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조회 : 926 추천 : 0 글자수 : 5,097 자 2022-09-23
“죽어!!!”
리차드가 검에 오라를 한가득 실었다. 그럼에 따라 리차드의 팔이 과부하 하며 강한 경련을 일으켰다.
“죽어어!!!”
요컨대 저건 폭주상태이며 단순히 감정이 격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 본인은 스스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일이 일어나는 순간 자신의 마음속 한켠에 쌓아둔 모든 것이 와르르하고 무너져 내린다.
역린.
격해진 파도에 몸을 맡긴다. 깨져버린 자신의 판단력을 정확하다 확신하는 이는 본연 폭주다. 인간의 본능에 의한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다.
항상 본능을 억제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한 번의 무너짐은 돌이킬 수 없는 엎질러진 물과 같은 것이다.
“으아아아아!!!”
이성을 잃은 듯 내지르는 포효소리는 아델의 고막을 따갑게 만들었다.
포니테일을 한 파슬란이 리차드의 검격을 막았다.
-채앵!! 까가가각!!
리차드의 검이 파슬란의 검에 맞닿는 순간 서로를 향하는 중심이 어긋나 부들거렸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네오 리차드!!”
파슬란은 고개를 꺾어 다급히 안내원을 바라봤지만, 그는 가만히 싱긋 웃고 있었다.
“뭐 하는 겁니까 당장 중재하세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델은 검지를 리차드의 미간에 겨냥하며 총 쏘듯 바람 마법을 극한으로 압축해 발사했다.
“잘 가라.”
-파앙!!
압축된 마법이 순간 공기의 흐름을 뒤틀고 바람을 가르며 리차드의 미간에 적중했다.
-텅!
묵직하게 리차드의 뇌를 울린 바람 마법은 주위로 초록빛을 흩날리며 사라졌다.
흰자를 보인 리차드는 머리부터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털썩
아델은 검지를 모아 주먹 쥐고는 힘을 풀어버렸다.
파슬란은 검을 꽉 쥐었다.
“허억··· 허억···.”
급하게 오라를 끌어 올린 그녀는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가 급격히 빨라짐을 느꼈다.
“네오 리차드 학생은 입학시험 중 세르바눔 원칙 2조 4항을 어겼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안내원의 권리로 네오 리차드를 퇴장시킵니다.”
안내원이 손가락을 튕기자 기절한 리차드가 공간에서 사라졌다.
아델은 태연하게 웃으면서도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은 입학시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 중범죄였다. 그는 입학시험 불의를 들먹였다.
아델은 안내원을 보며 말했다.
“정말 마음에 쏙 드는 대처네요. 감사합니다.”
“아뇨 제가 가진 권리로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아델은 일부로 리차드의 검을 막지 않았고 안내원도 리차드를 막지 않았다.
아델은 위험을 감수하고 귀족 놈을 퇴출시키려 했다. 검에 목이 잘릴 뻔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의 입학시험 탈락과 동시에 영구제명을 노리려 했지만, 그의 신분이 공작이었다.
멀리 안 갈 것이다. 아쉽게도.
파슬란은 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아델을 바라봤다.
“분명 막을 수 있었다. 막지 않은 이유가 있나?”
아델은 머쓱하게 말했다.
“뭐··· 이왕이면 목에 흉터 하나 내줄 각오로 베이려 했어요. 그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하고 아카데미에서 영구제명 시킬 수 있거든요. 그거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가.”
파슬란은 깊게 고민하며 뒤돌았다. 크게 내색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까는 지켜줘서 고마워요. 파슬란.”
“······.”
파슬란은 갑작스레 뒤돌아 그의 속마음을 읽으려 눈동자를 자세히 바라봤다.
눈동자 속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고마움은커녕 공허함만 보였다.
뭔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파슬란은 뭐 때문인지 작은 대답을 남기고는 돌아갔다.
“그래···.”
파슬란의 눈동자는 전에 없던 생기가 불어나 있었다.
·········
······
···
·
·
짧은 사건 이후 리월은 신화를 다시 썼다.
-채앵!!
“거기까지 라온 가드젤의 승리입니다.”
아델이 리차드를 이긴 불미스런 사건 이후 리월 학생들은 레지당스 학생들 속에 조커가 숨어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전력으로 레지당스 학생을 격파했다.
