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조회 : 835 추천 : 0 글자수 : 4,692 자 2022-09-18
마법은 심상의 덩어리. 내가 생각하는 것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극어는 어느 정도 알겠다. 5% 정도 이해한 기분이다.
그런데.
“······.”
마력을 어떻게 깨워내지? 인간의 몸에는 전부 제각각의 다른 마력이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뜨겁고 어떤 사람은 차가운 그런 마력이 심장에 있다고 했는데···.
김지원은 잘 모르겠다. 아니 모른다.
단순히 그냥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만 무성한 채 연무장으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로벨리아를 떠올려보자.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뻗으며 바람이라는 것을 심상으로 전환해보자. 내가 느끼는 바람.
부드럽고 가벼우며··· 아니다. 극어는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있었다.
우선 바람은 거세고 무거우며 쉽게 담아낼 수 있는 유리잔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마법을 유리잔에 담아내는 것으로 마법을 형상화하며 무겁고도 거세게 공격이라는 효과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야 했다. 이것이 옳게 된 방법이라는 것이다.
-스으으···
짙고 그윽한 달빛과 함께 바람이 불어온다.
김지원은 무겁고 거세다는 바람을 상상할 수 없었다. 불가능했다.
무겁고 거세다는 심상을 바람에 적용해 형상화하려면 적어도 그런 환경이 갖춰져야 했다.
김지원은 이제야 마법사들이 죄다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자 했다. 있는 그대로 환경에 변화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바람을 마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순환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버프 마법이 되지 않을까? 라는 발상이었다.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계속해서 순환하며 떠돌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을 온전한 형태로 바람을 적용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말 그대로 몸을 순환하는 마력을 이용해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의 바람은 가볍다. 그러니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환경에 맞춰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극어에는 가장 첫마디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우선 극어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함이 아닌 자연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마법과 이치가 같을 뿐 다르게 이해해줬으면 한다]
초기 극어를 만들 때 크게 기여한 철학자가 꼭 넣어 줬으면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마법에 관련된 책은 읽어 보지 않았다. 마법이 뭐고 이론이 뭐고 그딴 건 모른다. 그냥 감으로 하라고 하니 감으로 할 뿐이다.
인간을 태어날 때 누가 우는 방법을 알려줘서 울었나? 움직이는 방법을 알려줘서 움직였나?
마력은 지구에 존재하는 오감이 아닌 이곳 세계의 특이한 법칙이고 숨겨진 7번째 감각이라고 한다.
그 감각을 깨워내는 방법은 오로지 재능.
극어가 없었을 때는 100분의 1
김지원이 빙의한 망캐는 재능이 없기에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 뭔가? 이해하는 능력, 사고방식, 선천적인 감각에 비롯된다.
그렇다면 김지원은 펠렌이라는 놈과 똑같은 지능을 가지고 똑같은 재능을 지녔는가?
다르지. 완전 다르지. 태어난 곳부터 살아간 방법 그리고 느껴온 감각까지도.
하지만 김지원이 사용하고 있는 육체는 펠렌이라는 놈의 육체다.
7번째 감각은 이놈의 몸에 깃들어 있다.
다른 부분은 커버가 가능해도 육체와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본인의 힘으로는 어려운 것이다.
“안 되겠네.”
김지원은 손을 거두며 뒤돌았다.
방금까지 벅차오른 긍정의 신호가 부정당한 기분이다.
어렸을 적 펠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남들이 다 할 수 있었기에 자신도 할 수 있다 생각하고 벅차올랐지만 깨달아 보니 자신만 불가능했다는걸.
괜히 헛웃음이 나온다.
김지원은 목표를 하나 가지기로 했다. 자신이 얼마나 이 육체에 머물지 모르겠지만 그전까지 이 육체를 최강의 재능 캐릭터로 만들어주기로 말이다.
그리고 이 육체에서 벗어나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 생긴다면···. 돌아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마도.
