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좋아하나요? 3 화
조회 : 2,599 추천 : 6 글자수 : 5,998 자 2022-09-12
"헤일리 , 안나 잘 부탁해. 갑자기 떠나게 될 줄은 몰랐어. 이번 달 내로 가게 될 거라고 했는데, 어제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와서 같이 출연하는 소피아가 아파 눕는 바람에 내 촬영이 앞당겨졌다는 거야. 그래서 오전에 급히 일정을 조율 하느라 공항에도 못 나가고."
"언제 떠나?"
"오늘 밤에. 1주일 정도 될 거야. 가능한 빨리 돌아오도록 할게."
나는 릴라의 갑작스러운 촬영 소식에 약간 놀랐다.
"언니, 새로 영화 찍는 거야?"
"응. 사실 이번 영화 주연은 소피아인데, 주연 배우가 아프니까 그 공백을 이용해서 다른 장면을 미리 찍어 두겠다는 거야. 제작 일정에 맞추려고. 그래서 급하게 내 역을 미리 찍게 되었어. 얼른 돌아올게."
괜히 영화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 나로 인해 성가시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어 미안해졌다.
"또! 또! 입술 깨물지! 안나! "
나는 속상해 하면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다.
"안나, 알지? 아무리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내 동생보다 중요하겠니? 미안해 하지도 속상해 하지도 마! 알겠지?"
릴라가 내 손을 꼬옥 잡으며 웃었다.
나는 릴라의 눈빛에 담긴 사랑을 느끼고 순간 울컥해졌다.
"OK! 걱정 말고 다녀와. 언니가 새로운 영화에 출연 한다니, 너무 기대 되는데! 촬영지는 어디야? "
나는 곧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감추며 되물었다.
"하와이."
"우와! 하와이에서 촬영을 한다고? 너무 부러워, 언니. 나 하와이 한번도 가 보지 못했는데."
"그래? 다음에 우리 함께 놀러 가자."
"나도! 나도!"
릴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헤일리가 외쳤다.
"릴라, 네가 없는 동안 안나는 내가 잘 보살펴 줄게. 안나에게 당장 필요한 콘택트렌즈랑 수영복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마워,헤일리.아, 맞다! 마침 근처 이웃들도 지금 다들 집에 없어서 안나가 해변을 독차지 할 수 있겠다. 앤더슨씨 부부는 일본에 가 있는 아들을 방문하러 갔고, 옆집 루카스도 지금 없거든. 영화 촬영 때문에 밀라노에 가 있어."
"음......우리의 루카스 해리스씨는 영화 촬영과 별개로 평상시에도 볼 수 없잖아? 그러고 보니 루카스도 곰팡이류네. 안나처럼."
나는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하며 헤일리를 쳐다보았다.
"아니야. 가끔 바다에서 수영하기도 해. 안나, 루카스가 도미닉이야!"
"도미닉? 도미닉 레드메인!"
나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래! 안나의 뱀파이어 왕자님!"
릴라가 체셔 고양이처럼 씨익 웃었다.
"세상에! 안나! 혹시 루카스가 첫사랑이야? 아니지?"
헤일리의 갈색 눈이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
도미닉 레드메인.
우중충한 회색 건물 밖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흑백 배경에 그의 모습만 천연색으로 부각된 한 장의 예술 사진 같았다.
큰 키에 마른 체격, 새까만 머리칼과 창백하고 투명한 피부, 커다랗고 짙은 호박색 눈동자.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가 화면 가득 비춰졌을 때 내 귀에 들리는 것은 가슴속에서 쿵쿵 뛰는 심장 고동 소리 뿐이었다.
***
"안나가 내가 찍은 영화 상대 배우에 대해 물은 건 그때 뿐 일거야. 아니, 남자에 대해 관심을 표현한 것도 루카스가 처음일 걸?"
"이런, 안나도 어쩔 수 없었네. 그때 아마 지구 상의 모든 소녀가 아니 할머니까지 도미닉에게 빠져있었으니까."
