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리터너 파티 구역
조회 : 849 추천 : 0 글자수 : 4,485 자 2022-09-05
2. 리터너 파티 구역
“군으로 가시죠. 우선 이 지구 사람들 살려야죠. 바이러스 확산만 막아도, 인류멸망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돈…… 많이 주십시오. 생체실험까지 했다면서.”
“네, 얼마면 됩니까?”
“……10억?”
“네, 5억 지금 보냈고, 나머지 5억 도착하면 보내죠.”
유진이 송금 계좌이체 화면을 보여줬다.
후회했다.
100억 달라 할걸.
“차는 있습니까?”
“지하에 있습니다.”
“거리는 지금 위험합니다. 리터너 떼들이 곳곳에 몰려 있습니다. 차로 가시죠. 지하로 갑시다.”
‘퍽’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이번 리터너는 제법 낯이 익었다. 인력팀장이었다.
평소 자신의 줄이 될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친절했던.
어쩐지 이번 소화기질은 유독 찰지더라.
처음 리터너를 마주쳤을 땐 온몸이 얼어붙었었다.
하지만 벌써 익숙해졌는지 이젠 자동반사로 소화기가 튀어 나간다.
역시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다.
다만,
“이기언 주임, 나이스샷!”
소화기를 휘두를 때마다 유진 연구원이 내뱉는 이상한 소리에는 전혀 무뎌지지 않았다.
도저히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괴상한 응원.
“그것 좀 안 하면 안 됩니까. 리터너보다 더 소름 끼친다니까.”
“이런 거 해줘야 기운이 난다고 하던데요?”
“대체 누가 말입니까?”
“방금 소화기 맞은 사람이요.”
임원진 회식에 끌려다니더니 이상한 걸 배워왔다.
“근데 그런 기술은 특수부대에서 배운 겁니까?”
“네?”
“양궁에서 소화기 휘두를 일은 없잖습니까.”
“…특수부대에서도 안 배웁니다.”
양궁 꿈나무에 특수부대 출신이란 것까지 알고 있었구나.
그걸 몰라서 괴롭히는 줄 알았는데… 알면서 괴롭혔구나…….
“개새끼가.”
“네?”
“아 저기 강아지가… 아니네요. 가시죠.”
계단을 내려갈수록 아비규환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리는 공포의 숨바꼭질.
리터너들은 회사 곳곳에 숨은 희생자들을 잘도 찾아냈다.
문득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희생자를 찾아내는 그들의 실력이 늘고 있는 건 아닐까?
“연구원님, 바이러스가······ 진화할 수도 있습니까?”
"리턴 바이러스라면 가능하죠. 감염자의 몸에 침투하는 즉시 뇌부터 접수하는 놈이거든요.”
유진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접수해놓고 뇌를 학습하며 기다립니다. 그러다 감염자의 생체 반응이 멈추면 온몸을 장악하는 거죠. 그때가 감염자에서 리터너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유진은 까탈스러웠지만 적어도 사적인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얼굴에 떠오른 건 분노였다.
“숨죽이고 기다렸다 장악하는 바이러스… 정말 끔찍하지 않습니까?”
유진은 진심으로 리턴 바이러스를 증오했다.
“…어디까지 갈 것 같습니까? 그 바이러스는?”
“글쎄요. 그게 뭘 바라는지 모르겠습니다. 인류멸망을 바라는 건지, 인류 정복을 바라는 건지. 근본적인 치료법 없이는… 끝까지 가겠죠.”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바이러스.
과연 그런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을까? 치료제도 아닌 예방약으로?
겨우 예방약만 가득한 배낭이 등을 짓누르는 기분.
“치료는 힘들겠습니까?”
“현재 능력으론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유진이 답했다.
누군가의 팔뚝이었을 사체 조각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계단 여기저기 고여있는 피와 살점이 그리 보기 편한 장면은 아니었다.
드디어 주차장 입구.
한숨 돌릴 겸 잠깐 서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물집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 손바닥.
