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조회 : 1,053 추천 : 0 글자수 : 5,858 자 2022-09-27
-퍼억!
“뭐해! 더 굴러라! 오늘 안에 횟수 다 못 채우면 밥은 없다!”
“크으윽··· 네···.”
과거 크라운 가문은 재능 없는 아이들에게 인권을 주지 않았다. 강하고 유능하며 탁월한 가축들만이 우리 안을 벗어나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콰과광!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도 홀로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아이.
검술 및 학문 지도자와 헤밀프로닌이 펠렌 크라운을 바라보며 대화했다.
“내 아이는 어떻소?”
“펠렌 크라운··· 아이는 검술로도 학문으로도 일절 재능이 없는 아이입니다.”
-콰광!
천둥이 내리친다.
펠렌 크라운은 유능하고 강한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검을 휘둘러 화려한 자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자세를 몇 번이고 고쳐도 내일이면 전부 잊어 제자리걸음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신체가 전에 움직임을 기억하고 모방하는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어떻게 귀족으로 태어나서 무능한 가축들도 하는 것을 못 할까.
귀족으로서 수치스러웠다. 당장 서쪽 변방 마을로 유배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헤밀프로닌은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기다렸다.
준비 자세가 길수록, 완벽할수록 더욱 높게 뛰어오르는 법이니 평안을 가지자. 조급할 필요 없다.
재능을 개화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다. 크라운 가문으로 태어나서 아무런 재능을 물려받지 못했다는 건 부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분명 재능을 개화하는 날이 올 터이니 기다렸다.
그렇게 1년, 2년, 3년.
15세가 되고 성인을 맞이하기 2년 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펠렌의 훈련을 확인하러 온 헤밀프로닌은 연무장에서 펠렌을 볼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연무장에 펠렌은 나오지 않았다.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시중에게 들어보니 일찍이 검술을 포기하고 학문으로 방향을 튼 모양이었다. 보름이 지났을 때에는 학문을 포기하고 마법을 배우겠다고 했다.
그런 순환의 연속이었다.
검술, 궁술, 창술 마법,
어떤 분야에도 특출난 재능을 찾아볼 수 없었다. 헤밀프로닌은 마지막 선택을 내려야 했다. 촌락으로 보내 평생을 썩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기회를 줄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다른 아이들이 펠렌을 무시하고 핍박한다고 하여 교육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해 아카데미로 보내려 한 것이었다.
아카데미로 가서 뭐든 해보라고 그리 말했고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간간히 부정적인 소식만 접할 뿐이었다.
입학시험에서 기권했습니다.
마법 강의를 1달 휴강했습니다.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었다.
그랬기에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가 정령 내가 알고 있는 펠렌이 맞는 것인가 의문부터 들었다.
“승자는 크라운 가문의 펠렌!”
“와아아아!!”
펠렌은 검을 거두며 유유히 대련장을 빠져나갔다.
헤밀프로닌은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내 아들이 맞다. 내 아들이 아니라면 누구 아들이라는 말인가. 더 보고 싶었다. 펠렌의 검술을, 1년의 정수를, 무엇을 어떻게 변하였는지 전부 보고 떠날 것이다.
다음 대련도 다다음 대련도 펠렌 크라운은 압승을 이어갔다.
헤밀프로닌은 주먹을 꽉 쥐었다. 모두 일격에 나가떨어졌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조절하려 애쓰는 자신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펠렌 크라운! 연승을 이어 나갑니다! 크라운 가문의 위상을 보여주는 걸까요!?”
펠렌은 강했다. 크라운 가문에서 검을 휘두르는 이들보다 더욱 강했다, 과거 펠렌을 무시한 아이들 보다도 더더욱 강했다.
도저히 1년 만에 이뤄낸 발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헤밀프로닌은 그저 그 검을 지켜보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저 검에 전부 담겨 있을 것이다.
* * *
펠렌은 검을 거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뒤를 돌았다. 대기실로 향하던 중 다음 대련을 준비하던 레일라와 눈이 마주친다.
레일라 쪽에서 먼저 손을 흔들어 친밀감을 드러냈다.
“펠렌 반가워~. 시합은 어땠어? 쉬워 보이던데.”
“어 맞아 쉬웠어.”
단 답을 남기고 쉬려던 그때였다.
“네가 아카데미에 없길래 도망친 줄 알았잖아. 조금 서운할 뻔했어.”