"루카스와 같은 에이전시라서 운 좋게 내가 상대 역으로 캐스팅 되었잖아. 감히 내가 루카스 해리스의 상대 역이라니! 그때 이미 루카스는 어마어마했으니까."
"릴라, 넌 항상 루카스에게 고마워해야 해. 그 영화 덕분에 지금 성공했잖아."
나는 멍한 얼굴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하네. 릴라, 그 영화 여주인공 이름이 안나였지?"
"맞아! 나도 처음 대본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더 신기한 건 영화 속 안나 이미지가 우리 안나와 너무 비슷해서 내가 우리 안나 모습 떠올리면서 연기 했잖아.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 안나."
"음......그건 그래. 릴라, 우리가 사랑스럽긴 하지만 순진하진 않지."
헤일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릴라로부터 연락이 왔다.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 주인공 역을 하게 되었다면서 기뻐했다.
릴라가 처음으로 맡은 주인공 역할이었다.
나는 영화 개봉일에 극장에 갔다.
영화속 주인공 도미닉이 나와 같은 얼굴의 릴라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를 안나라고 불렀다.
그의 호박색 눈동자가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그가 미소를 짓는다.
내 맥박이 허락도 없이 마구 뛰었다.
"우리 순진한 아가씨가 뱀파이어를 사랑하다니. 안나, 미안하지만 루카스는 안돼."
"헤일리, 걱정 마. 이미 오래전 첫사랑이니까. 그렇지? 안나?"
"어......"
"릴라, 그 영화 개봉 되고 너와 루카스가 실제로 연인이 아니냐고 사람들이 얼마나 말이 많았니? 결국 우리의 뱀파이어 왕자님께서 천사와 결혼 했지만. 아, 그때 충격이란!"
헤일리가 릴라를 힐끗 보고 나서 내게 눈길을 돌렸다.
"안나, 모르는구나. 루카스 결혼 했잖아. 빅시 엔젤이랑. 망할 올리비아 곤잘레스!"
헤일리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헤일리, 당연히 안나는 모르지. 그동안 공부한다고 잠잘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그치?"
"어......"
"안나, 혹시 빅토리아시크릿(Victoria'Secret)은 들어봤니? 속옷 브랜드."
"아......응."
"빅토리아시크릿(Victoria'Secret)모델을 엔젤이라고 불러."
그가 결혼했구나!
나는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몇 번인가 극장에 갔었다.
도미닉을 보기위해.
그 후로는 힘든 학교 수업을 따라가느라 그에 대해 까맣게 잊었다.
"뱀파이어와 엔젤이라니...... 처음부터 말이 안되잖아. 그러니 결국 결혼 1년도 안되어서 이혼한 건 당연한 거지."
헤일리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루카스와 이혼하고 올리비아는 바로 선박 회사 CEO와 재혼 했잖아. 뭐 그 결혼도 오래 못 갔지만."
릴라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루카스가 진짜 뱀파이어처럼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전부 망할 올리비아 때문이야! 올리비아와 이혼 후에 한번도 누구를 사귄 적 없잖아. 사귀긴 커녕, 여자들 근처엔 오지도 않고. 아......슬프다. 만인의 연인, 우리의 도미닉."
"음......헤일리, 루카스가 약간 개인적으로 여자들에게는 거리를 두는 것 같지만 그것 빼고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같이 일하는 스탭들도 잘 챙겨주고. 얼마 전에도 작품 끝나고 스탭들한테 수고했다고 명품 시계를 선물 했다고 들었어."
"하긴 인성 좋은 것은 인정! 그치만 너무 다가가기 힘들잖아. 가끔 파티에 와서도 여자들한테는 눈길 한번 안 주는 거 보면, 너무 춥다."
헤일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안나가 루카스와 마주칠 일은 없을 거야. 당분간 영화 촬영 때문에 집에 없으니까. 혹시 마주친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거 없어. 평소에도 가끔 마주치면 서로 안부 인사 나누는 편안한 이웃 사이야."
