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인도(引導)
조회 : 1,052 추천 : 0 글자수 : 5,035 자 2022-11-20
*이 작품에는 혐오와 차별, 그에 따른 폭력, 기타 부상과 유혈, 사망이 묘사되어있습니다. 해당 요소를 보기 힘드신 경우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냥꾼 일족.
세계의 행정과 정치, 경제 등 모든 일에 관여하는 가온교만큼이나 이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집단이다. 사냥꾼 일족은 일반적인 상급 능력자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 능력을 타고나며, 분류상 상급으로 분류되나 그보다 더 위에 있는 계급으로 취급된다.
이들이 이런 위치를 가질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 ‘두억시니’를 사냥할 수 있는 유일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두억시니. 검은 보랏빛 연기로 뭉친 짐승 형태의 괴물. 일반적인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으며, 오직 가온교의 ‘축복’을 받은 무기와 사냥꾼 일족만이 그 목을 잘라 죽일 수 있다. 몇 세기 전 갑자기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두억시니는, 인간의 악의가 뭉쳐 만들어졌다고 하며 오직 인간만을 죽인다.
사냥꾼 일족은 숲에 마을을 만들고 짐승을 잡아 파는 작은 부족이었으나, 세상에 ‘두억시니’라는 괴물이 나타나면서 그들의 역할은 바뀌게 되었다.
두억시니가 처음 나타났을 때, 아무런 공격도 통하지 않기에 저항도, 용기도, 두려움도 모두 짓밟히며 많은 인간이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두억시니가 나타난 지 5일 만에 세계 인구의 36%가 사망, 인류는 멸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가온교와 사냥꾼 덕분이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사냥꾼 일족은 두억시니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온교가 ‘축복’의 힘을 불어넣은 무기를 사용해서 두억시니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사냥꾼 일족은 세계로 흩어져 가온교들과 함께 두억시니를 정리해갔다.
어느 정도 두억시니가 정리된 후, 가온교는 두억시니가 생성되지 않는 안전한 땅을 찾아 축복으로 결계를 만들어 거주지를 만들었고, 사냥꾼들에게 축복을 내린 무기를 주어 결계 밖에서 늘어나는 두억시니를 주기적으로 토벌했다. 결계는 인간을 구했지만, 동시에 구속했다. 가온교가 만든 결계 밖에는 두억시니가 득실거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구역에서 평생을 살아가야만 했다. 다른 나라, 하물며 다른 지역에 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못한다.
가온교에는 ‘축복’의 힘을 사용해 세계 곳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만, 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교인이 아닌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다.
그 외에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사냥꾼을 고용해 경호를 받으며 이동하는 것. 두억시니는 인간을 감지하면 미친 듯이 달려들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방법이다. 더군다나 사냥꾼은 세계의 정점인 가온교, 그 바로 밑에 있는 자들. 계급이 나뉜 이 세상에서 그들이 가진 권력은 어느 상급 능력자들보다 위이며, 가온교가 아니라면 나라의 대표나 중요 인물로 지정된 이들만이 사냥꾼을 고용할 자격이 주어진다.
두억시니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사냥꾼은 인류의 구원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며, 그에 따른 자존심이 강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위험한 이들로 인식된다. 사냥꾼들은 워낙에 호전적이기 때문에 거주지역도 일반인들과 떨어져 있으며, 그 안에 사냥꾼을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따로 존재한다.
8살부터 입학하게 되는 이 학교는, 8살부터 20살까지 12년 동안 다니게 되어있으며, 1년에 5번씩 진행하는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학교에 남을 수 있다. 졸업까지 살아남는 이들은 절반 이하, 오직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을 양성하는 곳. 범재는 버틸 수 없는 이 학교에서, 입학 이래 모든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천재 중의 천재.
“이 솔!”
교사는 분을 참지 못하고 결국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부러뜨렸다. 그를 마주하는 학생은 태연하기만 하다. 이 솔. 입학 이래 한 번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는,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상급 능력자 중에서도 0.1%에 속하는 잠재력이 있는 유망주.
“소리치지 않으셔도 들립니다만.”
그리고 전설적인 사냥꾼 이 한의 딸.
