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그 분이 오신다!
조회 : 1,112 추천 : 1 글자수 : 5,435 자 2022-09-24
재경과 나의 임무는 간단했다.
다른 사람들이 수도 꼭지를 열고 다니는 동안, 고블린의 기억에 따라 만든 지도로 잡아간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얼마나 살아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저 수연씨 만이라도 살아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할 뿐.
-콰직!
또 한 놈의 고블린의 머리가 터져 나가고, 얼음 알갱이가 놈들을 향해 뻗쳐 나간다.
시야와 후각이 봉인된 놈들은 우왕좌왕 하다가, 얼음 알갱이를 일방적으로 처맞은 후 그대로 뻗었다.
“와, 엄청나네얘. 이거 제가 나설 필요도 없겠십니더.”
재경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생명체를 잔인하게 해체해 버리는게, 어찌 그리 좋을까?
그저 큰 희생없이 놈들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일단 오른쪽 복도 맨 끝에 방하나 있고, 거기에 끌려간 사람이 있습니다. 놈들의 숫자는 대략 5~6명 정도 있지만, 경험도 없는 다소 평범한 놈들이라 상대하기 편할겁니다.”
“혹시, 우리 수연이는 없습니까?”
묻는 재경의 말에 나는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대한 속도를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약속할 수 있는 최고의 말.
재경의 눈빛이 잠시 절망에 차오르는 듯 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끌려간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갈 이윤 없었다.
살아 있다고 보장 할 수 없을 뿐 더러, 설사 살아있다곤 해도, 도움을 받기는커녕, 짐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구하러 가는 이유는 단 하나 였다.
건물에 염소 가스를 투입했을 경우, 고블린들이 죽어가는 건 둘째치더라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경우, 그들의 기억이 온전히 내 머릿속 책장으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놈들에게 고문아닌, 고문을 당하고, 마지막 죽음이 폐가 녹아내리는 최악의 고통이라니, 아무리 지금까지 기억들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나도 견디기 힘들게 뻔했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종우씨의 죽음이 뇌리에 박혀 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기억이 들어와 버린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 할 수 없었다.
인도적인 문제가 아니다.
순수하게 나에 대한 걱정이었다.
-쾅!
재경이 발로 문을 차버린다. 그리고 안에서 열심히 고문하고 있던 고블린이 놀란 틈을 타, 준비해둔 연막탄을 던져놓는다.
“케륵, 케륵.”
고통스런 고블린의 신음소리. 어차피 복도 쪽에도 연기가 가득했기에, 애써 문을 닫고 밀실로 만들지는 않았다.
-퍼억!
-콰직!
당황하던 놈들 사이로, 재경의 배트가 날라들었고, 기절한 놈의 머리를 부여잡고 마법을 썼다.
“켁!”
“케겍!”
순식간에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이런 쳐죽일 놈들.”
재경이 주변 환경을 보고, 이를 갈았다.
제대로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죽을 때까지 고문당하고 죽은 남자들과,
죽을 때까지 치욕스런 일을 경험하고 정신을 놓은 여자들만 있을 뿐.
재경이 분을 못참겠는지, 들고 있던 배트로 놈들을 내려 찍었다.
말리진 않았다.
나 또한 놈들의 행태에 끊임없이 분노가 일었으니까.
하지만 그전에 궁금증이 하나 차올랐다.
‘어째서 로드란 녀석은 이런 일을 시키는 거지?’
놈들이 사람들을 죽이는 거야, 충분한 이유는 있었다.
내제된 본능이 폭력성이라는 것과, 그로인한 동족의 번식.
죽은 미경씨가 추측한 대로, 그들의 목적은 번식과 오로지 살아남는데 초점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로드는 굳이 놈들의 본성을 억제시켜서라도, 사람들을 잡아와서, 가두고, 일부로 죽지 않을 만큼 고문시키고, 여성들에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짓을 저지르는 걸까?
그게 도움이 안된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이 부분만은 놈들의 기억을 끝없이 되짚어보아도,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불만이 계속 쌓여, 사람들에 대한 고문의 강도가 높아져 있어, 이들이 본능 억제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하게 해줄 뿐이었다.
“선상님 얼른 가입시더. 수연이가 걱정돼 죽겠으예.”
“네? 아 네. 얼른 가죠.”
재경의 재촉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럼 이 여성분들은 어떻게 할까요?”
“걍 반장님께 맡기면 안되겠십니꺼.”
