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 명이 남아 있어!
조회 : 749 추천 : 2 글자수 : 3,619 자 2022-09-11
싸늘한 아리엘의 표정을 보고 있는 제니의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향해 아리엘은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여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아리엘의 AG소속사로 말이야.”
배시시 웃는 그녀의 얼굴 보고 있으니 제니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뜩했다.
“설마 다른 사람들이 옮겼다는 곳이…, 아니죠? 그럼 나만 빼고 다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단 거잖아요.”
“맞아, 대표님 아니, 네 아빠가 왜 너한테는 말을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제니는 여전히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나쁜 생각이라도 하고 떠난 건 아니겠지?’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아빠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아니, 그건 나도 모르겠어.”
“마지막으로 아빠랑 통화한 건 언제에요? 이상한 낌새 같은 건 없었어요? 평소 때와 좀 다른 건 없었어요?”
아리엘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 걱정이 되면 경찰에 실종 신고라도 하지 그래?”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 무심한 그녀의 말투가 제니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언니는 걱정도 안 돼요? 그래도 함께 한 시간이 10년이잖아요. 저한테는 언니가 친언니나 다름없었는데.”
“그 언니라는 소리 좀 작작해!”
지금껏 여유로워 보였던 아리엘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왜 네 언니야, 친언니라고? 웃기고 있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은데도 해마다 네 생일이면 다시 화장하고 옷 갈아입고 가서 광대같이 서 있다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음 스케줄로 옮겼어. 내가 네 친언니였다면 네 아빠가 그렇게 했겠어?”
“선물 주고 고작 한 시간 있다가 갔잖아요.”
“고작 한 시간이라고 했어? 나한테 한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건지 네가 알기나 해? 하아, 됐다 내가 널 상대로 무슨 말을 하겠어.”
아리엘은 책상 위에 놓인 명패를 쓰레기통으로 던지며 말을 이었다.
“여기 둘러보고 가져갈 거 있으면 가져가. 오후에 인테리어 맡은 사람들이 오기로 했거든.”
제니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고 일어나서 내팽개쳐 있는 명패를 주워들었다.
“내가 당신이 번 돈으로 공주처럼 살았다고? 당신이 데뷔하기 전 몇 년 동안 우리 아빤 대출 끌어다가 당신을 서포트했어. 무명 때도 마찬가지고. 그때 나한테는 삼겹살 한 번을 안 사줬으면 당신한테 배불러야 노래 나온다고 주기적으로 소고기 사다 먹인 사람이 우리 아빠야.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잠시 벙찐 얼굴로 서 있던 아리엘은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너도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생각이란 걸 좀 해야 하지 않겠니?”
하얀 아리엘의 손가락이 제니의 이마를 톡톡 찔러댔다.
“네 아빠는 나한테 투자를 한 거야. 내가 노래도 못 불러, 작곡도 못 해, 예쁘지도 않았으면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줬겠니?”
아리엘의 손가락이 이마를 건들 때마다 심장에 바늘이 박히는 것 같았다.
분명 무언가가 억울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반박할 말도 없었다.
입술만 우물거리던 제니는 결국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뭐야, 왜 울어? 야 울지 마, 너 여기서 울고 나가는 거 기자들이 보면 나만 나쁜 사람으로 되잖아.”
제니를 향해 티슈를 던진 아리엘은 짜증스럽다는 듯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어휴, 이미지 관리가 뭔지 참. 지금 집에서 바로 나가란 소리는 안 할게. 대신 매달 월세 100만 원, 이 정도면 주변 시세 반도 안 되는 거 알지?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야.”
아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던 그녀에게 현실적인 걱정까지 슬그머니 밀려 들어왔다.
이럴 땐 차라리 쓰러져서 기절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돈에 대한 걱정은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100만 원? 지금 내 통장에 잔고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 거지?’
“참, LJ에 아직 남은 애가 있었네. 이건 네가 가져가서 처리해.”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의 앞에 서류 파일을 던져 놓았다.
펼쳐진 프로필에는 본 적 없는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룬? 얘는 왜….”
“아, 걘 활동이 거의 없어, 데리고 있어 봐야 별 쓸모도 없고. 네 아빠도 처음에만 좀 투자하다가 방치하다 시피 했을 걸?”
“우리 아빠 그렇지 않아요, 여기 사람들한테 얼마나 열정적이었는데!”
발끈해서 일어서는 그녀에게 아리엘은 비소를 지어 보였다.
“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네 맘대로 생각해, 거기까지 관여할 생각은 없으니까. 암튼 그 서류는 챙겨가 나도 귀찮은 일은 질색이거든.”
