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조회 : 855 추천 : 1 글자수 : 5,227 자 2022-09-16
협소한 공간이다. 테이블이 하나 있고 눈앞에는 도둑이 있다.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럼 개같이 처맞는 거지”
김지원은 검집 채로 검을 뽑아 들었다. 이후 땅을 박찬다.
“자세 좋네? 마냥 망나니인 줄 알았는데.”
김지원을 마냥 망나니로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자세를 보고는 마음을 고쳐 잡는다. 확실히 평범한 이들과는 달라 보였으니.
레일라가 손날을 드리우며 마치 검 쓰듯 한다. 저걸로 검을 막을 심산인가 보다.
‘손날로?’
의아하면서도 검은 곧장 레일라를 향했다. 상단에서 검격이 일궈진다. 검과 손날이 맞부딪쳤다.
분명 손이 부서졌을 것이라 생각한 예상과는 반대로 검과 맞부딪힌 손날은 검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되려 강철처럼 딱딱했기에 충격이 검을 타고 이후 찌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크윽.”
김지원은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검이 잘 쥐어지지 않았다. 왼손으로 검을 잡고 오른팔을 툭툭 턴다.
“허. 더럽게 단단하네. 아이언맨이냐?”
“아이언맨? 오러를 모르는 건 조금 실망인데.”
≪메인 퀘스트Ⅱ (진행 중)≫
<페르난 레일라>
레일라 페르난에게서 명작을 되찾으세요.
명작 0/2
[보상:초인적인 재능 선택권 3종]
“어 몰라.”
김지원의 다시 양손으로 검을 잡고 순식간에 사각을 발견하며 파고들었다. 천재적인 기본기 재능 덕에 검이 물 흐르듯 움직였다. 검격에서 검격으로 이어지는 자세가 우러나왔다.
-캉! 캉! 캉!
3번의 연격이 이어졌지만 모두 가볍게 막혔다. 뭔 손날이 저리 단단한가.
레일라가 피식하고 웃으며 여유롭게 말한다.
“진검 뽑아. 검집 채로 휘두르면 무겁잖아.”
-스릉
김지원은 검집을 오른손에 쥐고는 왼손으로 검을 잡았다.
“진검은 개뿔, 목검이다 도둑련아.”
또다시 둘의 공방이 이어졌다. 이 장면을 조금 멀리서 지켜보는 이거 있었으니.
“아아···.”
제나단이 뒤늦게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말리려한다. 가능한 대화로 해결하고 싶었던 제나단이기에.
“다, 다들 왜 다짜고짜 싸우는 겁니까! 형님 일단 진정하시고 대화로···!”
김지원은 바닥을 끌며 멈춰 섰다. 이후 한 번 더 땅을 박찰 자세를 잡는다.
“이게 최선의 대화야. 일단 말이 필요 없거든.”
-후웅!
김지원의 움직임이 가속된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신체 능력이었다. 여기서 만큼은 신체 능력으로 지구의 인류를 가볍게 씹어 먹는다.
-카강!
목검은 검집보다 힘의 전달이 잘됐다. 혹여나 온 힘을 다해 휘둘렀지만, 이번에도 쉽게 막아냈으니 놀라웠다.
“진짜 강철이 따로 없네.”
레일라는 태생이 천재였다. 검술에 뛰어난 소질이 있고 소싯적 오라를 사용할 수 있는 오러 사용자였으니까. 아카데미 내에서도 아카데미 밖에서도 오러 사용자는 네자릿수를 안 넘어간다. 힘을 증폭시키고 신체를 강화하며 때로는 신체를 보호한다. 레일라는 흥분되는 감각에 입을 주체할 수 없다.
“부럽니?”
“지랄하네.”
김지원은 이를 악물었다.
검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고는 보이지 않는 사각에 숨겨둔 검집을 휘둘렀다.
-후웅!
레일라가 방어를 내리고 상체를 뒤로 뺀다. 완벽하게 턱을 노린 공격이었지만 검집 끝은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베었다. 철웅성 같은 방어에도 열린 입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라인가 오러인가 뭐시기만 믿고 깝치면 너 피똥 싼다?”
“숙녀한테 못 할 말이 없네.”
