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망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조회 : 947 추천 : 2 글자수 : 4,499 자 2022-09-27
'웃기지도 않네 정말. 기껏 살던 집에서 있게 해줬더니 누구랑 뭘 한다고?'
아리엘은 처음 이룬을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할 줄 아는거라곤 대본 외우는 것 밖에 없는 애를 대표님은 왜... 하긴 자기 돈 쓰는 거 아니란 거지. 짜증나.'
"앗 뜨거워!"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감싼 그녀는 뒤에 선 스타일리스트를 노려보았다.
"죄송해요,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움직이는 바람에..."
"너, 지금 나 때문이라는 거야?"
싸늘하게 굳어진 아리엘의 목소리에 주변공기 전체가 얼어붙은 것 같았다.
"어, 언니 때문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인형도 아니고 어떻게 꼼짝도 안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전부터 계속 말했지? 고데기 다이손으로 바꾸라고. 받아가는 월급이 얼마인데 장비까지 내가 사줘?"
"죄송해요. 오늘 일 끝나면 바로."
스타일리스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리엘은 손을 휘저었다.
"됐으니까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네? 언니, 갑자기 그러시면 어떡해요."
소파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유매니저도 옆으로 와서 아리엘을 달랬다.
"그래, 사람 밥줄 쉽게 끝는 거 아니야, 이번만 용서해. 너도 이제 대표이니까 직원들을 다 품을 줄 알아야지."
아리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LJ가 왜 망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그녀는 유매니저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쟤를 왜 자르는 줄 알아? 당신을 포함해서 나머지 능력 있는 사람들 밥줄 지켜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내일 아침까지 새로운 사람 데려와요."
칼 같이 말을 마친 그녀가 다시 자리에 앉자, 스타일리스트는 안절부절 못하며 서 있다가 결국은 손에 든 빗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봤죠? 센스도 없어, 근성도 없어. 저런 애를 둬봤자 결국 피해는 다른 사람 몫이에요. 그 놈처럼."
"그 놈?"
"내가 드라마 하면서 망쳤던 작품이 하나 밖에 더 있어요? 되지도 않는 게 자신감만 가지고 들이대서는, 결국 나까지 쌍으로 까이고. 하긴 따지고 보면 그 자신감 믿고 밀어준 이 대표 잘못이지 안 그래요?"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하지만 넌 어쨌든 본업이 가수, 그것도 싱어 송라이터 이니까."
"내 귀나 목소리는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는 상태라는 거, 유매니저도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그때 드라마만 잘 됐어도 나는...."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그녀의 소속사 배우인 도영이 들어왔다.
"누나 아니, 이제 대표님! 진작 있는 줄 알았으면 들어올 때 커피라도 사 왔을 텐데."
"됐어, 커피는 오전에 한 잔만...! 잠깐, 너 지금 여기 왜 있는 거야? 아직 머리다 안 했어?"
"다 했는데 왜?"
창백한 얼굴로 묻는 그녀와는 정반대로 도영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에? 너 오늘 양희 감독이랑 미팅 있잖아!"
"치, 난 또 뭐라고 일부러 늦으려고 시간 때우고 있는 중이야."
"미쳤어? 너, 빨리 안 가?"
"그럴 이유가 있단 말이야."
"이유가 뭔데!"
쭈뼛대던 그는 아리엘의 성화에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게, 나더러 뚱땡이 분장을 해서 1인 2역을 하라고 하잖아."
"1인 2역?"
"응, 원래 쌍둥이라면서 한 사람이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거지."
"그렇지. 그건 감독 말이 맞지."
"맞긴 뭐가 맞아? 그럼 돈도 2배로 주던가. 뚱땡이 형 역은 사실 단역 같은 조연이라 몇 번 나오지도 않는다고. 나오는 시간보다 분장하고 분장 유지하고 있는 시간이 몇 배는 더 길 걸? 내가 왜 그 고생을 해. 일란성 쌍둥이 아니라고 설정하면 그만 인 걸."
"너 아무리 그래도 ..."
불현듯 아리엘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아니야, 듣고 보니 네 말도 맞아. 그래도 약속시간에 너무 늦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얼른 가. 그 뚱땡이 역할은 내가 직접 감독님한테 말할게."
"정말이야? 역시 아리엘이 최고야. 예전 대표였으면 감독이 시키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둥 속 터지는 말만 했을 거야."
