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좋아하나요? 31 화
조회 : 3,196 추천 : 4 글자수 : 4,994 자 2023-04-17
쟈드라는 남자는 일어서서 제 청바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찾더니 펜을 꺼냈다.
그러고는 냅킨에 뭐라고 끼적거렸다.
"친구가 지겨워질 경우에 대비해서 여기 내 전화번호를 줄게요."
쟈드가 그 냅킨을 슬며시 내 앞으로 밀었다.
내 어깨 위에서 내려온 루카스의 손이 그 냅킨을 집었다.
쟈드가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그녀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두시죠."
루카스가 가만히 서서 쟈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재미있다는 듯 눈빛을 번득였다.
"물론이야."
루카스가 나를 향해 눈썹을 치켜 올리며 한마디 했다.
"그 자리에 주인이 있다고 했죠?"
나는 쟈드를 쏘아보았다.
"틀림없이 그랬지요."
쟈드가 내 말에 신경쓰지 않다는 듯 히죽히죽 웃었다.
그때 루카스가 너무도 무심하게 쟈드 앞으로 오더니, 프랑스어로 뭐라고 말했다.
쟈드의 얼굴에 점점 불안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도 여기 있을 거야?"
루카스가 이렇게 묻는데, 쟈드는 벌써 자리를 뜨고 있었다.
루카스가 앞자리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관광객들이란."
루카스가 천천히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았지만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사실 마음이 평온했다.
그가 돌아와서 기뻤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눈감아 줄 수는 없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사라졌는지......
"저 남자에게 뭐라고 말했어요?"
"그 얘긴 그만해요."
루카스가 메뉴판을 들어 천천히 살피며 말했다.
"말해주지 않을 거면 아까 그 전화번호 이리 줘요."
하지만 나는 용납하지 않았다.
"당신이 유부녀라고 했어."
루카스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게 다예요?"
나는 의심이 들었다.
"뭐, 거의 그렇게."
루카스가 빙그레 웃으며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창밖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루카스가 나를 보며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웨이터가 다가왔다.
루카스는 내 손에서 메뉴판을 낚아채 건네주며 스페인어로 빠르게 주문했다.
웨이터가 주방쪽으로 갔다.
"나는 아직 안 정했단 말이에요."
나는 언짢은 눈빛으로 루카스를 보았다.
"나를 믿어 봐요."
루카스의 입술에 미소가 살짝 어렸다.
"헉! 나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내 눈썹이 높이 치켜 올라갔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그 이상은 따지지 않았다.
루키스가 짓궂게 웃었다.
"그런데, 프랑스어에 이어 스페인어까지 해요?"
루카스가 천천히 잘난 체하는 웃음을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발, 그렇게 웃지 말라고......
나는 비닐이 씌워진 뜨거운 의자에 앉아 녹아버리지 않으려면 정신을 차려야 했다.
"또 할 줄 아는 말 있어요?"
"글쎄, 얼마나 유창하게 말해야 하는데?"
"그건 상관 없구요"
웨이터가 짙은 빛깔의 병과 불투명한 빛깔의 빈 컵 두 개를 들고 다시 왔다.
그러고는 빈 컵에 캐러멜 색깔 음료를 따라주고 갔다.
"독일어, 스페인어, 네델라드어, 일본어, 그리고 물론 프랑스어."
루카스가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정말, 굉장하네!
"음, 그럼 독일어로 무슨 말 좀 해 봐요."
나도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마지막에는 매콤하게 톡 쏘는 맛이 났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샤이더."
루카스가 말했다.
나는 음료수를 한 번 더 먹어보기로 했다.
"그게 무슨 말인데요?"
다시 음료수를 마셨다.
"여자의 질."
나는 음료수에 목구멍이 막힐 것 같아 손으로 입을 싸맸다.
"훌륭하네요.그게 다예요?"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야 대꾸했다.
"독일어, 네델란드어, 일본어는, 그래요."
"루카스, 왜 질이란 단어를 그 모든 언어로 알고 있는 건데요?"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당신보다 더 교양이 풍부하니까."
