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조회 : 984 추천 : 0 글자수 : 4,888 자 2022-09-23
“허억…!”
발작하듯 상체를 일으켰다. 몸의 반을 덮은 이불을 걷자.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물속에서 질식사할 뻔했다.
본능적으로 부족한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숨은 안정적이었다. 방금까지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후우….”
김지원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차분히 주위를 둘러봤다. 기억이 흐릿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 살았구나.’
작은 방안이다. 옆 화분에는 이름 모를 꽃이 꽂혀 있고 책장이나 그 옆에 책상도 보였다.
“같이 가!”
아이의 목소리, 창문 밖으로 뛰놀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뒤늦게 시선을 돌리니 아무 걱정 없이 공놀이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저 모습을 보니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잔뜩 긴장한 몸이 녹아내릴 듯했고 정신이 풀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다.
하지만 와중에도 뭔가를 잊고 있다는 생각만 계속되었다.
뭔가가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피를 토하고 있는 제나단이었다. 갑작스럽게 3계층 보스가 출몰하더니 고블린 놈들이 들이닥치고 당황하던 차 생사를 넘나들며 진심을 다해 싸웠다.
‘제나단은 무사할까?’
그 순간이었다.
뻣뻣하게 굳어있던 하체로 땅을 박찼다. 문을 열자 경첩이 뜯어져 나갈 듯 굉음을 내지른다.
-철컹!!
당황한 기색이 표정에 묻어났다. 주위 형색 보아 아카데미 내부 병원으로 보였다.
걷고 있는 간호사의 앞을 순식간에 가로막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제나단 프로이젠이 어느 병실에 있는지 아시나요!?”
“까, 깜짝이야!”
간호사는 살짝 당황한 듯 보였으나 곧바로 손가락으로 김지원의 뒤를 가리켰다.
“302호 병실입니다!”
“감사합니다!”
-철컥
문이 열리고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제나단을 볼 수 있었다. 어째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어째 상처가 많아 보였다. 머리, 다리, 팔, 늑골, 가슴.
눈앞에는 익숙한 갈색 귀두 컷 머리에 찢어진 눈을 한 드윌란이 보였다.
“교수님?”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고개는 아래를 향하고 있고 허리도 굽어서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를 보고는 싱긋 웃었다.
“펠렌 군 왔나요…?”
미소를 지어봤지만, 기운이 없는 건 변하지 않았다. 김지원은 무표정하게 교수를 보고서는 의자를 끌고 드윌란의 옆자리에 앉았다.
“상태는 어때요?”
“심각해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곤 하나 앞으로 깨어날지도 의문이고 그것보다 살기에 중독됐어요.”
착잡한 마음이다. 악연으로 시작한 놈이지만 동고동락하며 생사를 함께하니 좋은 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 제나단이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은 굉장히 안타까웠다.
“그런가요.”
“죄송해요… 정말로….”
드윌란이 고개를 숙이며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눈물을 보였다. 바닥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퍼졌다.
“…….”
김지원은 말이 없었다. 왜 우리를 저딴 지옥으로 이끌었냐고 욕이란 욕은 전부 박으며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죄를 추궁하며 더욱 몰아붙이는 것이 맞을까. 김지원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짜증 났다. 이 억울함을 풀 존재가 방금 막 사라졌으니.
“어휴….”
검이나 휘둘러야지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미안해요. 펠렌군.”
“미안하면 쳐다도 보지 마세요. 여기서 제나단이 깨어날 때까지 자숙하라는 소리예요.”
차갑게 말하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아카데미 측에는 재활과 심신 안정 차원에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해두겠습니다….”
김지원은 단조롭고 성의 없게 대답했다.
“네.”
-철컥
김지원은 곧장 연무장으로 향했고 무작정 목검을 잡아, 휘둘렀다. 그런데 아무리 휘둘러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암만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 모험학 검술로 교수가 된 거면 기본적으로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생사를 넘나든 사람이어야 했다. 평범함과는 한 차원 거리감 있다는 가진 건 알겠다.
“그런데 왜 3계층 보스의 등장 타이밍을 헷갈린 거냐고 병신 머저리 새끼도 아니고.”
