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조회 : 846 추천 : 0 글자수 : 6,042 자 2022-09-20
리월에 소속된 한 남자가 건너편에 있는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레지당스 소속 학생들을 보며 못미더운 표정으로 말했다.
입을 꾹 닫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다소 긴장된 모습 속에서 저들의 실력을 의심했다.
“음··· 제네 어디 소속이라고?”
울긋불긋한 근육을 가진 남자가 간결하게 답했다.
“레지당스.”
까칠한 눈매를 한 라온이 다음 말을 이었다.
“레지당스는 평민을 참 좋아하나 봐 실력도 없어 보이는데 차고 넘치는 귀족이나 잔뜩 받지.”
그때 옆에서 자신의 가죽 신발 끈을 꽉 묶은 여자가 일어나며 다소 냉철한 얼굴로 말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초록 머리에 포니테일을 한 그녀는 라온을 향해 눈빛을 보내다 이내 고개를 홱 돌려 무기가 진열되어있는 칸으로 걸어갔다.
까칠한 라온은 손을 꼬며 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저 밥맛.”
“······.”
근육의 남자는 걸어가는 그녀를 고심한 얼굴로 바라봤다.
한편.
반대편에 있던 레지당스 학생들은 아까 본 듯 딱딱하게 암석처럼 굳어 있었다.
이들이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는 리월 학생들의 시선에 위축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적어도 레지당스에 소속된 학생이라면 평민이라 할지라도 실력이 어느 정도 될 것이다.
마법이 뛰어나던가 검술에 재능이 있다던가.
그건 레지당스가 알아서 구분하겠지만 적어도 기본기는 있어야지 레지당스에 걸맞은 학생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긴장들 하신 것 같은데 심호흡이라도 하면서 몸 풀고 계세요.”
“저, 저기.”
안내원은 뒤돌아 걸었지만 한 아이의 말에 멈춰 섰다.
“네?”
“저 혹시 몇 번째인가요?”
“음···.”
주어가 빠진 허술한 문장이지만 안내원은 쉽게 이해하며 자신의 손에 있는 종이 뭉텅이 앞 페이지를 넘겼다.
-촤락!
“앞에서 두 번째 십니다.”
자신을 쳐다보는 애들을 슬쩍 눈치 보다. 작게 말했다.
“저 뒤로 빼줄 수 있나요?”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가능하다고 해도 그건 불공정하죠.”
안내원인 그녀는 싱긋 미소를 보였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닥치고 개소리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곳 입학시험에는 절대적인 불변과도 같은 법칙이 있었다. 평민 그룹은 귀족 그룹을 이길 수 없다는 것.
여기 학생들은 건너편에 있는 리월 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다만 조금의 위안을 얻기 위해 자신의 순위를 뒤로 당기려 했다.
방금 봤듯 벌써 포기를 직감한 학생들로 가득했다.
“이길 수 있을까?”
“저기 리월이지? 유명하잖아. 괴물 같은 귀족들만 있다는······.”
아델을 포함 20명의 학생은 레지당스에서 특별히 모시는 귀한 존재였다.
레지당스에 오기 전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기초적인 테스트를 봤고 아델은 마법적인 재능을 제외한다면 전부 F등급을 받았다.
아델이 아닌 19명도 최하위 F등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용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유라 하면 단순히 그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19명도 전부 F등급투성이인 능력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1/5이나 뽑힐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리월과의 뒷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약한 학생들을 입학시험 대련 상대로 보내라.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이지]
1서클 마법도 사용할 줄 모르며 더군다나 근접전에서 제대로 된 검도 못 드는 최약체 마법사.
그게 아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이곳 평민들 그룹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귀족 놈들은 능력치가 죄다 C등급 이상으로 떡칠 되어 있는 괴물들이다.
아델이 데카코마니를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 사실 때문이었다.