루카스가 또다시 음료수를 꿀꺽꿀꺽 마시면서, 나를 보며 웃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그를 한 대 치고 싶었는데, 그전에 웨이터가 바나나 칩처럼 생긴 걸 담은 바구니와 함께 연노랑 빛깔의 끈끈한 소스를 들고 왔다.
"마리끼다스에요. 먹어 봐요. 나한테 고맙다 할 걸."
나는 하나 먹어보았다.
그리고 루카스에게 정말 고맙다고 했다.
달콤한 맛이 살짝 감돌았고, 마늘 맛이 나는 소스 덕분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세상에, 진짜 맛있어요! "
"콧노래가 나올 만큼?"
루카스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웨이터가 다시 와서 음식을 내려놓았다.
쌀과 콩을 빼면 죄다 모르는 것이었다.
가장 희한하게 생긴 것은, 표면이 번들거리도록 튀긴 빵처럼 생긴 요리와, 소스를 잔뜩 끼얹은 두툼한 흰색 채소에 양파를 곁들인 요리였다.
나는 먼저 이 채소 요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유까(Yuca 카사바라고도 불리는 뿌리를 먹는 식물) ."
루카스가 말해주었다.
이번에는 튀긴 빵을 가리켰다.
"플랜테인(Plantain 바나나의 일종) 튀김이에요."
나는 또다시 흔히 스튜라고 불리는 음식이 든 오목한 그릇을 가리켰다.
그런데 루카스가 음식 이름을 말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손가락질만 할 거야, 아니면 먹을 거야?"
"뭔지 알고 나서 먹고 싶은 것 뿐이에요."
루카스가 눈썹을 아치 모양으로 구부렸고, 그 모습에 나는 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죽고 싶었다.
놀랍게도 루카스는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접시를 들고 내게 맛을 보라고 권했다.
배불리 먹고 나자,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져와 루카스 앞에 놓았다.
아까 쟈드의 전화번호를 집어 들던 루카스처럼 나는 계산서를 슬며시 가져와 확인하고 지갑을 찾으러 가방을 뒤적였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루카스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계산 할려구요."
"그게 무슨 말이지?"
"음식을 먹었으니 계산을 해야죠."
"하아, 멋지군. 그런데 왜 당신이 계산을 할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데?"
"그야......"
"그만둬요."
"루카스......"
"그건 그렇고, 당신, 여기 뭐 묻었다."
루카스가 자신의 턱 옆쪽을 가리켰다.
으악!
어떡해!!
"어디요? 여기?"
나는 냅킨 통에서 얼른 냅킨을 한 장 꺼내, 보기 흉하게 음식이 묻었을 만한 곳에 대고 문질렀다.
루카스가 고개를 저었고, 나는 다시 턱을 문질렀다.
"거기 그대로 있어봐요.내가 해 줄게. "
루카스가 고개짓으로 냅킨 통을 가리키고서 나와 눈높이를 맞추려 고개를 숙였다.
음식을 잔뜩 묻힌 아기 얼굴을 닦듯이 내 얼굴을 닦아주려는 것이다.
이게 뭐람!
창피해서 눈을 슬쩍 감고 얼굴에 종이 냅킨이 닿기를 기다렸다.
냅킨 대신 루카스의 손끝이 닿는 게 느껴졌다.
나는 숨을 꾹 참았다.
"고마워요. 완전히 칠칠치 못했죠?"
나직이 말했다.
눈을 뜨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 , 창피해서 정말......
이대로 우주 밖으로 증발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칠칠하게 해줘야겠네."
그제서야 나는 계산서가 사라진 걸 알아챘다.
한눈에 루카스가 가져갔다는 걸 알았다.
아주 교묘했다.
루카스를 째려 보았다.
"미안, 다음 번엔 당신이 계산하면 되잖아."
루카스가 으레 그 희미한 미소로 나를 허물어뜨리며 말했다.
***
30분 뒤에 루카스는 해변가에 있는 컨벤션 센터의 출입구까지 차를 몰고 가더니, 인도 가까이에 차를 세웠다.
'주차 금지' 라고 선명히 새겨진 아스팔트 바닥 위에.
