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늘 아래(3)
조회 : 673 추천 : 1 글자수 : 5,572 자 2022-09-13
*이 작품에는 혐오와 차별, 그에 따른 폭력, 기타 부상과 유혈, 사망이 묘사되어있습니다. 이번 회차에는 추락에 관한 내용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해당 요소를 보기 힘드신 경우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금화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부모는 금화에게서 손을 떼고 필요한 경제적 지원만 해주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연락을 끊었다. 가끔 마주치면 비웃기까지.
쓰레기 같은 학교, 수준 떨어지는 선생, 말을 섞는 것조차 기분 나쁜 하급 능력자들만 가득한 끔찍한 곳.
‘이게 다 그 빌어먹을 사냥꾼, 아니 상급 때문이라고!’
제 계급을 무기로 감히 나를 바닥까지 떨어트리다니! 이런 쓰레기 소굴로 나를! 나는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금화의 분노에, 악의가 담긴 물 한 방울이 금화의 몸 전체로 퍼졌다. 화를 참을 수 없고, 억울함과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금화를 지배했다. 누군가 귀에서 속삭이는 듯했다.
네 분노를 풀어. 네가 어떤 위치인지 모두가 알게 해. 방법은 알고 있잖아.
“……그래. 모두가 알아야 해.”
금화는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이런 무시를 받아도 될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금화는 떠올렸다. 이 분노를 풀만 한 화풀이 인형. 상급 능력자 집안 출신이면서 무능력자인 쓰레기 이하의 존재. 그 계집을 짓밟을 때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금화는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늘 불만이 가득하던 얼굴에는 후련한 미소가 걸렸다. 눈동자는 빛을 보고 멀어버린 듯 제 앞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환상에 홀린 듯 발걸음이 비척거렸다.
“오늘 급식 진짜 쓰레기 같아!”
부용은 잔뜩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 옆에서 도담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분명 어떤 기업의 시험작일 거야! 아니면 폐기품이거나!”
능력으로 계급이 정해지는 사회에서 하급 능력자의 취급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어떤 위험을 가진지도 모른 채 시험품을 테스트하라고 강요받거나, 학교 급식에서는 실험적인 음식들이 많이 나왔다. 어떤 공장에서 실패해 폐기한 물건이라느니, 시험작이라니 말이 많았지만 학교 측은 공식적으로 어떤 답변을 해준 적이 없다.
“교실로 가기 싫어! 또 그 무능력자 얼굴을 봐야 하잖아.”
부용은 질색하며 마치 불결한 것이 생각난 마냥 인상을 구겼다. 마치 눈앞에 부패한 쓰레기라도 들이민 모양새였다. 도담은 굳어가는 제 얼굴을 애써 숨기고 다시 어색하게 웃었다.
“왜 하필 우리 반인 거야? 그것도 그거지만, 눈치 있으면 학교에 안 와야 하는 거 아니야? 다들 불편해하는 거 안 보이나?”
‘미리내도 나오고 싶지는 않을걸.’
미리내는 정말 학교에 ‘나오기만’ 할 뿐이었다. 어차피 무능력자라 배워도 익힐 수 있다며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지급하지 않았고, 미리내 본인은 학용품마저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교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다.
“도담! 너도 그렇게 생각 안 해?”
부용이 도담을 콕 집어 말했다. 당장 내 말에 동의해. 그녀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학교의 정보통인 부용은 좋은 친구라고 말할 수 없는 인물이다. 자기 기분을 상하게 하면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괴롭히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 일이 커져서 학교를 옮긴 학생도 존재할 정도였다. 물론 부용은 뒤에서 여론을 조작하거나 험담을 한 정도였기에 가해자로 지목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대충 넘어가려고 했기에 처벌도 받지 않았다. 진정한 원인은 부용임에도.
도담도 그런 부용이 불편한 걸 넘어서 싫었다. 그런데도 그녀를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부용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용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친구들은 온갖 소문에 휘말렸다. 같은 하급 능력자임에도 저항할 수 없다. 부용은 제 인맥과 입을 무기로 삼은, 호랑이가 없는 숲에 군림하는 여우였다.
