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먹을 것이 있다?
조회 : 756 추천 : 2 글자수 : 4,075 자 2022-09-19
“여기 비쌀 것 같은데.”
그녀의 뒤를 따르던 룬은 매장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당연히 비싸지, 프리다도 몰라?”
천진한 제니의 표정에 그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내 말뜻은, 너 돈은 있냐고.”
“난 또 뭐라고.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도 몰라?”
제니는 오렌지색의 카드를 흔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비싼 만큼 눈에도 잘 띄어, 사진이라 해도 말이야.”
“그럼 난 눈에 잘 안 띈다는 거야?”
발끈하는 그의 얼굴을 제니가 두 손으로 감싸서 끌어당겼다.
“넌 최고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눈이 높지는 않거든.”
확신에 찬 그녀의 눈동자는 룬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앗, 제니님. 오랜만이세요.”
안으로 발을 들이기도 전에 그녀를 알아본 매장 직원이 다가와서 에스코트를 시작했다.
“오늘은 남자 옷 좀 보려는데.”
그녀의 말을 들은 점원이 룬을 슬쩍 쳐다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 남자친구 분이세요?”
웃음이 스며든 질문에 두 사람 모두 동시에 왈칵 소리를 질렀다.
“아니요.”
“아니거든요!”
민망해진 점원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다시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남자친구 분이랑 헤어졌다길래, 당연히 새 남자친구 분과 왔다고 생각했어요.”
“헤어져? 난 헤어진 적 없는데 누가 그런 소릴 하고 다니는 거죠?”
“네? 그게…, 어제 시헌님이 새 여자친구 분과 다녀갔었거든요….”
“그거 확실해?”
제니는 점원의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되물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점원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읊조렸다.
“네. 직접 여자친구라고 말했어요. 1일 기념으로 온 거라고.”
제니는 핸드폰을 든 손을 점원의 얼굴 앞에 들이밀며 협박하듯 속삭였다.
“너, 그 말 거짓말이기만 해봐.”
지켜만 보고 있던 룬은 얼른 다가서서 제니의 손을 끌어내렸다.
“그만해.”
“이건 내 문제야. 네가 뭔데 끼어들어?”
“촬영 늦겠다며. 그리고… 지금 여기 쳐다보는 사람이 꽤 되거든.”
룬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나지막게 말했다.
“요즘 기자들만 카메라 들고 다니는 거 아니야. 이런 걸로 이슈 되고 싶은 생각 없거든.”
주변을 살펴보던 그녀는 룬의 손을 뿌리치며 손을 거두었다.
“알았어.”
제니는 점원이 서 있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고개를 돌린 채 입술을 움직였다.
“암튼 남자 옷 보여줘요. 화려하면서도 모던하고, 격식있지만 편안한 분위기로.”
“네?”
점원의 입가가 살짝 씰룩였다.
하지만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 입으려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알려주시면 원하시는 옷을 고르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제야 제니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프로필 촬영. 여기 이 남자 우리 소속사 배우야.”
“어쩐지, 너무 잘생기셨다 했어요!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혹시 벌써 데뷔하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점원들도 힐끗거리며 룬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흠흠, 제가 시간이 좀 없어서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그의 재촉에 다른 점원들까지 모여들어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서 있지 말고, 좀 앉아 있어. 이제부터 더 힘들 텐데.”
붉은색 소파에 앉아서 여유 있게 차를 마시는 그녀와 달리 룬은 초조한 얼굴로 옷을 보고 있었다.
“참, 벨트랑 구두도요. 룬, 신발 사이즈가 어떻게 돼?”
“280. 그런데 촬영 한 번에 너무 비싼 거 아냐?”
주변을 둘러보던 제니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귀 좀 줘 봐.”
“왜?”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저 옷 입을 때 절대 텍 제거하면 안 돼. 당연히 뭘 묻혀서도 안 되고.”