제니의 눈길은 다시 손에 들린 서류로 향했다.
사진 아래에 있는 몇 줄 되지 않는 필모그래피는 그나마 처음 한 번은 주연급 조연이었다가 그 이후엔 엑스트라 수준이었다.
‘우선 아빠부터 찾아야겠어.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돼.’
가방에 서류를 쑤셔 넣은 그녀는,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들고 일어섰다.
“더 챙길 건 없을 것 같아요, 그만 가 볼게요.”
사무실 문을 향하는 제니의 등을 향해 아리엘이 소리쳤다.
“혹시 일자리 필요하면 찾아와. 너, 할 줄 아는 것도 없잖아. 여기 사무실에서 심부름이나 해.”
**
[딩동 딩동 딩동!]
시끄럽게 울리는 현관 벨 소리에 룬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현관문에 있는 조그만 렌즈로 눈을 갖다 대었다.
‘여자? 혹시 사생팬 이런 건가?’
하지만 이내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5년 동안은 팬레터도 없었고, 그나마 SNS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던 팬들도 2년 전쯤부터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쾅, 쾅, 쾅]
그 사이에 여자가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으악, 놀래라!”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말에 황급히 입을 틀어 막았지만, 여자의 목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흘러 들어왔다.
“집에 있는 거 다 알아요!”
룬은 보조 키가 채워진 것을 확인한 다음에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당신 소속사 대표.”
“네?”
동그래진 눈을 깜빡거리던 그는 이내 피식하며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찌라시 보고 왔나 본데, 내 소속사는 아직까지 LJ이고, 대표님은….”
“우리 아빠야.”
“뭐?”
“내가 LJ 대표인 이원희씨 딸, 이제니 라고. 앞으로는 내가 LJ 대표이자, 당신 매니저예요.”
“풋, 그걸 어떻게 믿어요?”
비웃는 그를 향해 제니는 룬의 계약서를 펼쳐 보였다.
“보이죠? 읽어보니까 종신 계약이나 다름 없던데.”
가만히 서 있던 룬은 다급하게 보조 키를 풀어 문을 열었다.
“대표님은 지금 어디 있어요? 일단 대표님부터 만나게 해 줘요.”
“몰라요, 나도.”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족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그럼 그 계약서는 어떻게 받은거죠?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제대로 말 좀 해봐요."
꾹 깨물고 있던 제니의 입술이 벌어졌다.
"당신보다 내가 더 답답해 미칠 것 같아, 아빠가 왜 도망치듯 사라졌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미안하다는 쪽지 한 장 받은 게 다야. 걱정도 되지만 원망스러운 내 심정을 당신이 알아?”
“하긴 나보다 딸인 당신이 더 힘들 텐데, 방금 한 말은 미안해요. 혹시라도 대표님 찾으면 연락드릴 테니까 전화번호 줘요.”
핸드폰을 내미는 그를 향해 제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빠 찾으려고 여기 온 거 아니에요.”
룬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요? 내가 뭐 도와줄 거라도 있어요?”
“딴 건 아리엘이 다 가져가고 나한테 남은 건 당신뿐이야.”
마른 침을 꿀꺽 삼킨 그녀는 당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을 성공시켜서 전부 다 되찾을 거야.”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그쪽이 날 매니지먼트 해 주겠다고요?”
“네. 안 될 이유가 없잖아요.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아있는데.”
그는 제니를 아래, 위로 훑으며 물었다.
“이쪽 일 해 본 적은 있어요?”
“아뇨.”
“운전은 할 줄 알아요.”
“해 본 적은 없지만, 면허는 있어요.”
“계약은 그냥 해지하는 것으로 하죠. 어차피 난 거기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는데,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서로한테 좋을 것 같네요.”
“누구 마음대로!”
발끈하는 제니의 반응에 그도 지지 않고 맞섰다.
“내 마음대로! 그리고 자꾸 계약 기간 이야기하는데 말이야, 대표님과 따로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았던 건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언제든지 그만두기로 정했기 때문이야. 이런 생활도 지겨웠는데 잘 됐어. 지금 당장 취직 자리라도 알아봐야겠으니까 그만 가 줘요.”
그제야 제니의 눈에 방안의 광경과 남자의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9평 남짓한 원룸의 한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공룡 의상, 작은 냉장고 위에 쌓여 있는 고지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집에서 자른 듯 아무렇게나 길어져 있었고, 피부는 푸석하고 거칠어 보였다.
“그러게. 빛이 안 나네.”
