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조회 : 730 추천 : 0 글자수 : 5,588 자 2022-09-20
“키엑!”
장기를 꿰뚫고 들어간 검에는 둔중한 감각이 느껴졌다. 단말마와 함께 고블린이 쓰러진다.
김지원은 인상을 찌푸리고 검을 거두며 당장 수건으로 보라색 피를 닦아냈다.
2일 정도 지난 시점. 3계층 고블린 처치 임무를 하라는 소리에 몸이 굳었다.
나보고 고블린을 죽이라는 소리다. 미궁에 들어왔으니 그 정도는 각오한 일이었으니. 그래도 무리였다. 쥐새끼도 제대로 못 잡는 나한테 그건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래서 항의해보았으나 돌아오는 말은 ‘쫄인가요?’ 였다.
김지원은 고블린을 잡았다. 정확히는 날카로운 검으로 뱃가죽을 뚫고 장기를 쑤시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의 목을 절단했다.
한 번, 두 번.
어떨 때는 장기가 배 밖으로 튀어나오고 쓰러지는 제 몸에 짓눌려 터졌다. 김지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구토를 쏟아냈다. 제나단과 같이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말이다.
지금은 꽤 괜찮아진 편이다. 처음에는 속이 울렁거려 분 단위로 토를 해댔다. 지금은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치이익
다행인 점은 미궁 몬스터들이 죽은 이후 정확히 1분 후 시체부터 피까지 해서 완벽하게 기화되어 소멸한다는 것이었다. 시체를 정리하거나 검에 묻은 피를 닦을 수고를 덜었다. 생명체라는 느낌이 조금 건조해졌다.
“상체를 낮춰서 검에 최대한 보호될 수 있도록 하세요. 검날과 힘의 전달 방향이 어긋납니다.”
제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다.
드윌란의 고개가 빠르게 풀숲을 향했다. 고블린 무리가 불쑥 튀어나와 몽둥이를 휘두른다.
김지원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고 아직 완벽히 3계층에 적응 못 한 제나단은 피할 수 없어 검으로 몽둥이를 막아냈다.
-콰각!
검날이 몽둥이를 파고들었다. 단단히 고정되어 아무 힘을 줘도 검이 빠지지 않는다. 검 면으로 막아내지 못한 제나단의 실책이었다. 곧바로 무기를 잃은 초짜는 당황했다.
다른 고블린이 제나단의 빈 사각을 노렸다.
보다 못한 드윌란이 손날을 새우며 순식간에 풍음과 함께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서걱! 서걱!
1초 조금 지났을까 고블린의 머리가 하늘 위로 날고 목에 깔끔한 절단면이 보였다.
-털썩
고블린들이 쓰러지고 연기를 내뿜었다.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다음부터는 검 면으로 막으세요. 방금은 확실하게 죽는 상황이었습니다.”
제나단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지원이 손을 건넸다.
“괜찮냐?”
“아··· 네. 힘 풀린 거예요.”
이곳으로 오며 제나단과 김지원은 형제라 칭해도 될 정도로 좋은 우정을 쌓았다. 드윌란이 전투에 개입하는 건 방금처럼 죽음을 눈앞에 둔 체크메이트뿐이다.
팔이나 다리가 잘려나 갈 상황에도 드윌란은 발을 떼지 않았다. 그랬기에 서로에게 등을 맞대고 의지하는 것이 몸을 간수 할 길이었다. 서로 믿고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줬다.
조금씩이지만 둘은 이곳 환경에 점점 적응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드윌란이 이쪽을 보다. 말없이 우중충한 천장을 올려다봤다.
“오늘은 조금 위험한 날이었네요···.”
혼잣말인 듯 목소리가 작아 김지원의 귀에 닿지 않았다.
“네? 방금 뭐라 말했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이쯤하고 돌아갈까요?”
드윌란이 이런 말을 하는 건 미궁으로 들어서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건 처음이었다. 반실신 상태까지 굴리다가 등에 업고 갔었는데 드윌란이 앞서 짐가방을 매고는 서둘러 승강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나단과 김지원이 그의 옆을 따라간다.
“제나단 달릴 수 있나요?”
다리를 툭툭 털은 제나단은 문제없다는 듯 대답했다.
“네.”
“그럼 뛰죠.”
