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인도(引導)(4)
조회 : 1,016 추천 : 0 글자수 : 5,385 자 2022-11-30
*이 작품에는 혐오와 차별, 그에 따른 폭력, 기타 부상과 유혈, 사망이 묘사되어있습니다. 해당 요소를 보기 힘드신 경우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무능력자 하람, 맞나?”
다음 날, 가온교의 다짐지기라는 자가 갑작스럽게 하람의 집에 방문했다. 의아했지만 가온교의 사람을 문전박대할 수는 없었기에, 하람은 그녀를 안으로 들이려 했으나, 다짐지기는 현관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솔 학생의 일 때문에 왔습니다.”
“네? 솔이가 무슨 일이라도……?”
“저희 구역의 *살피께서는 사냥꾼인 이 솔 학생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죠.”
하람도 이 솔이 대단한 위치라는 건 알고 있었다. 늘 수석을 놓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가온교에서까지 신경 쓸 정도였다니. 이 솔에 대해 칭찬이라도 하러 온 걸까?
‘이 아침에, 하필 우리 집에?’
이 솔이 제집보다 하람의 집에 오래 붙어있는 건 사실이지만, 왜 학교나 이 솔의 집이 아닌 하람의 집에? 어쩐지 등줄기에 오싹함이 올라와 하람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다짐지기는 그런 하람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 솔 학생이 다른 사냥꾼들과 마찰이 심하더군요.”
친절한 미소, 단정한 품새로 서 있던 다짐지기는 순식간에 하람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잡혀버린 하람이 다짐지기의 손을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의미 없는 짓이었다.
“무능력자 하나 때문에.”
“커흑!”
“이대로 다른 사냥꾼들 때문에 죽어버리면 세계적으로 손실이 막대하지 않겠나? 그럴 바에야 무능력자 하나가 사라지는 게 낫지.”
다짐지기는 그대로 하람을 문밖으로 끌어내 던져버렸다. 마치 쓰레기를 던지듯이 자연스럽게. 하람의 연약한 몸이 앞집 담장을 향해 날았다. 하람은 깨달았다. 앞에 한 말은 전부 핑계다. 다짐지기는, 하람을 죽일 생각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안다고 해도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하겠지. 그리고, 그리고……….
‘안 돼!’
그 짧은 순간, 주마등처럼 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하람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적 울고 있던 이 솔의 얼굴이. 소중한 사람을 잃고 흘리던 그 눈물을. 이대로 죽는다면, 하람은 이 솔에게 또다시 큰 상처를 주고 만다. 절대 메꿀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죽을 수 없어!’
하지만 어떻게? 가온교에서 그녀를 죽인다고 판단했다면 하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온교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회에서, 가온교의 결정은 변하지 않는 운명이나 다름없다.
“커헉!”
벽에 부딪힌 하람은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감싸긴 했지만 충격을 다 막지는 못했다. 머리는 어지러웠고, 몸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하람은 필사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어떻게든 손을 뻗어 바닥을 기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다짐지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몸부림칠까? 그냥 얌전히 죽기만 하면 되는걸.”
다짐지기가 하람의 허리를 짓밟았다. 하람의 고통 섞인 비명에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면서.
“네 목숨에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 네 목숨은 살고 싶어 발버둥칠만한 가치도 없다.”
날카로운 말이 심장을 찔러왔다. 하람을 바라보는 경멸하는 눈빛. 그 안에는 살의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다짐지기에게 하람을 죽이는 일은 그저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 정도였으니까. 하람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픔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죽은 후의 이 솔을 생각해버렸기에.
‘분해.’
무력한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을 기다려야 하는 자신의 한계가 너무나 비참했다.
다짐지기는 하람의 목을 부러뜨리기 위해 발을 뻗다가, 다급하게 물러났다. 무언가를 피하듯이.
“왔군.”
하람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제 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자신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는 그 손은.
“솔아…….”
하람을 살피던 이 솔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짐지기와 마주 보고 섰다. 다짐지기는 그런 하람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얼굴이군.”
