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조회 : 805 추천 : 0 글자수 : 5,286 자 2022-09-27
“안녕 엘리나 소원 빌러 왔어.”
“아······.”
엘리나는 썩은 표정으로 검을 떨구듯 손에서 놨다.
아델이 태연하게 그 검을 주우며 친절히 통 안에 넣어줬다. 그러며 말을 이었다.
“엘리나 나랑 친구가 되는 거 어때?”
친구.
조금 더 파고들자면 평민과 친구.
엘리나의 눈동자에는 거부감이 담겼다. 하지만 묘한 호기심도 있었다.
고작 소원권으로 빈다는 것이 친구라는 것에서 말이다.
하지만 곧 의심스러워졌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심장 소리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짜인 시나리오 같았다.
저번 대련 때도 그리 느꼈으니. 그랬기에 엘리나는 거절했다.
저놈과 엮여서 좋은 것이 있을까.
엘리나는 평민의 팀에서 적당히 살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강해지기 위해 온 것이다.
평민 놈의 입맛대로 놀아나는 꼴은 사양이다. 평민과 친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싫어.”
아델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소원인데도? 귀족들은 명예를 중요시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깟 소원 안 들어주면 그만이야. 아아~ 안 들린다~.”
엘리나는 막무가내로 귀를 틀어막았다. 기품 없다.
그 모습을 보고는 아델이 눈빛을 한층 올렸다.
“내가 너무 풀어서 말했나 보네. 정정할 게.”
엘리나는 양손으로 틀어막은 귀에서 조용히 손을 뗐다.
“뭔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아델은 곧바로 대답했다.
“파티.”
파티라는 두 글자에 당황한 엘리나.
“파티···? 잠깐!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 일일이 반응하지 말고.”
엘리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평민과 다른 압도적인 정보력이 귀족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
아델이 알고 있다는 부분에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아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혹시 아는가. 평민인 척하는 질 나쁜 귀족일지.
“너 혹시···.”
“귀족 이냐고?”
아델은 곧장 입고 있는 셔츠를 늘려 목에 있는 실사의 각인을 보여줬다.
보육원에서 생활했다는 증거.
그걸 본 엘리나는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에 아델의 표정을 확인했지만, 각인을 보여주기 전과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엘리나 내 친구가 되어준다면 옆에서 강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게.”
엘리나는 한층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정의 의미가 다소 함축된 삐뚤한 자세로 팔을 꼬았다.
“네가 가족이 없다는 건 알겠어. 평민인 것도 알겠고. 그래서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귀족인 내가 너랑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줄 알고. 평민과 귀족은 물과 기름이야.”
“그러니 그런 소리 안 당하도록 잘할 거야. 네가 이 파티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줄게.”
아델의 말은 진심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풍신류를 알려준다던지.
엘리나는 아델을 노려봤다.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이 거짓말하는지 아니면 떨고 있는지 불안해하는지 기뻐하거나 행복해하는지.
아델은 지금 확신하고 있었다. 가능하다는 확신.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엘리나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는 지금도 충분히 강해. 니가 뭘 더 어떻게 어떤 식으로 강해지게 해줄 수 있는데.”
아델은 손바닥을 보인 채 내밀며 묘수를 던졌다.
“네 소원 3가지를 이뤄줄게.”
엘리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막말이라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하면, 내가 황족이 되게 만들어 달라고 하면. 불가능한 소원을 니가 들어준다는 보장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 니가 소원으로 말하지 않겠지 어차피 안 들어진다는 걸 아니까.”
“순 엉터리네.”
-씨익
“그럼에도 나는 네가 원하는 소원을 반드시 이뤄줄 거야. 정확히는 진심을 다해 노력할 거야.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거든.”
너무 태연한 표정이 의심스럽긴 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소원이고 그런 종류의 계약이니까.
“······.”
엘리나는 아델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확신에 찬 똘망한 생기가 전부였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저놈은 여기 흔해 빠진 평민과 같지 않다는 거다. 뭐든지 가능하다는 확신에 찬 눈빛.
놈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 분위기, 행동 하나하나가 설명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 같다.