이 말을 꺼내려고 내게 말을 건 것이다.
자존심을 긁으려고 처음부터 의도한 말이었다. 좋게 순화하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간 보는 거겠지.
“못 본 새에 지랄이 늘었네. 추잡하게 입 놀리는 것도 그렇고.”
저 멀리서 조교가 소리쳤다.
“거기 잡담 그만! 레일라 페르난 즉시 대련장으로 입장해라.”
“흐흠~ 이번 시합은 힘들겠네.”
힘들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본 실력을 알고 있었으니까.
“본 실력을 숨기면서 어렵게 할 이유가 있어?”
“다 서프라이즈지~. 멋진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마지막까지 반전이 필요한 법이야. 조금 힘들기는 해도 그럴 가치가 있지.”
“멋진 무대는 개뿔 알량한 자존심이겠지. 변명도 가지가지 해 정말.”
레일라가 흥미로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삐죽 앞으로 내밀었다. 가까웠다. 볼때기에는 홍조가 보였다.
“너는 반전이랄 것도 없으니까. 나라도 반전을 만들어야지. 안 그래?”
레일라가 어깨에 손을 툭 올리고는 미끄러트리며 대련장으로 껑충껑충 뛰어나갔다.
“어서 나가라!”
“지금 가겠습니다~.”
김지원은 손 올린 어깨 쪽을 괜히 툭툭 털어내고는 대기실로 걸어갔다.
“그러니까 반전이 필요한 거지?”
고블린 킹 퀘스트 보상 창을 띄워 놓고 다음 대련을 준비했다.
[보상:유일한 원소의 검술 재능 선택권]
·········
······
···
.
.
.
“승자는 레일라 페르난!”
.
.
“승자는 펠렌 크라운!”
레일라와 펠렌 크라운 모두 승리를 이어 나갔다. 서로 단 한 대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으며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처음 펠렌을 향했던 무미건조한 관중들의 반응도 조금씩 커져만 갔다. 처음에 보여줬던 검격이 운이 아닌 실력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일라와 펠렌 둘을 두고 관중들의 파가 나뉘었다. 급기야 둘의 전투력을 분석하는 중립적인 관중이 흥분한 이들을 한시름 잡아놨다.
기본기에서 우러나오는 자세나 근본적인 힘은 펠렌 크라운 쪽이 더욱 우세하며 그것이 전투력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것.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었다. 수신류 검술은 과거, 검신이 만든 최강의 검술 중 하나. 검술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레일라 페르난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기에 레일라 페르난이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곧 다음 대련에서 어떤 것이 우세할지 나타날 것이다.
완벽한 기본기와 힘.
최강의 검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지막 대결입니다! 프릴 아카데미 1학년 입학생의 검술학 최강자가 지금 가려집니다! 크라운 가문의 펠렌! 그리고 페르난 가문의 레일라는 입장해주세요!”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펠렌과 레일라가 입장했다. 레일라는 여유롭게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펠렌은 무덤덤하게 눈앞에 있는 레일라를 바라봤다. 서로 아카데미 측에서 제공한 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교수들이 하나같이 흥미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펠렌 크라운 학생이 기대되는군요.”
기사학 교수 펜슬롯이 입을 연다.
“화려한 기술 없이 기본기와 힘만으로 쟁쟁한 후보들을 꺾다니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케이스입니다. 부디 이번 경기에서 숨겨둔 모든 수를 보여줬으면 좋겠군요. S구역에 걸맞은 학생이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모든 검술과 기술들이 저 학생에 의해 부정당하겠죠. 기사도가 추구하는 방향이 옳게 되는 것입니다.”
“괴연 글쎄요 펠렌 크라운의 몸에서는 오러가 안 느껴집니다. 그래봤자 학생 수준에서의 최강 레벨. 오라를 사용할 수 없다면 기본기가 뛰어나다고 한들 레일라를 상대로 크게 의미 없을 겁니다. 그것이 곧 이 세상에 정해진 규칙이니까요.”
“오러가 강함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되네요.”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던 제국 검술 교수인 덴아브랑이 어리석다는 말에 발끈했다.
“지금 저를 가르치려 드시는 건가요?”
펜슬롯이 싱긋 웃으며 눈을 마주치고 바라봤다.