“못 할 것도 없지. 사냥꾼이 어떤 놈들인지 모르나?”
“난 지금 가온교의 명을 수행하는 중이다. ‘무능력자를 죽이라’는 명령이지. 가온교의 뜻에 불복할 건가?”
“언니를 죽인다고?”
“그래. 방해를 하긴 했지만……너는 꽤 중요한 인재다. 지금이라도 비키면 살려주지. 하지만 이 이상 방해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가온교의 권한으로 처형하겠다.”
‘처형’이라는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하람이 다급하게 이 솔의 다리를 붙잡았다.
“안돼, 안돼, 솔아!! 그냥 도망가!”
하람은 알고 있었다. 이 솔은 자신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가온교의 손에 죽는 일이 있더라도, 평생 쫓기는 인생을 산다고 하더라도. 이 솔이 몸을 숙여 하람의 손을 떼어냈다. 눈물을 흘리는 하람에게 상냥하게 웃어준 이 솔은 앞으로 나아가더니 다짐지기 앞에 섰다. 이 솔의 체격이 큰 편인데도 다짐지기 앞에 서니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이 자리에서 죽어야겠지.”
“해보던가. 난 절대 도망 안 가.”
***
수양은 다짐지기 중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로, 현재 마름의 후보로 올라와 있을 정도로 전투능력이 뛰어났다. 마름으로 올라갈 날을 기다리던 수양은 갑작스러운 ‘위’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사냥꾼과 친하다는 무능력자가 있다. 그 무능력자를 죽여.”
납득이 가는 설명도, 덧붙여지는 이유도 없었으나, 수양은 허리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명령에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행할 뿐. 가온교에서의 상하관계는 절대적이다. 가온교의 신도들은 가온교에 속한 가문에서 태어난 교인들과 외부의 일반 신도들로 나뉜다. 외부 신도는 평범하게 기도를 하고 신을 믿는 이들, 교인은 대대로 가온교를 모셔온 가문들이다. 가온교에서 아랫물 이상의 계급을 받을 수 있는 신도는 교인들 뿐이며, 어릴 때부터 가온교의 명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도록 교육받는다.
수양 또한 철저하게 교육받았고, 어릴 적부터 주입된 사상에 반발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게 병적으로 심한 집안까지도 있다고 들었다. 가온교에서 반발심을 가진 이는 **마름 중 ‘청록의 가지’에 포함된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마름뿐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
명령 불복종은 기본적으로 처분되지만, 그 마름은 능력이 특출나 처분을 피하고 있다고 한다. 가온교에 속하면서 가온교를 따르지않는다니 수양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위에서는 명령을 내리며 수양에게 임무에 관한 조건을 덧붙였다.
“단, 조건이 있다. 무능력자를 죽이기 전에 적당히 이유를 붙여서 ‘가온교’가 그 무능력자를 직접적으로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숨길 것, 그리고 붙어다닌다는 그 사냥꾼을 죽이고 무능력자를 죽이도록. 반드시.”
“사냥꾼을 말입니까?”
수양은 당혹스러웠다. 사냥꾼을 죽이라니. 가온교의 다짐지기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사냥꾼과는 절대 싸워서는 안 된다.’
힘으로 서열을 나누는 사냥꾼의 특성상 두억시니와 싸우는 것보다 같은 사냥꾼들끼리 서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인해 인간과의 싸움법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싸울 때는 침입자와 싸우는 짐승마냥 반드시 둘 중 하나가 목숨을 다 해야만 싸움이 끝났다. 사냥꾼의 체술은 다인과의 싸움, 회피와 반격, 한 번의 공격으로 적을 끝내는 기술이 발달하였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사냥꾼과 싸우는 건 패배를 의미했다.
수양의 반응을 본 ‘위’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 것 없어. 자네에게 ‘축복’을 내려줄테니까.”
“…! 축복, 말입니까?”
