그모습을 마주하는 동시에 소리를 질러 버리고 삐그덕 거리는 할머니 몸으로 달려가 건우가 들고 있는 수건부터 빼아았다. 오늘도 한발 늦은 것이다.
"건우야 앞으로 단아 몸은 내가 닦아 줄게 넘 쉬고 있어 내게 맞기고"
"아니예요 할머니 아직 몸 회복도 덜 되셨는데 제가 할게요 저 이제 아주 잘해요 처음엔 서툴렀는데..... 처음엔 단아가 제 서툰 손길에 많이 힘들었겠지만요"
아무래도 할머니 몸이 빨리 회복되면 나라도 건우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가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그냥 병원이라는 것이 오래있으면 적응이야 되겠지만 그만큼 집으로 빨리 가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러나 저기 저렇게 누워 있는 내 몸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차일 피일 미루었더니 더 이상은 저 모습을 보며 견딜 자신이 없다.
하루 빨리 건우를 데리고 병원밖으로 나가기는 해야 겠는데..... 할머니는 내가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 한번 인사도 시켜 드릴겸 내려 가겠다고 하였는데 그새를 못참으시고 시골에서 익숙하지 못한 서울로 올라오셨던 것이다. 서울지리에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지낼곳이 없었다.
건우와 함께 지내려고 보증금도 다 빼고 집을 합치려 방을 따로 얹었고 선화네 집에서 잠깐 신세를 지고 있었기에 그 집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갈수 있는 상황도 못된다.
내 몸으로야 갈수 있다지만 할머니 몸으로 그곳으로 간다면 참으로 염치없는 사람이 되거니와 할머니 몸으로 거기서 눈치가 보여 편안히 잠도 못이룰듯 싶다. 일단 이 몸으로 선화네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낯뜨거워 현관문을 넘지 못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