세르바눔 아카데미 원칙상 계약된 소속에서 조건이 맞는 학생을 이곳으로 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20세 이상은 안 되고 범법행위를 저지른 적 있는 사람 또한 안됐다.
다만 14세 이하이며 전과가 있더라도 능력이 출중한 조건이라면 가능하다.
레지당스는 리월에게 뒷돈을 받고 거지 같은 능력치를 가진 우리를 엄중히 선발하여 리월 학생들에게 보낸 것이다.
리월 학생이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대전 상대가 더 강하다면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1달 뒤에 있을 제 시험을 통해 등급을 올려야 했지만.
리월은 조그만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리월은 지금껏 입학시험 올 패스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기에 명성을 잇기 위해서라도 이런 추잡한 짓을 하는 거다.
자신의 학생들은 항상 엄청난 재능을 가진 괴물이어야 하니까.
그러니 레지당스에게 뒷돈을 주고 가장 약한 우리를 이곳에 보낸 것이다.
저기 있는 리월, 반면 레지당스 학생들은 공간 지각 능력도 떨어지고 주위를 보는 시야가 넓지 않았다.
이는 판단력이 느리고 제대로 상대방의 검을 제대로 보기 어려운 눈을 가졌다는 소리다.
아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17살이라는 나이에 벌써부터 벽을 느끼고 슬럼프로 고생할 생각을 하니 앞이 막막해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이 짓거리에 어울려서 슬럼프로 고생했다. 3년 동안 말이다.
이게 전부 개 같은 데카코마니 때문이다.
그놈이 평민을 대하는 방식은 항상 이런 식이다.
버리는 카드.
아델은 90년간 이어져 오던 절대적인 불변의 법칙을 깨버린다 다짐했다.
뭐든 데카코마니는 엿을 조금 먹어야 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아델은 벽에 나열된 수많은 종류의 무기들 사이 당연 레이피어를 골랐다.
무기들은 모두 진검이었다.
“······.”
그렇게 아델을 시발점으로 가만히 굳어 있던 학생들이 서로 안내원의 눈치를 보다 하나둘씩 벽에 나열된 무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저 새끼들 뭐하냐?”
리월 놈들은 평민들을 보며 코웃음 쳤다.
“흥. 예의도 안되어있네. 대련 전에 검을 집어 들다니.”
아델은 무기를 든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첫 번째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검을 몇 번 휘둘러 본 후 묵직한 무게감에 만족하며 흙바닥으로 원형을 이룬 대련장 계단을 밟았다.
아델의 행동을 본 학생들은 뒤늦게 검을 도로 원래 자리로 돌려놨다.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있으라 눈빛으로 충고한 아델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 상황에서 가장 침착한 아델의 행동을 따라하려 했던 그들이었다. 나쁜 의도는 없었겠지만, 이걸로 우리가 ㅈ밥이라는 사실을 저들에게 크게 알렸다.
아무튼.
리월 몇몇 귀족들이 앞으로 걸어 나온 아델을 보며 피식피식하고 옅은 미소를 흘렸다.
재정이 넉넉지 못한 고아원에서 자란 아델은 한 조각의 빵과 묽은 스프로 살아왔다.
몸이 성장할 수 없는 환경.
아델의 몸은 작고 왜소했다.
귀족들이 아델의 몸을 보고는 그의 승리를 100% 확신했다.
“자 그럼 호명한 대로 학생분들을 앞으로 나와주세요. 아 미리 나와주셨네요. 그럼 네오 리차드 학생.”
여유로운 목소리로 검을 자신의 어깨에 걸친 다부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아델에게 비웃듯 한마디 했다.
“약해 보이네.”
피식
“눈에 보이는 게 전부 같지?”
“벌레 주재에 말을 거는 건가. 웃기는 군.”
“넌 학생 난 학생 뭐가 다른지 모르겠네. 꼴에 귀족이라는 거냐?”
아델은 그 말과 함께 검 끝을 앞으로 내세우며 자세를 잡았다.
