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인도(引導)(6)
조회 : 984 추천 : 0 글자수 : 5,028 자 2022-12-05
*이 작품에는 혐오와 차별, 그에 따른 폭력, 기타 부상과 유혈, 사망이 묘사되어있습니다. 해당 요소를 보기 힘드신 경우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수양은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를 바라보았다. 저 안에 하람과 이 솔이 있는데, 거대한 힘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 때문에 감히 다가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로 겨우 버티며 서 있는 것이 고작.
“어째서…….”
분명 그 날개는 무능력자의 등에서 솟아났다.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에서 느껴진 건 가온교에서 ‘신’이라 부르는 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신의 힘’은 가온교의 것인데, 가온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 저런 무능력자에게 있는 것인가. 이 사회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가 신이라 불리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어째서 네가!!”
마치 자신의 인생이 뿌리부터 부정당한 감각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양이 현실을 부정하는 사이 하얀빛의 구체가 꺼지는 불처럼 사그라졌다. 하람에게 안겼던 이 솔은 그녀를 안아 들고서 서 있었다. 다친 부위도 전부 나은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오른쪽 손등에 새겨진 날개의 문양은 수양이 받은 ‘축복’, 아니 그보다 더 높은 것. ‘축복’을 받을 때 잠시나마 느꼈던 ‘유산’에 가까웠다.
경악하는 수양을 무시하고 이 솔은 하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람은 지친 듯이 몸을 겨우 가눈 채 앉아서는 이 솔을 바라보았다. 안심하라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보낸 이 솔은, 수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숨기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날개’의 위압감이 더해지니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넌 뒤졌다.”
이 솔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축복’을 받은 수양조차 대응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그리고,
퍽!!
강렬한 소리와 함께 이 솔의 주먹이 수양의 안면을 강타했다. 수양은 그대로 바닥을 구르더니 정신을 잃었다. 이 솔은 주먹을 펴고서 손을 털었다.
‘죽지 않게 조절은 했는데 괜찮은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죽이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온교의 다짐지기를 죽일 수는 없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니까. 안 그래도 충격을 받았을 하람에게, 십 년을 알고 지낸 동생이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이 솔은 잠시 수양을 살펴보다 몸을 숙여 하람을 챙겼다.
“언니! 괜찮아요?”
“으응…. 괜찮, 아. 조금 힘이 빠지는 것뿐이야.”
하람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하람은 몸을 일으키려고 땅을 손으로 짚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몇 번이고 손이 미끄러지자, 이 솔은 하람을 안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잃은 다짐지기가 신경 쓰이기는 했으나, 어차피 이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습격자가 정신이 들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보다 하람을 눕히는 게 먼저였다. 하람을 한쪽 팔로 안고 여유롭게 방까지 데려간 이 솔은 조심스럽게 하람을 눕혔다.
“언니, 좀 쉬세요. 물이라도 가져올게요.”
일어서려는 이 솔을 하람이 붙잡았다.
“괜찮아. 그냥 옆에 있어 줘.”
이 솔은 두말없이 바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 솔이 손을 잡아주자, 하람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죽는 줄 알았어.”
“늦게 와서 죄송해요.”
“바보야. 나 말고.”
이 솔의 죄책감 어린 목소리에 하람이 웃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보다, 이 솔이 혼자 남게 되는 것이 괴로웠다. 이 솔이 죽고 자신이 혼자 남는 건 더욱더. 하람은 이 솔과 맞잡은 손에서 체온을 느끼며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바꿨어.”
이 솔과 자신이 죽는 운명을 바꿨다. 결국, 이 솔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지만 하람은 알고 있다. 자신의 선택과 힘으로 바꾼 일이라는 걸. 포기하지 않고 맞서기로 했기 때문에 바꿀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느껴지는 ‘힘’. 몸 안에 돌고 있는 이 힘은 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신비로우면서도 포근한 힘.
