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조회 : 1,231 추천 : 0 글자수 : 5,105 자 2022-09-08
사람들은 늘 상상하곤 한다.
곰의 두꺼운 피부, 호랑이의 억센 발톱, 카멜레온의 은신...
그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통칭 ‘진화(evolution)’.
세상에 게이트가 열리면서 몬스터와 인간이 싸우는 대종말 시대가 시작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이아의 심장’이라는 성지가 열리면서 성지의 에너지가 흘러나와 인간들에게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누군가는 돌거북의 딱딱한 방어력을, 누군가는 늑대의 민첩함을, 누군가는 독수리의 시력을...
수많은 갈래로 나뉜 진화로 인해, 인간들은 강력한 힘을 얻었고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이이잉-
진화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일어났고, 그래서 ‘가이아의 축복’이라고 불렸다.
다만...
이이잉-
짝!
허구한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모기나 때려잡는 내게는 그 축복이 눈꼽만큼도 좋게 작용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모기’로 진화하셨습니다]
모기.
그러니까 모스키토(mosquito).
남의 피나 쭉쭉 빨아먹고 사는 극혐스러운 곤충.
하필 그 능력이 내게 발현된 것이다.
능력에 대한 설명도 보잘 것 없었다.
[모기는 흡혈(吸血)을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니까 내가 흡혈귀가 되었다는 것인가?
도대체 저 문장의 뜻은 무엇일까?
그래도 나는 모기의 능력을 얻은 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며 기다렸지만, 그런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몬스터를 잡으며 성장하고, 떼돈을 벌 때 방에서 뒹굴거릴 수밖에 없었다.
띠리링-
그때, 성준이가 전화를 해왔다.
이 자식은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파리로 진화한 녀석이었다.
무슨 능력을 얻었냐고 물어보니 똥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게 되었다며 땅을 치고 통곡을 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면 꼭 빨래집게를 같이 들고 간다며.
그런 놈이 전화를 해온 것이다.
“왜?”
- 야, 술 마시자!
“너는 시간이 남아도냐? 알바 안 해?”
- 응! 나 이제 알바 안 해도 된다!
뭐야, 이 자식?
왜 이렇게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치지?
“왜 그래? 야, 너 지금 젊은 나이에 인생 막 그렇게 포기하고 그러면 안 된다! 무슨 일이야? 아니, 이럴 게 아니고 내가 지금 갈...”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 똥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았더니, 꿈에서도 똥냄새를 맡더라! 놀라지 마라! 형님 로또 1등 됐다, 이 자식아! 크크크!
지금 이 자식이 실성한 느낌인데?
파리로의 진화 때문에 공중 화장실도 못 가겠다고 인생 다 망한 듯 술이나 퍼먹던 녀석이 지금 뭐라고...?
“아, 성준아. 아직 세상 살기 나쁘지 않으니까 정신줄 잡자! 응? 너 지금 그러면 안 돼! 이 하나뿐인 친구가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알아?”
- 농담 아니라고! 나와라, 형이 양주 사준다!
“...대출 받았냐?”
- 크크, 아니다! 기다려, 너희 집 앞으로 내가 친히 모시러 갈 테니!
“야! 농담...”
뚝-
뚜뚜뚜뚜-
“...”
나는 끊어진 전화를 붙잡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 자식이 분명 실성한 것이 틀림 없다.
그래! 만날 똥냄새만 맡다보니 정신이 나간 거다!
그럼 친구로서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아무래도 녀석을 데리고 병원이라도 가야겠다.
심각함을 느낀 내가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하는 사이, 갑자기 바깥에서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울렸다.
빵- 빵빵-
“야! 이준수! 얼른 나와!”
분명 이 목소리는 성준이의 것이었다.
‘이 자식이 동네 시끄럽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간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뭐, 뭐야!’
그곳에 녀석이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상태가...
“어머, 자기! 저 오빠가 준수씨야? 어머, 귀엽다~!”
못 해도 이억 원은 넘어 보이는 슈퍼카.