계속 소화기로 리터너들을 내려치다 보니 기어이 손바닥이 작살났다. 당연한 일이다. 소화기의 용도는 머리통을 박살 내는 게 아니니까.
손수건을 꺼내 대충 동여맸다.
통증을 없애주진 못해도 자잘한 세균 감염은 막아주겠지.
전무후무한 바이러스 앞에서 세균 감염을 걱정한다는 게 우습지만. 고작 세균 감염으로도 죽을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수도방위사령부까지라. 갈 수 있을까?
난생처음 해보기로 한 모험.
리터너 소굴에 들어가야 하는 지금은… 과연 그게 정답이었을까 의심이 든다.
호랑이 아가리에 연약한 새끼 손가락을 집어넣는 기분.
리턴 바이러스가 급격히 번지면서 거리는 언제 어디에서 리터너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위험지역이 됐다.
무기 없이 거리를 걷는 생존자는 맛있게 포장된 신선 도시락이나 다름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생존자들이 건물을 탈출하려면 주차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리터너들은 자연스럽게 생존자를 따랐다.
사슴 떼가 가는 곳에 굶주린 사자가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이제 주차장은 리터너들로 가득했다.
막연한 희망을 품고 내려오는 희생자를 기다리는.
어느 건물이든 주차장은 리터너 파티 구역이다.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유진의 SUV가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회의적이었다.
여기서 차까지 가는 길 사이에만 세 명의 리터너가 있었다.
유진과 차에 올라 배낭을 실을 동안,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리터너는 눈에 보이는 것만 열 명이다.
‘사각지대를 감안하면 그 이상이겠지.’
냉정하게 유진은 전력이라기보다 혹이다. 정면 돌파는 내 일방적인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단 소리다.
생존 가능성이 가장 큰 작전을 생각해야 한다.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묵직한 총의 무게가 느껴졌다.
낮에 경찰 감염자가 리터너가 되기 직전 건넨 총이다.
총알이 많지 않아서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두었던 건데…… 지금이 그 최후의 순간이다.
“운전 얼마나 합니까?”
“부산 시내 운전이 취미입니다만?”
…그렇다면 인정.
“차로 가서 짐 싣고 저에게 오세요.”
“네? 저 혼자요?”
무슨 개소리냐는 유진의 표정.
“제가 미끼가 될 겁니다. 리터너를 모으면서 차 반대로 뛸 테니까 기다렸다가 안전할 때 가세요.”
“아니, 그래도 리터너가 저에게 올 수 있잖습니까. 난 무기도 없는데….”
“그때는 차 키로 후려치든가.”
그냥 같이 죽는 거지 뭐….
“그…그게 무슨… 차 키로요?… 차로 치어도 안 죽을 것 같은데….”
유진의 우는 소리는 가볍게 무시하고 메고 있던 백신 배낭을 벗어 유진에게 던졌다.
후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갑니다.”
그리고 뛰었다.
“다 덤벼! 이 개새끼들아!”
까강. 깡. 깡.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모자라 소화기로 벽을 마구 때렸다. 요란한 소음에 리터너들이 반응했다.
순식간에 뒤에 4명, 양쪽에서 5명이 따라붙었다.
멀리 두 명이 더 보인다. 시작이 순조롭다.
리터너들을 적당히 불러 모으며 달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달리는 속도에 차이가 있었다. 아마 바이러스가 ‘아직은’ 그들의 신체조건을 진화시키지 못하는 모양이다.
유진 쪽으로 빠지는 리터너가 없도록 세심하게 뛰었다. 지그재그로 뛰어 발 빠른 리터너는 견제하고 느린 리터너는 뒤처지지 않게 조율했다.
숨이 턱까지 찼다.
전역 이후 이렇게 뛰어 본 적은 없었는데 머리까지 쓰면서 뛰려니 죽을 맛이었다.
살짝 보니 유진은 이제야 살금살금 차로 향하고 있었다.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저렇게 굼뜨다고?
