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기도
조회 : 2,574 추천 : 1 글자수 : 4,344 자 2022-09-13
*이 작품에는 혐오와 차별, 그에 따른 폭력, 기타 부상과 유혈, 사망이 묘사되어있습니다. 해당 요소를 보기 힘드신 경우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철퍽.
피가 묻은 신발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불쾌하고 끈적거리는 소리를 낸다. 시체와 피로 더럽혀진 공간에 두 발로 서있는 자는 한 사람뿐. 손이 피로 적셔진 그녀는 피 웅덩이를 서슴없이 밟으며 석상 앞으로 나아갔다.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얼굴없는 여인의 형상을 한 석상.
가온교의 시초, 신에게 받은 그 힘으로 세상의 모든 전쟁을 멈춘 여인. 경애를 담아 신과 같은 뜻인 '하늘'이라 불렸던 자. 그러나 그녀는 하늘로 돌아가고 말았다. 과거는 지워지고, 이제 이 땅에는 인간들만이 남았다.
인간들은 모른다. 스스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신의 힘을 맹신하는 그 어리석음이,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잡아먹고 있다는 것을.
인간을 구원한 여인의 형상을 한 석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맞잡는다. 신전의 신을 위해 올리는 기도가 아닌, 그녀가 기억하는 소중한 이를 위한 기도.
도담을 빼고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
“당신은 분명 이런 일을 원하지 않으시겠죠.”
피로 물든 손은 익숙해져 버렸다. 너무나도 많은 목숨을 빼앗았다. 이 두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으니, 도담은 그야말로 재앙일지도 모른다. 죽은 후가 있다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겠지.
“하지만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들어주는 이 없는, 그저 자기만족뿐일 복수. 후회는 감정의 찌꺼기일 뿐이라,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으니 의미도 없다고 세뇌하듯 생각해도 자꾸만 떠오른다. 너무나도 후회하는 순간들을.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진심을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그녀가 웃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 미소를 보고 지나쳤던 것.
그날, 구하지 못한 것.
후회로 가득 찬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 같았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괴롭다. 그런데도 죽을 수 없다. 몸을 버려가면서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자신은 선택했으니까.
“……당신을 만난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제 와서 대답해봐야 누군가 들어줄까? 그녀가 듣지 않으면 의미 없는데. 그녀 없는 세상에서 말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알고 있는데도 멈추지 못한다.
“제가 후회하는 건 단지…….”
“기도하는 건가?”
기도하던 두 손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정장을 입은 무리가 신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바닥에 널린 시체와 같은 옷이다.
“정도담. 청옥 마리 살해, 그 외 368명의 마름 및 다짐지기를 살해한 혐의로 너를 이 자리에서 처형한다.”
(*마리/마름/다짐지기-가온교 내 계급 이름.)
정도담.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하급 능력자였다. 능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세상에서 가장 밑인 하급 능력자. 그러던 그녀는 1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숨겨졌던 재능이 빛을 발하여 단숨에 상급 능력자가 되었다.
눈부신 재능을 인정받아 세계를 아래에 둔 대종교, 가온교의 마리들이 그녀를 초대했고, 대신각(大神閣)으로 온 바로 그날. 돌연 7인의 마리 중 한 사람인 청옥 마리를 살해, 그런 도담을 붙잡으려던 170여 명의 마름을 몰살시키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을 체포하러 온 마름과 다짐지기들 또한 살려두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가온교의 가장 중요한 것을 훔쳐 갔다.
“네가 훔친 신의 힘을 돌려놔라.”
신의 힘. 가온교의 중앙 대신전에서 극비로 보관하고 있던 그 기적의 힘을 도담이 반절이나 훔쳐 간 것이다. 이에 따라 가온교는 그녀를 전 세계적으로 수배, 죽이지 않고 생포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죽이고 싶었으나, 어차피 신의 힘을 가진 이상 죽여도 죽지 않기 때문에 힘을 회수하고 처형시킬 필요가 있었다.
“훔쳤다고?”
도담은 그 말에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웃음을 흘렸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던가? 내가 이 힘을 훔쳤다고.”
도담의 오른쪽 손등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무언가의 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잘 보면 날개와도 같은 모양새였다.
“빼앗은 건 너희들이야.”
으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이 힘의 주인이다.”
도담의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날개는 제 짝을 잃은 건지 오른쪽 한 짝뿐이었다. 도담을 중심으로 거대한 '힘'이 몰아친다.
신이라 불리는 힘. 그 힘에 눌린 자들이 몸을 낮추자, 맨 앞에 있던 자가 소리쳤다.