[ “그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도와주겠다.” ]
자신을 도와준 그 목소리는 대체 누구였을까? 그녀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하람은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감정 없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 지친 듯이 갈라지던 그 탁한 목소리가 누구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람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 솔과 눈을 맞췄다.
“솔이 너는 왜 나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봐?”
“뭐가요?”
“이 힘 말이야.”
“아.”
찰나의 정적 이후, 하람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아. 라니, 뭐야!! 네 일이잖아, 바보야!”
“아니, 그……. 언니가 걱정돼서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걸 잊어버리면 어떡해! 정말~”
이 솔은 늘 이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언제나 이 솔 자신보다 하람이 먼저였던. 하람이 몸을 벌떡 일으키자 이 솔이 호들갑을 떨며 다시 그녀를 눕히려 했다.
“언니, 조금 더 쉬어요!”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급한 일이 있잖아?”
하람은 자기 왼손과 이 솔의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불처럼 생긴 문양. 희미하게 빛까지 나고 있는 그 문양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날개……라는 건 알겠어. 대체 이게 뭐지?”
“네? 어, 언니, 기억 안 나요?”
이 솔은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그야, 자신에게 날개를 주며 이름을 알려주고 날개를 나눠준 건 하람이었으니,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데 하람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뭐가?”
“이 날개를 준 건도, 날개에 대해 말해준 것도 언니잖아요!”
이 솔의 말에 하람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게……. 이 날개를 너한테 준 게 ‘나’라는 사실은 알아, 그런데 기억에는 없어.”
“기억에 없다니요?”
“누가 주입한 지식처럼 알고만 있을 뿐이야. 이 날개가 뭔지는 나도 모르겠어.”
이 솔은 순간 ‘그녀’가 한 말을 떠올렸다.
[ ‘그대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
[ ‘나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다.’ ]
그녀의 모호하고 신비했던 말들과 당시 자신이 느꼈던 감정. 후회, 두려움.
만약, 만약 그 감정이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에 겪을 감정이라면? 자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후회할 거라 확신했던 그 말도, 그런 이유에서?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이 솔은 어째서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미래의 하람이 시간여행이라도 했단 말인가? 이 솔이 혼자 끙끙거리며 말을 하지 않으니 하람은 이 솔의 등을 내려쳤다.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겠지만, 이 솔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릴 수는 있었다.
“혼자서 고민만 하지 말고 나도 알려줘야지! 이건 너와 나의 일이니까!”
“그렇, 죠.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죠.”
하람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말해야 할까? 하람에게, 미래에 크게 후회할 수도 있다고. 그 길이 너무 험할지도 모른다고. 슬픔이 가득했던 ‘그녀’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망설이는 이 솔의 어깨를 다정히 감싼 하람은,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다.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솔아, 혼자 떠안으려고만 하지 마. 외로워진단 말이야.”
“……언니.”
두 사람의 손등에 생긴 날개 모양의 문양, 몸에 흐르는 신비한 힘. 그리고 ‘그 사람’이 했던 말. 모두 이 솔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숨길 일도 아니거니와, 정말 미래에 후회할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하람도 알아야만 했다. 이 솔은 하람의 팔을 풀고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죄송해요, 언니. 전부 말할게요.”
이 솔은 하람에게 모두 이야기했다. 자신이 그 장소에 처음 눈을 떴을 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것이라던가, 그곳에서 ‘그녀’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녀가 자신에게 한 말들을 전부.
“인도(引導)의 날개?”
“예.”
“길 잃은 날개를 인도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잘 모르겠어요. 그것까지는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제 의지를 언급한 걸 보면 제가 뭔가를 해야 하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 날개에 대한 건 대충 알겠는데,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날개를 받으며 필요한 지식도 어느 정도 흘러들어온 듯했다. 날개의 이름. 날개의 힘을 끌어내는 방법 같은 기초적인 정보들이.