생각보다 더 뛰어야 할 것 같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정말 잠깐 유진 쪽을 바라봤을 뿐인데, 그 짧은 순간 오른쪽 검은 세단 뒤에서 푸른 데님 셔츠를 입은 젊은 리터너가 튀어나왔다.
하마터면 그 뻗은 손에 멱살을 잡힐 뻔했다. 몸을 살짝 뒤로 젖혀 한 끗 차이로 간신히 피했다. 전력을 다해 소화기를 휘둘렀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듯, 솜털 보송한 청년 리터너는 얼굴 뼈를 반 이상 잃고 쓰러졌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청년은 이제 학자금 대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란이 커질수록 반대편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차 안, 비좁은 차 사이에 끼어 목표도 방향도 없이 멍하니 있던 리터너들까지 몰려나왔다.
소대급의 리터너가 내 뒤를 쫓기 시작했다.
코너에 진입했다. 벽을 끼고 왼쪽으로 꺾었다.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은데 도통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점점 초조해졌다.
“유진!!! 뭐 하는 거야??”
코너를 돌아나가자 이제는 뒤에서 쫓아오는 만큼 앞에서 마주 오는 리터너가 늘었다. 뛰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젠장!!!”
오른쪽 차 사이 사각지대에서 리터너가 튀어 올랐다. 짙은 감색 정장을 차려입은 멋쟁이 리터너였다.
낯이 익은데……?
아, 긴급 감염병 전담팀 연구원이다.
지난주에 다음 달 결혼이라고 청첩장을 받았다.
아는 얼굴에 당황한 나머지 금쪽같은 소화기를 놓쳤다.
소화기가 리터너의 두개골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
“축의금 대신입니다! 소중히 써주십쇼!”
아직도 차 시동 소리가 없다.
“으아아악! 유진!! 서둘러!”
숨을 헐떡이며 소리를 지르고는 총을 꺼냈다.
탕.
언제든 실탄을 발사할 수 있게 공포탄을 발사했다.
쿵 쿵 쿵 쿵.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엄청난 발소리.
잠깐이지만 건물이 흔들렸다.
건물 내 희생자 찾기를 끝낸 감염자들이 총소리를 듣고 지하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유진!!! 뭐해 이 자식아!”
정말 다급했다.
나는 백신을 먹었다. 하지만 백신을 맞았다고 안 죽는 건 아니다. 리터너가 되지 않는 것뿐. 리터너가 다 뜯어먹고 시체도 남지 못하겠지. 개죽음이다.
죽을 땐 죽더라도 백신 이송하면 유진이 준다던 10억.
그건 다 쓰고 죽어야 하는데…….
환장할 노릇이다.
이번엔 왼쪽 SUV 아래에서 리터너가 쑥 튀어나오며 손을 뻗어 왔다. 시설관리팀 직원이었다.
대체 그 아래에서 어떻게 저렇게 위로 뛰어 올라올 수 있는 거지? 과학적으로든 의학적으로든 이게 말이 되나? 황당함을 넘어 억울했다. 저런 건 반칙이지.
상반신이 반 이상 빠져나와 손을 뻗는 리터너의 두개골 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탕.
리터너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뺨을 스쳤다. 리터너의 손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뺨에 닿았겠지.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도 총알이 먼저 그의 이마를 뚫었다.
“이럴 때 해야지! 나이스 샷!”
혼잣말을 크게 내지르며 계속 뛰었다.
그것마저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번엔 왼쪽에 두 명.
‘탕. 탕.’
젠장. 한 발이 빗나갔다.
철컥. 철컥.
실탄도 다 썼다. 빗나간 총알 대신 있는 힘껏 총을 던져버렸다. 리터너의 머리가 사정없이 뒤로 꺾였다.
다시 턴. 언뜻 계단 입구로 다른 층 리터너들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다리가 한번 꺾였다.
이젠 정말 한계였다. 눈앞이 깜깜했다.
개새끼. 나는 이렇게 간다. 10억 너나 처먹어라.
“부릉!”
마침내 자동차 엔진 소리가 주차장을 울렸다. 엔진 소리 따위가 이렇게까지 반가울 줄이야. 눈물이 찔끔 흘렀다.