“오늘은 일찍 돌아가네요?”
드윌란이 손목에 있는 나침반을 확인했다.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이상해 전부터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전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고블린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확실히 전문가는 다방면으로 시야가 넓다는 것을 다시금 체감한다.
“곧 3계층의 보스가 부활한다는 징조거든요.”
드윌란이 말을 뗀 그때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시스템 알람음이 미친 듯이 뇌를 울렸다.
퀘스트로 시야가 도배된다. 순식간에 화면을 퀘스트 창으로 가득 채웠다.
김지원이 놀랄 잠시. 더 놀랄 일이 벌어졌다.
-콰과광!!
저 멀리서 칠흑 빛줄기가 천장을 향해 뻗어나갔다. 처음 보는 진귀한 광경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3계층 보스의 등장이다.
-쏴아아!!
거대하고도 오싹한 기운이 순식간에 우리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응축된 거대한 살기, 온몸이 찌릿찌릿한 느낌이다. 움직임이 억제당했다.
김지원의 숨이 텁 막힌다. 움직이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목에 손을 올리며 가까스로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허어억! 무, 뭐야···!”
제나단은 공포에 굳어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고통스럽고 매우 불편해 보였다. 김지원이 떨리는 손으로 제나단의 어깨를 잡아, 공포에서 깨어나라고 마구 흔들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상황 이해가 불가능했다. 뇌 속 회로가 꼬여버렸다. 그러던 와중 정신을 바짝 차려야 산다는 생각만 뇌에 번뜩인다.
“정신 차려··· 제나단···!”
드윌란이 무덤덤한 얼굴로 몸을 빛줄기가 뿜어지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늦었어요.”
퀘스트 창이 눈에 들어왔다.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보스 고블린 킹을 처치하세요.
0/1
보상:유일한 원소의 검술 재능 선택권
*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미궁의 (부) 고블린 샤면을 처치하세요.
0/1
보상:천재적인 재능 선택권
*
[돌발 퀘스트! (반복) ]
강화된 고블린 3마리를 처치하세요.
0/3
보상:뛰어난 재능 선택권
[살기에 가까스로 저항합니다. new!]
[행운 재능이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됩니다. new!]
난생처음 보는 퀘스트의 행렬이었다. 보스가 부활한 것이 맞나 보다.
퀘스트가 많다는 것에 기쁜 마음은 없다. 되려 자신에게 의문을 던진다.
-쿠구구구구
이거 살아서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키에에엑!!”
“키익!”
“키륵!”
고블린 10마리가 붉게 광란한 눈으로 미친 듯이 돌격했다. 움직임에 광기가 묻어났다. 기존에 알던 고블린들과는 엄연히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드윌란의 검이 드리워진다.
“펠렌 군. 제나단을 부탁합니다. 가능한 상대하지 마세요. 무조건 도망치는 겁니다.”
잔잔히 차분한 어조. 드윌란은 처음으로 검을 꺼내며 진지한 얼굴을 했다. 곧 땅을 박차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김지원은 제나단의 손을 잡아끌고는 드윌란을 등지고 승강기 쪽으로 달린다.
등 뒤로 무참한 참격 소리가 들린다. 저것이 정령 검에서 날 수 있는 소리인지 당황스럽다. 드윌란이 진심을 발휘했다.
싸우면서 지켜줄 수 없으니 어떻게든 도망쳐서 살라는 거다.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그는 전멸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성적이면서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닌 판단을 내렸다.
우리가 도망칠 수 있도록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는 것.
“제나단 달려!”
“아··· 아··· 네···.”
눈동자가 풀려있다. 반쯤 정신이 나가 보였다. 저 멀리 콩알보다 작은 승강기가 보였다.
“키에엑!”
고블린이 사각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치잇!”
김지원은 거의 반자동적으로 검집에서 검을 반 꺼냈다. 고블린의 몽둥이가 검 면에 막힌다.
-빠악! 치이익!
힘이 어찌나 센지 몸 전체가 뒤로 밀렸다. 손바닥이 얼얼하다.
“크윽···!”
검을 완전히 뽑으며 동시에 몽둥이를 떨쳐냈다.
고블린 놈은 뒤로 빠졌고 김지원은 다른 고블린이 오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리라 다짐하며 중심을 앞으로 잡았다.