내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루카스를 보았다.
"괜찮아요. 특전이지. "
루카스는 이렇게 말하고 그 건물이 자기 소유라도 되는 것처럼 출입문 쪽으로 걸어 갔다.
헉!
루카스 것이 맞나 보다!
건물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루카스가 손으로 더듬어서 스위치를 켰다.
미술품 때문에 숨이 멎을 뻔했다.
어디에나 미술품이 있었다.
표면이란 표면은 모두 미술품으로 뒤덮여 있었다.
바닥은 그 자체가 미술품으로, 우리 발밑에 지도를 떠올리게 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설치 작품들도 사방에 있었다.
조각품, 사진, 판화.
없는 게 없었다.
"세상에나."
"응?"
"이게 다 뭐예요?"
"내가 이사로 있는 단체에서 기금을 대는 전시회예요. 대략 2천 명 정도의 미술가들이 참여한 것 같아."
"근데, 왜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요?"
"전시회는 5일 동안 열리지 않을 거예요. 여기는 우리 뿐이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루카스를 향해 서서 입을 딱 벌린 채 빤히 쳐다보았다.
루카스 자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또 하나의 특전이지."
그러고는 루카스가 활짝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뭘?"
"내가 미술 작품 감상하는 거 좋아하는 거."
"아, 그냥. 좋아해주니 다행이네."
"고마워요."
"보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 말해요."
우리는 미로 같은 컨벤션 센터를 누비며 전시품들을 감상했다.
나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어떤 방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었다.
금속 작품들로 휘감겨 있는 벽돌, 또는 코바늘로 뜬 크나큰 태피스트리로 뒤덮인 벽돌.
조각품들이 전시된 곳을 돌아다녔다.
사방으로 키 큰 추상 조각품들이 숲처럼 우리를 에워쌌다.
구리와 니켈이 어우러진 조각품들이 내 머리 위로 높이 솟아 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나무나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 규모에 놀랐고, 예술가들이 이런 것을 만들어내기까지 쏟아 부었을 엄청난 노력을 생각하며 또 놀랐다.
그래서 루카스가 나를 여기에 데려왔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좋아할 거라는 걸 알고서 나를 위해 시간을 냈을 것이다.
나는 루카스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때 루카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전에 없이 솔직했다.
내 눈을 쳐다보는 눈빛은......
내 맥박이 허락도 없이 마구 뛰었다.
그러고는 냅킨에 뭐라고 끼적거렸다.
"친구가 지겨워질 경우에 대비해서 여기 내 전화번호를 줄게요."
쟈드가 그 냅킨을 슬며시 내 앞으로 밀었다.
내 어깨 위에서 내려온 루카스의 손이 그 냅킨을 집었다.
쟈드가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그녀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두시죠."
루카스가 가만히 서서 쟈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재미있다는 듯 눈빛을 번득였다.
"물론이야."
루카스가 나를 향해 눈썹을 치켜 올리며 한마디 했다.
"그 자리에 주인이 있다고 했죠?"
나는 쟈드를 쏘아보았다.
"틀림없이 그랬지요."
쟈드가 내 말에 신경쓰지 않다는 듯 히죽히죽 웃었다.
그때 루카스가 너무도 무심하게 쟈드 앞으로 오더니, 프랑스어로 뭐라고 말했다.
쟈드의 얼굴에 점점 불안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도 여기 있을 거야?"
루카스가 이렇게 묻는데, 쟈드는 벌써 자리를 뜨고 있었다.
루카스가 앞자리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관광객들이란."
루카스가 천천히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았지만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사실 마음이 평온했다.
그가 돌아와서 기뻤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눈감아 줄 수는 없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사라졌는지......
"저 남자에게 뭐라고 말했어요?"
"그 얘긴 그만해요."
루카스가 메뉴판을 들어 천천히 살피며 말했다.
"말해주지 않을 거면 아까 그 전화번호 이리 줘요."
하지만 나는 용납하지 않았다.
"당신이 유부녀라고 했어."
루카스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게 다예요?"
나는 의심이 들었다.