“그럼 옥상에 올라올 때, 좀 에로 사항이 있을 거 같은데요…….”
생각지도 못한 문제였다.
그냥 단순히 죽여버리거나, 살리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정신을 놓은 상태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지나온 그곳 또한, 아가씨 세 분이 더 있었지.’
게다가 지금 우리가 만들어낸 연기 속에서 질식사 할지도 몰랐다.
나는 가방안에서 수건과 수통을 꺼내, 물을 적셨다.
그리고, 한 여성의 입가를 수건으로 감싸주었다.
재경 또한 내가 하는 꼴을 보곤, 똑같이 따라했다.
일단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이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곧 염소가스가 발생할 것이고, 건물 내 두루두루에 퍼질 것이다.
이 아가씨들을 데려가지 않으면, 여기서 질식사 할게 뻔했다.
“차라리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게 어떻겠십니꺼?”
“…엘리베이터요?”
고개를 갸웃 거린다. 모든 전기가 끊어진 이곳에서 무슨 승강기를 이용한다는 건지.
그런식으로 말하자, 재경이 말없이 천장을 가리킨다.
손가락이 가리킨 시선을 따라가자, 산산조각난 형광등이 형태만 겨우 유지 한체,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선상님요. 만약 괴물들이 더럽게 똑똑해서 전기를 모조리 끊어 놨다면, 저건 부술 필요가 읎는게 아니겠십니꺼.”
“예?”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분명 이 사단이 일어난 것은, 고작 3일 째,
놈들의 지능지수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현대 사회의 상징인 전기에 대해 모를 것이 분명했다.
아니, 학습한다 쳐도 아마 한달이나, 그 이상이 있어야 겨우 전기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 었다.
“…대단 하시네요.”
“별거 아입니더. 선상님께서 일 다하시니까, 일이 읎어서 기냥 천장만 보고 걸으니, 형광등이 전시에 다 깨져 있다아입니까. 그래서 혹시 형광등만 깬거 아인가 싶었지예.”
불빛이 전부 꺼져 있으니, 전기가 모조리 끊어져 있을 거란 고정관념이 부른 불찰이었다.
재경은 무전기를 꺼내, 곧장 한영에게 연락을 취했다.
[치직 그래 나도 살아남은 사람을 여럿 발견했다.]
“그라믄 엘리베이터로 옳깁시더, 엘리베이터 앞만 청소하면 생각보다 안전할깁니더.”
[그래 알았다. 치직. 그럼 너희가 신호를 주면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그 여성들 부터 올려보내겠다 치직.]
“알겠십니더.”
재경과 내 눈이 마주쳤다.
일단은 이대로 두면 안되니, 주변에 있는 천 조각들을 그러모아, 최소한의 가림 천을 만들었다.
“에구구, 죄송합니더, 에구구, 고의가 아입니더.”
재경이 새빨개진 얼굴로 억지로 그녀들의 중요 부위에 옷을 입힌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도통 제 정신을 차릴 줄 몰랐다.
그저 재경이 움직이는 대로, 향하는 데로, 반응조차 하지 않는 그녀들.
마치 망가진 인형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옥죄인다.
재경에게만 맡길 수 없기에, 나도 재경을 따라 한 여성에게 옷을 입혔다.
하지만,
보드라운 살에 닿자 나도 모르게 손이 움찔거리며 황급히 떼어버린다.
‘제, 젠장할.’
모태 솔로로 살아온지 어언 25년.
여자 손 한번 못만져 본 내가, 이렇게 알몸의 여성에게 옷을 입히고 있다는 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무 토막이다. 그냥 고무 인형일 뿐이다…….’
최대한 그 어떤 생각조차 들게 하지 않으려, 주문을 외운다.
하지만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는가.
“하아…….”
결국 손도 못대보고,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게 있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였다.
차라리 병원에서 고블린들이 나에게 에워샀을 때가 제일 편했다.
“어? 선상님. 여기 뭐 찍혀 있는데예. 이기 뭐고?”
갑작스런 재경의 목소리에 그 쪽을 살펴보니, 거의 여성을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었다.
“……!”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가슴께에 천이 있는 걸로 봐선, 아마도 등 뒤로 천을 매어 주기 위해 저런 모습이 된 것이었다.
문제는,
허공을 맴돌기만 하던 그녀의 시선이 어느사이엔가 재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눈동자만 움직여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그녀.