사냥꾼 이 한. 두억시니 사냥, 대인 전투, 전술 등 모든 것이 최고라 불리는, 그야말로 사냥꾼의 정점에 있는 인물. 또한 약자를 지키는 것을 신념으로 살아가는 고결한 자. 처음에는 숭고한 목적으로 시작된 일도 명예와 재산이 늘어나면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사냥꾼들도 그랬다. 인간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명예라고 말하며, 등급이 낮은 능력자를 괴롭히거나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약자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두억시니를 사냥하는 사냥꾼들에게는 힘이 전부였다. 살아남을 힘, 싸울 힘. 그것이 없는 자들은 존중해 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홀연히 나타난 이 한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정상을 꿰찬 뒤부터 현재까지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가온교조차 쉽게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이 한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구원받았고, 수많은 토벌 실적을 인정받아 가온교의 ‘축복’을 사용한 이동을 허락받은 유일한 사냥꾼. 입지를 다진 이 한은 약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족의 많은 이가 이 한의 움직임에 반발했으나, 이미 그들이 제어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런 이 한의 딸인 만큼 이 솔은 많은 동경과 견제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또 애들을 쥐어패 놓았어?! 하루라도 안 싸울 수 없는 거냐??”
그리고 그 유명세만큼이나 사고를 치는 문제아로 통했다. 다른 학생들과 시비가 걸리는 건 다반사. 싸움이 붙었다 하면 상대를 입원시킬 정도로 패놓는다. 죽고 죽이는 게 일상인 약육강식의 사냥꾼 생태계에서 적을 살려두는 건 관대한 처벌이었으나……그 이유가 한 무능력자 때문이라는 게 문제였다.
무능력자 신하람. 이 솔과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소꿉친구 사이이며, 이 솔은 한 살 위인 하람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사냥꾼이 무능력자에게 쩔쩔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이 솔을 자존심 강한 사냥꾼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사냥꾼들은 이 솔의 어머니인 이 한과 온새미로에게 항의하며 당장 무능력자와 이 솔을 떼어놓으라 말했다. 그러나 이 한도 온새미로도 그 요청을 거절했다.
“약자를 지키는 것이 힘 있는 자의 역할인데, 내가 왜 무능력자와 어울린다는 이유로 내 딸을 혼내야 합니까?”
“누구랑 놀든 그건 우리 애 마음이죠~ 남의 딸 인간관계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온새미로, 진정해.”
이 한의 부인인 온새미로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온새미로는 무려 가온교의 교인 집안 출신으로, 그녀의 증조할머니는 가온교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속하는 ‘원로원’을 맡았던 사람이었다. 사냥꾼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지금은 집에서 쫓겨난 상태지만, 형식적인 일이었을 뿐이고 온새미로는 여전히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한도 온새미로도 건드릴 수 없다. 실력은 좋으나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 눈엣가시인 이 한의 딸, 시건방진 가온교 사람의 딸, 무능력자와 어울리는 어린 사냥꾼. 이런 이유로 이 솔은 어릴 때부터 많은 괴롭힘을 당해왔다. 죽을 뻔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남았고,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걸으며 눈부신 재능을 펼치고 있었다. 이 솔은 부러진 펜을 보더니 시계를 힐끔 보고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말씀하실 건 그게 전부입니까?”
“넌 반성도 안 해?!”
“전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무능력자보고 기생충이라고 한 게 뭐가 시비……!”
“선생님.”
교사의 말을 자른 이 솔이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꺾을 기세로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사고를 저지른 첫날, 저에게 말씀하셨죠. 사냥꾼은 힘이 전부라고.”
이 솔이 8살이 되며 입학한 때였다. 이 솔은 하람을 욕하던 학생들과 싸움을 벌였고, 그때 교사는 이 솔을 혼내며 말했다.
‘무능력자 일 따위로 열 내지 마! 사냥꾼에게는 힘이 전부야!’
이 솔은 살벌한 눈빛과는 다르게 느긋한 손길로 교무실 책상 위에 있던 컵을 쥐었다. 파삭, 하고 도자기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약해빠진 놈들은 강한 저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나는 응징했습니다. 이유는 상관없습니다. 난 강자잖아요?”
이 솔이 괴롭힘당할 때도 교사들은 말했다.
‘네가 약한 거야. 분하면 강해져서 스스로 해결해. 네가 강하다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이 솔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겼고, 입학 후 처음으로 본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그 뒤에도, 지금까지도.
“그리고 제가 전에 선생님 목숨을 두 번쯤 구해 드린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냥 좋게 넘어가죠.”
“너, 이!!”
쨍그랑!
이 솔의 손에서 도자기 컵이 힘없이 산산이 조각났다. 이 솔의 손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컵에 담겨있던 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 솔은 예의상 인사를 남기고 교무실을 떠났다. 교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 목숨을 구했다고?’
그래, 이 솔은 교사인 그녀를 구했다. 한 번은 토벌에서 두억시니에게 죽을 뻔했을 때, 그리고 한 번은 이 솔의 암살을 시도했을 때. 마치 제 일이 아닌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지.