“이름이 뭐야.”
그러니 엘리나는 저놈을 조금만 믿어보기로 했다.
“아델이야. 편하게 아델이라고 불러.”
“네 팀에 들어갈게. 아까 한 말들 절대로 잊지 마. 그리고 착각도 하지 마 나는 네 말에 절대적이지 않으니까.”
“그럼 당연하지 친구야.”
엘리나는 썩소를 보였다.
“친구라···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네.”
“아쉽게 됐네. 앞으로 계속 들을 텐데.”
* * *
아델은 돌아갔고 하늘은 붉은색 노을을 칠해갔다.
6시에 임박하는 시간대.
엘리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검을 통 안에 넣어버렸다.
엘리나의 훈련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을 기다린 누군가가 엘리나를 찾아왔다.
“엘리나 레드샤론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나요?”
갈색 머리를 한 그는 베민니드 러셀이라는 귀족이었다.
이전 아델에게 털린 전적이 있는, 그리고 멜을 괴롭힌 전적이 있는 그 귀족이다.
엘리나는 평민인 누구와는 자신의 훈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 모습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역시 평민인 누구와는 다르네.
“아주 잠깐이라면…요.”
순간 반말이 나왔지만 잘 무마했다.
“네 감사합니다..”
“말해봐요.”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베민니드 러셀입니다.”
베민니드의 얼굴은 온화했다.
엘리나의 얼굴에는 직설적인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베민니드는 예리했다.
“그런데 혹시 선수를 빼앗겼을까요?”
“아니 아직.”
아니라 말하는 엘리나. 아직 파티가 없다는 말에 베민니드의 얼굴에는 곧장 화색이 돋았다.
“엘리나 레드샤론 같은 좋은 분과 함께할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파티에 들어와 주세요.”
팀이다. 이미 아델의 팀으로 들어간다고 말한 엘리나. 분명 거절하는 것이 옳았지만 엘리나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귀족이고 그도 귀족이다. 아델보다 100배는 착하고 100배는 자신과 잘 맞을 파티라 확신했으니.
평민의 밑에서 구를 바에는 귀족의 밑에서 구르는 것이 자신의 위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수상쩍은 평민에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자랐을 아델보다 귀족이라는 신분인 그가 지금 이쪽이 더 끌렸기에 지금 엘리나의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하였다.
이전 아델과 대화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표정이다.
순진무구하고 호기심 많은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거절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좋아요.”
그 말을 들은 베민니드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그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아직 저희 파티가 어떤지도 제대로···.”
“걱정 마세요. 당신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저, 정말 감사드립니다.”
베민니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길로만 보자면 분명 좋은 선택이지만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음속 남아있는 암금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양다리를 걸친 엘리나의 선택은 알 수 없었으니.
아델은 저 멀리 보이는 기숙사 건물 옥상에서 확대 마법으로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으며 감미로운 미소를 보였다.
“결국 이러네….”
엘리나다. 무려 레드샤론 가문의 직계 혈통인 것은 물론 외동딸이다.
가문의 수고와 모든 노력을 혼자 독차지한 말 그대로 값비싼 보석.
귀족들이 엘리나를 그냥 내버려 둘리 없다.
그랬기에 아델도 그녀를 100%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파티로 들어오는 것조차 한 번에 성공한다는 자신이 없었다.
아델이 가지고 있는 무기라 함은 저번 대련에서 이긴 소원권 단 하나뿐이다.
그마저도 불투명한 소원권.
소원이라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들어가려 했지만 역시 아델은 그녀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평민, 고아의 부정적인 인식은 지우기 어렵다는 소리겠지.
인식을 비틀어야 했다.
베민니드와 해어진 엘리나를 보고는 마법을 풀며 지붕에서 뛰어 내렸다.
어차피 처음부터 안되는 건 알고 있었다. 처음에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인생이 그리 쉽다면 지금, 이 고생을 하지 않았겠지.
그렇기에 인생의 미학은 자기 끝대로 되지 않는 것에 있다.
그리고 안된다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델의 생각이다.
안된다면 부시자. 그렇다면 정면 승부다.