“야! 타!!!”
“군으로 가시죠. 우선 이 지구 사람들 살려야죠. 바이러스 확산만 막아도, 인류멸망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돈…… 많이 주십시오. 생체실험까지 했다면서.”
“네, 얼마면 됩니까?”
“……10억?”
“네, 5억 지금 보냈고, 나머지 5억 도착하면 보내죠.”
유진이 송금 계좌이체 화면을 보여줬다.
후회했다.
100억 달라 할걸.
“차는 있습니까?”
“지하에 있습니다.”
“거리는 지금 위험합니다. 리터너 떼들이 곳곳에 몰려 있습니다. 차로 가시죠. 지하로 갑시다.”
‘퍽’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이번 리터너는 제법 낯이 익었다. 인력팀장이었다.
평소 자신의 줄이 될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친절했던.
어쩐지 이번 소화기질은 유독 찰지더라.
처음 리터너를 마주쳤을 땐 온몸이 얼어붙었었다.
하지만 벌써 익숙해졌는지 이젠 자동반사로 소화기가 튀어 나간다.
역시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다.
다만,
“이기언 주임, 나이스샷!”
소화기를 휘두를 때마다 유진 연구원이 내뱉는 이상한 소리에는 전혀 무뎌지지 않았다.
도저히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괴상한 응원.
“그것 좀 안 하면 안 됩니까. 리터너보다 더 소름 끼친다니까.”
“이런 거 해줘야 기운이 난다고 하던데요?”
“대체 누가 말입니까?”
“방금 소화기 맞은 사람이요.”
임원진 회식에 끌려다니더니 이상한 걸 배워왔다.
“근데 그런 기술은 특수부대에서 배운 겁니까?”
“네?”
“양궁에서 소화기 휘두를 일은 없잖습니까.”
“…특수부대에서도 안 배웁니다.”
양궁 꿈나무에 특수부대 출신이란 것까지 알고 있었구나.
그걸 몰라서 괴롭히는 줄 알았는데… 알면서 괴롭혔구나…….
“개새끼가.”
“네?”
“아 저기 강아지가… 아니네요. 가시죠.”
계단을 내려갈수록 아비규환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리는 공포의 숨바꼭질.
리터너들은 회사 곳곳에 숨은 희생자들을 잘도 찾아냈다.
문득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희생자를 찾아내는 그들의 실력이 늘고 있는 건 아닐까?
“연구원님, 바이러스가······ 진화할 수도 있습니까?”
"리턴 바이러스라면 가능하죠. 감염자의 몸에 침투하는 즉시 뇌부터 접수하는 놈이거든요.”
유진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접수해놓고 뇌를 학습하며 기다립니다. 그러다 감염자의 생체 반응이 멈추면 온몸을 장악하는 거죠. 그때가 감염자에서 리터너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유진은 까탈스러웠지만 적어도 사적인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얼굴에 떠오른 건 분노였다.
“숨죽이고 기다렸다 장악하는 바이러스… 정말 끔찍하지 않습니까?”
유진은 진심으로 리턴 바이러스를 증오했다.
“…어디까지 갈 것 같습니까? 그 바이러스는?”
“글쎄요. 그게 뭘 바라는지 모르겠습니다. 인류멸망을 바라는 건지, 인류 정복을 바라는 건지. 근본적인 치료법 없이는… 끝까지 가겠죠.”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바이러스.
과연 그런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을까? 치료제도 아닌 예방약으로?
겨우 예방약만 가득한 배낭이 등을 짓누르는 기분.
“치료는 힘들겠습니까?”
“현재 능력으론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유진이 답했다.
누군가의 팔뚝이었을 사체 조각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계단 여기저기 고여있는 피와 살점이 그리 보기 편한 장면은 아니었다.
드디어 주차장 입구.
한숨 돌릴 겸 잠깐 서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물집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 손바닥.
계속 소화기로 리터너들을 내려치다 보니 기어이 손바닥이 작살났다. 당연한 일이다. 소화기의 용도는 머리통을 박살 내는 게 아니니까.
