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좋아하나요? 30 화
조회 : 3,191 추천 : 4 글자수 : 5,545 자 2023-04-10
차가 출발하자, 이제 곧 루카스가 담배에 불을 붙일 줄 알았다.
그런데 대신에 아이스 커피가 든 플라스틱 컵을 내게 건넸다.
"고마워요."
살짝 놀랐다.
아이스 커피에 우유가 딱 적당히 들어간 것 같았다.
한 입 맛보았다.
설탕도 들어갔다.
"차로 얼마나 걸려요? 가려고 하는 거기까지?"
루카스가 제 컵을 들더니 컵에 든 빨대를 입으로 빼냈다.
그가 빨대를 씹자, 턱의 근육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얼마 안 걸려요. 그럼 친구를 만나러 갈까요?"
"네? "
친구.
불길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난 망상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떤 함정에 걸려드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내가 릴라인 척 꾸민 것 보다 더 큰 함정......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친구? 음식점이에요. 최고의 쿠바 음식점."
"아......"
휴우, 다행이다.
루카스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 차 오디오를 켰다.
"우아."
웃음이 나왔다.
"왜?"
"노래 말이에요. 이 리메이크 곡, 정말 좋아하거든요."
"진짜?"
루카스는 밉살스러울 만큼 놀란 얼굴이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노래가 아닌데?"
"네?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가 뭔데요?"
"댄스? 클럽 음악 EDM에나 열광하는 줄 알았는데."
"헉! 그냥 날 물어 뜯으세요!"
"꼭 그래야 한다면."
지금까지 루카스는 릴라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 곡이 끝나고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나왔다.
나는 오디오에 손을 뻗었다.
"봐도 돼요?"
루카스가 지나치게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곧이어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손을 저었다.
"진정해요. 음악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래요."
나는 루카스의 블루투스에 연결된 곡들을 훑어 보았다.
빼어난 취향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
내 음악 취향이 훨씬 더 다양했다.
마음이 흡족해져 미소가 피어올랐다.
"뭘 보고 히죽거려요, 거기?"
루카스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음, 당신보다 내가 음악 취향이 더 좋아서요."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 취향이 독특한 거겠지."
"헉!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러고도 친구가 있어요?"
"친구? 아, 날마다 나 자신한테 던지는 질문이죠. 친구가 있는지."
루카스가 플라스틱 빨대를 우적우적 씹었다.
"진심으로 안타깝네요. 그러니까 다들 당신이 너무 춥다고 하지."
내 말에 루카스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지만,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말, 안 궁금해. 춥든 말든, 당신한테는 안 추울텐데?"
"네?"
"알면서, 내가 얼마나 당신한테 열정적인지, 안 그래요?"
"헉!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당했다.
"자꾸 거짓말하면 지옥 가요."
나는 나직이 말했다.
"벌써 와 있어."
루카스가 태연하게 말하고는 입에서 빨대를 빼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루카스와 있으면 그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순간순간이 그랬다.
우리 옆쪽과 위쪽에서 이리저리 뒤엉킨 고가도로가 보였다.
이쪽 고속도로에서는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보였다.
차가 남쪽을 향해 달리는 동안 루카스와 나는 내내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풍경이 바뀌어 고속도로 양쪽으로 바다가 보였다.
도로는 4차선에서 2차선으로 좁아졌고, 우리 앞에 가파른 높은 다리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매우 가파르고, 매우 높은 다리였다.
우리는 정지등을 켠 기나긴 자동차 행렬을 뒤따라 가고 있었는데, 이 행렬은 우리 앞의 고가도로를 타고 기어 올라갔다.
목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손으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콘솔을 꽉 움켜쥐었다.
높은 곳은 질색이다.
나는 앞쪽이나 옆쪽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곳을 보면 청록색 바닷물과 스카이라인이 서서히 줄어드는 게 보였다.
루카스가 제 손을 내 손위에 살짝 닿을락말락하게 올렸다.
하지만 나는 루카스의 손이 느껴졌다.
루카스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는 미소를 살포시 머금고 앞쪽만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전염성 있는 미소였다.
나도 미소를 머금었다.
그 응답으로 루카스가 콘솔 위에 있는 내 손에 깍지를 꼈다.
내 손을 잡은 루카스의 손에 완전히 넋이 나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다행이네."
"높은 곳에 익숙지 않아요. 그냥, 높은 곳은 무서워요."
"아......"
"당신은 무서워하는 거 있어요?"
내가 물었다.
루카스의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했다.
"뭐예요? 음, 난 벌써 보여 줬는......"
나는 대답을 재촉했다.
