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섯째 아들
조회 : 1,069 추천 : 1 글자수 : 4,744 자 2022-09-11
깡!!
루카의 머리가 경쾌한 소리를 냈다.
“사랑하는 동생아, 다리가 무너졌잖니?”
루카는 머리를 움켜 잡았다.
“아 거참, 말로 하지 왜 꼭 때려요!!”
루카는 하이폴 가문의 다섯째 아들이다.
루카는 형이 3명 있었는데 하나 같이
교육에 열심이었다.
또 폭력적이었다.
열흘에 한 번 쯤 있는 검술 교육은
반드시 실전 같이 ‘치고 받는’ 훈련이었다.
여기서 루카는 ‘치고’를 담당하고 싶은데
언제나 ‘받는’ 입장이었다.
“사랑하는 동생아? 언제나 우리는 폭력에
노출 되는 사람이란다?
잘 못하면 맞는 걸 항상 진리처럼 여기렴.
물론 살다 보면 어떻게 해야 모를 때가 있단다?”
하이폴 가문은 무가이다.
그리고 유일한 파동검수들이 육성되는 곳이다.
금과 같은 가르침을 내리며 제일 큰 형이
머리 높이 목검을 들었다.
“어어? 또 때리려 한다!”
큰 형이 입을 연다.
“왜 맞는지 알겠니?”
루카 하이폴은 망설였다. 틀리면 또 맞을 것이다.
애초에 모르겠다.
“모르면 맞아야지! 정답은 없단다! ”
‘왜 물어보는 거야…’
루카의 몸이 잠시 흔들거리더니 다람쥐 같이
뒤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귀신 같은 발걸음으로 따라붙은
큰 형은 소름끼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리! 허리! 어깨! 팔을 들어? 옆구리!
하체가 무너진다! 하체가!!
기초가 약한 파동 검수는 우리 가문에 필요없다!”
외침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신체 부위가 터져 나간다.
오늘은 피가 나고 내일은 멍이 들것이다.
루카의 하체가 무너져 넘어졌다.
그리곤 말 그대로 널부러졌다.
“어어? 발가락! 발가락! 발가락! 발가락은 니꺼아냐?”
“으아아아아!!!”
목검이 발가락에 떨어질 때마다 루카는 발가락을
벌려서 피했다.
“이 자식이 하도 맞으니까 이제 서커스를 하네?
이게 사람이야 개구리야?”
큰 형은 그런 루카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다섯째는 신동이야…이미 눈으로 보는 것보다
파동으로 보는 게 더 많군…’
큰 형과 다른 형들의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이 곳은 아버지의 성이고 그 내측에 있는 훈련장이다.
그런데 루카의 고문장을 겸하고 있는 듯이 보이게 생겼다.
공간의 용도가 조금 변질되고 있었지만
큰 형의 사랑은 끝이 없다.
“이게 사랑의 매란다. 사랑하는 동생아”
쐐액!
사랑의 매에서 이런 소리가 나던가?
머리로 향하는 목검에서 칼날 바람 소리가 난다.
“큰 형 날 사랑하지마. 우리 이제 헤어져! “
그 광경을 테라스에서 보고 있던 셋째 형은
큰 형의 지극한 사랑을 여러 차례 체감했기
때문에 다섯째 동생을 동정했다.
하지만 교육은 못 참지!
셋째 형도 몸을 날려 교육에 동참했다.
진검을 들고서 말이다.
“받아라 다섯째야!”
루카는 울상이 되었지만 아무도 표정 따위 봐주지 않았다.
하이폴 가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그의 아버지가 매일 같이 하던 말이다.
그 살아 남는 힘은 이런 심각하게 위험한
상황에서만 만들어 지지 않겠는가.
찌이이익.
오십 보 거리. 성채 위의 주방 창문 틈세에서 였다.
활 시위의 진동이 느껴진다.
파동검수들은 진동과 파동에 민감하게 훈련 받는다.
이백 보의 거리 밖에서도 틀림없이 느꼈을 것이다.
활 시위의 주인은 아마 둘째형이리라.
“활은 안된다고! 활은! 나 열세살이야!!”
루카는 넘어진 몸을 급히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화살이 튕겨져 나온다.
“아! 눈 맞았어! 눈!”