‘축복’. 이는 신이 가온교에 남긴 위대한 ‘유산’에서 나오는 것으로, 신의 힘을 통해 특수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가온교 내에서 ‘축복’은 사냥꾼의 무기에 내리는 축복과는 다른 개념으로, 호안 마리가 직접 몸에 새겨주는 것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 호안 마리가 자네를 인정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지.”
“여, 영광입니다!! ***하늘에 이 영광을!”
“지금 바로 축복을 받은 뒤 일주일 정도 적응 훈련을 하고 임무를 수행한다.”
“네!”
인정받았다. 마름 중에도 인정받은 자만 받을 수 있다는 ‘축복’을 받다니! 가문의 영광이라 해도 좋다. 뜻밖의 보상에 사냥꾼과 싸운다는 부담감도 사라졌다. 아무리 사냥꾼이라 한들 축복을 받은 자와 전투력을 비교할 수준은 아니니까.
분명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수양은 자신의 볼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주먹을 피했다. 동시에 이 솔의 다리를 짓밟기 위해 움직였으나, 이 솔은 가까스로 피해냈다.
‘어떻게 피하는 거지?’
‘축복’을 받아 강화된 신체능력은 육체적 능력의 정점인 사냥꾼들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런데 정식 사냥꾼도 아닌 녀석이 공격을 피하다니.
‘사냥꾼 중에서도 수재라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수양이 시험 삼아 이 솔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으나,
“큭!!”
이 솔은 이미 부러진 왼팔로 막아내며 최소한의 피해를 입는 선에서 그쳤다. 쓸데없는 호승심으로 억지로 버티지 않고서 그대로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이 솔은 수양과의 싸움으로 이미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처음 수양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갈비뼈가 두 대와 왼팔이 부러지고 오른 손목과 어깨가 나갔다. 그런데도 이 솔은 여전히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도 제 두 다리를 지키면서.
“오만인가, 아집인가? 두 팔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다리를 지키다니. 네가 지금 그런 걸 가릴 상황이 아닐텐데.”
“시끄럽네.”
이 솔은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적을 막고 뒤를 지키는 성벽처럼. 이 솔이 다리만은 다치지 않으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하람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희망을 꺾지 않기 위해. 수양에게는 우스울 뿐이다. 버티는 것도 겨우 하는 주제에 저런 오만을 부리다니.
“네가 진짜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 움직임이 다 보이는데 할 만하지 않아?”
이 솔이 그런 수양을 비웃으며 말했다. 처음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던 이 솔은 두 합만에 수양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예측해 피하고 있었다. ‘축복’을 받지 않았다면 수양이 패배했을 것이다.
“인정하지. 괴물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천재적이구나. 마음같아서는 가온교에 데려가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가온교는 명령을 거부하는 인간이 있을 자리가 없어서.”
*살피: 도시를 총괄하는 계급
**마름: 마리와 애지 바로 아래인, 일반 교인이 올라갈 수 있는 직위 중 가장 높은 전투 계급. 부대에 속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하는 이들과, 마리의 직속 전투부대에 속한 이들로 나뉜다. 가온교를 제외한 다른 세력은 개인적인 병력을 가질 수 없으며 이는 나라 단위도 포함된다.
***가온교에서 충성을 맹세할 때 쓰는 말 중 하나. 자신이 이룬 영광을 신=하늘에게 바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무능력자 하람, 맞나?”
다음 날, 가온교의 다짐지기라는 자가 갑작스럽게 하람의 집에 방문했다. 의아했지만 가온교의 사람을 문전박대할 수는 없었기에, 하람은 그녀를 안으로 들이려 했으나, 다짐지기는 현관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솔 학생의 일 때문에 왔습니다.”
“네? 솔이가 무슨 일이라도……?”
“저희 구역의 *살피께서는 사냥꾼인 이 솔 학생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죠.”
하람도 이 솔이 대단한 위치라는 건 알고 있었다. 늘 수석을 놓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가온교에서까지 신경 쓸 정도였다니. 이 솔에 대해 칭찬이라도 하러 온 걸까?