"가짜들이 무서워요."
가짜들.
지금 나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 둘 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진짜인 척 꾸미는 거. 공허해."
루카스가 단조롭게 말했다.
그리고 손깍지를 풀더니 제 손바닥을 내 손등 위에 갖다 댔다.
루카스의 손 안에 내 손이 쏙 들어갈 것 같았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손을 홱 뒤집어 루카스의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그 다음에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루카스의 얼굴을 살폈다.
검은 선글라스 아래로 아무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억지로 그의 손을 잡고 있는지, 그가 손을 내려놓은 것뿐인지, 그게 아니면......
선글라스 뒤에 감춰진 그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누가 뭐래도 나는 사기꾼이예요. 나만의 삶을 사는 배우."
갑작스러운 루카스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루카스가 내가 잡고 있던 손을 빼내서, 바다 건너에 보이는 엄청나게 큰 금색 반구형 지붕을 가리켰다.
"보이죠? 해양 수족관."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카스가 한 손으로 자기 호주머니를 뒤적였다.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이고 콧구멍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가야겠다."
루카스가 나를 도로 집에 데려다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나는 그러기 싫었다.
"루카스, 나는......"
"다음에 같이 갈래요? 해양 수족관 . 저기 범고래가 있거든요."
"아......좋아요"
"범고래 이름이 루키예요."
"아......"
그러고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는데, 해양 수족관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약간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가자 붐비는 구역이 나왔다.
복숭아색, 오렌지색, 분홍색으로 칠한 상자 모양의 집들이 들어차 있고, 창문에는 창살이 덧대져 있었다.
모든 것이 스페인어로 쓰여 있었다.
표지판과 상점 간판 모두가.
나는 창 밖 풍경을 살피면서 지금 옆에 있는 루카스가, 내가 뭔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말했다.
"그런데, 저기, 본 적 있어요?......그 루키?"
내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지금 무슨 말 한 거니?
생각해낸 말이 고작!
에휴!
"동물 보호 단체에 후원하고 있는데, 그래서 루키를 알게 됐죠."
루카스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데, 눈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올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루키를 위해 더 큰 수조를 마련하기 위한 기금 모금 행사도 몇 번 열었어요."
루카스가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
콧구멍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내자, 연기가 루카스 주위에 자욱하게 맴돌다가 열린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 밖에 허리케인이 불고 있다 해도 내 알 바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배 고프죠?"
"아, 네."
사실 배가 너무 고파서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가 급하게 우회전을 했다.
그리고 방향을 틀어 북적거리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화창한 날씨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길거리는 활기에 넘쳤다.
루카스가 길가에 차를 세우는데 때마침 노래가 끝났다.
나는 그가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느새 이런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노인들이 앉아 도미노 게임을 하고 있는 작은 공원을 지나갔다.
공원 한 쪽 벽에는 크고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게임용 탁자들 위로는 줄무늬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이제껏 그와 비슷한 광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다 왔어요."
루카스가 내 손을 잡았다.
***
루카스가 앞장서서 북적거리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을 잡은 나는 몸이 따스해지는 걸 느꼈다.
나는 음식점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얼마 전에 처음 만난 사람 같지 않았다.
차갑고, 거리를 두고, 건드릴 수 없는 루카스 해리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나를 데리러 온 그는 ,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는 남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나뿐일거라 여기고 행복한 이 순간을 즐겼다.
우리는 창가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손을 잡은 루카스의 손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루카스를 올려다보았다.
"루카스?"
나는 이유를 모른 채 겁에 질렸다.
"괜찮아요?"
"잠깐만 기다려요."
그가 냉정히 말했다.
그리고 내 손을 놓았다.
"금방 올게."
루카스가 방금 지나온 통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더니 음식점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약간 멍한 상태로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찬찬히 읽었다.
그러다가 목이 말라서 웨이터를 찾아보려 고개를 들고 음식점을 한 바퀴 훑다가 누군가를 보았다.
어떤 남자가 모자챙 아래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 서서.
"여기서 가장 예쁜 여자가 된 기분이 어때요?"
외국인 억양이 배어 있는 목소리에 움찔했다.
루카스가 아니었다.
금발 머리에 엷은 갈색 눈을 지닌 피부가 까만 남자가 진심 어린 표정으로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남자가 슬그머니 내 앞자리에 앉았다.
보아하니 내 대답을 기다릴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나는 남자를 째려보았다.
"다른 사람 자리예요."
루카스는 어디 갔을까?
"저런? 남자친구?"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친구."
남자가 더 활짝 웃었다.