그 옆에 성준이가 서서 비싸 보이는 자켓과 바지를 쫙 빼입고 선글라스를 쓴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성준이 옆에서 콧소리를 내고 있는 여자.
‘와...!’
진짜 탤런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 성준이 옆에서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
‘뭐야, 이거...!’
아니, 저런 광경은 헌터 중에서도 잘 나가는 헌터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저 자식이 저러고 있는 거지?
“야! 놀랐냐? 얼른 와라! 이 형님이 너 근사한 데 데려가 주마! 으하하하!”
녀석이 앙천대소를 터뜨렸지만, 나는 성준이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이 상황은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야, 박성준!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내 말에 성준이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이번에 로또, 몇 번이나 1등 당첨자가 안 나와서 누적 금액이 백억 넘었던 건 알지? 크크, 야, 그걸 이 형님이 싹 쓸어 담았단다! 꿈에서 아주 지독한 똥냄새를 맡고 말이야! 파리의 능력이 이런 것이었다니! 이 형님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하하!”
성준이는 내게 다가와서 뭔가를 쓱 내밀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경악했다.
‘정말이잖아...!’
성준이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녀석이 내민 것은 로또 1등 당첨 용지였고, 선명하게 은행의 직인이 찍혀 있었으니까.
녀석은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말했다.
“야! 타라!”
“어머, 오빠! 나는? 이 차 2인승이잖아?”
성준이와 같이 온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짓자, 성준이가 아- 하고 이마를 탁 쳤다.
“아, 맞다! 너도 있었지? 자! 넌 택시 타고 가라! 난 내 친구와 너를 바꿀 수 없다!”
그러더니 녀석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놀란 나를 보며 녀석은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새끼, 감동하긴! 얼른 타라! 우리도 강남 한 번 가서 놀아보자!”
그런 성준이에게 여자가 화난 표정으로 외치듯 말했다.
“오빠!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 좋아한다며!”
성준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래, 지금까진 좋아했다. 후후! 잘 가라!”
성준이는 차에 올라탔고, 나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의 차에 탔다.
“야! 이 개자식아!”
부아앙-
여자의 앙칼진 외침을 뒤로 하고 슈퍼카는 미친 듯 도로를 달렸다.
대 헌터 시대가 열리면서 세상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슈퍼카가 부의 상징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우와아악! 야! 천천히 좀 달려!”
하지만 슈퍼카의 이런 속도는 이런 차를 처음 타보는 나에게는 지옥 그 자체였다.
이 미친 자식은 강남대로를 정신 없이 가로질렀고, 모든 것이 우리 세상인 것처럼 쾌감이 느껴졌다.
“우호옷! 짜식아! 어떠냐!”
하, 이게 상류층의 삶이던가!
나는 이 순간 파리로 진화한 녀석이 미친 듯 부러웠다.
이렇게 단 한방에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다니!
뿌아아앙-
순간, 저 옆에서 커다란 트럭 하나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경악한 얼굴로 악을 썼다.
트럭은 우리를 바로 받아버릴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준아아아아!”
“으아아악!”
성준이도 당황한 표정으로 핸들을 미친 듯 꺾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우리가 탄 차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트럭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빠아아앙-
순간 나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트럭 운전수의 경악한 표정, 그리고 고막을 찢어 버릴 듯 터져 나온 클락숀 소리. 거기다 15톤 트럭이 전속력으로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며 우리 차를 거칠게 뒤흔들어 버리는 후폭풍!
모든 것이 단 1초도 안 되어서 벌어진 일!
끼이익!
트럭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생과 사가 종잇장 한 장 차이로 갈렸고 우리는 그대로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밀려났다가 겨우 멈춰섰다.
그나마 슈퍼카라 그런지, 제동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
준성이와 나는 진땀을 흘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와, 이건 정말 무슨 일일까?
“와씨! 진짜 염라대왕 만나고 오는 줄 알았네!”
성준이가 안색이 창백해진 채 횡설수설을 하기 시작했다.
“야, 넌 그래도 로또라도 당첨됐지, 나는 뭐냐? 만년 백수로 살다가 뒤질 뻔 했다!”