손수건을 꺼내 대충 동여맸다.
통증을 없애주진 못해도 자잘한 세균 감염은 막아주겠지.
전무후무한 바이러스 앞에서 세균 감염을 걱정한다는 게 우습지만. 고작 세균 감염으로도 죽을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수도방위사령부까지라. 갈 수 있을까?
난생처음 해보기로 한 모험.
리터너 소굴에 들어가야 하는 지금은… 과연 그게 정답이었을까 의심이 든다.
호랑이 아가리에 연약한 새끼 손가락을 집어넣는 기분.
리턴 바이러스가 급격히 번지면서 거리는 언제 어디에서 리터너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위험지역이 됐다.
무기 없이 거리를 걷는 생존자는 맛있게 포장된 신선 도시락이나 다름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생존자들이 건물을 탈출하려면 주차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리터너들은 자연스럽게 생존자를 따랐다.
사슴 떼가 가는 곳에 굶주린 사자가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이제 주차장은 리터너들로 가득했다.
막연한 희망을 품고 내려오는 희생자를 기다리는.
어느 건물이든 주차장은 리터너 파티 구역이다.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유진의 SUV가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회의적이었다.
여기서 차까지 가는 길 사이에만 세 명의 리터너가 있었다.
유진과 차에 올라 배낭을 실을 동안,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리터너는 눈에 보이는 것만 열 명이다.
‘사각지대를 감안하면 그 이상이겠지.’
냉정하게 유진은 전력이라기보다 혹이다. 정면 돌파는 내 일방적인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단 소리다.
생존 가능성이 가장 큰 작전을 생각해야 한다.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묵직한 총의 무게가 느껴졌다.
낮에 경찰 감염자가 리터너가 되기 직전 건넨 총이다.
총알이 많지 않아서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두었던 건데…… 지금이 그 최후의 순간이다.
“운전 얼마나 합니까?”
“부산 시내 운전이 취미입니다만?”
…그렇다면 인정.
“차로 가서 짐 싣고 저에게 오세요.”
“네? 저 혼자요?”
무슨 개소리냐는 유진의 표정.
“제가 미끼가 될 겁니다. 리터너를 모으면서 차 반대로 뛸 테니까 기다렸다가 안전할 때 가세요.”
“아니, 그래도 리터너가 저에게 올 수 있잖습니까. 난 무기도 없는데….”
“그때는 차 키로 후려치든가.”
그냥 같이 죽는 거지 뭐….
“그…그게 무슨… 차 키로요?… 차로 치어도 안 죽을 것 같은데….”
유진의 우는 소리는 가볍게 무시하고 메고 있던 백신 배낭을 벗어 유진에게 던졌다.
후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갑니다.”
그리고 뛰었다.
“다 덤벼! 이 개새끼들아!”
까강. 깡. 깡.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모자라 소화기로 벽을 마구 때렸다. 요란한 소음에 리터너들이 반응했다.
순식간에 뒤에 4명, 양쪽에서 5명이 따라붙었다.
멀리 두 명이 더 보인다. 시작이 순조롭다.
리터너들을 적당히 불러 모으며 달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달리는 속도에 차이가 있었다. 아마 바이러스가 ‘아직은’ 그들의 신체조건을 진화시키지 못하는 모양이다.
유진 쪽으로 빠지는 리터너가 없도록 세심하게 뛰었다. 지그재그로 뛰어 발 빠른 리터너는 견제하고 느린 리터너는 뒤처지지 않게 조율했다.
숨이 턱까지 찼다.
전역 이후 이렇게 뛰어 본 적은 없었는데 머리까지 쓰면서 뛰려니 죽을 맛이었다.
살짝 보니 유진은 이제야 살금살금 차로 향하고 있었다.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저렇게 굼뜨다고?
생각보다 더 뛰어야 할 것 같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정말 잠깐 유진 쪽을 바라봤을 뿐인데, 그 짧은 순간 오른쪽 검은 세단 뒤에서 푸른 데님 셔츠를 입은 젊은 리터너가 튀어나왔다.