"난 너희들 그렇게 뺑뺑이 안 시켜. 능력만큼 대우 받고 일하게 해 줄 거야."
"이제라도 내가 누나 밑으로 들어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럼 저는 대표님만 믿고 물러 갑니다!"
도영이가 사라진 후에야 유매니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려고? 진짜 양희 감독한테 돈을 두 배로 달라고 하게?"
"내가 정신이 나갔어요? 나도 언제, 누구한테는 고개를 숙여야 하는 지 알아요."
아리엘은 미소를 한껏 머금고서는 양희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쿠, 우리 국민 여동생, 아니 이제 AG대표님께서 웬일로 전화를 다 주시고 하하.]
"감독님도 참 국민 여동생은 무슨, 저도 곧 서른 이에요. 다른 게 아니라 저희 배우가 1인 2역 싫다고 그랬다면서요?"
[들었어? 솔직히 나도 기분이 좀 그래. 내가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단역이라도 좋다고 나오려는 배우들 꽤 있다고. 하지만 작품 상 같은 사람이면 더 완벽하지 않겠냐는 거지.]
"백 번 맞는 말씀이에요. 그런 감독님 생각이 다 작품에 반영되니까 하는 영화마다 성공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그 배우랑 이야기는 좀 해봤어?]
그녀는 한숨을 쉬며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까 도영이도 사정이 있더라고요. 예전 소속사 배우 중에 저랑 재계약을 안하고 빠진 애가 있는데, 걔가 너무 딱하다고 형 역할을 걔한테 주면 어떻겠냐고 하는 거예요."
[에잇, 그건 안돼. 나 인맥으로 배역 안 줘.]
"알죠. 그런데 그 친구 사정이 너무 딱하더라고요. 연기력은 있어요, 예전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등도 했고요."
[그런데 그런 친구를 왜 재계약 안 했어? 솔직히 될 물건이면 그냥 뒀을 리가 없잖아. 나도 그 바닥 사정 모르는 거 아니고.]
"오해예요. 저야 데리고 오고 싶었죠. 그런데 그 친구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더라고요. 더구나 이 대표 딸이 그 친구랑 계속 소속사를 운영해 나간다고 했고요."
[이 대표 딸이?]
"네. 감독님 제 성격 알잖아요. 이 대표님 딸도 그렇고 그 배우 친구도 그렇고 너무 가엾잖아요. 사람 한 명, 아니 두 명 살린다는 생각으로 한 번 만나보기나 하세요. 보고 정 아니면 안 하시면 되죠."
[그렇게 까지 말하면 내가...]
"그럼 자리한 번 마련하는 걸로 할게요. 만나보시고 마음에 안 들면 그땐 도영이가 하면 되죠. 손해 보실 거 없으시잖아요."
[어휴, 아리엘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내가 거절하기가 곤란하지. 알겠어.]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통화를 끝낸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꺄악! 신나. 간만에 너무너무 재밌는 구경 하게 생겼어."
"어쩔 생각이야?"
유매니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 것까지는 알 거 없고, 제니한테 양감독 번호 줬어요?"
"아니, 아직은... 오늘은 전화도 안 받고 해서."
"잘 됐네. 제니한테 연락해서 양 감독이 한번 보자고 했다고 해요. 장소는..., S호텔이 좋겠어. 양감독 중식 좋아하니까 S호텔 중식당 룸으로 예약도 해 놔요."
그녀는 브러쉬로 머리를 매만지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저기 뭐야? 인플루언서 그런 건가?"
"첨 보는 얼굴인데? 근데 완전 잘생김."
"옷도 프리다야."
주변의 수근거림 속에서 룬은 침착하게 표정을 유지했다.
'망할..., 내가 저걸 믿는 게 아니었는데.'
"저기, 룬! 눈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아, 조금 부드러운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제니는 사람들이 듣길 바라며, 일부러 크게 목소리를 냈다.
"야, 조용히 말해. 창피해 죽겠네..."
룬은 붕어처럼 벙긋거리며 그녀를 쏘아보았다.
"흠, 그 표정도 나쁘지 않네."
제니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핸드폰으로 그를 찍어 댔다.
백화점, 그것도 1층 향수 코너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걸 알았다면 그녀가 아무리 울고불고 매달렸어도 룬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 20분 전 -
"그러니까 여기가 스튜디오라고?"