“도둑질이나 시키고 뻔뻔하게 숙녀는 지랄. 노예가 지 주인을 닮았지.”
괜히 가만히 있던 제나단은 찔렀다. 하단에서 김지원의 공격이 이어진다.
-후웅! 캉!
일방적이었다. 김지원이 공격하면 레일라는 방어했다.
“치잇.”
거슬릴 것이다. 일방적으로 김지원은 공격 턴을 계속해서 잡아 오고 있었으니.
상단과 하단 공격으로 레일라가 쉽사리 행동할 수 없도록 무게 중심을 흔들어 놓으며 중간중간 알 수 없는 타이밍에 거리가 좁혀 들어왔다. 이후 변칙적인 공격에 또다시 방어에만 전념하게 만든다.
-후웅 캉! 카강!
짧은 2초 사이에 어마어마한 디테일이 엿보인 공격이었다. 검술을 5년 배운 이도 이런 디테일은 어려울 것이다.
“그 잘난 오라 맛 좀 보고 싶은데 방어 밖에 할 줄 모르시나?”
힘겹게 방어하면서도 한마디도 지기 싫어 입을 연다. 레일라는 점점 불리해지고 있었다.
“손에 검 있으면 진작에 끝났어. 잡을 타이밍이 없잖아.”
“그건 니 사정이고.”
아까와 똑같은 공격이었다.
김지원은 목검을 내지르면서도 레일라의 방어를 유도하고 다시 한번 사각에서 검집으로 검격.
레일라는 피하려 상체를 숙였지만, 처음부터 검집을 휘두르려 무게 중심을 잡아뒀기에 피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거리는 이미 한 발자국 앞서 확보해둔 상태였으니.
레일라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당황한다.
“······!”
-빠악!
이마빡에 적중했다. 정말이지 통쾌한 소리였다.
“크흑!”
레일라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온다. 이마는 빨개져 있었다. 고통에 젖어 있을 틈 따위는 없다. 레일라는 뒤로 크게 물러나며 벽에 닿았다.
“별거 없네. 오라 라길레 괜히 쫄았잖아. 고작 그거 가지고 떵떵댄 거야?”
“으윽··· 인정할게. 너 강해.”
레일라가 허공에 손을 뻗자. 검이 나타나 레일라의 손에 잡혔다.
능숙하게 검을 뽑으며 검집을 바닥에 버렸다. 검집은 그대로 사라진다.
제나단이 레일라의 검을 보고는 놀란다.
“신기!”
“신기하다고?”
“아뇨 저거 신기에요! 신기 몰라요!?”
“······.”
김지원은 17년 동안 아무런 지식 습득 없이 살아온 펠렌의 무지함을 탓하며 앞을 바라봤다. 얘는 왜 뇌가 복수랑 분노, 과거의 고됨이 전부일까.
“저 노랑머리처럼 놀라는 게 정상이지. 이거 아무나 못 보는 거야. 페르난 가의 장녀인 내가 가문에게 인정받아 얻은 검이지. 무려 나만 가지고 있는 검이고. 영광스럽게 여겨.”
김지원은 한창 기세등등할 나이이니 레일라의 말에 호응해줬다. 다만 목소리에 영혼이 없다.
“영광스러워요.”
“가진 것 없는 것들이 그런 소리 하더라.”
“부럽다 해줘도 지랄이네. 이제 안 해준다.”
김지원이 꿋꿋이 자세를 잡는다. 하체는 낮게 그리고 검은 높게, 무게 중심은 항상 앞으로, 드윌란이 강조한 것이다.
레일라가 쇄도한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오러의 영향인 듯 보였다.
-까가각!!
목검으로 신검을 비스듬하게 흘리듯 했다. 하지만 흘리는 것도 흘리는 것이 아니었다. 검 스스로가 진동하며 목검을 베어내려 했다. 목검이 반으로 깎여 나갔다. 목검이 제 역할을 못 할 듯 홀쭉해진다.
도신이 아니라 단번에 병신이 됐다.
“미친··· 진동칼이냐?”
레일라는 잔뜩 집중한 듯 말이 없었다. 중단으로 검격이 이어졌다. 막을 수 없다. 막는다면 분명 목검 채로 내 몸이 날아갈 것이다.
