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조회 : 981 추천 : 0 글자수 : 5,369 자 2022-09-25
“나는 대련할 동안 내내 너를 분석했다. 그리고 리차드를 상대로 가지고 놀았다는 결론에 도달했지. 너는 지금 같잖은 연기를 하고 있어.”
“그걸 알아서 어쩔 건데.”
“단순히 궁금한 거뿐이다. 왜 그런 건지.”
“아 그래?”
아델은 파슬란을 알고 있었다. 인연도 꽤 짙었고 그랬기에 궁금했다.
“파슬란.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아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 하나 할 게 너는 평민이 A등급 이상 올라간 거 본 적 있어?”
본 적 있을 리 없다. 그녀는 지금 세르바눔에 막 온 입학생이니까. 하지만 아델이 묻고 있는 질문의 본질은 이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아마도 이곳 세르바눔에 A등급 이상의 평민이 없다는 걸 본인도 모르게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한 고정 관념이다.
“나는······본적 없다.”
“나한테 왜 이런 걸 질문하는지 의도를 못 찾겠네. 내가 리차드를 상대로 잘해서 뭐 어쩔 건데. 너희 귀족들 핍박이나 의심만 사는 꼴이지. 나는 평민 기준에서 가장 완벽한 시험을 봤을 뿐이야.”
모두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해온 파슬란은 평민이든 귀족이든 가릴 것 없이 동격인 존재로 인식하며 자라왔다.
아델은 파슬란에게 현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방금 그녀의 신념을 건드려 봤다.
파슬란 리베트 그녀는 각성자 시절 평민인 나와 멜 그리고 로벨리아가 속한 군대를 이끌었던 귀족이며 부대의 단장이었다.
그러니 궁금했다. 그녀가 말했던 그때의 진심 어린 말들은 과연 연기였을지. 아니면 진심이었을지.
미움을 사도 상관없다. 그랬기에 아델은 확실히 쐐기를 박아 넣었다.
“파슬란 혹시 같잖은 연극을 하고 있던 거 아니야?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
파슬란은 표정을 죽이며 손바닥으로 아델의 뺨을 후렸다.
-짝!!
크게 울리는 소리.
아델의 고개가 약간 돌아가며 동시에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이곳 시험장에 있는 리월 학생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아델 한가지 알려주지. 나는 누굴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이 버러지 같은 세계를 조금이라도 좋게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것뿐이다. 내가 귀족이라고 평민을 싫어한단 투로 막말하지 마라. 실망했다.”
아델은 피식하고 웃으며 후끈 달아오른 오른쪽 볼에 손을 올렸다.
“말로만? 아까 내가 한 말과 정확히 일치하네. 전부 자기를 위한 연극이라니까?”
“······보여줄 거다. 이 세계가 조금이라도 변하도록 노력할 것이고. 그러니 아델 그대도 말 함부로 하지 마라.”
파슬란 그녀는 평민과 귀족 사이에 태어났다. 7인 영웅을 동경하며 살아온 인생에서 뭔가 잘못된 평민을 향한 귀족의 시선을 바로 잡는 것이 그녀의 인생 목적이었다.
7인 영웅에게서 봤던 그때 그 시절의 영향력과 위상을 다시 한번 드높이고 싶은 그녀.
그녀 스스로가 만든 파멸단의 설립 초기에 연설로 공개한 말이다. 파멸의 문을 막기 위해 모인 수많은 인간들이 한곳에 모였을 때.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단결시켰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진심이니까.
그랬기에 아델은 알고 싶었다.
파멸단의 각성자로 살아가던 시절 그녀가 한 말은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같잖은 연극이었는지.
아까 리차드로부터 자신을 구한 파슬란의 행동이 자신을 속이기 위한 연극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볼에서 손을 뗀 아델은 돌아선 그녀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아델의 변화는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그녀도 이질적이라 느꼈을 거다.