‘이 아침에, 하필 우리 집에?’
이 솔이 제집보다 하람의 집에 오래 붙어있는 건 사실이지만, 왜 학교나 이 솔의 집이 아닌 하람의 집에? 어쩐지 등줄기에 오싹함이 올라와 하람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다짐지기는 그런 하람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 솔 학생이 다른 사냥꾼들과 마찰이 심하더군요.”
친절한 미소, 단정한 품새로 서 있던 다짐지기는 순식간에 하람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잡혀버린 하람이 다짐지기의 손을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의미 없는 짓이었다.
“무능력자 하나 때문에.”
“커흑!”
“이대로 다른 사냥꾼들 때문에 죽어버리면 세계적으로 손실이 막대하지 않겠나? 그럴 바에야 무능력자 하나가 사라지는 게 낫지.”
다짐지기는 그대로 하람을 문밖으로 끌어내 던져버렸다. 마치 쓰레기를 던지듯이 자연스럽게. 하람의 연약한 몸이 앞집 담장을 향해 날았다. 하람은 깨달았다. 앞에 한 말은 전부 핑계다. 다짐지기는, 하람을 죽일 생각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안다고 해도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하겠지. 그리고, 그리고……….
‘안 돼!’
그 짧은 순간, 주마등처럼 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하람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적 울고 있던 이 솔의 얼굴이. 소중한 사람을 잃고 흘리던 그 눈물을. 이대로 죽는다면, 하람은 이 솔에게 또다시 큰 상처를 주고 만다. 절대 메꿀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죽을 수 없어!’
하지만 어떻게? 가온교에서 그녀를 죽인다고 판단했다면 하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온교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회에서, 가온교의 결정은 변하지 않는 운명이나 다름없다.
“커헉!”
벽에 부딪힌 하람은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감싸긴 했지만 충격을 다 막지는 못했다. 머리는 어지러웠고, 몸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하람은 필사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어떻게든 손을 뻗어 바닥을 기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다짐지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몸부림칠까? 그냥 얌전히 죽기만 하면 되는걸.”
다짐지기가 하람의 허리를 짓밟았다. 하람의 고통 섞인 비명에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면서.
“네 목숨에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 네 목숨은 살고 싶어 발버둥칠만한 가치도 없다.”
날카로운 말이 심장을 찔러왔다. 하람을 바라보는 경멸하는 눈빛. 그 안에는 살의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다짐지기에게 하람을 죽이는 일은 그저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 정도였으니까. 하람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픔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죽은 후의 이 솔을 생각해버렸기에.
‘분해.’
무력한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을 기다려야 하는 자신의 한계가 너무나 비참했다.
다짐지기는 하람의 목을 부러뜨리기 위해 발을 뻗다가, 다급하게 물러났다. 무언가를 피하듯이.
“왔군.”
하람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제 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자신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는 그 손은.
“솔아…….”
하람을 살피던 이 솔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짐지기와 마주 보고 섰다. 다짐지기는 그런 하람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얼굴이군.”
“못 할 것도 없지. 사냥꾼이 어떤 놈들인지 모르나?”
“난 지금 가온교의 명을 수행하는 중이다. ‘무능력자를 죽이라’는 명령이지. 가온교의 뜻에 불복할 건가?”
“언니를 죽인다고?”
“그래. 방해를 하긴 했지만……너는 꽤 중요한 인재다. 지금이라도 비키면 살려주지. 하지만 이 이상 방해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가온교의 권한으로 처형하겠다.”
‘처형’이라는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하람이 다급하게 이 솔의 다리를 붙잡았다.
“안돼, 안돼, 솔아!! 그냥 도망가!”
하람은 알고 있었다. 이 솔은 자신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가온교의 손에 죽는 일이 있더라도, 평생 쫓기는 인생을 산다고 하더라도. 이 솔이 몸을 숙여 하람의 손을 떼어냈다. 눈물을 흘리는 하람에게 상냥하게 웃어준 이 솔은 앞으로 나아가더니 다짐지기 앞에 섰다. 이 솔의 체격이 큰 편인데도 다짐지기 앞에 서니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이 자리에서 죽어야겠지.”