그는 더이상 상실할 어이도 없었다.
"응, 어때? 향기가 좋으니까 막 저절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아? 조명도 최고잖아. 게다가 정적이면서 역동적인 이 느낌이란."
룬이 얼굴을 구기며 입을 열려는 순간,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다가왔다.
"맞아요, 저희 매장에 쇼핑몰 촬영도 엄청 많이 해요."
그리고 뒤이어지는 직원의 말에 룬은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ㄷ.
"저 옛날에 오빠 많이 응원했었는데 다시 활동해서 너무 좋아요."
"네? 저 알아요?"
"당연하죠. 투표 때 제 핸드폰 요금의 빌런이었죠, 하하. 사진 예쁘게 찍고 가세요."
직원이 뒤돌아서자, 그는 당황스런 얼굴로 제니를 쳐다보았다.
"우연이었어, 우연. 여기 원래 내가 자주 오는 곳인데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서 찍는 건 어떠냐고 먼저 물어봤다고."
'팬이란 게 이런 느낌인 건가? 그래 아무렴 어때. 몇 년 전 사진 들이미는 것보다는 낫겠지.'
팬이라는 직원의 한마디에 룬은 뭔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다른 건 다 이해하겠는데, 핸드폰으로 찍는 건 좀... 너무 했다고 생각 안 하냐? 요즘 렌탈도 하는데."
"모르는 소리! 요즘은 핸드폰으로 영화도 찍어. 또 옛날처럼 틀에 박힌 사진관 촬영 같은 것 보다는 화보 같은 일상 사진이 훨씬 좋아."
"입은 살아서."
"그리고 감독이나 PD도 SNS 얼마나 많이 보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찍고 살짝 보정해서 바로 인별그램에 업로드 하는 게 편해."
"알았어. 그럼 난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둘러보는 느낌도 좋고, 마음에 드는 향 발견하면 향수를 손에 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향을 맡아보거나."
"쇼핑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는 거지? O.K"
룬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날 응원해줬던 사람들을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
아리엘은 처음 이룬을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할 줄 아는거라곤 대본 외우는 것 밖에 없는 애를 대표님은 왜... 하긴 자기 돈 쓰는 거 아니란 거지. 짜증나.'
"앗 뜨거워!"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감싼 그녀는 뒤에 선 스타일리스트를 노려보았다.
"죄송해요,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움직이는 바람에..."
"너, 지금 나 때문이라는 거야?"
싸늘하게 굳어진 아리엘의 목소리에 주변공기 전체가 얼어붙은 것 같았다.
"어, 언니 때문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인형도 아니고 어떻게 꼼짝도 안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전부터 계속 말했지? 고데기 다이손으로 바꾸라고. 받아가는 월급이 얼마인데 장비까지 내가 사줘?"
"죄송해요. 오늘 일 끝나면 바로."
스타일리스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리엘은 손을 휘저었다.
"됐으니까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네? 언니, 갑자기 그러시면 어떡해요."
소파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유매니저도 옆으로 와서 아리엘을 달랬다.
"그래, 사람 밥줄 쉽게 끝는 거 아니야, 이번만 용서해. 너도 이제 대표이니까 직원들을 다 품을 줄 알아야지."
아리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LJ가 왜 망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그녀는 유매니저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쟤를 왜 자르는 줄 알아? 당신을 포함해서 나머지 능력 있는 사람들 밥줄 지켜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내일 아침까지 새로운 사람 데려와요."
칼 같이 말을 마친 그녀가 다시 자리에 앉자, 스타일리스트는 안절부절 못하며 서 있다가 결국은 손에 든 빗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봤죠? 센스도 없어, 근성도 없어. 저런 애를 둬봤자 결국 피해는 다른 사람 몫이에요. 그 놈처럼."
"그 놈?"
"내가 드라마 하면서 망쳤던 작품이 하나 밖에 더 있어요? 되지도 않는 게 자신감만 가지고 들이대서는, 결국 나까지 쌍으로 까이고. 하긴 따지고 보면 그 자신감 믿고 밀어준 이 대표 잘못이지 안 그래요?"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하지만 넌 어쨌든 본업이 가수, 그것도 싱어 송라이터 이니까."
"내 귀나 목소리는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는 상태라는 거, 유매니저도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그때 드라마만 잘 됐어도 나는...."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그녀의 소속사 배우인 도영이 들어왔다.