나지막한 제니의 음성이 방안에 울렸다.
“뭐?”
룬의 미간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향해 아리엘은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여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아리엘의 AG소속사로 말이야.”
배시시 웃는 그녀의 얼굴 보고 있으니 제니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뜩했다.
“설마 다른 사람들이 옮겼다는 곳이…, 아니죠? 그럼 나만 빼고 다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단 거잖아요.”
“맞아, 대표님 아니, 네 아빠가 왜 너한테는 말을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제니는 여전히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나쁜 생각이라도 하고 떠난 건 아니겠지?’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아빠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아니, 그건 나도 모르겠어.”
“마지막으로 아빠랑 통화한 건 언제에요? 이상한 낌새 같은 건 없었어요? 평소 때와 좀 다른 건 없었어요?”
아리엘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 걱정이 되면 경찰에 실종 신고라도 하지 그래?”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 무심한 그녀의 말투가 제니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언니는 걱정도 안 돼요? 그래도 함께 한 시간이 10년이잖아요. 저한테는 언니가 친언니나 다름없었는데.”
“그 언니라는 소리 좀 작작해!”
지금껏 여유로워 보였던 아리엘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왜 네 언니야, 친언니라고? 웃기고 있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은데도 해마다 네 생일이면 다시 화장하고 옷 갈아입고 가서 광대같이 서 있다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음 스케줄로 옮겼어. 내가 네 친언니였다면 네 아빠가 그렇게 했겠어?”
“선물 주고 고작 한 시간 있다가 갔잖아요.”
“고작 한 시간이라고 했어? 나한테 한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건지 네가 알기나 해? 하아, 됐다 내가 널 상대로 무슨 말을 하겠어.”
아리엘은 책상 위에 놓인 명패를 쓰레기통으로 던지며 말을 이었다.
“여기 둘러보고 가져갈 거 있으면 가져가. 오후에 인테리어 맡은 사람들이 오기로 했거든.”
제니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고 일어나서 내팽개쳐 있는 명패를 주워들었다.
“내가 당신이 번 돈으로 공주처럼 살았다고? 당신이 데뷔하기 전 몇 년 동안 우리 아빤 대출 끌어다가 당신을 서포트했어. 무명 때도 마찬가지고. 그때 나한테는 삼겹살 한 번을 안 사줬으면 당신한테 배불러야 노래 나온다고 주기적으로 소고기 사다 먹인 사람이 우리 아빠야.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잠시 벙찐 얼굴로 서 있던 아리엘은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너도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생각이란 걸 좀 해야 하지 않겠니?”
하얀 아리엘의 손가락이 제니의 이마를 톡톡 찔러댔다.
“네 아빠는 나한테 투자를 한 거야. 내가 노래도 못 불러, 작곡도 못 해, 예쁘지도 않았으면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줬겠니?”
아리엘의 손가락이 이마를 건들 때마다 심장에 바늘이 박히는 것 같았다.
분명 무언가가 억울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반박할 말도 없었다.
입술만 우물거리던 제니는 결국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뭐야, 왜 울어? 야 울지 마, 너 여기서 울고 나가는 거 기자들이 보면 나만 나쁜 사람으로 되잖아.”
제니를 향해 티슈를 던진 아리엘은 짜증스럽다는 듯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어휴, 이미지 관리가 뭔지 참. 지금 집에서 바로 나가란 소리는 안 할게. 대신 매달 월세 100만 원, 이 정도면 주변 시세 반도 안 되는 거 알지?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야.”
아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던 그녀에게 현실적인 걱정까지 슬그머니 밀려 들어왔다.
이럴 땐 차라리 쓰러져서 기절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돈에 대한 걱정은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100만 원? 지금 내 통장에 잔고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 거지?’
“참, LJ에 아직 남은 애가 있었네. 이건 네가 가져가서 처리해.”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의 앞에 서류 파일을 던져 놓았다.
펼쳐진 프로필에는 본 적 없는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룬? 얘는 왜….”
“아, 걘 활동이 거의 없어, 데리고 있어 봐야 별 쓸모도 없고. 네 아빠도 처음에만 좀 투자하다가 방치하다 시피 했을 걸?”
“우리 아빠 그렇지 않아요, 여기 사람들한테 얼마나 열정적이었는데!”
발끈해서 일어서는 그녀에게 아리엘은 비소를 지어 보였다.
“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네 맘대로 생각해, 거기까지 관여할 생각은 없으니까. 암튼 그 서류는 챙겨가 나도 귀찮은 일은 질색이거든.”