-까득
미궁에 대해 빠삭해 보였더니 순 미친놈이었던 건가? 이거 일부로 그런 거 아니야?
-후웅!
검에 힘이 들어가니 검격이 매섭게 바람을 갈랐다. 목검은 너무 가벼웠다. 당장 묵직한 철검을 뽑아 들고는 미친 듯이 휘둘렀다.
“돌겠네 진짜.”
몸이 근질거려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연무장을 전속력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5분, 10분, 20분.
그제서야 지쳐 바닥에 쓰러질 수 있었다.
드윌란에 대한 분노가 조금은 식은 듯했다.
김지원은 괜스레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제나단 프로리젠]
상태:위독
생각:……
[드윌란]
상태:우울
생각:저는 어리석었습니다.
전에 없던 파티 자리에 드윌란이 채워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절하기 전에 드윌란의 파티 승낙 문구가 있었던 것 같다. 뭔가 이상하다.
김지원은 재빨리 시스템을 열어 안내창을 확인했다.
-띠링
《시스템 안내창》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보스 고블린 킹을 처치하세요.
1/1
보상:유일한 원소의 검술 재능 선택권
*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미궁의 (부) 고블린 사면을 처치하세요.
1/1
보상:천재적인 재능 선택권
*
[돌발 퀘스트! (반복) ]
강화된 고블린 3마리를 처치하세요.
48/3
보상:뛰어난 재능 선택권
*
[시간이 지나도 응답 없을 시에는 자동으로 드윌란을 파티에 추가합니다]
[드윌란이 파티에 추가되었습니다]
[파티원은 퀘스트 진척도에 영향을 줍니다]
[드윌란이 3계층 보스 고블린 킹을 처치했습니다]
[드윌란이 (부) 보스 고블린 샤먼을 처치했습니다]
[드윌란이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드윌란이 고블린을 처치……
.
.
.
드윌란이 파티에 추가되었다는 내용이 가장 오래된 내용이었다. 이후로는 아무리 내려봐더 고블린을 처치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드윌란이 파티에 추가되고 이후의 드윌란이 죽인 고블린은 전부 퀘스트에 영향을 준 것이었다.
내가 잠결에 3계층 보스와 (부) 보스를 죽이고 고블린을 48마리나 죽였다는 건 설명이 안 된다.
이상한 기분이다. 이 퀘스트들의 보상을 전부 수령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김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퀘스트 모두 받기를 누르려다. 간신히 진정하고 손을 거뒀다.
방금까지 드윌란을 욕해놓고는 보상을 꿀꺽하기에는 내 일관성과 양심이 용납 못했다.
일단 내버려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필요 이상으로 강해지고 싶지 않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낄 때는 무작정 나가는 것이 아닌, 신중을 요하라고 코인 방송에서 배운 적도 있지 않은가.
내 궁극적인 목적을 잊지 말자. 이곳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다. 일단 검술도 배우고 마법도 배우면서 말이다.
간단하게 몸도 풀었으니 기숙사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였다. 누군가가 급하게 날 보고는 멈춰 섰다.
“어 ?어?! 펠렌 크라운 맞으신가요?”
주머니에 꾸깃꾸깃 구겨둔 종이를 펴서는 다짜고짜 사진에 있는 나와 지금의 나와 인상착의를 시작했다.
“같은 사람…인 것같기는 한데….”
“저기, 무슨 일 있나요?”
“아! 곧 등급 심사 시작인데 병원에 없으셔서 찾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등급 심사?
“분명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있어서 참여가 불가하다고 아카데미에 전달됐을 텐데요?”
“아, 병원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급하게 만나러 온 겁니다. 기권할 건지. 아니면 곧바로 등급 심사에 참여할 건지 확인차 물어보러 온 겁니다.”
“음…….”
김지원은 고민했다. 한 달 동안 미궁에 처박혀서 거의 매일 죽다시피 신체를 단련하고 검술을 연마했다. 저번 입학시험에서 가문에게 ㅈ밥 연기를 한답시고 기권했었다. 그런데 이번 등급 심사를 포기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아무리 그래도 냄새나고 밤꽃 향기가 피어오르는 D구역는 가기 싫었으니까.
펠렌 크라운의 고민하는 얼굴에 모자를 벗어 부채질하며 말했다.