“닥치고 검이나 들어 싸가지 없는 동급생아.”
시험이니만큼 예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는 관중들 앞에서나 예의를 차리는 것이지.
세르바눔도 공식 대련의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의 자세를 몇 번 확인한 후 말했다.
네오 리차드는 평민의 짜증나는 말투에 얼굴을 구기며 죽일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민과 귀족의 차이를 뼈저리게 알려주마.”
“얼마든지.”
“대련 시작해 주세요!”
안내원의 손이 천장에서 90도 각도로 내려왔다.
-타앗!
-파악!
서로 그 말을 원했다는 듯 땅을 박찼다.
아델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놈의 발걸음은 묵직했다.
놈은 검에 힘을 잔뜩 실으며 아델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죽어라!!”
놈의 몸은 느리다. 그리고 당연히 이 검을 피할 신체적인 능력조차 안 될 것이다.
그게 됐다면 첫 번째로 나올 리 없지.
리차드는 그리 생각하며 별다른 기술 없이 단순히 힘으로 찍어 누르려 했다.
왜 그리하냐고 묻는다면 그편이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 리차드의 검격이 아델의 머리로 빠르게 떨어졌다.
아델은 눈 하나 깜빡 안 하며 눈으로 그의 검을 주시했다.
그의 검이 아델의 머리를 갈라버리기 직전. 강한 풍압과 함께 아델은 사라졌다.
-후웅!!
아델은 알고 있었다. 저 리차드라는 놈이 길고 날쌔 봐야 엘리나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하물며 멜도 못 이길 놈이다.
-콰앙!
리차드의 검이 땅에 박히며 흙먼지를 휘날렸다.
리차드는 손에서 놈의 머리를 반으로 갈랐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허공을 갈랐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리차드는 본능적으로 놈의 반격을 느끼며 뒤로 크게 뛰어 물러났다.
뒤로 10보 이상 멀리 뛰어 거리를 벌린 리차드는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안심하였다.
리차드의 발이 땅에 닿으려 했다.
닿기 직전.
아델은 메케한 흙먼지 속에서 뚫고 나와 아래에서 위로 검을 내질렀다.
왼쪽 하단에서부터 바람을 뚫고 올라오는 검 끝에는 상대방이 죽든 말든 망설이지 않는다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채앵!
놈은 빠른 반사신경으로 아델의 검을 막아냈다.
‘역시나 막는구나.’
놈은 괜히 씨익 웃어 보이며 아직 여유롭다는 표현을 했다. 저 웃음의 출처는 스스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함에서부터 오는 것이었다.
리차드는 다시 한번 거리를 벌리려 뒤로 자세를 쏟았다.
이 거리에서는 검이 닿지 않을 거다.
그리 생각한 리차드는 거리를 순간적으로 벌렸다.
아델은 검을 바닥에 꽂아놓고 높게 뛰며 손바닥으로 검 손잡이 끝부분을 지지대처럼 받쳤다.
그러니 다시 한 유효 사정거리가 생겨났다.
아델은 놈의 명치에 발을 꽂아 넣었다.
-퍽!!
“커헉!”
명치가 순간 꾹 눌리며 놈은 숨을 못 쉬었다.
놈은 뒤로 지이익! 하고 발을 끌며 밀려났다. 아델이 발을 회수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금방 회복된 놈은 검을 꽉 잡으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허억···! 허억···! 평민 새끼가!”
“그래 평민한테 한 방 먹었네. 많이 부끄럽겠어. 동급생들도 보고 있을 텐데.”
아델은 피식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벤치에 앉아 대련을 보고 있던 리월 학생들은 이상함을 느낀다.
절대로 그럴 리 없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천하의 리차드가 밀리고 있었다.
“뭐, 뭐야 뭔가 잘 못 됐는데?”
리월에서 높은 층을 이루고 있는 귀족들이 몇몇 있었다.