"하긴 루카스가 이웃으로는 최고지. 릴라가 아무리 소란스러운 파티를 해도 한번도 뭐라 한 적 없지?"
"그래"
"아무튼 안나의 뱀파이어 왕자님은 관 속에 누워 잠만 자는 듯하니까. 안나, 여기서 지내는 동안은 편안하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나랑 즐겁게 지내자!"
헤일리가 활짝 웃으며 윙크했다.
"응."
나도 헤일리에게 윙크하며 대답했다.
"근데, 혹시 알아? 뱀파이어 왕자님을 잠에서 깨어나게 해 줄 공주님이 나타날지?"
헤일리가 나를 보며 킥킥거렸다.
못됐어.
나는 눈을 부라렸지만,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
나와 내일 시내에 쇼핑을 가기로 약속을 하고 헤일리는 돌아갔다.
"안나, 집 구경 하고 싶지?"
"응. 안 그래도 너무 궁금해. 어서 보여 줘."
"이리 와. 이혼하면서 이 집을 샀어. 처음 이 집을 본 순간 바로 내가 원하던 집이라고 생각했어."
릴라는 인기 있는 영국 출신 뮤지션과 결혼 했었다.
나는 릴라가 벽에 걸린 그림과 조각상들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집 전체가 그야말로 집이라기 보다는 영화 촬영장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는데 그것이 릴라의 스타일에 아주 잘 어울렸다.
큰 집을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나는 릴라가 감히 내가 꿈 꿀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릴라는 이미 사회적으로 최상류층의 세계에 살고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 팬들에게 사랑 받고 유명인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릴라는 전남편과 이혼하고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집 안을 다 둘러 보았을 때 릴라가 나의 가방을 들고 침실 하나로 데리고 들어갔다.
"내가 없는 동안 이 방에서 지내도록 해. 거품 욕조까지 있으니까 아주 편할 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이니까 너도 분명 좋아 할 것 같은데,어때?"
역시 그랬다.
나는 그 방이 마음에 들었다.
양 벽이 거의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방 안이라기 보다는 바깥에 나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커다란 욕실은 런던 내 아파트의 방보다 더 커 보였고 거품 욕조는 대여섯 명이 들어가서 뛰어 놀아도 될 정도로 컸다.
"여기는 드레스룸이야."
릴라는 커다란 벽장으로 걸어가서 내 가방을 내려놓았다.
커다란 벽장 속에 가득 진열된 릴라의 옷들을 보면서 나는 놀라움을 애써 감추었다.
대담하고 화려한 디자인과 색상의 옷들이 나의 소박한 옷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걸 입어도 돼. 이제 런던에 있는 게 아니니까 과감하게 변신하는 거야."
릴라가 옷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게 어울리는 옷들이 아니야."
"왜? 그러지 말고 한 번이라도 입어 봐."
"언니, 내가 소화하기에 너무 벅찬 옷들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니 생활은 나와는 너무 달라. 그래서 때때로 언니가 부럽기도 해."
"난 네가 부러운 걸. 원래 남의 그릇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잖아. 우리 그럼 한번 바꿔 볼래? 어릴 때처럼?"
릴라가 짓궂게 말하면서 싱긋 웃었다.
내가 부럽다고?
나를 부러워한다는 릴라의 말에 다소 놀랐다.
어릴 적부터 릴라와 나는 너무도 달랐다.
나와는 다르게 언제나 솔직하게 좋고 싫음을 ,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릴라가 나는 부러웠다.
"안나, 여기 있는 동안은 뭐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해봐. 모처럼 황금 같은 휴가를 받아서 온 거잖아. 맞다! 나 인 척 여기저기 파티에도 가 보고. 최대한 즐겁게 보내. 그리고 치과의사 그 자식에 대한 감정도 정리해 버려. 그리고 새로 찾아보는 거야.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옷걸이에 걸린 원피스 하나를 집어 들어서 몸에 대어 보았다.