진짜 억울할 뻔 했다.
성준이는 그래도 로또라도 당첨되어서 잠시나마 떵떵거리다 세상을 뜰 뻔 했지만, 나는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연명하다가 억울하게 죽을 뻔 했으니...
“어! 야! 성준아!! 앞에 봐!!!”
“뭐, 뭐야! 와, 오늘 뭐야, 도대체!!”
넋이 나가 있던 성준이는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부아아앙-
끼이익-
그리고 녀석은 마치 곡예라도 하듯 미친듯 후진하며 핸들을 돌렸다.
[속보입니다! 오 분 전, 강남역 근처에서 게이트 오픈이 이뤄져 A급 몬스터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급히 대피령을 내리고, 대 몬스터 대응팀을 보내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려...]
그 순간 자동으로 라디오 채널에서 속보가 날아들었다.
나는 입안이 바짝 말랐다.
“헛, 미친! 야! A급 몬스터란다! 성준아! 밟아아아아!”
A급 몬스터.
놈이 나타나면 대부분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상황이 설정된다.
마치 진도 9.0 이상의 지진, 초속 54m 이상의 초대형 태풍...
이 정도 급의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정도의 재난이 선포되며, 그에 걸맞은 대처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A급 몬스터가 하나만 나타나도 재앙이라 불리는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속보로는 ‘몬스터들’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우리를 방금 스쳐 지나간 트럭도 아마 그를 피해 도망가던 중이겠지.
그 트럭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 보이는 광경은 수많은 자동차들이 역주행을 하고 있었고, 그 뒤에는 셀 수 없는 몬스터들이 미친 듯 내달리고 있었다.
“꺄아아아!”
“으아악! 살려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올 정도였다.
게이트가 최초로 열린 이후 도시 곳곳에 만들어진 방공호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사실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비규환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야! 벨트 꽉 매라!”
“어? 어, 알았어!”
나는 벨트를 꽉 움켜쥐었다.
부아아아앙-
지금 믿을 것은, 2억을 호가하는 이 슈퍼카가 얼마나 잘 달릴 수 있느냐! 였다.
그래도 성준이는 대리기사 일을 수년 동안 해와서, 운전은 상당히 잘하는 편.
“으아아악!”
다만, 동승자의 상태 따윈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헛! 야, 성준아! 망했다!”
나는 한쪽을 가리켰다.
이런 제기랄!
늑대를 피했더니,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었구나!
우리의 정면에서 하늘을 까맣게 메우며 날아드는 수많은 비행체들...
우리 뒤에서는 대형 육식 몬스터들이 지상으로 달려오며 우리를 추격하고 있었고, 앞에서는 비행 몬스터들이 나타나 먹잇감을 찾고 있는 상황!
“끼에에엑!”
“꺄아아악!”
적당한 먹잇감을 찾아낸 놈들은 그대로 아래로 낙하하며 사람들을 낚아채서 하늘 위로 치솟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하필이면 저 자식들이 나타나다니!
‘B급 비행 몬스터, 오라프스! 황소도 낚아채서 잡아먹는다는 괴물이 왜!’
[다시 속보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역삼역 근처에서도 중형 게이트가 열렸다는 정부의 긴급 발표가 전해졌습니다! 역삼-21 이라 명명된 그곳에서는 비행형 몬스터인 오라프스가 등장했다는 발표가 이어졌으나, 더욱 큰 문제는...]
라디오.
지금 우리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매체.
그곳에서는 절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꿀꺽-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며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고?
[군주급 오라프스, 즉 오라디프스론의 등장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강남역 근처와 역삼역 근처에는 A급 경보가 내려진 상태입니다! 모든 시민들은...]
군주급 오라프스가 등장했다고?
그러니까, A급 몬스터는 뒤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앞에서도...
펄럭-
‘아...’
그러니까, 그게...
지금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저 놈이...
‘...망할!’
오라디프스론.