“그럴 리가요. 물에 녹조가 낀 것 같아. 치워드린 것뿐입니다. 오래된 고인 물에는 항상 녹조가 끼기 마련이죠. 제때 관리해야 할 겁니다, 덴아브랑.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그에 맞춰서 아카데미 교육 방식도 효율적이고 혁신적이게 변하는 거죠. 언제까지고 과거에 정체되어 있을 수는 없는 겁니다.”
덴아브랑은 순간 파란 눈동자에 빨려들어 갈 뻔했다. 그 정도로 펜슬롯이 순간 풍기는 분위기는 어마어마했다.
“쳇! 보면 알겠죠.”
“자자~ 다들 그만하시고 시험에 집중합시다.”
교수들 전원이 눈짓으로 경기를 시작하라 사인을 내리고 해설자가 경기 시작을 알렸다.
“그러면 경기~ 시자아악!!”
우렁찬 목소리였다.
펠렌은 검 끝을 레일라에게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레일라 혹시 압도적으로 진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어?”
레일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응? 나한테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그럼 그렇지.”
펠렌이 땅을 박찼다. 검을 새운 뒤 상단에서 강하게 내리쳤고 레일라가 막아냈다.
-카앙!!
이전 시합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철의 공명음이었다. 검이 서로 부딪힐 때 강한 불꽃이 튀었다.
-캉! 캉! 캉!
3번의 연격이 이어지고 펠렌이 우위를 잡아나갈 쯤이었다.
레일라는 지금껏 느낀 적 없는 강한 공격에 손을 털며 말했다.
“확실히 너가 가장 강한 것 같네.”
이대로 소모전은 불리하다. 레일라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오러를 사용했다. 오러는 신체의 힘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때로는 신체를 단단하게, 검을 더욱 견고하게 잡아주고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줬다. 그 기술을 검기 또는 오러 블레이드라고 불렀다.
오러의 이해도가 절정에 달했을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교수진 일동이 당황했다. 레일라의 오러아 당황했다.
“저, 저건!”
“오러 블레이드입니다! 확실해요! 천재, 몇 년 만에 검의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저 레일라… 학생 저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요···.”
펠렌은 한차례 오러를 경험했었다. 오러 임을 빠르게 눈치채고 검을 거두며 뒤로 빠진다.
잠깐이지만 검날이 닿았을 때 검이 깊게 파였다. 검대 검을 맞대며 힘 대결했으면 확실하게 잘려 나갔을 것이다.
“진짜 사기네.”
“부러워?”
“존나 부러워. 나도 너처럼 인생을 날로 먹고 싶었는데.”
자세를 바로잡았다. 관객들이 술렁였다. 한평생 한번 보기 어렵다는 오러 블레이드를 눈으로 보고 있자니 본인이 다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레일라는 정말로 아득한 경지에 있었다.
인간의 범주에서 신체적으로 아득히 뛰어넘은 자를 입 모아 1성의 경지라 부른다.
오러를 깨우치며 인간이라는 벽을 다시 한번 벽을 뛰어넘은 자를 2성의 경지에 도달했다 한다.
오러의 꽃이자 최강. 검기를 다루는 자를 3성의 경지에 달해 가히 검신에 근접했다고 했다.
레일라는 검신이 될 자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레일라가 땅을 박차며 여유로운 얼굴로 공격해 나갔다. 펠렌은 공격을 막을 수 없어 신체 능력 우위로 회피를 반복했다.
이미 승패는 정해졌다. 오러를 사용한 순간부터 일방적으로 레일라가 우위에 있었으니.
“펠렌 포기하는 게 어때? 더 이상 보여줄 거 없잖아?”
“지랄. 포기는 배추 샐 때나 하는 거 모르냐?”
“입이 살아있는 걸 보니 아직도 뭐가 있긴 하구나? 그래봤자 발버둥 치는 게 전부지 이기진 못해.”
-후웅!!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했다. 일부로 거리를 줬지만 피할 수이었기에 사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심판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김지원은 일부로 벽 쪽으로 몸을 기댔다. 상황은 극적일수록 반전이 더욱 커지는 법이니.
레일라는 구석에 몰린 김지원을 보고는 승리를 확신하며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제나단이었다.
“네 부하는 어떻게 됐어? 노랑머리였나?”
김지원은 정색하며 눈을 부릅떴다.
“닥쳐.”
-후웅! 쾅!
몸을 아래로 낮춘 김지원의 위로 검이 하얀 검선을 그리며 반듯하게 벽을 베어냈다.
“뭐 뻔하지. 버렸을 거 아니야.”