‘이번만입니다.’
학생인데도 두억시니 토벌에 참여하는 이는 이 솔이 유일했다. 두억시니 토벌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 두억시니는 옷이나 방어구를 통과하고 육체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힌다. 가온교가 ‘축복’의 힘을 불어넣은 무기가 아니면 막을 수도, 공격할 수도 없다.
처음에는 이 한의 딸이 죽길 바라면서 억지로 밀어 넣은 것이었는데. 이 솔은 살아남았고, 오히려 그 경험이 그녀를 더욱 성장시켜주었다. 결국 사냥꾼들은 그녀를 인정했다. 이 솔은 17살의 어린 나이에 사냥꾼의 세상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그녀는 어두운 동굴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짐승이었다. 지금은 두 눈만을 빛내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나 덩치를 가늠할 수조차 없으며, 그 심장에 칼을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어쩌면 이 한보다 더 위험한.
‘제길, 제길!’
이 솔은 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12번의 크고 작은 토벌에 참여했고, 적대 가문에서 보내진 암살자들에게 죽을 뻔한 건 수백 번이 넘는다. 그러나 이 솔은 살아있다. 제 어미처럼 여전히 왕의 자리를 지키면서.
시선이 바닥에 부서진 채 널려진 조각으로 향했다. 단순한 화풀이가 아닌 경고다. 괴물 같은 놈. 마음속 중얼거림은 아무에게도 닿지 못한 채 사라졌다.
사냥꾼 일족.
세계의 행정과 정치, 경제 등 모든 일에 관여하는 가온교만큼이나 이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집단이다. 사냥꾼 일족은 일반적인 상급 능력자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 능력을 타고나며, 분류상 상급으로 분류되나 그보다 더 위에 있는 계급으로 취급된다.
이들이 이런 위치를 가질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 ‘두억시니’를 사냥할 수 있는 유일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두억시니. 검은 보랏빛 연기로 뭉친 짐승 형태의 괴물. 일반적인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으며, 오직 가온교의 ‘축복’을 받은 무기와 사냥꾼 일족만이 그 목을 잘라 죽일 수 있다. 몇 세기 전 갑자기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두억시니는, 인간의 악의가 뭉쳐 만들어졌다고 하며 오직 인간만을 죽인다.
사냥꾼 일족은 숲에 마을을 만들고 짐승을 잡아 파는 작은 부족이었으나, 세상에 ‘두억시니’라는 괴물이 나타나면서 그들의 역할은 바뀌게 되었다.
두억시니가 처음 나타났을 때, 아무런 공격도 통하지 않기에 저항도, 용기도, 두려움도 모두 짓밟히며 많은 인간이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두억시니가 나타난 지 5일 만에 세계 인구의 36%가 사망, 인류는 멸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가온교와 사냥꾼 덕분이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사냥꾼 일족은 두억시니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온교가 ‘축복’의 힘을 불어넣은 무기를 사용해서 두억시니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사냥꾼 일족은 세계로 흩어져 가온교들과 함께 두억시니를 정리해갔다.
어느 정도 두억시니가 정리된 후, 가온교는 두억시니가 생성되지 않는 안전한 땅을 찾아 축복으로 결계를 만들어 거주지를 만들었고, 사냥꾼들에게 축복을 내린 무기를 주어 결계 밖에서 늘어나는 두억시니를 주기적으로 토벌했다. 결계는 인간을 구했지만, 동시에 구속했다. 가온교가 만든 결계 밖에는 두억시니가 득실거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구역에서 평생을 살아가야만 했다. 다른 나라, 하물며 다른 지역에 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못한다.
가온교에는 ‘축복’의 힘을 사용해 세계 곳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만, 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교인이 아닌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다.
그 외에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사냥꾼을 고용해 경호를 받으며 이동하는 것. 두억시니는 인간을 감지하면 미친 듯이 달려들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방법이다. 더군다나 사냥꾼은 세계의 정점인 가온교, 그 바로 밑에 있는 자들. 계급이 나뉜 이 세상에서 그들이 가진 권력은 어느 상급 능력자들보다 위이며, 가온교가 아니라면 나라의 대표나 중요 인물로 지정된 이들만이 사냥꾼을 고용할 자격이 주어진다.
두억시니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사냥꾼은 인류의 구원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며, 그에 따른 자존심이 강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위험한 이들로 인식된다. 사냥꾼들은 워낙에 호전적이기 때문에 거주지역도 일반인들과 떨어져 있으며, 그 안에 사냥꾼을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따로 존재한다.