* * *
다음 날 아침이 찾아왔다. 정기 돋는 햇빛에 몸을 대우 자니 절로 기력이 회복되는 것 같다.
김지원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재능?
나는 그딴 거 모르겠고 당장에 마법을 사용하고 싶다. 마법이라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 중독되어 버렸다.
극어를 공부하고 마법이 무엇인지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의 감각은 너무나도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질적인 감각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 겨우 극어를 공부한 지 1일이 지났을 뿐이다.
괜히 좌절하지 말자.
화장실에 들어서 엉겨 붙은 머리를 대충 감고 눈곱을 뗐다. 다크서클도 물로 지워지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교복을 입고 밖으로 나선다.
“다녀오겠습니다.”
기숙사를 나오자마자 복도는 시끌벅적했다.
지하철 출퇴근길 지하철을 상상하자면 딱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귀족이 다니는 아카데미답게 다들 여유를 부리며 다과나 커피, 차를 마시기는커녕 여기가 어린 시절 다니던 유치원인 줄 알았다.
꽉 막힌 복도를 뚫어 보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몸을 집어넣어 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줄 서듯 복도에 서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2분 지났을까. 김지원은 뒤로 뺄 수도 앞으로 전진할 수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 놓였다.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더 안 좋아진다.
학생들의 불만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앞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당장 반으로 들어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싶은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제자리에서 높게 뛰어봤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다만 자세를 조금 낮춰 사람과 사람 틈 사이로 조금이지만 볼 수는 있었다.
그때다.
꽉 막힌 변기가 내려가듯 인파가 뻥 뚫리기 시작했다.
앞에 생긴 문제가 해결된 모양이다.
김지원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따라 걸었다. 슬쩍 보니 익숙한 얼굴과 괴상한 자세로 기절한 남자가 보였다. 기절했지만 얼굴은 행복해 보인다.
그 범인은 다름 아닌 로벨리아였다.
다른 학생들은 그들의 일에 일절 관여하기 싫었는지 로벨리아와 남자가 있을 조금의 공간만 인지한 채 조금 비켜 옆으로 지나갔다.
김지원도 시선을 내리깔고 로벨리아가 모른 체 해주길 바라며 숨죽이고 지나갔다.
저 일에 꼬이면 지금 학생들 마음속에 진 감정과 시선이 자신을 향하리.
그때였다.
“펠렌?”
너무나 당연하게도 로벨리아는 옆으로 조용히 지나가는 자신을 발견했고 앞뒤 학생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로벨리아가 눈치 없게 자신을 알아본 이상 사태를 조금 해결해야 자신을 향하는 목소리가 없을 것이다.
한숨 쉬며 로벨리아에게로 걸어간다.
“이게 대체 뭐 하는 건대.”
“나한테 한눈에 반했다고 사귀어 달라 막 그런 소리 하더라고? 순 변태가 따로 없더라. 더 욕해달라 그러더니 기분 나빠서 한 대 때렸지.”
“그래서 기절한 거야?”
얼씨구 잘들 놀지. 마조이스트와 여왕님이라니 찰떡 궁합이다.
김지원은 한숨을 내쉬며 길 틀어막지 말고 비키다 귀띔을 준 뒤 걸었다.
로벨리아는 생각보다 김지원의 말에 순응했고 남자를 집어다가 벽에 눕혀 놨다.
김지원은 빨리 걸었다.
로벨리아도 빨리 걸어 김지원을 따라잡으려 한다.
김지원은 달리기 시작했다.
로벨리아도 달려 김지원 옆으로 붙으려 한다.
먼저 체력이 빠진 것은 김지원 쪽이었다.
괜히 뒤돌아 로벨리아를 보니 누구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왜 따라오는데.”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가면 좋잖아.”
“눈치라는 게 니 풍성한 눈썹의 한 가닥만큼이라도 있으면 조금 떨어져 걷는 게 예의 아니냐?”