병실에 누워있던 제나단이 마지막에 고블린의 공격을 대신 맞아줬다. 그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고 지금 복수할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제나단을 욕보이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마지막 기회야. 한 번 더 제나단에 대해 지껄이면 죽여버린다.”
펠렌의 눈동자에 살기가 섰다. 전에는 없던 맹수 같은 눈동자였다. 레일라는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로 움츠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살기였다.
하지만 저것이 허세라고 생각했다. 오러 없이 오러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니까.
다시금 상위와 하위의 개념을 정립하자 심리적인 우월감이 하늘을 찔렀다. 잔뜩 유쾌한 기분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펠렌을 콕콕 쑤셨다.
“아이고 무서워라~ 솔직하게 말해. 걸리적거려서 버린 거잖아.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버려지는 건데 멍청하니, 그걸 몰라줘 그치?”
“…….”
김지원은 검을 바로 잡았다.
-띠링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보스 고블린 킹을 처치하세요.
1/1
보상:유일한 원소의 검술 재능 선택권
[퀘스트 보상을 획득합니다]
-띠링
[유일한 수신류 검술의 재능을 획득했습니다]
레일라가 검을 휘둘렀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스스슥!!
그때다.
“···!!”
레일라의 검이 미끄러지듯 김지원의 검을 비스듬히 탔다.
순간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막아낸 것이 아니다. 흘려낸 것이었다. 순간 바다를 베는 기분이었다.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방금 방어 자세를 뚫을 수 없었다.
검으로 바다를 가를 방법이 없듯이 말이다.
단단한 벽, 아니 거대한 산, 그보다도 더 아득한, 하늘, 그리고 그 너머의 우주.
레일라가 당황했다.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심판들이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곧바로 대응할 자세를 잡았다.
김지원의 몸 주위에서 알 수 없는 푸른 기운이 뿜어지며 그것들은 공기를 한없이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아까 했던 말 기억해?”
-타악!
김지원이 검을 들어 올린 것만으로 레일라는 뒤로 물러나야 했다. 방금 물러나지 않았다면 분명 베었을 터다.
이제 과거를 청산하고 복수할 시간이었다.
“오늘부로 압도적으로 진다는 게 뭔지 알게 될 거야.”
“뭐해! 더 굴러라! 오늘 안에 횟수 다 못 채우면 밥은 없다!”
“크으윽··· 네···.”
과거 크라운 가문은 재능 없는 아이들에게 인권을 주지 않았다. 강하고 유능하며 탁월한 가축들만이 우리 안을 벗어나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콰과광!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도 홀로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아이.
검술 및 학문 지도자와 헤밀프로닌이 펠렌 크라운을 바라보며 대화했다.
“내 아이는 어떻소?”
“펠렌 크라운··· 아이는 검술로도 학문으로도 일절 재능이 없는 아이입니다.”
-콰광!
천둥이 내리친다.
펠렌 크라운은 유능하고 강한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검을 휘둘러 화려한 자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자세를 몇 번이고 고쳐도 내일이면 전부 잊어 제자리걸음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신체가 전에 움직임을 기억하고 모방하는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어떻게 귀족으로 태어나서 무능한 가축들도 하는 것을 못 할까.
귀족으로서 수치스러웠다. 당장 서쪽 변방 마을로 유배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헤밀프로닌은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기다렸다.
준비 자세가 길수록, 완벽할수록 더욱 높게 뛰어오르는 법이니 평안을 가지자. 조급할 필요 없다.
재능을 개화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다. 크라운 가문으로 태어나서 아무런 재능을 물려받지 못했다는 건 부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분명 재능을 개화하는 날이 올 터이니 기다렸다.
그렇게 1년, 2년, 3년.
15세가 되고 성인을 맞이하기 2년 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펠렌의 훈련을 확인하러 온 헤밀프로닌은 연무장에서 펠렌을 볼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연무장에 펠렌은 나오지 않았다.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시중에게 들어보니 일찍이 검술을 포기하고 학문으로 방향을 튼 모양이었다. 보름이 지났을 때에는 학문을 포기하고 마법을 배우겠다고 했다.
그런 순환의 연속이었다.
검술, 궁술, 창술 마법,
어떤 분야에도 특출난 재능을 찾아볼 수 없었다. 헤밀프로닌은 마지막 선택을 내려야 했다. 촌락으로 보내 평생을 썩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기회를 줄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다른 아이들이 펠렌을 무시하고 핍박한다고 하여 교육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해 아카데미로 보내려 한 것이었다.