“망상증이라도 걸렸나 보군. 뭘 보고만 있어? 다들 저 계집을 잡아!”
명령이 떨어지자 정장을 입은 자들이 움직였다. 복식을 보니 가온교에서 대외적인 전투를 맡은 다짐지기들 뿐.
“죽으려고 온 건가? 마름들조차 날 죽이지 못했거늘.”
도담은 가뿐하게 그들의 공격을 피했다. 어차피 이들이 자신을 잡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고 보냈을 텐데. 희생양임이 분명하기에 불쌍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살려서 보낼 생각은 없다. 도담은 그들을 봐주지 않았다.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일격으로 숨을 끊어놓는 행위를 반복하며 적을 해치워갔다.
가온교의 위대함만을 믿고 죄인을 처벌하러 온 이들이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수십의 목숨이 단숨에 사라진다. 인간의 목숨을 지우면서도 도담의 얼굴에는 후회나 죄책감 따위는 없다. 오히려 지루해하고 있었다.
“이, 이 괴물 자식이!!”
다짐지기들을 지휘하던 상관이 제 부하들이 눈앞에서 학살당하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괴물이라고?”
제게 달려들던 모든 다짐지기를 치운 도담이 그자의 얼굴을 한 손으로 쥐어 잡았다.
“모두가 나를 괴물이라고 불러도, 너희만은 나를 괴물이라 부를 자격이 없어.”
내 모든 걸 빼앗아 갔잖아. 내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죽였잖아.
“날 죽이지 못할 거였다면 감히 건들지도 말았어야지.”
차라리 나를 죽였어야지.
도담은 손안에 잡힌 목을 가볍게 꺾고서 손을 놓았다. 방금까지 살아 숨 쉬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나 가벼운 것이었던가. 언제부터 자신은 망설이지 않게 된 걸까.
‘죄책감인가?’
후회, 죄책감, 혹은 사랑.
내 모든 걸 빼앗은 자가 그랬지. 그녀를 사랑하는 거냐고.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유가 뭐든 상관없었다. 이미 그녀는 죽었고, 도담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손을 피로 물들이며 죄를 더해도, 그 때문에 이 몸이 죽어가더라도.
“난 아직 죽을 자격이 없어.”
도담은 석상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힘을 너무 많이 쓴 건지 어지러웠다. 저번까지만 해도 코를 찔렀던 피와 시체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몸을 ‘힘’을 사용해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에 인간다운 기능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몸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아……. 아직……나는…….”
도담은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그리고 그런 도담의 모습을 한 여인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도담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도담은 그녀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시간과 단절된 여인이 도담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을 상처입히는 것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는데. 조금 소심해도 모두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상냥한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곤란한 듯 웃으면서도 거절은 못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피를 묻히고 목숨을 빼앗는 일에 망설이지 않는다. 저 얼굴에서 미소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시간은 의미 없는 것인데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도담은 그녀 때문에 변했다.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그녀의 비참한 마지막을 도담이 봐버렸기 때문에. 동료들이 죽임당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한 사람마저도 죽음을 구걸해 도담이 제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
도담은 이 세상에 혼자 남고 말았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보였던 망설임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녀는 알고 있다. 도담은 이제 곧 죽는다. 그런데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바라보는 일뿐.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기에 간섭할 수도 없다. 더욱이 도담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마음도 없다.
마음은 선택을 만들고, 선택은 결과를 만들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 감정이, 마음이 부서지고 나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희망, 절망,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텅 빈 눈동자로 그녀는 계속해서 바라본다. 끝을 알기에 기대하지도 않는데 그녀는 왜 바라보고 있는가.
모든 걸 알면서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도담을 지켜본다. 남는 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야기 하나. 잃은 건 되돌릴 수 없다.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으리라. 그 끝에 남은 이야기를 담고서 걸어간다.
멈추지 않고 다시 앞으로, 시간은 다시 시작의 때로.
약속해. 나는 절대로-.
철퍽.
피가 묻은 신발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불쾌하고 끈적거리는 소리를 낸다. 시체와 피로 더럽혀진 공간에 두 발로 서있는 자는 한 사람뿐. 손이 피로 적셔진 그녀는 피 웅덩이를 서슴없이 밟으며 석상 앞으로 나아갔다.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얼굴없는 여인의 형상을 한 석상.
가온교의 시초, 신에게 받은 그 힘으로 세상의 모든 전쟁을 멈춘 여인. 경애를 담아 신과 같은 뜻인 '하늘'이라 불렸던 자. 그러나 그녀는 하늘로 돌아가고 말았다. 과거는 지워지고, 이제 이 땅에는 인간들만이 남았다.