“형식상 하는 말이니 기권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미궁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1주일이나 있으셨는데. 바로 뛰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고요.”
“아뇨 등급 심사할게요.”
“그럼 기권으로…… 네?”
* * *
등급 심사 시험장. 수많은 관중들이 앞날을 밝힐 재능있는 소녀 소년들의 대련을 보러 이곳 시험장 관중석을 가득 채웠다.
마법이 장렬하고 화려한 검술로 상대가 쓰러졌다.
마력 확성기로 빵빵하게 소리가 관중석 전체를 휩쓸었다.
“승자는! 페르난 가문의 레일라! 다음 라운드로 진출합니다! 올해 첫 S구역으로 갈 학생이 드디어 나온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
관객들이 레일라를 소리치며 환호했다. 교수석도 술렁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7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강함.
상대가 페르난 가문의 오랜 호적수인 태양 가문인 만큼 모두가 승패를 단정할 수 없었다.
상대의 실력도 분명 만만치 않았다만 이번에 새로이 등장한 초신성 레일라는 규격 외였다. 너무나도 손쉽게 태양 가문의 장남인 데르민을 박살 냈다. 이로써 태양 가문과 페르난 가문의 갑론을박이 종결되고 페르난 가문이 태양 가문의 위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페르난 가문의 가주, 그란돈이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잘했다 딸아!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으하하!!”
옆에서 페르난 가문의 일원이 거들었다.
“이로써 페르난 가문의 위세가 한층 올라가겠군요!”
“레일라님은 정말 대단합니다! 흠잡을 때 없는 완벽한 수신류 검술이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옆에서 쥐 죽은 듯 듣고 있던 헤밀프로닌 크라운은 조용히 듯 펠렌 크라운의 차례를 기다렸다.
못해도 상관없다. 그러니 제발 포기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못난 아비를 용서해줬으면 했다.
아이가 삐뚤어진 건 전부 나의 탓이니까. 내가 바로 잡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부탁이었다.
밤새가며 업무를 모두 끝내고 크라운 가문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나와 홀로 마차를 타고 1주 일하고도 4일을 달렸다.
“곧이어 크라운 가문의 펠렌! 그리고 게이트 가문의 세리니아의 시험이 있겠습니다!”
곧이어 펠렌 크라운의 경기가 시작되고 펠렌 크라운이 뒤늦게 달려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몰골이 이상했다. 머리는 잔뜩 엉겨 붙어 있고 표정도 점잖아 보였다.
헤밀프로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펠렌…!”
그래 분명 저렇게 생겼었다. 자신을 닮은 검은 머리카락에 태양 같은 눈동자.
1년 사이에 키가 무지막지하게 크고 자신감 있는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못 알아볼 뻔했다.
헤밀프로닌은 만족했다. 펠렌의 눈동자에는 전에 보였던 침울함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게이트 가문의 자제라면 검술에 엄청난 소질이 있는 것으로 귀족들 내에서 자자했다.
“분명 세리니아님이 이길 겁니다. 검술의 뛰어난 소질이 있는 걸로 자자하지 않습니까? 반면에 크라운 가문의 펠렌은 가문 내에서도 썩 좋지 못한 취급을 받고 자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승패야 뻔하죠.”
-꽈악
오랜만에 얼굴을 봤다는 것. 그것에 만족하며 관중석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돌아가면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니.
“대련 시작!”
이후 대련이 시작되었고 모두가 게이트 세리니아의 승리를 예상했다.
-콰앙!!
거대한 굉음, 그리고 이어지는 단 한 번의 검격.
펠렌 크라운의 검격이었다.
-화아악!!
바람을 가르는 것이 아닌 바람을 이끌어가는 검이었다. 단 일격에 흙먼지가 휘몰아치고 세르니아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김지원은 당황했다.
“너무 약한데? 괜히 화풀이한 게 미안해지네.”
헤밀프로닌은 말없이 입을 떡 벌리며 그 자리에 굳었다. 당황한 해설자가 뒤늦게 마이크를 잡으며 말했다.
“스, 승자는 크라운 가문의 펠렌!”
““와, 와아아아!!””
“이, 이게 대체….”