“치잇.”
예상 못한 스피드였다. 김지원의 무게 중심은 앞으로 있었기에 뒤로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판단이 늦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면이었다. 김지원은 목검과 검집을 놈의 타점에 모으며 검격을 어떻게든 막을 심상으로 돌진했다.
그때였다.
“푸훗. 걸렸어.”
레일라는 작게 비웃으며 순식간에 검을 회수하고 뒤차기를 김지원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어찌나 빠른지 보이지도 않았다. 실력의 격차가 단번에 그래프를 뚫었다.
몸을 앞으로 내밀다 처맞은 카운터에 검을 회수하면서 발생하는 원심력, 몸 전체의 회전력이 동시에 작용하니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커헉···!”
자리에서 쓰러진다.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복부 쪽에서 고통이 뒤따른다.
“혀, 형님!”
제나단이 달려와 쓰러진 나를 편한 자세를 고쳐준다.
“끄으윽··· 시···발··· 존나··· 아파···.”
“허세 그만 부려. 오러를 배운 상대는 애초에 못 이긴다니까?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이기려고 했어?”
레일라가 쓰러진 내게 검 끝을 겨루며 싱긋 웃는다. 로벨리아가 날 보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너 지금 니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 모르지? 강제로 남이 집 문 부시고 쳐들어와서는 내게 협박한 거야.”
레일라가 하는 개소리를 들으니 고통이 조금은 가셨다.
“지랄··· 그딴 걸 믿어줘···?”
레일라가 검을 거두고 다시금 의자에 앉았다. 상 위로 다리를 올리고 꼰다. 승자만이 취할 수 있는 여유로운 태도였다.
“정황상 그래. 피해자는 나니까. 가해자 말에 신뢰성이 있을 것 같아? 일단은 내 말에 힘이 있는 거거든. 내가 뭔 말을 하든지 믿어줘, 순경들은 아무튼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증거를 영상이나 소리, 이미지의 형태로 남길 수 없으니. 일단 정황상 피해자의 말을 우선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방금 처음으로 인지했다는 거다. 자신이 법에 관해서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지원은 풀리는 눈을 간신히 붙잡고 아래에서 레일라를 올려다보았다. 눈매가 사나워진다.
“빌어, 잘 못 했다고 싹싹 빌어. 그러면 모른 척해 줄게.”
레일라가 마지막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김지원의 패배였다.
“······젠장.”
완벽한 체크메이트. 미안하다고 사과하려 입을 열려던 그때다.
레일라의 미소가 번지르르 번진다.
“솔직히 사과하기 싫지? 기회 줄까? 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야. 내가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는 이러는 건 좀 아니지. 나는 고귀하고 잘났으니까.”
“······.”
정말로 아무 말도 못했다. 저 뻔뻔한 개소리에도 무조건적으로 수긍해야 하는 것이.
레일라가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1달 뒤에 등급 심사 있을 거야.”
레일라가 상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이를 펄럭이다 대충 보고는 상에 도로 내려놨다.
“나한테 진 이유가 목검이어서 그런 거잖아. 아니면 제대로 준비 운동 못해서, 장소가 별로여서, 아무튼 그런 거잖아. 맞지?”
실실 비웃는다. 나의 자존심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하는 것이다. 분하지만 여기서는 저년의 말에 호응해주는 편이 쉽게쉽게 넘어간다. 자존심을 굽히니 정말 한순간에 나라는 존재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저 년은 지금 상황을 소름끼치게 잘 이용하고 있었다.
김지원은 자신의 추한 모습에 웃겨 피식 웃었다.
“어 맞아. 목검이 아니었으면 이겼을 텐데. 아쉬워.”
“하핳! 너 좀 웃기다? 1달 뒤에 제대로 다시 대련해. 넓고 보는 눈 많은 데서 말이야. 이기면 입 다물고 명작도 주고, 좋지?”
제나단이 몸을 일으키려는 내 몸을 부축해주며 도왔다. 내가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가고 두 발자국 떼며 걸었다. 입 아래로 침이 흘렀었다. 침을 옷깃으로 닦는다.