놈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놈은 정확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놈의 눈에 뜨인 이상, 우리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모든 시민들은 즉각...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곰의 두꺼운 피부, 호랑이의 억센 발톱, 카멜레온의 은신...
그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통칭 ‘진화(evolution)’.
세상에 게이트가 열리면서 몬스터와 인간이 싸우는 대종말 시대가 시작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이아의 심장’이라는 성지가 열리면서 성지의 에너지가 흘러나와 인간들에게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누군가는 돌거북의 딱딱한 방어력을, 누군가는 늑대의 민첩함을, 누군가는 독수리의 시력을...
수많은 갈래로 나뉜 진화로 인해, 인간들은 강력한 힘을 얻었고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이이잉-
진화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일어났고, 그래서 ‘가이아의 축복’이라고 불렸다.
다만...
이이잉-
짝!
허구한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모기나 때려잡는 내게는 그 축복이 눈꼽만큼도 좋게 작용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모기’로 진화하셨습니다]
모기.
그러니까 모스키토(mosquito).
남의 피나 쭉쭉 빨아먹고 사는 극혐스러운 곤충.
하필 그 능력이 내게 발현된 것이다.
능력에 대한 설명도 보잘 것 없었다.
[모기는 흡혈(吸血)을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니까 내가 흡혈귀가 되었다는 것인가?
도대체 저 문장의 뜻은 무엇일까?
그래도 나는 모기의 능력을 얻은 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며 기다렸지만, 그런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몬스터를 잡으며 성장하고, 떼돈을 벌 때 방에서 뒹굴거릴 수밖에 없었다.
띠리링-
그때, 성준이가 전화를 해왔다.
이 자식은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파리로 진화한 녀석이었다.
무슨 능력을 얻었냐고 물어보니 똥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게 되었다며 땅을 치고 통곡을 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면 꼭 빨래집게를 같이 들고 간다며.
그런 놈이 전화를 해온 것이다.
“왜?”
- 야, 술 마시자!
“너는 시간이 남아도냐? 알바 안 해?”
- 응! 나 이제 알바 안 해도 된다!
뭐야, 이 자식?
왜 이렇게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치지?
“왜 그래? 야, 너 지금 젊은 나이에 인생 막 그렇게 포기하고 그러면 안 된다! 무슨 일이야? 아니, 이럴 게 아니고 내가 지금 갈...”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 똥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았더니, 꿈에서도 똥냄새를 맡더라! 놀라지 마라! 형님 로또 1등 됐다, 이 자식아! 크크크!
지금 이 자식이 실성한 느낌인데?
파리로의 진화 때문에 공중 화장실도 못 가겠다고 인생 다 망한 듯 술이나 퍼먹던 녀석이 지금 뭐라고...?
“아, 성준아. 아직 세상 살기 나쁘지 않으니까 정신줄 잡자! 응? 너 지금 그러면 안 돼! 이 하나뿐인 친구가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알아?”
- 농담 아니라고! 나와라, 형이 양주 사준다!
“...대출 받았냐?”
- 크크, 아니다! 기다려, 너희 집 앞으로 내가 친히 모시러 갈 테니!
“야! 농담...”
뚝-
뚜뚜뚜뚜-
“...”
나는 끊어진 전화를 붙잡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 자식이 분명 실성한 것이 틀림 없다.
그래! 만날 똥냄새만 맡다보니 정신이 나간 거다!
그럼 친구로서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아무래도 녀석을 데리고 병원이라도 가야겠다.
심각함을 느낀 내가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하는 사이, 갑자기 바깥에서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울렸다.
빵- 빵빵-
“야! 이준수! 얼른 나와!”
분명 이 목소리는 성준이의 것이었다.
‘이 자식이 동네 시끄럽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간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뭐, 뭐야!’
그곳에 녀석이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상태가...
“어머, 자기! 저 오빠가 준수씨야? 어머, 귀엽다~!”
못 해도 이억 원은 넘어 보이는 슈퍼카.
그 옆에 성준이가 서서 비싸 보이는 자켓과 바지를 쫙 빼입고 선글라스를 쓴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성준이 옆에서 콧소리를 내고 있는 여자.