"그 남자 바보네요."
"뭐라구요?"
"그냥 친구라니 바보라고요. 나 같으면 당신하고 그냥 친구로 지내는 건 못 참을 것 같은데, 그런 그렇고 , 내 이름은 쟈드."
나는 코웃음을 쳤다.
"쟈드, 다행히도 , 당신이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그래요? 왜요?"
이 남자 뭐야?
"당신은 곧 자리를 뜰 거니까. 이제 그만 하지."
내 뒤에서 루카스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살짝 돌려 위를 올려다보았다.
루카스가 바로 뒤에 서서 내 머리 위로 몸을 살짝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대신에 아이스 커피가 든 플라스틱 컵을 내게 건넸다.
"고마워요."
살짝 놀랐다.
아이스 커피에 우유가 딱 적당히 들어간 것 같았다.
한 입 맛보았다.
설탕도 들어갔다.
"차로 얼마나 걸려요? 가려고 하는 거기까지?"
루카스가 제 컵을 들더니 컵에 든 빨대를 입으로 빼냈다.
그가 빨대를 씹자, 턱의 근육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얼마 안 걸려요. 그럼 친구를 만나러 갈까요?"
"네? "
친구.
불길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난 망상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떤 함정에 걸려드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내가 릴라인 척 꾸민 것 보다 더 큰 함정......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친구? 음식점이에요. 최고의 쿠바 음식점."
"아......"
휴우, 다행이다.
루카스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 차 오디오를 켰다.
"우아."
웃음이 나왔다.
"왜?"
"노래 말이에요. 이 리메이크 곡, 정말 좋아하거든요."
"진짜?"
루카스는 밉살스러울 만큼 놀란 얼굴이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노래가 아닌데?"
"네?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가 뭔데요?"
"댄스? 클럽 음악 EDM에나 열광하는 줄 알았는데."
"헉! 그냥 날 물어 뜯으세요!"
"꼭 그래야 한다면."
지금까지 루카스는 릴라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 곡이 끝나고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나왔다.
나는 오디오에 손을 뻗었다.
"봐도 돼요?"
루카스가 지나치게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곧이어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손을 저었다.
"진정해요. 음악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래요."
나는 루카스의 블루투스에 연결된 곡들을 훑어 보았다.
빼어난 취향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
내 음악 취향이 훨씬 더 다양했다.
마음이 흡족해져 미소가 피어올랐다.
"뭘 보고 히죽거려요, 거기?"
루카스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음, 당신보다 내가 음악 취향이 더 좋아서요."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 취향이 독특한 거겠지."
"헉!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러고도 친구가 있어요?"
"친구? 아, 날마다 나 자신한테 던지는 질문이죠. 친구가 있는지."
루카스가 플라스틱 빨대를 우적우적 씹었다.
"진심으로 안타깝네요. 그러니까 다들 당신이 너무 춥다고 하지."
내 말에 루카스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지만,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말, 안 궁금해. 춥든 말든, 당신한테는 안 추울텐데?"
"네?"
"알면서, 내가 얼마나 당신한테 열정적인지, 안 그래요?"
"헉!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당했다.
"자꾸 거짓말하면 지옥 가요."
나는 나직이 말했다.
"벌써 와 있어."
루카스가 태연하게 말하고는 입에서 빨대를 빼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루카스와 있으면 그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순간순간이 그랬다.
우리 옆쪽과 위쪽에서 이리저리 뒤엉킨 고가도로가 보였다.
이쪽 고속도로에서는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보였다.
차가 남쪽을 향해 달리는 동안 루카스와 나는 내내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풍경이 바뀌어 고속도로 양쪽으로 바다가 보였다.
도로는 4차선에서 2차선으로 좁아졌고, 우리 앞에 가파른 높은 다리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매우 가파르고, 매우 높은 다리였다.
우리는 정지등을 켠 기나긴 자동차 행렬을 뒤따라 가고 있었는데, 이 행렬은 우리 앞의 고가도로를 타고 기어 올라갔다.
목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손으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콘솔을 꽉 움켜쥐었다.
높은 곳은 질색이다.
나는 앞쪽이나 옆쪽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곳을 보면 청록색 바닷물과 스카이라인이 서서히 줄어드는 게 보였다.
루카스가 제 손을 내 손위에 살짝 닿을락말락하게 올렸다.
하지만 나는 루카스의 손이 느껴졌다.
루카스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는 미소를 살포시 머금고 앞쪽만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전염성 있는 미소였다.
나도 미소를 머금었다.
그 응답으로 루카스가 콘솔 위에 있는 내 손에 깍지를 꼈다.
