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넌 반드시 내가 죽인다.
조회 : 1,105 추천 : 0 글자수 : 6,106 자 2022-10-06
-콰아아아아아!
그것은 너무나 크고, 두꺼웠다.
적어도 건장한 사내 한 사람과, 멸치가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선상님요! 오, 오른쪽으로 만 더 돌아보이소!!”
“알고 있어요!!”
나는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호수를 부여잡는다.
하얀 거대한 호스에서 발사되는 무지막지한 양의 물.
그것은 모여있는 고블린놈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 없었다.
“끼에에에엑!”
“끼에에엑!!”
“끼…꼬르륵…….”
몇 번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놈들이 우르르 쓸려나간다.
그것은 로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놈들보다 우람한 몸집에 근육이 튼실하게 붙어 있었것만, 가히 폭력적이라고 밖에 표현되지 못할 물 폭포세례에, 놈도 복도 끝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선상님요! 지가 부짭고 있을 테니, 어서…!!”
재경이 힘겹게 외친다.
“그,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재경이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게 살며시 놓은 뒤, 그대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물 폭포의 움직임이 살짝 흐트러진다 싶었지만, 곧 다시 밸런스를 잡아냈다.
나는 남아 있는 놈들을 발과 배트등으로 걷어 낸뒤, 문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초, 총각…….”
“아, 아저씨…….”
안에 있는 건, 아주머니 한 분과, 대학생 한 명.
혹시나 그 외의 인물이 있나 싶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혹시나 해서 물어보지만, 대학생이 고개를 푹 숙이는 걸로 봐선, 내가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닥에 고인 피가 흥건해서 줄기를 찾아보니, 아주머니의 허리 부근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렀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저도 모르게 그려진다.
“아저씨! 아저씨! 아줌마. 아줌마좀 구해주세요!! 아줌마 피가 멈추지 않아요!”
눈물 콧물을 주룩주룩흘리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대학생.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차라리 이럴줄 알았으면, 무기나 몇 개 더 지원 해줄걸.’
손에 남아 있던 무기가 몇 개 없어서 고작 연막탄이나 고춧가루 주머니를 쥐어준게 패착이었다.
최대한 고블린 놈들이 들고 있던 무기라도 쥐어주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모르는데,
고작 심리적으로 쓰기 불편할 거다, 그거 들고 돌격해서 죽어버리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라는 안이한 생각에 그들에게 연막탄만 잔뜩 줘버리고 말았다.
후회가 막심했다.
이 모든 게 내 탓인것만 같았다.
내가 놈들을 제대로 알았더라도,
내가 무기만 제대로 줬었더라도,
내가 같이 있기만 했더라도,
한도 끝도 없는 자책, 자책, 자책.
미경씨의 총맞아 죽어가는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처럼 또 사람을 죽였구나.’
그때,
-덥썩.
내 손을 붙잡는 손이 있었다.
“…총각, 정말 고마워, 와줘서 고마워…….”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바들바들 떠는 아주머니의 얼굴.
“아, 아주머니…….”
“…초, 총각. 나, 나 총각 덕분에 있지……. 하, 학생을 살릴 수 이, 있었어.”
그녀의 시선이 대학생 쪽으로 향한다.
“나, 나 아, 아들을 모, 못구한게 평생, 하, 한이 될뻔 했는데, 저, 저 학생이라, 라도 구, 구할 수 있어서, 다, 다행이야.”
“말씀 그만하세요. 그래요. 잘 하셨어요. 무척 잘하셨으니까.”
말 할 힘이라도 아껴서 살아남으세요.
하지만 마음 속 깊에 있는 의사의 책이 단언한다.
이 아주머니는 더는 살 수 없다고,
이미 살 수 있게 한, 골든 타임이 너무 늦었노라고,
“초, 총각 너무, 너무 고마워.”
새파래진 입술이 바들바들 떤다. 나는 더는 보기 어려워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기 지원만 잘 해드렸어도,
아니 흩어질 필요없이 제가 여러분들을 돕기만 했어도,
이런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초, 총각 마, 마지막으로 부, 부탁하, 하나만…….”
“예. 예. 들어드리겠습니다.”
무슨 부탁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그 어떤 부탁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아주머니의 입에 담은 말은 내 가슴에 송곳처럼 후벼팠다.
“날 죽여줘.”
순간,
시간이 얼어붙는 것만 같은 감각이 날 덮친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아주머니의 말이 이어진다.