자작 이상의 귀족들은 리월에게서 여러 가지 편지를 받았다.
입학시험은 매우 쉬울 것이니 안심하라는 편지.
모두 B등급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미리 축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이게 뭔···.
우리는 리월에게 통수를 당한 것인가?
리월에게서 들은 것과 말이 다르지 않은가!
“저게 뭐야! 저런 놈이 있다는 소리는 없었잖아!”
“진정해 나머지는 다 약할 거야. 저놈 첫 번째잖아.”
“아니 저런 놈이 있는 게 모순이라는 거다! 리월이 우리에게 한 말과 다르지 않은가!”
“착오가 있었나 보군.”
라온은 수상한 대화를 하는 놈들을 보며 곧 결론에 도달한 답을 찾았다. 작게 말했다.
“쓰레기 새끼···.”
라온은 말없이 다리를 꼬우며 대련을 즐겼다.
한편 리차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째서인가 내가 저 녀석보다 약하다는 건가?
“검을 똑바로 잡아. 그 아둔한 생각들이 대련의 가치를 망가트린다. 살아있다면 끝까지 검을 휘둘러라.”
“X발!”
놈은 뒤로 힐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고 있는 리월 학생들한테 소리쳤다.
“뭘 봐! 구경났어!?”
그의 신분은 공작이다. 평민에게 지는 일은 있어선 안 되는 높은 신분의 자제.
안된다. 평민에게 지면 안 된다!
그는 검을 바로잡으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오라를 끌어 올렸다.
오라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저 평민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리차드가 오라를 끌어 올리는 중.
-타악!
아델은 리차드의 허를 찔렀다.
“잠깐만! 아직 준비가!”
오라에 온 집중을 쏟은 그는 무방비 상태였다.
오라를 사용하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아델은 그 사실을 알고 돌진했다.
“전장에서도 그럴 거야? 멍청하긴.”
아델은 그대로 놈의 복부로 검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놈은 소리치며 아델의 검에 복부가 뚫린다고 생각해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승자는 아델 수고하셨습니다.”
안내원은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에 방금 대련에 대한 기록을 적었다.
녹화용 마력 저장기가 있긴 했지만, 눈앞에서 보는 것과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안내원은 아델을 극찬함과 동시에 리차드에게는 짧은 세 글자를 남겼다.
[C등급]
물론 그가 C등급에 걸릴 리는 없지만 냉철하게 판단해본 그의 실력은 고작 C등급 수준이었다.
-철커덩!
리차드는 검을 놓치며 땅바닥에 무릎을 댔다.
“아··· 아··· 아··· 아···!”
졌다. 고작 평민에게 졌다. 놈의 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로지 평민에게 졌다는 그 사실 하나만이 그를 죄절시켰다.
그가 좌절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지간히 충격이 컷던 모양이다.
아델은 그를 보며 대련장 밖으로 물러나려다 씨익하고 뒤돌아 그에게로 다가갔다.
-저벅저벅
리차드는 아델의 발소리를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왜 너 따위한테 진 거냐···! 평민주재에!! 이상한 개수작을 부렸잖아!! 인정해! 인정해!!”
그래 맞는 말이다. 내가 회귀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은 있을 수 없었지. 너한테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기에 나는 이겼음에도 억울한 것이다.
아델은 고개를 낮췄다.
“자신이 틀릴 리 없다는 전제를 깔아 놓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니 본인이 강함에도 졌다는 결론을 내린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그럼 내가 제대로 다시 정정해줄게.”
아델은 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에게 미소를 보였다.
고개를 낮춰 놈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내가 강한 게 아니라 니가 나약한 거야.”
아델은 그 말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대련장 밖으로 걸었다.
-꽈아악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을 꽉 쥐며 눈물을 흘겼다.
검에 무거운 살기가 담겼고 곧 붉은 빛을 띄기 시작했다.