“그 말 책임질 수 있냐? 그것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별 이유 없어 단순히 너가 재밌으니까. 명작을 뺐겼다고 바로 알아내서 쳐들어오고 무작정 검을 휘두르는 게 넌 평범한 귀족이랑은 달라 보이거든. 내가 잃어버린 예전의 모습일까? 네 말투를 빌리자면 너를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겠지. 그러니 페르난 기문의 명예를 걸고 약속할 게. 이기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
1달이라.
이건 이길 수 있냐 지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병신이다. 명작을 돌려받는다고 할지라도 되찾기 위해 1달 동안 강해지기 위해 발버둥 쳐서 이긴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레일라에게는 별 타격이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애당초 리크스가 없으니. 나만 놀아나는 꼴이다. 이기든 지든.
쉽게 내게 1달의 유예 기간을 주는 것이다.
이 싸움은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다. 허나, 그렇다면 난 이긴 병신이 될 거다.
나는 이곳으로 온 지 1주일 만에 이곳 아카데미 학생의 평균을 상회하는 강함을 가졌다. 그렇다고 검술만 주구장창해서 검술 실력을 얻었나? 그것도 아니지.
저런 괴물들이 위에 있기에 내가 비상식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저들을 뛰어넘기 위해서. 이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못 할 것도 없지. 무조건 진다고 확신할 이유도.
-씨익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라.”
레일라는 내 말에 조금 놀란 눈치였으나 곧바로 말에 쐐기를 박았다.
“페르난 레일라야.”
“펠렌 크라운이다.”
* * *
“준비 끝났죠? 그나저나 펠렌 군은 눈동자가 파릿파릿하네요.”
“제가 그런가요?”
“전과 다르게 뭔가 욕망이 있어 보여요 아무튼 좋은 거겠죠.”
거대한 크기의 배낭을 양쪽 어깨에 짊어진 드윌란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실눈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조금 신나 보이기도 했다.
“1달 동안 미궁에서 굴릴 겁니다. 다들 각오 단단히 하세요.”
강해지자 김지원은 눈동자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준비됐습니다.”
제나단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가봅시다. 미궁으로.”
레일라에게 압도적인 재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줄 것이다.
‘뛰어난 재능 1개 개봉’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럼 개같이 처맞는 거지”
김지원은 검집 채로 검을 뽑아 들었다. 이후 땅을 박찬다.
“자세 좋네? 마냥 망나니인 줄 알았는데.”
김지원을 마냥 망나니로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자세를 보고는 마음을 고쳐 잡는다. 확실히 평범한 이들과는 달라 보였으니.
레일라가 손날을 드리우며 마치 검 쓰듯 한다. 저걸로 검을 막을 심산인가 보다.
‘손날로?’
의아하면서도 검은 곧장 레일라를 향했다. 상단에서 검격이 일궈진다. 검과 손날이 맞부딪쳤다.
분명 손이 부서졌을 것이라 생각한 예상과는 반대로 검과 맞부딪힌 손날은 검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되려 강철처럼 딱딱했기에 충격이 검을 타고 이후 찌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크윽.”
김지원은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검이 잘 쥐어지지 않았다. 왼손으로 검을 잡고 오른팔을 툭툭 턴다.
“허. 더럽게 단단하네. 아이언맨이냐?”
“아이언맨? 오러를 모르는 건 조금 실망인데.”
≪메인 퀘스트Ⅱ (진행 중)≫
<페르난 레일라>
레일라 페르난에게서 명작을 되찾으세요.
명작 0/2
[보상:초인적인 재능 선택권 3종]
“어 몰라.”
김지원의 다시 양손으로 검을 잡고 순식간에 사각을 발견하며 파고들었다. 천재적인 기본기 재능 덕에 검이 물 흐르듯 움직였다. 검격에서 검격으로 이어지는 자세가 우러나왔다.
-캉! 캉! 캉!
3번의 연격이 이어졌지만 모두 가볍게 막혔다. 뭔 손날이 저리 단단한가.
레일라가 피식하고 웃으며 여유롭게 말한다.
“진검 뽑아. 검집 채로 휘두르면 무겁잖아.”
-스릉
김지원은 검집을 오른손에 쥐고는 왼손으로 검을 잡았다.