“이, 이대로 죽으면, 부, 분명 내 뱃속에서 괴물이 새, 새, 생기겠지? 나, 난 그러긴 싫어.”
희숙의 시선이 대학생을 잠시 향한다.
“그, 그러니, 총각. 총각이라면, 나, 나를 죽일 수 있을거야.”
왜 사람들의 목숨은 항시 내 손에서 선택을 강요당해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내 손은 내 고민과는 다르게 그녀의 손에서 단검을 빼냈다.
“아, 안돼요! 부탁이에요! 그러지마세요!!”
대학생이 빠르게 단검을 든 내 손을 움켜잡는다.
절망과 슬픔이 범벅이 되어 엉망으로 일그러진 대학생의 얼굴.
“선상님요! 뭐하는 교! 빨리 나오소!!”
바깥에서 재경이 나를 부른다.
시간은 없었다.
나는 대학생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그대로 단검을 아주머니의 목에 박아넣었다.
“컥…….”
다른 신음은 없었다.
그저 눈물 흘리며, 나에게 미소를 짓는 50대 아주머니의 얼굴이 보였을 뿐.
“아아아아악!!”
대학생의 처절한 비명섞인 울음이 화장실에 울려퍼진다.
나는 머릿속에 남겨진 [아들을 잊지 못하고, 슬픔 속에 살아간 희숙]이라는 제목의 책을 책장에 꽂고 일어났다.
기분 좋은 감정도,
슬픈 감정도,
이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거라곤,
놈들에 대한 거대한 분노뿐.
“선상님요!!”
바깥을 나서보니, 재경이 아직도 혼자서 물폭포를 쏘고 있었다.
다만, 아까보다 위력이 조금 씩 떨어지고 있었다.
비축 되어 있는 물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흥분하거나, 곤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쓰러져 있는 고블린의 머리를 붙잡았을 뿐.
“케륵?!”
놀란 듯한 고블린의 인상을 뒤로 하고, 그대로 주문을 읊었다.
“키이이이이익!”
놈의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더니, 그대로 터진다.
그리고,
-쩌저저적.
물에 젖은 바닥이 그대로 얼어 붙기 시작했다.
“키이익?!”
“크웨엑!?”
놀란 놈들이 어서 일어나려 했지만, 잔뜩 젖은 몸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온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여윽시 선상님! 믿고 있었십니더.”
재경이 신이 나서 물을 뿌린다.
아까만큼의 파괴력은 없지만, 지금 물에 닿는 족족 얼어 붙기에, 뿌리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힌 통로.
거기에 신음을 흘리며 누운 채로 더는 일어서지 못하는 고블린들.
“크르르르.”
단 로드만 온몸이 얼음으로 뒤덮힌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쟈만 남았네예.”
“예…….”
나직이 놈의 얼굴을 쳐다본다.
사람과 얼굴 형태가 다르기에, 표정은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놈이 당황과, 당혹을 보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안타깝게 죽어간 사람들의 분노가 너무 아까우니까.
이젠 물이 더 나오진 않는 호스.
재경은 소방 호스를 내팽개 치곤, 야구배트를 들었다.
이젠 우리가 유리하다.
놈의 병력은 거의 모두 처리했고, 상태 또한 좋지 않다.
이쪽은 싸울 수 있는 인간이 둘 뿐이긴 하지만, 무기도 있고, 상태도 멀쩡하다.
무엇보다 내가 있다.
나는 천천히 얼어버린 고블린 머리의 손을 가져다 댔다.
“으그그극.”
낮은 신음과 함께, 순식간에 해골로 변모 한다.
그 모습에 로드의 눈이 더 없이 커졌다.
“네가 뭘 하든 상관없어.”
해골을 쥔채 주문을 외운다..
내 주문에 따라 해골이 점차 빛을 내기 시작한다.
“네가 뭘 하든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테니까.”
처참하게.
아주 잔인하게.
난도질을 해서라도 넌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로드의 염소를 닮은 두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른다.
“퀵... 키에에엑!”
그 순간
놈의 떨어트린 지팡이가 흔들거리더니, 몸이 갑자기 시뻘겋게 변하는게 아닌가?
“뭐, 뭐고?!”
재경이 다가가다, 말고 배트로 방어하듯이 몸을 가린다.
그와 동시에 놈의 몸에서 수증기가 쉬익소리를 내며 뿐어져 나왔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놈이 몸을 한 번 털더니, 덮혀 있던 얼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순간 놀라서 멈칫 하는 순간, 놈이 천장으로 뛰어 오르더니, 그대로 천장에 붙는게 아닌가.