리차드가 분노한 얼굴로 등을 보이는 아델에게 검을 휘둘렀다.
“죽어어어!!!”
입을 꾹 닫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다소 긴장된 모습 속에서 저들의 실력을 의심했다.
“음··· 제네 어디 소속이라고?”
울긋불긋한 근육을 가진 남자가 간결하게 답했다.
“레지당스.”
까칠한 눈매를 한 라온이 다음 말을 이었다.
“레지당스는 평민을 참 좋아하나 봐 실력도 없어 보이는데 차고 넘치는 귀족이나 잔뜩 받지.”
그때 옆에서 자신의 가죽 신발 끈을 꽉 묶은 여자가 일어나며 다소 냉철한 얼굴로 말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초록 머리에 포니테일을 한 그녀는 라온을 향해 눈빛을 보내다 이내 고개를 홱 돌려 무기가 진열되어있는 칸으로 걸어갔다.
까칠한 라온은 손을 꼬며 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저 밥맛.”
“······.”
근육의 남자는 걸어가는 그녀를 고심한 얼굴로 바라봤다.
한편.
반대편에 있던 레지당스 학생들은 아까 본 듯 딱딱하게 암석처럼 굳어 있었다.
이들이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는 리월 학생들의 시선에 위축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적어도 레지당스에 소속된 학생이라면 평민이라 할지라도 실력이 어느 정도 될 것이다.
마법이 뛰어나던가 검술에 재능이 있다던가.
그건 레지당스가 알아서 구분하겠지만 적어도 기본기는 있어야지 레지당스에 걸맞은 학생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긴장들 하신 것 같은데 심호흡이라도 하면서 몸 풀고 계세요.”
“저, 저기.”
안내원은 뒤돌아 걸었지만 한 아이의 말에 멈춰 섰다.
“네?”
“저 혹시 몇 번째인가요?”
“음···.”
주어가 빠진 허술한 문장이지만 안내원은 쉽게 이해하며 자신의 손에 있는 종이 뭉텅이 앞 페이지를 넘겼다.
-촤락!
“앞에서 두 번째 십니다.”
자신을 쳐다보는 애들을 슬쩍 눈치 보다. 작게 말했다.
“저 뒤로 빼줄 수 있나요?”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가능하다고 해도 그건 불공정하죠.”
안내원인 그녀는 싱긋 미소를 보였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닥치고 개소리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곳 입학시험에는 절대적인 불변과도 같은 법칙이 있었다. 평민 그룹은 귀족 그룹을 이길 수 없다는 것.
여기 학생들은 건너편에 있는 리월 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다만 조금의 위안을 얻기 위해 자신의 순위를 뒤로 당기려 했다.
방금 봤듯 벌써 포기를 직감한 학생들로 가득했다.
“이길 수 있을까?”
“저기 리월이지? 유명하잖아. 괴물 같은 귀족들만 있다는······.”
아델을 포함 20명의 학생은 레지당스에서 특별히 모시는 귀한 존재였다.
레지당스에 오기 전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기초적인 테스트를 봤고 아델은 마법적인 재능을 제외한다면 전부 F등급을 받았다.
아델이 아닌 19명도 최하위 F등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용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유라 하면 단순히 그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19명도 전부 F등급투성이인 능력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1/5이나 뽑힐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리월과의 뒷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약한 학생들을 입학시험 대련 상대로 보내라.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이지]
1서클 마법도 사용할 줄 모르며 더군다나 근접전에서 제대로 된 검도 못 드는 최약체 마법사.
그게 아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이곳 평민들 그룹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귀족 놈들은 능력치가 죄다 C등급 이상으로 떡칠 되어 있는 괴물들이다.
아델이 데카코마니를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 사실 때문이었다.
세르바눔 아카데미 원칙상 계약된 소속에서 조건이 맞는 학생을 이곳으로 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20세 이상은 안 되고 범법행위를 저지른 적 있는 사람 또한 안됐다.