8살부터 입학하게 되는 이 학교는, 8살부터 20살까지 12년 동안 다니게 되어있으며, 1년에 5번씩 진행하는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학교에 남을 수 있다. 졸업까지 살아남는 이들은 절반 이하, 오직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을 양성하는 곳. 범재는 버틸 수 없는 이 학교에서, 입학 이래 모든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천재 중의 천재.
“이 솔!”
교사는 분을 참지 못하고 결국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부러뜨렸다. 그를 마주하는 학생은 태연하기만 하다. 이 솔. 입학 이래 한 번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는,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상급 능력자 중에서도 0.1%에 속하는 잠재력이 있는 유망주.
“소리치지 않으셔도 들립니다만.”
그리고 전설적인 사냥꾼 이 한의 딸.
사냥꾼 이 한. 두억시니 사냥, 대인 전투, 전술 등 모든 것이 최고라 불리는, 그야말로 사냥꾼의 정점에 있는 인물. 또한 약자를 지키는 것을 신념으로 살아가는 고결한 자. 처음에는 숭고한 목적으로 시작된 일도 명예와 재산이 늘어나면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사냥꾼들도 그랬다. 인간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명예라고 말하며, 등급이 낮은 능력자를 괴롭히거나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약자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두억시니를 사냥하는 사냥꾼들에게는 힘이 전부였다. 살아남을 힘, 싸울 힘. 그것이 없는 자들은 존중해 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홀연히 나타난 이 한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정상을 꿰찬 뒤부터 현재까지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가온교조차 쉽게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이 한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구원받았고, 수많은 토벌 실적을 인정받아 가온교의 ‘축복’을 사용한 이동을 허락받은 유일한 사냥꾼. 입지를 다진 이 한은 약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족의 많은 이가 이 한의 움직임에 반발했으나, 이미 그들이 제어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런 이 한의 딸인 만큼 이 솔은 많은 동경과 견제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또 애들을 쥐어패 놓았어?! 하루라도 안 싸울 수 없는 거냐??”
그리고 그 유명세만큼이나 사고를 치는 문제아로 통했다. 다른 학생들과 시비가 걸리는 건 다반사. 싸움이 붙었다 하면 상대를 입원시킬 정도로 패놓는다. 죽고 죽이는 게 일상인 약육강식의 사냥꾼 생태계에서 적을 살려두는 건 관대한 처벌이었으나……그 이유가 한 무능력자 때문이라는 게 문제였다.
무능력자 신하람. 이 솔과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소꿉친구 사이이며, 이 솔은 한 살 위인 하람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사냥꾼이 무능력자에게 쩔쩔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이 솔을 자존심 강한 사냥꾼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사냥꾼들은 이 솔의 어머니인 이 한과 온새미로에게 항의하며 당장 무능력자와 이 솔을 떼어놓으라 말했다. 그러나 이 한도 온새미로도 그 요청을 거절했다.
“약자를 지키는 것이 힘 있는 자의 역할인데, 내가 왜 무능력자와 어울린다는 이유로 내 딸을 혼내야 합니까?”
“누구랑 놀든 그건 우리 애 마음이죠~ 남의 딸 인간관계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온새미로, 진정해.”
이 한의 부인인 온새미로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온새미로는 무려 가온교의 교인 집안 출신으로, 그녀의 증조할머니는 가온교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속하는 ‘원로원’을 맡았던 사람이었다. 사냥꾼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지금은 집에서 쫓겨난 상태지만, 형식적인 일이었을 뿐이고 온새미로는 여전히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한도 온새미로도 건드릴 수 없다. 실력은 좋으나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 눈엣가시인 이 한의 딸, 시건방진 가온교 사람의 딸, 무능력자와 어울리는 어린 사냥꾼. 이런 이유로 이 솔은 어릴 때부터 많은 괴롭힘을 당해왔다. 죽을 뻔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남았고,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걸으며 눈부신 재능을 펼치고 있었다. 이 솔은 부러진 펜을 보더니 시계를 힐끔 보고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말씀하실 건 그게 전부입니까?”
“넌 반성도 안 해?!”
“전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무능력자보고 기생충이라고 한 게 뭐가 시비……!”
“선생님.”
교사의 말을 자른 이 솔이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꺾을 기세로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사고를 저지른 첫날, 저에게 말씀하셨죠. 사냥꾼은 힘이 전부라고.”
이 솔이 8살이 되며 입학한 때였다. 이 솔은 하람을 욕하던 학생들과 싸움을 벌였고, 그때 교사는 이 솔을 혼내며 말했다.