아카데미로 가서 뭐든 해보라고 그리 말했고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간간히 부정적인 소식만 접할 뿐이었다.
입학시험에서 기권했습니다.
마법 강의를 1달 휴강했습니다.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었다.
그랬기에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가 정령 내가 알고 있는 펠렌이 맞는 것인가 의문부터 들었다.
“승자는 크라운 가문의 펠렌!”
“와아아아!!”
펠렌은 검을 거두며 유유히 대련장을 빠져나갔다.
헤밀프로닌은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내 아들이 맞다. 내 아들이 아니라면 누구 아들이라는 말인가. 더 보고 싶었다. 펠렌의 검술을, 1년의 정수를, 무엇을 어떻게 변하였는지 전부 보고 떠날 것이다.
다음 대련도 다다음 대련도 펠렌 크라운은 압승을 이어갔다.
헤밀프로닌은 주먹을 꽉 쥐었다. 모두 일격에 나가떨어졌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조절하려 애쓰는 자신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펠렌 크라운! 연승을 이어 나갑니다! 크라운 가문의 위상을 보여주는 걸까요!?”
펠렌은 강했다. 크라운 가문에서 검을 휘두르는 이들보다 더욱 강했다, 과거 펠렌을 무시한 아이들 보다도 더더욱 강했다.
도저히 1년 만에 이뤄낸 발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헤밀프로닌은 그저 그 검을 지켜보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저 검에 전부 담겨 있을 것이다.
* * *
펠렌은 검을 거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뒤를 돌았다. 대기실로 향하던 중 다음 대련을 준비하던 레일라와 눈이 마주친다.
레일라 쪽에서 먼저 손을 흔들어 친밀감을 드러냈다.
“펠렌 반가워~. 시합은 어땠어? 쉬워 보이던데.”
“어 맞아 쉬웠어.”
단 답을 남기고 쉬려던 그때였다.
“네가 아카데미에 없길래 도망친 줄 알았잖아. 조금 서운할 뻔했어.”
이 말을 꺼내려고 내게 말을 건 것이다.
자존심을 긁으려고 처음부터 의도한 말이었다. 좋게 순화하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간 보는 거겠지.
“못 본 새에 지랄이 늘었네. 추잡하게 입 놀리는 것도 그렇고.”
저 멀리서 조교가 소리쳤다.
“거기 잡담 그만! 레일라 페르난 즉시 대련장으로 입장해라.”
“흐흠~ 이번 시합은 힘들겠네.”
힘들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본 실력을 알고 있었으니까.
“본 실력을 숨기면서 어렵게 할 이유가 있어?”
“다 서프라이즈지~. 멋진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마지막까지 반전이 필요한 법이야. 조금 힘들기는 해도 그럴 가치가 있지.”
“멋진 무대는 개뿔 알량한 자존심이겠지. 변명도 가지가지 해 정말.”
레일라가 흥미로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삐죽 앞으로 내밀었다. 가까웠다. 볼때기에는 홍조가 보였다.
“너는 반전이랄 것도 없으니까. 나라도 반전을 만들어야지. 안 그래?”
레일라가 어깨에 손을 툭 올리고는 미끄러트리며 대련장으로 껑충껑충 뛰어나갔다.
“어서 나가라!”
“지금 가겠습니다~.”
김지원은 손 올린 어깨 쪽을 괜히 툭툭 털어내고는 대기실로 걸어갔다.
“그러니까 반전이 필요한 거지?”
고블린 킹 퀘스트 보상 창을 띄워 놓고 다음 대련을 준비했다.
[보상:유일한 원소의 검술 재능 선택권]
·········
······
···
.
.
.
“승자는 레일라 페르난!”
.
.
“승자는 펠렌 크라운!”
레일라와 펠렌 크라운 모두 승리를 이어 나갔다. 서로 단 한 대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으며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처음 펠렌을 향했던 무미건조한 관중들의 반응도 조금씩 커져만 갔다. 처음에 보여줬던 검격이 운이 아닌 실력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일라와 펠렌 둘을 두고 관중들의 파가 나뉘었다. 급기야 둘의 전투력을 분석하는 중립적인 관중이 흥분한 이들을 한시름 잡아놨다.