마지막 순서인 20번째 대련까지 말이다.
“거기까지 파슬란 리베트의 승리입니다.”
“하아······.”
방금 파슬란의 대련 상대인 평민은 검을 내려놓으며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아델을 제외한 모두가 패배했다.
당연한 거다. 애초에 승산 없는 싸움이었으니. 엘리트 귀족만 모인 리월 소속이니까.
원래의 공정한 방식이라면 미리 분석해둔 능력치에 맞춰 대련 상대방을 잡아줬을 것이다.
입학시험은 본래 본인의 수준과 맞는 상대와 대련을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건 순수 검술에 대한 재능을 평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동일한 능력치를 가졌지만 결국 이기는 쪽은 존재하게 된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수 싸움을 해서 대련을 이길 것이냐.
이 부분은 분명 교관이나 감독이 대신 한다고 쉽사리 접근할 수 없다.
민첩함, 힘, 체력 등을 알아도 재능에 대한 부분은 순수한 것이다.
그러니 수준이 맞는 상대와 대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썩어 빠진 비리가 있다만. 이번 입학시험은 그래도 적은 편이다.
분명 이는 불공정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패배한 평민인 그들은 발언권을 얻지 못한다. 평민이 불공정하다고 소송을 걸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소모품 취급이다. 더 적절한 비유를 하자면 곧 버릴 재활용 안 되는 쓰레기.
아델은 마법의 재능이 이었기에 한 번 이용하고 레지당스에서 키워 다시 내년에 있을 입학시험에 재도전시킬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예외였다.
재능이 없다. 마법 재능도 검술 재능도 아무것도 없었다.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 버리는 것이다. 다시 써먹을 수 있다면 거두는 것이 식단 데카코마니가 평민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아델이 처음 봤을 때부터 그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럼 승리하신 여러분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다음 시험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델 혼자서 걸어 나와 리월 앞에 섰고 리월 19명은 아델을 영물 보듯 시선을 향했다.
‘저놈이구나.’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작았다.
아델은 17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키는 작고 골격도 왜소했다.
눈으로만 보면 리차드를 어떻게 이겼는지 의심됐다, 하지만 아까의 움직임을 상기시키면 그런 생각들이 전부 깨졌다.
마법사면서 동시에 검도 잘 다루는 기묘한 놈.
분명 리차드도 적당히 봐주면서 상대했겠지.
모두들 같은 생각을 했다.
‘괴물이네.’
만약 자신이 아델과 대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에 그들은 머릿속에서 아델과 대련하는 상상을 했다.
누군가는 아델을 인정했고 누군가는 아델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분명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잘만 하면 말이다.
놈이 내지르는 검을 막은 후 그대로 반격하면 놈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작은 대련장이 만들어지고 그곳에 아델과 자신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가상 대련은 시작되었다,
생각한 대로 놈은 레이피어를 내지르고 자신은 레이피어를 막았다. 그렇게 틈을 발견하고 반격을 하는 순간.
-꿀꺽
모두의 머릿속이 깨졌다.
아델의 형용할 수 없는 속도가 머릿속에 일어나는 대련 시뮬레이션에 압도적인 변수를 창출했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시뮬레이션에는 이길 구멍이 존재했다.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아델의 검이 느린 모션으로 보인다거나 패배한다면 패배하기 전으로 돌아가 그 상황을 회피한다던가 아예 자신이 원하는 부분으로 상대방이 공격하는 정도의 전능함을 보였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한 움직임이 모든 수의 반격을 피하고 목에 레이피어를 꿰뚫었다.
몇몇은 고개를 돌리며 아델과 시선을 피했다.
아델에게 분위기를 제압당한 리월 몇몇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아델은 미소를 보였다.
“표정이 어두우시네요.”
“칫.”
안내원은 조심스레 눈치 보며 입을 열었다.
“인원 체크··· 할 필요 없겠네요.”
리차드를 제외한 리월 1차 통과.
그리고 아델을 제외한 모든 레지당스 소속 1차 입학시험 탈락 및 1-2 입학시험 장소로 이동.
“그러면 다음 시험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동할게요.”
안내원은 대련 과정 평가지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가운데 중앙 문을 열었다.