‘무능력자 일 따위로 열 내지 마! 사냥꾼에게는 힘이 전부야!’
이 솔은 살벌한 눈빛과는 다르게 느긋한 손길로 교무실 책상 위에 있던 컵을 쥐었다. 파삭, 하고 도자기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약해빠진 놈들은 강한 저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나는 응징했습니다. 이유는 상관없습니다. 난 강자잖아요?”
이 솔이 괴롭힘당할 때도 교사들은 말했다.
‘네가 약한 거야. 분하면 강해져서 스스로 해결해. 네가 강하다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이 솔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겼고, 입학 후 처음으로 본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그 뒤에도, 지금까지도.
“그리고 제가 전에 선생님 목숨을 두 번쯤 구해 드린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냥 좋게 넘어가죠.”
“너, 이!!”
쨍그랑!
이 솔의 손에서 도자기 컵이 힘없이 산산이 조각났다. 이 솔의 손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컵에 담겨있던 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 솔은 예의상 인사를 남기고 교무실을 떠났다. 교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 목숨을 구했다고?’
그래, 이 솔은 교사인 그녀를 구했다. 한 번은 토벌에서 두억시니에게 죽을 뻔했을 때, 그리고 한 번은 이 솔의 암살을 시도했을 때. 마치 제 일이 아닌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지.
‘이번만입니다.’
학생인데도 두억시니 토벌에 참여하는 이는 이 솔이 유일했다. 두억시니 토벌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 두억시니는 옷이나 방어구를 통과하고 육체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힌다. 가온교가 ‘축복’의 힘을 불어넣은 무기가 아니면 막을 수도, 공격할 수도 없다.
처음에는 이 한의 딸이 죽길 바라면서 억지로 밀어 넣은 것이었는데. 이 솔은 살아남았고, 오히려 그 경험이 그녀를 더욱 성장시켜주었다. 결국 사냥꾼들은 그녀를 인정했다. 이 솔은 17살의 어린 나이에 사냥꾼의 세상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그녀는 어두운 동굴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짐승이었다. 지금은 두 눈만을 빛내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나 덩치를 가늠할 수조차 없으며, 그 심장에 칼을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어쩌면 이 한보다 더 위험한.
‘제길, 제길!’
이 솔은 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12번의 크고 작은 토벌에 참여했고, 적대 가문에서 보내진 암살자들에게 죽을 뻔한 건 수백 번이 넘는다. 그러나 이 솔은 살아있다. 제 어미처럼 여전히 왕의 자리를 지키면서.
시선이 바닥에 부서진 채 널려진 조각으로 향했다. 단순한 화풀이가 아닌 경고다. 괴물 같은 놈. 마음속 중얼거림은 아무에게도 닿지 못한 채 사라졌다.
작가의 말
앞 내용과 이어지지 않는 내용도 있고, 나머지 회차까지 한꺼번에 수정한 다음 올리면 다음 달에나 올릴 수 있어서 부득이하게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써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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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9. 두 개의 날개조회 : 1,06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5 29.28. 인도(引導)(7)조회 : 98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78 28.27. 인도(引導)(6)조회 : 95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28 27.26. 인도(引導)(5)조회 : 1,0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1 26.25. 인도(引導)(4)조회 : 96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85 25.24. 인도(引導)(3)조회 : 1,15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6 24.23. 인도(引導)(2)조회 : 99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82 23.22. 인도(引導)조회 : 1,05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5 22.21. 파도(5)조회 : 3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62 21.20. 파도(4)조회 : 94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35 20.19. 파도(3)조회 : 8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61 19.18. 파도(2)조회 : 5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70 18.17. 파도조회 : 54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07 17.16. 파문(波紋)(4)조회 : 46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35 16.15. 파문(波紋)(3)조회 : 7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50 15.14. 파문(波紋)(2)조회 : 4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45 14.13. 파문(波紋)조회 : 50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0 13.12. 기억(4)조회 : 54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9 12.11. 기억(3)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4 11.10. 기억(2)조회 : 4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67 10.9. 기억조회 : 4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9 9.8. 혼돈조회 : 4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274 8.7. 변화(4)조회 : 41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25 7.6. 변화(3)조회 : 6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00 6.5. 변화(2)조회 : 51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91 5.4. 변화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17 4.3. 하늘 아래(3)조회 : 58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572 3.2. 하늘 아래(2)조회 : 655 추천 : 2 댓글 : 0 글자 : 5,117 2.1. 하늘 아래조회 : 68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72 1.0. 기도조회 : 2,457 추천 : 1 댓글 : 2 글자 : 4,344