들고 있는 옷을 입는다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면서 거울 속을 바라보았다.
한순간이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릴라인 것처럼 가장하고 우아한 릴라의 옷을 입고 차고에 세워져 있는 반짝이는 은색 BMW컨버터블의 지붕을 열어 젖히고 신나게 달리는 모습이었다.
런던의 조용한 치과의사에서 완전히 변신한다?
릴라의 말처럼 단지 하루나 이틀만이라도?
"언제 떠나?"
"오늘 밤에. 1주일 정도 될 거야. 가능한 빨리 돌아오도록 할게."
나는 릴라의 갑작스러운 촬영 소식에 약간 놀랐다.
"언니, 새로 영화 찍는 거야?"
"응. 사실 이번 영화 주연은 소피아인데, 주연 배우가 아프니까 그 공백을 이용해서 다른 장면을 미리 찍어 두겠다는 거야. 제작 일정에 맞추려고. 그래서 급하게 내 역을 미리 찍게 되었어. 얼른 돌아올게."
괜히 영화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 나로 인해 성가시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어 미안해졌다.
"또! 또! 입술 깨물지! 안나! "
나는 속상해 하면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다.
"안나, 알지? 아무리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내 동생보다 중요하겠니? 미안해 하지도 속상해 하지도 마! 알겠지?"
릴라가 내 손을 꼬옥 잡으며 웃었다.
나는 릴라의 눈빛에 담긴 사랑을 느끼고 순간 울컥해졌다.
"OK! 걱정 말고 다녀와. 언니가 새로운 영화에 출연 한다니, 너무 기대 되는데! 촬영지는 어디야? "
나는 곧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감추며 되물었다.
"하와이."
"우와! 하와이에서 촬영을 한다고? 너무 부러워, 언니. 나 하와이 한번도 가 보지 못했는데."
"그래? 다음에 우리 함께 놀러 가자."
"나도! 나도!"
릴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헤일리가 외쳤다.
"릴라, 네가 없는 동안 안나는 내가 잘 보살펴 줄게. 안나에게 당장 필요한 콘택트렌즈랑 수영복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마워,헤일리.아, 맞다! 마침 근처 이웃들도 지금 다들 집에 없어서 안나가 해변을 독차지 할 수 있겠다. 앤더슨씨 부부는 일본에 가 있는 아들을 방문하러 갔고, 옆집 루카스도 지금 없거든. 영화 촬영 때문에 밀라노에 가 있어."
"음......우리의 루카스 해리스씨는 영화 촬영과 별개로 평상시에도 볼 수 없잖아? 그러고 보니 루카스도 곰팡이류네. 안나처럼."
나는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하며 헤일리를 쳐다보았다.
"아니야. 가끔 바다에서 수영하기도 해. 안나, 루카스가 도미닉이야!"
"도미닉? 도미닉 레드메인!"
나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래! 안나의 뱀파이어 왕자님!"
릴라가 체셔 고양이처럼 씨익 웃었다.
"세상에! 안나! 혹시 루카스가 첫사랑이야? 아니지?"
헤일리의 갈색 눈이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
도미닉 레드메인.
우중충한 회색 건물 밖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흑백 배경에 그의 모습만 천연색으로 부각된 한 장의 예술 사진 같았다.
큰 키에 마른 체격, 새까만 머리칼과 창백하고 투명한 피부, 커다랗고 짙은 호박색 눈동자.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가 화면 가득 비춰졌을 때 내 귀에 들리는 것은 가슴속에서 쿵쿵 뛰는 심장 고동 소리 뿐이었다.
***
"안나가 내가 찍은 영화 상대 배우에 대해 물은 건 그때 뿐 일거야. 아니, 남자에 대해 관심을 표현한 것도 루카스가 처음일 걸?"
"이런, 안나도 어쩔 수 없었네. 그때 아마 지구 상의 모든 소녀가 아니 할머니까지 도미닉에게 빠져있었으니까."