온 힘을 다한다. 땅을 박차며 사정거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검을 일직선으로 내지른다.
손가락 끝에 전율이 일어난다. 죽였다고 확신할 때 나타나는 전율이었다. 그때다.
-훙!!
“···!!”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몽둥이가 왼쪽 아래 늑골에 때려 박혔다. 분명 먼저 공격한 것은 나인데 놈의 공격이 훨씬 빨랐다.
몸이 옆으로 밀린다.
“끄으윽!”
괜찮다. 버틸 수 있다. 김지원은 마지막까지 검에 힘을 풀지 않았다. 뼈를 주고 놈의 목숨을 취한다.
-푸욱!
검 끝이 놈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놈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얼마 안 가 쓰러졌다.
강화된 고블린을 쓰러뜨리세요.
1/3
“존나 아프네···시발.”
“아···아···.”
김지원은 아픈 부위에 손을 올렸다. 고개를 뒤로 돌리며 정신 못 차리는 제나단의 뺨을 손바닥으로 그 무엇보다 세게 후려갈겼다.
-짜악!
“정신 차려 머저리 새끼야. 너 여기서 죽고 싶어? 너 그러고 있으면 진짜 죽어.”
“아, 아파···.”
정신을 못 차렸다. 눈이 풀려있으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다. 그러면 정신을 차릴 때까지 때리면 되는 것이다. 고통으로 살기를 억제 시킨다. 같이 지내 온 정이 있다. 이놈은 무조건 살려서 데려나갈 것이다.
-짜악! 짜악! 짜악!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어깨의 회전과 관성을 이용해 그 무엇보다 맵게 때렸다.
제나단의 볼이 점점 빨개질 차였다. 곧 정신을 차린 제나단이 눈물을 찔끔 흘리며 양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으윽··· 그, 그만 때려요! 정신 차렸어요!”
“정신 차렸냐?”
김지원은 손을 거두고 고통을 무시한 채 달렸다.
적응의 재능은 고통마저도 적응시킬 수 있었다.
그랬기에 버틸 만했다. 어쩌면 천재적인 행운 재능은 여기까지 바라보고 내게 이걸 준 걸까.
“가자.”
그때다. 제나단에게 시간을 너무 오래 소비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고블린 3명이 인간 냄새를 맡고 따라잡았다.
-띠링
[제나단이 당신을 100% 신뢰합니다. 따라서 제나단을 파티원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파티원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파티 시스템이 떴다. 잔뜩 놀란 표정으로 리액션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당장 제나단을 파티에 추가했다.
-띠링
[제나단 프로리젠]
상태:양호
생각:고블린을 막아야 한다.
[남은 파티 자리는 3자리입니다.]
제나단을 파티원으로 등록하자 제나단의 움직임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3명의 고블린 중 가장 덩치가 큰 고블린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제나단은 3계층에 완벽히 적응한 상태가 아니었다. 예상컨데 고블린의 공격은 막을 것이 못 된다. 그러니 거들어주자.
김지원은 생각하는 대로 검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전부 기본기가 극한에 도달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제나단의 검과 김지원의 검이 눈앞 덩치 큰 고블린의 몽둥이를 막아냈고 거대한 소음과 함께 크게 밀려났다.
“크윽···.”
“으윽···.”
검을 바로 잡았다.
“덩치 큰 놈만 무슨 수를 쓰든 붙잡아 놔. 할 수 있지?”
“펠렌은요?”
검을 바로 잡고 앞으로 치고 나갈 준비 한다.
“나머지 2명을 상대할게.”
단조로운 계획이 곧장 실행으로 옮겨졌다. 계획은 틀만 갖추고 살은 지금껏 쌓아온 경험과 실력으로 채워나간다.
-타악!
김지원이 앞으로 돌격하고 제나단은 뒤로 빠지며 덩치 큰 놈의 시선을 끌었다.
김지원은 놈의 공격을 방어한다는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흘려내는 것이다. 흘려낼 수 없다면 피한다.
두 명의 고블린은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키가 작아서 검을 휘둘러도 복부 살짝 위까지 밖에 닿지 않았다.
늑골을 공략하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수다.
머리로 공격한다면 할 수 있지만 고블린도 지능이 있기에 알 것이다. 힘이 제대로 실릴 리도 없을뿐더러 그걸 맞아줄 상대는 더더욱 없다는 것을.
