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인도(引導)(5)
조회 : 1,063 추천 : 0 글자수 : 5,251 자 2022-12-03
*이 작품에는 혐오와 차별, 그에 따른 폭력, 기타 부상과 유혈, 사망,이 묘사되어있습니다. 해당 요소를 보기 힘드신 경우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솔은 이 한의 딸로 태어나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심과 적의를 한 몸에 받으며 살아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들, 그저 몸을 지켰을 뿐인데 자신을 문제아 취급하던 교사들, 자신의 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학교.
어머니들을 원망한 적은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 힘들었을 뿐이다. 그 ‘조금’이 쌓여가며 어린 이 솔을 짓눌렀다. 결국 터져버린 그날, 충동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도착한 곳이 중급 거주지인 것도 몰랐다.
“너 울어?”
하람이 자신을 찾아준 그날,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봐주고 끌어안아줬던 그날.
하람은 이 솔의 세계가 되었다.
***
수양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이 솔에게 다가갔다. 마음만 먹으면 한 순간에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아주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이 솔을 향한 위협이나 조롱이 아니었다.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하람에게 주는 압박이었다.
‘나 때문이야.’
수양의 의도대로 하람은 두려움과 자책으로 떨고 있었다.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 숨이 막혔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끄트머리에 선 것처럼 정신이 아득했다.
‘또 나 때문에……!’
하람은 덜덜 떨며 수양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만약, 자신이 죽을테니 이 솔을 살려달라고 빈다면, 그렇게해서 이 솔이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 “정말 그걸로 괜찮은가?” ]
하람의 머릿속을 울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인간이 아닌 듯한 위압감, 우주에 내던져진 것 같은 아득한 공포와 거대한 존개감이 몸을 짓눌렀다. 그런데도 하람은 그 목소리를 다정하다 느꼈다.
목소리는 하람의 뒤에서 손을 뻗어 다정하게 두 볼을 감쌌다. 하람은 뒤를 돌아 그 ‘누군가’를 확인하고 싶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 “이대로는 그대가 아끼는 자도, 그대도 죽겠지.” ]
“아, 안돼…….”
감정없는 목소리가 상냥하게 하람의 볼을 어루만졌다.
[ “살리고 싶나?” ]
하람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일을 알고 있다는 듯 손을 뻗어왔다.
[ “그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도와주겠다.” ]
“도와줘.”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 솔이 살 수만 있다면. 하람에게 이 솔은 삶 그 자체였다. 어린 그날, 이 솔이 자신을 안아주었던 그 순간부터.
이 솔의 하는 모든 것이 하람을 위한 일인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무능력자와 어울린다며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미친듯이 노력해서 수석 자리를 지키는 것도, 학생인데도 목숨을 걸고 두억시니 토벌을 가는 것도 자신을 위함임을 알았다. 그와는 별개로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하람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무능력자의 부모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이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부터, 사람들은 가족에게 찾아오는 모든 불행은 하람의 죄라고 수군거렸다. 부모님이 하람에게 잘못이 없다 말해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을 돌아가셨다. 한 순간의 사고로. 사고가 난 순간 하람도 부모님 옆에 있었다. 아버지가 하람을 감싸주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능력자를 자식이라고 키우니까 벌 받아서 죽은 거 아니야?”
그 말을 들은 하람은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이라 믿게 되었다. 자신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에게 불행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 솔의 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이상 욕심내면 이 솔을 영영 잃을 것 같아서.
참고, 웃으며 그저 그 옆에 있기만을 바랐으나 눈 앞에 펼쳐진 결과는 참혹했다. 이 솔은 자신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 “그 길은 고난이 가득하고, 때로는 절망스럽고 비참해서, 너 스스로를 원망할지도 몰라.” ]
“원망 안 해!”
무능력자의 부모니까, 무능력자니까, 무능력자 옆에 있으니까. 모두가 불행은 무능력자인 하람 탓이라고, 그게 운명인 거라고 했다.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신을 지금까지 얼마나 원망했던가.
지금 저 다짐지기가 찾아온 것도 운명이라면, 이 솔과 자신이 이대로 죽는 게 운명이라면.
“그런 운명따위 X까라 그래!!! 난 이제 아무것도 안 잃어!!”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부모님을 사고로 죽인 자가 비아냥거릴 때 울기만 했던 것도, 그저 이 솔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하루하루도, 이 솔이 맞기만 할 때 도와주지도 못하고 보고만 있어야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도.
‘그녀’는 하람의 등에 손을 올려놓았다.