자신의 기숙사 방향으로 걸어가는 엘리나의 앞에 선 아델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엘리나였다.
“분명 아까 돌아갔는데 왜 다시 나타났습니까. 아델 단장.”
엘리나도 묘하게 지금 상황이 흥분되나 보다. 질 나쁘게 날 골먹이려 하고 있었다.
“그놈 파티로 들어갈 거야? 그 자식 생각보다 진짜 나쁜 놈이다? 내 친구를 이유 없이 죽어라 패더라고.”
그 말에 엘리나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입술을 쭈뼛 내밀은 엘리나는 이내 말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당장 너보다는 신뢰가 갈 것 같은데? 이유야 뭐.”
“귀족?”
“귀족.”
아델이 먼저 말했다.
“잘 알고 있네. 니가 평민이라서 그래. 다른 이유다 필요 없어. 너는 평민이야.”
“음··· 그럼 나한테 졌으니까. 너는 평민보다 못한 귀족인가?”
엘리나는 이빨을 아득바득 갈며 말했다.
“아델 내 첫 번째 소원을 지금 빌게.”
아델은 자리에서 멈춰 섰다.
“뭔데?”
“파티 정보를 알고 있다면 분명 한 달 뒤에 파티 등급 심사가 있는 것도 알고 있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묻지 않을게.”
모를 리가 있나.
아델은 어깨를 으쓱댔다.
“아니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다.”
“······네 파티로 다시 만나는 날 증명해봐. 우리 파티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엘리나에게 악의적인 의도는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이것은 일종의 테스트이고 사적인 감정이 없는 비즈니스 같은 것이니 말이다.
오로지 강해지는 것 하나만 노리며 이곳에 온 그녀는 말 그대로 평민이 만든 파티에 있을 이유가 없다.
다른 귀족 파티에 비해서 경쟁력도 떨어지고 좋은 취급도 받기 어려우니 귀족인 그녀에게는 당연했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평민과 귀족처럼.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게는 강한 장기 말이 필요했고 그중 적합한 임자가 엘리나니 나도 엘리나를 이용할 목적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녀 또한 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며 뒤통수칠 생각부터 하니 서로 윈윈인 거다.
“나중에 지고 울고불고 말바꾸기 없어 엘리나.”
“당연하지. 레드샬론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게.”
아델은 그곳을 벗어나며 기숙사로 향했다.
목표가 생겼다.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강한 파티를 만들 것이다.
* * *
한 여자가 다크써클 가득한 눈으로 한 투영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마력 투사기에 보이는 모습은 아델과 리차드의 대련이었다.
“흐으으···.”
몇 번을 봐도 진전이 없는 승급 심사 등급 평가였다.
리차드는 신분이 공작이니 B급을 줘서 대충 넘긴다고 쳐도···.
“저놈은 도대체가 모르겠네.”
A등급 그리고 B등급을 오가는 실력은 외줄 타기의 장인이었다.
어떨 때는 검술 분야에서 통달한 장인 같기도 했고 어떨 때는 조금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느리고 또 들여다보면 신체적인 결함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다.
억지로 오라를 끌어 올려서 속도를 높였지만, 오라를 뺀 실속은 터무니없을 만큼 약했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A등급이냐. B등급이냐.
리차드는 알고 있는 얼굴이기에 당연히 리차드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대련을 전부 확인한 여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리차드는 오라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졌다.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분명 입학시험인데.
어찌 상황이 이렇게 되는가.
아무리 그가 졌다고 해도 B등급은 줘야 했다.
당장 생계를 위해서도 해고당할 일은 없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지만 아델 이놈에게는 도대체 무슨 등급을 줘야 하는가.
골머리를 앓고 있던 그녀는 머리를 박박 긁다 천천히 A등급 인장을 집었다,
“분명 리차드가 진심을 다해도 못 이기겠지.”
스스로 확신한 여자는 인장을 박았다.
등급을 매긴 뒤 아델의 인적을 확인했다.
-촤락
평민.
그녀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던지고 새로운 종이를 뽑아다가 B등급 인장을 세게 박았다.