“······늦었어.”
파슬란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고개를 홱 돌려 나가버렸다.
그렇게 입학시험은 끝났고 리월 학생들은 막막한 분위기를 풀려 세르바눔을 구경하기 위해 시험장을 나갔다.
혼자 남은 아델.
파슬란은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다행이지만 찝찝한 이 기분.
나중에 제대로 사과해야지.
아델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밖에는 아직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델은 조금 더 남아있기로 했다.
리월 학생들이 있을 이곳에 얼굴을 들이댔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귀족들 저마다 몸에 지니고 다니는 값비싼 향수 냄새가 아델에게는 없었기에.
귀족들은 특이하게 코가 좋았다. 평민들만 귀신같이 구분한다는 부분에서 특히나 더욱.
평민 냄새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진짜로 구분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슬슬 10분을 넘어갈 무렵 인기척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음을 느낀 아델은 문을 열었다. 다시 돌아온 안내원과 눈이 마주쳤다.
안내원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내원은 어색하게 말했다.
“혼자인가요?”
주위를 둘러보다 싱긋 웃어 보였다. 아델이 왜 이 시간까지 남아있었는지 이해한 모양이다.
“가는 길까지만 같이 가죠. 말동무해드리겠습니다.”
-철컥
시험관 문을 잠근 안내원은 뒤 돌아 아델을 바라봤고 아델은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두 사람.
안내원은 한참을 말없이 걷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모험학 2번 문제 정답 어떻게 알았어요?”
“기억 안 나네요.”
날 의심하는 모양이다. 꽤 조심스레 답했고 가벼운 질문이라 생각한 그녀였겠지만 너무 뜬금없이 말하는 모습은 멍청하다 할지, 치밀하다 할지.
아델은 2번 문제가 뭔지 알고 있었지만, 기억 안 나는 듯 대충 넘어가려 어깨를 으쓱였다.
“문제를 기억 못 하고 있군요?”
그녀는 더욱 파고들었다. 단순 질문이라는 선을 넘기 시작하며 노골적으로 변했다.
“잘 생각해보니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대충 찍었던 기억이 있네요. 방금 제 생각이 확실할 거예요.”
하지만 아델은 빈틈없는 대처를 하며 완벽 방어를 보여줬다. 내 말들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심증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그녀는 정곡을 향해 바늘을 더욱 내질렀다.
“그럼 보여줬던 대련도 대충해서 나온 건가요?”
언제부터 의심한 걸까. 처음? 아니면 중간? 크게 눈에 띄는 짓은···. 아델은 과거 기억을 되새기며 생각을 말았다.
이곳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짬에서 나온 아델의 움직임은 확실히 의심을 살만했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온 안내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는 행동을 그리 많이 했으니 눈에 띄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어색한 기류가 점차 흐를 때.
“아델!”
멜이 멀리서 아델을 발견하고는 기쁜 듯 달려왔다.
안내원은 멜을 보고는 자연스레 옆길로 빠지며 작은 한마디를 남겼다.
“밤길 조심하세요. 리월 학생이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 진심입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어두운 곳은 돌아다닐 생각이 없거든요.”
안내원은 사라졌다.
“저 여자는?”
“글쎄. 그것보다 좋은 타이밍에 잘 왔어 멜.”
“어?”
아델은 잊으라는 듯 화제를 돌렸다.
“시험 잘 봤어?”
“그게···.”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곧바로 답했다.
“쉬웠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 거다. 멜한테는 너무 쉬웠겠지.
멜이 질 리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너무 쉽다는 소리를 들으니 약간 김이 빠진 아델이었다.
“잘 봐서 다행이네.”
아델이 길을 찾고 멜은 아델을 옆에서 따라가며 또 한 번 레지당스로 향하는 텔레포트를 타 원래 있던 입학식장 뒤뜰로 돌아왔다.
“기숙사로 돌아갈까?”