“진검은 개뿔, 목검이다 도둑련아.”
또다시 둘의 공방이 이어졌다. 이 장면을 조금 멀리서 지켜보는 이거 있었으니.
“아아···.”
제나단이 뒤늦게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말리려한다. 가능한 대화로 해결하고 싶었던 제나단이기에.
“다, 다들 왜 다짜고짜 싸우는 겁니까! 형님 일단 진정하시고 대화로···!”
김지원은 바닥을 끌며 멈춰 섰다. 이후 한 번 더 땅을 박찰 자세를 잡는다.
“이게 최선의 대화야. 일단 말이 필요 없거든.”
-후웅!
김지원의 움직임이 가속된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신체 능력이었다. 여기서 만큼은 신체 능력으로 지구의 인류를 가볍게 씹어 먹는다.
-카강!
목검은 검집보다 힘의 전달이 잘됐다. 혹여나 온 힘을 다해 휘둘렀지만, 이번에도 쉽게 막아냈으니 놀라웠다.
“진짜 강철이 따로 없네.”
레일라는 태생이 천재였다. 검술에 뛰어난 소질이 있고 소싯적 오라를 사용할 수 있는 오러 사용자였으니까. 아카데미 내에서도 아카데미 밖에서도 오러 사용자는 네자릿수를 안 넘어간다. 힘을 증폭시키고 신체를 강화하며 때로는 신체를 보호한다. 레일라는 흥분되는 감각에 입을 주체할 수 없다.
“부럽니?”
“지랄하네.”
김지원은 이를 악물었다.
검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고는 보이지 않는 사각에 숨겨둔 검집을 휘둘렀다.
-후웅!
레일라가 방어를 내리고 상체를 뒤로 뺀다. 완벽하게 턱을 노린 공격이었지만 검집 끝은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베었다. 철웅성 같은 방어에도 열린 입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라인가 오러인가 뭐시기만 믿고 깝치면 너 피똥 싼다?”
“숙녀한테 못 할 말이 없네.”
“도둑질이나 시키고 뻔뻔하게 숙녀는 지랄. 노예가 지 주인을 닮았지.”
괜히 가만히 있던 제나단은 찔렀다. 하단에서 김지원의 공격이 이어진다.
-후웅! 캉!
일방적이었다. 김지원이 공격하면 레일라는 방어했다.
“치잇.”
거슬릴 것이다. 일방적으로 김지원은 공격 턴을 계속해서 잡아 오고 있었으니.
상단과 하단 공격으로 레일라가 쉽사리 행동할 수 없도록 무게 중심을 흔들어 놓으며 중간중간 알 수 없는 타이밍에 거리가 좁혀 들어왔다. 이후 변칙적인 공격에 또다시 방어에만 전념하게 만든다.
-후웅 캉! 카강!
짧은 2초 사이에 어마어마한 디테일이 엿보인 공격이었다. 검술을 5년 배운 이도 이런 디테일은 어려울 것이다.
“그 잘난 오라 맛 좀 보고 싶은데 방어 밖에 할 줄 모르시나?”
힘겹게 방어하면서도 한마디도 지기 싫어 입을 연다. 레일라는 점점 불리해지고 있었다.
“손에 검 있으면 진작에 끝났어. 잡을 타이밍이 없잖아.”
“그건 니 사정이고.”
아까와 똑같은 공격이었다.
김지원은 목검을 내지르면서도 레일라의 방어를 유도하고 다시 한번 사각에서 검집으로 검격.
레일라는 피하려 상체를 숙였지만, 처음부터 검집을 휘두르려 무게 중심을 잡아뒀기에 피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거리는 이미 한 발자국 앞서 확보해둔 상태였으니.
레일라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당황한다.
“······!”
-빠악!
이마빡에 적중했다. 정말이지 통쾌한 소리였다.
“크흑!”
레일라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온다. 이마는 빨개져 있었다. 고통에 젖어 있을 틈 따위는 없다. 레일라는 뒤로 크게 물러나며 벽에 닿았다.
“별거 없네. 오라 라길레 괜히 쫄았잖아. 고작 그거 가지고 떵떵댄 거야?”
“으윽··· 인정할게. 너 강해.”