김지원이 높게 뛰며 고블린의 빠른 공격을 피해냈다. 매서운 바람 소리가 들린다. 맞았다면 분명 뼈도 못 추리고 그 자리에서 고통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휘리릭! 써억!
공중에서 회전력을 일삼아 검격을 휘두른다. 가히 예술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고블린 한 놈의 머리가 두 짝으로 갈라졌고 나머지 한 놈이 움츠린다.
놈의 기본 능력치는 김지원 이상일지언정 신체적인 고점과 놈의 공격을 예상한다면 기본 능력치의 격차를 좁힐 수 있었다.
틈을 주지 않았다. 공격에서 공격으로 검이 이어진다면 고블린에게는 다음 공격을 예측하여 한 템포 빠르게 움직임을 묶어둘 센스가 필요해진다.
물론 고블린한테 그런 센스가 있을 리 없다. 이것이 공략법이다.
3계층에서는 5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색의 재능으로 고블린의 행동 패턴이나 심리 등을 계속해서 분석하고 뇌에 저장했다.
심리를 꿰뚫자. 지금 타이밍에 놈은 공격의 굴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몽둥이를 휘두른다.
바로 지금.
-후웅!
김지원은 상체를 숙임과 동시에 몽둥이를 피해내며 다리로 바닥을 빗자루 쓸 듯 놈의 양 다리를 전부 재꼈다.
놈의 다리가 지면에서 떨어지고 전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키렉!?”
곧바로 바닥에 쓰러진 놈의 미간에 검이 꽂힌다.
-띠링
[돌발 퀘스트! (반복) ]
강화된 고블린 3마리를 처치하세요.
3/3
보상:뛰어난 재능 선택권
고민할 것도 없다 곧바로 재능을 선택한다. 행운치가 없어 원하는 재능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시야에 색이 빠지고 시간이 멈췄다.
저 멀리 몽둥이를 피하지 못해 막아낸 제나단이 보였다. 당연하지만 거대한 덩치에서 우러나오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나단은 공중에서 뜬 상태로 멀리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장 구해줘야 한다.
-촤라락
카드 3개가 앞면을 보인다.
장기를 꿰뚫고 들어간 검에는 둔중한 감각이 느껴졌다. 단말마와 함께 고블린이 쓰러진다.
김지원은 인상을 찌푸리고 검을 거두며 당장 수건으로 보라색 피를 닦아냈다.
2일 정도 지난 시점. 3계층 고블린 처치 임무를 하라는 소리에 몸이 굳었다.
나보고 고블린을 죽이라는 소리다. 미궁에 들어왔으니 그 정도는 각오한 일이었으니. 그래도 무리였다. 쥐새끼도 제대로 못 잡는 나한테 그건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래서 항의해보았으나 돌아오는 말은 ‘쫄인가요?’ 였다.
김지원은 고블린을 잡았다. 정확히는 날카로운 검으로 뱃가죽을 뚫고 장기를 쑤시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의 목을 절단했다.
한 번, 두 번.
어떨 때는 장기가 배 밖으로 튀어나오고 쓰러지는 제 몸에 짓눌려 터졌다. 김지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구토를 쏟아냈다. 제나단과 같이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말이다.
지금은 꽤 괜찮아진 편이다. 처음에는 속이 울렁거려 분 단위로 토를 해댔다. 지금은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치이익
다행인 점은 미궁 몬스터들이 죽은 이후 정확히 1분 후 시체부터 피까지 해서 완벽하게 기화되어 소멸한다는 것이었다. 시체를 정리하거나 검에 묻은 피를 닦을 수고를 덜었다. 생명체라는 느낌이 조금 건조해졌다.
“상체를 낮춰서 검에 최대한 보호될 수 있도록 하세요. 검날과 힘의 전달 방향이 어긋납니다.”
제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다.
드윌란의 고개가 빠르게 풀숲을 향했다. 고블린 무리가 불쑥 튀어나와 몽둥이를 휘두른다.
김지원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고 아직 완벽히 3계층에 적응 못 한 제나단은 피할 수 없어 검으로 몽둥이를 막아냈다.
-콰각!