“그래 피곤하다~!”
멜은 기지개를 켜며 하품했다.
“그래.”
아델은 길을 걸으며 은연중 사라지지 않은 불안함을 느꼈다.
네오 리차드를 그리 신명 나게 팼으니 불안한 것도 당연했다.
리월이든 레지당스든 아니면 리차드 본인이든 날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가만둘 리 없다.
놈들의 보복을 준비해서라도 뭔가 압도적인 무언가가 필요한 아델이다.
예를 들면 살기라던가.
아니면 놈들의 뼈 아픈 과거라던가.
그런 확실한 방법이 없었던 아델이 선택한 방법은.
“아델 어디가?”
“먼저 가 있어 까먹고 잊은 일이 있어서. 금방 들어갈게.”
“음··· 알았어. 먼저 가 있을게.”
학생 주제에 나는 뭐라 변명한 거냐. 아델은 방금 망언을 잊으며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시험이 끝난 직후 그녀가 가장 먼저 갈 곳은 당연히.
“하압!”
연무장이었다.
아델은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조용한 주위를 확인한 이후 연무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느 미친 인간이 입학시험 끝난 직후 훈련하기 위해 검을 잡을까.
-후웅! 후웅!
그 미친 인간이 엘리나다. 그래서 그녀가 강한 것이고.
엘리나는 곧장 아델의 기척을 느끼며 당황한 듯 뒤돌았다.
“너, 너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불안함!
“안녕 엘리나 소원 빌러 왔어.”
아델은 태연하게 웃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아···.”
엘리나는 검 휘두를 맛이 뚝 떨어져 검을 바닥에 버렸다.
* * *
“······.”
“일어나라···.”
“······.”
“일어나지 않는군···.”
리차드는 어두 컴컴한 방안에 누워있었다.
한 남자가 손가락을 팅겼고 그러자.
리차드는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끄으··· 머리야··· 여긴···?”
그의 앞에는 옅은 실루엣으로 몸의 실선만 보이는 5명의 교수가 있었다.
각각 레지당스, 리월, 펜니르, 크로노스, 하프켄에서 교수 역할을 하는 높은 자들이었다.
리차드는 유일하게 리월 교수인 펜슬롯만 보였으며 펜슬롯만 알고 있었다.
금발에 옅은 인상을 가진 그는 뜬 눈인지 안 뜬 눈인지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펜슬롯···님.”
리차드는 주위를 둘러봤다. 온통 어두운 이곳.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있나.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리차드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에 대한 처분은 펜슬롯 당신이 정해주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바쁜 사람입니다.”
펜니르의 프리안스 교수가 손목을 툭툭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리차드는 방금 말을 매개체로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 그리고 보기 좋게 당하며 기절했다는 것.
“저도 제대로 보지 못한 입장으로 정확한 판결 할 수 없겠네요. 여기에 적혀 있는 진술서도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래서야 저는 제대로 된 판결을 할 수 있겠나요?”
펜슬롯은 들고 있는 종이가 단순 종이쪼가리라며 흔들었고 리차드에게 빠져나갈 기회를 줬다.
펜슬롯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피해자한테서 진술서를 받아 온 후에 제대로 된 판결을······.”
그때.
“그건 안 됩니다!”
리차드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결국 내질러 버렸다.
“······.”
입을 다문 펜슬롯.
울리는 정적.
펜슬롯은 분명 아델을 압박하여 거짓 진술서를 받아낼 계획이었다. 특별한 별도의 보상까지 합세하여 입막음까지 완벽하게.
하지만 리차드는 자신이 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더욱 두려웠다. 아직 이들은 이 사실을 모르니 말이다.
나중 가서야 모르지만, 아델이 본인 입으로 말하게 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분명 그놈이라면 거짓 진술 따위 해줄 생각도 없고 입막음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내 빈틈을 파고들어 완벽하게 죽이려 할 것이다.