"뭐, 거의 그렇게."
루카스가 빙그레 웃으며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창밖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루카스가 나를 보며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웨이터가 다가왔다.
루카스는 내 손에서 메뉴판을 낚아채 건네주며 스페인어로 빠르게 주문했다.
웨이터가 주방쪽으로 갔다.
"나는 아직 안 정했단 말이에요."
나는 언짢은 눈빛으로 루카스를 보았다.
"나를 믿어 봐요."
루카스의 입술에 미소가 살짝 어렸다.
"헉! 나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내 눈썹이 높이 치켜 올라갔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그 이상은 따지지 않았다.
루키스가 짓궂게 웃었다.
"그런데, 프랑스어에 이어 스페인어까지 해요?"
루카스가 천천히 잘난 체하는 웃음을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발, 그렇게 웃지 말라고......
나는 비닐이 씌워진 뜨거운 의자에 앉아 녹아버리지 않으려면 정신을 차려야 했다.
"또 할 줄 아는 말 있어요?"
"글쎄, 얼마나 유창하게 말해야 하는데?"
"그건 상관 없구요"
웨이터가 짙은 빛깔의 병과 불투명한 빛깔의 빈 컵 두 개를 들고 다시 왔다.
그러고는 빈 컵에 캐러멜 색깔 음료를 따라주고 갔다.
"독일어, 스페인어, 네델라드어, 일본어, 그리고 물론 프랑스어."
루카스가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정말, 굉장하네!
"음, 그럼 독일어로 무슨 말 좀 해 봐요."
나도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마지막에는 매콤하게 톡 쏘는 맛이 났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샤이더."
루카스가 말했다.
나는 음료수를 한 번 더 먹어보기로 했다.
"그게 무슨 말인데요?"
다시 음료수를 마셨다.
"여자의 질."
나는 음료수에 목구멍이 막힐 것 같아 손으로 입을 싸맸다.
"훌륭하네요.그게 다예요?"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야 대꾸했다.
"독일어, 네델란드어, 일본어는, 그래요."
"루카스, 왜 질이란 단어를 그 모든 언어로 알고 있는 건데요?"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당신보다 더 교양이 풍부하니까."
루카스가 또다시 음료수를 꿀꺽꿀꺽 마시면서, 나를 보며 웃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그를 한 대 치고 싶었는데, 그전에 웨이터가 바나나 칩처럼 생긴 걸 담은 바구니와 함께 연노랑 빛깔의 끈끈한 소스를 들고 왔다.
"마리끼다스에요. 먹어 봐요. 나한테 고맙다 할 걸."
나는 하나 먹어보았다.
그리고 루카스에게 정말 고맙다고 했다.
달콤한 맛이 살짝 감돌았고, 마늘 맛이 나는 소스 덕분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세상에, 진짜 맛있어요! "
"콧노래가 나올 만큼?"
루카스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웨이터가 다시 와서 음식을 내려놓았다.
쌀과 콩을 빼면 죄다 모르는 것이었다.
가장 희한하게 생긴 것은, 표면이 번들거리도록 튀긴 빵처럼 생긴 요리와, 소스를 잔뜩 끼얹은 두툼한 흰색 채소에 양파를 곁들인 요리였다.
나는 먼저 이 채소 요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유까(Yuca 카사바라고도 불리는 뿌리를 먹는 식물) ."
루카스가 말해주었다.
이번에는 튀긴 빵을 가리켰다.
"플랜테인(Plantain 바나나의 일종) 튀김이에요."
나는 또다시 흔히 스튜라고 불리는 음식이 든 오목한 그릇을 가리켰다.
그런데 루카스가 음식 이름을 말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손가락질만 할 거야, 아니면 먹을 거야?"
"뭔지 알고 나서 먹고 싶은 것 뿐이에요."
루카스가 눈썹을 아치 모양으로 구부렸고, 그 모습에 나는 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죽고 싶었다.
놀랍게도 루카스는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접시를 들고 내게 맛을 보라고 권했다.
배불리 먹고 나자,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져와 루카스 앞에 놓았다.