루카의 외침에 큰형과 셋째 형이 놀라 동작을 멈추었다.
‘ 안 맞았을 텐데?’
의심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루카의 얼굴을
살피지 않을 수도 없었다.
찰나의 틈 사이에 루카의 얼굴이 커져간다.
“박치기 맛이나 봐라! 썩을 셋째 형!”
빠악!
셋째 형의 콧대와 루카의 이마가 극적으로 만난다.
“아아아 코피코피나!!”
셋째형이 루카에게 맞아서 코피를 쏟자 큰 형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셋째의 실력이 무뎌졌구나...
그리고 조금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그 동안 루카 녀석에게 신경쓰느라 셋째에게 소홀했군.
못난 형이 되서 미안하다.
모든 동생의 실력을 사랑하리라!
이것은 후회의 일격이다!!”
코피를 지혈하려던 셋째의 얼굴에 살기가 쏟아진다.
이윽고 큰 형의 목검이 겹쳐졌다.
“아니!! 큰 형! 오늘은 루카 녀석 몽둥이 찜질,
아니 훈련 날이잖아!!”
루카는 기회를 틈타 셋째 형에게 화로를 던졌다.
셋째 형의 시야가 연기에 가려지고 하체가 흔들릴때였다.
그때 순간적으로 루카가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낮고 동시에 흔들리며 날카로운 목검의 움직임.
독사 같은 일격.
“푸억!”
셋째 형이 일격에 바닥에 넘어지자 루카는
혼신을 다해 형을 밟았다.
부엌에서 활을 날렸던 둘째 형도 어느새 나타나
셋째 형을 밟았다.
“셋째형 사랑하는 거 알지? 일어나지마? 죽는다 진짜?
형 사랑해? 이것도 다 추억이 될거야!”
무슨 기억이든 추억이 될거라 생각하는 열세살 루카는 웃고 있었다.
서로에 대해 과한 사랑이 넘치는 집이다.
조금 과격했지만 꾸밈 없는 사랑이었고,
화목한 가정이었다.
그로부터 2년후 녹색전쟁이 일어났다.
루카는 열 다섯의 나이에 참전했다.
***
녹색 전쟁으로부터 20년쯤 지났다.
루카는 돼지 세마리를 묶어 끌기 시작했다.
그는 녹색전쟁에서 세운 공적으로
아버지의 성 근처에 작고 낡은 성과 영지를 받았다.
황제로부터 직접 하사 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루카는 그저 자신의 방이 조금 넓어지고 마당이
생겼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루카는 자신의 영지 근처의 뒷산을 향해 걸어갔다.
한 소녀와 함께.
“루카 하이폴, 어디 가는거야~”
“예~ 요우바님~ 오늘은 요우바님의 수련 날 입니다~
그리고 막내 따님, 오빠를 이름으로 부르지마라”
요우바 하이폴. 아버지가 늦게 얻은 막내딸이다.
아버지는 네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첫째 부터 셋째, 넷째, 다섯째, 막내의 어머니가
각각 달랐다.
“그치만 오빠라 부르기엔 늙었자나~ 루카 하이폴~”
“안 늙었어!! 젊어! 정정해!!”
루카는 조금 정색하고 말았다.
루카 하이폴의 외모는 열일곱에 멈춰져 있지만,
벌써 그의 나이 서른 아홉이었다.
녹색 전쟁 이후에 성에 틀어박혀 파동 검술의
기초를 파고 들었다.
그리고 몇 개 안되는 가문 일을 맡아서 진행하였지만,
그 모두 검술 교관 따위의 검에 관련된 일만 하였다.
형들과 넷째 누나의 배려 덕분이었다.
또한 파동검수는 신체가 자주 파동화 되고 재결합되며
신체적으로 젊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두 가지 이유로 외모와
사회 경험은 전부 열일곱 살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서른 아홉에 맞는 깊은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스물 네 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야! 스물 네 살은!”
조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화를 낼 수 없다.
요우바 하이폴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열다섯
막내 동생이다.
“스물 네 살이면 애를 낳아서 그 애가 또 애를 낳겠다 히히”
“닥쳐! 나는 정정해!”
요우바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목검을
지팡이처럼 집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루카를 가르키고는
할아버지처럼 등을 두드리며 걸었다.