그런 놈이라는 걸 처음 만나자 마자 단번에 파악한 리차드기에 막아야 했다.
“······리차드 자네에게 발원권을 준 적이 없다만.”
렌슬롯의 눈동자가 선명해지며 섬뜩한 푸른색을 띄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있는 종이를 테이블에 살포시 내려놓으며 다가갔다.
“여기까지입니다. 사건에 대한 판결은 잠깐 미뤄두도록 하죠.”
“동의합니다.”
“······.”
“······.”
“······.”
부재중인 나머지 3명의 교수.
-또각또각
섬뜩한 구두 소리가 울리며 동시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검은 공간에 놓인 리차드는 세상과 단절된 공간임을 깨달았다.
모든 교수가 사라졌다. 지금 상황을 중재한 유일한 인물들이 시야 속에서 사라짐에 따라 리차드는 압도적인 공포감을 느끼며 엉덩이를 찧고 털썩 주저앉았다.
“아··· 아··· 아···.”
-또각!
감각이 예민해진 리차드의 고통이 빠르게 울렸다.
“리차드 너에게 실망했네. 자네가 리월의 깔끔한 길에 크나큰 오점을 남겼어···.”
“죄, 죄송합니다···.”
“······나는 자네를 다그칠 생각이 없네.”
“네··· 네···.”
펜슬롯은 고개를 낮춰 씨익 웃었다.
“레지당스 놈들인가?”
“마, 맞습니다. 레지당스가 확실합니다···!”
펜슬롯은 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쥐며 들어 올렸다.
그의 창백한 푸른 눈동자가 리차드의 눈동자에 비췄다.
압도적인 공포와 강함이 리차드의 내면에 간접적으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것은 반드시 되찾는 것이 리월의 방식일세. 나는 자네가 이 사건을 스스로의 힘으로 수습할 수 있을 거라 믿네.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그 멍청한 두뇌로도 알 거야. 전부 입단속 시켜.”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주위 어두운 시야가 걷어지고 어딘지 모를 기숙사 방안에서 다시 한번 깨어났다.
“흐윽··· 젠장.”
“그걸 알아서 어쩔 건데.”
“단순히 궁금한 거뿐이다. 왜 그런 건지.”
“아 그래?”
아델은 파슬란을 알고 있었다. 인연도 꽤 짙었고 그랬기에 궁금했다.
“파슬란.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아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 하나 할 게 너는 평민이 A등급 이상 올라간 거 본 적 있어?”
본 적 있을 리 없다. 그녀는 지금 세르바눔에 막 온 입학생이니까. 하지만 아델이 묻고 있는 질문의 본질은 이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아마도 이곳 세르바눔에 A등급 이상의 평민이 없다는 걸 본인도 모르게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한 고정 관념이다.
“나는······본적 없다.”
“나한테 왜 이런 걸 질문하는지 의도를 못 찾겠네. 내가 리차드를 상대로 잘해서 뭐 어쩔 건데. 너희 귀족들 핍박이나 의심만 사는 꼴이지. 나는 평민 기준에서 가장 완벽한 시험을 봤을 뿐이야.”
모두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해온 파슬란은 평민이든 귀족이든 가릴 것 없이 동격인 존재로 인식하며 자라왔다.
아델은 파슬란에게 현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방금 그녀의 신념을 건드려 봤다.
파슬란 리베트 그녀는 각성자 시절 평민인 나와 멜 그리고 로벨리아가 속한 군대를 이끌었던 귀족이며 부대의 단장이었다.
그러니 궁금했다. 그녀가 말했던 그때의 진심 어린 말들은 과연 연기였을지. 아니면 진심이었을지.
미움을 사도 상관없다. 그랬기에 아델은 확실히 쐐기를 박아 넣었다.
“파슬란 혹시 같잖은 연극을 하고 있던 거 아니야?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
파슬란은 표정을 죽이며 손바닥으로 아델의 뺨을 후렸다.