-탁!
“아쉽네. 평민이라서.”
“아······.”
엘리나는 썩은 표정으로 검을 떨구듯 손에서 놨다.
아델이 태연하게 그 검을 주우며 친절히 통 안에 넣어줬다. 그러며 말을 이었다.
“엘리나 나랑 친구가 되는 거 어때?”
친구.
조금 더 파고들자면 평민과 친구.
엘리나의 눈동자에는 거부감이 담겼다. 하지만 묘한 호기심도 있었다.
고작 소원권으로 빈다는 것이 친구라는 것에서 말이다.
하지만 곧 의심스러워졌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심장 소리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짜인 시나리오 같았다.
저번 대련 때도 그리 느꼈으니. 그랬기에 엘리나는 거절했다.
저놈과 엮여서 좋은 것이 있을까.
엘리나는 평민의 팀에서 적당히 살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강해지기 위해 온 것이다.
평민 놈의 입맛대로 놀아나는 꼴은 사양이다. 평민과 친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싫어.”
아델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소원인데도? 귀족들은 명예를 중요시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깟 소원 안 들어주면 그만이야. 아아~ 안 들린다~.”
엘리나는 막무가내로 귀를 틀어막았다. 기품 없다.
그 모습을 보고는 아델이 눈빛을 한층 올렸다.
“내가 너무 풀어서 말했나 보네. 정정할 게.”
엘리나는 양손으로 틀어막은 귀에서 조용히 손을 뗐다.
“뭔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아델은 곧바로 대답했다.
“파티.”
파티라는 두 글자에 당황한 엘리나.
“파티···? 잠깐!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 일일이 반응하지 말고.”
엘리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평민과 다른 압도적인 정보력이 귀족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
아델이 알고 있다는 부분에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아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혹시 아는가. 평민인 척하는 질 나쁜 귀족일지.
“너 혹시···.”
“귀족 이냐고?”
아델은 곧장 입고 있는 셔츠를 늘려 목에 있는 실사의 각인을 보여줬다.
보육원에서 생활했다는 증거.
그걸 본 엘리나는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에 아델의 표정을 확인했지만, 각인을 보여주기 전과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엘리나 내 친구가 되어준다면 옆에서 강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게.”
엘리나는 한층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정의 의미가 다소 함축된 삐뚤한 자세로 팔을 꼬았다.
“네가 가족이 없다는 건 알겠어. 평민인 것도 알겠고. 그래서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귀족인 내가 너랑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줄 알고. 평민과 귀족은 물과 기름이야.”
“그러니 그런 소리 안 당하도록 잘할 거야. 네가 이 파티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줄게.”
아델의 말은 진심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풍신류를 알려준다던지.
엘리나는 아델을 노려봤다.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이 거짓말하는지 아니면 떨고 있는지 불안해하는지 기뻐하거나 행복해하는지.
아델은 지금 확신하고 있었다. 가능하다는 확신.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엘리나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는 지금도 충분히 강해. 니가 뭘 더 어떻게 어떤 식으로 강해지게 해줄 수 있는데.”
아델은 손바닥을 보인 채 내밀며 묘수를 던졌다.
“네 소원 3가지를 이뤄줄게.”
엘리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막말이라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하면, 내가 황족이 되게 만들어 달라고 하면. 불가능한 소원을 니가 들어준다는 보장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 니가 소원으로 말하지 않겠지 어차피 안 들어진다는 걸 아니까.”
“순 엉터리네.”
-씨익
“그럼에도 나는 네가 원하는 소원을 반드시 이뤄줄 거야. 정확히는 진심을 다해 노력할 거야.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거든.”
너무 태연한 표정이 의심스럽긴 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소원이고 그런 종류의 계약이니까.
“······.”
엘리나는 아델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확신에 찬 똘망한 생기가 전부였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저놈은 여기 흔해 빠진 평민과 같지 않다는 거다. 뭐든지 가능하다는 확신에 찬 눈빛.
놈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 분위기, 행동 하나하나가 설명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 같다.
“이름이 뭐야.”