인간들은 모른다. 스스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신의 힘을 맹신하는 그 어리석음이,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잡아먹고 있다는 것을.
인간을 구원한 여인의 형상을 한 석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맞잡는다. 신전의 신을 위해 올리는 기도가 아닌, 그녀가 기억하는 소중한 이를 위한 기도.
도담을 빼고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
“당신은 분명 이런 일을 원하지 않으시겠죠.”
피로 물든 손은 익숙해져 버렸다. 너무나도 많은 목숨을 빼앗았다. 이 두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으니, 도담은 그야말로 재앙일지도 모른다. 죽은 후가 있다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겠지.
“하지만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들어주는 이 없는, 그저 자기만족뿐일 복수. 후회는 감정의 찌꺼기일 뿐이라,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으니 의미도 없다고 세뇌하듯 생각해도 자꾸만 떠오른다. 너무나도 후회하는 순간들을.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진심을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그녀가 웃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 미소를 보고 지나쳤던 것.
그날, 구하지 못한 것.
후회로 가득 찬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 같았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괴롭다. 그런데도 죽을 수 없다. 몸을 버려가면서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자신은 선택했으니까.
“……당신을 만난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제 와서 대답해봐야 누군가 들어줄까? 그녀가 듣지 않으면 의미 없는데. 그녀 없는 세상에서 말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알고 있는데도 멈추지 못한다.
“제가 후회하는 건 단지…….”
“기도하는 건가?”
기도하던 두 손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정장을 입은 무리가 신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바닥에 널린 시체와 같은 옷이다.
“정도담. 청옥 마리 살해, 그 외 368명의 마름 및 다짐지기를 살해한 혐의로 너를 이 자리에서 처형한다.”
(*마리/마름/다짐지기-가온교 내 계급 이름.)
정도담.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하급 능력자였다. 능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세상에서 가장 밑인 하급 능력자. 그러던 그녀는 1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숨겨졌던 재능이 빛을 발하여 단숨에 상급 능력자가 되었다.
눈부신 재능을 인정받아 세계를 아래에 둔 대종교, 가온교의 마리들이 그녀를 초대했고, 대신각(大神閣)으로 온 바로 그날. 돌연 7인의 마리 중 한 사람인 청옥 마리를 살해, 그런 도담을 붙잡으려던 170여 명의 마름을 몰살시키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을 체포하러 온 마름과 다짐지기들 또한 살려두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가온교의 가장 중요한 것을 훔쳐 갔다.
“네가 훔친 신의 힘을 돌려놔라.”
신의 힘. 가온교의 중앙 대신전에서 극비로 보관하고 있던 그 기적의 힘을 도담이 반절이나 훔쳐 간 것이다. 이에 따라 가온교는 그녀를 전 세계적으로 수배, 죽이지 않고 생포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죽이고 싶었으나, 어차피 신의 힘을 가진 이상 죽여도 죽지 않기 때문에 힘을 회수하고 처형시킬 필요가 있었다.
“훔쳤다고?”
도담은 그 말에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웃음을 흘렸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던가? 내가 이 힘을 훔쳤다고.”
도담의 오른쪽 손등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무언가의 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잘 보면 날개와도 같은 모양새였다.
“빼앗은 건 너희들이야.”
으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이 힘의 주인이다.”
도담의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날개는 제 짝을 잃은 건지 오른쪽 한 짝뿐이었다. 도담을 중심으로 거대한 '힘'이 몰아친다.
신이라 불리는 힘. 그 힘에 눌린 자들이 몸을 낮추자, 맨 앞에 있던 자가 소리쳤다.
“망상증이라도 걸렸나 보군. 뭘 보고만 있어? 다들 저 계집을 잡아!”
명령이 떨어지자 정장을 입은 자들이 움직였다. 복식을 보니 가온교에서 대외적인 전투를 맡은 다짐지기들 뿐.
“죽으려고 온 건가? 마름들조차 날 죽이지 못했거늘.”
도담은 가뿐하게 그들의 공격을 피했다. 어차피 이들이 자신을 잡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고 보냈을 텐데. 희생양임이 분명하기에 불쌍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살려서 보낼 생각은 없다. 도담은 그들을 봐주지 않았다.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일격으로 숨을 끊어놓는 행위를 반복하며 적을 해치워갔다.
가온교의 위대함만을 믿고 죄인을 처벌하러 온 이들이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수십의 목숨이 단숨에 사라진다. 인간의 목숨을 지우면서도 도담의 얼굴에는 후회나 죄책감 따위는 없다. 오히려 지루해하고 있었다.
“이, 이 괴물 자식이!!”