내 손을 잡은 루카스의 손에 완전히 넋이 나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다행이네."
"높은 곳에 익숙지 않아요. 그냥, 높은 곳은 무서워요."
"아......"
"당신은 무서워하는 거 있어요?"
내가 물었다.
루카스의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했다.
"뭐예요? 음, 난 벌써 보여 줬는......"
나는 대답을 재촉했다.
"가짜들이 무서워요."
가짜들.
지금 나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 둘 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진짜인 척 꾸미는 거. 공허해."
루카스가 단조롭게 말했다.
그리고 손깍지를 풀더니 제 손바닥을 내 손등 위에 갖다 댔다.
루카스의 손 안에 내 손이 쏙 들어갈 것 같았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손을 홱 뒤집어 루카스의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그 다음에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루카스의 얼굴을 살폈다.
검은 선글라스 아래로 아무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억지로 그의 손을 잡고 있는지, 그가 손을 내려놓은 것뿐인지, 그게 아니면......
선글라스 뒤에 감춰진 그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누가 뭐래도 나는 사기꾼이예요. 나만의 삶을 사는 배우."
갑작스러운 루카스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루카스가 내가 잡고 있던 손을 빼내서, 바다 건너에 보이는 엄청나게 큰 금색 반구형 지붕을 가리켰다.
"보이죠? 해양 수족관."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카스가 한 손으로 자기 호주머니를 뒤적였다.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이고 콧구멍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가야겠다."
루카스가 나를 도로 집에 데려다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나는 그러기 싫었다.
"루카스, 나는......"
"다음에 같이 갈래요? 해양 수족관 . 저기 범고래가 있거든요."
"아......좋아요"
"범고래 이름이 루키예요."
"아......"
그러고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는데, 해양 수족관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약간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가자 붐비는 구역이 나왔다.
복숭아색, 오렌지색, 분홍색으로 칠한 상자 모양의 집들이 들어차 있고, 창문에는 창살이 덧대져 있었다.
모든 것이 스페인어로 쓰여 있었다.
표지판과 상점 간판 모두가.
나는 창 밖 풍경을 살피면서 지금 옆에 있는 루카스가, 내가 뭔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말했다.
"그런데, 저기, 본 적 있어요?......그 루키?"
내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지금 무슨 말 한 거니?
생각해낸 말이 고작!
에휴!
"동물 보호 단체에 후원하고 있는데, 그래서 루키를 알게 됐죠."
루카스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데, 눈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올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루키를 위해 더 큰 수조를 마련하기 위한 기금 모금 행사도 몇 번 열었어요."
루카스가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
콧구멍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내자, 연기가 루카스 주위에 자욱하게 맴돌다가 열린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 밖에 허리케인이 불고 있다 해도 내 알 바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배 고프죠?"
"아, 네."
사실 배가 너무 고파서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가 급하게 우회전을 했다.
그리고 방향을 틀어 북적거리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화창한 날씨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길거리는 활기에 넘쳤다.
루카스가 길가에 차를 세우는데 때마침 노래가 끝났다.
나는 그가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느새 이런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노인들이 앉아 도미노 게임을 하고 있는 작은 공원을 지나갔다.
공원 한 쪽 벽에는 크고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게임용 탁자들 위로는 줄무늬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이제껏 그와 비슷한 광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다 왔어요."
루카스가 내 손을 잡았다.
***
루카스가 앞장서서 북적거리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을 잡은 나는 몸이 따스해지는 걸 느꼈다.
나는 음식점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얼마 전에 처음 만난 사람 같지 않았다.
차갑고, 거리를 두고, 건드릴 수 없는 루카스 해리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나를 데리러 온 그는 ,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는 남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나뿐일거라 여기고 행복한 이 순간을 즐겼다.
우리는 창가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손을 잡은 루카스의 손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루카스를 올려다보았다.
"루카스?"
나는 이유를 모른 채 겁에 질렸다.
"괜찮아요?"
"잠깐만 기다려요."
그가 냉정히 말했다.
그리고 내 손을 놓았다.
"금방 올게."
루카스가 방금 지나온 통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더니 음식점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약간 멍한 상태로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찬찬히 읽었다.
그러다가 목이 말라서 웨이터를 찾아보려 고개를 들고 음식점을 한 바퀴 훑다가 누군가를 보았다.
어떤 남자가 모자챙 아래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 서서.
"여기서 가장 예쁜 여자가 된 기분이 어때요?"
외국인 억양이 배어 있는 목소리에 움찔했다.
루카스가 아니었다.