아델은 1열로 혼자 섰고 나머지 리월 학생들은 2열로 서며 대열을 맞췄다.
다음 시험은 아델에게 아주 간단한 시험이었다.
-드르륵
“제한시간은 30분입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책상에 앉은 아델은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와 펜을 보며 곧 시험지를 눈대중으로 전부 훑어봤다.
2분이 지난 후 아델은 30문제 전부 완벽하게 풀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델은 시험지를 책상에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안내원과 눈빛을 교환했다.
아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리차드를 이긴 순간 안내원이 자신에게 향하는 눈빛은 선망이 아닌 의심이었다.
뒤에서도 같은 시선이 느껴지는 걸 보니 감독관한테 따로 아델을 마킹하라고 지시한 듯 보였다.
정말 보육원에서 온 학생이 맞는가. 동일 인물인가. 혹여나 세르바눔 내 주요 인물 암살을 목적으로 들어온 암살자는 아닌가.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은 피해야 했다. 진짜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아델은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야 보육원에서 살아온 아델이 평생을 검술만 훈련한 리차드를 이겼는데 어찌 내뺄 것인가.
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니 아델은 일부로 그의 화를 부추기고 자신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교묘히 사건 속에 묻었다.
그들에게 1순위는 아델의 실력이 아닌 리차드의 처벌이다. 그 과정에서 범행 동기가 섞이긴 하다만 공작인 리차드는 심신미약으로 행한 짓이며 절대 자신이 화를 못 이겨 검을 든 것이 아니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리차드가 이 사실이 묻히길 바랄 거다.
아델의 실력이 알려지는 순간 뭐든 리차드의 패배도 같이 공론화되니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이다.
무튼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1차 입학시험은 어쩔 수 없이 이겨야 했기에 이겼다지만 여기서는 제대로 된 연기를 해야 했다.
‘아슬아슬하게 B등급을 받을 정도만 맞추자.’
아델은 자신의 눈으로 봤을 때 어려워 보이는 문제 2개를 후딱 풀어버린 뒤 나머지 문제를 입맛대로 적절히 맞추고 틀렸다.
아델의 눈에는 다 거기서 거기인 문제였지만 그나마 17살 기준으로 어려운 문제를 엄격하게 선별하여 풀은 것이다.
중간중간 보기도 싫은 역겨운 문제들도 있고 단번에 답이 보이는 쉬운 문제도 있었다.
* * *
“그러면 시험지 걷겠습니다. 움직이지 말아 주세요.”
아델을 뒤에 조용히 바라보던 감독관은 걸어 나와 아델의 시험지를 곧바로 걷어 확인했다. 조용히 말한다.
“답을 알고 있었나?”
아델은 진작에 감독관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비꼬아봤다.
“쓸데없는 거 물어보지 말고 그냥 걷어가시죠?”
질문의 의도를 비틀어본 아델.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벙찌게 만들 수 있었다.
압박 신문을 해보려 한 것 같은데 한참 무른 감독관이다.
감독관은 모든 시험지를 걷어 제출했다. 본래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아델이이다.
누가 아델이 리차드를 이길 것이라 상상했겠는가.
고아원 출신 평민이 공작 출신인 그를 이겼다는 사실은 세간에 주목받을 사건이었다.
20개의 시험지 전부 리월 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쉬운 수준의 문제였다.
그랬기에 문제 중간중간 리월에 대한 학생의 소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접근한 문제가 많았다.
그것들을 틀리는 것으로 대충 이번 시험도 끝났다고 생각한 아델이었다.
쉬운 문제 난이도에 풀렸던 긴장의 끈이 완벽히 풀려버렸다.
아델은 의자를 까딱거리며 넋 놓았고 곧 파슬란이 아델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델이라고 했나?”
아델은 무심해 보이는 얼굴로 파슬란을 바라봤다.
“알고 있으면서 왜 또 물어봐.”
“아까의 대련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딱딱한 파슬란의 목소리는 말 그대로 벽이었다. 쉽사리 말을 걸 수 없을 것 같은 벽.
하지만 아델은 그녀가 귀족이든 말든 의자를 까딱이며 말했다.
“대답 못 하는 거 빼고는 다 대답해줄게.”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고맙다.”
파슬란은 말을 이었다.
“어째서 대련 중에 진심을 다하지 않은 거지?”