“나는…….”
“부용!!”
도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부용의 친구로 보이는 다른 학생이 다급하게 뛰어오는 걸 보니 뭔가 일이 생긴 듯했다. 부용은 흥미있는 일이 생기면 방금 물어본 건 금방 잊어버리겠지. 도담의 예상대로 부용은 더 도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용에게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새롭고 흥미로운 정보니까. 아니나다를까 부용은 눈을 빛내며 제 친구를 재촉했다.
“무슨 일인데? 응?”
“금화가 그 무능력자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갔어!”
‘뭐?’
지금 잘못 들은 건가? 도담은 뇌가 고장 난 것처럼 제대로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금화. 상급 능력자를 건드렸다가 하급 교육기관에 오게 된 중급 능력자. 육체 능력 특화자로, 미리내를 특히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동급생이었다.
그런 금화가 미리내를 데려갔다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오싹하기까지 했다. 마치 불행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듯이.
“게다가 마주치는 애들마다 옥상으로 오라고 했어! 뭔가 보여주려나 봐.”
“뭐야, 그게! 엄청 기대된다!”
도담과는 다르게 부용과 그녀의 친구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마냥 듯 웃었다.
끔찍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두 사람이 다른 세상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미리내를 싫어해도 그렇지.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기대된다고? 아니, 두 사람은 알고 있다. 미리내가 괴롭힘당할 것을. 그들이 기대하는 건 바로 그것이니까.
‘제정신인 건가?’
도담은 옥상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따라가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취급할 수 있는 거야. 미리내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잖아. 그저 존재했을 뿐인데. 미리내는 죄를 짓지 않았으나 죄인이었다. 세상이, 사회가 모두 그녀를 몰아간다. 어쩌면 미리내의 가족조차도…….
“뭐야, 아무도 없는 거냐?”
옥상에 도착했을 때 본 광경은 더 끔찍했다.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까지. 많은 사람이 모여서 참상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금화는 미리내의 멱살을 잡은 채로 옥상 난간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미리내는 이미 몸 반쯤이 난간에서 벗어나 있었다. 금화가 손을 놓는 순간 그대로 추락할 위치였다. 금화는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누구든 내 앞까지만 오면 널 살려준다고 했는데 아무도 없군.”
두근, 두근. 심장이 강하게 요동쳤다. 식은땀이 흐르며 손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봐라. 이게 네 가치야. 고작 몇 발자국 걸어서 구할 가치도 없는!”
몇 분 전, 미리내를 끌고 옥상으로 올라오며 금화는 다른 이들까지 따라오라고 겁박했다. 벌벌 떨며 따라 올라오던 학생들은 금화가 미리내를 들어 올리자 안심했다. 금화는 말했다.
‘누구라도 이 무능력자를 위해서 내 앞으로 온다면 이 무능력자를 살려주지.’
하지만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미리내를 잡고 협박하는 게 금화이기에 뒷감당이 두려워서일까.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을 테지만, 도담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기대하고 있다. 설마라고 생각하면서도 금화가 손을 놓기를, 미리내가 추락하는 장면을 그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능력자 쓰레기 주제에 밖으로 기어나오니까 이렇게 되는 거야!”
도담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크게 뛰었다. 왜 아무도 미리내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왜 웃고 있는 거야?
“차라리 짐승에게 옷을 입혀 세워놓는 게 덜 역겨울 텐데 말이야!”
도담은 언제나 방관만 하고 있었다. 사회가, 세상이 두려워서. 어떤 부조리함도 자신은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미리내의 손을 잡는 순간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 모두가 괴롭힘을 당할 것이고, 사회는 철저히 외면할 것이다. 그들이 언젠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발견되더라도.
“넌 차라리 죽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그런데 왜 꾸역꾸역 살아있냐!”
그래서 두려웠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그건, 지금도…….
“여기서 죽……!”
“그, 그만해.”