다만 14세 이하이며 전과가 있더라도 능력이 출중한 조건이라면 가능하다.
레지당스는 리월에게 뒷돈을 받고 거지 같은 능력치를 가진 우리를 엄중히 선발하여 리월 학생들에게 보낸 것이다.
리월 학생이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대전 상대가 더 강하다면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1달 뒤에 있을 제 시험을 통해 등급을 올려야 했지만.
리월은 조그만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리월은 지금껏 입학시험 올 패스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기에 명성을 잇기 위해서라도 이런 추잡한 짓을 하는 거다.
자신의 학생들은 항상 엄청난 재능을 가진 괴물이어야 하니까.
그러니 레지당스에게 뒷돈을 주고 가장 약한 우리를 이곳에 보낸 것이다.
저기 있는 리월, 반면 레지당스 학생들은 공간 지각 능력도 떨어지고 주위를 보는 시야가 넓지 않았다.
이는 판단력이 느리고 제대로 상대방의 검을 제대로 보기 어려운 눈을 가졌다는 소리다.
아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17살이라는 나이에 벌써부터 벽을 느끼고 슬럼프로 고생할 생각을 하니 앞이 막막해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이 짓거리에 어울려서 슬럼프로 고생했다. 3년 동안 말이다.
이게 전부 개 같은 데카코마니 때문이다.
그놈이 평민을 대하는 방식은 항상 이런 식이다.
버리는 카드.
아델은 90년간 이어져 오던 절대적인 불변의 법칙을 깨버린다 다짐했다.
뭐든 데카코마니는 엿을 조금 먹어야 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아델은 벽에 나열된 수많은 종류의 무기들 사이 당연 레이피어를 골랐다.
무기들은 모두 진검이었다.
“······.”
그렇게 아델을 시발점으로 가만히 굳어 있던 학생들이 서로 안내원의 눈치를 보다 하나둘씩 벽에 나열된 무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저 새끼들 뭐하냐?”
리월 놈들은 평민들을 보며 코웃음 쳤다.
“흥. 예의도 안되어있네. 대련 전에 검을 집어 들다니.”
아델은 무기를 든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첫 번째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검을 몇 번 휘둘러 본 후 묵직한 무게감에 만족하며 흙바닥으로 원형을 이룬 대련장 계단을 밟았다.
아델의 행동을 본 학생들은 뒤늦게 검을 도로 원래 자리로 돌려놨다.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있으라 눈빛으로 충고한 아델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 상황에서 가장 침착한 아델의 행동을 따라하려 했던 그들이었다. 나쁜 의도는 없었겠지만, 이걸로 우리가 ㅈ밥이라는 사실을 저들에게 크게 알렸다.
아무튼.
리월 몇몇 귀족들이 앞으로 걸어 나온 아델을 보며 피식피식하고 옅은 미소를 흘렸다.
재정이 넉넉지 못한 고아원에서 자란 아델은 한 조각의 빵과 묽은 스프로 살아왔다.
몸이 성장할 수 없는 환경.
아델의 몸은 작고 왜소했다.
귀족들이 아델의 몸을 보고는 그의 승리를 100% 확신했다.
“자 그럼 호명한 대로 학생분들을 앞으로 나와주세요. 아 미리 나와주셨네요. 그럼 네오 리차드 학생.”
여유로운 목소리로 검을 자신의 어깨에 걸친 다부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아델에게 비웃듯 한마디 했다.
“약해 보이네.”
피식
“눈에 보이는 게 전부 같지?”
“벌레 주재에 말을 거는 건가. 웃기는 군.”
“넌 학생 난 학생 뭐가 다른지 모르겠네. 꼴에 귀족이라는 거냐?”
아델은 그 말과 함께 검 끝을 앞으로 내세우며 자세를 잡았다.
“닥치고 검이나 들어 싸가지 없는 동급생아.”