[ “그대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자, 내가 하는 건 ‘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 ]
숨이 막혀오는 고통에 하람은 몸을 덜덜 떨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죽음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무력감이 분노가 되어 심장에서 전신으로 퍼졌다.
온 몸이 뜨겁다. 마치 불길에 삼켜진 것처럼. ‘그것’은 몸 속을 돌며 죽음을 삼키고 등에서 뻗어나와 형상을 갖추었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날개’.
[ “그대여,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 그대가 원하는 곳으로.” ]
갑자기 퍼져나오는 빛에 이 솔과 수양의 시선이 하람에게로 향했다.
“저, 저건!”
하람의 등을 본 수양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얀빛을 내는 불꽃 형상의 날개. 느껴지는 건, 분명 딱 한 번 느껴본 적 있는 거대한 힘. ‘축복’을 수여받을 때 느꼈던 ‘유산’. 그 힘의 근원.
“어떻게, 어떻게 네가!!”
하람은 수양의 말을 무시하고 제 앞에서 당황하고 있는 이 솔에게 손을 뻗었다.
“솔아!”
“안돼!!”
수양이 두 사람을 막으려했으나, 하람이 이솔의 손을 붙잡는 것이 더 빨랐다. 손을 맞잡고, 그대로 이 솔을 끌어안았다. 하람은 이 솔의 어깨너머로 수양을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눈동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불타고 있었다.
서로를 끌어안은 두 사람이 불꽃에 감싸이며 날개에 삼켜졌다.
***
이 솔은 아무것도 없는 새카만 공간에서 눈을 떴다. 몸은 물에 반쯤 잠겨있었으나 가라앉지는 않았다. 이 솔이 뻐근한 몸을 일으키자, 단단한 얼음 위에 얇게 깔린 것처럼 물로 덮인 지면은 단단하게 다리를 지탱했다.
'여기가 어디지?'
왜 이렇게 몸이 아픈 건지, 여기 오기 전에는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으나, 그 점이 큰 문제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이 솔은 평온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밤에 삼켜진 듯 끝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공간. 깊은 어둠 속에는 하얀 빛을 내는 조각들이 별처럼 퍼져있었다. 그럼에도 주변은 여전히 새카맣고, 반대로 자신의 몸은 너무나도 잘 보이는 게 신기했다.
[ “그대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 이 솔의 얼굴을 감싸고 가볍게 뒤로 젖혔다. 깜짝 놀란 이 솔은 그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굳어버렸다.
[ “와주었구나, 그대여.” ]
한 여자가 고개를 숙여 이 솔과 눈을 마주친 채 웃고 있었다. 온 몸에서 하얀 빛을 내는 여인. 그 환한 빛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쩐지 익숙해보였다. 이 솔은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인의 긴 머리카락이 천천히 흩날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여자가 허공에 앉아있다는 것과 등 뒤에 ‘날개’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타오르는 불꽃같이 넘실거리는 한 쌍의 날개가. 한참이 지나서야 이 솔은 가까스로 입술을 움직여 목소리를 냈다.
“……누구시죠?”
[ “내가 누군지는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지.” ]
이 솔의 말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 “나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다.” ]
“그게 무슨…….”
[ “과거부터 그대와 함께 했고, 현재 그대의 앞에 존재하며, 미래에도 그대 옆에 있을 테니까.” ]
여자는 웃으며 이 솔을 놔주었다. 이 솔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공중에 몸을 띄운 채로 이 솔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 솔은 그녀와 시선이 얽힌 듯한 착각이들었다.
[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저를…?”
이 솔은 갑자기 자신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에 당황했다. 허둥지둥거리는 이 솔의 눈가에 입을 맞춘 여인은 이 솔에게서 떨어져 손을 내밀었다.
[ “그대는 깨닫지 못했으나, 지금 그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
이솔은 여인이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어쩐지 조금 굳은 것 같았다. 마치 두려워하는 것처럼.
[ “그대여, 내 손을 잡을 수 있겠나?” ]
이 솔은 떨리고 있는 여린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손을 잡은 후, 어떻게 될지 이 솔은 알고 있다. 후회하고, 절망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자신이 손을 잡지 않는다면 그녀는 홀로 그 길을 걸어야하니까.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이 솔을 바라보았다.
[ “이 길은 매우 험하단다. 그대는 후회하게 될 거야. 나를, 나를 원망하게 될 거야.” ]
“원망하지 않아요.”
이 솔은 손을 놓칠세라 꽉 붙잡았다.