일대가 조용해졌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금화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찢어 죽일 듯한, 분노가 서린 눈동자였다. 그 눈과 마주친 도담은 기절할 것처럼 창백해졌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서워.’
자신이 무슨 용기로 이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뒷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왜 발은 멈추지 않는 건지.
‘하지만…….’
모두 포기한 미리내의 텅 빈 눈동자를 본 순간, 도담은 멈출 수 없어졌다. 도담이 금화 앞에 섰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금화의 살기 어린 눈빛에 피부가 따끔거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런데도, 미리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모두 지워졌다. 머릿속이 밤하늘 같은 눈동자로 가득 찼다.
“왔, 어. 이제……이제 그만 미리내를 놔 줘.”
“……그게 누군데?”
“……? 지금……잡고 있잖아.”
금화는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자신 앞까지 와서 무능력자를 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뒤 끝없이 살려주겠다고 스스로가 선언하기는 했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을 것을 알고 한 말이었는데 어떻게. 게다가 저 당당한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겁먹은 개처럼 벌벌 떨면서도 왜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지.
모두가 금화가 지나가면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심기를 건드릴까 봐 숨조차 쉬기 어려워했다. 자신은 그런 존재인데, 두려워야 마땅한 존재인데.
‘날 무시했어.’
몸 전체에 퍼진 검은 악의가 심장에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을 주체할 수 없는 강한 분노, 굴욕.
‘하급 주제에!!’
금화는 도담을 그대로 죽기 전까지 손 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떠올리고는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그래. 그러지.”
그리고, 손을 놔버렸다.
미리내의 몸이 순간적으로 뒤로 넘어가더니, 그대로 추락했다. 그리고 금화는 도담의 머리를 고정하고 추락한 미리내를 보여줄 셈이었다. 평생 기억에 남도록, 절망하고 미쳐가도록. 그러나 도담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안돼!!”
도담이 그대로 미리내를 따라서 뛰어내린 것이다. 마치 그녀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으며. 미리내가 자신을 따라 떨어지는 도담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무슨 짓을.’
도담은 곧장 후회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몸을 던져서도 미리내를 구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에. 마지막 발악으로 미리내를 잡아주기 위해서 손을 뻗었으나, 닿지 않았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제발! 제발 한 번만이라도 구하게 해줘!’
단 한 번만이라도. 땅에 닿기 전에, 늘 지켜보던 그녀에게 닿도록. 신이 기도를 들어주기라도 한 듯이 미리내가 한순간에 가까워졌다. 도담은 미리내의 머리와 등을 감싸며 끌어안았다.
‘대체 어떻게?’
도저히 닿을 수 없었을 텐데. 답을 내리기도 전에 도담의 눈에 눈부신 하얀 빛이 보였다. 미리내의 등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하얀 빛. 빛은 조각난 유리처럼 떨어져 있었으나, 분명히 날개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얀빛의 날개를 넋 놓고 바라보던 도담의 귀에 미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돼…….”
직후, 빛의 날개가 두 사람을 감쌌다. 그리고 빛이 흩날리며 두 사람의 모습도 함께 사라졌다. 하늘이 일그러지더니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때 옥상에는 눈을 깜박이는 금화만이 서 있었다.
“뭐야, 내가 왜 여기 있어?”
금화는 투덜거리다 옥상에서 내려갔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손을 맞잡은 미리내와 도담이 발견되는 건,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금화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부모는 금화에게서 손을 떼고 필요한 경제적 지원만 해주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연락을 끊었다. 가끔 마주치면 비웃기까지.
쓰레기 같은 학교, 수준 떨어지는 선생, 말을 섞는 것조차 기분 나쁜 하급 능력자들만 가득한 끔찍한 곳.
‘이게 다 그 빌어먹을 사냥꾼, 아니 상급 때문이라고!’
제 계급을 무기로 감히 나를 바닥까지 떨어트리다니! 이런 쓰레기 소굴로 나를! 나는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금화의 분노에, 악의가 담긴 물 한 방울이 금화의 몸 전체로 퍼졌다. 화를 참을 수 없고, 억울함과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금화를 지배했다. 누군가 귀에서 속삭이는 듯했다.