“해보던가. 난 절대 도망 안 가.”
***
수양은 다짐지기 중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로, 현재 마름의 후보로 올라와 있을 정도로 전투능력이 뛰어났다. 마름으로 올라갈 날을 기다리던 수양은 갑작스러운 ‘위’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사냥꾼과 친하다는 무능력자가 있다. 그 무능력자를 죽여.”
납득이 가는 설명도, 덧붙여지는 이유도 없었으나, 수양은 허리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명령에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행할 뿐. 가온교에서의 상하관계는 절대적이다. 가온교의 신도들은 가온교에 속한 가문에서 태어난 교인들과 외부의 일반 신도들로 나뉜다. 외부 신도는 평범하게 기도를 하고 신을 믿는 이들, 교인은 대대로 가온교를 모셔온 가문들이다. 가온교에서 아랫물 이상의 계급을 받을 수 있는 신도는 교인들 뿐이며, 어릴 때부터 가온교의 명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도록 교육받는다.
수양 또한 철저하게 교육받았고, 어릴 적부터 주입된 사상에 반발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게 병적으로 심한 집안까지도 있다고 들었다. 가온교에서 반발심을 가진 이는 **마름 중 ‘청록의 가지’에 포함된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마름뿐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
명령 불복종은 기본적으로 처분되지만, 그 마름은 능력이 특출나 처분을 피하고 있다고 한다. 가온교에 속하면서 가온교를 따르지않는다니 수양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위에서는 명령을 내리며 수양에게 임무에 관한 조건을 덧붙였다.
“단, 조건이 있다. 무능력자를 죽이기 전에 적당히 이유를 붙여서 ‘가온교’가 그 무능력자를 직접적으로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숨길 것, 그리고 붙어다닌다는 그 사냥꾼을 죽이고 무능력자를 죽이도록. 반드시.”
“사냥꾼을 말입니까?”
수양은 당혹스러웠다. 사냥꾼을 죽이라니. 가온교의 다짐지기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사냥꾼과는 절대 싸워서는 안 된다.’
힘으로 서열을 나누는 사냥꾼의 특성상 두억시니와 싸우는 것보다 같은 사냥꾼들끼리 서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인해 인간과의 싸움법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싸울 때는 침입자와 싸우는 짐승마냥 반드시 둘 중 하나가 목숨을 다 해야만 싸움이 끝났다. 사냥꾼의 체술은 다인과의 싸움, 회피와 반격, 한 번의 공격으로 적을 끝내는 기술이 발달하였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사냥꾼과 싸우는 건 패배를 의미했다.
수양의 반응을 본 ‘위’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 것 없어. 자네에게 ‘축복’을 내려줄테니까.”
“…! 축복, 말입니까?”
‘축복’. 이는 신이 가온교에 남긴 위대한 ‘유산’에서 나오는 것으로, 신의 힘을 통해 특수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가온교 내에서 ‘축복’은 사냥꾼의 무기에 내리는 축복과는 다른 개념으로, 호안 마리가 직접 몸에 새겨주는 것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 호안 마리가 자네를 인정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지.”
“여, 영광입니다!! ***하늘에 이 영광을!”
“지금 바로 축복을 받은 뒤 일주일 정도 적응 훈련을 하고 임무를 수행한다.”
“네!”
인정받았다. 마름 중에도 인정받은 자만 받을 수 있다는 ‘축복’을 받다니! 가문의 영광이라 해도 좋다. 뜻밖의 보상에 사냥꾼과 싸운다는 부담감도 사라졌다. 아무리 사냥꾼이라 한들 축복을 받은 자와 전투력을 비교할 수준은 아니니까.
분명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수양은 자신의 볼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주먹을 피했다. 동시에 이 솔의 다리를 짓밟기 위해 움직였으나, 이 솔은 가까스로 피해냈다.