“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그에게 제니는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어휴, 이거 촬영만 끝나면 환불 할 거란 말이야.”
“헐. 그래도 되는 거야?”
룬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졌다.
“안 될 건 뭐가 있어? 그거 입고 밖을 나다니는 것도 아니고 한번 입고 그대로 둔 건데. 여기서 입어보는 거랑 다를 것도 없잖아.”
“그래도 왠지 좀 그렇지 않아?”
“쉿, 조용히 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10여 벌의 옷이 걸린 헹거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오래 기다리셨죠? 어때요? 원단은 차르르 해서 화려해 보이지만, 디자인은 단순한 것으로 골라봤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제니는 하나씩 옷걸이를 넘기며 날카롭게 옷을 살폈다.
“흠, 이게 좋겠어. 나머진 다 그렇네.”
가슴 부분에 빨간색 로고가 작게 수놓아져 있는 검정색 정장을 집어 들었다.
“어때?”
“괘, 괜찮은 것 같아.”
“이걸로 할게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안목이 정말 훌륭해요.”
점원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활짝 웃었다.
“그럼 안쪽으로 가셔서 입어보세요. 필요하시면 바지 길이랑 소매 부분 체크해서 수선 신청 할게요.”
“아뇨! 그냥 주세요.”
“아…, 그런데 이 옷은 모델 핏 그대로 나온 거라서 기장 수선이 필요해요. 만약 외부 다른 곳에 맡기시면 매장 AS가 힘드실지도 몰라요.”
“그건 알고 있지만….”
제니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모델 핏이랑 비슷해요. 다리 길이가 남들보다 길거든요.”
룬이 끼어들자 그녀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다른 브랜드도 그랬어요.”
“아, 그러시구나. 하긴 키도 크시니까. 그럼 결제 도와드릴게요.”
“네, 일시불요.”
점원이 계산대로 향하자, 제니는 그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웃고 있는 그녀와 달리, 겨우 한시름 놓은 룬은 빨리 쇼핑백을 들고 매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먼저 나가 있어도 되지?”
“응, 이거 들고 먼저 나가 있어. 앗, 잠시만 저기 카드 들고 온다, 같이 나가.”
카드를 손에 든 점원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영수증은 됐어요.”
쇼핑백을 들고 일어서는 제니를 향해, 점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른 카드는 없으실까요?”
“네? 왜요?”
“한도 초과입니다.”
토끼처럼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던 제니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이 카드 몰라요? 여기 VIP 카드잖아.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몇 천 만원도 쓸 수 있다고.”
“실례지만, 어제부터 VIP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네요.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을 본 점원은 조금 더 싸늘해진 말투로 다시 물었다.
“그건 직접 확인해 보시고, 다른 카드는 없으신건가요?”
“잠시만요, 여기 있어요.”
제니는 금색의 다른 은행 카드를 내밀었다.
그녀에게서 카드를 건네받은 점원은 벨트에 차고 있던 작은 리더기에 카드를 긁었다.
"이것도 한조 초과네요"
점원의 말을 들은 제니는 어이가 없는 듯 헛 웃음을 흘렸다.
"이상하네, 이번 달에 거의 쓴 것도 없는데. 잠시만 기다려봐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그녀는 카드 뒷면에 적혀있는 고객센트에 전화를 걸었다.
"카드 한도가 얼마인지 알고 싶어서요."
[30만원 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카드예요? 30 쓸거면 뭣하러 신용카드 만들겠냐고요. 그리고 왜 맘대로 한도가 변경되요?"
[그야, 이제니님을 보증하던 회사가 사라지기 일보직전 이니까요.]
"내가 지금까지 카드 쓴 게 얼마인데!"
핸드폰 너머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니님 개인 재산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원래는 골드자격이 안 되시는데 지금까지 실적으로 한도만 변경한 거예요.]
그녀는 말 없이 그대로 종료버튼을 눌렀다.
"다른 카드를 주시겠어요?"
