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끝도 없는 위험.
조회 : 1,159 추천 : 0 글자수 : 6,461 자 2022-10-18
우리는 3층에 존재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역시나,
이쪽 엘리베이터도, 2층과 마찬가지였다.
부서진 기기들과 일그러져 있는 문.
한영은 문을 보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정말 그 괴물이 이곳을 통해서 지나다니는 건가?”
“예에. 저랑 슨상님이 직접 봤십니더.”
재경이 내 대신 대답해준다.
“일단 다른 것 없고, 한번 열어보는게 좋겠네.”
태식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가지고 있던 배트나, 길다란 도구를 이용해, 억지로 우겨넣어. 비틀어서 열어재꼈다.
밑을 보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기가 이쪽까지 전해져 온다.
“햐, 벌써 열기가 이만큼 올랐네예.”
“곧 스프링 쿨러가 작동될거야. 그럼 열기는 식겠지.”
한영은 재경의 말에 대꾸하며, 위를 쳐다보았다.
시커먼 어둠이 잠재하는 위쪽 방향.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어둠이 너무 짙어서 인지, 제대로 보이는 건 거의 없었다.
“맞을까요?”
“나도 몰라. 난 그저 내 생각을 말해줬을 뿐이네. 확인하는 방법은 직접 올라가는 수밖에 없겠지.”
태식 아저씨가 말한 좋은 생각은 다른게 아니었다.
괴물은 오로지 엘리베이터 수직통로를 이용해 움직인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은, 놈이 직접 문을 열고 닫고 다닌 다는 것이다.
“우리도 열었다 시피, 바깥 쪽 문은 문 사이를 공략하지 않는 이상 열기가 꽤 힘든 구조로 되어 있네. 그런데 안쪽은 걸쇠라던지, 이런저런 손을 걸치기 쉬운지라, 그쪽 부분을 손잡이 삼아, 열기 쉽지.”
만약 그렇다면, 놈이 있는 층은 거의 무조건 적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이 태식아저씨의 이론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고블린 놈들이 어떻게 준비했을지도 모를, 계단을 뚫고 올라가, 헤매느니, 차라리 허를 찔러 이쪽으로 올라가는게 나을 것 같았다.
“그라믄, 지가 먼저 확인해볼께예.”
재경이 익숙하게 먼저 가려고 문앞에 섰다.
그런데,
“잠깐, 내가 먼저 가겠다.”
한영이 재경의 앞을 가로 막고 먼저 섰다.
“예? 아니 와예?”
“내가 일단 너보다 선배이고, 반장이니까.”
“아니 그게 무슨…….”
한영이 재경이 뭐라고 하기 전에, 앞에 보이는 줄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손전등을 꺼내 입에 물더니 그대로 꿈틀대면서 위로 올라갔다.
그걸 보던 재경이 뒷통수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햐, 저 양반 뭘 잘못먹었나. 이런 잡일은 죄다 나만 시키더니, 솔선수범도 할 줄 아네.”
‘꼭 그런것만도 아닐겁니다.…….’
나는 하고싶은 말을 씹어 삼키곤, 한영이 올라간, 곳을 보았다.
희미한 불빛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상상속으로 나마 한영이 올라가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간간히 들려오는 남자의 호흡소리와, 면과 선이 스치는 소리만 나직이 들려온다.
‘제발 아무일 없기를…….’
사실 이런 곳이야 말로 제일 위험하다.
피할 곳도 존재하지 않는 줄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한 쪽 손 뿐.
그런데 만약 고블린 로드가 특유의 능력으로 한영을 습격하거나, 고블린 떼가 덮친다면, 그대로 죽은 목숨과 다름이 없었다.
아니, 놈들은 총을 가지고 있으니, 쏘기만 해도 끝장이다.
‘제발 무사하기를…….’
손톱을 깨물고 싶은 생각을 참아내며 위를 살펴보는데,
-치직. 치직.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어? 어어?”
재경도 당황했는지, 허겁지겁 움직이다가, 허리춤에 있던 무전기를 켰다.
-치직, 여기는 한영. 치직. 여기 마지막 층에, 치직, 문 발견.
우리는 소리 없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
우리는 그렇게 하나 둘씩. 줄을 타고 올라갔다.
태식 아저씨도 쉬이 올라갔고, 대학생도 어떻게든 도와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의외인 것은 중년 남성이었다.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몸집에 비해, 생각보다 줄을 잘타는 것이었다.
“흐흐, 내가 임마, 느그 서장이랑 암벽등반도 해봤어. 알아?!”
대체 이 아저씨 뭐하는 분일까 싶었다.
아니 보통 당신같은 나이대는 그런건 다 피하고, 술접대나, 나이트같은데서 대접받지 않나?
줄을 타고 꼬물꼬물 잘도 올라가는 걸 보니, 은근 킹받는다.