“예의? 조금 떨어져 걷는 예의도 있었어?”
“아니··· 하.”
말문이 막힌다. 융통성이 조금도 없는 저 여자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야 조금도 망설이지 않겠다는 저 당당함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김지원은 속이 터지려 했다.
다시금 지구가 그리워졌다. 그쪽이 훨씬 살만한 세상이니.
상대하길 포기하고 걸었다. 피곤한지 하품이 계속해서 나온다.
“펠렌은 어제 뭐 했어?”
“조용히 해.”
로벨리아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그리고 펠렌의 반응이 어째 저리 쌀쌀한지 덜떨어진 지능으로 분석한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질문의 요지가 잘 못 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질문이 또 날아온다. 조금은 어리숙한 모습으로 초조하게.
“어제 나 때문에 화 많이 났지···?”
“딱히?”
그냥 그런 세계거니 하니까. 받아들이기 난해한 사실도 금방 수긍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눈앞에서 당장 쌈판이 벌어져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무시할 예정이다.
원래 귀족들은 자존심이 세지 아니한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고 있는 이들은 더더욱.
대화라는 것은 자신의 부에 대한 자랑을 어필하기 위함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쓸모없는 짓거리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옆에 있는 이놈은 꽤나 평범한 수준이었다.
김지원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물욕도 없어 보인다. 그냥 뭔가에 대한 야망 자체가 그리 깊지 않은 모양이다.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목적이 남들이 다 해서 그냥 흐르듯 딸려온 느낌이다.
조금 멍청하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너 정도면 굉장히 평범한 편이야.”
전 대륙의 인구를 싸잡아 놓고 평가한 평범의 기준이 아닌.
17세 귀족, 돈 많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고 있는 놈들 사이에서 평범하다는 뜻이다.
당연하지만 로벨리아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한테 인정받는 것이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았나 보다. 하긴 어제 엄청 까 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말?”
얼굴에 만연한 미소가 보인다. 이럴 때는 참 예쁘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니 아침에도 남자가 꼬인 것이겠지.
하지만 저 얼굴에 홀려 좋아한다고 발설하는 순간 자신 또한 아침의 남자처럼 땅에 괴상한 자세로 쓰러져 기절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식은땀이 흐르면서도 앞을 보고 걷게 만들었다.
반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꽤 풀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와 웃는 소리가 들린다.
김지원은 자리에 앉고는 괜히 귀를 틀어막으며 얼굴을 땅에 처박았다.
쉬는 시간은 고작 4분.
쪽잠이라도 자 둬야 밤에 4분이라도 책을 더 붙잡아 둘 것이다.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근육이 늘어졌다.
김지원은 첫날과 다르게 기운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야 이 세계는 지구에서 짜릿하게 즐길 법한 오락거리가 돈을 걸고 하는 도박밖에는 없었다.
그냥 떠들거나, 멍때리거나, 마법을 공부하거나 검술을 배우거나.
할 게 없으면 이놈들은 무작정 뛰었다. 그냥 뛰고 그냥 검을 휘두르고 뇌가 없는 것이 의심된다.
1주일간 연무장에 들락날락거리면서 봐온 광경이니 거짓이 아니다.
물론 화끈한 짓도 있다.
“으···.”
조금 다른 것을 상상하니. 기분이 더러웠다.
이 반에 있는 누군가는 분명 순결을 내버리는 짓거리를 했겠지.
생각해보니 이곳에서 17살이면 성인이라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당연한 짓으로 통용될 수도 있다. 펠렌은 태생적으로 그러하지 못해서 그런 쪽으로는 정보가 모호했지만, 가능성은 풍부했다.
이 대륙은 윗대가리의 압박이 덜한 개방적인 나라니까.
돈을 많이 뜯어가기는 해도 먹고 살고 할 건 다 하게 해주니까.
괜히 고개를 들어 남학생 얼굴을 훑어본다. 관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던가.