기본기에서 우러나오는 자세나 근본적인 힘은 펠렌 크라운 쪽이 더욱 우세하며 그것이 전투력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것.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었다. 수신류 검술은 과거, 검신이 만든 최강의 검술 중 하나. 검술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레일라 페르난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기에 레일라 페르난이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곧 다음 대련에서 어떤 것이 우세할지 나타날 것이다.
완벽한 기본기와 힘.
최강의 검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지막 대결입니다! 프릴 아카데미 1학년 입학생의 검술학 최강자가 지금 가려집니다! 크라운 가문의 펠렌! 그리고 페르난 가문의 레일라는 입장해주세요!”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펠렌과 레일라가 입장했다. 레일라는 여유롭게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펠렌은 무덤덤하게 눈앞에 있는 레일라를 바라봤다. 서로 아카데미 측에서 제공한 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교수들이 하나같이 흥미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펠렌 크라운 학생이 기대되는군요.”
기사학 교수 펜슬롯이 입을 연다.
“화려한 기술 없이 기본기와 힘만으로 쟁쟁한 후보들을 꺾다니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케이스입니다. 부디 이번 경기에서 숨겨둔 모든 수를 보여줬으면 좋겠군요. S구역에 걸맞은 학생이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모든 검술과 기술들이 저 학생에 의해 부정당하겠죠. 기사도가 추구하는 방향이 옳게 되는 것입니다.”
“괴연 글쎄요 펠렌 크라운의 몸에서는 오러가 안 느껴집니다. 그래봤자 학생 수준에서의 최강 레벨. 오라를 사용할 수 없다면 기본기가 뛰어나다고 한들 레일라를 상대로 크게 의미 없을 겁니다. 그것이 곧 이 세상에 정해진 규칙이니까요.”
“오러가 강함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되네요.”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던 제국 검술 교수인 덴아브랑이 어리석다는 말에 발끈했다.
“지금 저를 가르치려 드시는 건가요?”
펜슬롯이 싱긋 웃으며 눈을 마주치고 바라봤다.
“그럴 리가요. 물에 녹조가 낀 것 같아. 치워드린 것뿐입니다. 오래된 고인 물에는 항상 녹조가 끼기 마련이죠. 제때 관리해야 할 겁니다, 덴아브랑.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그에 맞춰서 아카데미 교육 방식도 효율적이고 혁신적이게 변하는 거죠. 언제까지고 과거에 정체되어 있을 수는 없는 겁니다.”
덴아브랑은 순간 파란 눈동자에 빨려들어 갈 뻔했다. 그 정도로 펜슬롯이 순간 풍기는 분위기는 어마어마했다.
“쳇! 보면 알겠죠.”
“자자~ 다들 그만하시고 시험에 집중합시다.”
교수들 전원이 눈짓으로 경기를 시작하라 사인을 내리고 해설자가 경기 시작을 알렸다.
“그러면 경기~ 시자아악!!”
우렁찬 목소리였다.
펠렌은 검 끝을 레일라에게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레일라 혹시 압도적으로 진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어?”
레일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응? 나한테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그럼 그렇지.”
펠렌이 땅을 박찼다. 검을 새운 뒤 상단에서 강하게 내리쳤고 레일라가 막아냈다.
-카앙!!
이전 시합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철의 공명음이었다. 검이 서로 부딪힐 때 강한 불꽃이 튀었다.
-캉! 캉! 캉!
3번의 연격이 이어지고 펠렌이 우위를 잡아나갈 쯤이었다.
레일라는 지금껏 느낀 적 없는 강한 공격에 손을 털며 말했다.
“확실히 너가 가장 강한 것 같네.”
이대로 소모전은 불리하다. 레일라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오러를 사용했다. 오러는 신체의 힘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때로는 신체를 단단하게, 검을 더욱 견고하게 잡아주고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줬다. 그 기술을 검기 또는 오러 블레이드라고 불렀다.
오러의 이해도가 절정에 달했을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교수진 일동이 당황했다. 레일라의 오러아 당황했다.
“저, 저건!”
“오러 블레이드입니다! 확실해요! 천재, 몇 년 만에 검의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저 레일라… 학생 저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요···.”
펠렌은 한차례 오러를 경험했었다. 오러 임을 빠르게 눈치채고 검을 거두며 뒤로 빠진다.
잠깐이지만 검날이 닿았을 때 검이 깊게 파였다. 검대 검을 맞대며 힘 대결했으면 확실하게 잘려 나갔을 것이다.