“근데, 선상님은 방구석에서 글만 썼다 안캤십니꺼. 쫌 도와드릴까예?”
“아뇨. 괜찮습니다. 혼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강철의 기억이 있다.
경험과 요령따위는 전부 내 기억속에 내제되어 있으니 충분히 올라 갈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용기 있게 줄을 잡았고……,
“으그그극!”
기진맥진하여 바닥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내 몸뚱아리가 더럽게 무겁다고 느꼈다.
경험?
요령?
씨발. 체력 앞에서는 죄다 병신짓이다.
중년남성이 나를 보다가, 혀를 끌끌 찼다.
“쯧쯔, 젊은 놈이 뭐 그래. 체력 좀 길러, 체력 좀! 내가 느그 서장이랑 마…….”
저런 배나온 중년 남성이랑 비교당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올것만 같다.
재경이 아니었으면, 몇 번이라도 줄을 놓쳤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여전히 어두웠다.
어둠에 눈이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어둠에 혀를 내두른다.
마지막 층 6층.
코에 닿는 냄새만으로 이곳이 1층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점 또한 있었다.
적막감.
특유의 고블린들이 내쉬는 신음소리나, 사람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저,
귀를 먹먹케 할만큼 고요함이 지저에 깔려 있었다.
“밑으로 다 내려간걸까요?”
“모르지. 이 건물이 고작 6층짜리라, 전부 내려가지 않았을 수도 있어.”
대학생이 나직한 속삭임에, 한영이 착실히 대답해 준다.
확실히 그랬을 수도 있다.
침입자의 무모한 도전에 왁자지껄하며, 그대로 내려왔을 수도 있었다.
“일단 모두 쉿.”
한영이 검지손가락을 입에다가 가져다 댄후, 슬며시 손전등을 켰다.
그리고 우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피와 살점이 기괴한 방식으로 벽과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것은 이해 했다.
여긴 고블린들의 소굴이니까.
그런데,
어째서 벽면에 고블린의 엉덩이가 붙어 있는 거지?
한영의 손전등 불빛이 다른 쪽으로도 향한다.
그러자 바닥에도 똑같이 고블린들의 몸체가 특이한 방향으로 묻혀 있는 게 드러났다.
“이, 이게 무슨…….”
깔끔한 벽과 바닥들 사이로, 팔 다리, 또는 신체의 일부만 툭 튀어 나온게 무척이나 기괴해 보였다.
마치 고블린놈들의 신체 일부를 뚝, 떼어 일부러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두 방심하지마라. 아무래도 여긴 이상하다!”
한영이 제일 먼저 경계심을 보인다.
그와 동시에, 태식아저씨와 중년남성, 그리고 따라왔던 마지막 사람까지 긴장어린 표정을 지었다.
나 또한 경계심을 올렸지만,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다른 몬스터를 보게 된 한영 일행보다는 덜했다.
“일단은, 지가 먼저 살펴보겠십니더. 여도 와본적 있응께, 파바박하고 다녀 오겠십니더.”
“아니, 내가 가겠다. 대응능력은 내가 좀 더 나으니까.”
“허이고 반장님. 반장님이 과수팀에 올일이 뭐있십니꺼. 걍 제가 가서 살펴볼께예.”
둘이서 서로 가겠느니, 하면서 다투기 시작한다.
누가 가든 위험한 것 매한가지인데, 뭐 저리 힘들게 싸울까.
나는 천천히 고블린이 묻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슨상님 뭐합니까. 위험하니까, 이리 오이소.”
“잠시만요. 확인할게 있어서요.”
목표는 머리가 반이나 잘려서 바닥에 버려진 녀석.
자세히 살펴보니, 깔끔하게 머리가 반이나 잘린게 아니었다.
통째로 바닥에 몸의 대부분이 묻히고, 들어가지 않는 머리 위쪽만 삐죽이 올라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놈들도?’
악취미적인 전시가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이 마치 물에 빠지듯, 벽과 바닥으로 끌려 들어갓다가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었다.
‘로드의 짓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아까 봤던, 놈의 능력과는 상이하게 달랐다.
이런 능력이 있었다면, 굳이 도망갈 필요도 없이, 곧바로 그 능력을 써서 우리를 모조리 바닥에 묻었을 것이었다.
오히려 이곳에 무언가 다른게 있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반쪽만 올라온 고블린의 머리를 찔러보았다.
생명체의 머리를 누르는 듯한, 물컹한 느낌.
그런데 반응이 이상하다.
-움찔움찔.
묘한 반응을 보이는 놈의 머리. 자세히 보니 놈의 일자로 된 눈동자가 이쪽을 향하는게 아닌가?
마치 겁먹은 듯한, 좌우로 야무지게 흔들리는 놈의 눈동자.
‘설마?’
나는 머리의 반쪽만 올라온 고블린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시이이.