앞에 선 점원이 손을 내밀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처음과 다르게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묻어났다.
'다른 카드도 마찬가지 일 것 같은데.'
제니가 지갑에서 손을 떼지 못하자 점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럼 구매 안 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망했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회사 망했는데 남자 끼고 쇼핑이나 다니고 정말 철 없다."
"그러게, 저 남자도 불쌍하네. 부자 망해도 3년은 먹고 산다더니 그것도 옛 말 인가봐."
뒷 쪽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그대로 제니에게 전해졌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점원은 쇼핑백을 다시 가져가려고 팔을 내뻗었다.
"잠시만요, 이걸로 계산하세요. 일시불."
그의 한 마디에 매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에필로그 **
"뭐하냐?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고."
룬의 핀잔에 그녀는 후다닥 핸드폰을 뒤집어 무릎 위에 올렸다.
"그냥 다른 배우들은 어떻게 찍었나 컨셉 좀 보고 있었어."
"그럼 나도 좀 보여줘 봐, 포즈 참고 좀 하게."
핸드폰으로 그의 손이 다가오자, 제니는 황급하게 등 뒤로 핸드폰을 감추었다.
"나중에 봐, 옷 왔어."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 점원이 끌고 온 헹거 앞으로 갔다.
옷에 정신이 팔린 제니를 보며 룬은 슬그머니 소파에 남겨진 그녀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럼, 그렇지.'
핸드폰 화면에는 보내지 못하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 한 것 같은 메시지 글이 떠 있었다.
[너, 딴 여자 생겼어? 언제 부터]
그는 빠르게 쓰여있던 메세지를 지운 뒤,다시 쓰기 시작했다.
[나 제니 새 남친. 얘가 마음이 여려서 너한테 헤어지자는 소리를 못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앞으로 내 공주님한테 연락하지 마.]
룬은 망설임 없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룬은 매장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당연히 비싸지, 프리다도 몰라?”
천진한 제니의 표정에 그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내 말뜻은, 너 돈은 있냐고.”
“난 또 뭐라고.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도 몰라?”
제니는 오렌지색의 카드를 흔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비싼 만큼 눈에도 잘 띄어, 사진이라 해도 말이야.”
“그럼 난 눈에 잘 안 띈다는 거야?”
발끈하는 그의 얼굴을 제니가 두 손으로 감싸서 끌어당겼다.
“넌 최고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눈이 높지는 않거든.”
확신에 찬 그녀의 눈동자는 룬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앗, 제니님. 오랜만이세요.”
안으로 발을 들이기도 전에 그녀를 알아본 매장 직원이 다가와서 에스코트를 시작했다.
“오늘은 남자 옷 좀 보려는데.”
그녀의 말을 들은 점원이 룬을 슬쩍 쳐다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 남자친구 분이세요?”
웃음이 스며든 질문에 두 사람 모두 동시에 왈칵 소리를 질렀다.
“아니요.”
“아니거든요!”
민망해진 점원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다시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남자친구 분이랑 헤어졌다길래, 당연히 새 남자친구 분과 왔다고 생각했어요.”
“헤어져? 난 헤어진 적 없는데 누가 그런 소릴 하고 다니는 거죠?”
“네? 그게…, 어제 시헌님이 새 여자친구 분과 다녀갔었거든요….”
“그거 확실해?”
제니는 점원의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되물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점원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읊조렸다.
“네. 직접 여자친구라고 말했어요. 1일 기념으로 온 거라고.”
제니는 핸드폰을 든 손을 점원의 얼굴 앞에 들이밀며 협박하듯 속삭였다.
“너, 그 말 거짓말이기만 해봐.”
지켜만 보고 있던 룬은 얼른 다가서서 제니의 손을 끌어내렸다.
“그만해.”
“이건 내 문제야. 네가 뭔데 끼어들어?”
“촬영 늦겠다며. 그리고… 지금 여기 쳐다보는 사람이 꽤 되거든.”