“······뭐? 그걸 어떻게 알았어.”
리차드가 검에 오라를 한가득 실었다. 그럼에 따라 리차드의 팔이 과부하 하며 강한 경련을 일으켰다.
“죽어어!!!”
요컨대 저건 폭주상태이며 단순히 감정이 격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 본인은 스스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일이 일어나는 순간 자신의 마음속 한켠에 쌓아둔 모든 것이 와르르하고 무너져 내린다.
역린.
격해진 파도에 몸을 맡긴다. 깨져버린 자신의 판단력을 정확하다 확신하는 이는 본연 폭주다. 인간의 본능에 의한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다.
항상 본능을 억제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한 번의 무너짐은 돌이킬 수 없는 엎질러진 물과 같은 것이다.
“으아아아아!!!”
이성을 잃은 듯 내지르는 포효소리는 아델의 고막을 따갑게 만들었다.
포니테일을 한 파슬란이 리차드의 검격을 막았다.
-채앵!! 까가가각!!
리차드의 검이 파슬란의 검에 맞닿는 순간 서로를 향하는 중심이 어긋나 부들거렸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네오 리차드!!”
파슬란은 고개를 꺾어 다급히 안내원을 바라봤지만, 그는 가만히 싱긋 웃고 있었다.
“뭐 하는 겁니까 당장 중재하세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델은 검지를 리차드의 미간에 겨냥하며 총 쏘듯 바람 마법을 극한으로 압축해 발사했다.
“잘 가라.”
-파앙!!
압축된 마법이 순간 공기의 흐름을 뒤틀고 바람을 가르며 리차드의 미간에 적중했다.
-텅!
묵직하게 리차드의 뇌를 울린 바람 마법은 주위로 초록빛을 흩날리며 사라졌다.
흰자를 보인 리차드는 머리부터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털썩
아델은 검지를 모아 주먹 쥐고는 힘을 풀어버렸다.
파슬란은 검을 꽉 쥐었다.
“허억··· 허억···.”
급하게 오라를 끌어 올린 그녀는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가 급격히 빨라짐을 느꼈다.
“네오 리차드 학생은 입학시험 중 세르바눔 원칙 2조 4항을 어겼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안내원의 권리로 네오 리차드를 퇴장시킵니다.”
안내원이 손가락을 튕기자 기절한 리차드가 공간에서 사라졌다.
아델은 태연하게 웃으면서도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은 입학시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 중범죄였다. 그는 입학시험 불의를 들먹였다.
아델은 안내원을 보며 말했다.
“정말 마음에 쏙 드는 대처네요. 감사합니다.”
“아뇨 제가 가진 권리로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아델은 일부로 리차드의 검을 막지 않았고 안내원도 리차드를 막지 않았다.
아델은 위험을 감수하고 귀족 놈을 퇴출시키려 했다. 검에 목이 잘릴 뻔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의 입학시험 탈락과 동시에 영구제명을 노리려 했지만, 그의 신분이 공작이었다.
멀리 안 갈 것이다. 아쉽게도.
파슬란은 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아델을 바라봤다.
“분명 막을 수 있었다. 막지 않은 이유가 있나?”
아델은 머쓱하게 말했다.
“뭐··· 이왕이면 목에 흉터 하나 내줄 각오로 베이려 했어요. 그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하고 아카데미에서 영구제명 시킬 수 있거든요. 그거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가.”
파슬란은 깊게 고민하며 뒤돌았다. 크게 내색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까는 지켜줘서 고마워요. 파슬란.”
“······.”
파슬란은 갑작스레 뒤돌아 그의 속마음을 읽으려 눈동자를 자세히 바라봤다.
눈동자 속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고마움은커녕 공허함만 보였다.
뭔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파슬란은 뭐 때문인지 작은 대답을 남기고는 돌아갔다.
“그래···.”
파슬란의 눈동자는 전에 없던 생기가 불어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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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사건 이후 리월은 신화를 다시 썼다.
-채앵!!
“거기까지 라온 가드젤의 승리입니다.”
아델이 리차드를 이긴 불미스런 사건 이후 리월 학생들은 레지당스 학생들 속에 조커가 숨어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전력으로 레지당스 학생을 격파했다.
마지막 순서인 20번째 대련까지 말이다.