김지원은 몇몇 얼굴을 파악해두고는 다시 짧은 잠에 빠졌다.
극어는 어느 정도 알겠다. 5% 정도 이해한 기분이다.
그런데.
“······.”
마력을 어떻게 깨워내지? 인간의 몸에는 전부 제각각의 다른 마력이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뜨겁고 어떤 사람은 차가운 그런 마력이 심장에 있다고 했는데···.
김지원은 잘 모르겠다. 아니 모른다.
단순히 그냥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만 무성한 채 연무장으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로벨리아를 떠올려보자.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뻗으며 바람이라는 것을 심상으로 전환해보자. 내가 느끼는 바람.
부드럽고 가벼우며··· 아니다. 극어는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있었다.
우선 바람은 거세고 무거우며 쉽게 담아낼 수 있는 유리잔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마법을 유리잔에 담아내는 것으로 마법을 형상화하며 무겁고도 거세게 공격이라는 효과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야 했다. 이것이 옳게 된 방법이라는 것이다.
-스으으···
짙고 그윽한 달빛과 함께 바람이 불어온다.
김지원은 무겁고 거세다는 바람을 상상할 수 없었다. 불가능했다.
무겁고 거세다는 심상을 바람에 적용해 형상화하려면 적어도 그런 환경이 갖춰져야 했다.
김지원은 이제야 마법사들이 죄다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자 했다. 있는 그대로 환경에 변화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바람을 마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순환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버프 마법이 되지 않을까? 라는 발상이었다.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계속해서 순환하며 떠돌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을 온전한 형태로 바람을 적용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말 그대로 몸을 순환하는 마력을 이용해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의 바람은 가볍다. 그러니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환경에 맞춰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극어에는 가장 첫마디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우선 극어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함이 아닌 자연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마법과 이치가 같을 뿐 다르게 이해해줬으면 한다]
초기 극어를 만들 때 크게 기여한 철학자가 꼭 넣어 줬으면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마법에 관련된 책은 읽어 보지 않았다. 마법이 뭐고 이론이 뭐고 그딴 건 모른다. 그냥 감으로 하라고 하니 감으로 할 뿐이다.
인간을 태어날 때 누가 우는 방법을 알려줘서 울었나? 움직이는 방법을 알려줘서 움직였나?
마력은 지구에 존재하는 오감이 아닌 이곳 세계의 특이한 법칙이고 숨겨진 7번째 감각이라고 한다.
그 감각을 깨워내는 방법은 오로지 재능.
극어가 없었을 때는 100분의 1
김지원이 빙의한 망캐는 재능이 없기에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 뭔가? 이해하는 능력, 사고방식, 선천적인 감각에 비롯된다.
그렇다면 김지원은 펠렌이라는 놈과 똑같은 지능을 가지고 똑같은 재능을 지녔는가?
다르지. 완전 다르지. 태어난 곳부터 살아간 방법 그리고 느껴온 감각까지도.
하지만 김지원이 사용하고 있는 육체는 펠렌이라는 놈의 육체다.
7번째 감각은 이놈의 몸에 깃들어 있다.
다른 부분은 커버가 가능해도 육체와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본인의 힘으로는 어려운 것이다.
“안 되겠네.”
김지원은 손을 거두며 뒤돌았다.
방금까지 벅차오른 긍정의 신호가 부정당한 기분이다.
어렸을 적 펠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남들이 다 할 수 있었기에 자신도 할 수 있다 생각하고 벅차올랐지만 깨달아 보니 자신만 불가능했다는걸.
괜히 헛웃음이 나온다.
김지원은 목표를 하나 가지기로 했다. 자신이 얼마나 이 육체에 머물지 모르겠지만 그전까지 이 육체를 최강의 재능 캐릭터로 만들어주기로 말이다.
그리고 이 육체에서 벗어나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 생긴다면···. 돌아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마도.
* * *
다음 날 아침이 찾아왔다. 정기 돋는 햇빛에 몸을 대우 자니 절로 기력이 회복되는 것 같다.