그러니 엘리나는 저놈을 조금만 믿어보기로 했다.
“아델이야. 편하게 아델이라고 불러.”
“네 팀에 들어갈게. 아까 한 말들 절대로 잊지 마. 그리고 착각도 하지 마 나는 네 말에 절대적이지 않으니까.”
“그럼 당연하지 친구야.”
엘리나는 썩소를 보였다.
“친구라···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네.”
“아쉽게 됐네. 앞으로 계속 들을 텐데.”
* * *
아델은 돌아갔고 하늘은 붉은색 노을을 칠해갔다.
6시에 임박하는 시간대.
엘리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검을 통 안에 넣어버렸다.
엘리나의 훈련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을 기다린 누군가가 엘리나를 찾아왔다.
“엘리나 레드샤론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나요?”
갈색 머리를 한 그는 베민니드 러셀이라는 귀족이었다.
이전 아델에게 털린 전적이 있는, 그리고 멜을 괴롭힌 전적이 있는 그 귀족이다.
엘리나는 평민인 누구와는 자신의 훈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 모습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역시 평민인 누구와는 다르네.
“아주 잠깐이라면…요.”
순간 반말이 나왔지만 잘 무마했다.
“네 감사합니다..”
“말해봐요.”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베민니드 러셀입니다.”
베민니드의 얼굴은 온화했다.
엘리나의 얼굴에는 직설적인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베민니드는 예리했다.
“그런데 혹시 선수를 빼앗겼을까요?”
“아니 아직.”
아니라 말하는 엘리나. 아직 파티가 없다는 말에 베민니드의 얼굴에는 곧장 화색이 돋았다.
“엘리나 레드샤론 같은 좋은 분과 함께할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파티에 들어와 주세요.”
팀이다. 이미 아델의 팀으로 들어간다고 말한 엘리나. 분명 거절하는 것이 옳았지만 엘리나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귀족이고 그도 귀족이다. 아델보다 100배는 착하고 100배는 자신과 잘 맞을 파티라 확신했으니.
평민의 밑에서 구를 바에는 귀족의 밑에서 구르는 것이 자신의 위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수상쩍은 평민에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자랐을 아델보다 귀족이라는 신분인 그가 지금 이쪽이 더 끌렸기에 지금 엘리나의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하였다.
이전 아델과 대화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표정이다.
순진무구하고 호기심 많은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거절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좋아요.”
그 말을 들은 베민니드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그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아직 저희 파티가 어떤지도 제대로···.”
“걱정 마세요. 당신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저, 정말 감사드립니다.”
베민니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길로만 보자면 분명 좋은 선택이지만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음속 남아있는 암금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양다리를 걸친 엘리나의 선택은 알 수 없었으니.
아델은 저 멀리 보이는 기숙사 건물 옥상에서 확대 마법으로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으며 감미로운 미소를 보였다.
“결국 이러네….”
엘리나다. 무려 레드샤론 가문의 직계 혈통인 것은 물론 외동딸이다.
가문의 수고와 모든 노력을 혼자 독차지한 말 그대로 값비싼 보석.
귀족들이 엘리나를 그냥 내버려 둘리 없다.
그랬기에 아델도 그녀를 100%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파티로 들어오는 것조차 한 번에 성공한다는 자신이 없었다.
아델이 가지고 있는 무기라 함은 저번 대련에서 이긴 소원권 단 하나뿐이다.
그마저도 불투명한 소원권.
소원이라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들어가려 했지만 역시 아델은 그녀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평민, 고아의 부정적인 인식은 지우기 어렵다는 소리겠지.
인식을 비틀어야 했다.
베민니드와 해어진 엘리나를 보고는 마법을 풀며 지붕에서 뛰어 내렸다.
어차피 처음부터 안되는 건 알고 있었다. 처음에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인생이 그리 쉽다면 지금, 이 고생을 하지 않았겠지.
그렇기에 인생의 미학은 자기 끝대로 되지 않는 것에 있다.
그리고 안된다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델의 생각이다.
안된다면 부시자. 그렇다면 정면 승부다.