“거기까지 파슬란 리베트의 승리입니다.”
“하아······.”
방금 파슬란의 대련 상대인 평민은 검을 내려놓으며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아델을 제외한 모두가 패배했다.
당연한 거다. 애초에 승산 없는 싸움이었으니. 엘리트 귀족만 모인 리월 소속이니까.
원래의 공정한 방식이라면 미리 분석해둔 능력치에 맞춰 대련 상대방을 잡아줬을 것이다.
입학시험은 본래 본인의 수준과 맞는 상대와 대련을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건 순수 검술에 대한 재능을 평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동일한 능력치를 가졌지만 결국 이기는 쪽은 존재하게 된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수 싸움을 해서 대련을 이길 것이냐.
이 부분은 분명 교관이나 감독이 대신 한다고 쉽사리 접근할 수 없다.
민첩함, 힘, 체력 등을 알아도 재능에 대한 부분은 순수한 것이다.
그러니 수준이 맞는 상대와 대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썩어 빠진 비리가 있다만. 이번 입학시험은 그래도 적은 편이다.
분명 이는 불공정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패배한 평민인 그들은 발언권을 얻지 못한다. 평민이 불공정하다고 소송을 걸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소모품 취급이다. 더 적절한 비유를 하자면 곧 버릴 재활용 안 되는 쓰레기.
아델은 마법의 재능이 이었기에 한 번 이용하고 레지당스에서 키워 다시 내년에 있을 입학시험에 재도전시킬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예외였다.
재능이 없다. 마법 재능도 검술 재능도 아무것도 없었다.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 버리는 것이다. 다시 써먹을 수 있다면 거두는 것이 식단 데카코마니가 평민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아델이 처음 봤을 때부터 그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럼 승리하신 여러분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다음 시험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델 혼자서 걸어 나와 리월 앞에 섰고 리월 19명은 아델을 영물 보듯 시선을 향했다.
‘저놈이구나.’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작았다.
아델은 17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키는 작고 골격도 왜소했다.
눈으로만 보면 리차드를 어떻게 이겼는지 의심됐다, 하지만 아까의 움직임을 상기시키면 그런 생각들이 전부 깨졌다.
마법사면서 동시에 검도 잘 다루는 기묘한 놈.
분명 리차드도 적당히 봐주면서 상대했겠지.
모두들 같은 생각을 했다.
‘괴물이네.’
만약 자신이 아델과 대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에 그들은 머릿속에서 아델과 대련하는 상상을 했다.
누군가는 아델을 인정했고 누군가는 아델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분명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잘만 하면 말이다.
놈이 내지르는 검을 막은 후 그대로 반격하면 놈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작은 대련장이 만들어지고 그곳에 아델과 자신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가상 대련은 시작되었다,
생각한 대로 놈은 레이피어를 내지르고 자신은 레이피어를 막았다. 그렇게 틈을 발견하고 반격을 하는 순간.
-꿀꺽
모두의 머릿속이 깨졌다.
아델의 형용할 수 없는 속도가 머릿속에 일어나는 대련 시뮬레이션에 압도적인 변수를 창출했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시뮬레이션에는 이길 구멍이 존재했다.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아델의 검이 느린 모션으로 보인다거나 패배한다면 패배하기 전으로 돌아가 그 상황을 회피한다던가 아예 자신이 원하는 부분으로 상대방이 공격하는 정도의 전능함을 보였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한 움직임이 모든 수의 반격을 피하고 목에 레이피어를 꿰뚫었다.
몇몇은 고개를 돌리며 아델과 시선을 피했다.
아델에게 분위기를 제압당한 리월 몇몇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아델은 미소를 보였다.
“표정이 어두우시네요.”
“칫.”
안내원은 조심스레 눈치 보며 입을 열었다.
“인원 체크··· 할 필요 없겠네요.”
리차드를 제외한 리월 1차 통과.
그리고 아델을 제외한 모든 레지당스 소속 1차 입학시험 탈락 및 1-2 입학시험 장소로 이동.
“그러면 다음 시험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동할게요.”
안내원은 대련 과정 평가지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가운데 중앙 문을 열었다.
아델은 1열로 혼자 섰고 나머지 리월 학생들은 2열로 서며 대열을 맞췄다.