김지원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재능?
나는 그딴 거 모르겠고 당장에 마법을 사용하고 싶다. 마법이라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 중독되어 버렸다.
극어를 공부하고 마법이 무엇인지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의 감각은 너무나도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질적인 감각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 겨우 극어를 공부한 지 1일이 지났을 뿐이다.
괜히 좌절하지 말자.
화장실에 들어서 엉겨 붙은 머리를 대충 감고 눈곱을 뗐다. 다크서클도 물로 지워지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교복을 입고 밖으로 나선다.
“다녀오겠습니다.”
기숙사를 나오자마자 복도는 시끌벅적했다.
지하철 출퇴근길 지하철을 상상하자면 딱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귀족이 다니는 아카데미답게 다들 여유를 부리며 다과나 커피, 차를 마시기는커녕 여기가 어린 시절 다니던 유치원인 줄 알았다.
꽉 막힌 복도를 뚫어 보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몸을 집어넣어 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줄 서듯 복도에 서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2분 지났을까. 김지원은 뒤로 뺄 수도 앞으로 전진할 수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 놓였다.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더 안 좋아진다.
학생들의 불만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앞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당장 반으로 들어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싶은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제자리에서 높게 뛰어봤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다만 자세를 조금 낮춰 사람과 사람 틈 사이로 조금이지만 볼 수는 있었다.
그때다.
꽉 막힌 변기가 내려가듯 인파가 뻥 뚫리기 시작했다.
앞에 생긴 문제가 해결된 모양이다.
김지원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따라 걸었다. 슬쩍 보니 익숙한 얼굴과 괴상한 자세로 기절한 남자가 보였다. 기절했지만 얼굴은 행복해 보인다.
그 범인은 다름 아닌 로벨리아였다.
다른 학생들은 그들의 일에 일절 관여하기 싫었는지 로벨리아와 남자가 있을 조금의 공간만 인지한 채 조금 비켜 옆으로 지나갔다.
김지원도 시선을 내리깔고 로벨리아가 모른 체 해주길 바라며 숨죽이고 지나갔다.
저 일에 꼬이면 지금 학생들 마음속에 진 감정과 시선이 자신을 향하리.
그때였다.
“펠렌?”
너무나 당연하게도 로벨리아는 옆으로 조용히 지나가는 자신을 발견했고 앞뒤 학생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로벨리아가 눈치 없게 자신을 알아본 이상 사태를 조금 해결해야 자신을 향하는 목소리가 없을 것이다.
한숨 쉬며 로벨리아에게로 걸어간다.
“이게 대체 뭐 하는 건대.”
“나한테 한눈에 반했다고 사귀어 달라 막 그런 소리 하더라고? 순 변태가 따로 없더라. 더 욕해달라 그러더니 기분 나빠서 한 대 때렸지.”
“그래서 기절한 거야?”
얼씨구 잘들 놀지. 마조이스트와 여왕님이라니 찰떡 궁합이다.
김지원은 한숨을 내쉬며 길 틀어막지 말고 비키다 귀띔을 준 뒤 걸었다.
로벨리아는 생각보다 김지원의 말에 순응했고 남자를 집어다가 벽에 눕혀 놨다.
김지원은 빨리 걸었다.
로벨리아도 빨리 걸어 김지원을 따라잡으려 한다.
김지원은 달리기 시작했다.
로벨리아도 달려 김지원 옆으로 붙으려 한다.
먼저 체력이 빠진 것은 김지원 쪽이었다.
괜히 뒤돌아 로벨리아를 보니 누구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왜 따라오는데.”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가면 좋잖아.”
“눈치라는 게 니 풍성한 눈썹의 한 가닥만큼이라도 있으면 조금 떨어져 걷는 게 예의 아니냐?”
“예의? 조금 떨어져 걷는 예의도 있었어?”
“아니··· 하.”