헤르프로닌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고 레일라는 씨익 웃으며 다음 대련를 준비했다.
발작하듯 상체를 일으켰다. 몸의 반을 덮은 이불을 걷자.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물속에서 질식사할 뻔했다.
본능적으로 부족한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숨은 안정적이었다. 방금까지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후우….”
김지원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차분히 주위를 둘러봤다. 기억이 흐릿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 살았구나.’
작은 방안이다. 옆 화분에는 이름 모를 꽃이 꽂혀 있고 책장이나 그 옆에 책상도 보였다.
“같이 가!”
아이의 목소리, 창문 밖으로 뛰놀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뒤늦게 시선을 돌리니 아무 걱정 없이 공놀이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저 모습을 보니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잔뜩 긴장한 몸이 녹아내릴 듯했고 정신이 풀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다.
하지만 와중에도 뭔가를 잊고 있다는 생각만 계속되었다.
뭔가가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피를 토하고 있는 제나단이었다. 갑작스럽게 3계층 보스가 출몰하더니 고블린 놈들이 들이닥치고 당황하던 차 생사를 넘나들며 진심을 다해 싸웠다.
‘제나단은 무사할까?’
그 순간이었다.
뻣뻣하게 굳어있던 하체로 땅을 박찼다. 문을 열자 경첩이 뜯어져 나갈 듯 굉음을 내지른다.
-철컹!!
당황한 기색이 표정에 묻어났다. 주위 형색 보아 아카데미 내부 병원으로 보였다.
걷고 있는 간호사의 앞을 순식간에 가로막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제나단 프로이젠이 어느 병실에 있는지 아시나요!?”
“까, 깜짝이야!”
간호사는 살짝 당황한 듯 보였으나 곧바로 손가락으로 김지원의 뒤를 가리켰다.
“302호 병실입니다!”
“감사합니다!”
-철컥
문이 열리고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제나단을 볼 수 있었다. 어째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어째 상처가 많아 보였다. 머리, 다리, 팔, 늑골, 가슴.
눈앞에는 익숙한 갈색 귀두 컷 머리에 찢어진 눈을 한 드윌란이 보였다.
“교수님?”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고개는 아래를 향하고 있고 허리도 굽어서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를 보고는 싱긋 웃었다.
“펠렌 군 왔나요…?”
미소를 지어봤지만, 기운이 없는 건 변하지 않았다. 김지원은 무표정하게 교수를 보고서는 의자를 끌고 드윌란의 옆자리에 앉았다.
“상태는 어때요?”
“심각해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곤 하나 앞으로 깨어날지도 의문이고 그것보다 살기에 중독됐어요.”
착잡한 마음이다. 악연으로 시작한 놈이지만 동고동락하며 생사를 함께하니 좋은 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 제나단이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은 굉장히 안타까웠다.
“그런가요.”
“죄송해요… 정말로….”
드윌란이 고개를 숙이며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눈물을 보였다. 바닥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퍼졌다.
“…….”
김지원은 말이 없었다. 왜 우리를 저딴 지옥으로 이끌었냐고 욕이란 욕은 전부 박으며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죄를 추궁하며 더욱 몰아붙이는 것이 맞을까. 김지원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짜증 났다. 이 억울함을 풀 존재가 방금 막 사라졌으니.
“어휴….”
검이나 휘둘러야지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미안해요. 펠렌군.”
“미안하면 쳐다도 보지 마세요. 여기서 제나단이 깨어날 때까지 자숙하라는 소리예요.”
차갑게 말하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아카데미 측에는 재활과 심신 안정 차원에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해두겠습니다….”
김지원은 단조롭고 성의 없게 대답했다.
“네.”
-철컥
김지원은 곧장 연무장으로 향했고 무작정 목검을 잡아, 휘둘렀다. 그런데 아무리 휘둘러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암만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 모험학 검술로 교수가 된 거면 기본적으로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생사를 넘나든 사람이어야 했다. 평범함과는 한 차원 거리감 있다는 가진 건 알겠다.
“그런데 왜 3계층 보스의 등장 타이밍을 헷갈린 거냐고 병신 머저리 새끼도 아니고.”
-까득
미궁에 대해 빠삭해 보였더니 순 미친놈이었던 건가? 이거 일부로 그런 거 아니야?