하마터면 그 뻗은 손에 멱살을 잡힐 뻔했다. 몸을 살짝 뒤로 젖혀 한 끗 차이로 간신히 피했다. 전력을 다해 소화기를 휘둘렀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듯, 솜털 보송한 청년 리터너는 얼굴 뼈를 반 이상 잃고 쓰러졌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청년은 이제 학자금 대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란이 커질수록 반대편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차 안, 비좁은 차 사이에 끼어 목표도 방향도 없이 멍하니 있던 리터너들까지 몰려나왔다.
소대급의 리터너가 내 뒤를 쫓기 시작했다.
코너에 진입했다. 벽을 끼고 왼쪽으로 꺾었다.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은데 도통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점점 초조해졌다.
“유진!!! 뭐 하는 거야??”
코너를 돌아나가자 이제는 뒤에서 쫓아오는 만큼 앞에서 마주 오는 리터너가 늘었다. 뛰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젠장!!!”
오른쪽 차 사이 사각지대에서 리터너가 튀어 올랐다. 짙은 감색 정장을 차려입은 멋쟁이 리터너였다.
낯이 익은데……?
아, 긴급 감염병 전담팀 연구원이다.
지난주에 다음 달 결혼이라고 청첩장을 받았다.
아는 얼굴에 당황한 나머지 금쪽같은 소화기를 놓쳤다.
소화기가 리터너의 두개골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
“축의금 대신입니다! 소중히 써주십쇼!”
아직도 차 시동 소리가 없다.
“으아아악! 유진!! 서둘러!”
숨을 헐떡이며 소리를 지르고는 총을 꺼냈다.
탕.
언제든 실탄을 발사할 수 있게 공포탄을 발사했다.
쿵 쿵 쿵 쿵.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엄청난 발소리.
잠깐이지만 건물이 흔들렸다.
건물 내 희생자 찾기를 끝낸 감염자들이 총소리를 듣고 지하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유진!!! 뭐해 이 자식아!”
정말 다급했다.
나는 백신을 먹었다. 하지만 백신을 맞았다고 안 죽는 건 아니다. 리터너가 되지 않는 것뿐. 리터너가 다 뜯어먹고 시체도 남지 못하겠지. 개죽음이다.
죽을 땐 죽더라도 백신 이송하면 유진이 준다던 10억.
그건 다 쓰고 죽어야 하는데…….
환장할 노릇이다.
이번엔 왼쪽 SUV 아래에서 리터너가 쑥 튀어나오며 손을 뻗어 왔다. 시설관리팀 직원이었다.
대체 그 아래에서 어떻게 저렇게 위로 뛰어 올라올 수 있는 거지? 과학적으로든 의학적으로든 이게 말이 되나? 황당함을 넘어 억울했다. 저런 건 반칙이지.
상반신이 반 이상 빠져나와 손을 뻗는 리터너의 두개골 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탕.
리터너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뺨을 스쳤다. 리터너의 손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뺨에 닿았겠지.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도 총알이 먼저 그의 이마를 뚫었다.
“이럴 때 해야지! 나이스 샷!”
혼잣말을 크게 내지르며 계속 뛰었다.
그것마저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번엔 왼쪽에 두 명.
‘탕. 탕.’
젠장. 한 발이 빗나갔다.
철컥. 철컥.
실탄도 다 썼다. 빗나간 총알 대신 있는 힘껏 총을 던져버렸다. 리터너의 머리가 사정없이 뒤로 꺾였다.
다시 턴. 언뜻 계단 입구로 다른 층 리터너들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다리가 한번 꺾였다.
이젠 정말 한계였다. 눈앞이 깜깜했다.
개새끼. 나는 이렇게 간다. 10억 너나 처먹어라.
“부릉!”
마침내 자동차 엔진 소리가 주차장을 울렸다. 엔진 소리 따위가 이렇게까지 반가울 줄이야. 눈물이 찔끔 흘렀다.
“야!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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