네 분노를 풀어. 네가 어떤 위치인지 모두가 알게 해. 방법은 알고 있잖아.
“……그래. 모두가 알아야 해.”
금화는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이런 무시를 받아도 될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금화는 떠올렸다. 이 분노를 풀만 한 화풀이 인형. 상급 능력자 집안 출신이면서 무능력자인 쓰레기 이하의 존재. 그 계집을 짓밟을 때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금화는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늘 불만이 가득하던 얼굴에는 후련한 미소가 걸렸다. 눈동자는 빛을 보고 멀어버린 듯 제 앞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환상에 홀린 듯 발걸음이 비척거렸다.
“오늘 급식 진짜 쓰레기 같아!”
부용은 잔뜩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 옆에서 도담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분명 어떤 기업의 시험작일 거야! 아니면 폐기품이거나!”
능력으로 계급이 정해지는 사회에서 하급 능력자의 취급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어떤 위험을 가진지도 모른 채 시험품을 테스트하라고 강요받거나, 학교 급식에서는 실험적인 음식들이 많이 나왔다. 어떤 공장에서 실패해 폐기한 물건이라느니, 시험작이라니 말이 많았지만 학교 측은 공식적으로 어떤 답변을 해준 적이 없다.
“교실로 가기 싫어! 또 그 무능력자 얼굴을 봐야 하잖아.”
부용은 질색하며 마치 불결한 것이 생각난 마냥 인상을 구겼다. 마치 눈앞에 부패한 쓰레기라도 들이민 모양새였다. 도담은 굳어가는 제 얼굴을 애써 숨기고 다시 어색하게 웃었다.
“왜 하필 우리 반인 거야? 그것도 그거지만, 눈치 있으면 학교에 안 와야 하는 거 아니야? 다들 불편해하는 거 안 보이나?”
‘미리내도 나오고 싶지는 않을걸.’
미리내는 정말 학교에 ‘나오기만’ 할 뿐이었다. 어차피 무능력자라 배워도 익힐 수 있다며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지급하지 않았고, 미리내 본인은 학용품마저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교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다.
“도담! 너도 그렇게 생각 안 해?”
부용이 도담을 콕 집어 말했다. 당장 내 말에 동의해. 그녀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학교의 정보통인 부용은 좋은 친구라고 말할 수 없는 인물이다. 자기 기분을 상하게 하면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괴롭히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 일이 커져서 학교를 옮긴 학생도 존재할 정도였다. 물론 부용은 뒤에서 여론을 조작하거나 험담을 한 정도였기에 가해자로 지목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대충 넘어가려고 했기에 처벌도 받지 않았다. 진정한 원인은 부용임에도.
도담도 그런 부용이 불편한 걸 넘어서 싫었다. 그런데도 그녀를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부용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용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친구들은 온갖 소문에 휘말렸다. 같은 하급 능력자임에도 저항할 수 없다. 부용은 제 인맥과 입을 무기로 삼은, 호랑이가 없는 숲에 군림하는 여우였다.
“나는…….”
“부용!!”
도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부용의 친구로 보이는 다른 학생이 다급하게 뛰어오는 걸 보니 뭔가 일이 생긴 듯했다. 부용은 흥미있는 일이 생기면 방금 물어본 건 금방 잊어버리겠지. 도담의 예상대로 부용은 더 도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용에게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새롭고 흥미로운 정보니까. 아니나다를까 부용은 눈을 빛내며 제 친구를 재촉했다.
“무슨 일인데? 응?”
“금화가 그 무능력자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갔어!”
‘뭐?’
지금 잘못 들은 건가? 도담은 뇌가 고장 난 것처럼 제대로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금화. 상급 능력자를 건드렸다가 하급 교육기관에 오게 된 중급 능력자. 육체 능력 특화자로, 미리내를 특히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동급생이었다.
그런 금화가 미리내를 데려갔다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오싹하기까지 했다. 마치 불행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듯이.