다음 시험은 아델에게 아주 간단한 시험이었다.
-드르륵
“제한시간은 30분입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책상에 앉은 아델은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와 펜을 보며 곧 시험지를 눈대중으로 전부 훑어봤다.
2분이 지난 후 아델은 30문제 전부 완벽하게 풀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델은 시험지를 책상에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안내원과 눈빛을 교환했다.
아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리차드를 이긴 순간 안내원이 자신에게 향하는 눈빛은 선망이 아닌 의심이었다.
뒤에서도 같은 시선이 느껴지는 걸 보니 감독관한테 따로 아델을 마킹하라고 지시한 듯 보였다.
정말 보육원에서 온 학생이 맞는가. 동일 인물인가. 혹여나 세르바눔 내 주요 인물 암살을 목적으로 들어온 암살자는 아닌가.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은 피해야 했다. 진짜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아델은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야 보육원에서 살아온 아델이 평생을 검술만 훈련한 리차드를 이겼는데 어찌 내뺄 것인가.
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니 아델은 일부로 그의 화를 부추기고 자신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교묘히 사건 속에 묻었다.
그들에게 1순위는 아델의 실력이 아닌 리차드의 처벌이다. 그 과정에서 범행 동기가 섞이긴 하다만 공작인 리차드는 심신미약으로 행한 짓이며 절대 자신이 화를 못 이겨 검을 든 것이 아니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리차드가 이 사실이 묻히길 바랄 거다.
아델의 실력이 알려지는 순간 뭐든 리차드의 패배도 같이 공론화되니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이다.
무튼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1차 입학시험은 어쩔 수 없이 이겨야 했기에 이겼다지만 여기서는 제대로 된 연기를 해야 했다.
‘아슬아슬하게 B등급을 받을 정도만 맞추자.’
아델은 자신의 눈으로 봤을 때 어려워 보이는 문제 2개를 후딱 풀어버린 뒤 나머지 문제를 입맛대로 적절히 맞추고 틀렸다.
아델의 눈에는 다 거기서 거기인 문제였지만 그나마 17살 기준으로 어려운 문제를 엄격하게 선별하여 풀은 것이다.
중간중간 보기도 싫은 역겨운 문제들도 있고 단번에 답이 보이는 쉬운 문제도 있었다.
* * *
“그러면 시험지 걷겠습니다. 움직이지 말아 주세요.”
아델을 뒤에 조용히 바라보던 감독관은 걸어 나와 아델의 시험지를 곧바로 걷어 확인했다. 조용히 말한다.
“답을 알고 있었나?”
아델은 진작에 감독관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비꼬아봤다.
“쓸데없는 거 물어보지 말고 그냥 걷어가시죠?”
질문의 의도를 비틀어본 아델.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벙찌게 만들 수 있었다.
압박 신문을 해보려 한 것 같은데 한참 무른 감독관이다.
감독관은 모든 시험지를 걷어 제출했다. 본래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아델이이다.
누가 아델이 리차드를 이길 것이라 상상했겠는가.
고아원 출신 평민이 공작 출신인 그를 이겼다는 사실은 세간에 주목받을 사건이었다.
20개의 시험지 전부 리월 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쉬운 수준의 문제였다.
그랬기에 문제 중간중간 리월에 대한 학생의 소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접근한 문제가 많았다.
그것들을 틀리는 것으로 대충 이번 시험도 끝났다고 생각한 아델이었다.
쉬운 문제 난이도에 풀렸던 긴장의 끈이 완벽히 풀려버렸다.
아델은 의자를 까딱거리며 넋 놓았고 곧 파슬란이 아델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델이라고 했나?”
아델은 무심해 보이는 얼굴로 파슬란을 바라봤다.
“알고 있으면서 왜 또 물어봐.”
“아까의 대련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딱딱한 파슬란의 목소리는 말 그대로 벽이었다. 쉽사리 말을 걸 수 없을 것 같은 벽.
하지만 아델은 그녀가 귀족이든 말든 의자를 까딱이며 말했다.
“대답 못 하는 거 빼고는 다 대답해줄게.”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고맙다.”
파슬란은 말을 이었다.
“어째서 대련 중에 진심을 다하지 않은 거지?”
“······뭐? 그걸 어떻게 알았어.”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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