"루카스와 같은 에이전시라서 운 좋게 내가 상대 역으로 캐스팅 되었잖아. 감히 내가 루카스 해리스의 상대 역이라니! 그때 이미 루카스는 어마어마했으니까."
"릴라, 넌 항상 루카스에게 고마워해야 해. 그 영화 덕분에 지금 성공했잖아."
나는 멍한 얼굴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하네. 릴라, 그 영화 여주인공 이름이 안나였지?"
"맞아! 나도 처음 대본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더 신기한 건 영화 속 안나 이미지가 우리 안나와 너무 비슷해서 내가 우리 안나 모습 떠올리면서 연기 했잖아.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 안나."
"음......그건 그래. 릴라, 우리가 사랑스럽긴 하지만 순진하진 않지."
헤일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릴라로부터 연락이 왔다.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 주인공 역을 하게 되었다면서 기뻐했다.
릴라가 처음으로 맡은 주인공 역할이었다.
나는 영화 개봉일에 극장에 갔다.
영화속 주인공 도미닉이 나와 같은 얼굴의 릴라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를 안나라고 불렀다.
그의 호박색 눈동자가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그가 미소를 짓는다.
내 맥박이 허락도 없이 마구 뛰었다.
"우리 순진한 아가씨가 뱀파이어를 사랑하다니. 안나, 미안하지만 루카스는 안돼."
"헤일리, 걱정 마. 이미 오래전 첫사랑이니까. 그렇지? 안나?"
"어......"
"릴라, 그 영화 개봉 되고 너와 루카스가 실제로 연인이 아니냐고 사람들이 얼마나 말이 많았니? 결국 우리의 뱀파이어 왕자님께서 천사와 결혼 했지만. 아, 그때 충격이란!"
헤일리가 릴라를 힐끗 보고 나서 내게 눈길을 돌렸다.
"안나, 모르는구나. 루카스 결혼 했잖아. 빅시 엔젤이랑. 망할 올리비아 곤잘레스!"
헤일리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헤일리, 당연히 안나는 모르지. 그동안 공부한다고 잠잘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그치?"
"어......"
"안나, 혹시 빅토리아시크릿(Victoria'Secret)은 들어봤니? 속옷 브랜드."
"아......응."
"빅토리아시크릿(Victoria'Secret)모델을 엔젤이라고 불러."
그가 결혼했구나!
나는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몇 번인가 극장에 갔었다.
도미닉을 보기위해.
그 후로는 힘든 학교 수업을 따라가느라 그에 대해 까맣게 잊었다.
"뱀파이어와 엔젤이라니...... 처음부터 말이 안되잖아. 그러니 결국 결혼 1년도 안되어서 이혼한 건 당연한 거지."
헤일리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루카스와 이혼하고 올리비아는 바로 선박 회사 CEO와 재혼 했잖아. 뭐 그 결혼도 오래 못 갔지만."
릴라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루카스가 진짜 뱀파이어처럼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전부 망할 올리비아 때문이야! 올리비아와 이혼 후에 한번도 누구를 사귄 적 없잖아. 사귀긴 커녕, 여자들 근처엔 오지도 않고. 아......슬프다. 만인의 연인, 우리의 도미닉."
"음......헤일리, 루카스가 약간 개인적으로 여자들에게는 거리를 두는 것 같지만 그것 빼고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같이 일하는 스탭들도 잘 챙겨주고. 얼마 전에도 작품 끝나고 스탭들한테 수고했다고 명품 시계를 선물 했다고 들었어."
"하긴 인성 좋은 것은 인정! 그치만 너무 다가가기 힘들잖아. 가끔 파티에 와서도 여자들한테는 눈길 한번 안 주는 거 보면, 너무 춥다."
헤일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안나가 루카스와 마주칠 일은 없을 거야. 당분간 영화 촬영 때문에 집에 없으니까. 혹시 마주친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거 없어. 평소에도 가끔 마주치면 서로 안부 인사 나누는 편안한 이웃 사이야."