‘와...!’
진짜 탤런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 성준이 옆에서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
‘뭐야, 이거...!’
아니, 저런 광경은 헌터 중에서도 잘 나가는 헌터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저 자식이 저러고 있는 거지?
“야! 놀랐냐? 얼른 와라! 이 형님이 너 근사한 데 데려가 주마! 으하하하!”
녀석이 앙천대소를 터뜨렸지만, 나는 성준이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이 상황은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야, 박성준!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내 말에 성준이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이번에 로또, 몇 번이나 1등 당첨자가 안 나와서 누적 금액이 백억 넘었던 건 알지? 크크, 야, 그걸 이 형님이 싹 쓸어 담았단다! 꿈에서 아주 지독한 똥냄새를 맡고 말이야! 파리의 능력이 이런 것이었다니! 이 형님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하하!”
성준이는 내게 다가와서 뭔가를 쓱 내밀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경악했다.
‘정말이잖아...!’
성준이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녀석이 내민 것은 로또 1등 당첨 용지였고, 선명하게 은행의 직인이 찍혀 있었으니까.
녀석은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말했다.
“야! 타라!”
“어머, 오빠! 나는? 이 차 2인승이잖아?”
성준이와 같이 온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짓자, 성준이가 아- 하고 이마를 탁 쳤다.
“아, 맞다! 너도 있었지? 자! 넌 택시 타고 가라! 난 내 친구와 너를 바꿀 수 없다!”
그러더니 녀석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놀란 나를 보며 녀석은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새끼, 감동하긴! 얼른 타라! 우리도 강남 한 번 가서 놀아보자!”
그런 성준이에게 여자가 화난 표정으로 외치듯 말했다.
“오빠!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 좋아한다며!”
성준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래, 지금까진 좋아했다. 후후! 잘 가라!”
성준이는 차에 올라탔고, 나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의 차에 탔다.
“야! 이 개자식아!”
부아앙-
여자의 앙칼진 외침을 뒤로 하고 슈퍼카는 미친 듯 도로를 달렸다.
대 헌터 시대가 열리면서 세상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슈퍼카가 부의 상징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우와아악! 야! 천천히 좀 달려!”
하지만 슈퍼카의 이런 속도는 이런 차를 처음 타보는 나에게는 지옥 그 자체였다.
이 미친 자식은 강남대로를 정신 없이 가로질렀고, 모든 것이 우리 세상인 것처럼 쾌감이 느껴졌다.
“우호옷! 짜식아! 어떠냐!”
하, 이게 상류층의 삶이던가!
나는 이 순간 파리로 진화한 녀석이 미친 듯 부러웠다.
이렇게 단 한방에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다니!
뿌아아앙-
순간, 저 옆에서 커다란 트럭 하나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경악한 얼굴로 악을 썼다.
트럭은 우리를 바로 받아버릴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준아아아아!”
“으아아악!”
성준이도 당황한 표정으로 핸들을 미친 듯 꺾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우리가 탄 차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트럭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빠아아앙-
순간 나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트럭 운전수의 경악한 표정, 그리고 고막을 찢어 버릴 듯 터져 나온 클락숀 소리. 거기다 15톤 트럭이 전속력으로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며 우리 차를 거칠게 뒤흔들어 버리는 후폭풍!
모든 것이 단 1초도 안 되어서 벌어진 일!
끼이익!
트럭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생과 사가 종잇장 한 장 차이로 갈렸고 우리는 그대로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밀려났다가 겨우 멈춰섰다.
그나마 슈퍼카라 그런지, 제동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
준성이와 나는 진땀을 흘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와, 이건 정말 무슨 일일까?
“와씨! 진짜 염라대왕 만나고 오는 줄 알았네!”
성준이가 안색이 창백해진 채 횡설수설을 하기 시작했다.
“야, 넌 그래도 로또라도 당첨됐지, 나는 뭐냐? 만년 백수로 살다가 뒤질 뻔 했다!”
진짜 억울할 뻔 했다.