“그럼 나 말고 다른 날개도 있다는 뜻이네.”
“그것도 도움이 필요한 날개가 말이죠.”
“……뭔가, 불안해. 찾을 수 있을까?”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무는 하람의 손을 이 솔이 감싸 쥐었다. 하람이 고개를 들자,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는 눈동자가 보였다.
“빨리 찾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지금 그 애가 내 옆에 없다는 게 불안할 정도로.”
여유 없는 하람의 모습을 보고 이 솔은 어떻게든 찾아주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약이 너무 많았다. 만약 날개를 가진 이가 다른 도시에 있다면?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일은 가온교의 허가가 필요했다. 다름 아닌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그 가온교의 허락이.
이 솔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나 무능하다는 기분을 느껴본 건 처음이다. 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에 직면한 무력감.
“일단 진정하세요, 언니. 손톱은 물어뜯지 마시고요.”
“으응.”
하람은 이 솔의 손을 세게 맞잡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떨림을 멈춰줄 수가 없었다.
“언니, 일단은-”
띵동.
갑작스럽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언니, 오늘 올 사람 있어요?”
“아니? 옆집 아주머니도 여행가셔서 아무도 없는데…….”
하람은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날개 때문에 잊고 있었으나 가온교의 다짐지기가 하람을 죽이러 왔고, 이 솔은 그런 다짐지기를 쓰러뜨렸다. 만약 그 일로 가온교가 찾아온 것이라면? 다시 하람을 죽이고, 다짐지기를 공격한 이 솔에게 처벌을 내리러 온 것이라면….
“……무시할까?”
“진짜 가온교라면 그냥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몰라요.”
초인종은 계속해서 울렸다. 이 솔과 하람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손을 맞잡은 채로 현관문 앞까지 내려왔다. 이 솔은 하람을 제 몸 뒤에 숨기듯 막아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문 좀 열어주지?”
“네가 뭔데?”
이 솔은 당황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아까 그 다짐지기만큼의 신체능력이라면 알아차릴 것이라 예상했으니까.
“나? 가온교지. 저기 널브러진 애하고는 다른 소속.”
“뭐?”
수양은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를 바라보았다. 저 안에 하람과 이 솔이 있는데, 거대한 힘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 때문에 감히 다가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로 겨우 버티며 서 있는 것이 고작.
“어째서…….”
분명 그 날개는 무능력자의 등에서 솟아났다.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에서 느껴진 건 가온교에서 ‘신’이라 부르는 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신의 힘’은 가온교의 것인데, 가온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 저런 무능력자에게 있는 것인가. 이 사회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가 신이라 불리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어째서 네가!!”
마치 자신의 인생이 뿌리부터 부정당한 감각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양이 현실을 부정하는 사이 하얀빛의 구체가 꺼지는 불처럼 사그라졌다. 하람에게 안겼던 이 솔은 그녀를 안아 들고서 서 있었다. 다친 부위도 전부 나은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오른쪽 손등에 새겨진 날개의 문양은 수양이 받은 ‘축복’, 아니 그보다 더 높은 것. ‘축복’을 받을 때 잠시나마 느꼈던 ‘유산’에 가까웠다.
경악하는 수양을 무시하고 이 솔은 하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람은 지친 듯이 몸을 겨우 가눈 채 앉아서는 이 솔을 바라보았다. 안심하라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보낸 이 솔은, 수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숨기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날개’의 위압감이 더해지니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넌 뒤졌다.”
이 솔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축복’을 받은 수양조차 대응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그리고,
퍽!!
강렬한 소리와 함께 이 솔의 주먹이 수양의 안면을 강타했다. 수양은 그대로 바닥을 구르더니 정신을 잃었다. 이 솔은 주먹을 펴고서 손을 털었다.
‘죽지 않게 조절은 했는데 괜찮은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죽이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온교의 다짐지기를 죽일 수는 없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니까. 안 그래도 충격을 받았을 하람에게, 십 년을 알고 지낸 동생이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이 솔은 잠시 수양을 살펴보다 몸을 숙여 하람을 챙겼다.