“이 길이 힘드니까, 그래서 후회하고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 난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 당신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을 거예요”
여인은 이 솔의 말에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이 솔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는 이 솔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 “이 길은 그대의 힘으로는 헤쳐 나가기 힘드니, 내 날개를 빌려주마.” ]
뜨거운 무언가가 손을 통해 흘러들어왔다. 제 몸을 태울 것처럼 뜨거웠으나, 이 솔은 입술을 깨문 채로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 이 손을 놓으면, 다시는 잡을 수 없다. 그녀를 놓치는 것이 불 타 죽는 것보다 그것이 두려웠다.
잠시 후 불에 타는 감각이 사라지고 이 솔의 몸에 따뜻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 손등에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날개의 문양이 새겨졌으며, 동시에 여인의 등에 있던 날개는 반쪽만 남게 되었다. 여인은 이 솔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 “날개의 이름은 그대의 운명이자 힘의 이름.” ]
가만히 이 솔을 끌어안고 있던 여인은 아쉬운 듯이 떨어졌다. 여인은 천천히 이 솔과 멀어지고 있었다. 이 솔이 간절하게 손을 뻗어 봐도 닿을 수 없었다.
[ “이 날개의 이름은 인도의 날개.” ]
여인은 한참이나 이 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을 강하게 새기듯이.
[ “이 날개가 그대의 의지를 인도하리니-.” ]
바닥이 꺼지며 이 솔의 주변이 삼켜져 간다. 끝 없는 아래로 떨어지면서도 이 솔은 끝까지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 “나의 나비여, 길을 잃은 날개를 인도하라.” ]
이 솔은 이 한의 딸로 태어나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심과 적의를 한 몸에 받으며 살아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들, 그저 몸을 지켰을 뿐인데 자신을 문제아 취급하던 교사들, 자신의 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학교.
어머니들을 원망한 적은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 힘들었을 뿐이다. 그 ‘조금’이 쌓여가며 어린 이 솔을 짓눌렀다. 결국 터져버린 그날, 충동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도착한 곳이 중급 거주지인 것도 몰랐다.
“너 울어?”
하람이 자신을 찾아준 그날,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봐주고 끌어안아줬던 그날.
하람은 이 솔의 세계가 되었다.
***
수양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이 솔에게 다가갔다. 마음만 먹으면 한 순간에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아주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이 솔을 향한 위협이나 조롱이 아니었다.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하람에게 주는 압박이었다.
‘나 때문이야.’
수양의 의도대로 하람은 두려움과 자책으로 떨고 있었다.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 숨이 막혔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끄트머리에 선 것처럼 정신이 아득했다.
‘또 나 때문에……!’
하람은 덜덜 떨며 수양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만약, 자신이 죽을테니 이 솔을 살려달라고 빈다면, 그렇게해서 이 솔이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 “정말 그걸로 괜찮은가?” ]
하람의 머릿속을 울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인간이 아닌 듯한 위압감, 우주에 내던져진 것 같은 아득한 공포와 거대한 존개감이 몸을 짓눌렀다. 그런데도 하람은 그 목소리를 다정하다 느꼈다.
목소리는 하람의 뒤에서 손을 뻗어 다정하게 두 볼을 감쌌다. 하람은 뒤를 돌아 그 ‘누군가’를 확인하고 싶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 “이대로는 그대가 아끼는 자도, 그대도 죽겠지.” ]
“아, 안돼…….”
감정없는 목소리가 상냥하게 하람의 볼을 어루만졌다.
[ “살리고 싶나?” ]
하람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일을 알고 있다는 듯 손을 뻗어왔다.
[ “그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도와주겠다.” ]
“도와줘.”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 솔이 살 수만 있다면. 하람에게 이 솔은 삶 그 자체였다. 어린 그날, 이 솔이 자신을 안아주었던 그 순간부터.
이 솔의 하는 모든 것이 하람을 위한 일인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무능력자와 어울린다며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미친듯이 노력해서 수석 자리를 지키는 것도, 학생인데도 목숨을 걸고 두억시니 토벌을 가는 것도 자신을 위함임을 알았다. 그와는 별개로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하람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무능력자의 부모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이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부터, 사람들은 가족에게 찾아오는 모든 불행은 하람의 죄라고 수군거렸다. 부모님이 하람에게 잘못이 없다 말해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을 돌아가셨다. 한 순간의 사고로. 사고가 난 순간 하람도 부모님 옆에 있었다. 아버지가 하람을 감싸주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능력자를 자식이라고 키우니까 벌 받아서 죽은 거 아니야?”