금발 머리에 엷은 갈색 눈을 지닌 피부가 까만 남자가 진심 어린 표정으로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남자가 슬그머니 내 앞자리에 앉았다.
보아하니 내 대답을 기다릴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나는 남자를 째려보았다.
"다른 사람 자리예요."
루카스는 어디 갔을까?
"저런? 남자친구?"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친구."
남자가 더 활짝 웃었다.
"그 남자 바보네요."
"뭐라구요?"
"그냥 친구라니 바보라고요. 나 같으면 당신하고 그냥 친구로 지내는 건 못 참을 것 같은데, 그런 그렇고 , 내 이름은 쟈드."
나는 코웃음을 쳤다.
"쟈드, 다행히도 , 당신이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그래요? 왜요?"
이 남자 뭐야?
"당신은 곧 자리를 뜰 거니까. 이제 그만 하지."
내 뒤에서 루카스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살짝 돌려 위를 올려다보았다.
루카스가 바로 뒤에 서서 내 머리 위로 몸을 살짝 숙이고 있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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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별을 좋아하나요? 33 화조회 : 3,399 추천 : 4 댓글 : 4 글자 : 5,482 32.별을 좋아하나요? 32 화조회 : 3,336 추천 : 5 댓글 : 4 글자 : 7,267 31.별을 좋아하나요? 31 화조회 : 3,210 추천 : 4 댓글 : 1 글자 : 4,994 30.별을 좋아하나요? 30 화조회 : 3,193 추천 : 4 댓글 : 1 글자 : 5,545 29.별을 좋아하나요? 29 화조회 : 3,247 추천 : 4 댓글 : 1 글자 : 5,011 28.별을 좋아하나요? 28 화조회 : 3,019 추천 : 5 댓글 : 1 글자 : 5,247 27.별을 좋아하나요? 27 화조회 : 2,891 추천 : 4 댓글 : 1 글자 : 6,359 26.별을 좋아하나요? 26 화조회 : 2,002 추천 : 6 댓글 : 1 글자 : 5,249 25.별을 좋아하나요? 25 화조회 : 2,108 추천 : 4 댓글 : 1 글자 : 5,131 24.별을 좋아하나요? 24 화조회 : 1,963 추천 : 4 댓글 : 2 글자 : 5,665 23.별을 좋아하나요? 23 화조회 : 1,958 추천 : 4 댓글 : 1 글자 : 3,619 22.별을 좋아하나요? 22 화조회 : 1,955 추천 : 5 댓글 : 1 글자 : 6,208 21.별을 좋아하나요? 21 화조회 : 1,911 추천 : 6 댓글 : 1 글자 : 4,823 20.별을 좋아하나요? 20 화조회 : 1,923 추천 : 4 댓글 : 2 글자 : 6,437 19.별을 좋아하나요? 19 화조회 : 2,032 추천 : 6 댓글 : 1 글자 : 5,113 18.별을 좋아하나요? 18 화조회 : 2,111 추천 : 6 댓글 : 1 글자 : 6,374 17.별을 좋아하나요? 17 화조회 : 1,981 추천 : 7 댓글 : 2 글자 : 5,508 16.별을 좋아하나요? 16 화조회 : 1,869 추천 : 5 댓글 : 2 글자 : 5,298 15.별을 좋아하나요? 15 화조회 : 1,926 추천 : 7 댓글 : 2 글자 : 5,885 14.별을 좋아하나요? 14 화조회 : 1,947 추천 : 7 댓글 : 1 글자 : 5,493 13.별을 좋아하나요? 13 화조회 : 2,129 추천 : 8 댓글 : 2 글자 : 5,581 12.별을 좋아하나요? 12 화조회 : 2,013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386 11.별을 좋아하나요? 11 화조회 : 1,907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265 10.별을 좋아하나요? 10 화조회 : 1,952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480 9.별을 좋아하나요? 9 화조회 : 1,985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972 8.별을 좋아하나요? 8 화조회 : 2,089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764 7.별을 좋아하나요? 7 화조회 : 2,085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489 6.별을 좋아하나요? 6 화조회 : 1,939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442 5.별을 좋아하나요? 5 화조회 : 1,990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830 4.별을 좋아하나요? 4 화조회 : 2,018 추천 : 6 댓글 : 1 글자 : 5,322 3.별을 좋아하나요? 3 화조회 : 2,565 추천 : 6 댓글 : 2 글자 : 5,998 2.별을 좋아하나요? 2 화조회 : 2,441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337 1.별을 좋아하나요? 1 화조회 : 7,119 추천 : 7 댓글 : 7 글자 : 4,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