-짝!!
크게 울리는 소리.
아델의 고개가 약간 돌아가며 동시에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이곳 시험장에 있는 리월 학생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아델 한가지 알려주지. 나는 누굴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이 버러지 같은 세계를 조금이라도 좋게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것뿐이다. 내가 귀족이라고 평민을 싫어한단 투로 막말하지 마라. 실망했다.”
아델은 피식하고 웃으며 후끈 달아오른 오른쪽 볼에 손을 올렸다.
“말로만? 아까 내가 한 말과 정확히 일치하네. 전부 자기를 위한 연극이라니까?”
“······보여줄 거다. 이 세계가 조금이라도 변하도록 노력할 것이고. 그러니 아델 그대도 말 함부로 하지 마라.”
파슬란 그녀는 평민과 귀족 사이에 태어났다. 7인 영웅을 동경하며 살아온 인생에서 뭔가 잘못된 평민을 향한 귀족의 시선을 바로 잡는 것이 그녀의 인생 목적이었다.
7인 영웅에게서 봤던 그때 그 시절의 영향력과 위상을 다시 한번 드높이고 싶은 그녀.
그녀 스스로가 만든 파멸단의 설립 초기에 연설로 공개한 말이다. 파멸의 문을 막기 위해 모인 수많은 인간들이 한곳에 모였을 때.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단결시켰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진심이니까.
그랬기에 아델은 알고 싶었다.
파멸단의 각성자로 살아가던 시절 그녀가 한 말은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같잖은 연극이었는지.
아까 리차드로부터 자신을 구한 파슬란의 행동이 자신을 속이기 위한 연극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볼에서 손을 뗀 아델은 돌아선 그녀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아델의 변화는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그녀도 이질적이라 느꼈을 거다.
“······늦었어.”
파슬란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고개를 홱 돌려 나가버렸다.
그렇게 입학시험은 끝났고 리월 학생들은 막막한 분위기를 풀려 세르바눔을 구경하기 위해 시험장을 나갔다.
혼자 남은 아델.
파슬란은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다행이지만 찝찝한 이 기분.
나중에 제대로 사과해야지.
아델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밖에는 아직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델은 조금 더 남아있기로 했다.
리월 학생들이 있을 이곳에 얼굴을 들이댔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귀족들 저마다 몸에 지니고 다니는 값비싼 향수 냄새가 아델에게는 없었기에.
귀족들은 특이하게 코가 좋았다. 평민들만 귀신같이 구분한다는 부분에서 특히나 더욱.
평민 냄새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진짜로 구분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슬슬 10분을 넘어갈 무렵 인기척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음을 느낀 아델은 문을 열었다. 다시 돌아온 안내원과 눈이 마주쳤다.
안내원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내원은 어색하게 말했다.
“혼자인가요?”
주위를 둘러보다 싱긋 웃어 보였다. 아델이 왜 이 시간까지 남아있었는지 이해한 모양이다.
“가는 길까지만 같이 가죠. 말동무해드리겠습니다.”
-철컥
시험관 문을 잠근 안내원은 뒤 돌아 아델을 바라봤고 아델은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두 사람.
안내원은 한참을 말없이 걷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모험학 2번 문제 정답 어떻게 알았어요?”
“기억 안 나네요.”
날 의심하는 모양이다. 꽤 조심스레 답했고 가벼운 질문이라 생각한 그녀였겠지만 너무 뜬금없이 말하는 모습은 멍청하다 할지, 치밀하다 할지.
아델은 2번 문제가 뭔지 알고 있었지만, 기억 안 나는 듯 대충 넘어가려 어깨를 으쓱였다.
“문제를 기억 못 하고 있군요?”
그녀는 더욱 파고들었다. 단순 질문이라는 선을 넘기 시작하며 노골적으로 변했다.