-후웅!
검에 힘이 들어가니 검격이 매섭게 바람을 갈랐다. 목검은 너무 가벼웠다. 당장 묵직한 철검을 뽑아 들고는 미친 듯이 휘둘렀다.
“돌겠네 진짜.”
몸이 근질거려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연무장을 전속력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5분, 10분, 20분.
그제서야 지쳐 바닥에 쓰러질 수 있었다.
드윌란에 대한 분노가 조금은 식은 듯했다.
김지원은 괜스레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제나단 프로리젠]
상태:위독
생각:……
[드윌란]
상태:우울
생각:저는 어리석었습니다.
전에 없던 파티 자리에 드윌란이 채워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절하기 전에 드윌란의 파티 승낙 문구가 있었던 것 같다. 뭔가 이상하다.
김지원은 재빨리 시스템을 열어 안내창을 확인했다.
-띠링
《시스템 안내창》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보스 고블린 킹을 처치하세요.
1/1
보상:유일한 원소의 검술 재능 선택권
*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미궁의 (부) 고블린 사면을 처치하세요.
1/1
보상:천재적인 재능 선택권
*
[돌발 퀘스트! (반복) ]
강화된 고블린 3마리를 처치하세요.
48/3
보상:뛰어난 재능 선택권
*
[시간이 지나도 응답 없을 시에는 자동으로 드윌란을 파티에 추가합니다]
[드윌란이 파티에 추가되었습니다]
[파티원은 퀘스트 진척도에 영향을 줍니다]
[드윌란이 3계층 보스 고블린 킹을 처치했습니다]
[드윌란이 (부) 보스 고블린 샤먼을 처치했습니다]
[드윌란이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드윌란이 고블린을 처치……
.
.
.
드윌란이 파티에 추가되었다는 내용이 가장 오래된 내용이었다. 이후로는 아무리 내려봐더 고블린을 처치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드윌란이 파티에 추가되고 이후의 드윌란이 죽인 고블린은 전부 퀘스트에 영향을 준 것이었다.
내가 잠결에 3계층 보스와 (부) 보스를 죽이고 고블린을 48마리나 죽였다는 건 설명이 안 된다.
이상한 기분이다. 이 퀘스트들의 보상을 전부 수령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김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퀘스트 모두 받기를 누르려다. 간신히 진정하고 손을 거뒀다.
방금까지 드윌란을 욕해놓고는 보상을 꿀꺽하기에는 내 일관성과 양심이 용납 못했다.
일단 내버려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필요 이상으로 강해지고 싶지 않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낄 때는 무작정 나가는 것이 아닌, 신중을 요하라고 코인 방송에서 배운 적도 있지 않은가.
내 궁극적인 목적을 잊지 말자. 이곳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다. 일단 검술도 배우고 마법도 배우면서 말이다.
간단하게 몸도 풀었으니 기숙사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였다. 누군가가 급하게 날 보고는 멈춰 섰다.
“어 ?어?! 펠렌 크라운 맞으신가요?”
주머니에 꾸깃꾸깃 구겨둔 종이를 펴서는 다짜고짜 사진에 있는 나와 지금의 나와 인상착의를 시작했다.
“같은 사람…인 것같기는 한데….”
“저기, 무슨 일 있나요?”
“아! 곧 등급 심사 시작인데 병원에 없으셔서 찾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등급 심사?
“분명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있어서 참여가 불가하다고 아카데미에 전달됐을 텐데요?”
“아, 병원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급하게 만나러 온 겁니다. 기권할 건지. 아니면 곧바로 등급 심사에 참여할 건지 확인차 물어보러 온 겁니다.”
“음…….”
김지원은 고민했다. 한 달 동안 미궁에 처박혀서 거의 매일 죽다시피 신체를 단련하고 검술을 연마했다. 저번 입학시험에서 가문에게 ㅈ밥 연기를 한답시고 기권했었다. 그런데 이번 등급 심사를 포기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아무리 그래도 냄새나고 밤꽃 향기가 피어오르는 D구역는 가기 싫었으니까.
펠렌 크라운의 고민하는 얼굴에 모자를 벗어 부채질하며 말했다.