말문이 막힌다. 융통성이 조금도 없는 저 여자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야 조금도 망설이지 않겠다는 저 당당함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김지원은 속이 터지려 했다.
다시금 지구가 그리워졌다. 그쪽이 훨씬 살만한 세상이니.
상대하길 포기하고 걸었다. 피곤한지 하품이 계속해서 나온다.
“펠렌은 어제 뭐 했어?”
“조용히 해.”
로벨리아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그리고 펠렌의 반응이 어째 저리 쌀쌀한지 덜떨어진 지능으로 분석한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질문의 요지가 잘 못 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질문이 또 날아온다. 조금은 어리숙한 모습으로 초조하게.
“어제 나 때문에 화 많이 났지···?”
“딱히?”
그냥 그런 세계거니 하니까. 받아들이기 난해한 사실도 금방 수긍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눈앞에서 당장 쌈판이 벌어져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무시할 예정이다.
원래 귀족들은 자존심이 세지 아니한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고 있는 이들은 더더욱.
대화라는 것은 자신의 부에 대한 자랑을 어필하기 위함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쓸모없는 짓거리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옆에 있는 이놈은 꽤나 평범한 수준이었다.
김지원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물욕도 없어 보인다. 그냥 뭔가에 대한 야망 자체가 그리 깊지 않은 모양이다.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목적이 남들이 다 해서 그냥 흐르듯 딸려온 느낌이다.
조금 멍청하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너 정도면 굉장히 평범한 편이야.”
전 대륙의 인구를 싸잡아 놓고 평가한 평범의 기준이 아닌.
17세 귀족, 돈 많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고 있는 놈들 사이에서 평범하다는 뜻이다.
당연하지만 로벨리아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한테 인정받는 것이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았나 보다. 하긴 어제 엄청 까 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말?”
얼굴에 만연한 미소가 보인다. 이럴 때는 참 예쁘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니 아침에도 남자가 꼬인 것이겠지.
하지만 저 얼굴에 홀려 좋아한다고 발설하는 순간 자신 또한 아침의 남자처럼 땅에 괴상한 자세로 쓰러져 기절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식은땀이 흐르면서도 앞을 보고 걷게 만들었다.
반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꽤 풀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와 웃는 소리가 들린다.
김지원은 자리에 앉고는 괜히 귀를 틀어막으며 얼굴을 땅에 처박았다.
쉬는 시간은 고작 4분.
쪽잠이라도 자 둬야 밤에 4분이라도 책을 더 붙잡아 둘 것이다.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근육이 늘어졌다.
김지원은 첫날과 다르게 기운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야 이 세계는 지구에서 짜릿하게 즐길 법한 오락거리가 돈을 걸고 하는 도박밖에는 없었다.
그냥 떠들거나, 멍때리거나, 마법을 공부하거나 검술을 배우거나.
할 게 없으면 이놈들은 무작정 뛰었다. 그냥 뛰고 그냥 검을 휘두르고 뇌가 없는 것이 의심된다.
1주일간 연무장에 들락날락거리면서 봐온 광경이니 거짓이 아니다.
물론 화끈한 짓도 있다.
“으···.”
조금 다른 것을 상상하니. 기분이 더러웠다.
이 반에 있는 누군가는 분명 순결을 내버리는 짓거리를 했겠지.
생각해보니 이곳에서 17살이면 성인이라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당연한 짓으로 통용될 수도 있다. 펠렌은 태생적으로 그러하지 못해서 그런 쪽으로는 정보가 모호했지만, 가능성은 풍부했다.
이 대륙은 윗대가리의 압박이 덜한 개방적인 나라니까.
돈을 많이 뜯어가기는 해도 먹고 살고 할 건 다 하게 해주니까.
괜히 고개를 들어 남학생 얼굴을 훑어본다. 관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던가.
김지원은 몇몇 얼굴을 파악해두고는 다시 짧은 잠에 빠졌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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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아카데미 시절로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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