레일라가 허공에 손을 뻗자. 검이 나타나 레일라의 손에 잡혔다.
능숙하게 검을 뽑으며 검집을 바닥에 버렸다. 검집은 그대로 사라진다.
제나단이 레일라의 검을 보고는 놀란다.
“신기!”
“신기하다고?”
“아뇨 저거 신기에요! 신기 몰라요!?”
“······.”
김지원은 17년 동안 아무런 지식 습득 없이 살아온 펠렌의 무지함을 탓하며 앞을 바라봤다. 얘는 왜 뇌가 복수랑 분노, 과거의 고됨이 전부일까.
“저 노랑머리처럼 놀라는 게 정상이지. 이거 아무나 못 보는 거야. 페르난 가의 장녀인 내가 가문에게 인정받아 얻은 검이지. 무려 나만 가지고 있는 검이고. 영광스럽게 여겨.”
김지원은 한창 기세등등할 나이이니 레일라의 말에 호응해줬다. 다만 목소리에 영혼이 없다.
“영광스러워요.”
“가진 것 없는 것들이 그런 소리 하더라.”
“부럽다 해줘도 지랄이네. 이제 안 해준다.”
김지원이 꿋꿋이 자세를 잡는다. 하체는 낮게 그리고 검은 높게, 무게 중심은 항상 앞으로, 드윌란이 강조한 것이다.
레일라가 쇄도한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오러의 영향인 듯 보였다.
-까가각!!
목검으로 신검을 비스듬하게 흘리듯 했다. 하지만 흘리는 것도 흘리는 것이 아니었다. 검 스스로가 진동하며 목검을 베어내려 했다. 목검이 반으로 깎여 나갔다. 목검이 제 역할을 못 할 듯 홀쭉해진다.
도신이 아니라 단번에 병신이 됐다.
“미친··· 진동칼이냐?”
레일라는 잔뜩 집중한 듯 말이 없었다. 중단으로 검격이 이어졌다. 막을 수 없다. 막는다면 분명 목검 채로 내 몸이 날아갈 것이다.
“치잇.”
예상 못한 스피드였다. 김지원의 무게 중심은 앞으로 있었기에 뒤로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판단이 늦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면이었다. 김지원은 목검과 검집을 놈의 타점에 모으며 검격을 어떻게든 막을 심상으로 돌진했다.
그때였다.
“푸훗. 걸렸어.”
레일라는 작게 비웃으며 순식간에 검을 회수하고 뒤차기를 김지원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어찌나 빠른지 보이지도 않았다. 실력의 격차가 단번에 그래프를 뚫었다.
몸을 앞으로 내밀다 처맞은 카운터에 검을 회수하면서 발생하는 원심력, 몸 전체의 회전력이 동시에 작용하니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커헉···!”
자리에서 쓰러진다.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복부 쪽에서 고통이 뒤따른다.
“혀, 형님!”
제나단이 달려와 쓰러진 나를 편한 자세를 고쳐준다.
“끄으윽··· 시···발··· 존나··· 아파···.”
“허세 그만 부려. 오러를 배운 상대는 애초에 못 이긴다니까?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이기려고 했어?”
레일라가 쓰러진 내게 검 끝을 겨루며 싱긋 웃는다. 로벨리아가 날 보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너 지금 니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 모르지? 강제로 남이 집 문 부시고 쳐들어와서는 내게 협박한 거야.”
레일라가 하는 개소리를 들으니 고통이 조금은 가셨다.
“지랄··· 그딴 걸 믿어줘···?”
레일라가 검을 거두고 다시금 의자에 앉았다. 상 위로 다리를 올리고 꼰다. 승자만이 취할 수 있는 여유로운 태도였다.
“정황상 그래. 피해자는 나니까. 가해자 말에 신뢰성이 있을 것 같아? 일단은 내 말에 힘이 있는 거거든. 내가 뭔 말을 하든지 믿어줘, 순경들은 아무튼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증거를 영상이나 소리, 이미지의 형태로 남길 수 없으니. 일단 정황상 피해자의 말을 우선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방금 처음으로 인지했다는 거다. 자신이 법에 관해서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지원은 풀리는 눈을 간신히 붙잡고 아래에서 레일라를 올려다보았다. 눈매가 사나워진다.