“뭐, 뭐여?!”
“켈켈켈켈.”
재경의 말에, 놈의 길다란 입이 찢어지며, 길게 웃는다.
그리곤, 길다란 팔다리를 사용해 그대로 천장을 타고 그대로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조심하세요!”
마치 원숭이와도 같은 움직임.
나는 해골을 들어 주문을 외우려고 했지만, 놈이 너무 빨라 ‘앗’하는 순간 벌써 우리 뒤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
막 화장실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대학생의 머리통이 보였다.
‘동물은 항상 가장 약한 놈부터 사냥한다.’
놈의 길다란 팔이 대학생을 노리고 휘둘러진다.
“젠장할!!”
나는 해골을 집어넣고, 총을 꺼내들어 다짜고짜 쏘았다.
-탕!
그러자 움찔하면서, 놈의 몸이 웅크려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학생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는, 놈의 손.
“히, 히이익!”
대학생이 뒤늦게 머리를 숙인다.
나는 최대한 조준해, 놈을 천장에서 떨어트리려고 했지만, 놈은 발 빠르게 천장을 타고 복도 사각으로 넘어가버렸다.
“제길.”
나는 인상을 찌그러트리며, 놈이 간 방향을 뒤쫓아 갔다.
놈의 행동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긴 팔과 긴 다리를 이용해 천장을 타고, 튀어 나온 부분을 디디며 빠른 속도로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때 마다, 우리는 놈이 가는 곳을 예측하면서 쫓아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엘리베이터였다.
“헉, 헉. 미친 새끼. 지가 거미맨인줄 아나. X같이 빠르네.”
재경이 방독면을 벗으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다.
동감 이다.
문제는 엘리베이터 문 이었다.
분명 아까 열었는데,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역시 여기가 놈의 주요 활동구역이 맞나봅니다.”
추리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놈이 그런식으로 다닐 거라는 걸 꿈도 못꿨을 뿐.
“그럼 과연 어디로 갔을 가예?”
나는 억지로 열 생각은 하지 않고 옆에 존재하는 계단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5층 높이 건물.
우리가 있는 곳은 현재 2층.
상황을 따지자면 분명 윗층으로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몇 층으로 향했을까?
무작정 가기에는 중간, 중간에 존재하는 고블린 놈들이 몇 마리나 있을지도 모른다.
모조리 전멸 시키고 가기엔, 시간과 무기가 모자라고, 몰래 숨어서 돌파하기엔, 나중에 로드를 상대할 때, 놈들이 끈덕지게 붙거나 뒷통수를 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있는 인원이라곤, 재경과 겁쟁이 대학생, 나 밖에 없는 상황.
‘차라리 한영씨라도 있었으면…….’
하지만 한영은 현재 연락두절, 지금 살아 있는지, 죽었는 지도, 모르는 생사불명상태였다.
“근데 선상님요.”
계단 쪽을 바라보던, 재경이 날 부른다.
“왜요?”
“아까부터 요 밑에서 뭐, 탄내같은거 안납니까? 연기도 계속 올라오고 있는데요?”
연기?
그 말에 계단 쪽을 살펴 본다.
아까부터 연막탄을 계속해서 던졌기에,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지, 파악은 불가능했다.
다만,
묘하게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뭐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밑에 계단에서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일련의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는게 아닌가,
“빨리! 빨리!”
자세히 보니 앞에서 태식아저씨와 한영이 사람 두 세명을 인도하고 있었다.
“하, 한영 형사님.”
“어? 설마 너희들도……?”
한영을 우리를 보며 얼굴을 굳히더니 다급한 표정으로 윗층을 가리켰다.
“일단 올라가! 어서!”
“예? 그게 무슨……?”
반 강제적으로 선택당하게 생겼다.
대체 무슨…….
-따르르르릉!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시끄러운 소리가 건물 전체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지금 화재가…발생…대피……
소방 알림벨이다.
순간 어쩐지 공기의 밀도가 답답해지는 게 느껴졌다.
방독면이 묘하게 갑갑한 느낌.
그러고 보니 태식 아저씨와 뒤에 올라온 사람들 손에 중간짜리 물통이 하나씩 들려 있다.
“1층에 불을 질렀다. 얼른 올라가야 한다!”
“부, 불이예? 뭐하다가 불내싰으예?”
혀가 꼬였는지, 재경의 발음이 이상해졌다.
그말에 한영이 이를 꽉 깨물고 답했다.
“괴물들을 처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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