‘어떻게 피하는 거지?’
‘축복’을 받아 강화된 신체능력은 육체적 능력의 정점인 사냥꾼들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런데 정식 사냥꾼도 아닌 녀석이 공격을 피하다니.
‘사냥꾼 중에서도 수재라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수양이 시험 삼아 이 솔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으나,
“큭!!”
이 솔은 이미 부러진 왼팔로 막아내며 최소한의 피해를 입는 선에서 그쳤다. 쓸데없는 호승심으로 억지로 버티지 않고서 그대로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이 솔은 수양과의 싸움으로 이미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처음 수양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갈비뼈가 두 대와 왼팔이 부러지고 오른 손목과 어깨가 나갔다. 그런데도 이 솔은 여전히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도 제 두 다리를 지키면서.
“오만인가, 아집인가? 두 팔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다리를 지키다니. 네가 지금 그런 걸 가릴 상황이 아닐텐데.”
“시끄럽네.”
이 솔은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적을 막고 뒤를 지키는 성벽처럼. 이 솔이 다리만은 다치지 않으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하람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희망을 꺾지 않기 위해. 수양에게는 우스울 뿐이다. 버티는 것도 겨우 하는 주제에 저런 오만을 부리다니.
“네가 진짜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 움직임이 다 보이는데 할 만하지 않아?”
이 솔이 그런 수양을 비웃으며 말했다. 처음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던 이 솔은 두 합만에 수양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예측해 피하고 있었다. ‘축복’을 받지 않았다면 수양이 패배했을 것이다.
“인정하지. 괴물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천재적이구나. 마음같아서는 가온교에 데려가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가온교는 명령을 거부하는 인간이 있을 자리가 없어서.”
*살피: 도시를 총괄하는 계급
**마름: 마리와 애지 바로 아래인, 일반 교인이 올라갈 수 있는 직위 중 가장 높은 전투 계급. 부대에 속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하는 이들과, 마리의 직속 전투부대에 속한 이들로 나뉜다. 가온교를 제외한 다른 세력은 개인적인 병력을 가질 수 없으며 이는 나라 단위도 포함된다.
***가온교에서 충성을 맹세할 때 쓰는 말 중 하나. 자신이 이룬 영광을 신=하늘에게 바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작가의 말
열심히 쓰고 있어효....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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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9. 두 개의 날개조회 : 1,10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5 29.28. 인도(引導)(7)조회 : 1,03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78 28.27. 인도(引導)(6)조회 : 99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28 27.26. 인도(引導)(5)조회 : 1,06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1 26.25. 인도(引導)(4)조회 : 1,02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85 25.24. 인도(引導)(3)조회 : 1,19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6 24.23. 인도(引導)(2)조회 : 1,04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82 23.22. 인도(引導)조회 : 1,1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5 22.21. 파도(5)조회 : 4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62 21.20. 파도(4)조회 : 95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35 20.19. 파도(3)조회 : 81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61 19.18. 파도(2)조회 : 5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70 18.17. 파도조회 : 54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07 17.16. 파문(波紋)(4)조회 : 46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35 16.15. 파문(波紋)(3)조회 : 7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50 15.14. 파문(波紋)(2)조회 : 4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45 14.13. 파문(波紋)조회 : 50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0 13.12. 기억(4)조회 : 54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9 12.11. 기억(3)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4 11.10. 기억(2)조회 : 4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67 10.9. 기억조회 : 4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9 9.8. 혼돈조회 : 4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274 8.7. 변화(4)조회 : 41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25 7.6. 변화(3)조회 : 6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00 6.5. 변화(2)조회 : 5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91 5.4. 변화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17 4.3. 하늘 아래(3)조회 : 58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572 3.2. 하늘 아래(2)조회 : 655 추천 : 2 댓글 : 0 글자 : 5,117 2.1. 하늘 아래조회 : 69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72 1.0. 기도조회 : 2,581 추천 : 1 댓글 : 2 글자 : 4,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