“빌어, 잘 못 했다고 싹싹 빌어. 그러면 모른 척해 줄게.”
레일라가 마지막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김지원의 패배였다.
“······젠장.”
완벽한 체크메이트. 미안하다고 사과하려 입을 열려던 그때다.
레일라의 미소가 번지르르 번진다.
“솔직히 사과하기 싫지? 기회 줄까? 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야. 내가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는 이러는 건 좀 아니지. 나는 고귀하고 잘났으니까.”
“······.”
정말로 아무 말도 못했다. 저 뻔뻔한 개소리에도 무조건적으로 수긍해야 하는 것이.
레일라가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1달 뒤에 등급 심사 있을 거야.”
레일라가 상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이를 펄럭이다 대충 보고는 상에 도로 내려놨다.
“나한테 진 이유가 목검이어서 그런 거잖아. 아니면 제대로 준비 운동 못해서, 장소가 별로여서, 아무튼 그런 거잖아. 맞지?”
실실 비웃는다. 나의 자존심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하는 것이다. 분하지만 여기서는 저년의 말에 호응해주는 편이 쉽게쉽게 넘어간다. 자존심을 굽히니 정말 한순간에 나라는 존재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저 년은 지금 상황을 소름끼치게 잘 이용하고 있었다.
김지원은 자신의 추한 모습에 웃겨 피식 웃었다.
“어 맞아. 목검이 아니었으면 이겼을 텐데. 아쉬워.”
“하핳! 너 좀 웃기다? 1달 뒤에 제대로 다시 대련해. 넓고 보는 눈 많은 데서 말이야. 이기면 입 다물고 명작도 주고, 좋지?”
제나단이 몸을 일으키려는 내 몸을 부축해주며 도왔다. 내가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가고 두 발자국 떼며 걸었다. 입 아래로 침이 흘렀었다. 침을 옷깃으로 닦는다.
“그 말 책임질 수 있냐? 그것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별 이유 없어 단순히 너가 재밌으니까. 명작을 뺐겼다고 바로 알아내서 쳐들어오고 무작정 검을 휘두르는 게 넌 평범한 귀족이랑은 달라 보이거든. 내가 잃어버린 예전의 모습일까? 네 말투를 빌리자면 너를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겠지. 그러니 페르난 기문의 명예를 걸고 약속할 게. 이기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
1달이라.
이건 이길 수 있냐 지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병신이다. 명작을 돌려받는다고 할지라도 되찾기 위해 1달 동안 강해지기 위해 발버둥 쳐서 이긴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레일라에게는 별 타격이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애당초 리크스가 없으니. 나만 놀아나는 꼴이다. 이기든 지든.
쉽게 내게 1달의 유예 기간을 주는 것이다.
이 싸움은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다. 허나, 그렇다면 난 이긴 병신이 될 거다.
나는 이곳으로 온 지 1주일 만에 이곳 아카데미 학생의 평균을 상회하는 강함을 가졌다. 그렇다고 검술만 주구장창해서 검술 실력을 얻었나? 그것도 아니지.
저런 괴물들이 위에 있기에 내가 비상식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저들을 뛰어넘기 위해서. 이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못 할 것도 없지. 무조건 진다고 확신할 이유도.
-씨익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라.”
레일라는 내 말에 조금 놀란 눈치였으나 곧바로 말에 쐐기를 박았다.
“페르난 레일라야.”
“펠렌 크라운이다.”
* * *
“준비 끝났죠? 그나저나 펠렌 군은 눈동자가 파릿파릿하네요.”
“제가 그런가요?”
“전과 다르게 뭔가 욕망이 있어 보여요 아무튼 좋은 거겠죠.”
거대한 크기의 배낭을 양쪽 어깨에 짊어진 드윌란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실눈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조금 신나 보이기도 했다.
“1달 동안 미궁에서 굴릴 겁니다. 다들 각오 단단히 하세요.”
강해지자 김지원은 눈동자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준비됐습니다.”
제나단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가봅시다. 미궁으로.”
레일라에게 압도적인 재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줄 것이다.
‘뛰어난 재능 1개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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