"누나 아니, 이제 대표님! 진작 있는 줄 알았으면 들어올 때 커피라도 사 왔을 텐데."
"됐어, 커피는 오전에 한 잔만...! 잠깐, 너 지금 여기 왜 있는 거야? 아직 머리다 안 했어?"
"다 했는데 왜?"
창백한 얼굴로 묻는 그녀와는 정반대로 도영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에? 너 오늘 양희 감독이랑 미팅 있잖아!"
"치, 난 또 뭐라고 일부러 늦으려고 시간 때우고 있는 중이야."
"미쳤어? 너, 빨리 안 가?"
"그럴 이유가 있단 말이야."
"이유가 뭔데!"
쭈뼛대던 그는 아리엘의 성화에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게, 나더러 뚱땡이 분장을 해서 1인 2역을 하라고 하잖아."
"1인 2역?"
"응, 원래 쌍둥이라면서 한 사람이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거지."
"그렇지. 그건 감독 말이 맞지."
"맞긴 뭐가 맞아? 그럼 돈도 2배로 주던가. 뚱땡이 형 역은 사실 단역 같은 조연이라 몇 번 나오지도 않는다고. 나오는 시간보다 분장하고 분장 유지하고 있는 시간이 몇 배는 더 길 걸? 내가 왜 그 고생을 해. 일란성 쌍둥이 아니라고 설정하면 그만 인 걸."
"너 아무리 그래도 ..."
불현듯 아리엘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아니야, 듣고 보니 네 말도 맞아. 그래도 약속시간에 너무 늦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얼른 가. 그 뚱땡이 역할은 내가 직접 감독님한테 말할게."
"정말이야? 역시 아리엘이 최고야. 예전 대표였으면 감독이 시키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둥 속 터지는 말만 했을 거야."
"난 너희들 그렇게 뺑뺑이 안 시켜. 능력만큼 대우 받고 일하게 해 줄 거야."
"이제라도 내가 누나 밑으로 들어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럼 저는 대표님만 믿고 물러 갑니다!"
도영이가 사라진 후에야 유매니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려고? 진짜 양희 감독한테 돈을 두 배로 달라고 하게?"
"내가 정신이 나갔어요? 나도 언제, 누구한테는 고개를 숙여야 하는 지 알아요."
아리엘은 미소를 한껏 머금고서는 양희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쿠, 우리 국민 여동생, 아니 이제 AG대표님께서 웬일로 전화를 다 주시고 하하.]
"감독님도 참 국민 여동생은 무슨, 저도 곧 서른 이에요. 다른 게 아니라 저희 배우가 1인 2역 싫다고 그랬다면서요?"
[들었어? 솔직히 나도 기분이 좀 그래. 내가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단역이라도 좋다고 나오려는 배우들 꽤 있다고. 하지만 작품 상 같은 사람이면 더 완벽하지 않겠냐는 거지.]
"백 번 맞는 말씀이에요. 그런 감독님 생각이 다 작품에 반영되니까 하는 영화마다 성공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그 배우랑 이야기는 좀 해봤어?]
그녀는 한숨을 쉬며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까 도영이도 사정이 있더라고요. 예전 소속사 배우 중에 저랑 재계약을 안하고 빠진 애가 있는데, 걔가 너무 딱하다고 형 역할을 걔한테 주면 어떻겠냐고 하는 거예요."
[에잇, 그건 안돼. 나 인맥으로 배역 안 줘.]
"알죠. 그런데 그 친구 사정이 너무 딱하더라고요. 연기력은 있어요, 예전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등도 했고요."
[그런데 그런 친구를 왜 재계약 안 했어? 솔직히 될 물건이면 그냥 뒀을 리가 없잖아. 나도 그 바닥 사정 모르는 거 아니고.]
"오해예요. 저야 데리고 오고 싶었죠. 그런데 그 친구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더라고요. 더구나 이 대표 딸이 그 친구랑 계속 소속사를 운영해 나간다고 했고요."
[이 대표 딸이?]
"네. 감독님 제 성격 알잖아요. 이 대표님 딸도 그렇고 그 배우 친구도 그렇고 너무 가엾잖아요. 사람 한 명, 아니 두 명 살린다는 생각으로 한 번 만나보기나 하세요. 보고 정 아니면 안 하시면 되죠."
[그렇게 까지 말하면 내가...]