“잘 생각해보니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대충 찍었던 기억이 있네요. 방금 제 생각이 확실할 거예요.”
하지만 아델은 빈틈없는 대처를 하며 완벽 방어를 보여줬다. 내 말들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심증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그녀는 정곡을 향해 바늘을 더욱 내질렀다.
“그럼 보여줬던 대련도 대충해서 나온 건가요?”
언제부터 의심한 걸까. 처음? 아니면 중간? 크게 눈에 띄는 짓은···. 아델은 과거 기억을 되새기며 생각을 말았다.
이곳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짬에서 나온 아델의 움직임은 확실히 의심을 살만했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온 안내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는 행동을 그리 많이 했으니 눈에 띄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어색한 기류가 점차 흐를 때.
“아델!”
멜이 멀리서 아델을 발견하고는 기쁜 듯 달려왔다.
안내원은 멜을 보고는 자연스레 옆길로 빠지며 작은 한마디를 남겼다.
“밤길 조심하세요. 리월 학생이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 진심입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어두운 곳은 돌아다닐 생각이 없거든요.”
안내원은 사라졌다.
“저 여자는?”
“글쎄. 그것보다 좋은 타이밍에 잘 왔어 멜.”
“어?”
아델은 잊으라는 듯 화제를 돌렸다.
“시험 잘 봤어?”
“그게···.”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곧바로 답했다.
“쉬웠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 거다. 멜한테는 너무 쉬웠겠지.
멜이 질 리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너무 쉽다는 소리를 들으니 약간 김이 빠진 아델이었다.
“잘 봐서 다행이네.”
아델이 길을 찾고 멜은 아델을 옆에서 따라가며 또 한 번 레지당스로 향하는 텔레포트를 타 원래 있던 입학식장 뒤뜰로 돌아왔다.
“기숙사로 돌아갈까?”
“그래 피곤하다~!”
멜은 기지개를 켜며 하품했다.
“그래.”
아델은 길을 걸으며 은연중 사라지지 않은 불안함을 느꼈다.
네오 리차드를 그리 신명 나게 팼으니 불안한 것도 당연했다.
리월이든 레지당스든 아니면 리차드 본인이든 날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가만둘 리 없다.
놈들의 보복을 준비해서라도 뭔가 압도적인 무언가가 필요한 아델이다.
예를 들면 살기라던가.
아니면 놈들의 뼈 아픈 과거라던가.
그런 확실한 방법이 없었던 아델이 선택한 방법은.
“아델 어디가?”
“먼저 가 있어 까먹고 잊은 일이 있어서. 금방 들어갈게.”
“음··· 알았어. 먼저 가 있을게.”
학생 주제에 나는 뭐라 변명한 거냐. 아델은 방금 망언을 잊으며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시험이 끝난 직후 그녀가 가장 먼저 갈 곳은 당연히.
“하압!”
연무장이었다.
아델은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조용한 주위를 확인한 이후 연무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느 미친 인간이 입학시험 끝난 직후 훈련하기 위해 검을 잡을까.
-후웅! 후웅!
그 미친 인간이 엘리나다. 그래서 그녀가 강한 것이고.
엘리나는 곧장 아델의 기척을 느끼며 당황한 듯 뒤돌았다.
“너, 너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불안함!
“안녕 엘리나 소원 빌러 왔어.”
아델은 태연하게 웃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아···.”
엘리나는 검 휘두를 맛이 뚝 떨어져 검을 바닥에 버렸다.
* * *
“······.”
“일어나라···.”
“······.”
“일어나지 않는군···.”
리차드는 어두 컴컴한 방안에 누워있었다.
한 남자가 손가락을 팅겼고 그러자.
리차드는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끄으··· 머리야··· 여긴···?”
그의 앞에는 옅은 실루엣으로 몸의 실선만 보이는 5명의 교수가 있었다.
각각 레지당스, 리월, 펜니르, 크로노스, 하프켄에서 교수 역할을 하는 높은 자들이었다.