다짐지기들을 지휘하던 상관이 제 부하들이 눈앞에서 학살당하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괴물이라고?”
제게 달려들던 모든 다짐지기를 치운 도담이 그자의 얼굴을 한 손으로 쥐어 잡았다.
“모두가 나를 괴물이라고 불러도, 너희만은 나를 괴물이라 부를 자격이 없어.”
내 모든 걸 빼앗아 갔잖아. 내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죽였잖아.
“날 죽이지 못할 거였다면 감히 건들지도 말았어야지.”
차라리 나를 죽였어야지.
도담은 손안에 잡힌 목을 가볍게 꺾고서 손을 놓았다. 방금까지 살아 숨 쉬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나 가벼운 것이었던가. 언제부터 자신은 망설이지 않게 된 걸까.
‘죄책감인가?’
후회, 죄책감, 혹은 사랑.
내 모든 걸 빼앗은 자가 그랬지. 그녀를 사랑하는 거냐고.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유가 뭐든 상관없었다. 이미 그녀는 죽었고, 도담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손을 피로 물들이며 죄를 더해도, 그 때문에 이 몸이 죽어가더라도.
“난 아직 죽을 자격이 없어.”
도담은 석상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힘을 너무 많이 쓴 건지 어지러웠다. 저번까지만 해도 코를 찔렀던 피와 시체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몸을 ‘힘’을 사용해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에 인간다운 기능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몸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아……. 아직……나는…….”
도담은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그리고 그런 도담의 모습을 한 여인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도담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도담은 그녀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시간과 단절된 여인이 도담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을 상처입히는 것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는데. 조금 소심해도 모두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상냥한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곤란한 듯 웃으면서도 거절은 못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피를 묻히고 목숨을 빼앗는 일에 망설이지 않는다. 저 얼굴에서 미소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시간은 의미 없는 것인데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도담은 그녀 때문에 변했다.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그녀의 비참한 마지막을 도담이 봐버렸기 때문에. 동료들이 죽임당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한 사람마저도 죽음을 구걸해 도담이 제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
도담은 이 세상에 혼자 남고 말았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보였던 망설임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녀는 알고 있다. 도담은 이제 곧 죽는다. 그런데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바라보는 일뿐.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기에 간섭할 수도 없다. 더욱이 도담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마음도 없다.
마음은 선택을 만들고, 선택은 결과를 만들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 감정이, 마음이 부서지고 나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희망, 절망,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텅 빈 눈동자로 그녀는 계속해서 바라본다. 끝을 알기에 기대하지도 않는데 그녀는 왜 바라보고 있는가.
모든 걸 알면서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도담을 지켜본다. 남는 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야기 하나. 잃은 건 되돌릴 수 없다.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으리라. 그 끝에 남은 이야기를 담고서 걸어간다.
멈추지 않고 다시 앞으로, 시간은 다시 시작의 때로.
약속해. 나는 절대로-.
작가의 말
이야기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을 향해 멈추지 않는 피폐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다면 기쁠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닫기하늘나래
30.29. 두 개의 날개조회 : 1,09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5 29.28. 인도(引導)(7)조회 : 1,03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78 28.27. 인도(引導)(6)조회 : 98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28 27.26. 인도(引導)(5)조회 : 1,06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1 26.25. 인도(引導)(4)조회 : 1,01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85 25.24. 인도(引導)(3)조회 : 1,19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6 24.23. 인도(引導)(2)조회 : 1,03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82 23.22. 인도(引導)조회 : 1,10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5 22.21. 파도(5)조회 : 4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62 21.20. 파도(4)조회 : 95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35 20.19. 파도(3)조회 : 81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61 19.18. 파도(2)조회 : 5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70 18.17. 파도조회 : 54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07 17.16. 파문(波紋)(4)조회 : 46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35 16.15. 파문(波紋)(3)조회 : 7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50 15.14. 파문(波紋)(2)조회 : 4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45 14.13. 파문(波紋)조회 : 50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0 13.12. 기억(4)조회 : 54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9 12.11. 기억(3)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4 11.10. 기억(2)조회 : 4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67 10.9. 기억조회 : 4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9 9.8. 혼돈조회 : 4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274 8.7. 변화(4)조회 : 41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25 7.6. 변화(3)조회 : 6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00 6.5. 변화(2)조회 : 5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91 5.4. 변화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17 4.3. 하늘 아래(3)조회 : 58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572 3.2. 하늘 아래(2)조회 : 655 추천 : 2 댓글 : 0 글자 : 5,117 2.1. 하늘 아래조회 : 69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72 1.0. 기도조회 : 2,581 추천 : 1 댓글 : 2 글자 : 4,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