그 말을 들은 하람은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이라 믿게 되었다. 자신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에게 불행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 솔의 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이상 욕심내면 이 솔을 영영 잃을 것 같아서.
참고, 웃으며 그저 그 옆에 있기만을 바랐으나 눈 앞에 펼쳐진 결과는 참혹했다. 이 솔은 자신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 “그 길은 고난이 가득하고, 때로는 절망스럽고 비참해서, 너 스스로를 원망할지도 몰라.” ]
“원망 안 해!”
무능력자의 부모니까, 무능력자니까, 무능력자 옆에 있으니까. 모두가 불행은 무능력자인 하람 탓이라고, 그게 운명인 거라고 했다.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신을 지금까지 얼마나 원망했던가.
지금 저 다짐지기가 찾아온 것도 운명이라면, 이 솔과 자신이 이대로 죽는 게 운명이라면.
“그런 운명따위 X까라 그래!!! 난 이제 아무것도 안 잃어!!”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부모님을 사고로 죽인 자가 비아냥거릴 때 울기만 했던 것도, 그저 이 솔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하루하루도, 이 솔이 맞기만 할 때 도와주지도 못하고 보고만 있어야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도.
‘그녀’는 하람의 등에 손을 올려놓았다.
[ “그대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자, 내가 하는 건 ‘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 ]
숨이 막혀오는 고통에 하람은 몸을 덜덜 떨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죽음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무력감이 분노가 되어 심장에서 전신으로 퍼졌다.
온 몸이 뜨겁다. 마치 불길에 삼켜진 것처럼. ‘그것’은 몸 속을 돌며 죽음을 삼키고 등에서 뻗어나와 형상을 갖추었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날개’.
[ “그대여,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 그대가 원하는 곳으로.” ]
갑자기 퍼져나오는 빛에 이 솔과 수양의 시선이 하람에게로 향했다.
“저, 저건!”
하람의 등을 본 수양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얀빛을 내는 불꽃 형상의 날개. 느껴지는 건, 분명 딱 한 번 느껴본 적 있는 거대한 힘. ‘축복’을 수여받을 때 느꼈던 ‘유산’. 그 힘의 근원.
“어떻게, 어떻게 네가!!”
하람은 수양의 말을 무시하고 제 앞에서 당황하고 있는 이 솔에게 손을 뻗었다.
“솔아!”
“안돼!!”
수양이 두 사람을 막으려했으나, 하람이 이솔의 손을 붙잡는 것이 더 빨랐다. 손을 맞잡고, 그대로 이 솔을 끌어안았다. 하람은 이 솔의 어깨너머로 수양을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눈동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불타고 있었다.
서로를 끌어안은 두 사람이 불꽃에 감싸이며 날개에 삼켜졌다.
***
이 솔은 아무것도 없는 새카만 공간에서 눈을 떴다. 몸은 물에 반쯤 잠겨있었으나 가라앉지는 않았다. 이 솔이 뻐근한 몸을 일으키자, 단단한 얼음 위에 얇게 깔린 것처럼 물로 덮인 지면은 단단하게 다리를 지탱했다.
'여기가 어디지?'
왜 이렇게 몸이 아픈 건지, 여기 오기 전에는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으나, 그 점이 큰 문제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이 솔은 평온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밤에 삼켜진 듯 끝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공간. 깊은 어둠 속에는 하얀 빛을 내는 조각들이 별처럼 퍼져있었다. 그럼에도 주변은 여전히 새카맣고, 반대로 자신의 몸은 너무나도 잘 보이는 게 신기했다.
[ “그대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 이 솔의 얼굴을 감싸고 가볍게 뒤로 젖혔다. 깜짝 놀란 이 솔은 그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굳어버렸다.
[ “와주었구나, 그대여.” ]
한 여자가 고개를 숙여 이 솔과 눈을 마주친 채 웃고 있었다. 온 몸에서 하얀 빛을 내는 여인. 그 환한 빛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쩐지 익숙해보였다. 이 솔은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인의 긴 머리카락이 천천히 흩날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여자가 허공에 앉아있다는 것과 등 뒤에 ‘날개’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타오르는 불꽃같이 넘실거리는 한 쌍의 날개가. 한참이 지나서야 이 솔은 가까스로 입술을 움직여 목소리를 냈다.
“……누구시죠?”
[ “내가 누군지는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지.” ]
이 솔의 말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 “나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다.” ]
“그게 무슨…….”