“언니! 괜찮아요?”
“으응…. 괜찮, 아. 조금 힘이 빠지는 것뿐이야.”
하람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하람은 몸을 일으키려고 땅을 손으로 짚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몇 번이고 손이 미끄러지자, 이 솔은 하람을 안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잃은 다짐지기가 신경 쓰이기는 했으나, 어차피 이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습격자가 정신이 들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보다 하람을 눕히는 게 먼저였다. 하람을 한쪽 팔로 안고 여유롭게 방까지 데려간 이 솔은 조심스럽게 하람을 눕혔다.
“언니, 좀 쉬세요. 물이라도 가져올게요.”
일어서려는 이 솔을 하람이 붙잡았다.
“괜찮아. 그냥 옆에 있어 줘.”
이 솔은 두말없이 바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 솔이 손을 잡아주자, 하람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죽는 줄 알았어.”
“늦게 와서 죄송해요.”
“바보야. 나 말고.”
이 솔의 죄책감 어린 목소리에 하람이 웃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보다, 이 솔이 혼자 남게 되는 것이 괴로웠다. 이 솔이 죽고 자신이 혼자 남는 건 더욱더. 하람은 이 솔과 맞잡은 손에서 체온을 느끼며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바꿨어.”
이 솔과 자신이 죽는 운명을 바꿨다. 결국, 이 솔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지만 하람은 알고 있다. 자신의 선택과 힘으로 바꾼 일이라는 걸. 포기하지 않고 맞서기로 했기 때문에 바꿀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느껴지는 ‘힘’. 몸 안에 돌고 있는 이 힘은 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신비로우면서도 포근한 힘.
[ “그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도와주겠다.” ]
자신을 도와준 그 목소리는 대체 누구였을까? 그녀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하람은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감정 없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 지친 듯이 갈라지던 그 탁한 목소리가 누구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람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 솔과 눈을 맞췄다.
“솔이 너는 왜 나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봐?”
“뭐가요?”
“이 힘 말이야.”
“아.”
찰나의 정적 이후, 하람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아. 라니, 뭐야!! 네 일이잖아, 바보야!”
“아니, 그……. 언니가 걱정돼서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걸 잊어버리면 어떡해! 정말~”
이 솔은 늘 이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언제나 이 솔 자신보다 하람이 먼저였던. 하람이 몸을 벌떡 일으키자 이 솔이 호들갑을 떨며 다시 그녀를 눕히려 했다.
“언니, 조금 더 쉬어요!”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급한 일이 있잖아?”
하람은 자기 왼손과 이 솔의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불처럼 생긴 문양. 희미하게 빛까지 나고 있는 그 문양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날개……라는 건 알겠어. 대체 이게 뭐지?”
“네? 어, 언니, 기억 안 나요?”
이 솔은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그야, 자신에게 날개를 주며 이름을 알려주고 날개를 나눠준 건 하람이었으니,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데 하람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뭐가?”
“이 날개를 준 건도, 날개에 대해 말해준 것도 언니잖아요!”
이 솔의 말에 하람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게……. 이 날개를 너한테 준 게 ‘나’라는 사실은 알아, 그런데 기억에는 없어.”
“기억에 없다니요?”
“누가 주입한 지식처럼 알고만 있을 뿐이야. 이 날개가 뭔지는 나도 모르겠어.”
이 솔은 순간 ‘그녀’가 한 말을 떠올렸다.
[ ‘그대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
[ ‘나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다.’ ]
그녀의 모호하고 신비했던 말들과 당시 자신이 느꼈던 감정. 후회, 두려움.