리차드는 유일하게 리월 교수인 펜슬롯만 보였으며 펜슬롯만 알고 있었다.
금발에 옅은 인상을 가진 그는 뜬 눈인지 안 뜬 눈인지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펜슬롯···님.”
리차드는 주위를 둘러봤다. 온통 어두운 이곳.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있나.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리차드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에 대한 처분은 펜슬롯 당신이 정해주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바쁜 사람입니다.”
펜니르의 프리안스 교수가 손목을 툭툭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리차드는 방금 말을 매개체로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 그리고 보기 좋게 당하며 기절했다는 것.
“저도 제대로 보지 못한 입장으로 정확한 판결 할 수 없겠네요. 여기에 적혀 있는 진술서도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래서야 저는 제대로 된 판결을 할 수 있겠나요?”
펜슬롯은 들고 있는 종이가 단순 종이쪼가리라며 흔들었고 리차드에게 빠져나갈 기회를 줬다.
펜슬롯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피해자한테서 진술서를 받아 온 후에 제대로 된 판결을······.”
그때.
“그건 안 됩니다!”
리차드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결국 내질러 버렸다.
“······.”
입을 다문 펜슬롯.
울리는 정적.
펜슬롯은 분명 아델을 압박하여 거짓 진술서를 받아낼 계획이었다. 특별한 별도의 보상까지 합세하여 입막음까지 완벽하게.
하지만 리차드는 자신이 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더욱 두려웠다. 아직 이들은 이 사실을 모르니 말이다.
나중 가서야 모르지만, 아델이 본인 입으로 말하게 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분명 그놈이라면 거짓 진술 따위 해줄 생각도 없고 입막음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내 빈틈을 파고들어 완벽하게 죽이려 할 것이다.
그런 놈이라는 걸 처음 만나자 마자 단번에 파악한 리차드기에 막아야 했다.
“······리차드 자네에게 발원권을 준 적이 없다만.”
렌슬롯의 눈동자가 선명해지며 섬뜩한 푸른색을 띄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있는 종이를 테이블에 살포시 내려놓으며 다가갔다.
“여기까지입니다. 사건에 대한 판결은 잠깐 미뤄두도록 하죠.”
“동의합니다.”
“······.”
“······.”
“······.”
부재중인 나머지 3명의 교수.
-또각또각
섬뜩한 구두 소리가 울리며 동시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검은 공간에 놓인 리차드는 세상과 단절된 공간임을 깨달았다.
모든 교수가 사라졌다. 지금 상황을 중재한 유일한 인물들이 시야 속에서 사라짐에 따라 리차드는 압도적인 공포감을 느끼며 엉덩이를 찧고 털썩 주저앉았다.
“아··· 아··· 아···.”
-또각!
감각이 예민해진 리차드의 고통이 빠르게 울렸다.
“리차드 너에게 실망했네. 자네가 리월의 깔끔한 길에 크나큰 오점을 남겼어···.”
“죄, 죄송합니다···.”
“······나는 자네를 다그칠 생각이 없네.”
“네··· 네···.”
펜슬롯은 고개를 낮춰 씨익 웃었다.
“레지당스 놈들인가?”
“마, 맞습니다. 레지당스가 확실합니다···!”
펜슬롯은 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쥐며 들어 올렸다.
그의 창백한 푸른 눈동자가 리차드의 눈동자에 비췄다.
압도적인 공포와 강함이 리차드의 내면에 간접적으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것은 반드시 되찾는 것이 리월의 방식일세. 나는 자네가 이 사건을 스스로의 힘으로 수습할 수 있을 거라 믿네.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그 멍청한 두뇌로도 알 거야. 전부 입단속 시켜.”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주위 어두운 시야가 걷어지고 어딘지 모를 기숙사 방안에서 다시 한번 깨어났다.
“흐윽··· 젠장.”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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