자신의 기숙사 방향으로 걸어가는 엘리나의 앞에 선 아델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엘리나였다.
“분명 아까 돌아갔는데 왜 다시 나타났습니까. 아델 단장.”
엘리나도 묘하게 지금 상황이 흥분되나 보다. 질 나쁘게 날 골먹이려 하고 있었다.
“그놈 파티로 들어갈 거야? 그 자식 생각보다 진짜 나쁜 놈이다? 내 친구를 이유 없이 죽어라 패더라고.”
그 말에 엘리나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입술을 쭈뼛 내밀은 엘리나는 이내 말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당장 너보다는 신뢰가 갈 것 같은데? 이유야 뭐.”
“귀족?”
“귀족.”
아델이 먼저 말했다.
“잘 알고 있네. 니가 평민이라서 그래. 다른 이유다 필요 없어. 너는 평민이야.”
“음··· 그럼 나한테 졌으니까. 너는 평민보다 못한 귀족인가?”
엘리나는 이빨을 아득바득 갈며 말했다.
“아델 내 첫 번째 소원을 지금 빌게.”
아델은 자리에서 멈춰 섰다.
“뭔데?”
“파티 정보를 알고 있다면 분명 한 달 뒤에 파티 등급 심사가 있는 것도 알고 있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묻지 않을게.”
모를 리가 있나.
아델은 어깨를 으쓱댔다.
“아니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다.”
“······네 파티로 다시 만나는 날 증명해봐. 우리 파티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엘리나에게 악의적인 의도는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이것은 일종의 테스트이고 사적인 감정이 없는 비즈니스 같은 것이니 말이다.
오로지 강해지는 것 하나만 노리며 이곳에 온 그녀는 말 그대로 평민이 만든 파티에 있을 이유가 없다.
다른 귀족 파티에 비해서 경쟁력도 떨어지고 좋은 취급도 받기 어려우니 귀족인 그녀에게는 당연했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평민과 귀족처럼.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게는 강한 장기 말이 필요했고 그중 적합한 임자가 엘리나니 나도 엘리나를 이용할 목적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녀 또한 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며 뒤통수칠 생각부터 하니 서로 윈윈인 거다.
“나중에 지고 울고불고 말바꾸기 없어 엘리나.”
“당연하지. 레드샬론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게.”
아델은 그곳을 벗어나며 기숙사로 향했다.
목표가 생겼다.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강한 파티를 만들 것이다.
* * *
한 여자가 다크써클 가득한 눈으로 한 투영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마력 투사기에 보이는 모습은 아델과 리차드의 대련이었다.
“흐으으···.”
몇 번을 봐도 진전이 없는 승급 심사 등급 평가였다.
리차드는 신분이 공작이니 B급을 줘서 대충 넘긴다고 쳐도···.
“저놈은 도대체가 모르겠네.”
A등급 그리고 B등급을 오가는 실력은 외줄 타기의 장인이었다.
어떨 때는 검술 분야에서 통달한 장인 같기도 했고 어떨 때는 조금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느리고 또 들여다보면 신체적인 결함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다.
억지로 오라를 끌어 올려서 속도를 높였지만, 오라를 뺀 실속은 터무니없을 만큼 약했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A등급이냐. B등급이냐.
리차드는 알고 있는 얼굴이기에 당연히 리차드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대련을 전부 확인한 여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리차드는 오라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졌다.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분명 입학시험인데.
어찌 상황이 이렇게 되는가.
아무리 그가 졌다고 해도 B등급은 줘야 했다.
당장 생계를 위해서도 해고당할 일은 없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지만 아델 이놈에게는 도대체 무슨 등급을 줘야 하는가.
골머리를 앓고 있던 그녀는 머리를 박박 긁다 천천히 A등급 인장을 집었다,
“분명 리차드가 진심을 다해도 못 이기겠지.”
스스로 확신한 여자는 인장을 박았다.
등급을 매긴 뒤 아델의 인적을 확인했다.
-촤락
평민.
그녀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던지고 새로운 종이를 뽑아다가 B등급 인장을 세게 박았다.
-탁!
“아쉽네. 평민이라서.”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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