잠깐 빛이 머문다 싶더니, 놈의 머리와 묻혀 있던 땅이 함께 폭발한다.
어느새 내 손에는 새하얀 고블린 두 개 골이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놈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한 여성을 향해 뒤 쫓아가는 모습.
무척이나 즐겁고, 쾌락적인 기분과 함께, 동료, 또는 라이벌들과 다 같이 쫓아간다.
비명소리가 무척이나 즐겁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닥이 질퍽질퍽해진다.
마치, 늪에 빠지는 느낌.
그렇게 놈은 허우적 허우적 대다가, 바닥이 굳어지자, 움직이지도 못한체, 죽음을 맞이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것이 이 고블린이 가지고 있던 기억이었다.
그리고 나는 놈들이 뒤쫓는 것이 누구인지, 알 고 있었다.
“수연…씨?”
“예? 수연이라꼬예?!”
재경이 놀란 눈으로 되묻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얼른 다른 놈의 머리를 쥐어쨔, 기억을 읽어냈다.
놈의 기억 또한 앞에 놈과 비슷했다.
사냥.
늪.
파묻힘.
그들의 기억은 한 방향으로 귀결한다.
“재경씨. 저 쪽이 어느곳으로 가는 길이죠?!”
“그, 그기는 갱승실로 가는 덴데……. 혹시 우리 수연이가 그기로 갔십니꺼?! 끌려간거라예?”
“끌려간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인 것은 맞습니다.”
고블린 놈들은 분명 도망가는 수연의 뒤를 쫓아갔다가, 이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현재 수연은 이 바닥을 물로 만들어버리는 미친 괴물이 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이 층에 로드가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상황인데, 그런 괴물까지 있다니…….
“어쩌면, 그 놈이 여기 있는 이유가 놓친 사람을 다시 잡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군.”
중년 남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위험한 발언을 내뱉는다.
그 말에 재경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아, 안됩니더! 안됩니더! 수, 수연아! 수연아!!”
“야! 김재경! 멈춰!”
재경이 그대로 뛰쳐나갔다.
한영이 말려보려 했지만, 재경은 한영의 말을 듣지 않고 그곳이 있는 쪽으로 달려나갔다.
“우리도 가죠!”
이대로 재경을 희생시킬 순 없었다.
우리는 재경의 뒤를 뒤쫓듯 달려나갔다.
경승실은 생각보다 가까운데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이 정답이라는 듯, 벽이나 바닥에 파묻힌 고블린 놈들의 모습이 더, 더욱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 꺼번에 도망치지도 못하고 몰살당한 듯, 한꺼번에 무더기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소름이 돋는 걸 느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앞에 전부 무시하고 달려가는 재경도 있었지만, 그만큼 수연이 위험하다는 뜻도 되었으니까.
몇 분 안되서, 경승실의 푯말이 보인다.
“에이쒸! 이 문짝 와이리 안열리노! 수연아! 안에 있나?! 수연아!!”
안에서 잠긴 듯, 열리지 않는 문. 재경이 열심히 문고리와 씨름해보지만, 굳게 닫힌 문은 생각보다 열기 어려웠다.
“차라리 부수자!”
한영이 제안하자, 재경도 그게 옳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한영과 함께 어깨로 문을 들이 박았다.
-쿵! 쿵! 콰직!
재경의 절박함이었을지, 아니면 문이 생각보다 약해서였을지.
두 남자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말 그대로 부숴졌다.
“수연아!”
재경이 곧바로 방에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한영이 그런 재경을 곧바로 제지했다.
“잠깐 기다려!”
“와예?!”
“넌, 못 느꼈나?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나는 그 틈을 타 경승실 입구로 다가갔다.
경승실 또한 놈들에게 점령당한지 오래인지, 무척이나 어지러웠다.
피칠갑으로 된 법구들이 깨져서, 제단 위를 나뒹굴고 있었고, 부처님 그림마저 찢기고, 붉게 물들인체 넝마처럼 간신히 벽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 한 여성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 조차 들지 못하는 여성.
수연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 위화감이 느껴지는 걸까?
나는 바닥과 벽면을 면면히 살피며, 위화감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도저히 찾기 힘들었다.
‘대체 뭐지? 왜이리 위험하게 느껴지지?’
“비켜봐.”
그 순간 태식 아저씨가 입구에 다가오더니, 손에 든 무언가를 경승실 안에 던졌다.
고블린 놈들의 손에 들려있던, 몽둥이였다.
그리고 우리는 볼 수있었다.
-촤아악!
바닥과 벽에서 마치 물보라치듯, 이 무언가 솟아오르며 몽둥이를 잡아채는 것을.
그것은 마치 오징어나, 문어에서만 보던 거대한 촉수처럼 보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부들부들 떨던 수연이 비명을 지른다.
비명소리가 가득한 경승실 안.
우리는 멍하니 그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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