“게다가 마주치는 애들마다 옥상으로 오라고 했어! 뭔가 보여주려나 봐.”
“뭐야, 그게! 엄청 기대된다!”
도담과는 다르게 부용과 그녀의 친구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마냥 듯 웃었다.
끔찍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두 사람이 다른 세상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미리내를 싫어해도 그렇지.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기대된다고? 아니, 두 사람은 알고 있다. 미리내가 괴롭힘당할 것을. 그들이 기대하는 건 바로 그것이니까.
‘제정신인 건가?’
도담은 옥상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따라가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취급할 수 있는 거야. 미리내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잖아. 그저 존재했을 뿐인데. 미리내는 죄를 짓지 않았으나 죄인이었다. 세상이, 사회가 모두 그녀를 몰아간다. 어쩌면 미리내의 가족조차도…….
“뭐야, 아무도 없는 거냐?”
옥상에 도착했을 때 본 광경은 더 끔찍했다.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까지. 많은 사람이 모여서 참상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금화는 미리내의 멱살을 잡은 채로 옥상 난간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미리내는 이미 몸 반쯤이 난간에서 벗어나 있었다. 금화가 손을 놓는 순간 그대로 추락할 위치였다. 금화는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누구든 내 앞까지만 오면 널 살려준다고 했는데 아무도 없군.”
두근, 두근. 심장이 강하게 요동쳤다. 식은땀이 흐르며 손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봐라. 이게 네 가치야. 고작 몇 발자국 걸어서 구할 가치도 없는!”
몇 분 전, 미리내를 끌고 옥상으로 올라오며 금화는 다른 이들까지 따라오라고 겁박했다. 벌벌 떨며 따라 올라오던 학생들은 금화가 미리내를 들어 올리자 안심했다. 금화는 말했다.
‘누구라도 이 무능력자를 위해서 내 앞으로 온다면 이 무능력자를 살려주지.’
하지만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미리내를 잡고 협박하는 게 금화이기에 뒷감당이 두려워서일까.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을 테지만, 도담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기대하고 있다. 설마라고 생각하면서도 금화가 손을 놓기를, 미리내가 추락하는 장면을 그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능력자 쓰레기 주제에 밖으로 기어나오니까 이렇게 되는 거야!”
도담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크게 뛰었다. 왜 아무도 미리내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왜 웃고 있는 거야?
“차라리 짐승에게 옷을 입혀 세워놓는 게 덜 역겨울 텐데 말이야!”
도담은 언제나 방관만 하고 있었다. 사회가, 세상이 두려워서. 어떤 부조리함도 자신은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미리내의 손을 잡는 순간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 모두가 괴롭힘을 당할 것이고, 사회는 철저히 외면할 것이다. 그들이 언젠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발견되더라도.
“넌 차라리 죽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그런데 왜 꾸역꾸역 살아있냐!”
그래서 두려웠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그건, 지금도…….
“여기서 죽……!”
“그, 그만해.”
일대가 조용해졌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금화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찢어 죽일 듯한, 분노가 서린 눈동자였다. 그 눈과 마주친 도담은 기절할 것처럼 창백해졌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서워.’
자신이 무슨 용기로 이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뒷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왜 발은 멈추지 않는 건지.
‘하지만…….’
모두 포기한 미리내의 텅 빈 눈동자를 본 순간, 도담은 멈출 수 없어졌다. 도담이 금화 앞에 섰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금화의 살기 어린 눈빛에 피부가 따끔거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런데도, 미리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모두 지워졌다. 머릿속이 밤하늘 같은 눈동자로 가득 찼다.
“왔, 어. 이제……이제 그만 미리내를 놔 줘.”
“……그게 누군데?”
“……? 지금……잡고 있잖아.”
금화는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자신 앞까지 와서 무능력자를 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뒤 끝없이 살려주겠다고 스스로가 선언하기는 했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을 것을 알고 한 말이었는데 어떻게. 게다가 저 당당한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겁먹은 개처럼 벌벌 떨면서도 왜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지.