“으이구… 막내화상님…”
루카가 목검을 높이들자
“히이익!”
요우바는 화들짝 멀리 도망가 버렸다.
요우바는 지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루카 오빠는 가문에 몇 안되는
진심으로 때리는 사람이었다.
요우바는 루카로부터 조금 거리를
유지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요우바의 어린시절에는 첫째, 둘째, 셋째 트리오 형들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루카처럼 훈련시킨게 아니라
그저 귀여운 수준으로 검을 알려주었다.
루카는 왠지 모르게 그것이 불만이었다.
분명 루카는 왠지 몰랐다.
크흠.
‘요우바 녀석, 저러다간 고블린 한마리 못잡는 거 아냐?’
루카는 항상 걱정이었다.
몇년 전 황제의 부탁이 도착한 날 트리오
형들은 흑색 전쟁의 전선으로 파견 되었다.
틀어박혀서 검만 파고드는 루카는 날짜와
시간 감각이 매우 부족했다.
몇년 전 이더라…
루카는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잘 들어! 나는 형들과 다르게 너를 사랑으로만
키우지 않겠어!”
루카는 돼지들을 좀 더 당겨서 끌었다.
“오빠 돼지는 어디에 쓰는 거야?”
“널 닮았기 때문에 내가 이 돼지들을 혼내주려고.”
“피이~ 거짓말~”
크고 동그란 눈에 아직은 가녀린 요우바는
누가 보기에도 예쁜 열다섯 소녀였다.
루카의 외모가 열일곱 수준에서 멈춰 있었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누가 보면 루카와 요우바는
커플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루카는 오늘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왔다.
요우바를 언제까지 연약한 파동검수로 키울 순 없었다.
또 흑색전선에서 흉문이 연이어 도착하는 것도
오늘의 마음가짐에 한 몫 했다.
“파동검사 제일검수. 파동검을 사용하는 자는
언제나 가문을 대표하는 일인이 된다.”
요우바가 그 말을 받았다.
“파동검수는 무슨 일에서든지 살아 남을
힘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매일 같이 하던 말이다.
“오빠가 항상 무엇이 제일 중요하다 했지?”
요우바는 오랫동안 생각하는 척 했다.
모를 수가 없는 요우바다.
그 모습에 루카는 열 받았다.
루카가 약이 올라 한마디 하려 하는 순간에.
“기초요 기초. 내가 걸음마 할때 부터
걸음마를 칭찬하긴 커녕
파동검수들은 이렇게 무방비하게 걸으면 안된다고
오빠님이 개소리를 했잖아요…니가 사람이에요?
징그러워 기초, 기초, 기초 징그러워~~”
루카는 머쓱해져 조금 기침했다.
“그..그랬었나? 나도 그땐 참 어렸었지…”
요우바는 왼손으로 목검을 들어 루카를 겨누었다.
“오빠 나이 스물 다섯이었어요! 내가 한 살이
안되서 말하고 걸어서 신동소리 들었죠!”
갑자기 요우바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눈이 파르르 떨렸다.
“호오오옥시~스무해 넘게 가지고 있던 신동과
막내 타이틀을 동시에 뺏겨서 질투했쪄요? 우쭈쭈??”
루카가 검을 왼손으로 높게 들며 윽박질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네 이 녀석! 그땐 내가 어린아이였지 않느냐!”
“오빠 스물 다섯! 스물 다섯! 나는 한살! 한살! ”
루카는 조금 몰린 기분이 든다.
루카는 급하게 이야기를 돌릴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뒷산에 도착했다.
루카가 급하게 돼지 한 마리를 목검으로 약하게 찔렀다.
“울어라, 막내딸 닮은 꼴!!”
꽤에엑! 쾌액!
요우바는 사정 없이 우는 돼지를 보았다.
분노와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루카를 돌아보았다.
루카는 더없이 따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 일에 앞서 막내 너에게 할 말이 있단다.”
요우바가 조금 섬뜩함을 느끼며 귀를 기울였다.
“요우바 하이폴, 사랑한다.”
“오라버니 무슨 일이신지요?...
조금 엿 같은 기분이…”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루카의 뒷산에서 녹색의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숫자는 얼핏 봐서 천 마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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