검날이 몽둥이를 파고들었다. 단단히 고정되어 아무 힘을 줘도 검이 빠지지 않는다. 검 면으로 막아내지 못한 제나단의 실책이었다. 곧바로 무기를 잃은 초짜는 당황했다.
다른 고블린이 제나단의 빈 사각을 노렸다.
보다 못한 드윌란이 손날을 새우며 순식간에 풍음과 함께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서걱! 서걱!
1초 조금 지났을까 고블린의 머리가 하늘 위로 날고 목에 깔끔한 절단면이 보였다.
-털썩
고블린들이 쓰러지고 연기를 내뿜었다.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다음부터는 검 면으로 막으세요. 방금은 확실하게 죽는 상황이었습니다.”
제나단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지원이 손을 건넸다.
“괜찮냐?”
“아··· 네. 힘 풀린 거예요.”
이곳으로 오며 제나단과 김지원은 형제라 칭해도 될 정도로 좋은 우정을 쌓았다. 드윌란이 전투에 개입하는 건 방금처럼 죽음을 눈앞에 둔 체크메이트뿐이다.
팔이나 다리가 잘려나 갈 상황에도 드윌란은 발을 떼지 않았다. 그랬기에 서로에게 등을 맞대고 의지하는 것이 몸을 간수 할 길이었다. 서로 믿고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줬다.
조금씩이지만 둘은 이곳 환경에 점점 적응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드윌란이 이쪽을 보다. 말없이 우중충한 천장을 올려다봤다.
“오늘은 조금 위험한 날이었네요···.”
혼잣말인 듯 목소리가 작아 김지원의 귀에 닿지 않았다.
“네? 방금 뭐라 말했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이쯤하고 돌아갈까요?”
드윌란이 이런 말을 하는 건 미궁으로 들어서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건 처음이었다. 반실신 상태까지 굴리다가 등에 업고 갔었는데 드윌란이 앞서 짐가방을 매고는 서둘러 승강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나단과 김지원이 그의 옆을 따라간다.
“제나단 달릴 수 있나요?”
다리를 툭툭 털은 제나단은 문제없다는 듯 대답했다.
“네.”
“그럼 뛰죠.”
“오늘은 일찍 돌아가네요?”
드윌란이 손목에 있는 나침반을 확인했다.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이상해 전부터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전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고블린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확실히 전문가는 다방면으로 시야가 넓다는 것을 다시금 체감한다.
“곧 3계층의 보스가 부활한다는 징조거든요.”
드윌란이 말을 뗀 그때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시스템 알람음이 미친 듯이 뇌를 울렸다.
퀘스트로 시야가 도배된다. 순식간에 화면을 퀘스트 창으로 가득 채웠다.
김지원이 놀랄 잠시. 더 놀랄 일이 벌어졌다.
-콰과광!!
저 멀리서 칠흑 빛줄기가 천장을 향해 뻗어나갔다. 처음 보는 진귀한 광경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3계층 보스의 등장이다.
-쏴아아!!
거대하고도 오싹한 기운이 순식간에 우리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응축된 거대한 살기, 온몸이 찌릿찌릿한 느낌이다. 움직임이 억제당했다.
김지원의 숨이 텁 막힌다. 움직이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목에 손을 올리며 가까스로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허어억! 무, 뭐야···!”
제나단은 공포에 굳어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고통스럽고 매우 불편해 보였다. 김지원이 떨리는 손으로 제나단의 어깨를 잡아, 공포에서 깨어나라고 마구 흔들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상황 이해가 불가능했다. 뇌 속 회로가 꼬여버렸다. 그러던 와중 정신을 바짝 차려야 산다는 생각만 뇌에 번뜩인다.
“정신 차려··· 제나단···!”
드윌란이 무덤덤한 얼굴로 몸을 빛줄기가 뿜어지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늦었어요.”
퀘스트 창이 눈에 들어왔다.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보스 고블린 킹을 처치하세요.
0/1
보상:유일한 원소의 검술 재능 선택권
*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미궁의 (부) 고블린 샤면을 처치하세요.
0/1
보상:천재적인 재능 선택권
*
[돌발 퀘스트! (반복) ]
강화된 고블린 3마리를 처치하세요.
0/3
보상:뛰어난 재능 선택권
[살기에 가까스로 저항합니다. new!]
[행운 재능이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됩니다. new!]