성준이는 그래도 로또라도 당첨되어서 잠시나마 떵떵거리다 세상을 뜰 뻔 했지만, 나는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연명하다가 억울하게 죽을 뻔 했으니...
“어! 야! 성준아!! 앞에 봐!!!”
“뭐, 뭐야! 와, 오늘 뭐야, 도대체!!”
넋이 나가 있던 성준이는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부아아앙-
끼이익-
그리고 녀석은 마치 곡예라도 하듯 미친듯 후진하며 핸들을 돌렸다.
[속보입니다! 오 분 전, 강남역 근처에서 게이트 오픈이 이뤄져 A급 몬스터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급히 대피령을 내리고, 대 몬스터 대응팀을 보내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려...]
그 순간 자동으로 라디오 채널에서 속보가 날아들었다.
나는 입안이 바짝 말랐다.
“헛, 미친! 야! A급 몬스터란다! 성준아! 밟아아아아!”
A급 몬스터.
놈이 나타나면 대부분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상황이 설정된다.
마치 진도 9.0 이상의 지진, 초속 54m 이상의 초대형 태풍...
이 정도 급의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정도의 재난이 선포되며, 그에 걸맞은 대처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A급 몬스터가 하나만 나타나도 재앙이라 불리는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속보로는 ‘몬스터들’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우리를 방금 스쳐 지나간 트럭도 아마 그를 피해 도망가던 중이겠지.
그 트럭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 보이는 광경은 수많은 자동차들이 역주행을 하고 있었고, 그 뒤에는 셀 수 없는 몬스터들이 미친 듯 내달리고 있었다.
“꺄아아아!”
“으아악! 살려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올 정도였다.
게이트가 최초로 열린 이후 도시 곳곳에 만들어진 방공호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사실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비규환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야! 벨트 꽉 매라!”
“어? 어, 알았어!”
나는 벨트를 꽉 움켜쥐었다.
부아아아앙-
지금 믿을 것은, 2억을 호가하는 이 슈퍼카가 얼마나 잘 달릴 수 있느냐! 였다.
그래도 성준이는 대리기사 일을 수년 동안 해와서, 운전은 상당히 잘하는 편.
“으아아악!”
다만, 동승자의 상태 따윈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헛! 야, 성준아! 망했다!”
나는 한쪽을 가리켰다.
이런 제기랄!
늑대를 피했더니,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었구나!
우리의 정면에서 하늘을 까맣게 메우며 날아드는 수많은 비행체들...
우리 뒤에서는 대형 육식 몬스터들이 지상으로 달려오며 우리를 추격하고 있었고, 앞에서는 비행 몬스터들이 나타나 먹잇감을 찾고 있는 상황!
“끼에에엑!”
“꺄아아악!”
적당한 먹잇감을 찾아낸 놈들은 그대로 아래로 낙하하며 사람들을 낚아채서 하늘 위로 치솟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하필이면 저 자식들이 나타나다니!
‘B급 비행 몬스터, 오라프스! 황소도 낚아채서 잡아먹는다는 괴물이 왜!’
[다시 속보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역삼역 근처에서도 중형 게이트가 열렸다는 정부의 긴급 발표가 전해졌습니다! 역삼-21 이라 명명된 그곳에서는 비행형 몬스터인 오라프스가 등장했다는 발표가 이어졌으나, 더욱 큰 문제는...]
라디오.
지금 우리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매체.
그곳에서는 절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꿀꺽-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며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고?
[군주급 오라프스, 즉 오라디프스론의 등장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강남역 근처와 역삼역 근처에는 A급 경보가 내려진 상태입니다! 모든 시민들은...]
군주급 오라프스가 등장했다고?
그러니까, A급 몬스터는 뒤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앞에서도...
펄럭-
‘아...’
그러니까, 그게...
지금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저 놈이...
‘...망할!’
오라디프스론.
놈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놈은 정확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놈의 눈에 뜨인 이상, 우리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모든 시민들은 즉각...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열심히 써볼께요!!
닫기나혼자 진화 초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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