룬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나지막게 말했다.
“요즘 기자들만 카메라 들고 다니는 거 아니야. 이런 걸로 이슈 되고 싶은 생각 없거든.”
주변을 살펴보던 그녀는 룬의 손을 뿌리치며 손을 거두었다.
“알았어.”
제니는 점원이 서 있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고개를 돌린 채 입술을 움직였다.
“암튼 남자 옷 보여줘요. 화려하면서도 모던하고, 격식있지만 편안한 분위기로.”
“네?”
점원의 입가가 살짝 씰룩였다.
하지만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 입으려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알려주시면 원하시는 옷을 고르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제야 제니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프로필 촬영. 여기 이 남자 우리 소속사 배우야.”
“어쩐지, 너무 잘생기셨다 했어요!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혹시 벌써 데뷔하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점원들도 힐끗거리며 룬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흠흠, 제가 시간이 좀 없어서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그의 재촉에 다른 점원들까지 모여들어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서 있지 말고, 좀 앉아 있어. 이제부터 더 힘들 텐데.”
붉은색 소파에 앉아서 여유 있게 차를 마시는 그녀와 달리 룬은 초조한 얼굴로 옷을 보고 있었다.
“참, 벨트랑 구두도요. 룬, 신발 사이즈가 어떻게 돼?”
“280. 그런데 촬영 한 번에 너무 비싼 거 아냐?”
주변을 둘러보던 제니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귀 좀 줘 봐.”
“왜?”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저 옷 입을 때 절대 텍 제거하면 안 돼. 당연히 뭘 묻혀서도 안 되고.”
“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그에게 제니는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어휴, 이거 촬영만 끝나면 환불 할 거란 말이야.”
“헐. 그래도 되는 거야?”
룬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졌다.
“안 될 건 뭐가 있어? 그거 입고 밖을 나다니는 것도 아니고 한번 입고 그대로 둔 건데. 여기서 입어보는 거랑 다를 것도 없잖아.”
“그래도 왠지 좀 그렇지 않아?”
“쉿, 조용히 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10여 벌의 옷이 걸린 헹거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오래 기다리셨죠? 어때요? 원단은 차르르 해서 화려해 보이지만, 디자인은 단순한 것으로 골라봤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제니는 하나씩 옷걸이를 넘기며 날카롭게 옷을 살폈다.
“흠, 이게 좋겠어. 나머진 다 그렇네.”
가슴 부분에 빨간색 로고가 작게 수놓아져 있는 검정색 정장을 집어 들었다.
“어때?”
“괘, 괜찮은 것 같아.”
“이걸로 할게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안목이 정말 훌륭해요.”
점원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활짝 웃었다.
“그럼 안쪽으로 가셔서 입어보세요. 필요하시면 바지 길이랑 소매 부분 체크해서 수선 신청 할게요.”
“아뇨! 그냥 주세요.”
“아…, 그런데 이 옷은 모델 핏 그대로 나온 거라서 기장 수선이 필요해요. 만약 외부 다른 곳에 맡기시면 매장 AS가 힘드실지도 몰라요.”
“그건 알고 있지만….”
제니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모델 핏이랑 비슷해요. 다리 길이가 남들보다 길거든요.”
룬이 끼어들자 그녀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다른 브랜드도 그랬어요.”
“아, 그러시구나. 하긴 키도 크시니까. 그럼 결제 도와드릴게요.”
“네, 일시불요.”
점원이 계산대로 향하자, 제니는 그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웃고 있는 그녀와 달리, 겨우 한시름 놓은 룬은 빨리 쇼핑백을 들고 매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먼저 나가 있어도 되지?”
“응, 이거 들고 먼저 나가 있어. 앗, 잠시만 저기 카드 들고 온다, 같이 나가.”
카드를 손에 든 점원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영수증은 됐어요.”
쇼핑백을 들고 일어서는 제니를 향해, 점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른 카드는 없으실까요?”
“네? 왜요?”