난생처음 보는 퀘스트의 행렬이었다. 보스가 부활한 것이 맞나 보다.
퀘스트가 많다는 것에 기쁜 마음은 없다. 되려 자신에게 의문을 던진다.
-쿠구구구구
이거 살아서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키에에엑!!”
“키익!”
“키륵!”
고블린 10마리가 붉게 광란한 눈으로 미친 듯이 돌격했다. 움직임에 광기가 묻어났다. 기존에 알던 고블린들과는 엄연히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드윌란의 검이 드리워진다.
“펠렌 군. 제나단을 부탁합니다. 가능한 상대하지 마세요. 무조건 도망치는 겁니다.”
잔잔히 차분한 어조. 드윌란은 처음으로 검을 꺼내며 진지한 얼굴을 했다. 곧 땅을 박차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김지원은 제나단의 손을 잡아끌고는 드윌란을 등지고 승강기 쪽으로 달린다.
등 뒤로 무참한 참격 소리가 들린다. 저것이 정령 검에서 날 수 있는 소리인지 당황스럽다. 드윌란이 진심을 발휘했다.
싸우면서 지켜줄 수 없으니 어떻게든 도망쳐서 살라는 거다.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그는 전멸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성적이면서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닌 판단을 내렸다.
우리가 도망칠 수 있도록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는 것.
“제나단 달려!”
“아··· 아··· 네···.”
눈동자가 풀려있다. 반쯤 정신이 나가 보였다. 저 멀리 콩알보다 작은 승강기가 보였다.
“키에엑!”
고블린이 사각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치잇!”
김지원은 거의 반자동적으로 검집에서 검을 반 꺼냈다. 고블린의 몽둥이가 검 면에 막힌다.
-빠악! 치이익!
힘이 어찌나 센지 몸 전체가 뒤로 밀렸다. 손바닥이 얼얼하다.
“크윽···!”
검을 완전히 뽑으며 동시에 몽둥이를 떨쳐냈다.
고블린 놈은 뒤로 빠졌고 김지원은 다른 고블린이 오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리라 다짐하며 중심을 앞으로 잡았다.
온 힘을 다한다. 땅을 박차며 사정거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검을 일직선으로 내지른다.
손가락 끝에 전율이 일어난다. 죽였다고 확신할 때 나타나는 전율이었다. 그때다.
-훙!!
“···!!”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몽둥이가 왼쪽 아래 늑골에 때려 박혔다. 분명 먼저 공격한 것은 나인데 놈의 공격이 훨씬 빨랐다.
몸이 옆으로 밀린다.
“끄으윽!”
괜찮다. 버틸 수 있다. 김지원은 마지막까지 검에 힘을 풀지 않았다. 뼈를 주고 놈의 목숨을 취한다.
-푸욱!
검 끝이 놈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놈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얼마 안 가 쓰러졌다.
강화된 고블린을 쓰러뜨리세요.
1/3
“존나 아프네···시발.”
“아···아···.”
김지원은 아픈 부위에 손을 올렸다. 고개를 뒤로 돌리며 정신 못 차리는 제나단의 뺨을 손바닥으로 그 무엇보다 세게 후려갈겼다.
-짜악!
“정신 차려 머저리 새끼야. 너 여기서 죽고 싶어? 너 그러고 있으면 진짜 죽어.”
“아, 아파···.”
정신을 못 차렸다. 눈이 풀려있으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다. 그러면 정신을 차릴 때까지 때리면 되는 것이다. 고통으로 살기를 억제 시킨다. 같이 지내 온 정이 있다. 이놈은 무조건 살려서 데려나갈 것이다.
-짜악! 짜악! 짜악!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어깨의 회전과 관성을 이용해 그 무엇보다 맵게 때렸다.
제나단의 볼이 점점 빨개질 차였다. 곧 정신을 차린 제나단이 눈물을 찔끔 흘리며 양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으윽··· 그, 그만 때려요! 정신 차렸어요!”
“정신 차렸냐?”
김지원은 손을 거두고 고통을 무시한 채 달렸다.
적응의 재능은 고통마저도 적응시킬 수 있었다.
그랬기에 버틸 만했다. 어쩌면 천재적인 행운 재능은 여기까지 바라보고 내게 이걸 준 걸까.
“가자.”