[ “과거부터 그대와 함께 했고, 현재 그대의 앞에 존재하며, 미래에도 그대 옆에 있을 테니까.” ]
여자는 웃으며 이 솔을 놔주었다. 이 솔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공중에 몸을 띄운 채로 이 솔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 솔은 그녀와 시선이 얽힌 듯한 착각이들었다.
[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저를…?”
이 솔은 갑자기 자신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에 당황했다. 허둥지둥거리는 이 솔의 눈가에 입을 맞춘 여인은 이 솔에게서 떨어져 손을 내밀었다.
[ “그대는 깨닫지 못했으나, 지금 그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
이솔은 여인이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어쩐지 조금 굳은 것 같았다. 마치 두려워하는 것처럼.
[ “그대여, 내 손을 잡을 수 있겠나?” ]
이 솔은 떨리고 있는 여린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손을 잡은 후, 어떻게 될지 이 솔은 알고 있다. 후회하고, 절망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자신이 손을 잡지 않는다면 그녀는 홀로 그 길을 걸어야하니까.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이 솔을 바라보았다.
[ “이 길은 매우 험하단다. 그대는 후회하게 될 거야. 나를, 나를 원망하게 될 거야.” ]
“원망하지 않아요.”
이 솔은 손을 놓칠세라 꽉 붙잡았다.
“이 길이 힘드니까, 그래서 후회하고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 난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 당신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을 거예요”
여인은 이 솔의 말에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이 솔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는 이 솔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 “이 길은 그대의 힘으로는 헤쳐 나가기 힘드니, 내 날개를 빌려주마.” ]
뜨거운 무언가가 손을 통해 흘러들어왔다. 제 몸을 태울 것처럼 뜨거웠으나, 이 솔은 입술을 깨문 채로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 이 손을 놓으면, 다시는 잡을 수 없다. 그녀를 놓치는 것이 불 타 죽는 것보다 그것이 두려웠다.
잠시 후 불에 타는 감각이 사라지고 이 솔의 몸에 따뜻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 손등에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날개의 문양이 새겨졌으며, 동시에 여인의 등에 있던 날개는 반쪽만 남게 되었다. 여인은 이 솔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 “날개의 이름은 그대의 운명이자 힘의 이름.” ]
가만히 이 솔을 끌어안고 있던 여인은 아쉬운 듯이 떨어졌다. 여인은 천천히 이 솔과 멀어지고 있었다. 이 솔이 간절하게 손을 뻗어 봐도 닿을 수 없었다.
[ “이 날개의 이름은 인도의 날개.” ]
여인은 한참이나 이 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을 강하게 새기듯이.
[ “이 날개가 그대의 의지를 인도하리니-.” ]
바닥이 꺼지며 이 솔의 주변이 삼켜져 간다. 끝 없는 아래로 떨어지면서도 이 솔은 끝까지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 “나의 나비여, 길을 잃은 날개를 인도하라.” ]
작가의 말
띄엄띄엄 연재보다는 휴재가 나을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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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9. 두 개의 날개조회 : 1,10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5 29.28. 인도(引導)(7)조회 : 1,03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78 28.27. 인도(引導)(6)조회 : 99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28 27.26. 인도(引導)(5)조회 : 1,07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1 26.25. 인도(引導)(4)조회 : 1,02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85 25.24. 인도(引導)(3)조회 : 1,19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6 24.23. 인도(引導)(2)조회 : 1,04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82 23.22. 인도(引導)조회 : 1,1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5 22.21. 파도(5)조회 : 4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62 21.20. 파도(4)조회 : 95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35 20.19. 파도(3)조회 : 81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61 19.18. 파도(2)조회 : 5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70 18.17. 파도조회 : 54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07 17.16. 파문(波紋)(4)조회 : 46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35 16.15. 파문(波紋)(3)조회 : 7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50 15.14. 파문(波紋)(2)조회 : 4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45 14.13. 파문(波紋)조회 : 50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0 13.12. 기억(4)조회 : 54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9 12.11. 기억(3)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4 11.10. 기억(2)조회 : 4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67 10.9. 기억조회 : 4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9 9.8. 혼돈조회 : 4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274 8.7. 변화(4)조회 : 41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25 7.6. 변화(3)조회 : 6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00 6.5. 변화(2)조회 : 5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91 5.4. 변화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17 4.3. 하늘 아래(3)조회 : 58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572 3.2. 하늘 아래(2)조회 : 655 추천 : 2 댓글 : 0 글자 : 5,117 2.1. 하늘 아래조회 : 69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72 1.0. 기도조회 : 2,581 추천 : 1 댓글 : 2 글자 : 4,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