아까 쟈드의 전화번호를 집어 들던 루카스처럼 나는 계산서를 슬며시 가져와 확인하고 지갑을 찾으러 가방을 뒤적였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루카스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계산 할려구요."
"그게 무슨 말이지?"
"음식을 먹었으니 계산을 해야죠."
"하아, 멋지군. 그런데 왜 당신이 계산을 할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데?"
"그야......"
"그만둬요."
"루카스......"
"그건 그렇고, 당신, 여기 뭐 묻었다."
루카스가 자신의 턱 옆쪽을 가리켰다.
으악!
어떡해!!
"어디요? 여기?"
나는 냅킨 통에서 얼른 냅킨을 한 장 꺼내, 보기 흉하게 음식이 묻었을 만한 곳에 대고 문질렀다.
루카스가 고개를 저었고, 나는 다시 턱을 문질렀다.
"거기 그대로 있어봐요.내가 해 줄게. "
루카스가 고개짓으로 냅킨 통을 가리키고서 나와 눈높이를 맞추려 고개를 숙였다.
음식을 잔뜩 묻힌 아기 얼굴을 닦듯이 내 얼굴을 닦아주려는 것이다.
이게 뭐람!
창피해서 눈을 슬쩍 감고 얼굴에 종이 냅킨이 닿기를 기다렸다.
냅킨 대신 루카스의 손끝이 닿는 게 느껴졌다.
나는 숨을 꾹 참았다.
"고마워요. 완전히 칠칠치 못했죠?"
나직이 말했다.
눈을 뜨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 , 창피해서 정말......
이대로 우주 밖으로 증발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칠칠하게 해줘야겠네."
그제서야 나는 계산서가 사라진 걸 알아챘다.
한눈에 루카스가 가져갔다는 걸 알았다.
아주 교묘했다.
루카스를 째려 보았다.
"미안, 다음 번엔 당신이 계산하면 되잖아."
루카스가 으레 그 희미한 미소로 나를 허물어뜨리며 말했다.
***
30분 뒤에 루카스는 해변가에 있는 컨벤션 센터의 출입구까지 차를 몰고 가더니, 인도 가까이에 차를 세웠다.
'주차 금지' 라고 선명히 새겨진 아스팔트 바닥 위에.
내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루카스를 보았다.
"괜찮아요. 특전이지. "
루카스는 이렇게 말하고 그 건물이 자기 소유라도 되는 것처럼 출입문 쪽으로 걸어 갔다.
헉!
루카스 것이 맞나 보다!
건물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루카스가 손으로 더듬어서 스위치를 켰다.
미술품 때문에 숨이 멎을 뻔했다.
어디에나 미술품이 있었다.
표면이란 표면은 모두 미술품으로 뒤덮여 있었다.
바닥은 그 자체가 미술품으로, 우리 발밑에 지도를 떠올리게 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설치 작품들도 사방에 있었다.
조각품, 사진, 판화.
없는 게 없었다.
"세상에나."
"응?"
"이게 다 뭐예요?"
"내가 이사로 있는 단체에서 기금을 대는 전시회예요. 대략 2천 명 정도의 미술가들이 참여한 것 같아."
"근데, 왜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요?"
"전시회는 5일 동안 열리지 않을 거예요. 여기는 우리 뿐이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루카스를 향해 서서 입을 딱 벌린 채 빤히 쳐다보았다.
루카스 자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또 하나의 특전이지."
그러고는 루카스가 활짝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뭘?"
"내가 미술 작품 감상하는 거 좋아하는 거."
"아, 그냥. 좋아해주니 다행이네."
"고마워요."
"보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 말해요."
우리는 미로 같은 컨벤션 센터를 누비며 전시품들을 감상했다.
나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어떤 방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었다.
금속 작품들로 휘감겨 있는 벽돌, 또는 코바늘로 뜬 크나큰 태피스트리로 뒤덮인 벽돌.
조각품들이 전시된 곳을 돌아다녔다.
사방으로 키 큰 추상 조각품들이 숲처럼 우리를 에워쌌다.