“진짜 사기네.”
“부러워?”
“존나 부러워. 나도 너처럼 인생을 날로 먹고 싶었는데.”
자세를 바로잡았다. 관객들이 술렁였다. 한평생 한번 보기 어렵다는 오러 블레이드를 눈으로 보고 있자니 본인이 다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레일라는 정말로 아득한 경지에 있었다.
인간의 범주에서 신체적으로 아득히 뛰어넘은 자를 입 모아 1성의 경지라 부른다.
오러를 깨우치며 인간이라는 벽을 다시 한번 벽을 뛰어넘은 자를 2성의 경지에 도달했다 한다.
오러의 꽃이자 최강. 검기를 다루는 자를 3성의 경지에 달해 가히 검신에 근접했다고 했다.
레일라는 검신이 될 자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레일라가 땅을 박차며 여유로운 얼굴로 공격해 나갔다. 펠렌은 공격을 막을 수 없어 신체 능력 우위로 회피를 반복했다.
이미 승패는 정해졌다. 오러를 사용한 순간부터 일방적으로 레일라가 우위에 있었으니.
“펠렌 포기하는 게 어때? 더 이상 보여줄 거 없잖아?”
“지랄. 포기는 배추 샐 때나 하는 거 모르냐?”
“입이 살아있는 걸 보니 아직도 뭐가 있긴 하구나? 그래봤자 발버둥 치는 게 전부지 이기진 못해.”
-후웅!!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했다. 일부로 거리를 줬지만 피할 수이었기에 사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심판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김지원은 일부로 벽 쪽으로 몸을 기댔다. 상황은 극적일수록 반전이 더욱 커지는 법이니.
레일라는 구석에 몰린 김지원을 보고는 승리를 확신하며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제나단이었다.
“네 부하는 어떻게 됐어? 노랑머리였나?”
김지원은 정색하며 눈을 부릅떴다.
“닥쳐.”
-후웅! 쾅!
몸을 아래로 낮춘 김지원의 위로 검이 하얀 검선을 그리며 반듯하게 벽을 베어냈다.
“뭐 뻔하지. 버렸을 거 아니야.”
병실에 누워있던 제나단이 마지막에 고블린의 공격을 대신 맞아줬다. 그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고 지금 복수할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제나단을 욕보이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마지막 기회야. 한 번 더 제나단에 대해 지껄이면 죽여버린다.”
펠렌의 눈동자에 살기가 섰다. 전에는 없던 맹수 같은 눈동자였다. 레일라는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로 움츠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살기였다.
하지만 저것이 허세라고 생각했다. 오러 없이 오러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니까.
다시금 상위와 하위의 개념을 정립하자 심리적인 우월감이 하늘을 찔렀다. 잔뜩 유쾌한 기분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펠렌을 콕콕 쑤셨다.
“아이고 무서워라~ 솔직하게 말해. 걸리적거려서 버린 거잖아.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버려지는 건데 멍청하니, 그걸 몰라줘 그치?”
“…….”
김지원은 검을 바로 잡았다.
-띠링
[돌발 퀘스트! (거절 불가) ]
3계층 보스 고블린 킹을 처치하세요.
1/1
보상:유일한 원소의 검술 재능 선택권
[퀘스트 보상을 획득합니다]
-띠링
[유일한 수신류 검술의 재능을 획득했습니다]
레일라가 검을 휘둘렀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스스슥!!
그때다.
“···!!”
레일라의 검이 미끄러지듯 김지원의 검을 비스듬히 탔다.
순간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막아낸 것이 아니다. 흘려낸 것이었다. 순간 바다를 베는 기분이었다.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방금 방어 자세를 뚫을 수 없었다.
검으로 바다를 가를 방법이 없듯이 말이다.
단단한 벽, 아니 거대한 산, 그보다도 더 아득한, 하늘, 그리고 그 너머의 우주.
레일라가 당황했다.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심판들이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곧바로 대응할 자세를 잡았다.
김지원의 몸 주위에서 알 수 없는 푸른 기운이 뿜어지며 그것들은 공기를 한없이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아까 했던 말 기억해?”
-타악!
김지원이 검을 들어 올린 것만으로 레일라는 뒤로 물러나야 했다. 방금 물러나지 않았다면 분명 베었을 터다.
이제 과거를 청산하고 복수할 시간이었다.
“오늘부로 압도적으로 진다는 게 뭔지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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