제니의 눈길은 다시 손에 들린 서류로 향했다.
사진 아래에 있는 몇 줄 되지 않는 필모그래피는 그나마 처음 한 번은 주연급 조연이었다가 그 이후엔 엑스트라 수준이었다.
‘우선 아빠부터 찾아야겠어.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돼.’
가방에 서류를 쑤셔 넣은 그녀는,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들고 일어섰다.
“더 챙길 건 없을 것 같아요, 그만 가 볼게요.”
사무실 문을 향하는 제니의 등을 향해 아리엘이 소리쳤다.
“혹시 일자리 필요하면 찾아와. 너, 할 줄 아는 것도 없잖아. 여기 사무실에서 심부름이나 해.”
**
[딩동 딩동 딩동!]
시끄럽게 울리는 현관 벨 소리에 룬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현관문에 있는 조그만 렌즈로 눈을 갖다 대었다.
‘여자? 혹시 사생팬 이런 건가?’
하지만 이내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5년 동안은 팬레터도 없었고, 그나마 SNS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던 팬들도 2년 전쯤부터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쾅, 쾅, 쾅]
그 사이에 여자가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으악, 놀래라!”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말에 황급히 입을 틀어 막았지만, 여자의 목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흘러 들어왔다.
“집에 있는 거 다 알아요!”
룬은 보조 키가 채워진 것을 확인한 다음에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당신 소속사 대표.”
“네?”
동그래진 눈을 깜빡거리던 그는 이내 피식하며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찌라시 보고 왔나 본데, 내 소속사는 아직까지 LJ이고, 대표님은….”
“우리 아빠야.”
“뭐?”
“내가 LJ 대표인 이원희씨 딸, 이제니 라고. 앞으로는 내가 LJ 대표이자, 당신 매니저예요.”
“풋, 그걸 어떻게 믿어요?”
비웃는 그를 향해 제니는 룬의 계약서를 펼쳐 보였다.
“보이죠? 읽어보니까 종신 계약이나 다름 없던데.”
가만히 서 있던 룬은 다급하게 보조 키를 풀어 문을 열었다.
“대표님은 지금 어디 있어요? 일단 대표님부터 만나게 해 줘요.”
“몰라요, 나도.”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족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그럼 그 계약서는 어떻게 받은거죠?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제대로 말 좀 해봐요."
꾹 깨물고 있던 제니의 입술이 벌어졌다.
"당신보다 내가 더 답답해 미칠 것 같아, 아빠가 왜 도망치듯 사라졌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미안하다는 쪽지 한 장 받은 게 다야. 걱정도 되지만 원망스러운 내 심정을 당신이 알아?”
“하긴 나보다 딸인 당신이 더 힘들 텐데, 방금 한 말은 미안해요. 혹시라도 대표님 찾으면 연락드릴 테니까 전화번호 줘요.”
핸드폰을 내미는 그를 향해 제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빠 찾으려고 여기 온 거 아니에요.”
룬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요? 내가 뭐 도와줄 거라도 있어요?”
“딴 건 아리엘이 다 가져가고 나한테 남은 건 당신뿐이야.”
마른 침을 꿀꺽 삼킨 그녀는 당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을 성공시켜서 전부 다 되찾을 거야.”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그쪽이 날 매니지먼트 해 주겠다고요?”
“네. 안 될 이유가 없잖아요.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아있는데.”
그는 제니를 아래, 위로 훑으며 물었다.
“이쪽 일 해 본 적은 있어요?”
“아뇨.”
“운전은 할 줄 알아요.”
“해 본 적은 없지만, 면허는 있어요.”
“계약은 그냥 해지하는 것으로 하죠. 어차피 난 거기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는데,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서로한테 좋을 것 같네요.”
“누구 마음대로!”
발끈하는 제니의 반응에 그도 지지 않고 맞섰다.
“내 마음대로! 그리고 자꾸 계약 기간 이야기하는데 말이야, 대표님과 따로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았던 건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언제든지 그만두기로 정했기 때문이야. 이런 생활도 지겨웠는데 잘 됐어. 지금 당장 취직 자리라도 알아봐야겠으니까 그만 가 줘요.”
그제야 제니의 눈에 방안의 광경과 남자의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9평 남짓한 원룸의 한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공룡 의상, 작은 냉장고 위에 쌓여 있는 고지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집에서 자른 듯 아무렇게나 길어져 있었고, 피부는 푸석하고 거칠어 보였다.
“그러게. 빛이 안 나네.”
나지막한 제니의 음성이 방안에 울렸다.
“뭐?”
룬의 미간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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