모두가 금화가 지나가면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심기를 건드릴까 봐 숨조차 쉬기 어려워했다. 자신은 그런 존재인데, 두려워야 마땅한 존재인데.
‘날 무시했어.’
몸 전체에 퍼진 검은 악의가 심장에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을 주체할 수 없는 강한 분노, 굴욕.
‘하급 주제에!!’
금화는 도담을 그대로 죽기 전까지 손 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떠올리고는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그래. 그러지.”
그리고, 손을 놔버렸다.
미리내의 몸이 순간적으로 뒤로 넘어가더니, 그대로 추락했다. 그리고 금화는 도담의 머리를 고정하고 추락한 미리내를 보여줄 셈이었다. 평생 기억에 남도록, 절망하고 미쳐가도록. 그러나 도담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안돼!!”
도담이 그대로 미리내를 따라서 뛰어내린 것이다. 마치 그녀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으며. 미리내가 자신을 따라 떨어지는 도담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무슨 짓을.’
도담은 곧장 후회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몸을 던져서도 미리내를 구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에. 마지막 발악으로 미리내를 잡아주기 위해서 손을 뻗었으나, 닿지 않았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제발! 제발 한 번만이라도 구하게 해줘!’
단 한 번만이라도. 땅에 닿기 전에, 늘 지켜보던 그녀에게 닿도록. 신이 기도를 들어주기라도 한 듯이 미리내가 한순간에 가까워졌다. 도담은 미리내의 머리와 등을 감싸며 끌어안았다.
‘대체 어떻게?’
도저히 닿을 수 없었을 텐데. 답을 내리기도 전에 도담의 눈에 눈부신 하얀 빛이 보였다. 미리내의 등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하얀 빛. 빛은 조각난 유리처럼 떨어져 있었으나, 분명히 날개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얀빛의 날개를 넋 놓고 바라보던 도담의 귀에 미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돼…….”
직후, 빛의 날개가 두 사람을 감쌌다. 그리고 빛이 흩날리며 두 사람의 모습도 함께 사라졌다. 하늘이 일그러지더니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때 옥상에는 눈을 깜박이는 금화만이 서 있었다.
“뭐야, 내가 왜 여기 있어?”
금화는 투덜거리다 옥상에서 내려갔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손을 맞잡은 미리내와 도담이 발견되는 건,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작가의 말
번쩍번쩍
닫기![]()
하늘나래
30.29. 두 개의 날개조회 : 3,08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5 29.28. 인도(引導)(7)조회 : 2,8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78 28.27. 인도(引導)(6)조회 : 2,9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28 27.26. 인도(引導)(5)조회 : 3,17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1 26.25. 인도(引導)(4)조회 : 3,09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85 25.24. 인도(引導)(3)조회 : 2,92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6 24.23. 인도(引導)(2)조회 : 2,96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82 23.22. 인도(引導)조회 : 3,18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5 22.21. 파도(5)조회 : 44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62 21.20. 파도(4)조회 : 1,03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35 20.19. 파도(3)조회 : 89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61 19.18. 파도(2)조회 : 55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70 18.17. 파도조회 : 62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07 17.16. 파문(波紋)(4)조회 : 54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35 16.15. 파문(波紋)(3)조회 : 80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50 15.14. 파문(波紋)(2)조회 : 50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45 14.13. 파문(波紋)조회 : 56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0 13.12. 기억(4)조회 : 59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9 12.11. 기억(3)조회 : 57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4 11.10. 기억(2)조회 : 48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67 10.9. 기억조회 : 54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9 9.8. 혼돈조회 : 54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274 8.7. 변화(4)조회 : 47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25 7.6. 변화(3)조회 : 65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00 6.5. 변화(2)조회 : 58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91 5.4. 변화조회 : 57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17 4.3. 하늘 아래(3)조회 : 677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572 3.2. 하늘 아래(2)조회 : 774 추천 : 2 댓글 : 0 글자 : 5,117 2.1. 하늘 아래조회 : 774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72 1.0. 기도조회 : 5,507 추천 : 1 댓글 : 2 글자 : 4,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