“한도 초과입니다.”
토끼처럼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던 제니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이 카드 몰라요? 여기 VIP 카드잖아.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몇 천 만원도 쓸 수 있다고.”
“실례지만, 어제부터 VIP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네요.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을 본 점원은 조금 더 싸늘해진 말투로 다시 물었다.
“그건 직접 확인해 보시고, 다른 카드는 없으신건가요?”
“잠시만요, 여기 있어요.”
제니는 금색의 다른 은행 카드를 내밀었다.
그녀에게서 카드를 건네받은 점원은 벨트에 차고 있던 작은 리더기에 카드를 긁었다.
"이것도 한조 초과네요"
점원의 말을 들은 제니는 어이가 없는 듯 헛 웃음을 흘렸다.
"이상하네, 이번 달에 거의 쓴 것도 없는데. 잠시만 기다려봐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그녀는 카드 뒷면에 적혀있는 고객센트에 전화를 걸었다.
"카드 한도가 얼마인지 알고 싶어서요."
[30만원 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카드예요? 30 쓸거면 뭣하러 신용카드 만들겠냐고요. 그리고 왜 맘대로 한도가 변경되요?"
[그야, 이제니님을 보증하던 회사가 사라지기 일보직전 이니까요.]
"내가 지금까지 카드 쓴 게 얼마인데!"
핸드폰 너머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니님 개인 재산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원래는 골드자격이 안 되시는데 지금까지 실적으로 한도만 변경한 거예요.]
그녀는 말 없이 그대로 종료버튼을 눌렀다.
"다른 카드를 주시겠어요?"
앞에 선 점원이 손을 내밀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처음과 다르게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묻어났다.
'다른 카드도 마찬가지 일 것 같은데.'
제니가 지갑에서 손을 떼지 못하자 점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럼 구매 안 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망했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회사 망했는데 남자 끼고 쇼핑이나 다니고 정말 철 없다."
"그러게, 저 남자도 불쌍하네. 부자 망해도 3년은 먹고 산다더니 그것도 옛 말 인가봐."
뒷 쪽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그대로 제니에게 전해졌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점원은 쇼핑백을 다시 가져가려고 팔을 내뻗었다.
"잠시만요, 이걸로 계산하세요. 일시불."
그의 한 마디에 매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에필로그 **
"뭐하냐?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고."
룬의 핀잔에 그녀는 후다닥 핸드폰을 뒤집어 무릎 위에 올렸다.
"그냥 다른 배우들은 어떻게 찍었나 컨셉 좀 보고 있었어."
"그럼 나도 좀 보여줘 봐, 포즈 참고 좀 하게."
핸드폰으로 그의 손이 다가오자, 제니는 황급하게 등 뒤로 핸드폰을 감추었다.
"나중에 봐, 옷 왔어."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 점원이 끌고 온 헹거 앞으로 갔다.
옷에 정신이 팔린 제니를 보며 룬은 슬그머니 소파에 남겨진 그녀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럼, 그렇지.'
핸드폰 화면에는 보내지 못하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 한 것 같은 메시지 글이 떠 있었다.
[너, 딴 여자 생겼어? 언제 부터]
그는 빠르게 쓰여있던 메세지를 지운 뒤,다시 쓰기 시작했다.
[나 제니 새 남친. 얘가 마음이 여려서 너한테 헤어지자는 소리를 못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앞으로 내 공주님한테 연락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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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별그램.조회 : 724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793 6.왜 망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조회 : 957 추천 : 2 댓글 : 0 글자 : 4,499 5.네가 아니면 안 돼조회 : 791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849 4.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먹을 것이 있다?조회 : 761 추천 : 2 댓글 : 0 글자 : 4,075 3.반짝반짝 별이 되게 해 줘조회 : 791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868 2.아직 한 명이 남아 있어!조회 : 752 추천 : 2 댓글 : 0 글자 : 3,619 1.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조회 : 1,039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