"하긴 루카스가 이웃으로는 최고지. 릴라가 아무리 소란스러운 파티를 해도 한번도 뭐라 한 적 없지?"
"그래"
"아무튼 안나의 뱀파이어 왕자님은 관 속에 누워 잠만 자는 듯하니까. 안나, 여기서 지내는 동안은 편안하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나랑 즐겁게 지내자!"
헤일리가 활짝 웃으며 윙크했다.
"응."
나도 헤일리에게 윙크하며 대답했다.
"근데, 혹시 알아? 뱀파이어 왕자님을 잠에서 깨어나게 해 줄 공주님이 나타날지?"
헤일리가 나를 보며 킥킥거렸다.
못됐어.
나는 눈을 부라렸지만,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
나와 내일 시내에 쇼핑을 가기로 약속을 하고 헤일리는 돌아갔다.
"안나, 집 구경 하고 싶지?"
"응. 안 그래도 너무 궁금해. 어서 보여 줘."
"이리 와. 이혼하면서 이 집을 샀어. 처음 이 집을 본 순간 바로 내가 원하던 집이라고 생각했어."
릴라는 인기 있는 영국 출신 뮤지션과 결혼 했었다.
나는 릴라가 벽에 걸린 그림과 조각상들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집 전체가 그야말로 집이라기 보다는 영화 촬영장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는데 그것이 릴라의 스타일에 아주 잘 어울렸다.
큰 집을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나는 릴라가 감히 내가 꿈 꿀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릴라는 이미 사회적으로 최상류층의 세계에 살고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 팬들에게 사랑 받고 유명인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릴라는 전남편과 이혼하고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집 안을 다 둘러 보았을 때 릴라가 나의 가방을 들고 침실 하나로 데리고 들어갔다.
"내가 없는 동안 이 방에서 지내도록 해. 거품 욕조까지 있으니까 아주 편할 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이니까 너도 분명 좋아 할 것 같은데,어때?"
역시 그랬다.
나는 그 방이 마음에 들었다.
양 벽이 거의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방 안이라기 보다는 바깥에 나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커다란 욕실은 런던 내 아파트의 방보다 더 커 보였고 거품 욕조는 대여섯 명이 들어가서 뛰어 놀아도 될 정도로 컸다.
"여기는 드레스룸이야."
릴라는 커다란 벽장으로 걸어가서 내 가방을 내려놓았다.
커다란 벽장 속에 가득 진열된 릴라의 옷들을 보면서 나는 놀라움을 애써 감추었다.
대담하고 화려한 디자인과 색상의 옷들이 나의 소박한 옷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걸 입어도 돼. 이제 런던에 있는 게 아니니까 과감하게 변신하는 거야."
릴라가 옷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게 어울리는 옷들이 아니야."
"왜? 그러지 말고 한 번이라도 입어 봐."
"언니, 내가 소화하기에 너무 벅찬 옷들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니 생활은 나와는 너무 달라. 그래서 때때로 언니가 부럽기도 해."
"난 네가 부러운 걸. 원래 남의 그릇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잖아. 우리 그럼 한번 바꿔 볼래? 어릴 때처럼?"
릴라가 짓궂게 말하면서 싱긋 웃었다.
내가 부럽다고?
나를 부러워한다는 릴라의 말에 다소 놀랐다.
어릴 적부터 릴라와 나는 너무도 달랐다.
나와는 다르게 언제나 솔직하게 좋고 싫음을 ,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릴라가 나는 부러웠다.
"안나, 여기 있는 동안은 뭐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해봐. 모처럼 황금 같은 휴가를 받아서 온 거잖아. 맞다! 나 인 척 여기저기 파티에도 가 보고. 최대한 즐겁게 보내. 그리고 치과의사 그 자식에 대한 감정도 정리해 버려. 그리고 새로 찾아보는 거야.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옷걸이에 걸린 원피스 하나를 집어 들어서 몸에 대어 보았다.