순간 차가운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재, 재경씨…….”
내가 그런 그를 말릴려고 했지만, 여성의 행동이 더 빨랐다.
-덥썩.
“에?”
그녀의 얼굴이 재경의 목 사이로 숨어들더니,
“크윽?!”
곧 재경의 숨죽인 당황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뭐고! 이 아가씨 와이카는교!”
재경이 억지로 여성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자세가 자세였던지라 쉽게 떼어내지 못했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그와 반대로 내 몸은 서둘러 엉켜있는 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 이익!”
여성의 머리를 붙잡고 잡아당기자, 겨우 재경의 목에서 떨어졌다.
그 틈을 타, 재경이 억지로 그녀를 밀어내버렸다.
-털썩.
힘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알몸의 여성.
그때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등에 찍혀 있던 어떤 문양을.
마치 살을 짓누르고 익혀서, 억지로 그린 듯한 문양.
그것은 병원에서 봤던,
경찰서 입구에 걸려져 있던,
그리고 지금도 이 방 바닥에 그려져 있던 기이한 문양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뭐, 뭐고! 이게 뭣하는 짓입니꺼?!”
재경이 목을 누르며 벌떡 일어났다.
누르는 그의 손 밑으로 핏 줄기가 두 세 개가 새어 나왔다.
여성이 고개를 든다.
여전히 표정 없는 인형과도 같은 무표정.
다만,
그녀의 입엔 재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가 묻어 있었다.
“…….”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이하다고 여겼을까?
무언가 한 마디 하려던 재경이 할말을 잃은 듯,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어느사이엔가, 나머지 여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가슴과 중요한 곳을 그대로 다 드러내고, 표정없는 얼굴로 천장을 본다.
위험하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린다.
하지만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몸이 굳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때였다.
“아아, 강림하신다!”
새된 목소리로 천장을 보며 입을 여는 여성.
그와 동시에 다른 여성들 또한 입을 열어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아아, 오신다! 그분이 오신다!”
“맞이하라. 그 분을 영접하라!”
열띤 그 목소리
마치 성대를 찢어 낼 듯, 우는 그 목소리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서, 선상님. 이게 우찌된 일입니까. 이제 우에해야 합니꺼.”
재경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하지만 나에게 물어봤자, 내가 무얼 알겠는가.
그저 이 미치광이 같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멍하니 보고만 있는 데,
“어서 제 뱃속으로 강림하시옵소서!”
“어서 제 뱃속으로 강림하시옵소서!”
“어서 제 뱃속으로 강림하시옵소서!”
그러던 와중 여성들의 몸이 변화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배가 부풀어 오른다 싶더니, 이내 배꼽이 녹아내리며 거대한 구멍이 생긴다.
마치 화산처럼 녹아내린 살덩어리들이 그녀들의 배를 뒤덮었고, 곧 시뻘건 근육이 드러나며, 핏줄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광경이었다.
-함부로 다가가지마. 위험 할지도 몰라.
-···아는 사람이에요?
-제가 자주 다니던 도서관의 사서였습니다. 깐깐하고, 잔소리쟁이라 자주 곤혹을 치뤘지요.
“아아!”
“아아!”
“아아!”
찢어질 듯한 그녀의 비명 소리.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것을 저대로 놔둬선 안된다.
놔뒀다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 온다.
그 순간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재경이 천조각을 모은다고 옆에 놔둔, 야구배트였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둬!!!”
비명같은 기합과 함께 나는 배트를 들고 여성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곤 쓰러지는 여성의 배를 향해 그대로 배트를 사정없이 내리 찍었다.
살덩어리와 뼛조각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재경도 정신을 차렸는지, 나머지 여성들을 몸을 던져 쓰러트렸다.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하는 행동이 진리이고, 법이라는 듯, 여성이 더는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꼼짝없이 제압한다.
그리고,
“비켜어!!”
재경이 옆으로 몸을 날리고, 나는 그 제압당한 여성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퍼걱.
수박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여성의 머리가 움푹 패여 들어간다.
인간이었으면 즉사였을 테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빡퍽찍쿵퍽찍팍쿵퍽.
이미 화산이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 오른 배와, 머리를 집중적으로 내리 찍었다.
우스꽝스러운 가죽북 소리와는 다르게, 피가 튀고, 살가죽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진다.
마치 광기에 가까운 행동.
그리고,
머릿속에 여성들의 기억들이 책이 되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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