"그럼 자리한 번 마련하는 걸로 할게요. 만나보시고 마음에 안 들면 그땐 도영이가 하면 되죠. 손해 보실 거 없으시잖아요."
[어휴, 아리엘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내가 거절하기가 곤란하지. 알겠어.]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통화를 끝낸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꺄악! 신나. 간만에 너무너무 재밌는 구경 하게 생겼어."
"어쩔 생각이야?"
유매니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 것까지는 알 거 없고, 제니한테 양감독 번호 줬어요?"
"아니, 아직은... 오늘은 전화도 안 받고 해서."
"잘 됐네. 제니한테 연락해서 양 감독이 한번 보자고 했다고 해요. 장소는..., S호텔이 좋겠어. 양감독 중식 좋아하니까 S호텔 중식당 룸으로 예약도 해 놔요."
그녀는 브러쉬로 머리를 매만지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저기 뭐야? 인플루언서 그런 건가?"
"첨 보는 얼굴인데? 근데 완전 잘생김."
"옷도 프리다야."
주변의 수근거림 속에서 룬은 침착하게 표정을 유지했다.
'망할..., 내가 저걸 믿는 게 아니었는데.'
"저기, 룬! 눈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아, 조금 부드러운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제니는 사람들이 듣길 바라며, 일부러 크게 목소리를 냈다.
"야, 조용히 말해. 창피해 죽겠네..."
룬은 붕어처럼 벙긋거리며 그녀를 쏘아보았다.
"흠, 그 표정도 나쁘지 않네."
제니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핸드폰으로 그를 찍어 댔다.
백화점, 그것도 1층 향수 코너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걸 알았다면 그녀가 아무리 울고불고 매달렸어도 룬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 20분 전 -
"그러니까 여기가 스튜디오라고?"
그는 더이상 상실할 어이도 없었다.
"응, 어때? 향기가 좋으니까 막 저절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아? 조명도 최고잖아. 게다가 정적이면서 역동적인 이 느낌이란."
룬이 얼굴을 구기며 입을 열려는 순간,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다가왔다.
"맞아요, 저희 매장에 쇼핑몰 촬영도 엄청 많이 해요."
그리고 뒤이어지는 직원의 말에 룬은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ㄷ.
"저 옛날에 오빠 많이 응원했었는데 다시 활동해서 너무 좋아요."
"네? 저 알아요?"
"당연하죠. 투표 때 제 핸드폰 요금의 빌런이었죠, 하하. 사진 예쁘게 찍고 가세요."
직원이 뒤돌아서자, 그는 당황스런 얼굴로 제니를 쳐다보았다.
"우연이었어, 우연. 여기 원래 내가 자주 오는 곳인데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서 찍는 건 어떠냐고 먼저 물어봤다고."
'팬이란 게 이런 느낌인 건가? 그래 아무렴 어때. 몇 년 전 사진 들이미는 것보다는 낫겠지.'
팬이라는 직원의 한마디에 룬은 뭔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다른 건 다 이해하겠는데, 핸드폰으로 찍는 건 좀... 너무 했다고 생각 안 하냐? 요즘 렌탈도 하는데."
"모르는 소리! 요즘은 핸드폰으로 영화도 찍어. 또 옛날처럼 틀에 박힌 사진관 촬영 같은 것 보다는 화보 같은 일상 사진이 훨씬 좋아."
"입은 살아서."
"그리고 감독이나 PD도 SNS 얼마나 많이 보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찍고 살짝 보정해서 바로 인별그램에 업로드 하는 게 편해."
"알았어. 그럼 난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둘러보는 느낌도 좋고, 마음에 드는 향 발견하면 향수를 손에 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향을 맡아보거나."
"쇼핑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는 거지? O.K"
룬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날 응원해줬던 사람들을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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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별그램.조회 : 716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793 6.왜 망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조회 : 957 추천 : 2 댓글 : 0 글자 : 4,499 5.네가 아니면 안 돼조회 : 791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849 4.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먹을 것이 있다?조회 : 756 추천 : 2 댓글 : 0 글자 : 4,075 3.반짝반짝 별이 되게 해 줘조회 : 791 추천 : 1 댓글 : 0 글자 : 3,868 2.아직 한 명이 남아 있어!조회 : 752 추천 : 2 댓글 : 0 글자 : 3,619 1.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조회 : 1,033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