들고 있는 옷을 입는다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면서 거울 속을 바라보았다.
한순간이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릴라인 것처럼 가장하고 우아한 릴라의 옷을 입고 차고에 세워져 있는 반짝이는 은색 BMW컨버터블의 지붕을 열어 젖히고 신나게 달리는 모습이었다.
런던의 조용한 치과의사에서 완전히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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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별을 좋아하나요? 33 화조회 : 3,807 추천 : 4 댓글 : 4 글자 : 5,482 32.별을 좋아하나요? 32 화조회 : 3,918 추천 : 5 댓글 : 4 글자 : 7,267 31.별을 좋아하나요? 31 화조회 : 3,567 추천 : 4 댓글 : 1 글자 : 4,994 30.별을 좋아하나요? 30 화조회 : 3,596 추천 : 4 댓글 : 1 글자 : 5,545 29.별을 좋아하나요? 29 화조회 : 3,776 추천 : 4 댓글 : 1 글자 : 5,011 28.별을 좋아하나요? 28 화조회 : 3,548 추천 : 5 댓글 : 1 글자 : 5,247 27.별을 좋아하나요? 27 화조회 : 3,199 추천 : 4 댓글 : 1 글자 : 6,359 26.별을 좋아하나요? 26 화조회 : 2,015 추천 : 6 댓글 : 1 글자 : 5,249 25.별을 좋아하나요? 25 화조회 : 2,127 추천 : 4 댓글 : 1 글자 : 5,131 24.별을 좋아하나요? 24 화조회 : 1,986 추천 : 4 댓글 : 2 글자 : 5,665 23.별을 좋아하나요? 23 화조회 : 1,983 추천 : 4 댓글 : 1 글자 : 3,619 22.별을 좋아하나요? 22 화조회 : 1,970 추천 : 5 댓글 : 1 글자 : 6,208 21.별을 좋아하나요? 21 화조회 : 1,921 추천 : 6 댓글 : 1 글자 : 4,823 20.별을 좋아하나요? 20 화조회 : 1,953 추천 : 4 댓글 : 2 글자 : 6,437 19.별을 좋아하나요? 19 화조회 : 2,046 추천 : 6 댓글 : 1 글자 : 5,113 18.별을 좋아하나요? 18 화조회 : 2,124 추천 : 6 댓글 : 1 글자 : 6,374 17.별을 좋아하나요? 17 화조회 : 1,991 추천 : 7 댓글 : 2 글자 : 5,508 16.별을 좋아하나요? 16 화조회 : 1,872 추천 : 5 댓글 : 2 글자 : 5,298 15.별을 좋아하나요? 15 화조회 : 1,935 추천 : 7 댓글 : 2 글자 : 5,885 14.별을 좋아하나요? 14 화조회 : 1,952 추천 : 7 댓글 : 1 글자 : 5,493 13.별을 좋아하나요? 13 화조회 : 2,129 추천 : 8 댓글 : 2 글자 : 5,581 12.별을 좋아하나요? 12 화조회 : 2,378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386 11.별을 좋아하나요? 11 화조회 : 1,920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265 10.별을 좋아하나요? 10 화조회 : 1,952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480 9.별을 좋아하나요? 9 화조회 : 1,991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972 8.별을 좋아하나요? 8 화조회 : 2,089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764 7.별을 좋아하나요? 7 화조회 : 2,093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489 6.별을 좋아하나요? 6 화조회 : 1,958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442 5.별을 좋아하나요? 5 화조회 : 1,990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830 4.별을 좋아하나요? 4 화조회 : 2,028 추천 : 6 댓글 : 1 글자 : 5,322 3.별을 좋아하나요? 3 화조회 : 2,607 추천 : 6 댓글 : 2 글자 : 5,998 2.별을 좋아하나요? 2 화조회 : 2,638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337 1.별을 좋아하나요? 1 화조회 : 7,553 추천 : 7 댓글 : 7 글자 : 4,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