“형식상 하는 말이니 기권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미궁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1주일이나 있으셨는데. 바로 뛰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고요.”
“아뇨 등급 심사할게요.”
“그럼 기권으로…… 네?”
* * *
등급 심사 시험장. 수많은 관중들이 앞날을 밝힐 재능있는 소녀 소년들의 대련을 보러 이곳 시험장 관중석을 가득 채웠다.
마법이 장렬하고 화려한 검술로 상대가 쓰러졌다.
마력 확성기로 빵빵하게 소리가 관중석 전체를 휩쓸었다.
“승자는! 페르난 가문의 레일라! 다음 라운드로 진출합니다! 올해 첫 S구역으로 갈 학생이 드디어 나온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
관객들이 레일라를 소리치며 환호했다. 교수석도 술렁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7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강함.
상대가 페르난 가문의 오랜 호적수인 태양 가문인 만큼 모두가 승패를 단정할 수 없었다.
상대의 실력도 분명 만만치 않았다만 이번에 새로이 등장한 초신성 레일라는 규격 외였다. 너무나도 손쉽게 태양 가문의 장남인 데르민을 박살 냈다. 이로써 태양 가문과 페르난 가문의 갑론을박이 종결되고 페르난 가문이 태양 가문의 위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페르난 가문의 가주, 그란돈이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잘했다 딸아!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으하하!!”
옆에서 페르난 가문의 일원이 거들었다.
“이로써 페르난 가문의 위세가 한층 올라가겠군요!”
“레일라님은 정말 대단합니다! 흠잡을 때 없는 완벽한 수신류 검술이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옆에서 쥐 죽은 듯 듣고 있던 헤밀프로닌 크라운은 조용히 듯 펠렌 크라운의 차례를 기다렸다.
못해도 상관없다. 그러니 제발 포기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못난 아비를 용서해줬으면 했다.
아이가 삐뚤어진 건 전부 나의 탓이니까. 내가 바로 잡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부탁이었다.
밤새가며 업무를 모두 끝내고 크라운 가문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나와 홀로 마차를 타고 1주 일하고도 4일을 달렸다.
“곧이어 크라운 가문의 펠렌! 그리고 게이트 가문의 세리니아의 시험이 있겠습니다!”
곧이어 펠렌 크라운의 경기가 시작되고 펠렌 크라운이 뒤늦게 달려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몰골이 이상했다. 머리는 잔뜩 엉겨 붙어 있고 표정도 점잖아 보였다.
헤밀프로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펠렌…!”
그래 분명 저렇게 생겼었다. 자신을 닮은 검은 머리카락에 태양 같은 눈동자.
1년 사이에 키가 무지막지하게 크고 자신감 있는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못 알아볼 뻔했다.
헤밀프로닌은 만족했다. 펠렌의 눈동자에는 전에 보였던 침울함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게이트 가문의 자제라면 검술에 엄청난 소질이 있는 것으로 귀족들 내에서 자자했다.
“분명 세리니아님이 이길 겁니다. 검술의 뛰어난 소질이 있는 걸로 자자하지 않습니까? 반면에 크라운 가문의 펠렌은 가문 내에서도 썩 좋지 못한 취급을 받고 자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승패야 뻔하죠.”
-꽈악
오랜만에 얼굴을 봤다는 것. 그것에 만족하며 관중석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돌아가면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니.
“대련 시작!”
이후 대련이 시작되었고 모두가 게이트 세리니아의 승리를 예상했다.
-콰앙!!
거대한 굉음, 그리고 이어지는 단 한 번의 검격.
펠렌 크라운의 검격이었다.
-화아악!!
바람을 가르는 것이 아닌 바람을 이끌어가는 검이었다. 단 일격에 흙먼지가 휘몰아치고 세르니아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김지원은 당황했다.
“너무 약한데? 괜히 화풀이한 게 미안해지네.”
헤밀프로닌은 말없이 입을 떡 벌리며 그 자리에 굳었다. 당황한 해설자가 뒤늦게 마이크를 잡으며 말했다.
“스, 승자는 크라운 가문의 펠렌!”
““와, 와아아아!!””
“이, 이게 대체….”
헤르프로닌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고 레일라는 씨익 웃으며 다음 대련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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