시험이니만큼 예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는 관중들 앞에서나 예의를 차리는 것이지.
세르바눔도 공식 대련의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의 자세를 몇 번 확인한 후 말했다.
네오 리차드는 평민의 짜증나는 말투에 얼굴을 구기며 죽일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민과 귀족의 차이를 뼈저리게 알려주마.”
“얼마든지.”
“대련 시작해 주세요!”
안내원의 손이 천장에서 90도 각도로 내려왔다.
-타앗!
-파악!
서로 그 말을 원했다는 듯 땅을 박찼다.
아델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놈의 발걸음은 묵직했다.
놈은 검에 힘을 잔뜩 실으며 아델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죽어라!!”
놈의 몸은 느리다. 그리고 당연히 이 검을 피할 신체적인 능력조차 안 될 것이다.
그게 됐다면 첫 번째로 나올 리 없지.
리차드는 그리 생각하며 별다른 기술 없이 단순히 힘으로 찍어 누르려 했다.
왜 그리하냐고 묻는다면 그편이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 리차드의 검격이 아델의 머리로 빠르게 떨어졌다.
아델은 눈 하나 깜빡 안 하며 눈으로 그의 검을 주시했다.
그의 검이 아델의 머리를 갈라버리기 직전. 강한 풍압과 함께 아델은 사라졌다.
-후웅!!
아델은 알고 있었다. 저 리차드라는 놈이 길고 날쌔 봐야 엘리나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하물며 멜도 못 이길 놈이다.
-콰앙!
리차드의 검이 땅에 박히며 흙먼지를 휘날렸다.
리차드는 손에서 놈의 머리를 반으로 갈랐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허공을 갈랐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리차드는 본능적으로 놈의 반격을 느끼며 뒤로 크게 뛰어 물러났다.
뒤로 10보 이상 멀리 뛰어 거리를 벌린 리차드는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안심하였다.
리차드의 발이 땅에 닿으려 했다.
닿기 직전.
아델은 메케한 흙먼지 속에서 뚫고 나와 아래에서 위로 검을 내질렀다.
왼쪽 하단에서부터 바람을 뚫고 올라오는 검 끝에는 상대방이 죽든 말든 망설이지 않는다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채앵!
놈은 빠른 반사신경으로 아델의 검을 막아냈다.
‘역시나 막는구나.’
놈은 괜히 씨익 웃어 보이며 아직 여유롭다는 표현을 했다. 저 웃음의 출처는 스스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함에서부터 오는 것이었다.
리차드는 다시 한번 거리를 벌리려 뒤로 자세를 쏟았다.
이 거리에서는 검이 닿지 않을 거다.
그리 생각한 리차드는 거리를 순간적으로 벌렸다.
아델은 검을 바닥에 꽂아놓고 높게 뛰며 손바닥으로 검 손잡이 끝부분을 지지대처럼 받쳤다.
그러니 다시 한 유효 사정거리가 생겨났다.
아델은 놈의 명치에 발을 꽂아 넣었다.
-퍽!!
“커헉!”
명치가 순간 꾹 눌리며 놈은 숨을 못 쉬었다.
놈은 뒤로 지이익! 하고 발을 끌며 밀려났다. 아델이 발을 회수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금방 회복된 놈은 검을 꽉 잡으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허억···! 허억···! 평민 새끼가!”
“그래 평민한테 한 방 먹었네. 많이 부끄럽겠어. 동급생들도 보고 있을 텐데.”
아델은 피식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벤치에 앉아 대련을 보고 있던 리월 학생들은 이상함을 느낀다.
절대로 그럴 리 없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천하의 리차드가 밀리고 있었다.
“뭐, 뭐야 뭔가 잘 못 됐는데?”
리월에서 높은 층을 이루고 있는 귀족들이 몇몇 있었다.
자작 이상의 귀족들은 리월에게서 여러 가지 편지를 받았다.