그때다. 제나단에게 시간을 너무 오래 소비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고블린 3명이 인간 냄새를 맡고 따라잡았다.
-띠링
[제나단이 당신을 100% 신뢰합니다. 따라서 제나단을 파티원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파티원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파티 시스템이 떴다. 잔뜩 놀란 표정으로 리액션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당장 제나단을 파티에 추가했다.
-띠링
[제나단 프로리젠]
상태:양호
생각:고블린을 막아야 한다.
[남은 파티 자리는 3자리입니다.]
제나단을 파티원으로 등록하자 제나단의 움직임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3명의 고블린 중 가장 덩치가 큰 고블린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제나단은 3계층에 완벽히 적응한 상태가 아니었다. 예상컨데 고블린의 공격은 막을 것이 못 된다. 그러니 거들어주자.
김지원은 생각하는 대로 검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전부 기본기가 극한에 도달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제나단의 검과 김지원의 검이 눈앞 덩치 큰 고블린의 몽둥이를 막아냈고 거대한 소음과 함께 크게 밀려났다.
“크윽···.”
“으윽···.”
검을 바로 잡았다.
“덩치 큰 놈만 무슨 수를 쓰든 붙잡아 놔. 할 수 있지?”
“펠렌은요?”
검을 바로 잡고 앞으로 치고 나갈 준비 한다.
“나머지 2명을 상대할게.”
단조로운 계획이 곧장 실행으로 옮겨졌다. 계획은 틀만 갖추고 살은 지금껏 쌓아온 경험과 실력으로 채워나간다.
-타악!
김지원이 앞으로 돌격하고 제나단은 뒤로 빠지며 덩치 큰 놈의 시선을 끌었다.
김지원은 놈의 공격을 방어한다는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흘려내는 것이다. 흘려낼 수 없다면 피한다.
두 명의 고블린은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키가 작아서 검을 휘둘러도 복부 살짝 위까지 밖에 닿지 않았다.
늑골을 공략하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수다.
머리로 공격한다면 할 수 있지만 고블린도 지능이 있기에 알 것이다. 힘이 제대로 실릴 리도 없을뿐더러 그걸 맞아줄 상대는 더더욱 없다는 것을.
김지원이 높게 뛰며 고블린의 빠른 공격을 피해냈다. 매서운 바람 소리가 들린다. 맞았다면 분명 뼈도 못 추리고 그 자리에서 고통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휘리릭! 써억!
공중에서 회전력을 일삼아 검격을 휘두른다. 가히 예술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고블린 한 놈의 머리가 두 짝으로 갈라졌고 나머지 한 놈이 움츠린다.
놈의 기본 능력치는 김지원 이상일지언정 신체적인 고점과 놈의 공격을 예상한다면 기본 능력치의 격차를 좁힐 수 있었다.
틈을 주지 않았다. 공격에서 공격으로 검이 이어진다면 고블린에게는 다음 공격을 예측하여 한 템포 빠르게 움직임을 묶어둘 센스가 필요해진다.
물론 고블린한테 그런 센스가 있을 리 없다. 이것이 공략법이다.
3계층에서는 5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색의 재능으로 고블린의 행동 패턴이나 심리 등을 계속해서 분석하고 뇌에 저장했다.
심리를 꿰뚫자. 지금 타이밍에 놈은 공격의 굴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몽둥이를 휘두른다.
바로 지금.
-후웅!
김지원은 상체를 숙임과 동시에 몽둥이를 피해내며 다리로 바닥을 빗자루 쓸 듯 놈의 양 다리를 전부 재꼈다.
놈의 다리가 지면에서 떨어지고 전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키렉!?”
곧바로 바닥에 쓰러진 놈의 미간에 검이 꽂힌다.
-띠링
[돌발 퀘스트! (반복) ]
강화된 고블린 3마리를 처치하세요.
3/3
보상:뛰어난 재능 선택권
고민할 것도 없다 곧바로 재능을 선택한다. 행운치가 없어 원하는 재능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시야에 색이 빠지고 시간이 멈췄다.
저 멀리 몽둥이를 피하지 못해 막아낸 제나단이 보였다. 당연하지만 거대한 덩치에서 우러나오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나단은 공중에서 뜬 상태로 멀리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장 구해줘야 한다.
-촤라락
카드 3개가 앞면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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