만약, 만약 그 감정이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에 겪을 감정이라면? 자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후회할 거라 확신했던 그 말도, 그런 이유에서?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이 솔은 어째서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미래의 하람이 시간여행이라도 했단 말인가? 이 솔이 혼자 끙끙거리며 말을 하지 않으니 하람은 이 솔의 등을 내려쳤다.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겠지만, 이 솔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릴 수는 있었다.
“혼자서 고민만 하지 말고 나도 알려줘야지! 이건 너와 나의 일이니까!”
“그렇, 죠.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죠.”
하람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말해야 할까? 하람에게, 미래에 크게 후회할 수도 있다고. 그 길이 너무 험할지도 모른다고. 슬픔이 가득했던 ‘그녀’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망설이는 이 솔의 어깨를 다정히 감싼 하람은,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다.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솔아, 혼자 떠안으려고만 하지 마. 외로워진단 말이야.”
“……언니.”
두 사람의 손등에 생긴 날개 모양의 문양, 몸에 흐르는 신비한 힘. 그리고 ‘그 사람’이 했던 말. 모두 이 솔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숨길 일도 아니거니와, 정말 미래에 후회할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하람도 알아야만 했다. 이 솔은 하람의 팔을 풀고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죄송해요, 언니. 전부 말할게요.”
이 솔은 하람에게 모두 이야기했다. 자신이 그 장소에 처음 눈을 떴을 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것이라던가, 그곳에서 ‘그녀’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녀가 자신에게 한 말들을 전부.
“인도(引導)의 날개?”
“예.”
“길 잃은 날개를 인도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잘 모르겠어요. 그것까지는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제 의지를 언급한 걸 보면 제가 뭔가를 해야 하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 날개에 대한 건 대충 알겠는데,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날개를 받으며 필요한 지식도 어느 정도 흘러들어온 듯했다. 날개의 이름. 날개의 힘을 끌어내는 방법 같은 기초적인 정보들이.
“그럼 나 말고 다른 날개도 있다는 뜻이네.”
“그것도 도움이 필요한 날개가 말이죠.”
“……뭔가, 불안해. 찾을 수 있을까?”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무는 하람의 손을 이 솔이 감싸 쥐었다. 하람이 고개를 들자,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는 눈동자가 보였다.
“빨리 찾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지금 그 애가 내 옆에 없다는 게 불안할 정도로.”
여유 없는 하람의 모습을 보고 이 솔은 어떻게든 찾아주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약이 너무 많았다. 만약 날개를 가진 이가 다른 도시에 있다면?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일은 가온교의 허가가 필요했다. 다름 아닌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그 가온교의 허락이.
이 솔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나 무능하다는 기분을 느껴본 건 처음이다. 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에 직면한 무력감.
“일단 진정하세요, 언니. 손톱은 물어뜯지 마시고요.”
“으응.”
하람은 이 솔의 손을 세게 맞잡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떨림을 멈춰줄 수가 없었다.
“언니, 일단은-”
띵동.
갑작스럽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언니, 오늘 올 사람 있어요?”
“아니? 옆집 아주머니도 여행가셔서 아무도 없는데…….”
하람은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날개 때문에 잊고 있었으나 가온교의 다짐지기가 하람을 죽이러 왔고, 이 솔은 그런 다짐지기를 쓰러뜨렸다. 만약 그 일로 가온교가 찾아온 것이라면? 다시 하람을 죽이고, 다짐지기를 공격한 이 솔에게 처벌을 내리러 온 것이라면….
“……무시할까?”
“진짜 가온교라면 그냥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몰라요.”
초인종은 계속해서 울렸다. 이 솔과 하람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손을 맞잡은 채로 현관문 앞까지 내려왔다. 이 솔은 하람을 제 몸 뒤에 숨기듯 막아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문 좀 열어주지?”
“네가 뭔데?”
이 솔은 당황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아까 그 다짐지기만큼의 신체능력이라면 알아차릴 것이라 예상했으니까.
“나? 가온교지. 저기 널브러진 애하고는 다른 소속.”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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