입학시험은 매우 쉬울 것이니 안심하라는 편지.
모두 B등급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미리 축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이게 뭔···.
우리는 리월에게 통수를 당한 것인가?
리월에게서 들은 것과 말이 다르지 않은가!
“저게 뭐야! 저런 놈이 있다는 소리는 없었잖아!”
“진정해 나머지는 다 약할 거야. 저놈 첫 번째잖아.”
“아니 저런 놈이 있는 게 모순이라는 거다! 리월이 우리에게 한 말과 다르지 않은가!”
“착오가 있었나 보군.”
라온은 수상한 대화를 하는 놈들을 보며 곧 결론에 도달한 답을 찾았다. 작게 말했다.
“쓰레기 새끼···.”
라온은 말없이 다리를 꼬우며 대련을 즐겼다.
한편 리차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째서인가 내가 저 녀석보다 약하다는 건가?
“검을 똑바로 잡아. 그 아둔한 생각들이 대련의 가치를 망가트린다. 살아있다면 끝까지 검을 휘둘러라.”
“X발!”
놈은 뒤로 힐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고 있는 리월 학생들한테 소리쳤다.
“뭘 봐! 구경났어!?”
그의 신분은 공작이다. 평민에게 지는 일은 있어선 안 되는 높은 신분의 자제.
안된다. 평민에게 지면 안 된다!
그는 검을 바로잡으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오라를 끌어 올렸다.
오라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저 평민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리차드가 오라를 끌어 올리는 중.
-타악!
아델은 리차드의 허를 찔렀다.
“잠깐만! 아직 준비가!”
오라에 온 집중을 쏟은 그는 무방비 상태였다.
오라를 사용하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아델은 그 사실을 알고 돌진했다.
“전장에서도 그럴 거야? 멍청하긴.”
아델은 그대로 놈의 복부로 검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놈은 소리치며 아델의 검에 복부가 뚫린다고 생각해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승자는 아델 수고하셨습니다.”
안내원은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에 방금 대련에 대한 기록을 적었다.
녹화용 마력 저장기가 있긴 했지만, 눈앞에서 보는 것과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안내원은 아델을 극찬함과 동시에 리차드에게는 짧은 세 글자를 남겼다.
[C등급]
물론 그가 C등급에 걸릴 리는 없지만 냉철하게 판단해본 그의 실력은 고작 C등급 수준이었다.
-철커덩!
리차드는 검을 놓치며 땅바닥에 무릎을 댔다.
“아··· 아··· 아··· 아···!”
졌다. 고작 평민에게 졌다. 놈의 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로지 평민에게 졌다는 그 사실 하나만이 그를 죄절시켰다.
그가 좌절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지간히 충격이 컷던 모양이다.
아델은 그를 보며 대련장 밖으로 물러나려다 씨익하고 뒤돌아 그에게로 다가갔다.
-저벅저벅
리차드는 아델의 발소리를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왜 너 따위한테 진 거냐···! 평민주재에!! 이상한 개수작을 부렸잖아!! 인정해! 인정해!!”
그래 맞는 말이다. 내가 회귀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은 있을 수 없었지. 너한테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기에 나는 이겼음에도 억울한 것이다.
아델은 고개를 낮췄다.
“자신이 틀릴 리 없다는 전제를 깔아 놓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니 본인이 강함에도 졌다는 결론을 내린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그럼 내가 제대로 다시 정정해줄게.”
아델은 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에게 미소를 보였다.
고개를 낮춰 놈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내가 강한 게 아니라 니가 나약한 거야.”
아델은 그 말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대련장 밖으로 걸었다.
-꽈아악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을 꽉 쥐며 눈물을 흘겼다.
검에 무거운 살기가 담겼고 곧 붉은 빛을 띄기 시작했다.
리차드가 분노한 얼굴로 등을 보이는 아델에게 검을 휘둘렀다.
“죽어어어!!!”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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