구리와 니켈이 어우러진 조각품들이 내 머리 위로 높이 솟아 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나무나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 규모에 놀랐고, 예술가들이 이런 것을 만들어내기까지 쏟아 부었을 엄청난 노력을 생각하며 또 놀랐다.
그래서 루카스가 나를 여기에 데려왔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좋아할 거라는 걸 알고서 나를 위해 시간을 냈을 것이다.
나는 루카스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때 루카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전에 없이 솔직했다.
내 눈을 쳐다보는 눈빛은......
내 맥박이 허락도 없이 마구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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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별을 좋아하나요? 33 화조회 : 3,394 추천 : 4 댓글 : 4 글자 : 5,482 32.별을 좋아하나요? 32 화조회 : 3,323 추천 : 5 댓글 : 4 글자 : 7,267 31.별을 좋아하나요? 31 화조회 : 3,202 추천 : 4 댓글 : 1 글자 : 4,994 30.별을 좋아하나요? 30 화조회 : 3,191 추천 : 4 댓글 : 1 글자 : 5,545 29.별을 좋아하나요? 29 화조회 : 3,247 추천 : 4 댓글 : 1 글자 : 5,011 28.별을 좋아하나요? 28 화조회 : 3,016 추천 : 5 댓글 : 1 글자 : 5,247 27.별을 좋아하나요? 27 화조회 : 2,891 추천 : 4 댓글 : 1 글자 : 6,359 26.별을 좋아하나요? 26 화조회 : 2,002 추천 : 6 댓글 : 1 글자 : 5,249 25.별을 좋아하나요? 25 화조회 : 2,108 추천 : 4 댓글 : 1 글자 : 5,131 24.별을 좋아하나요? 24 화조회 : 1,963 추천 : 4 댓글 : 2 글자 : 5,665 23.별을 좋아하나요? 23 화조회 : 1,958 추천 : 4 댓글 : 1 글자 : 3,619 22.별을 좋아하나요? 22 화조회 : 1,955 추천 : 5 댓글 : 1 글자 : 6,208 21.별을 좋아하나요? 21 화조회 : 1,911 추천 : 6 댓글 : 1 글자 : 4,823 20.별을 좋아하나요? 20 화조회 : 1,923 추천 : 4 댓글 : 2 글자 : 6,437 19.별을 좋아하나요? 19 화조회 : 2,032 추천 : 6 댓글 : 1 글자 : 5,113 18.별을 좋아하나요? 18 화조회 : 2,111 추천 : 6 댓글 : 1 글자 : 6,374 17.별을 좋아하나요? 17 화조회 : 1,981 추천 : 7 댓글 : 2 글자 : 5,508 16.별을 좋아하나요? 16 화조회 : 1,869 추천 : 5 댓글 : 2 글자 : 5,298 15.별을 좋아하나요? 15 화조회 : 1,926 추천 : 7 댓글 : 2 글자 : 5,885 14.별을 좋아하나요? 14 화조회 : 1,947 추천 : 7 댓글 : 1 글자 : 5,493 13.별을 좋아하나요? 13 화조회 : 2,129 추천 : 8 댓글 : 2 글자 : 5,581 12.별을 좋아하나요? 12 화조회 : 2,013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386 11.별을 좋아하나요? 11 화조회 : 1,907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265 10.별을 좋아하나요? 10 화조회 : 1,952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480 9.별을 좋아하나요? 9 화조회 : 1,985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972 8.별을 좋아하나요? 8 화조회 : 2,089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764 7.별을 좋아하나요? 7 화조회 : 2,085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489 6.별을 좋아하나요? 6 화조회 : 1,939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442 5.별을 좋아하나요? 5 화조회 : 1,990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830 4.별을 좋아하나요? 4 화조회 : 2,018 추천 : 6 댓글 : 1 글자 : 5,322 3.별을 좋아하나요? 3 화조회 : 2,565 추천 : 6 댓글 : 2 글자 : 5,998 2.별을 좋아하나요? 2 화조회 : 2,441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337 1.별을 좋아하나요? 1 화조회 : 7,119 추천 : 7 댓글 : 7 글자 : 4,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